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330화 (296/345)

330화

25장 8화 남북 전쟁(1)

회담 결과는 효명제에게 즉각 보고되었다. 모든 일을 나에게 일임하고 뒤에서 지시만 하던 효명제는 최종적인 결과물을 확인하고 한참동안 지도를 확인했다.

“어 이게……. 이게 말일세.”

“최종 지도이옵니다. 여기서 혹여나 더 얻어내야 할 영토가 있사옵니까?”

“이게 뭔가? 땅이 도토리묵도 아닌데 직선으로 나눠?”

효명제는 아예 헛구역질을 하면서 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한참을 뭐라 중얼거리다가 마지못해 칭찬을 하듯이 고개를 치켜들고 말하였다.

“아무튼 잘 하였네. 청나라를 구석에 몰아넣고 우리가 후원하는 외몽골에게 북경을 내어주고. 마지막으로 중화민국과 남평(南平)에 군대를 파견하는 건 좋군.”

“신의 속된 일을 이토록 어여삐 보아주실 줄은 꿈에도 몰랐사옵니다.”

“그리고 영길리의 영토가 된 땅을 분할하는 방법에 관여할 수 없기도 하고.”

미술가들이 작업을 마친 새 동아시아 전도가 효명제의 집무실에서 갱신되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효명제는 남경에 그어진 직선과 남중국에 그어진 직선을 보고 말하였다.

“저 직선을 지워라. 이러다가 거인이 한양을 자로 그어버리는 끔찍한 몰골을 볼 것 같구나.”

너무나 흉측하고 아니 꼽고 역겨운 직선이라 아무도 좋아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 회담 결과는 즉각 언론사에 보고되었다.

머나먼 청나라의 영토를 얻어내 국민들이 제국주의의 열풍에 빠질까 염려하다가 잠을 설쳤다.

피로까지 겹쳐져 거의 하루를 꼬박 쉬었는데 이틀 뒤 결과가 돌아왔다.

“야 이 미친놈아! 일을 잘하라 했지 역겹게 하라 했냐!”

휴일을 즐기는데 집에 들어온 일준이가 어제 인쇄된 3월 9일자 신문을 얼굴에 집어 던졌다. 그 지도 표지에는 회담 결과로 나온 지도가 인쇄되어 있었다.

<영길리의 흉험한 손길이 청나라를 직선으로 나누다>

-아 이 어찌 비통하고 침탄한 일인가. 청나라가 반란으로 무너지고 여러 열국이 가담하여 반란을 진압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인류의 비극은 남아 있지 않은가!

-박 후작의 노련한 외교로 이 나라는 산동반도 일대를 얻어내는데 성공하였다. 그 기쁨도 잠시! 사악한 영길리는 사람이 거주하는 남중국을 남북으로 양분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중화민국이라는 의(義)가 넘치는 나라의 진출 경로인 남경에 쐐기를 박고! 그 남경을 다시 반으로 나눴으니 참으로 끔찍한 족속이로다!

그 외의 기사도 나와서 한 면을 가득 채워 넣었다. 일준이는 콧김을 씩씩 뿜으면서 지도 한 귀퉁이에 손가락을 얹고는 다시금 분노를 토해냈다.

“이거 네가 관여한 거냐?”

“아니다. 글래드스턴이 그냥 자를 대고 나누던데.”

“이런 미친놈을 봤나. 방금 전 밤샘을 마친 갈루아가 너무나 끔찍하고 역겨운 배분이라면서 구토를 하다 기절하더라고. 에이다조차 경악을 하던데.”

“에이다도 대한 물 많이 먹었네.”

생각해보면 에이다도 인생의 2/3는 대한제국에서 살아서 대한사람 다 되기는 했다.

대청마루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켠 다음 일준이에게 말하였다.

“이제 내가 외부대신으로 할 일은 다 한 것 같아. 잠시 한양 도성이나 돌아다닐까.”

“그래, 역겨운 직선을 봤으니 자연적인 곡선을 보면서 숨이라도 좀 고르자고.”

한양 길거리는 축제 분위기보단 일상적인 분위기에 가까웠다. 청나라가 무너지는 초대형 사태와 대한제국이 영토를 얻건 말건 여섯 달이 지나자 다시 평온한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건 긍정적인 신호였다. 이 나라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일상생활에 만족한다는 뜻이니까.

일준이는 길거리에서 거래되는 청나라 도자기를 보면서 말하였다.

“그 지옥 한복판 같은 전쟁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평온하네.”

“물가도 안정되고 소비심리도 돌아왔으니까. 여기에 가족들이 대부분 돌아왔잖아.”

“네 생각에는 이 나라가 올바로 돌아가는 것 같아?”

“아주 올바로 돌아가는 거지. 일본제국처럼 민심까지 폭주하면 정말 답이 없다.”

착실하게 국가를 개선하면서 외교와 전쟁을 통해 이득을 병행한 효과이다. 기본적으로 온건한 성향인 조선이 기반인지라 부와 명예에 목숨을 거는 일도 별로 없었고.

다만 자긍심이 무너져 내린다면 폭주할지도 모르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는데 일준이는 툴툴거리면서 지난 일을 이야기하였다.

“민심은 폭주하지 않아도 학문적으로는 폭주하잖아. 얼마 전에도 박사 한 명이 논문을 따자마자 미국으로 훌쩍 떠나가 버렸는데.”

“박사? 아는 사람이냐?”

“유홍기라고 있지. 박규수 제자라서 인면이 있었는데 만주에서 개고생을 하면서 석사를 달고 한양에서 박사 논문 따자마자 텍사스로 넘어갔거든.”

그는 개화파 가운데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기는 하다. 말년에 갑신정변을 실패하고 실종되었고 사망 혹은 출가했다는 소문이 파다하지.

지금은 젊은 인재에 불과한 자이고. 그런 사람이 왜 텍사스에 갔는지 모르겠는데 일준이는 불안하다는 듯이 말하였다.

“멘델의 유전 법칙, 여기서는 이하응이 발견해서 시백(詩伯 - 이하응의 자) 유전 법칙을 기반으로 한 목화 품종 개량에 몰두하던 젊은 인재야.”

“그런 인재가 유출될 정도로 학문에 굶주려 있다는 말이로군.”

“대부분 입신양명(立身揚名) 네 글자에 얽매여 있으니까. 괜히 고생물학자들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간 줄 아냐.”

이러니 일준이가 양심을 가르치라는 말에 얽매이는 것 같기도 하였다. 잠시 생각하며 걸어가고 있자니 어린아이들이 구석에서 모래 장난을 치고 있었다.

-다들 영길리 놀이하자!

-땅따먹기가 왜 영길리 놀이야!

-땅을 직선으로 나누니까 영길리 놀이지!

-바보야! 땅을 직선으로 나누는 건 미국도 마찬가지야!

세계지도를 볼 정도면 지체 높은 양반가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이 평민 아이들과 거리낌 없이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니 의무교육의 효과도 여실히 드러났다.

양반가 출신 아이가 모래밭에 미국 지도를 그리면서 다른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잠시 미국 지도를 보니까 뭔가 촉이 와서 일준이에게 재차 물어보았다.

“혹시 미국에 같이 간 사람이 있지 않냐?”

“그렇지, 유홍기에 대한 소문이 퍼진 이유가 다 있더라고. 녀석이 하필 볼가네 효종갱 본점 사장인 폴과 함께 미국에 가버렸어.”

폴은 흑인 노예 출신으로 평생 목화를 따다 어재연 덕분에 인생을 편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목화를 연구하던 유홍기와 함께 미국으로 향하다니.

“유홍기가 연구하던 논문을 볼 수 있을까?”

“그 논문이 그렇게나 중요해?”

일준이는 괜한 이야기를 했다는 표정으로 마차를 대절해 국립이학대학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산더미처럼 쌓인 생물학 논문을 확인하고 유홍기의 논문을 찾아주었다.

“여기 논문이다. 듣자 하니 목화 품종개량을 완전히는 못 했다던데.”

“시작이 반이지. 그 시작을 제대로 잡았는데.”

논문의 제목은 <일제히 개화하는 신품종 목화에 대한 재배 결과> 이다. 본래 1920년에나 나올 품종개량 목화가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남북전쟁이 코앞이다. 이 상황에서 미국 각 주의 미 연합국, 노예제 유지를 존속시키려는 세력 참가가 줄을 이었는데 텍사스는 중립을 유지하였다.

“유홍기가 세상을 바꿨네.”

“세상을 바꿔? 뭔 소리야?”

“설명하자면 길기는 한데 지금 미국 상황부터 이야기해 줄게.”

텍사스가 미 연합국에 가입하지 않는다면 남북전쟁의 무게추는 북부에 완전히 쏠려버린다. 그 과정을 일준이에게 설명해 주자니 어느새 해가 넘어가기 시작했다.

* * *

유홍기는 최익현과 친밀한 관계였다. 서로 문과와 이과로 나뉘어 있지만 백성을 위하는 마음과 학문으로 대성하고 싶은 마음은 두 젊은 인재를 벗으로 만들었다.

어느 날 최익현이 목화를 따는 사람들을 보고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면서 그에게 부탁을 하였다.

‘자네는 식물을 개량하는 학문에 관심이 있다 하였지. 그러면 백성들이 목화를 따느라 허리가 휘는 몰골을 막아볼 수 있겠는가?’

마침 학사 논문을 작성하던 그에게 좋은 연구과제였다. 석사 연구주제부터 목화로 가닥을 잡고 품종개량과 교배를 진행하기를 몇 년이 지났다.

완성된 목화는 제대로 된 물건이 아니다. 박사 논문에는 적합한 과제이지만 이 목화를 백성들이 키울 이유가 없었다.

세월을 날린 결과물 치고는 한심한 물건이다. 이 신세를 볼가네 효종갱에서 최익현에게 이야기하였다.

‘나는 실패작을 만든 것이야.’

‘시작이 반이지. 난 대치(大致 - 유홍기의 호) 자네를 믿고 있네.’

그러나 한 사람이 끼어들었다. 새벽까지 일하며 효종갱을 나르던 폴이 달려들어 제발 이 목화를 미국에 가져가서 소개해 달라 애원하였다.

그 간절한 눈빛을 거절 할 수 없던 유홍기는 목화의 이름을 최익현의 호를 약간 비틀어 명명한 채 목화 샘플을 잔뜩 가지고 텍사스로 향하였다.

미국이 갈등에 휩싸인 1861년 1월 초, 텍사스에서 설명회가 시작되었다. 국립이학대학의 박사 학위 수여자가 목화에 대한 발표를 시작하자 대지주들이 몰려들어 설명회에 참가하였다.

“여기 모인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유홍기이며 국립이학대학의 박사 학위를 수여받았습니다. 이쪽은…….”

“왜 흑인 노예를 위에 올리는가?”

“흑인 노예가 아닌 대한의 어엿한 사업가입니다. 제 자문가 중 한 명인 폴 사장님이지요.”

피식거리는 코웃음이 섞인 박수가 강당을 메웠다. 한 지주는 자지러지게 웃으면서 말하였다.

“하긴 목화 품질을 잘 아는 사람은 목화따개 맞지. 그럼 잔소리 다 집어치우고 본론부터.”

“수확량은 어떻게 되는가?”

대지주들은 날카로운 질문부터 시작하였다. 아주 품질이 우수한 목화가 아닌 한 일단 수확량이 많아야 정상이다.

유홍기는 쭈뼛거리며 폴을 한참동안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어쩔 수 없이 진실을 털어놓았다.

“수확량은 기존 목화의 육 할 오 푼, 약 육십오 퍼센트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텍사스 대지주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삿대질을 시작하였다. 몇몇 과격한 지주들은 허리춤을 더듬어 권총을 꺼내려 하였다.

“야 이 미친놈의 새끼야! 나가! 당장 꺼져!”

“상놈의 새끼! 정신 나간 놈의 새끼!”

“거의 절반 가깝게 수확량이 떨어져? 그런 목화를 우리보고 키우라고?”

몇몇 과격한 사람들은 아예 단상 위로 달려 올라가 주먹을 휘두르려 하였다. 그런 지주들의 앞을 폴이 가로막고 고함을 쳤다.

“이 목화는 보름 이내에 모든 목화송이가 피어납니다!”

“그게 뭔 상관이라고 이 목화따개 새끼야!”

“본래 목화는 두 달 내내 목화송이가 조금씩 피어나지 않습니까!”

폴에게 주먹을 휘두르려던 지주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머뭇거렸다.

다른 지주가 앞으로 나서려던 찰나. 그 지주의 손이 움직이며 다른 이들을 만류하였다.

“일단 이야기는 다 듣고 비판하는 것이 신사적이지. 계속 이야기해 보시오.”

다시 자리에 앉은 지주들은 냉랭한 눈빛으로 둘을 노려보았다. 유홍기는 목을 가다듬고 자신의 실패작이자 역작이 될지도 모르는 목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목화, 제가 면암(綿菴 - 이어진 풀)이라 명명한 품종은 목화다래의 양이 부족한 대신 일제히 개화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일반 목화와 비교하면 다음과 같지요.”

일반 목화와 비교된 면암 목화의 그래프 특징은 명확하였다. 일반적인 목화는 다래, 솜 덩어리가 9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 피어난다.

이로 인해 노예들이 최소 두 달 이상을 달라붙어 수확해야 한다.

반면 면암 목화는 9월 말에 다래가 형성되고 10월 초에 대부분의 목화다래가 피어난다. 유홍기는 불쑥 솟아오른 그래프를 지시봉으로 짚으면서 말하였다.

“면암 목화는 이 할의 빨리 피어나는 목화다래, 이 할의 늦게 피어나는 목화다래를 제외한 육 할이 거의 동시에 완성됩니다. 이로 인한 인력 감축 효과가 무궁무진할 것 같군요.”

“그 말이 맞기는 하지. 목화따개들이 거의 석 달 내내 목화밭을 돌아다니니까.”

폴조차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 말에 동의하였다. 그가 젊은 시절 평생을 바친 목화는 모든 사람의 옷이 되는 대신 흑인 노예들에게는 지옥의 악마나 다름없는 식물이다.

다 익어서 다래가 터진 목화솜은 시간이 지날수록 섬유가 부식한다. 여기에 멋대로 날아가 뭉치기라도 하면 자연발화를 한다.

모든 노예들은 기껏해야 한 그루에 몇 송이 열릴까 말까 한 목화를 뜯어내기 위해 두 달 내내 땀을 뻘뻘 흘리며 허리를 굽혀 목화를 따야 한다.

덜 여물은 목화다래를 건드리면 등짝에 채찍을 맞고 혹시나 따내지 못한 목화가 있다면 채찍을 맞는다.

날카로운 목화 잎사귀가 상처를 내기도 하였다. 그 피가 목화에 묻으면 더 많은 채찍을 맞는 건 당연하다.

그 고생을 되새긴 폴은 한 줄기 눈물을 흘리며 유홍기를 바라보았다.

유홍기 또한 폴의 고생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여도 같이 비탄(悲嘆)하였던 사람이다. 그는 손을 놀려 다음 페이지에 있는 도면을 보여주었다.

“여러분에게 이 목화를 심으라는 말씀은 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더 많은 투자를 통해 목화 품종을 개량하여 개화시기를 더욱 일치시키고 수확량을 늘려볼까 합니다.”

“그럼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뭔가?”

“바로 이 목화 수확기를 이용할 수 있는 겁니다. 제가 알기로 목화 수확기(콤바인)는 완성된 물건이지만 수확 시기가 넓게 퍼져서 사용하지 못했죠. 그러나 면암 목화가 완성되면.”

유홍기는 수레를 밀어내듯 양 손으로 무거운 물건을 미는 시늉을 하였다. 그리고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팔을 벌리고 당당하게 이야기하였다.

“더 이상 목화 수확에 흑인 노예들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목화솜과 함께 수확된 이파리를 골라내기 위한 수작업이 필요할 뿐이지요.”

“일단 수확한 목화를 보여주게. 품질부터 확인해야겠군.”

자연발화를 방지한 목화솜이 나누어졌다. 이 솜을 손아귀에서 주무르고 섬유를 하나하나 뜯어낸 대지주들은 냉정한 평가를 시작했다.

“이집트면 수준의 고품질 목화는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인도면과 비슷한 수준이군.”

“이 정도면 남미의 목화보다 모자란 편 아닐까?”

“갈색의 탁한 색상도 문제고. 이 목화 품종의 기반이 무엇인가?”

“남경 목화를 대한에서 예전부터 기르던 목화와 교배한 결과물입니다.”

대지주들끼리 대화를 시작했다. 최근 들어 미국이 흑인 해방 문제로 양분될 기세가 된 마당에 여러 세력들이 암약하고 있었다.

전통적인 남부 지주층은 텍사스의 지주를 설득하여 남부가 주축이 된 미연합국으로 끌어들이려 하였다. 여기에 몽골계 미국인이 주축이 된 애리조나가 미합중국 존속을 권유했고.

둘 중 동질감이 더욱 큰 미연합국 가입으로 초점이 맞춰지는 동안 새로운 변수가 등장한 것이다. 대지주들은 유홍기를 흘겨보고는 작은 목소리로 훗날의 일을 말하였다.

“지금 이 목화는 굳이 기를 가치가 없어. 그런데 나중의 일을 생각해 보자고.”

대지주들은 눈앞의 문제가 아닌 먼 훗날의 일을 바라보았다. 지금이야 사위들의 반발을 억누르고 연방을 탈퇴할 자신이 있지만 먼 훗날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위들은 외가와 친인척을 통해 더욱 번성할 것이고 대평원에서 활약하며 초거대 지주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기회를 확실히 잡아야 훗날을 기대할 수 있다.

“고작 오 년 만에 목화의 수확시기를 조절한 품종을 개발하다니. 천재가 따로 없군.”

“수확량 사 할 저감이 뭐가 문제야. 검둥이들을 더 이상 먹이고 보살피지 않아도 되는데.”

“내 생각도 같다니까? 수확량만 대등하게 개량하거나 품질을 조금만 더 높여도.”

“장기적으로 따지면 무조건 이득이지. 안 그런가?”

대지주들은 탐욕스럽고 자신의 재산만 중시하지만 그 이면에는 철저한 계산이 함께하였다.

이들은 기존 목화를 재배하고 흑인 노예를 유지하는 비용과 새로운 목화를 재배하고 흑인 노동자를 잠시 고용하는 비용을 순식간에 계산하였다.

결과는 ‘아직은 재배할 수 없다’로 귀결되었다. 다만 추가 품종 개량을 감안하면 충분한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손때가 묻고 섬유가 뜯겨나간 목화솜이 돌아왔다. 어떠한 평가가 나올지 촉박해하던 둘에게 지주들은 냉정한 평가를 시작하였다.

“이상은 높고 현실은 냉정하지. 이 목화는 텍사스에서 재배할 가치가 없어.”

“그렇습니까. 여러분의 시간을 빼앗아서 대단히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직까지는. 수확량을 삼십 퍼센트 이상 증가시키거나 목화 섬유를 늘릴 수 있다면 몰라.”

유홍기의 눈이 번쩍 뜨이며 대지주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손짓을 하여 밖에 대기하고 있던 개인 변호사들을 불러들여 계약서를 작성하였다.

“자네에게 오만 달러의 비용을 투자하고 품종 개량 전문가와 농장 관리자들을 붙여주겠네. 앞으로 이십 년 이내에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면 계약에 응하도록.”

“어떠한 조건입니까?”

“우리가 원하는 조건이지.”

계약서에는 대지주들의 의견을 반영한 목화의 장단점이 적혀 있었다. 단점을 부각시키지 말고 장점을 극대화하라는 조건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면암 목화의 생산성을 기존 목화 대비 80%까지 끌어올릴 것

-또는 면암 목화의 섬유 길이를 평균 1.25인치(약 32㎜)로 증가시킬 것

-위의 두 조건 중 하나를 만족시키고 목화의 기존 장점을 저해하지 않을 것

유홍기와 폴은 계약서를 확인하고 대지주들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해볼 수 있으면 해보라는 당당한 표정에 유홍기는 품을 뒤져 자신의 도장을 날인하였다.

“할 수 있습니다. 이십 년 이내에 이 조건을 만족하여 보답을 해드리지요.”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게. 자네는 대한을 대표하여 이 자리에 온 사람이고 우리는 텍사스의 대지주를 대표하는 사람이야.”

“실패하면 평생 이 땅에 머무르며 품종개량에 심혈을 기울이겠습니다.”

유홍기의 표정을 확인한 대지주들은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공증인의 확인까지 받아 계약서를 완성하였다.

훗날 목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유홍기의 첫 행보가 개척된 것이다. 악수를 나눈 대지주들은 근처의 저택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말하였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 한 명인 닐슨 조의 제자인데 저 정도는 가능하겠지.”

“안 될 것 같다면 대한의 연구진이라도 끌어들일 기세 아닌가.”

브랜디를 담은 잔이 오가고 웃음소리가 사방에 퍼져나갔다. 대지주들은 품종개량 작물 하나의 가치가 아닌, 대한의 학자들과 인맥을 주선한 것이다.

고작 목화 하나에 이 정도로 막대한 돈을 투자하였다면 국립이학대학 인재들이 족족 텍사스로 몰려와 계약을 맺을 기세였다.

여기에 한 가지 장점이 더 있었다. 얼마 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가 연방을 탈퇴한 이후 연방 탈퇴의 불길이 목화 재배지역, 흑인이 가장 많은 지역을 강타하였다.

“그리고 검둥이들을 모조리 쫓아낼 수 있는 명분도 되겠지.”

“아무렴, 면암 목화가 완성되면 우리는 더 치고 나갈 수 있어. 검둥이들을 수확시기에 고용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공장에 넣어서 기계나 굴리게 하자고.”

“지금까지 먹이고 재운 고생을 생각하면 이득이지. 이득이고말고!”

마지막으로 건배를 마친 대지주들이 술에 거하게 취한 채 헤어졌다. 더 이상 흑인 노예가 필요 없는 미래가 되자 자연스럽게 노예제 폐지를 긍정하게 된 것이다.

마침내 2월 초, 대지주를 비롯한 선거인단을 중심으로 연방 탈퇴에 대한 투표가 시작되었다. 기존에는 거의 길항을 이루던 연방 탈퇴 의지는 연방 존속으로 전환되었다.

텍사스는 남부에 소속되지 않는 중립을 지켰다. 여기에 남북전쟁의 전황을 뒤엎는 한 가지 요소가 남아 있었다.

#작가의 말

남북전쟁 이후 흑인 노예들이 해방되었습니다. 그들은 노예가 아닐 뿐 여전히 노예와 다름없는 신세였습니다.

작중 설명대로 이 시기의 목화는 2개월 이상 수확해야 합니다. 흑인들은 노예 신세에서 노동자로 다시 고용되어 목화를 따며 남부를 못 벗어났습니다.

이들이 진정한 의미로 해방된 것은 1940년대입니다. 품종개량 목화를 수확할 수 있는 콤바인이 개발되었고 그제서 사회 진출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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