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5화
25장 9화 대행진(2)
남부 연합의 진영은 본래 계획과 정 반대로 돌아갔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최후방에서 징집된 병력들은 워싱턴을 향한 동계 공세를 숨길 정도의 전과를 보여줬어야 했다.
서부 전선, 테네시에 모인 병력은 대평원을 위협하며 북부를 공략했어야 할 병력들이다. 혹은 철저한 준비를 갖추고 북부의 파상공세를 막아내며 북부의 시선을 돌렸어야 한다.
“차라리 똥 마려운 강아지들을 데리고 전투를 벌이고 말지.”
노스캐롤라이나 출신 중대장은 진영을 돌아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칸소와 루이지애나는 북부의 편인 텍사스의 참전을 우려하여 그리 많은 병사를 보내지 않았다.
미시시피, 앨라배마 그리고 조지아를 비롯한 최후방 주들의 병사들이 주축을 담당해야 했다. 과거형인 이유는 병사들이 반쯤 공황상태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본래 앨라배마 주 출신 장교들이 운영하던 부대들도 장교들이 먼저 탈영할 지경이었다. 결국 노스캐롤라이나의 선임 병사들이 억지로 장교 딱지를 달고 부대 지휘관이 되었다.
그런 새 중대장의 눈에 무언가를 돌려보는 병사들이 보였다. 언제나 있던 일이라 장교는 병사들을 거칠게 밀치고 돌려보던 사진을 빼앗아 들었다.
“검둥이랑 떡이나 치는 북부 놈들의 가짜 사진을 돌려 보나!”
남부 연합은 이미 사태의 본질을 어렴풋이 파악하였다. 링컨은 서부 전선을 붕괴시키기 위해 최정예 기병을 잠입시켜 한껏 분탕질을 치고 있었다.
이 사태를 동계 공세 이전에 해결하기 위해 4만여 명에 달하는 기동 병력을 편성하고 11월 이전에 사태를 종료시킬 작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거짓말을 하였다. 기껏해야 이천여 명 내외의 기병들이 분탕질을 칠뿐이며 사진들은 미리 북부에서 찍어서 준비해 둔 물건이라고.
“어으! 어으어어! 엄마 사진! 엄마 사진인데에에!”
덩치가 우람한 병사가 눈물을 글썽거리다 중대장에게 달려들어 사진을 달라고 팔을 허우적거렸다. 주먹으로 얼굴을 후려치려던 중대장은 화를 꾹 눌러 참고 말하였다.
“버바! 이 멍청한 놈아! 원숭이나 마찬가지인 타타르 기병이 사진을 어떻게 찍나! 넌 원숭이들이랑 검둥이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는 대지주의 아들로서 타타르가, 정확히는 몽골계 미국인들이 어떠한 인물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어엿한 문명인이고 미국 최정예 기병으로 분류해야 할 이들이다.
그래도 장교 입장에서 병사의 사기를 떨어트릴 수 없었다. 거대 목장주이자 최강의 기병 몽골계 미국인이 아닌 말 타는 원숭이인 타타르라는 공식 입장을 유지하기 위해 말하였다.
“이 사진은 가짜다! 북부에는 검둥이를 사랑하는 놈들이 너무 많아서 이런 사진 정도는 미리 준비할 수 있었단 말이다! 원숭이는 사진을 잔뜩 나눠준 것에 불과하고!”
“중대장님! 가짜 사진이 아닙니다!”
“프레디! 넌 머리가 좋을 줄 알았는데!”
사진을 찢으려던 찰나 팔다리가 길쭉한 병사가 사진을 낚아채고 버바라 불린 병사에게 돌려주었다. 중대장이 어떤 처벌을 내릴까 고민하자 프레디가 눈을 부릅뜨고 말하였다.
“저도 처음에는 장교 나리들의 이야기가 옳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수없이 많은 사진들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데 매번 사람이 바뀌며 사진이 계속 전달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미리 찍어둔 가짜라고 말하지 않았나!”
“그럼 버바의 가족들과 마이클의 부모님이 왜 저 사진에 있습니까!”
중대장은 넋을 놓은 채 고개를 돌려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덩치가 가장 큰 버바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사진을 바라보며 가족들의 안전을 걱정하였다.
“어무니, 아부지, 할아부지……. 혀엉……. 형이 팔이 없어졌어.”
소르칸의 사진은 흑백인 데다 단체 사진이라 그리 선명하지 않았다. 닮은 사람이 있어도 우연하게 비슷한 사람이 찍혔다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가족 전체가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버바는 지능이 좀 낮지만 네 명이나 되는 가족의 얼굴도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그 순박한 얼굴에서 계속 눈물이 새어나오며 엉엉거리는 울음소리가 중대 전체에 퍼져 나갔다. 중대장은 일단 사태를 진정시킬 생각으로 버바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하였다.
“적어도 검둥이들이 가족들을 죽이지는 않은 것 같다. 안심하도록.”
“집에 가고 싶어요. 저 집에서 검둥이들 다 죽이고 원숭이들 다 죽일래요.”
“안 된다. 여기서 네가 도망치면 원숭이들에게 평원 한복판에서 사냥당할 거다. 네 시신이 부모님에게 들어가면 어떤 꼴을 당하겠나?”
“그럼 다 같이 집에 가면 안 되나요? 우리는 뭉치면 세잖아요.”
중대장은 울화통이 터지려 하였지만 이를 꾹 눌러 참았다. 그리고는 본래 병사들에게 전달되지 않았어야 할 이야기를 하였다.
“앞으로 두 달만 기다려라. 대통령 각하께서 기동 타격대를 편성하여 타타르 원숭이들을 모조리 죽일 거다. 그러면 너희 부모님도 구출되겠지.”
“진짜죠? 정말이죠?”
“물론. 그러니 눈앞의 전투에 주목해라!”
버바는 왼손으로 경례를 하려다 머뭇거리고 다시 오른손으로 경례를 하려다가 뭔가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한쪽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정말 감사해요 중대장님. 대통령 님 각하가 원숭이 다 죽인다 하셨어요.”
“그래. 다만 이 이야기를 다른 데 퍼트리지 말거라.”
중대장은 사진이 더 펴져 나가지 않고 버바를 진정시키기 위해 사진을 오려낼 가위를 찾았다. 가족 부분만 오려낸 사진을 두고 나머지를 폐기할 작정이었다.
그런 중대장의 뒤에 섬뜩한 기운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휘하 병사인 마이클의 무뚝뚝하고 창백한 얼굴이 보였다.
“으악! 넌 좀 뭐라 말이라도 하고 그딴 식으로 다가와라!”
“개인적으로 중대장님께 여쭈어 볼 것이 있습니다. 고작 이천 명의 기병들이 이런 일을 할 수나 있습니까?”
공식적인 발표는 앨라배마 주에 삼천여 기의 기병이 난입. 주요 도시를 공격하다 큰 손해를 보고 격퇴당한 다음 일부 지역을 약탈하며 떠돌아다니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도시를 점령하고 저런 사진을 수도 없이 보내온다면 병력의 규모부터 잘못되었다. 마이클의 창백한 얼굴을 돌아보던 중대장에게 더 냉정한 말이 돌아왔다.
“저도 사람이고 당장 미쳐 버릴 것 같습니다. 우리 집에 검둥이 노예가 셋이나 있는데 부모님이 뭔 꼴을 당할지, 누님이 뭔 꼴을 당할지 상상할 때마다 구역질이 치밀어 오릅니다.”
“진정해라, 적 병력은 일만여 명에 불과하다.”
“그러긴 하겠지요. 거기다가 사십 만 명이 넘는 검둥이 협력자들도 있겠지요.”
중대장도 이 사실을 알고는 있었다. 사실상 인구의 절반이 잠재적 적이나 마찬가지인 꼴이 된 앨라배마는 아마 몇 개의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기능을 상실하였다.
마이클은 중대장에게 다가오던 때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돌려 조용히 사라졌다. 그리고는 오려낸 사진을 돌려받은 동료들에게 돌아가서 말하였다.
“일단 살아남고 보자고, 난 몰라도 너는 무조건 뒤에서 웅크리고 있어.”
“응! 알았어!”
“그리고 프레디 네가 좀 더 잽싸니까 버바 좀 돌봐줘라.”
“지금 나보고 이 돼지를 어쩌고 어째?”
“그럼 이 순박한 놈을 전쟁터에서 죽게 내버려 둘 셈이야?”
병사들은 각자를 돌아보며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살아남아서 가족들을 구하기 위해 한 몸으로 뭉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영이라는 욕구는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다음 날 점심이 되자 중대장은 두 명의 탈영병을 확인하고 다시 훈시에 돌입하였다. 중대원들을 집결시키고 일장연설을 해서 어떻게든 탈영을 늦출 생각만 가득하였다.
“너희가 후방으로 돌입해 보았자 타타르 원숭이들의 표적이 될 뿐이다!”
그 순간 포격이 남군의 진지에 쏟아졌다. 탈영병이 너무 많아 제대로 된 정찰도 하지 못하는 남군의 진영은 선제 포격을 얻어맞고 삽시간에 붕괴하였다.
각 일선 장교들은 병사들의 도주를 막지 못하였다. 간을 보는 식의 일제 포격을 두들겨 맞자 전체 부대의 20%가량이 그 자리에서 도주하였다.
대응 포격 따위는 꿈에도 못 꿀 일이었다. 말 그대로 바스러져 버린 전선에 탄환이 날아들고 기병이 난입하여 마무리를 하였다.
이 난장판 속에서 몇몇 병사들은 백기를 흔들며 항복을 하였다. 그 항복한 병사들에게 조슈아 툼을 중심으로 한 흑인 기병들이 다가와 무장을 해제시키려 하였다.
“거! 검둥이다! 말을 탄 검둥이다!”
버바를 확인한 조슈아 툼은 피식 웃으면서 권총을 겨누었다. 말 그대로 몸만 지킨 패잔병 신세의 병사들은 주변의 기병들을 돌아보며 자발적으로 무기를 떨구었다.
“조슈아 소령님이라 불러라. 네놈들 항복한 것 맞지?”
“맞아요! 집에 돌아가고 싶어요!”
시신과 피비린내 그리고 포탄의 연기가 자욱한 전장에서 따스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병사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북군의 포로로 분류되어 더 많은 일을 할 예정이었다.
* * *
남부 연합에서도 사태 해결을 위해 각 지역의 민병대가 뭉치기 시작하였다. 이들 중 대다수는 노예 제도로 인해 돈을 버는 사업가들이 설립한 병력이었다.
흑인 노예를 해방하면 농장 근로자로 고용할 수 있는 대지주와 달리 이러한 사업가들은 아예 기반이 날아가는 꼴이 되었다. 이 절박한 움직임 속에 걸물이 드러났다.
“나 포레스트는 도망치는 검둥이들을 추격한 경험이 있다! 그 경험을 살려 타타르 원숭이들도 추격해 보겠다!”
바로 남북전쟁 당시 남군 최강의 기병대장인 네이든 베드포트 포레스트, 노예 상인이자 본래 역사에서 먼 훗날 KKK단의 초대 회장을 역임하는 자였다.
그는 앨라배마에서 들어오는 소식을 종합하고 분석하며 기병을 모았다. 놀랍게도 그가 생각하는 기병의 게릴라 전투와 몽골계 미국인들의 전술은 닮은 구석이 있었다.
“타타르 원숭이들은 열매를 다 키워놓고 수확할 줄 모르는 멍청한 놈들이다! 놈들이 제대로 된 기병이라면 사방을 들쑤시고 다른 지역으로 퍼져 나갔을 거다!”
애리조나 민병대는 적을 경색시키기 위해 고의적으로 앨라배마 주에 머물렀다. 구릉과 평지가 어우러진 지형에서 적을 계속 끊어내고 이득을 얻기 위한 전략이었다.
이 사실을 모르는 민병대는 그의 연설을 듣고 활력을 되찾았다. 가난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노예무역으로 산더미 같은 돈을 벌어들인 그 능력을 믿은 것이다.
“전쟁은 평면이 아니다. 언제나 숨 쉬듯이 움직이고 퍼져 나가며 후속 병력을 동원해야지.”
-그럼 타타르는 왜 후속 병력도 없고 움직이지도 않습니까?
“좋은 질문이다 병사! 링컨의 기병은 숙련도가 떨어지고 명령 체계도 불순하다. 더군다나 열등한 검둥이와 인디언들은 명령도 제대로 듣지 않을 거다!”
그는 기동력과 순발력을 중시하였다. 이 전술은 유목민족이라면 누구나 알고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기초 전술에 불과하지만 꽉 막힌 전황을 뒤엎을 수 있는 신의 한 수라 보았다.
“가자! 앨라배마를 구원하고 타타르를 모조리 죽이자!”
-우와아아아아!
“내 휘하의 검둥이 사냥꾼들이 너희를 인솔할 거다! 이제 원숭이를 사냥하자!”
삼천여 기의 기병이 포레스트의 민병대에 합류하였다. 막 앨라배마 주에서 벗어나 조지아 주로 향한 애리조나 민병대는 이 소식을 미리 잠입시킨 노예를 통해 입수하였다.
“그럭저럭 쓸 만한 녀석이 왔군. 숨 쉬듯이 움직이고 퍼져 나간다?”
소르칸과 간부들은 계속 병력을 불려 나가는 포레스트의 민병대를 그럭저럭 괜찮은 상대로 보았다. 그의 병력 운영은 중대 단위로 세분화한 기병으로 전선을 파고드는 전략이었다.
그 이하로 병력을 쪼갤 수는 없었다. 남부의 문맹률은 90%에 달하고 지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부족한 형편이라 어쩔 수 없는 자구책에 가까웠다.
반면 소르칸의 휘하 병사들은 흑인조차도 40%가량은 글을 제대로 읽을 수 있었다.
심지어 몽골계 미국인들은 목장주가 글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는 아내의 등쌀에 대부분 글을 배웠다. 이 문맹률 차이가 전략을 갈라놓았다.
“소르칸 님, 우리의 비사(祕史 - 원조비사)에 의하면 풀처럼 나아가고, 호수처럼 나아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놈들이 풀처럼 산개하는데 우리도 산개를 해야지요.”
“저게 풀이냐? 중대 단위로 움직이면 나무잖아!”
비유와 은유가 깃든 몽골인 특유의 전략이 오가고 결론이 내려졌다. 지금까지 아파치 토벌에서 단 한 번 선보인 전 방위 타격전술이 하달되었다.
“각자 소대 단위로 분열해서 놈들을 족쳐라! 쉴 새 없이 달려들고 교대로 달려들며 진을 빼놓고 한자리에 모여서 격멸시켜!”
“알겠습니다!”
“상황 잘 보면서 판단해라. 적이 조금이라도 손해를 볼 것 같으면 물어뜯고! 우리가 조금이라도 손해를 볼 것 같으면 내빼면서 증원을 기다려!”
세계 최고의 기병대와 남군 최고의 기병대가 조지아와 앨라배마 주의 경계에서 격돌하였다. 구릉과 평원이 우거진 이 지역은 양측 기병의 모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지역이었다.
그리고 매 전투마다 포레스트의 민병대가 타격을 입었다. 소대 단위로 철저히 분열된 애리조나의 기병들은 쉴 새 없이 치고 빠지며 상대를 농락하였다.
“전방에 적 소대 발견!”
“돌격해라! 아니다! 퇴각해라!”
이미 하루에 세 번이나 교전을 실시한 기병 중대는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적의 소대 규모 기병을 발견하고 득달같이 달려들어 모조리 죽이려 하였다.
그러나 적은 자신과 대등하거나 더 우월한 기마술을 자랑하며 성공적으로 퇴각하였다. 그 직후 지친 병사들에게 측면에서 산발적인 권총 사격이 쏟아져 내렸다.
그 소대를 쫓는 와중에 중대장이 진식 소총 저격을 맞아 목숨을 잃고 소대장이 둘이나 당했다. 세 번째 습격이 끝나고 해가 저물 무렵 네 번째 습격이 시작되었다.
“미친놈들 아니야! 저놈들 길은 어떻게 알고 명령은 어떻게 들어!”
“소대장님! 어디로 퇴각해야 합니까!”
“그게 말이다! 난 글을 모른단 말이야!”
중대장은 포레스트에게 명령서를 받고 병력을 인솔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명령서를 읽을 사람이 부족해서 가까스로 길을 아는 병사가 명령문을 읽었다.
“콜럼버스로 퇴각하라 합니다! 아니면 애틀랜타!”
“그게 어느 방향인데!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데!”
“그게 말…….”
명령서를 읽어주던 병사의 몸이 갑자기 뒤흔들리며 말 아래로 떨어졌다. 소대장은 말발굽에 짓뭉개진 시신과 명령서를 흘겨보고 명령을 내렸다.
“동쪽으로 튀어! 몸 숙여!”
삶을 위한 질주도 어느 순간 느려지기 시작했다. 이미 세 번이나 돌격을 실시하여 네 마리나 가져온 예비 말은 모두 탈진한 상태였고 퇴각조차도 여의치 않았다.
점차 가쁜 숨을 몰아쉬는 말을 확인한 소대장은 이를 질끈 깨물고 후방을 돌아보았다. 어두컴컴한 숲 속에서 애리조나 민병대의 모습이 들어왔다.
“저건 또 뭔데!”
몽골계 미국인 기병은 자신의 재주를 한껏 발휘하였다. 말안장 위에 똑바로 선 채로 다리와 허리를 유연하게 움직여 충격을 최대한 흡수하였다.
그가 들고 있는 갑식 소총에서 불길이 뿜어지고 소대장의 등판에 뜨끈한 기운이 맴돌았다. 어느새 팔에 힘이 풀리고 그의 몸이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마지막 소대장이 전사하자 기병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무의미한 도주를 하였다. 이들의 말은 금방 탈진해 버렸고 사방에서 총성이 울리며 모든 병사들이 전장의 시신으로 사라졌다.
본격적인 교전이 시작되고 보름이 지나기도 전에 포레스트의 민병대는 모조리 격파당했다. 각 중대가 무너지며 소식이 두절되고 그 틈으로 소대들이 파고들었다.
명령대로 집결한 소대는 거대한 포위망을 형성하였다. 포레스트 본대의 진영이 어느새 잠입한 기병들에게 포위되어 사방에서 공격을 당했다.
“장군님! 장군니이이임! 적이 너무 많습니다!”
“많은 게 아니야! 적이 빠르게 움직이는 거다! 놈들을 추격해라!”
포레스트는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가 인솔하는 기병 천여 명을 고작 오백여 명의 애리조나 민병대가 가로막고 들쑤시고 있었다.
후방에 있는 병력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눈앞의 병력은 명백히 자신보다 수가 적었다.
그러나 수가 적건 말건 이 상황을 극복할 방법이 없었다. 적의 기병은 자신보다 빠르고, 능숙하며 더 정교하게 움직였다.
“서쪽에도 적! 서북쪽에도 적입니다!”
“남쪽에서 적 기병대 이백여 명이 능선을 끼고 내려옵니다!”
애리조나 민병대는 포레스트의 민병대를 사방에서 공략했다. 소르칸이 명령을 내릴 필요도 없이 각 소대에 배정된 몽골계 미국인들이 알아서 부대를 지휘하였다.
밀물과 썰물이 오가며 생긴 파도가 무른 바위를 깎아내는 기세였다. 굳이 공격부대에 합류할 필요가 없는 소르칸의 병력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사실조차도 포레스트는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한 차례 공세가 스칠 때마다 병사들이 속절없이 죽어 나갔고 더 큰 고난이 그에게 밀려왔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여…….”
머나먼 서쪽에서 흙먼지가 진동하며 더 많은 기병들이 합류하였다. 이를 악다문 포레스트는 최후의 명령을 하달하였다.
“포위망을 돌파한다! 동쪽으로 퇴각하라!”
더 이상의 지휘나 명령은 필요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살아서 돌아가 이 사실을 알릴 생각으로 포레스트는 말에 박차를 가하고 최대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나 그 앞에는 어느새 포위망에서 사라진 소르칸의 본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적이 퇴각이 아닌 생존을 위한 도주를 할 것이라는 예측을 한 순간부터 철저히 계획된 전술이었다.
“항복! 항복하겠소!”
남은 것은 항복이었다. 평상시에는 거드름을 떠는 높으신 양반들을 욕하던 포레스트는 어느새 무장을 해제하고 자신의 목숨을 건사하려 하였다.
본래 역사에서 포트 필로의 학살, 항복 권유를 거부한 북군 병사 300명을 총검과 몽둥이로 죽인 장본인은 목숨을 구걸하였다.
그런 포레스트의 얼굴로 주먹이 날아왔다. 한 흑인 기병은 그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쓰러진 포레스트에게 침을 뱉으며 분노를 터트렸다.
“이 개새끼 때문에 아버지가 채찍에 맞아 죽었습니다! 놈을 제가 직접 죽이겠습니다!”
“그거 좋군. 원한을 가진 병사들은 모두 이놈에게 총알 한 방씩 먹여줘.”
소르칸의 목소리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흑인 병사들이 근처 나무에 포레스트를 꽁꽁 묶었다. 그는 조금 전까지 자신이 원숭이라 칭했던 소르칸에게 애처롭게 말하였다.
“잠깐! 난 항복했다! 항복했다고!”
“그래? 너 같은 종자가 위대하신 링컨 칸의 앞길을 막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운 일이다. 어찌나 자비로운 분이신지 본래 수레바퀴를 돌려야 할 놈들에게 자비를 선물해 주셨지.”
소르칸과 몽골계 미국인이 보기에 링컨은 너무나 자애로운 칸이었다. 본래 배신자는 최소한 참수하여 피를 바닥에 흩뿌리거나 삶아 죽여야 마땅했다.
배신자들이 머무른 땅은 수레바퀴를 돌리고 풀 한 포기까지 모조리 죽여야 마땅했다. 그러나 링컨은 이러한 요청을 정면에서 거부하였다.
배신이 아닌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 미국 시민들이라는 공식 입장을 소르칸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대신 시민이 아닌 병사들에 한정해서는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려 했다.
“우리는 집회, 청원, 표현 그리고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그런데 말이야, 반란의 자유는 없는데 그 자유를 누리려는 놈들이 참 아니꼬운 일이란 말이지.”
“그러니 항복했다고!”
“무기를 들고 전쟁터에 나온 순간부터 넌 링컨 칸을 향해 총부리를 겨눈 역적에 불과해.”
수많은 총탄이 포레스트에게 날아들었다. 소르칸의 냉정한 판결을 담은 탄환부터 울분에 찬 흑인 노예들의 총탄까지.
훗날 KKK단의 초대 회장을 역임했어야 할 네이슨 베드포트 포레스트는 온몸에 구멍이 뚫린 시신이 되었다.
본래 역사에서 남긴 그의 악명은 영원히 자취를 감추었다. 대신 ‘네이슨 나무’라는 앨라배마 주의 흉물로 남아 역사에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