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326화 (292/345)

326화

25장 5화 고고학 재부흥

조정은 북경 함락 중 권리를 얻은 유물의 경매를 우선시하였다. 그 유물 가운데 가장 격이 높은 유물들은 박물관에 보관하고 나머지를 각 분야별로 팔아치웠다.

물건의 첫 감정은 대한제국에 있던 고고학자들과 지방 대학의 사학자들이 하였다. 이미 감정이 끝난 물건들이 속속들이 쌓인 덕수궁은 거대한 경매장이 되었다.

김좌근은 나와 함께 경매장에 방문하여 여름 더위에 부채질을 하였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고 말하였다.

“이번 전쟁 채권을 판매한 액수가 육천만 냥에 달한다네. 그나마 이런 형태로 채권을 환수할 수 있어서 다행이기는 한데.”

이 자리에서 경매 대금으로 국채를 낼 경우 10년 만기 이자를 일괄 계산하는 혜택을 얻는다. 탁지부의 부담이 해소된 꼴이나 김좌근은 영 마땅치 않은 눈치였다.

“제가 알기로는 유물이 사만 점 정도가 판매된다 하더군요.”

“그래, 그게 문제라니까. 유물은커녕 골동품 중에서 하품이 대부분이라 채권을 모조리 처리하지 못할 상황 같아.”

전각마다 각기 다른 물건들을 판매하였다. 김좌근은 대충 쌓인 백자 그릇, 오래 묵기만 했지 미적 감각이 별로 없는 골동품을 보면서 투덜거렸다.

처음 방문한 곳은 그나마 한산한 백자 경매장이었다. 전각 안에는 후끈한 열기와 함께 단상 위에 유물이 전시되고 즉석에서 소개가 시작되었다.

-첫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백자! 아주 커다란 화병입니다!

-시기는 명나라 중반! 품질은 중하! 시작 가격은 이백 냥입니다!

단순한 골동품으로 분류할 만한 커다란 백자이다. 장식도 없고 단아한 맛이 있어 몇몇 사람들이 경매에 동참했고 마침내 한 사람이 낙찰받았다.

“어르신에게 삼백육십 냥에 낙찰되었습니다! 계산은 국채입니까 현물입니까?”

“국채로 함세. 그나저나 이 커다란 물건을 어떻게 옮긴다.”

현대에는 문화대혁명으로 산산조각이 났을 유물들도 이 시대에는 그냥 골동품에 불과하다. 수염이 새하얀 유생이 백자를 가져가자 다음 유물이 자리에 올랐다.

-두 번째 상품! 백자 그릇 서른 점입니다! 시기는 청나라 초기!

김좌근은 혀를 차면서 백자 그릇을 보더니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는 안동 김씨의 일원으로 수많은 물건을 본 심미관을 통해 물건의 품질을 평가했다.

“이백 년 묵어서 가치가 높아졌다면 내 집에 있는 백자는 얼마나 가치가 높을꼬.”

“그래도 다층구를 비롯한 장식품은 좀 다르지 않겠습니까?”

“뭐 이런 물건이 얼마나 한다고. 기껏해야 천 냥이나 할까?”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장식품 경매장이었다. 비취와 물총새의 깃털을 뒤섞어 만든 시퍼런 색의 점취공예 작품 한 세트가 올라와 열띤 경매가 벌어졌다.

“아이고, 여기 계신 불란서 신사께 이천육백 냥에 낙찰되었습니다!”

“C' est si bon! 오우! 정말 감사합니다!”

싸구려가 아닌 제대로 된 골동품이라 분류할 만한 녀석들이 판매 대상이다. 경매를 한참 진행하는 와중에 김좌근은 나와 함께 별실, 경매장으로 물건을 보내는 장소로 향했다.

“탁지대신님과 외부대신님이 방문하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필요하신 물건이 있습니까?”

담당자는 바짝 긴장한 채 김좌근과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김좌근이 푸근한 표정을 지으며 품에 가지고 있던 상자에서 야구공 크기의 청자 구슬을 꺼내며 말하였다.

“필요한 물건이 아니고 경매에 내놓을 물건이 있지. 여기 내 조카사위가 인부가 바닥에 흘린 물건을 주워 왔는데 경매에 내놓으면 어떠하겠나?”

“경매 자금은 모두 국고로 환수된다는 사실은 아십니까?”

“어허, 내가 탁지부 대신 아닌가! 마음에 드는 물건이라도 엄연히 나라의 물건! 경매에 내놓아 국고로 환수함이 마땅하다네!”

김좌근은 자신의 검소함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얻어서 기뻐하는 눈치였다. 다음 상품이 나가고 상자에 보관된 청자구슬이, 여러 층에다 구멍이 뚫린 구슬이 전달되었다.

물건을 평가하고 등급과 초기 감정가를 매기던 학자들은 김좌근이 꺼낸 다층구를 힐끗 살펴보고 돋보기를 들이댔다. 그리고는 서로를 돌아보며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한참동안 서적을 뒤적이고 다층구를 돌아보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곧이어 경매를 진행하는 사람들이 재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물건이 언제쯤 나옵니까? 계속 평가를 하셔야지요!

그 말에도 학자들은 다층구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결국 김좌근이 헛기침을 몇 번이나 하고 참다못해 옆구리를 쿡쿡 찌른 다음에야 학자가 화들짝 놀라 답하였다.

“어이쿠 깜짝이야! 왜 그러십니까?”

“감정을 해야 일이 돌아가지 않겠는가. 왜 그리 오래 걸리는가.”

“저희가 감히 판단할 수 없는 물건입니다. 일단 다음 물건을 감정할 것이니 다른 분들을 소집하여 이 물건을 평가하도록 하겠습니다.”

고고학자로 나름 이름을 날리던 사람조차 감정할 수 없는 물건이라니.

그러자 급히 달려온, 나이 예순 정도 되는 노년의 유생이 이야기를 듣고 입술을 푸들거리며 말하였다.

“저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모든 학자들을 불러와야 할 것 같군요.”

“손아귀 안에 들어가는 작은 물건가지고 뭘 그리 보채는가?”

“이건 이 세상에 없는 물건입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군요.”

“세상에 없는 물건이라니? 엄연히 여기 있거늘 왜 없다고 하는가?”

김좌근이 아리송해 하는 사이 다층구는 다시 상자에 담겨 별실로 옮겨졌다. 우리도 엉겁결에 별실로 따라갔는데 최소 나이가 50 이상은 되는 사람들이 줄지어 방 안에 들어왔다.

아마도 각 경매장을 담당한 명망 있는 고고학자들과 사학자들 같았다. 김좌근은 이들의 면모를 확인하고 몇몇을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세상에, 이역만리까지 다녀와 토기 조각을 캐던 사람도 이 자리에 왔군.”

머리를 맞댄 학자들은 다층구를 돋보기로 살펴보고 강한 빛을 비추어보며 계속 자기들끼리 전문 용어를 논하였다.

그 어지러운 토론이 십여 분 정도 이어졌을까.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보게. 이 유물을 내놓은 사람으로서 뭐라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대단히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이 물건은 저희도 생전 처음 보는 물건입니다.”

“왜 처음 보는 물건인가? 내가 알기로 서른 개가 넘는 다층구가 경매에 올라왔는데?”

김좌근의 말을 들은 학자는 옆방으로 가서 경매 상품으로 나올 다층구를 가져왔다. 귀한 흑단나무를 깎아서 채색하고 보석까지 박은 작품을 이리저리 굴리며 말하였다.

“이 다층구는 어떻게 만들었을 것 같습니까?”

“그야 깎아서 만들었지. 장인들이 알아서 잘 깎아냈을 걸세.”

“바로 보셨습니다. 그럼 도자기를 깎아서 다층구를 만들면 표면의 유약은 가장 겉의 한 겹만 남아 있겠지요. 그런데 안에도 유약이 잘 발려 있습니다.”

뒤통수를 세차게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고개가 돌아갔다. 도자기는 한 번 소성(燒成), 구워내는 과정이 끝나면 고체로 굳어져 버린다.

내가 말을 못 하는 사이 김좌근은 대수롭지 않게 당당하게 말하였다.

“그야 간단하지. 굳은 고령토를 깎아내어 초벌구이를 하고 풍덩 담그는 식으로 유약을 발랐을 걸세.”

“그러면 가마에서 구워내는 과정에서 유약이 녹아 서로 견고하게 달라붙었을 것입니다. 저 유물은 각 층마다 유약이 온전히 남아 있지요?”

김좌근도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사이 학자들이 열띤 토론을 펼치며 우리가 없는 듯이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 대화를 듣고 있자니 저절로 졸음이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송나라 시절 오대 명요(뛰어난 도자기 기술자)와 관련된 기록이 사실일 줄이야.”

“이러니 마황반(馬蝗絆)을 보수하기 위하여 명나라에 보낸 것이로군요.”

수많은 서적과 관련 자료가 책상 위에 쌓여나갔다. 이윽고 한 시간 정도 지나 우리가 아예 의자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 무렵에 학자들이 일어나 보고를 하였다.

“이 물건은 수많은 서적을 탐독한 저조차도 경외심을 가질 물건입니다.”

거의 80은 다 된 노인이 경외심이라는 말을 하자 김좌근이 반응했다. 그는 기록이라도 확인하려는 듯이 목을 앞으로 쭉 빼고 궁금함을 가득 담아 물어보았다.

“고작 기물에 경외심이라니 말이 지나시구려. 그럼 옛 서적의 기록은 어떻소?”

“먼저 송나라 시절의 기록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시 상아를 깎아 여러 겹의 구슬을 만들어서 근래에 다층구와 비슷한 기물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송나라 시절에도 저런 물건이 있었다고 하였소?”

학자는 서적 두 개를 보여줬다. 하나는 명나라 초기에 작성된 서적인 격고요론(格古要論)이라는 물건인데 송나라 시절에 3층 이상의 상아 구체를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다음에는 청나라 시대의 서적에 ‘송나라 시절에는 진흙과 유약을 잘 배합하여 깨진 도자기를 붙이고 다시 녹여 보수할 수 있었다.’라는 항목이 적혀 있었다.

“청자 기술은 송나라가 멸망하고 급격하게 쇠락하여 이 시대에도 가까스로 복원하였을 뿐입니다. 그마저도 유약의 색을 찾는 것이 난해할 지경이지요.”

“송나라의 유물이며, 하필 유일한 다층구라는 말이오?”

“그 정도라면 다행이겠습니다. 아무튼 두 대감께서는 도자기를 어떻게 합치는지 아십니까?”

“전에 부서진 백자는 꺾쇠로 이어서…….”

“그야 접착제로 붙여서…….”

김좌근도 더 이상 말을 못 했고 나도 더 이상 말이 안 나온다. 도자기가 깨져서 보수하면 유약이 갈라진 흔적이 남는다.

반면 이 유물에는 유약이 갈라진 흔적이 없다. 약간 색이 다른 부분이 있지만 지금까지는 세월이 지나며 색이 변한 것이라 생각할 정도로 색상이 비슷하였다.

아주 자세히 보니 표면에 띠를 두른 듯 색이 다른 부분이 보였다. 균열 또한 색이 다른 부분의 중심부에 생겼다.

늙은 학자는 이 흔적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더듬고는 말하였다.

“송나라 시절 뛰어난 장인들은 파손된 청자의 틈새에 진흙과 유약을 바르고 살짝 녹여내어 새것처럼 보수했다 하였습니다. 이걸 멀쩡한 청자를 합치는 데 사용할 줄이야.”

다른 학자가 칠판 위에 그림을 그려 설명하였다. 여섯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다층구는 가장 안의 구슬을 제외하면 처음에 반구(半球) 형태로 만들어낸다.

그리고 구슬 위에 다섯 개의 층을 하나하나 결합하는 것이다. 최심부의 구슬 위에 한 겹을, 다시 한 겹을 덧씌워 가면서 5번 동안 가마에 들락날락하는 과정을 묘사하였다.

“청자의 겉을 녹여낸다. 방법을 알면 지금도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반객 대감께서 잘 말씀하셨습니다. 고작 십분의 일 치(3㎜)의 간격을 둔 여러 겹의 도자기를 단번에 구워내면 어떤 몰골이 되겠습니까?”

당연히 안이건 밖이건 유약이 다 녹아버려서 떡이 지고 한 덩어리가 되겠지!

김좌근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학자의 눈을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지자 다른 사람이 일어나 최종적인 보고를 하였다.

“세 가지 기적을 담은 유물입니다. 첫 번째는 기적은 송나라에서 만들어진 유일한 다층구라는 점이며, 두 번째는 기적은 당시의 완벽한 청자 보수기술을 증명하는 물건이지요.”

“마지막 기적은 무엇인가?”

“정성입니다. 아마 수백 번의 시도 끝에 성공한 것 같군요. 다섯 겹을 덧붙이면서 조금이라도 덜 가열하면 실패, 더 가열하면 유약이 모두 녹아서 실패하겠지요.”

아마 이 물건을 만든 장인들은 수 없는 실패를 했을 거다. 가마에 다층구를 넣고 가장 바깥쪽의 유약이 다시 굳을 때 정확히 열을 끊어냈을 거다.

속까지 열이 침투하기 전에 표면만 녹여낸 것이다. 학자는 나와 김좌근에게 돋보기로 자그마한 흠집을 보여주며 말했다.

“흔적을 보니 녹여내야 할 구슬과 안쪽의 구슬 사이에 이쑤시개보다 얇은 쐐기를 꽂아 위치를 고정하고 석면을 안에 덧대 열을 막은 것 같습니다.”

“그게 말이나 되나! 이 작달막한 구슬에 이쑤시개가?”

“그 과정에서 조금 휘어지기는 하였지요. 오차로 인해 각 층의 구슬들이 잘 돌아가지 않는 몰골이 되었어도 어떻게든 완성한 것 같습니다.”

-딸꾹!

김좌근은 나와 다층구를 번갈아가면서 바라보다 딸꾹질을 하였다. 말이 멈추자 난 도저히 말이 안 되는 물건이라 생각하고 현대의 기억을 더듬어 질문을 하였다.

“그런데 말이야. 전조(고려) 시절의 청자는 금이 가 있는데 뭐라 하더라? 열을 끊어서?”

“바로 보셨습니다. 당시 청자의 균열은 가마에서 바로 꺼내서 온도 차로 표면에 금이 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물건은 균열이 거의 없어서 천천히 꺼낸 것 같습니다.”

“열을 많이 받으면 속의 유약이 녹는다 하지 않았나? 그런데 천천히 꺼내?”

“그게 기적이지요. 상아 다층구는 이 물건에 비하면 어린아이 손장난보다 못합니다. 시간을 들이는 노동과 철저한 경험으로 가마를 들여다보는 기술은 격이 다르지요.”

상아 다층구는 엄청난 기술이 필요한데 노동이라 폄하하였다. 생각해보면 폄하가 아니고 냉정한 현실이다.

그 시절에는 도자기 가마의 열 조절을 오로지 감으로 해야 한다. 사람의 눈이 컴퓨터도 아니고 온도계도 없는데 최소 천 도가 넘는 고온을 통제하는 꼴이지.

그런 상황에서 저토록 정교한 열 조절을 하고. 표면 균열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가마의 열을 천천히 줄여 나갔다고?

청자 표면의 균열이 거의 없는 것을 보아 학자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내가 침묵하자 김좌근이 딸꾹질을 참아가면서 물어보았다.

“그……. 그럼 이 물건의 가격은 흐끅! 얼마인가?”

“가격을 매길 수 없습니다. 물건의 가격이라 하면 유사한 물품의 거래가격이나 그 자체의 가치를 가지고 판단하기 마련입니다.”

“그러하면 끄힉! 비슷한 물건이라도 있을 것 아닌가?”

내가 고고학 관련 사항은 연구실에서 자문을 구할 때에 겉핥기식으로 배워봤는데 저런 물건은 난생처음 본다. 처음 보는 수준을 넘어서서 현대에도 비교 대상이 거의 없다.

보통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가치를 따지는데 역사적 가치는 송나라 시절의 기술을 증명하는 유일한 유물로 최상급. 예술적 가치? 경이로운 난이도를 생각하면 최상급의 예술품이다.

학술적 가치는 옛 서적에나 기록된 것이 실물로 튀어나온 상황이다. 그것도 두 개나 되는 유일한 증거를 가지고!

이 기준으로 보면 저 다층구의 가치는 이 시대에는 발견되지 않은 백제 금동대향로 이상이다.

내 예상대로 고고학자들은 김좌근의 질문에 비교 대상을 못 찾다가 가까스로 답하였다.

“아마 전국옥새보다는 못 하고 송나라 시절의 옥새 일곱 개 중 하나, 혹은 그 이상과 견주어야 할 겁니다.”

“비교 대상이 애산에서 바닷속에 빠져서 사라진 옥새라고! 농담 좀 작작하게!”

“농담이 아닙니다!”

너무 놀라 딸꾹질을 멈춘 김좌근이 심호흡을 하였고 나 또한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들숨이 들어오고 날숨이 나갈 때마다 맥박이 잦아들며 생각이 명확해진다.

저 다층구는 송나라 시절 어느 시기에, 학자들의 말대로 어떤 도요에서 광기의 집합체로 탄생한 물건이겠지.

몽골의 침공으로 약탈당하며 기록이 소실되었고 원과 명 그리고 청을 거쳐 드러난 것이다.

본래 역사에 저런 유물이 없는 이유는? 아마 중국의 수많은 난리를 겪고도 살아남아 봤자 문화대혁명의 망치질로 사라졌을 거다.

학자도 내 생각과 흡사한 해석을 내놓았다.

“이 유물은 송나라가 멸망하며 기억 속에서 사라졌을 겁니다. 화려하지도 않고 크지도 않은 물건이니 아무렇게나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이제야 세상에 드러난 것이지요.”

김좌근은 그 말을 듣고 초점 없는 눈빛으로 사방을 마구 돌아보았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어순을 뒤죽박죽으로 섞어 되는대로 말하였다.

“조카사위는 아나? 인부가 떨어트려서 물건을 주워 가져왔다 말했는데.”

“저도 약간만 알 뿐이라 이 정도의 가치를 지닌 유물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생각하니 어처구니가 없군, 갑자기 옥새와 대등한 물건이 튀어나오는 동네라니.”

“그럼 몇 개 더 있지는 않을까요.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물건이 있던가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학자들이 나를 돌아보았다. 이들 입장에서는 서적에서나 가까스로 보던 초현실적인 유물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격이다.

“마침 두 대감님이 계시는군요! 박 후작님! 제발 저희를 청나라로 파견해 주십시오!”

“몸 하나만 가도 됩니다! 유물을 분석하고 청나라 어딘가! 안전한 장소에만 보관해도 됩니다!”

“반객 대감께서는 저 유물을 제발 박물관에! 어떻게든 예산을 편성해 국립 박물관을 하나 더 만들어 주십시오! 간절히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열정과 광기는 너무나 뜨거웠다. 지금 대한제국의 고고학은 유교 문화의 터부로 무덤에 손을 못 대면서 목마른 사슴과 같이 유물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비교대상인 고생물학은 화석이라는 출구가 있다. 그러나 고고학은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많은 자료를 담은 무덤만큼은 발굴하지 못하는 크나큰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고고학자들은 중국 대륙의 문화재를 연구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고 있을 거다. 하필 시기도 좋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유물이 발굴되며 불이 붙었다.

“알겠네! 다만 나라의 돈이 아닌! 우리 안동 김씨 모두의 자금을 모아 재단을 설립하고 지원하겠네. 옥새와 대등한 유물이 갑자기 나왔다면 더 좋은 유물이 나오지 않겠는가?”

“그러하면 그 유물을 어디에 보관하실 생각이십니까?”

“나는 영 모르겠군. 조카사위가 보기엔 어디가 적당한가?”

이미 유물을 잔뜩 사 왔는데 또 가져오면 부족한 양심도 반응할 지경이다. 괴뢰국가에서 독립국으로 재편성할 중화민국이면 이 유물을 잘 보관하고 유지 보수할 수 있겠지.

“그야 중화민국이지요. 대륙의 물건은 대륙에 남아야 하는 법, 우리가 사들이거나 합법적으로 돈을 주고 빌려온 물건이라면 몰라도 나머지 유물은 아닙니다.”

“나쁘지 않은 수로군. 그나저나 이 물건은 대한 것으로 해도 되겠지?”

“폐하께 청을 하시면 잘 받아들여 주실 것 같습니다.”

유물의 이름은 송조청자다층구라 명명되었다. 이후 김좌근은 경매의 열기가 한창인 와중에 보고를 올리고 안동 김가를 설득하여 박물관 설립 계획을 발표하였다.

콜라 판매로 압도적인 재력을 소유한 안동 김가는 당연히 자금을 쾌척하였다. 개성에 본원을, 중국 대륙에 분원을 둘 사립 박물관이 건립될 예정이다.

경매로 소문이 퍼지며 대한제국의 목마른 고고학자들이 청나라 방문을 요청하기 시작하였다. 이 열기에 휩싸여 중국 대륙의 치안 안정을 위해 인력을 파견해야 할 기세였다.

훗날 문화역사대혁명이라 불리는, 참 기괴한 이름의 운동이 발생한 것이다. 잊힌 역사를 찾아내고 잠든 유물을 발굴하는 위업이 대한제국의 고고학자들에게 일임되었다.

# 작가의 말

해당 유물은 현실에는 없는 유물입니다. 역사적 기록을 통해 제가 창작한 유물이지요.

삽화326

다층구 단면도입니다. 제 그림실력이 부족하여 더 이상의 묘사가 불가능하다는 점이 참 아쉬울 뿐입니다.

송나라 시대는 청자 기술이 절정에 달해 파손된 청자의 유약을 녹여 재결합하였습니다.

다른 도자기도 이런 방식의 복원이 가능하다더군요.

<출처 1 : 도토기 보존처리 사례역사 연구. 함철희, 양필승 저>

<출처 2 : 도자기 수리복원 방법의 변천과정에 대한 고찰. 양필승, 서정호 저>

여기에 송나라 시절에도 상아를 깎아 다층구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다층구가 발전하다 청나라 시절에 전성기를 이루었습니다.

심지어 청나라 말기에는 전 세계의 기술자들이 다층구 만들기 대결을 벌이기까지 하였다더군요.

당시 만들어진 물건은 생각 외로 쌉니다. 옆나라에서는 100만 원 정도면 적당한 물건을 살 수 있더군요.

원조인 송나라 시대의 다층구가 남아 있지 않은 이유는 중국 대륙의 혼란도 있고. 그 이후 어떤 혁명 때문에 설령 남은 물건조차도 박살 났을 겁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을 결합해서 고고학적발견을 만들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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