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318화 (284/345)

318화

24장 11화 흉악한 족속(1)

조일준은 상해 조차지에 방문하면서 영국군의 요구사항을 모두 반영하였다.

살충제로 사용되는 비소와 살서(殺鼠) 전용으로 사용되는 사이안화 연막, 청산이라 명명된 물질 두 개를 준비했다. 여기에 또 다른 선물을 잔뜩 가지고 방문하였다.

짐수레 수십 개에 나뉘어 담긴 화합물과 연구진이 함께 방문한 것이다. 영국군 장성들은 조일준의 방문을 확인하고 즉각 환영 인사를 건넸다.

“닐슨 조 총장님께서 직접 방문하실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요.”

“위험물질을 이렇게 많이 보냈는데 어느 정도 관리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영국군 장성들은 난처한 표정으로 조일준과 휘하 연구진을 훑어보았다. 위험 물질을 사용하다 보니 어느 정도 지위 높은 사람이 올 것이라 예상했지만 지나치게 높은 사람이다.

굳이 이 자리에 올 필요가 없는 조일준은 물론이요 연구진들이 대부분 교수 자리는 역임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 어색한 분위기 속에 조일준이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말하였다.

“이토록 많은 비소와 청산 화합물을 한 자리에서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예상외의 연구 자료를 획득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욕심이 생겼지요.”

“실례지만 여기는 연구실이 아닌 전쟁터입니다. 여기서 연구를 진행하신다니요?”

“연구 자료가 눈앞에 굴러다닐 것 같은데 왜 방 안에만 돌아다닌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까지 비소와 사이안화 화합물의 독성 측정은 연구실에만 진행했었는데.”

조일준은 상자를 내려놓더니 저 멀리 배치된, 이중 밀폐된 비소 화합물 용기를 가리켰다. 그리고는 흥미를 가득 담아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하였다.

“이번에는 벌판의 여러 생물종의 다양한 독극물 누출 결과를 연구할 수 있는 좋은 기회 아닙니까?”

“그러시면 저희가 전해주는 보고를 들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만.”

“댁들은 유독성 화합물에 대한 지식이 없지 않습니까. 기껏해야 본토에서 건너온 장교 정도만 알고 있는 데다 연구진도 없는 상황인데요?”

조일준은 상자를 열고 기묘한 도구를 보여주었다. 얼굴 위를 뒤덮는 두건인데 석영으로 만든 튼튼한 렌즈를 달아놓았고 입에 숨구멍이 나 있었다.

그는 머리 위에 두건을 쓰고 거의 머리통 크기의 쇠 상자를 숨구멍에 결합하였다. 활성탄을 비롯한 다중 필터를 통해 공기가 흡입되며 습- 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에 두툼한 천위에 고무를 덧댄 방호복을, 예전에 라듐을 농축할 때 입은 복장을 다시 입었다. 장성들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표정으로 조일준을 쳐다보다 말하였다.

“그 기괴한 복장을 입고 전선에 들어가실 작정입니까?”

뭔가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숨구멍에서 쇠 상자를 분리한 조일준은 그 좁아터진 구멍으로 신선한 공기를 잔뜩 빨아들인 다음 말하였다.

“비소와 사이안화 화합물에 노출된 생물체의 반응을 제대로 살펴봐야지요. 노출량이나 노출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관측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장성들은 조일준의 의도를 모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과학적 발견을 위해 솔선수범하는 모습이라 생각하고 그를 비롯한 연구진에게 경고의 말을 전하였다.

“그러하면 각서 하나만 써 주시지 않겠습니까? 질병에 걸리거나 눈먼 유탄에 맞아도 자기 책임이라 해 주시면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습니다.”

“안 써도 될 것 같습니다만.”

두건을 벗은 조일준의 눈과 원정군 사령관 제임스 호프의 눈이 마주쳤다. 그가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조일준이 논리정연하게 주장을 앞세웠다.

“제가 알기로 두 화합물의 용도는 페스트 방제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영국의 동맹국 학자의 입장으로 전선을 시찰하고 방제 성능을 확인하는 사람이지요.”

“그래도 화합물을 뿌린 장소에 적들이 숨어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시안화카코딜은 지독한 통증을 불러오는 화합물인데 이걸 사람이 어떻게 버팁니까? 다리를 못 쓰는 사람이면 모르겠는데 멀쩡한 병사는 바로 달아날 것 같은데요.”

제임스 호프는 자신이 보낸 전신 내용을 되새기며 눈을 굴렸다. 그러자 조일준이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로 말했다.

“시안화카코딜이 살포된 장소를 탐사하기 위한 장비도 마련해 뒀습니다. 가장 위험한 장소는 바꿔 말하면 적에게서 가장 안전한 곳 아닙니까?

영국군 장성들은 귓속말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조일준을 강제로 쫓아내 보았자 의심만 살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또한 조일준이 아무리 연구에 미쳐도 최전선까지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였다. 이들은 적당한 연구 과제를 던져주듯 합의점을 찾는 척하였다.

“알겠습니다. 보내주신 화합물의 농도 확인을 위해 몇 번의 살포로 감을 잡아보도록 하지요.”

영국군은 그 이후 며칠 동안 전선 후방에서 시안화카코딜 ‘살충제’를 실험하였다. 그 과정에서 대한제국군을 예비대로 분류하고 일본군을 후방 치안유지 부대로 콕 박아두었다.

일종의 텃세이자 조일준이 멋대로 전선에 들어가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예비대로 분류된 대한제국군은 전선 돌입 대신 적의 돌발적 진격 경로 방어를 빌미로 엉뚱한 장소에 배치되었다.

반면 조일준이 향한 곳은 대한제국군이 아닌 일본군 진영이었다. 그는 마차에 탄 채로 박현상이 보낸 편지를 다시 확인하고 이를 품속에 접어 넣고는 혼잣말을 하였다.

“네가 원한 건 영국군 본진에 참관인으로 머무르면서 독가스 사용을 제지하라는 말이겠지. 그래 봤자 나 몰래 적당히 사용한 다음 탄두가 섞였다고 오리발을 내밀게 분명하잖아.”

조일준은 제임스 호프를 비롯한 영국군 장성들의 표정을 보고 이들의 대응을 꿰뚫어 보았다.

영국군의 태도를 보면 실수라는 둥, 선제 타격으로 벼룩을 미리 소거했다는 둥의 여러 변명을 일삼을 것이 확실하다.

“다산 선생님은 나에게 양심을 가르치라 하였지. 그럼 양심을 가르치기 위해 놈들이 만들어낸 지옥에 직접 뛰어드는 수밖에 없지 않아?”

조일준은 정약용의 유언을 되새기며 세상에 양심을 가르치기 위한 행동에 돌입하였다.

일본군 진영에 마차가 멈추자 후덕한 체격을 되찾은 사이고 다카모리가 그를 맞이하였다.

“조일준 총장님 아니십니까! 이런 누추한 장소에 어인 일로 오셨는지요!”

“반갑습니다. 사이고 준장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영광이라니요! 제가 더 영광이지요! 그리고 준장이 뭡니까!”

사쓰마 번의 대표 정치가가 된 사이고 다카모리는 파견군 임시 사령관으로 군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는 조일준을 진영 내부로 안내하며 질문을 퍼부었다.

“총장님께서 방문하신 이유를 영국군을 통해 이미 알아두었습니다. 듣자 하니 전선에 전염병이 퍼질 때를 대비해서 살충제를 가져오셨다 하던데요.”

“그것도 있고 살충제의 효과를 확인하고 싶기도 하지요. 학문의 발전은 관측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그 관측을 이런 전쟁터에서! 과연 가쿠슈인의 종주(宗主)께서 스승으로 모시는 분이시군요.”

일본은 사관학교 제도는커녕 설립을 준비하는 국가이다. 그런 국가이다 보니 군사적인 지식을 쌓기 위해 외국에 유학을 보내 군사 제도를 교육받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 외에도 대한제국에 예비 사관생도를 보내 교육을 시켰지만 더 많은 수의 유학생들, 가쿠슈인에서 이하응의 교육을 받은 장교들이 있다.

사이고 다카모리도 이 점을 눈치채고 조일준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조일준이 경례를 하는 장교들을 가리키며 요청 아닌 요청을 하였다.

“최전선 인근에 살포할 시안화카코딜 화합물의 효과를 검증하려 합니다. 그런데 대한제국군에는 제 인맥이 별로 없고 여기 일본에 제 사손(師孫 - 제자의 제자)들이 많이 있더군요.”

“장교가 필요하시다는 말씀이십니까. 이것 참 곤란한 일인데요.”

사이고 다카모리는 말끝을 흐리며 난처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자 조일준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총기를 손질하는 병사를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지금 이 군대는 영국군의 텃세로 후방 중의 후방에 틀어박힌 꼴 아닙니까. 대한제국군은 예비대로 편성되어 항시 대기 상태이지만 여기는 전쟁터가 아니고 훈련장 같군요.”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군요. 그러하면 장교 가운데 가쿠슈인 출신을 마흔 명 정도 편성하여 호위로 붙여 드리겠습니다.”

둘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였다. 조일준은 대한제국 사관학교 출신이 아닌, 가쿠슈인을 나와 최소한의 과학적 지식을 함양한 호위 병력이 필요하였다.

사이고 또한 파견군 사령관으로서 최소한의 성과를 거둬야 했다. 복수는커녕 영국군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후방 치안유지나 하는 신세는 바라지도 않았다.

곧이어 사십여 명의 장교가 소집되었다. 스승의 스승을 만나게 된 장교들은 조일준을 존경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내 제자의 제자들이라니. 이런 제자들이 전쟁터에 끌려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제자라 말씀하시니 저희가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가쿠슈인에서 고작 이 년 동안 학문을 이수하고 구주에 유학을 다녀온 말예(末裔)에 불과합니다!”

조일준은 제자들을 슬쩍 훑어보며 주변을 돌아다녔다. 그리고는 이들에게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말하였다.

“자네들은 기본적인 과학 지식을 가지고 있지. 그런 점에서 내 일을 좀 도와줬으면 하는데?”

며칠 동안 조일준과 과학자들의 호위를 담당한 장교들에게 방독면 사용법이 강의 되었다. 그동안 영국군은 남경으로 한 발짝 진격하여 다시금 공세에 돌입하였다.

“진영을 나눠 봤자 가장 큰 진영이 노출되어 있잖아! 시안화카코딜 탄두 발사!”

풍운산도 나름 대처를 내놓았다. 세 번에 걸친 독가스 공격으로 공포에 사로잡힌 태평천국군은 단순한 포격에도 탈영병이 속출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나름 꾀를 내어 독가스라는 신병기에 대처했다. 독가스가 오래 머무르지 않는 고지대에 병력을 분산시켜 포격에 노출시키지 않는 것이 첫 대처이다.

두 번째 대처로 독가스 포격을 유도하기 위해 남경에서 막 징집한 시민들을 무턱대고 저지대의 커다란 진영에 몰아두었다.

그 희생양들에게 죽음의 비가 쏟아졌다. 첫 포격에 태평천국 간부들이 모조리 도주했고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한 병사들이 뒤늦게 도주에 동참했다.

“병사들이 도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내버려 둬! 적의 본영에 들어가는 건 독가스의 효과가 떨어진 두 시간 뒤다!”

영국군 장성들은 독가스 병기의 운용 방법까지 확인하였다. 독성, 잔존 시간 그리고 살상력 등의 정보를 토대로 전략을 구성하였다.

적의 생존자는 굳이 건드리지 않는다. 이는 더 많은 병사가 공포를 퍼트릴 수 있게 만드는 전략이며 혹시나 풍향이 변할 경우 아군이 독가스에 노출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그 대신 주변의 자잘한 병력을 소탕하면서 전선을 밀어내고 상대의 재탈환을 방지한다. 이 과정을 하나하나 지휘하던 제임스 호프에게 믿기지 않는 보고가 들어왔다.

“소장님! 대한의 연구진들이 호위 병력을 이끌고 폭심지로 들어갔다 합니다!”

“지금 뭐라 했나! 병사들이 어디서 튀어나왔어!”

제임스 호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보고를 올린 장교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장교는 말을 더듬거리며 허둥지둥 추가 보고를 하였다.

“후, 후방에 있던 일본군 장교들이 호위 역할을 자처하였습니다! 저희 본대 사이에 있다가 갑! 갑자기!”

독가스 탄두가 떨어진 장소는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죽음의 지대다. 영국군은 얼마나 많은 병사가 퇴각하였는지 관측병을 두는 행동만 하였다.

조일준은 영국군의 관심이 사라진 사이 적 진영 한복판으로 들어간 것이다. 포병 장교는 투하된 독가스의 양을 가늠하고 탄식하였다.

“미치겠군. 그 진영에는 시안화카코딜 탄두를 이백여 발 가까이 발사했는데!”

“어떻게 할까요? 적의 잔존 병력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만.”

장성들의 눈에 조일준이 남기고 간 방독면과 방호복 그리고 정화통이 보였다. 본영에 독가스가 누출될 경우 대처를 위해 사용하라면서 남긴 물건이었다.

“닐슨 조 정도 되는 과학자라면 독가스를 확실히 막아낼 수단을 갖추긴 했을 텐데.”

“그래도 눈먼 유탄에 맞아서 죽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눈먼 유탄? 지금 세포이 병력들이 주변 전선을 모두 밀어내고 있는데?”

제임스 호프는 초조한 표정으로 엄지손톱을 물어뜯었다. 독극물 천지에서 돌아다니는 사람을 끌어내려 해도 독가스가 걷히기 전까지 병력을 투입할 수 없다.

그의 눈에 조일준이 남긴 방독면이 다시 들어왔다. 이 상자를 남긴 의도는 자신이 만들어낸 지옥으로 들어오라는 도발처럼 보이기까지 하였다.

장성들과 참모진은 조일준의 뒤를 따라 적진으로 들어가기 위해 방독면을 집어 들었다. 그가 두건을 덮어쓸 무렵 조일준은 이미 태평천국군의 진영 인근에 도달하였다.

“총장님, 육안으로 관측한 결과 적의 움직임은 없습니다. 퇴각한 것 같습니다.”

“독가스 연기는?”

“간헐적으로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마치 물안개 같군요.”

방독면과 방호복을 착용한 60여 명의 사람들은 서로의 표정도 알아보지 못한 채로 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들은 조일준이 알려준 방독면 사용법대로 장구를 점검하였다.

“이상 없습니다, 예비 정화통도 이상이 없습니다.”

“더워 죽겠습니다. 이상 끝.”

일본군 장교들은 적의 진영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다며 흥분한 눈치였다.

지금의 일본군은 영국군이 자신들의 공훈을 앞세우는 군대요, 자신들을 못 미더워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리 나쁜 이들이 아니라 생각했다.

반면 조일준과 연구진들은 앞으로 자신들 앞에 펼쳐질 참상을 상상하며 후덥지근한 방호복 내부에서 등골이 서늘해질 지경이었다.

마지막으로 조일준이 망원경을 건네받아 태평천국군의 진영을 확인하였다. 그리고는 오른쪽 팔을 치켜들고 주먹을 쥔 다음 말하였다.

“좋아, 정화통 결합 확실히 하고 이상한 냄새가 심해지면 정화통을 즉각 교체해. 아마 저 정도 가스 농도라면 정화통 한 개당 십오 분 정도 버틸 거다.”

“그동안 뭘 해야 합니까?”

“양심을 찾아야지. 돌입하자마자 사진 찍을 준비해.”

마지막으로 정화통을 결합한 연구진과 장교들이 독가스가 피어오르는 진영 한복판으로 나아갔다. 총기를 쥔 장교들이 주변을 호위한 채 사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진영 내부는 무질서한 퇴각으로 병장기는 물론이요 화약통까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일본군 장교들이 구석구석을 확인하며 이상 현상을 찾기 위해 사방을 확인하였다.

그러던 중 한 무리의 장교들이 한 자리에 멈추어 격렬한 수신호를 보냈다. 조일준이 다가가 확인해 보니 사람 여럿이 구덩이에 뒤엉킨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커헉! 억! 살려, 살려!”

고농도의 시안화카코딜에 노출된 피해자는 피눈물을 흘리며 경련하고 있었다. 시커멓게 변색된 입과 혓바닥, 그리고 고통으로 인해 불거져 나온 핏줄과 힘줄들이 꿈틀거렸다.

조일준은 검지와 중지를 까딱거려 사진기를 가져오라는 명령을 하였다. 30초의 노출 시간을 가지는 습판(濕板) 사진기가 피해자의 모습을 담자 조일준의 손이 움직였다.

조일준의 손에 들려 나온 피해자는 장교들에게 인계되어 거친 숨을 내뱉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오랫동안 독가스에 노출되어 거센 기침을 하며 피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질척거리는 핏물이 장교의 뒤통수에서 흘러내려 두건의 석영렌즈를 뒤덮었다.

피해자를 바닥에 내려놓자 마치 살아있는 송장이 고통스럽게 피를 내뱉는 광경과도 같이 마지막 숨과 핏물을 내뱉었다.

그 광경에 질리다 못하여 공포가 치솟은 장교는 방독면을 쓴 채로 구토를 하였다.

“우읍! 웨에엑!”

정화통이 막히고 공포에 질린 장교가 두건을 벗어 던지려 하였다. 그것보다 빠르게 조일준이 나서서 새 두건을 씌우고 정화통을 꽂아주었다.

공포에 휩쓸려 사방으로 요동치는 눈동자가 안정을 되찾았다. 조일준은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인 다음 여전히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생존자들을 가리키며 명령을 내렸다.

일본군 장교들은 독가스에 노출된 피해자를 옮기고 사진 촬영을 보조하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조일준은 정화통에서 올라오는 기묘한 냄새를 느꼈다.

예상보다 빠른 소모속도에 놀란 조일준이 두 번째 정화통을 장착할 무렵. 저 뒤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제임스 호프가 보낸 영국군 장교들이 자신들이 만들어 낸 지옥에 발을 들였다.

그러자 지금까지 영국군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품고 있던 일본군 장교들이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섰다.

그 좁은 두건에 붙은 석영렌즈 안에서는 격렬한 분노를 담은 눈동자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작가의 말

조일준이 착용한 방독면은 이런 물건입니다.

억지로 만들어낸 녀석이라서 수명도, 성능도 매우 부족합니다.

그래도 분자량이 큰 시안화카코딜 정도는 막아낼 수 있습니다.

삽화318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Gas_mask#/media/File:Man_wearing_a_Zelinsky-Kummant_gas_mask.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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