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323화 (289/345)

323화

25장 2화 붕어(崩御)(2)

내금수교, 자금성 내부의 교량을 지나 태화문을 건너 중화전에 다다랐다. 자금성의 공식적인 접견 장소이자 예식을 준비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도광제와 접견을 실시한 장소이기도 하지. 그 정방형의 건물에는 자금성의 경비병 몇 명이 우리를 안내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약탈당한 물건들 가운데 황제의 의복이 두서없이 쌓여 정리조차 안 되어 있었다. 태자가 먼저 앞으로 나서 문 앞에서 목례를 올리고 문안 인사를 하였다.

“공친왕께서는 안에 계시는지요. 대한의 태자가 급보를 듣고 인사를 올립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답이 없었다. 이 자리에 공친왕이 있는 것이 확실한데도 응답이 없다니.

“급보를 듣고 인사를 올리러 왔습니다.”

-들어오시오.

다시 목소리를 높여 인사하자 다 죽어가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공친왕이 다 죽어가는 눈빛으로 우리를 돌아보았다.

28세의 장년 남성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몰골.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하고 입술은 모조리 갈라져서 딱지가 돋았다. 여기에 파리하다 못해 창백한 안색이다.

그동안 받은 스트레스가 터져서 공친왕을 60세에 달하는 나와 비슷할 정도로 노화시킨 것이다. 그는 한동안 우물쭈물하며 말을 못 하다가 물을 한 잔 마시고 나서 설명을 하였다.

“내가 지금은 말을 잘 못 하는 상황이오. 양해를 부탁드리오.”

이런 상황에서 정신을 잡고 있는 것으로도 대단한 사람이다. 나라가 망하고 신하와 동료가 죽어 나갔으며 조상의 묘가 박살 나고 약탈당한 다음에 왕까지 죽였다.

그런 공친왕의 양어깨에는 형용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이 짓누르고 있겠지. 먼저 태자가 나서서 문안인사를 하였다.

“갑자기 대고(大故)를 당하시니 얼마나 망극한 일입니까. 황제께 한때 문안을 올렸던 사람으로서 그저 침통하고 비통한 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병환이 위중하시더니 상사까지 당하셨습니다.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던 중에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의 인사를 들은 공친왕이 입술을 벌리자 입술의 딱지가 뜯어지며 피가 새어 나왔다. 통증에 시달리며 물수건으로 피를 닦은 공친왕은 입을 우물거리며 답하였다.

“고맙소. 황후께서는 통곡을 하다 재차 혼절하시었소이다.”

입 안을 살펴보니 구내염 특유의 흰색 반점이 가득하고 눈썹조차 하얗게 물들기 시작했다. 공친왕은 물 대신 탕약을 들이켜고는 한참 동안 숨을 돌리다 말하였다.

“이미 의원을 통해 소식을 들었을 거요.”

“그렇습니다. 입단속을 하여 다른 이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게 하였지요.”

“그러하면 소문을 퍼트리지 말아주시겠소? 한 달이라도 말이오.”

증국번 정도라면 함풍제의 죽음으로 군을 되돌릴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이를 퍼트려 사기를 끌어올리고 더더욱 진격에 박차를 가하겠지.

공친왕도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측하고 있었다. 함풍제의 사망을 알리면 자연스럽게 새 황제의 즉위식과 장례식을 치러야 한다.

각각 은자 이백만 냥 이상의 자금이 소모되는 초거대 행사를 치러야 한다. 규모를 최대한 축소하고 부호들의 후원금을 받아도 각각 은자 백만 냥은 잡아먹고.

태자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 한참 동안 생각을 마친 다음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놓았다.

“다른 이들을 속여도 그리 좋은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 같군요.”

“적어도 한 번이라도 교전을 하면, 적의 덜미라도 잡으면 될 일 아니오. 그다음에 소식을 전하면 부호들이 후원금을 내놓을 것이오.”

공친왕이 고통에 입을 감싸 쥐자 태자가 눈을 굴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역관에게 대화를 논하지 말라며 손짓을 하고 나지막하게 말하였다.

“아무리 보아도 한번 홍수전을 무찔러 여론을 돌리려는 것 같군.”

“바로 보셨사옵니다. 당연히 그러한 일은 안 된다고 못을 박아주시옵소서.”

“내 생각도 같다네. 차라리 자금 지원을 많이 하는 것이 옳은 방안 같은데.”

예의상 부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의견을 일치시켰다. 태자는 공친왕의 초췌한 얼굴을 잠시 훑어본 다음 반대의 뜻을 전달했다.

“입단속을 시켜도 문제입니다. 군대 내부의 기밀이나 이 나라의 일은 법으로 규정하여 논하지 못하게 할 수 있으나 외국의 일, 여기에 거짓이 아닌 진실만큼은 막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 하여도 막을 수는 있잖소?”

“막지 않는 것보다 못합니다. 사람은 언로(言路)를 막으면 그 사실에 궁금함을 표시하며 파고들기 마련이지요. 그냥 내버려 두는 것보다 못합니다.”

스트라이샌드 효과라 했던가. 어떤 정보에 대해 제거하거나 검열하면 그로 인해 더 많은 정보가 공개되는 현상이다.

함풍제의 죽음을 논하지 말라는 명령을 어떻게 내릴까? 청나라 황실과 관련된 정보를 논하지 말라는 말만 해도 황실에 변고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된다.

그렇다고 우리가 청나라처럼 연관자를 살인멸구 할 수도 없는 나라고. 공친왕은 몇 번이고 눈을 깜빡이더니 쥐어짜 내듯 간절한 말을 하였다.

“국장(國葬)을 수행하면 자금이 사라지게 되오. 그리하면 역적을 추포할 수 없겠지.”

“조의금으로 은자를 쾌척해 드리겠습니다. 이쪽의 사정도 그리 녹록지 않아서 오십만 냥 정도면 족할 것 같습니다만.”

내가 뭐라 만류하려 했는데 슬쩍 손짓을 하며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그러자 공친왕이 억지로 입술을 움직이면서 제안을 하였다.

“그럼 치를 수밖에. 다만 인쇄기로 전표(錢票)를 찍어내 돈을 대신할까 하는데 기계와 사람을 빌려주시오.”

인력을 고용하는 데 돈을 당장 쓸 수 없어서 약속어음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공친왕도 나름 머리를 쓴다고 했는데 부처님 손바닥 안에 있는 손오공 신세다.

내가 왜 군자금으로 쓸 수 있는 돈, 은자 300만 냥을 녹여서 현물 군표로 지급했겠는가.

태자가 잠시 나를 돌아봐서 공친왕에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말을 하였다.

“제가 북경에 처음 발을 들일 적에 은을 녹여 현물 겸 군표를 지급했습니다. 처음에는 북경의 백성들을 위한 행동을 했는데 지금 보니 공친왕 전하의 발목을 잡게 되었군요.”

공친왕은 내가 군표를 찍어낸 행동, 사실상 은자를 바꿔 찍어낸 행동을 떠올린 것 같다. 그의 눈꺼풀이 마구 떨리며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민심을 다독이기 위해 별 해괴한 수를 쓴다고 넘어갔을 거다. 시간이 지나서 함풍제가 죽고 군자금이 부족해질 지경이 되니 내가 선례를 남겨버린 것을 알아차렸다.

치안을 유지하는 대한제국조차 신뢰를 위해 은을 녹여서 군표를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북경에서 축출당할 위기에 처한 공친왕은 최소한 현물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다.

함풍제의 죽음을 위해 미리 깔아둔 포석이 공친왕이 달아날 길을 막아버렸다. 몇 번이고 숨을 고르고 마음을 정돈한 공친왕은 눈을 흘기며 나에게 질문을 하였다.

“혹여나 처음부터, 처음부터 이런 일을 계획하였소?”

“어떠한 일입니까?”

“이렇게 포석을 깔아두는 것 말이오. 처음이 대체 언제요?”

그 처음이 언제부터일까. 내가 북경에 왔을 때? 아니면 조-청 전쟁이 일어났을 때? 아니면 홍수전이 암약을 할 때?

그냥 조선시대에 떨어졌을 때부터 부국강병을 추구하고 청나라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기 위해 활동했다. 나는 아무런 거짓도 없이 오로지 진실만을 담아 말하였다.

“제가 숨을 쉴 때부터라 단언할 수 있습니다. 전 오로지 대한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 하고 이 나라를 번영시키기 위해 힘을 쏟았습니다.”

공친왕은 미치광이를 본 듯이 헛웃음을 흘리고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내가 깔아둔 포석에 밀려 구석으로 달아나는 길 하나다.

“그럼 국장의 규모를 최대한 줄이도록 하겠소. 혹시 대한에서 권고할 것은 없소?”

“즉위식을 미루시지요. 저희가 약조한 대로 홍수전을 처단하는 데 성공하면, 양 측이 협력하였다면 공훈을 기준으로 삼아 명백한 측에 북경과 화북을 넘겨주기로 하였습니다.”

이번 홍수전 추격전은 일종의 자격 심사다. 반란군 잔당 정도는 격퇴할 수 있어야 북경과 화북을 차지할 수 있다는 암묵적인 합의를 통한 조건을 완성했지.

정말로 증국번이 기적을 일으킨다면, 조무래기에 불과한 팔기군 잔당과 어중이떠중이로 홍수전을 쓰러트리면 화북을 차지해도 할 말이 없다.

“그러하니 반란군 수괴인 홍수전의 목을 영전에 바치고 즉위를 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럼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소. 만약 셍게린첸이 승리하면 우리 모두가 북경의 시민들에게 갈기갈기 찢겨 죽지 않겠소?”

궁지에 몰린 공친왕은 목숨만 살려달라는 말을 대놓고 하였다. 그렇다고 청나라 황실을 모두 죽이거나 살해를 방조하면 대한제국 측에도 뒷말이 나올 게 분명하지.

그 궁지에 몰린 생각조차도 이용해 먹을 가치가 있다. 쥐를 잡을 때 모든 탈출구를 막으면 잡기 더욱 어려운 법. 탈출구를 단 하나만 남겨두고 거길 나가는 쥐를 노려야 한다.

“엄연한 동맹이고 많은 약조를 맺은 국가로 안전을 보증해 드리지요. 다만 무턱대고 위험한 곳에 있다면 저희도 힘에 부칠 수 있습니다.”

태자조차도 내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군주제가 도입된 국가가 다른 국가의 군주도 아닌 가문 전체가 몰살당하는 꼴을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다만 그 안전은 화북에서는, 혹은 중국 대륙 중심부의 중원에서는 우리도 보증할 수 없다. 그러니 좀 더 안전한 곳이자 돈을 더 많이 소모할 장소로 공친왕을 유인하였다.

“제 생각으로는 사천성이 새로운 영토로 적합할 것 같습니다. 옛적 인종(가경제의 묘호)께서 사천성 일대의 민란을 진압한 공로가 아직 남아 있을 것 같군요.”

“반역분자들이 들끓는 곳으로 이주하란 말인가?”

공친왕 입장에서는 귀가 솔깃한 제안이다. 이미 군자금으로 남겨놓은 돈 가운데 상당수가 장례식 비용으로 지출될 상황인데 우리가 안전을 약속해 주었다.

그 안전을 지키려면 더 많은 돈이, 군자금으로 쓰일 돈을 비축하여 초기 민심장악과 급료 지급에 들여야 한다. 자연스럽게 증국번에게 돌아갈 군자금이 고갈될 것이다.

“참 황당하면서도 이해할 수 있는 제안이로군. 그나마 사람이 발을 붙이고 누일 장소는 마련해 주겠다는 말인가.”

“사천성으로 이주를 하시면 대한이 사람을 파견하여 재산과 필요한 건물을 옮겨 드리겠습니다. 그 정도는 그리 힘든 일도 아니지요.”

아예 이삿짐까지 싸주겠다는 정중한 제안을 하였다. 공친왕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지막 말을 남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든 사실을 공표하지요. 대한의 태자께서 주신 부조금은 요긴하게 쓸 것이며 치안 유지와 백성을 다독이는 일 또한 같이 수행해 주시면 고마울 뿐입니다.”

“부조금을 백성을 다독이는 데 쾌척해도 되겠습니까?”

“차라리 그런 방안이 나을 것 같군요. 사람을 고용하면 바로 보내주십시오.”

공친왕이 휘청거리며 내전으로 들어가자 잠시 뒤 ‘상위복’이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황제의 죽음이 공표되자 태자도 자리에서 일어나서 몸을 돌리더니 잠시 나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박 후작도 참 잔인한 사람이야. 대놓고 사천성 오지에 청나라를 밀어 넣어버리다니.”

“제가 보기에는 중원(中原 - 대륙 중앙) 보다는 나은 형편입니다. 어떻게든 민심을 돌릴 수 있다면 재기의 발판을 노려볼 수도 있는 지역이옵니다.”

“허허벌판에 놓여서 다른 나라의 진격에 밟히느니 구석 변방이 나을 것 같군. 그나저나 증국번이 만에 하나 홍수전을 격퇴하면 어떻게 할 건가?”

증국번이 이끄는 병력에게 남은 길은 하나밖에 없다. 어중이떠중이 만주족 육천여 명과 북경과 화북 일대에서 긴급 모집한 일만 명의 병력으로 승부를 봐야지.

거기서 이기려면? 대한제국군 수준의 화력이면 모를까 병장기 일부, 기껏해야 최신 병기로 한 발만 장전할 수 있는 구형 갑식 소총으로 뭘 할 수 있겠는가.

세상 모두가 돕는다 하여도 불가능한 일이다. 기껏해야 홍수전에게 막대한 타격을 입히는 것이 증국번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라 태자의 의견에 확답을 냈다.

“만에 하나라는 말씀이 지당하옵니다. 만 번을 싸워서 구천구백구십구 번을 실패할 것이라면 아예 생각조차 할 필요가 없는 일 아닙니까?”

“내가 괜한 생각을 하였군. 그러하면 북경의 새 주인이 올 때 까지 잠시 대한으로 물러나 있는 것이 어떠한가?”

태자의 말대로 북경에서 할 일은 끝났다. 증국번에게 파견된 소수의 관리병력과 북경의 치안유지를 위한 이만여 명 정도의 병력만 배치하면 충분하지.

북경 길거리로 나아가자 함풍제의 사망 소식을 들은 시민들이 엉거주춤하게 선 채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한 시민이 절을 올린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질문을 하였다.

“대! 대한의 황태자께 여쭈어 볼 것이 있사옵니다. 정말 황제가 죽었습니까?”

“그럴 때에는 격식을 갖추어 붕어(崩御)했다고 하게나.”

“만세! 황제가 죽었다! 이제 새 주인이 우리 북경에 들어온다!”

황제가 죽었는데 만세라 하다니 세상이 두 번 정도 망한 것 같다. 갑자기 만세라는 소리를 듣고 정신이 나간 북경 시민들에게 함풍제의 사망 소식까지 전해졌다.

그 결과는 참으로 대단했다. 뒷골목에서 사람을 두들겨 패다 병사들에게 끌려 나온 불량배조차 압송당하며 만세, 사기를 치다가 걸려서 멱살을 잡고 싸우던 사람들도 만세.

대한제국의 병사들이 오히려 질겁하여 조심스럽게 대응할 상황이었다. 한 장교가 슬쩍 다가와 나를 바라보면서 질문을 하였다.

“이놈들이 뭘 잘못 먹었나? 혹여나 청나라에는 이 시기에 축제가 있습니까?”

“축제가 아니라 장례식일세. 사실상 축제이기도 하지.”

그 날 저녁이 되자 말 그대로 무질서한 평화가 시작되었다. 어제까지 시위를 하거나 서로 싸우며 다채로운 삶을 이어가던 시민들 모두가 축제를 즐겼다.

여기에 대한제국이 불을 붙였다. 은자 50만 냥을 철저히 소모해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즐길 수 있도록 길거리에서 육개장을 쑤어 배급하기까지 하였다.

“박 후작님께서도 육개장을 드시는군요.”

취사병들이 대충 만들어낸 육개장을 한 국자 먹으려 길거리를 찾아갔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두서없이 멍석 위에 앉아 육개장을 퍼먹고 있었다.

“이런 날에는 육개장을 먹으며 조의를 표해야 하는 법일세.”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북경 시민들을 모두 배불리 먹이라 하실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

건더기도 별로 없고 고춧가루도 없는 희멀건 색의 육개장이지만 못 먹을 물건은 아니다. 탁자를 개조하여 만든 상석에 걸터앉으니 서른 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길거리를 지나갔다.

북경이 초토화되면서 전쟁고아들이 생겨났다. 이 아이들은 구걸을 하는 대신 대한제국군에서 빨래를 하거나 여러 잔업을 하면서 어느 정도 생활을 이어갔다.

난 딱히 손을 대지 않았다. 다만 병사들과 장교들이 측은하게 생각하여 빈집에 머물게 하고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군수품을 사용했었지.

이 고아들도 분위기에 휩쓸려 길거리에 나와 육개장을 얻어먹고 집에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런 고아들이 참으로 미친 소리를 하였다.

“황제가 두 번 죽으면 좋겠다.”

“황제가 두 명이 죽어야지 왜 두 번 죽어!”

“사람은 두 번 죽을 수 있잖아! 죽어서 한 번! 뼈가 부스러져 한 번!”

“그럼 뼈를 한 번 빻을 때마다 한 번을 더 죽은 걸로 쳐야지!”

아무리 후원자가 있어도, 아무리 빈 집에서 살며 병사들이 먹을 것을 주어도 아이들은 굶주리기 마련이다.

어느새 육개장 그릇을 들고 내 옆으로 다가온 태자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우리는 모든 일이 끝나고 마무리만 지으면 되는데 저 아이들은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하였소.”

그 말을 듣고 뭐라 답해야 하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음속으로는 저 아이들이 본래 역사에서 겪을 일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부패한 청나라에서 살아가면서 온갖 고난을 겪고, 나이가 차면 청일전쟁과 의화단 운동으로 혼란을 시작하여 신해혁명으로 수많은 고초를 겪겠지.

50대에는 호법, 호국전쟁을 겪고 60대에는 국공내전에 휩쓸리며 죽거나 자손들이 모조리 죽어 나가는 삶을 겪게 될 거다.

적어도 나라를 분할시킨 시점에서 그 정도로 혼란을 겪지는 않을 거다. 그 생각을 이어가려다가 실타래가 엉킨 듯이 마음이 정리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생각을 해보았소. 북경에 사비를 쾌척하여 고아원을 만들 예정이고 대충 만들어두기는 하였지만 부족한 점이 많지.”

“훌륭한 일이옵나이다.”

“왜 그리 말이 짧은지 모르겠구려. 아무튼 홍수전이 일으킨 변란으로 인해 고통을 겪은 아이들을 감싸줄 마음이 생기더구려.”

태자의 말이 옳기는 하다. 홍수전의 반란 자체는 대한제국이 방임하였을 뿐 부추기거나 후원하지는 않았다.

난 청나라의 부패를 이용하여 이득을 챙겼을 뿐이지. 마음속에서는 홍수전을 제거해도 제2, 제3의 홍수전이 나타나 북경을 초토화시켰을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 생각이 옳은지, 아니면 틀린지는 이제는 잘 모르겠다. 어차피 일어날 반란이고 혼란이라면서 철저히 이용해 먹는 생각이 옳은 짓일까.

청나라 후반부터 벌어진 혼란은 끔찍한 결과로 돌아온다. 만주족의 수탈은 40년이 더 이어질 것이며 지금 생산하는 아편의 3배 이상이 중국 대륙 전체에서 생산된다.

이 과정에서 식량난과 농민반란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죽어 나간다. 그걸로 끝이 아니지.

신해혁명 이후 서로 편을 나누어 만인의 투쟁을 벌이고. 홍수전의 반란이 어린아이 장난처럼 느껴질 혼란에 빠질 중국 대륙이다.

홍수전이 시작하고 내가 방임한 내란을 이용해 나라를 터트리고 쪼개서 혼란이라도 줄이는 것이 옳은 짓일까.

이건 정말로 모르겠다. 지금까지는 내가 옳다고 신념을 가졌지만 정작 고아들을 보니 마음이 흔들린다.

저 아이들이 고아가 된 근본적 원인은 홍수전이다. 이 반란을 처음부터 뿌리를 뽑을 수 있었던 나는 이용해 먹을 생각을 품었고 이런 결과로 돌아왔다.

나는 큰 그림만 보면서 사람 개개인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 하였다. 오히려 내가 생각조차 안 하고 넘어간 일을 이 시대의 사람들이 챙기고 있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태자는 잔치에 음식을 나르는 아녀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간혹 길거리를 스쳐 지나갈 때마다 날품팔이를 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빈집을 사들이고 식량을 철저히 배급하였는데 마음에 드시오?”

“전 아무런 생각도 안 하고 서류만을 내려 보았을 뿐입니다. 세상을 알 것 같다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지요.”

“박 후작이 그렇게 생각할 줄이야.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였을 뿐이오.”

태자는 내 표정을 슬쩍 훑어보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마음속에 뒤엉킨 실타래를 깊숙이 밀어 넣고 다음 날부터 다시 업무에 돌입하였다.

국장은 차근차근 절차대로 진행되었다. 사흘이 지나 함풍제의 시신이 임시 안치되고 장례 행렬이 북경을 가로질렀다.

그 장례에 진심으로 통곡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모두가 예의상 곡을 하며 황제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대략적인 행사가 끝날 무렵인 양력 8월 초, 대한제국의 병력들이 태자와 나를 포함한 중진들과 함께 본국으로 귀향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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