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322화 (288/345)

322화

25장 2화 붕어(崩御)(1)

공친왕 다음으로 모병을 시도한 사람은 증국번이었다. 그는 자신의 연설을 나를 비롯한 대한제국 병사들도 경청하라는 부탁을 하였다.

물론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증국번은 어떻게든 관심을 끌어보려고 우리에게 군자금을 나누어주라 했고 마침내 수백여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앞으로 한 각 정도 이야기를 할 거요. 그 이야기를 모두 들으면 은자를 한 냥씩 주겠소!”

“이거 가짜 은 아니지요? 차라리 군표를 주시지요.”

“성 밖에 군표를 찍어내는 곳이 있소이다! 나를 못 믿겠다면 대한의 병사를 믿으시오!”

졸지에 바람잡이를 넘어선 무언가가 되었는데 증국번의 간절한 표정을 보니 숨겨둔 한 수가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사람들이 모두 모이자 숨을 들이켜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 증국번은 지난 잘못을 반성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소! 한때 내 벗이라 생각했던 홍수전이 반역을 저지르고 나라를 도탄지고에 빠트렸으니 이를 되갚으려 하오!”

증국번과 홍수전이 그런 관계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우리 정보망에도 그저 동기에 가까운 사이일 뿐 벗을 자처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라니.

지금 상황에서 홍수전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사람은 입을 다물고 다른 사람의 문책을 피하려 한다. 그런데도 증국번은 정면 돌파를 시도해 버렸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람들은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눈에 핏줄을 세우고 증국번에게 삿대질을 시작으로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벗! 벗이라고! 이 개잡놈의 새끼야! 똥구덩이에서 헤엄칠 자라새끼야!”

“네놈도 원흉이었구나! 네놈이 홍수전을 옆에서 지켜봤다면 그 역모를 모를 리가 없을 터!”

“무능하고 한심하고 비천한 놈 같으니! 저놈을 죽여! 죽여라!”

사람들이 몰려들자 대한제국 병사들도 어쩔 수 없이 총검을 들이대며 진을 쳤다.

병사들도 사람들도 눈치를 살살 보면서 대립하는 와중에 증국번이 단상에서 뛰어내리더니 관모를 벗고 말하였다.

“그렇소! 나는 무능하고! 한심하고! 비천하며! 역도가 자라나는 것을 방임하였소!”

증국번은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며 머리를 찧어댔다. 박석(薄石) 위를 골라 머리를 찧어대니 쿵쿵 울리는 소리가 주변에 퍼져 나가고 이마에서 피가 튀겼다.

사람들이 피를 보고 흥분을 가라앉히자 증국번은 몸을 휘청거리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북경의 시민들을 향해 애절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뒤늦게 역모를 눈치채고 공친왕 전하를 피신시키는 것이 전부였소. 그로 인하여 북경의 백성들이 더 큰 화를 입고 이 비천한 목숨을 건진 죄인이오.”

“그럼 목매달고 죽어!”

“놈을 생매장해라! 우리 아버지께서도 산 채로 묻히셨다!”

“그리 하겠소! 내가 홍수전을 사로잡는 데 성공하면 정말로 죽겠단 말이오!”

청나라의 충신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수였다. 증국번은 암묵적인 합의, 반란군 수괴인 홍수전을 죽이는 세력이 북경을 차지한다는 내용을 믿고 있었다.

아무런 가능성이 없던 일이 점차 현실이 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그의 당당한 태도를 보고 어느 정도 믿을 만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외몽골은 자신들을 도운 이들이지만 어디까지나 북쪽 황무지에 사는 이민족이다. 반면 증국번은 엄연한 한족이고 북경에 살던 사람이다.

북경 시민들은 어느 정도 믿는 눈치이나 이미 줄을 댄 유력가들의 시선은 달랐다. 어느새 끄나풀의 소문을 듣고 부호들이 달려왔고 그들의 문책까지 시작되었다.

“역적 홍가놈과 싸고돌 때는 언제고 지금 와서 반성을 하시오!”

“결자해지라 하였소. 내가 홍수전을 조금만 의심하였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거요.”

사과를 하면서 당당한 태도를 유지하는 증국번의 모습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나는 언제나 고개를 숙이고 태도를 움츠리며 반성하지만 증국번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어떻게든 할 일을 다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의무가 의연한 태도로 증명되었다.

부호들은 혀를 차면서 증국번을 바라보다 마지못해 말하였다.

“그 무능한 팔기군 잔당을 데리고 뭘 할 수 있는지 지켜보겠소.”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야 후회가 없는 법이 아니겠소.”

부호들이 예의상 은자 한 냥을 받고 돌아갔고 증국번이 다시 시민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핏줄기가 눈 안에 들어갔음에도 눈을 부릅뜬 채 말하였다.

“소집에 응하면 한 명당 은자 열 냥! 이후 한 달에 은자 다섯 냥을 지급하겠소! 여기에 은자 오십만 냥을 소모하여 대한의 병장기를 사들이고 이를 지급할 거요!”

이건 제법 놀라운 일이었다. 그 짠돌이들이, 녹영군에게도 장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만주족이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엄청난 급료를 지급하고 병장기를 사들이는 것이다.

다만 급료가 아쉬운 편이다. 지금 외몽골에 모병된 사람들과 같은 급료를 지급하는데 이를 알고 있는 시민들도 코웃음을 치면서 거절을 하였다.

“병사가 그 기준이면 아무도 응하지 않을 것 같은뎁쇼.”

“보인 기준이오! 병사는 세 배를 줄 것이니 창과 칼을 들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모이시오!”

병사 기준 고용비로 은자 30냥에 월급 15냥이라는 파격적인 약속을 했다. 북원의 병사들에게 지급하는 급료의 3배에 달하는데 말 그대로 돈으로 군대를 만든 격이다.

이걸 보면 공친왕이 허가를 내린 게 확실하다. 증국번이 1만 명의 병력과 보인 2만 명으로 1년 동안 추격전을 벌일 경우 급료가 은자 280만 냥에 달한다.

홍수전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병력을 현장 고용해 일전을 벌인다면 대충 500만 냥 정도를 소모하겠지.

증국번은 여기에 약속을 하나 더 하였다.

“돈은 들고 다니기 편하도록 모두 은자와 같은 가치를 지닌 금붙이로 줄 거요. 우리가 금을 지급하지 못하였다면 즉각 돌아가도 좋소이다.”

“그 금의 보증은 누가 해 줍니까? 누가 전선까지 옮기고 배분합니까?”

“여기 대한의 사람이 있지 않소!”

증국번이 나와 대한제국 병사들을 가리키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돈을 빼먹거나 뇌물을 받고 허튼수작을 부리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품고 있었다.

나도 대한도 바보는 아니라서 돈 계산은 철저하게 할 거다. 대신 증국번이 사용할 자금이 하늘 어디론가 사라질 일이 일 년 이내에, 혹은 더 빠르게 일어난다.

“우리의 신뢰는 대한이 보증할 거요! 우리가 돈을 공급하지 못하면 대한 병력들을 따라 고향으로 돌아오시오! 다만! 군율이 엄정해야 하며 명령을 항시 이행해야 하오!”

그 일을 예측하지 못한 증국번은 공수표(空手票)를 마구잡이로 뿌리고 있었다. 엄밀히 따지면 조만간 부도가 날 회사가 회사채를 마구 찍어내는 짓을 하고 있지.

모든 일이 끝나고 사람들이 소문을 퍼트리기 위해 사방으로 돌아갔다.

시름을 놓은 증국번은 이마에서 흐른 핏물을 수건으로 닦으며 나에게 간절한 눈빛으로 청하였다.

“일이 급하게 되어 미리 말씀을 못 드렸습니다. 서로 협의를 본 내용도 아닌데 이토록 무례하게 멋대로 말씀을 드려 낯을 들 수가 없을 지경이군요.”

“논리가 정연하고 우리를 중매로 제대로 된 확약(確約)을 맺지 않았소. 그러하면 된 거요.”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홍수전의 목으로 갚으시오.”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공친왕도 증국번도 눈앞의 일만 바라보면서 대한제국의 신뢰도를 올리고 자신들의 신뢰도를 실시간으로 깎아 먹을 준비를 하였다.

이후 공친왕이 공식 요청을 하였다. 북경에 소집된 양 세력이, 외몽골과 증국번이 이끄는 청나라 군대가 출병하기 직전에 사기를 끌어올려 달라는 요청이었다.

“죄인을 형장으로 이송하라!”

바로 태평천국 주요 간부들의 처형식이었다. 개중에 감옥 안에서 자진(自盡)을 한 사람도 있었는데 이들은 이미 효수되었다.

개중에 가장 지위가 높은 이수성이 당당한 모습으로 형장인 천안문 앞에 끌려 나왔다.

그는 형장으로 사형 집행관들보다 한발을 앞서 형장에 나와 당당히 공친왕을 바라보았다. 상석에 앉은 공친왕은 목소리를 높여 이수성의 죄를 꾸짖었다.

“네놈의 죄는 하늘이 알고 땅이 알며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다! 할 말이 있느냐!”

“내 죄는 크고 막심하다. 천하를 한 발자국 앞에 놓고 주저앉았으니 그 죄가 크지 않더냐!”

“그 죄가 네 죄더냐! 네 죄는 역모를 제외하더라도 수많은 백성을 죽이는 일을 방임하고. 다른 나라의 백성들 또한 죽였으며! 이 도읍을 약탈하고 모두를 도탄지고에 빠트렸다!”

“모두 다 부덕한 만주족을 제거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이다!”

공친왕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이수성을 똑똑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 올린 다음 사형 집행관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놈을 능지처참하라! 다음 형도 신속하게 집행하라!”

즉각 능지처참 형벌이 집행되었다. 이수성의 비명과 사람들의 환호성이 교차하는 가운데 간부들이 차례로 고깃덩이가 되어버렸다.

공친왕은 그 과정을 지켜보았고 태자는 더 이상 보지 못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친 태자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아바마마께 건의하여 사형은 교수형과 총살 두 가지 형벌만 남겨두도록 합시다. 너무 잔혹하구려.”

“실로 옳은 말씀이옵니다. 어찌나 잔혹한지 도저히 볼 수가 없군요.”

시간 관계상 120회의 칼질로 축약된 형벌이 계속 집행되었다. 이 자리에 모인 대한제국 사람들이 질겁할 만한 형벌이었다.

모든 형벌이 끝나자 공친왕은 흔적을 정리하고 두 무리로 나뉜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먼저 증국번에게 명령을 하달하였다.

“사력을 다하여 역적을 추포하고 도륙하시오!”

“전하의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증국번이 대열을 정돈해 뒤로 물러나자 다음 순서는 외몽골 병사들이었다. 한때 자신의 부하였던 셍게린첸에게 공친왕은 마지못한 눈치로 우물쭈물거리다 말하였다.

“부디 역도를 사로잡아 선제의 원혼을 달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오.”

셍게린첸이 한때 청나라에 소속되어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말이었다. 그러자 셍게린챈은 절을 올리는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이 더 이상 청나라 소속이 아니라 선을 그었다.

“한때 선제께 녹봉을 받아먹던 처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만 훗날 북경을 차지할 몽골의 장수로서 할 일을 완수하겠습니다.”

두 병력은 북경을 떠나 서로 다른 경로로 진군하였다. 증국번은 보병 위주의 병력이 태반이라 홍수전의 후방을 추적하고 외몽골은 기병 위주의 병력이라 평야를 타고 크게 우회한다.

그리고 보름쯤 지날 무렵. 내 예상보다 사건이 더욱 빠르게 터져 나왔다.

* * *

슬슬 여름이 다가와 더위가 거세질 무렵의 점심때였다. 조금 늦게 함락된 남경에서 전해온 소식을 태자와 같이 분석하던 중에 장교가 급히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 뒤를 의관이 따랐다. 의관은 말이 새어나가지 않게 창문을 닫은 다음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청나라의 황제가 훙서(薨逝 - 왕공족의 죽음), 아니지. 붕어(崩御 - 황제의 죽음)하였사옵니다.”

“붕어라니? 의관을 붙여두라 말하였거늘.”

태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나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함풍제는 식물인간 상태로 철저한 보호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끝없이 뇌신경을 좀먹어가는 헤로인 금단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해 대한제국 연구진이 최소한의 헤로인을 생산하고 엄중히 가져와서 필요한 양을 계속 주사하였다.

여기에 대한제국에서 처음 20명으로 시작, 이제는 3교대 제도로 60명의 의원을 붙여놓은 상태이다. 한 마디로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

“의관들은 무엇을 하였는가? 가만히 누워서 숨만 쉬는 사람이 아니더냐?”

“말씀을 드리자면 황망하기 이를 데 없사오나 환후가 조금씩 악화되었사옵니다.”

담당 의관은 초조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설명을 하였다. 함풍제의 헤로인 중독은 완화가 아닌 악화일로를 걸어갔고 공친왕과 황후의 합의하에 헤로인 투여량을 조금씩 늘려왔다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약의 해악이 드러났다고?”

“그러하옵니다. 영웅약의 분량이 조금만 줄어들어도, 혹은 열흘 동안 동일한 양을 투여하면 구토와 발열로 그리고 극도의 취한(取汗 - 땀이 나다)으로 숨을 거둘 지경이었사옵니다.”

“혼절한 사람조차도 저 지경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계속 복용량을 늘리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는 약이라니.”

일준이가 전에 이야기했던 신경계 파괴 증상이 함풍제의 몸을 계속 갉아먹은 것이다. 여기에 의원은 계속 고개를 조아리며 변명 아닌 변명을 하였다.

“양을 늘릴 때마다 호흡이 줄어들고 맥이 쇠약해지기에 이르렀사옵니다. 어떻게 끊어보지도 못하고 절명할 것이 분명하기에 계속 양을 늘렸고 급기야 한 시진 전에…….”

태자는 침통하다는 듯이 탁자를 내리치고 의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앓던 이가 빠져서 후련하다는 표정을 잠시 짓고 다시 침울한 표정으로 돌아와 말하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나 할 일은 다 하였구나. 더 이상 미련을 가지지 말도록 하라.”

의원이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가자 태자는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만 장성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이최응을 바라보며 명령을 내렸다.

“부여왕께서는 소문이 퍼지기 전에 자금성을 철저히 호위해 주시오. 아마 지금부터의 쟁의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거요.”

“가용 가능한 병력을 모두 동원하여 철저히 호위하겠습니다.”

“다음으로는 조의를 보내는 것인데 내가 하겠소. 본래 박 후작 정도만 다녀와도 될 일이지만 이런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소.”

태자는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일을 처리하려고 즉시 자금성으로 향하였고 나 또한 뒤를 따랐다. 마차 안에서 본 풍경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인 북경의 일상이었다.

비록 전쟁과 학살이 할퀴고 지나갔지만 대한제국이 발행한 군표를 거래하며 삶을 이어갔다. 태자는 여름이 다 되어 후덥지근한 공기를 느끼며 나에게 천연덕스럽게 말하였다.

“일전에 황제를 만난 적이 있소. 사실 다 죽어가 피골이 상접해 가는 송장을 본 것에 불과하였지만. 그걸 보면서 깨어날 가망이 없다고 몇 번이고 생각을 곱씹었소이다.”

“영웅약이 한 번 몸에 들어온 사람은 죽을 때까지 끊을 수 없사옵니다.”

“그 약을 금지하기를 정말 잘하였소. 아마 이번 사건으로 황제를 죽인 약이라면서 온 세상에서 완전히 금지되겠지. 아니면 정말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만 투여할 것이고.”

천천히 북경 시내를 가로지르는 마차 옆으로 이최응이 보낸 병력들이 자금성으로 향하였다. 이 모습을 확인한 북경 시민들은 뭔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나저나 장례식의 비용은 어찌 처리할 예정이오.”

태자가 비용 문제를 이야기하였는데 그 비용이 얼마나 들어갈까. 내가 공친왕에게 은자 삼백만 냥에 추가로 삼백만 냥을 왜 빌려줬을까.

공친왕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함풍제가 건강을 되찾거나 현재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고작 은자 육백만 냥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반면 내 계산은 달랐다. 헤로인을 장기간 복용하면 신경계가 파괴된다는 일준이의 말을 믿고 함풍제가 죽을 것이라 생각했다.

언제일지는 몰라도 황제의 죽음은 가까스로 자금 수혈을 받은 청나라에 최후의 타격을 입힐 거라 생각했다. 다만 내 예상보다 함풍제의 죽음이 빨랐을 뿐이다.

“돈이 아주 많이 들어갈 것이옵니다. 육개장이 몇 그릇이나 필요한지 감이 잡히지 않사옵니다.”

최소한의 격식을 갖추기 위한 장례비용도 최소 은자 이백만 냥 정도에 달한다. 홍수전을 죽이려 원정을 나가는 증국번 입장에서는 병사 월급이 모조리 장례식에 투입되는 꼴이지.

태자는 내 대답을 듣고는 질린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흘겨보았다. 그리고는 한참을 생각하다 북경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는 모습을 보고 마지못해 동의하였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죽…… 하긴 죽은 것 자체가 북경의 축제구려.”

“이미 북경의 백성들은 아무 눈치를 볼 일이 없사옵니다. 제가 감히 말씀드리오니 사방에서 폭죽이 터지고 환호성이 길거리를 메울지도 모르옵나이다.”

태자는 한참을 고민하고는 볼을 두드려 마음을 정리하고 거울을 보며 침울한 표정을 짓는 연습을 하였다. 그리고는 호위병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면서 내 의견에 동의하였다.

“북경의 백성 모두가 날뛰는 것보다 축제가 열리는 것이 났기는 하구려.”

자금성에서 나온 병력들이 우리 주변을 호위하였다. 여기에 태자와 날 호위하기 위한 병사들이 함께하여 아직도 정돈되지 않은, 어수선한 자금성을 가로질렀다.

중국 역대 황제들의 장례는 대부분 화려하다. 나라가 아예 멸망한 비운의 황제가 아니라면 7개월의 일정을 꽉꽉 채워서 진행하기 마련이다.

내가 할 일은 청나라에 공식 7개월 일정을 모두 채우기를 강권하는 것이다. 거기서 소모되는 자금은 모두 증국번이 지급할 월급에서 빠져나가겠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