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319화 (285/345)

319화

24장 11화 흉악한 족속(2)

제임스 호프는 자신들을 노려보는 눈빛을 무시한 채 태연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와 대조적으로 진영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바쁘게 움직였다.

대한제국의 연구진은 독가스의 효과를 대략적으로 기록하고 구조 작업에 동참하였다. 한눈에 보아도 군인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고통을 겪고 있었다.

“헉! 허억! 헉!”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생존자가 고통으로 바닥을 긁다 손톱이 모조리 뽑혀 나간 손을 허우적거렸다. 연구진은 그의 머리 위에 예비 방독면을 씌워주었다.

정화통을 통해 어느 정도 정제된 공기가 들어오자 생존자는 허우적거리던 사지를 멈추었다.

제임스 호프는 생존자를 내버려두라는 말을 하려다가 말이 통하지 않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조일준을 찾아서 이 작업을 중단시키려 다가갔다.

그 앞을 일본 장교들이 막았다. 서로 석영렌즈를 통해 시선을 교차하는 가운데 일본 장교들이 방독면 안에서 고함을 쳤다.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바뀐 고함 소리, 그 기묘한 소리와 대조되는 쇠와 쇠가 마주치는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새로 벼려진 일본도, 일본 전역에 깔린 철도 공사과정에서 폐기된 레일을 가공하여 보급한 군도(軍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영국군 호위병들도 머스킷을 겨누었다.

언제라도 칼이 번뜩이고 총알이 날아올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 그 첨예한 대립 중에 누군가가 사람을 들쳐 업은 채 옆을 태연하게 걸어 나갔다.

대한제국의 연구진들은 정화통을 통해 공급되는 적은 양의 공기로 숨을 헐떡이면서도 사람을 하나씩 들쳐 업고 있었다. 그리고 맨 앞에 있는 조일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업어! 업고 나가!”

다시 정화통을 결합한 조일준은 그나마 독가스의 영향이 적은, 높은 지역에 가지런히 놓인 생존자들을 가리켰다. 일본 장교들은 군도를 집어넣고 그 구조작업에 동참하였다.

제임스 호프는 그 뒤를 묵묵하게 따라갔다. 이윽고 독가스 안전지대까지 탈출한 사람들 모두는 두건을 벗어 던지고 신선한 공기를 빨아들였다.

“염병할. 그래도 조금 새기는 했네.”

조일준의 혀끝은 시안화카코딜의 독성으로 시커멓게 변색되어 있었다. 그 외의 연구진들도 눈물을 흘리거나 혓바닥의 색이 변하여 독가스에 조금씩 노출된 흔적을 보였다.

조일준은 평상시 실험에서는 안전한 정화통이라도 호흡이 가빠지면서 내부가 흐트러진 것이라 분석하였다. 그 분석 결과를 수첩에 적는 동안 격한 분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귀축(鬼畜)들아! 네놈들이 정녕 사람이더냐!”

일본 장교가 다시 군도를 뽑아 들고 고함을 쳤다. 그리고는 방독면을 벗어 던진 제임스 호프에게 칼끝을 겨누며 나노리(名乗り)를 읊었다.

“나는 미야케 가문의 말예이자 보로서의 사관학교에서 교육을 이수한…….”

“이 멍청한 놈아! 그런 행동을 하기 전에 칼을 쑤셔야지!”

누군가의 암살에 성공한 먼 훗날과 달리 이 시대의 일본에는 옛 시대의 낭만이 살아 있었다. 당연히 암살 전에 자신의 이름과 적의 죄를 읊는 풍습도 있었고.

장교는 조일준에게 제지를 당해 칼을 다시 집어넣었다. 제임스 호프조차 상대가 자신을 위협하였다 생각할 뿐 암살을 시도했다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는 오히려 방귀 뀐 놈이 성내듯 조일준을 바라보고 말하였다.

“이게 뭔 짓입니까! 보호 장구를 착용했기에 망정이지 시안화카코딜 포격이 떨어진 적 진영에 함부로 들어가시다니요! 연구가 중요하다 해도 제정신이십니까!”

“그건 내가 할 소리인데. 애초에 살충제 사용의 전제조건을 어겨놓고 뭔 소리를 하는 거요?”

“살충제 사용의…….”

제임스 호프는 조일준에게 살충제를 받을 때 이야기했던 전제조건을 떠올렸다.

기본적으로 페스트 전파를 막기 위한 방제용도, 남경 일대 수풀에 서식하는 쥐를 죽이거나 기타 곤충을 죽이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는 물건이다.

여기에 굳이 점령할 필요가 없는 적의 소규모 진지에 제한적으로 사용할 것이라 협의를 보았다.

조일준은 천연덕스럽게 자신이 걸어 나온 진영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소규모 진지 포격으로 제한적인 인체 노출 결과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지. 그 과정에서 독성 물질에 대량으로 노출된 사람들을 통해 연구 결과도 입수하고.”

“그…… 그것이 말입니다. 저희가 진영을 잘못 확인한 것 같습니다.”

제임스 호프는 부끄러운 듯이 어떻게든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조일준은 몇 걸음 앞으로 나서며 지금까지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시안화카코딜 탄두를 발사 가능한 대구경 암스트롱 포의 포성이 최소 백여 발 이상은 들린 것 같더군. 그 모든 탄두를 한 진영에만 쏘는데 진영을 잘못 확인해?”

“포병들에게 연락이 잘못 닿은 것 같습니다.”

“그럼 영국군은 어떤 군대라는 거요? 진영 정찰도 못 해, 포병 통솔도 안 돼. 실전 경험조차 없는 일본군과 비교해도 그리 나은 군대가 아닌 것 같은데?”

영국군 장성들은 조일준의 발언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과학의 안전과 도덕을 강조하였으며 제자들 대다수가 과학계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시안화카코딜은 곤충을 비롯한 생물을 죽일 수 있는 화합물이지. 이걸 전선에서 사용한 순간부터 피해자가 생길 것이라 예상은 했었는데.”

조일준은 아직도 고통을 겪는 생존자들을 가리키며 증오심을 가득 담아 말하였다.

“이런 용도로 사용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 댁들은 대체 어떤 족속들인지 모르겠군.”

“조 총장님! 의식을 찾은 생존자가 증언을 합니다!”

제임스 호프는 당장에라도 조일준을 때려눕히고 모든 증거를 압수할 생각을 하였다. 아니라면 총으로 쏘아 죽이고 눈먼 유탄에 맞았다는 거짓말을 할까 고민하였다.

그러나 적 진영에서 나온 순간부터, 정확히는 영국군과 접촉한 순간부터 모든 정황증거를 덮을 방법이 없었다.

생존자와 대화를 나누고 돌아온 조일준은 으르렁거리듯 말하였다.

“놀라운 증언이구려. 진영에 있던 사람의 태반은 반란군이 아닌 강제로 징집된 남경의 시민들이고 총도 아닌 창칼에 의지하여 예비대로 편성되었다던데.”

조일준은 방호복의 일부인 장갑을 한 손에 쥐고 제임스 호프에게 던지려 하였다. 그러다 화를 억누르듯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내려놓고 말하였다.

“내 나이가 십 년만 젊었다면 권투로 결투신청을 해 묵사발을 내버렸을 거요.”

“일단 진정하시지요. 진정하고 좀 더 논리적으로…….”

“그러겠소. 이번 사건에 대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의 회의를 열어봅시다.”

일종의 공개처형에 가까운 회의가 시작되었다. 막 상해 조차지에 상륙한 다국적 연합군의 지휘관도 모인 임시 작전회의가 저녁부터 시작되었다.

지금까지의 전황 분석과 오늘 벌어진 전투의 결과물까지 보고를 마치자 해가 저물어가기 시작했다. 보고가 끝난 뒤 조일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제 제기를 시작했다.

“적진 정찰을 제대로 하였는지 알 길도 없고. 내가 군사적 지식은 그리 많이 배우지 않았지만 저런 저지대에 사람을 대충 밀집시켜 놓고 있다면 제대로 된 병사가 아닐 것 같은데?”

“그래도 수천에 달하는 적군이 밀집해 있었습니다.”

“정찰을 했다면 더 말이 안 되는군.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포격이 떨어질 당시까지도 별다른 제지가 없어서 잠을 자거나 마작을 즐기기까지 하였다는데.”

제임스 호프도 해당 진영에 제대로 된 군인이 없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영국군은 남경 공략 이전에 최대한 많은 공포를 퍼트리기 위해 사람이 많은 지역에 독가스를 퍼부었다.

결국 이번 포격은 전략적으로 가치가 부족한 데다 사용 전제조건마저 어긴 행동이었다.

조일준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그나마 합당한 사용방법을 이야기하였다.

“내가 만들어낸 화합물이 안구와 호흡기에 격심한 통증을 유발하긴 하지, 그걸 적의 소규모 매복을 쫓아내는 정도로 활용한다면 모를까.”

영국군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조일준은 작전 지도를 손가락으로 계속 두들겨 아예 흠집을 낸 다음 영국군의 독가스 사용을 다시금 비난했다.

“차라리 사람을 깔끔하게 죽이는 가스 병기를 덮어놓고 사용하면 끔찍하더라도 효율을 추구하는 걸로 이해할 수 있어.”

“그런 병기가 있다면 제공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이 머리통에 똥만 쳐 들어간 놈들아! 아무 전략적 가치도 없는 장소에 수백 발의 포격을 퍼부어! 네놈들은 사람을 벌레로 보나?”

조일준의 주먹이 제임스 호프의 얼굴을 향해 날아가려다 궤도를 틀어 탁자를 내리쳤다. 탁자 위의 물건들이 두서없이 흐트러지고 막사 안에는 침묵만이 맴돌았다.

이미 박현상의 서신으로 이런 상황을 알고 있던 조일준은 입술을 우물쭈물하며 표정을 관리하였다. 그리고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어 표정을 숨기고 비통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난 과학의 발전과 모든 사람의 평안을 위해 인생을 바쳤지. 그 과정에서 사리사욕도 추구하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사리사욕은 추구하지 않았어.”

그의 일생을 요약할 수 있는 말이었다. 사전에 차단한 헤로인의 해악은 몰라도 유럽 전체를 떠들썩하게 한 방사능의 해악과 관련된 연구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조일준이 내뱉은 사리사욕이라는 말조차도 불합리하였다. 과학을 발전시키며 수익을 챙기긴 했지만 그 상당수를 동료들은 물론 국가를 위해 헌납하였다.

그런 숭고한 정신을 가진 위대한 과학자가 영국군의 패악 앞에서 고뇌하고 있었다. 대한제국군의 대표인 양헌수도, 일본군을 대표하는 참모진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다.

“처음에는 좀 이상하게 생각하긴 했었지. 굳이 살충제가 필요할까? 하지만 먼 나라에 원정을 와서 우리 대한제국을 대신해 피를 흘리는 영국군의 안전을 위해 모든 물자를 긁어왔다고!”

대한제국군은 영국군의 행동을 존중하였다. 그들도 전공을 얻고 더 많은 이권을 얻어내기 위해 진군할 수 있었지만 상대에 대한 존중을 위해 이를 억누르고 자제하였다.

그 결과는 선의로 보내준 물건을 악의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되돌아왔다. 조일준은 더 이상 연기가 아닌, 정말로 분노를 담아 목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그 살충제를!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고 끝내 죽게 만드는! 죽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물건을 병사도 아닌 사람들 머리통 위에 처뿌리고 있어! 니들이 사람이냐!”

“저희의 미흡한 전략전술에 대해 다시금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전략이고 전술이고 나발이고! 전제 자체가 글러먹었잖아!”

막사 안을 밝히는 등잔에 어느새 나방이 날아들었다. 불길에 끌린 나방이 푸드덕거리며 등잔을 두드리자 조일준은 손으로 나방을 움켜쥐고 탁자 위에 내던졌다.

“네놈들은 이 나방이나 사람 목숨이나 매한가지로 보겠지. 다리를 하나하나 뜯어내고 날개를 잘게 쪼개고! 뱃가죽을 찢어발겨서 내장을 꺼내는 꼴 아니야!”

“저…… 저희는…….”

“믿어 달라고? 믿겠냐! 네놈들을 믿느니 반란군을 믿겠다!”

조일준의 연기는 마침내 순수한 분노가 되었다. 그 변화를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는 상황으로 본 제임스 호프는 동맹국 지휘관들을 둘러보았다.

그나마 직접 연관이 없는 프로이센, 네덜란드처럼 의구심을 품은 정도면 양호한 편이다. 장교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은 일본군은 벌레 한 줌을 입에 넣은 것처럼 증오심이 엿보였다.

대한제국군은 아예 시선을 마주치지도 않고 팔짱을 낀 채 등잔에 달라붙은 날벌레들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지휘관인 양헌수의 입에서 대답이 새어 나왔다.

“제 입장은 조 총장님의 의견과 다릅니다. 전쟁터에서는 어떠한 일이라도 벌어질 수 있고 불의의 사고도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포격 자체는 비판할 점이 아닙니다.”

“지금 뭐라 하였소?”

영국군 다음으로 지분이 큰 대한제국군에서 영국군의 편을 들기 시작하였다. 제임스 호프는 그 모습을 보고 그나마 같은 편이 생겨난 것에 감사하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조일준이 양헌수를 실험실에서 폭약을 만들어 불장난을 치는 미치광이를 본 양 쏘아보았다. 그러나 양헌수는 그 눈빛을 태연하게 받아넘기며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였다.

“적진이 지나치게 튼튼할 경우, 현재 작전 계획에 의거하여 일반적인 포격으로 타개할 수 없을 경우, 혹은 여러 불순한 사항으로 인해 문제가 벌어질 경우에는 할 수도 있습니다.”

양헌수는 영국군의 전략을 비판하기 위해 편을 들어준 것이었다. 그는 제임스 호프에게 시선을 돌리고 질문을 시작하였다.

“그럼 여쭈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총 네 번의 시안화카코딜 포격을 하였는데 제가 말씀드린 대로 돌파가 불가능한 적의 방어진을 만난 적이 있습니까?”

“엄청난 피해를 예상할 수준이기는 하였습니다만.”

“제가 바보로 보이십니까? 첫 전투는 그렇다 치고 나머지 세 번의 전투에서 적의 진영을 감안할 때 정석적인 돌파작전을 벌여도 약간의 손실만 발생할 겁니다.”

양헌수는 철저히 군사적인 입장에서 상황을 분석했다. 영국군이 비록 적의 핵심 거점을 붕괴시키는 이득을 취했어도 애초에 포병 전력이 더 우월한 상황이다.

진격 속도가 늦어지더라도 차근차근 포격을 날려 적을 무력화하였다면. 정석적인 방법을 택하였다면 약간의 손해만 입을 뿐 전선을 계속 밀고 나갈 수 있었다.

여기에 양헌수는 기존 작전지도를 보여주었다. 이 지도에는 애매한 장소에 예비대로 배정된 대한제국군. 아예 후방의 치안 유지나 담당한 일본군이 표현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우리는 동맹군 아닙니까? 필요하다면 대한제국군이 전선에 나서서 피해를 분담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전선 우선권과 작전 총괄 지휘권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네, 옳은 말씀이지만 그 작전이 어긋날 경우 항명도 가능합니다. 지금까지는 영국군의 의견을 존중하여 이치에 맞지 않는 작전을 감내했습니다.”

상해 조차지를 중심으로 삼은 전선은 영국군이 우선권을 가질 뿐 동맹군도 함께한다. 그러나 오로지 영국군만이 최전선에서 적을 격파하는데 몰두했다.

완벽한 보복전을 펼치고 전과를 독차지하겠다는 영국군의 전제조건이 문제로 부각되었다. 양헌수는 제임스 호프에게 시선을 유지한 채 엄숙하게 선언하였다.

“도덕적 기준 이전에 전략적 기준 자체가 틀어진 꼴이 아닙니까. 이 태도를 유지하고 독가스 탄두를 살포하는 행위를 중단하지 않으면 우리 대한제국군은 상해 조차지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래도 동맹 아니오! 청나라 반란군을 격파하기 위한 동맹!”

“동맹은 서로 의지하고 존중하는 사이입니다. 그저 진격에 눈이 어두워 조 총장님이 심혈을 기울인 약품들을 헛되이 쓰시다니요?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살상을 저지르시다니요?”

지금 영국군의 태도는 상전의 태도도, 동맹의 태도도 아닌 마음대로 행동하는 제3의 세력에 가까웠다. 양헌수는 여기에 또 다른 문제를 걸고넘어졌다.

“이 사실이 공표되면 본국에서도 난리가 날 것 같은데요. 농부들의 병충해 방지와 창고 소독용으로 사용될 물질로 전쟁터에 끌려온 농민들을 죽이면 어떤 답이 돌아오겠습니까?”

양헌수는 더 이상 이야기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다시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이고 다카모리도 양헌수에게 동조하는 발언을 하였다.

“동맹이라 하면 서로를 존중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서로를 도와야 합니다. 댁들과 같이 동맹을 무시하고 멋대로 날뛰는 세력은 우리 또한 존중할 수 없습니다.”

남경 공략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동맹의 두 축이 떨어져 나갈 상황이다. 여기에 시안화카코딜 탄두를 사용하지 못하는 꼴이 되어 적의 사기가 다시 솟구칠지도 모른다.

제임스 호프와 영국군 장성들은 침울한 표정으로 동맹이었던 두 국가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받아넘긴 조일준이 나름대로 결론을 내려 냉정한 말로 답을 내놓았다.

“이틀을 드리겠습니다. 이틀 이내에 시안화카코딜 사용 중단과 관련된 결론, 여기에 동맹군으로서 참전한 국가들의 전선 배분과 관련된 결론을 내려주시지요.”

조일준이 가장 먼저 막사 밖으로 나갔고 그다음으로 양헌수와 대한제국군 장성들이, 그 뒤로는 일본군 지휘관들이 빠져나갔다.

곧이어 텅텅 빈 막사 안에서 한숨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인구가 100만 명에 달하는 초거대 도시 남경을 눈앞에 두고 제임스 호프가 다른 장성, 마이클 시모어에게 푸념하듯 질문을 던졌다.

“적의 추정 병력은 얼마나 되는가?”

“정찰병과 탈출한 청나라 시민들의 보고에 의하면 추산 오만 명 이상입니다.”

“미치고 팔짝 뛰겠군. 후방 담당도 사라지고 예비대도 사라지면 세포이 만 명 내외와 해병대 병사 삼천여 명 정도로 저 거대한 성을 공략해야 하잖아?”

해답은 하나였다. 의회에 보고를 올리고 모든 잘못을 인정하며 시안화카코딜 탄두를 폐기한다. 이후 남경 공략을 다른 나라의 군대와 함께하는 것이다.

이는 영국이 추구하던 영광과 거리가 멀었다. 조-청 전쟁의 굴욕을 되갚기 위하여 오로지 자신들만의 힘으로 청나라의 대도시 남경과 이를 점거한 반란 세력을 토벌하려 하였다.

하루 내내 고민한 제임스 호프에게 의회가 먼저 전신을 보내왔다.

그 내용은 그나마 영국군이 다른 나라의 군대와 함께 발을 맞출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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