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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1화 (1/197)

#제01화

콰르르르.

지면 위로 마기가 술렁거린다.

단지 그것만으로 하늘이 붉게 물들고 땅이 죽어 가기 시작했다.

사락.

마력의 근원지에는 박쥐의 그것처럼 여섯 장의 얇은 피막으로 된 날개를 펄럭이는 악마가 존재했다.

흑단 같은 머리칼과 아다만티움에 버금가는 강도를 지닌 거대한 뿔이 유난히 돋보이는 존재.

그는 심홍색의 눈으로 지상을 훑으며 적들의 섬멸을 꾀하고 있었다.

마계 서열 1위. 벨리앗.

그는 권모술수가 난무했던 마계에서의 오랜 사투를 자신의 손으로 종결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목적은 정복도 지배도 아니었다.

오직 순수한 파괴뿐.

머릿속에는 증오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밉다. 죽이고 싶다.

모든 생명을 도륙할 때까지 이 맹렬한 증오의 불길은 사그라지지 않으리라.

필요한 것은 투쟁이지, 죽은 자들에 대한 애도 따위가 아니었다.

쇄액! 쇄액! 쇄액!

그의 눈앞에서는 무수한 마족들이 날개를 펼친 채, 벨리앗 단 한 명을 토벌하기 위해 검은 창을 휘두르고 마법을 쏘아내며 공중전을 벌이고 있었다.

콰앙! 콰앙! 콰앙!

하지만 벨리앗의 주먹에 마족들은 곧 맥없이 몸이 터지며 소멸했다.

“죽여! 지금 당장 벨리앗을 없애지 않으면 마계가 사라진다!!!”

다급한 지휘관의 명령에 허공에서 대기하고 있던 마족들이 마력을 끌어모아 광대한 마법을 펼쳤다.

집대성된 검은 마력은 맹렬히 회전하며 주변의 모든 것들을 부스러뜨리면서 흡수해 나갔다.

그 광대한 블랙홀 앞에서 벨리앗은 오른손에 마력을 집약시키기 시작했다.

꿈틀.

우우우웅!

벨리앗의 팔 근육이 급격히 팽창하더니, 손에 붉은색 마력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구체가 생성됐다.

그 크기는 맞은편의 마족들이 만들어 낸 블랙홀보다 월등히 컸다.

벨리앗은 차갑게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애초에 내가 가진 마력의 총량이 마족 전체를 합친 것보다 월등히 앞선다. 애송이들아.”

그가 조소와 함께 붉은 구체를 블랙홀을 향해 날리니…….

콰아아아앙!

구체는 단숨에 블랙홀을 터트리고서 나아가 마족들까지 모조리 일망타진했다.

“크아아아악! 네놈을 저주한다! 벨리앗!”

“네놈을 원망한다. 이 악의 화신!!!”

마족들은 원망과 분노가 뒤섞인 유언을 남기며 그렇게 사라졌다.

콰아아아앙!

모든 것을 휩쓸었음에도 부족했는지, 붉은 구체는 지상으로 떨어지며 거기에 있는 마을까지 소멸시켰다.

“……끝난 건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할 일을 마친 벨리앗은 마지막 생명체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려고 했다.

하지만.

스스스스.

예상과 달리 모든 것이 잿더미로 부스러져 가는 와중에도 한 신전만이 멀쩡했다.

“어떤 애송인지 모르지만, 날 부르는 거겠지.”

벨리앗은 코웃음을 치고서…….

콰앙!

그대로 신전 천장을 부수며 내부로 진입한 다음 날카로운 어조로 말했다.

“지금 이건 네놈이 벌인 짓이냐?”

스스스스.

신전 중앙.

그곳에서 금빛의 파문이 형성되며 어떤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놀랍게도 벨리앗의 흉포한 힘을 막아낸 것은 수많은 팔라딘도 강력한 드래곤도 아니었다.

……찬란한 금발.

그리고 그와 같은 색을 띠는 금안이 무척이나 매력적인 소년이었다.

꿈틀.

일순간 벨리앗의 내면에서 불쾌함이 치솟았다.

그것은 어린 소년에게서 흘러나오는 신력 때문이었다.

“꼬맹아. 네놈은 신인 거냐?”

소년은 싱긋 웃어 보였다.

“맞아. 누구게~? 한 번 맞춰 봐.”

장난스럽게 응수하기 무섭게…….

콰아아아아앙!

벨리앗의 손아귀에서 응축된 붉은 마력이 단숨에 소년을 휩쓸었다.

따지고 보면, 그는 신과의 사투가 처음이 아니었다.

벨리앗이 예전에 조우했던 신은 거만을 떨다 그의 손에 숨통이 끊어졌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급한데?”

그때 벨리앗의 바로 뒤에서 소년이 조롱하듯 그의 귀에 대고 중얼거렸다.

“?!”

깜짝 놀란 벨리앗은 즉각 몸을 돌려 주먹을 내질렀다.

콰앙!

하지만 이번에도 불발.

바위산조차 무너뜨리는 그의 주먹은 어처구니없게도 소년의 두 손가락에 손쉽게 막혔다.

“무슨?!”

벨리앗의 머릿속이 일순간 혼란으로 뒤덮였다.

소년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을 소개했다.

“내 이름은 차이트. 시간의 신이야.”

“웃기지 마라. 시간을 관장하는 신은…….”

“여기서는 아리안로드가 관장하고 있겠지. 하지만 신은 셀 수 없이 많아서 관장하고 있는 분야가 같은 경우도 부지기수잖아. 신경 쓰지 마.”

벨리앗은 차이트에게서 손을 거두고선 팔짱을 끼며 물었다.

“이미 마계는 멸망했다. 그걸 알고 있기에 신들 역시 마계에 개입하지 않는 건데, 어째서 지금 와서 타계의 신이 모습을 드러내는 거지?”

차이트는 찰랑거리는 금발을 정리하며 입을 뗐다.

“마족이 모두 사라지면, 마계가 정말 붕괴해 버리거든. 그래서 최고신의 부탁으로 마계의 일은 당분간 내가 맡게 됐어.”

벨리앗은 가당치도 않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마계의 주인은 나다. 어떻게 되든 관여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그 말에 차이트는 혀를 끌끌 찼다.

“엉망진창이 된 이곳에서 혼자 남아서 뭐하게? 너 바보구나.”

빠직!

조롱 섞인 말에 벨리앗은 이마에 핏대를 세웠다.

“하찮은 하급 신 나부랭이 따위가!!”

쿠구구구구.

그가 분노를 발산하자 전신에 붉은 기운이 가득 피어올랐다.

쩌저적! 콰앙!

동시에 마계의 지반에 다시 균열이 가며 대기가 요동을 쳤다.

피식.

차이트는 두려움을 느끼지 못한 것인지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벨리앗. 마계에서 제일 강한 너의 폭주를 멈추지 않으면 이 세상은 부서질 거야.”

“그래서 네까짓 게 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차이트는 너무나 환한 표정으로 답했다.

“응! 그리고 이참에 너한테 벌을 주려고.”

“까불지 마!”

콰아앙!

벨리앗은 전신의 힘을 폭주시키며 차이트와의 전투에 돌입했다.

벨리앗의 몸은 붉은 섬광으로, 차이트의 몸은 금빛의 섬광으로 변모하며 고무줄처럼 늘고 줄기를 반복했다.

콰앙! 콰앙! 콰앙!

격렬한 충돌의 여파로 신전 곳곳이 부서지고 무너져 내렸다.

스스스슷.

하지만 금빛 섬광이 곳곳을 선회하자, 부서진 것들은 다시 원래 자리를 되찾아 복원됐다.

파괴와 재생의 반복.

‘시간의 신이라고 떠벌릴 만하군.’

차이트의 힘에 위기감을 느낀 벨리앗은 급격히 궤도를 수정해 달려들어 차이트의 목을 붙들고선, 그대로 혼신의 힘을 다해 벽에 꽂아 넣었다.

콰아아아아앙!

신전 벽 전체에는 거미줄 같은 거대한 균열이 생겼다.

차이트는 곤란하다는 듯 힘겨운 표정을 지었다.

“아아, 역시 강한데. 벨리앗, 만약 내가 이기면 소원 하나 들어줄래?”

“네가 이긴다면 말이지. 꼬맹아.”

벨리앗은 히죽 웃음을 터뜨리더니…….

스스스스.

손아귀에 붉은색의 강대한 기운을 집약시켜 그대로 차이트의 몸속에 투입했다.

마력으로 체내 전체를 폭발시키는 잔학한 수법.

콰앙!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터져 나간 것은 벨리앗의 손이었다.

“?!”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는 터져 나간 자신의 오른손과 눈앞에서 싱긋 웃고 있는 차이트를 번갈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약속했으니까 지켜야 한다?”

“네놈. 설마 일부러?!”

“원래 세상은 영악한 사람이 이기는 거야.”

지금까지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고 있던 차이트의 입가에는 어느새 광기가 감도는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애초에 차이트는 벨리앗이 마력을 발산하도록 유도했던 것이다.

“날 기만하고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실로 굴욕이다.

스스스스.

기염을 토한 벨리앗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여섯 장의 날개에서 붉은빛을 발산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차이트는 쯧쯧 혀를 찼다.

“큰 기술을 함부로 남용하다니. 너 싸움 진짜 못 하는구나.”

촤르르르륵.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차이트의 손에서 튀어나온 금빛의 사슬이 벨리앗의 몸을 속박하며 힘을 통째로 봉인했다.

“무슨?!”

졸지에 온몸이 구속당해 버린 벨리앗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차이트는 빙그레 웃으며 자기소개를 마저 했다.

“내 이름은 차이트. 세상을 혼돈으로 몰아가려는 악으로부터 구원자를 선택해 회빙환을 시켜 세계를 구제하게 만드는 시간의 신이지. 난 그 구원자로 널 선택했어.”

“회빙환?”

“음…… 회귀, 빙의, 환생을 합쳐서 이르는 말이야.”

“내 이름은 벨리앗이다. 이 마계를 멸망으로 몰아붙인 악이지. 그런 나를 구원자로 선택한다고? 가증스런 소리를 잘도 늘어놓는구나.”

“물론 넌 천하의 나쁜 놈이야.”

꿈틀.

콰앙!

울컥한 벨리앗이 전신의 기력을 쥐어짰지만, 차이트의 사슬은 끊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어느새 차이트가 그의 오른쪽 어깨에 걸터앉더니 설교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의 분노에는 확실한 동기가 있어. 네가 잘못된 선택으로 무참히 다른 생명을 죽인 건, 그것이 소중하다는 자각을 하지 못해서 그렇지. 그러니까 지금부터 넌 내 사자가 될 거야.”

“다 필요 없다.”

지금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 건방진 놈의 입을 틀어막고 싶을 뿐이었다.

“또 못된 생각을 하네.”

스윽.

차이트는 그런 벨리앗의 이마에 검지를 끌어다 모았다.

“네놈. 어디까지 날 능멸하려는…….”

콰앙!

말을 매듭짓기도 전에 차이트의 손가락이 벨리앗의 이마를 강타했다.

그와 동시에 차이트의 권능이 빛을 발하자…….

사락.

벨리앗의 전신이 금빛에 파묻혀 사라지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악!”

난생처음 느껴 보는 고통에 벨리앗은 괴성을 지르며 차이트의 멱살을 쥐었다.

“차이트, 네놈!”

차이트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난 줄곧 탑에 있을 거야. 사명을 완수하면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얼마든지 너의 도전을 받아줄 테니까.”

“웃기지 마!!”

벨리앗은 어떻게든 몸부림을 치며 차이트의 권능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스륵!

이미 그 몸은 한 줌의 재가 되어 흩날리고 있었다.

*  *  *

‘……여기는 어디지?’

의식을 잃은 지 얼마나 되었을까.

눈을 뜬 벨리앗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뒤, 정면에 있는 거울을 살폈다.

거울에는 10대 중반의 유약해 보이는 소년의 모습이 비쳤다.

그 소년이 곧 자신임을 깨달은 벨리앗은 차이트가 남긴 말을 떠올렸다.

‘빙의? 아니면 환생인가? 어려운 개념이군.’

-내 이름은 차이트. 세상을 혼돈으로 몰아가려는 악으로부터 구원자를 선택해 회빙환을 시켜 세계를 구원하게 만드는 시간의 신이지. 난 그 구원자로 널 선택했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아마 차이트는 회귀, 빙의, 환생 셋 중 하나의 방법으로 벨리앗의 정신을 이 육체에 정착시킨 것이 분명했다.

‘볼품없는 육체군.’

앙상한 팔에는 근육이 전혀 붙어 있지 않았다.

거기에 몸 곳곳이 욱신거리고 멍이 가득한 것으로 보아 육신의 주인은 꽤나 험난한 환경에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스윽.

슬며시 소매를 걷어 보니, 오른쪽 손목에는 자살을 하기 위해 여러 번 검으로 그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슬쩍 목을 살펴보니, 밧줄의 흔적이 역력했다.

“살기 싫어서 나에게 육신을 건네줬다는 건가.”

어렴풋하게 진실을 깨달은 벨리앗은 다시 한번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보았다.

붉은 머리칼에 불꽃을 연상케 하는 심홍색 눈동자.

외모만 보면 마왕 시절의 벨리앗과 상당히 유사했다.

벨리앗은 지그시 미간을 좁히며 거울 속의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네 녀석의 이름은 뭐지?”

누군가 보면 미친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모습이었다.

그때 벨리앗의 머릿속으로 어떤 촉이 스쳐 지나갔다.

스륵.

무심코 거울 옆에 있는 테이블을 살펴보니, 그곳에는 두꺼운 가죽으로 만든 표지에 양피지를 엮어 만든 일기가 한 권 놓여 있었다.

칼리언트 슈타크(Caliente Stark).

아마 일기장의 주인이 이 육신의 주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칼리언트 슈타크라……. 이번 생에 내가 살아갈 이름인가.”

벨리앗, 아니 칼리언트는 순순히 이 상황에 수긍했다.

어차피 자신은 차이트에게 진 패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패자는 승자의 요구에 응당 응해야 하는 법이다.

‘네놈과의 재회를 기다리지. 차이트.’

칼리언트는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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