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310화 (276/345)

310화

24장 7화 북경, 남경(1)

홍수전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일시 재정비에 돌입하였다. 참호를 뚫느라 고생한 병사들은 심신 모두가 완전히 지쳐서 후방 예비대로 배분하기로 합의하였다.

이제 북경을 지척에 두고 새 진영이 형성되었다. 망원경으로 보면 어렴풋하게 보이는 시가지를 슬쩍 훑어보고 있자니 태자가 심란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병사들의 몸은 몰라도 마음이 많이 상하였구려.”

“전우가 목숨을 잃고 수많은 사람을 살상하였습니다. 제아무리 굳건해 보이는 사람도 마음이 다치면 속절없이 무너지기 마련이옵니다.”

태자는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대에는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용어도 나올 시기가 아니지만 내가 은근슬쩍 개입한 전적이 있다.

대한제국군에서 과거 전훈을 분석할 때 이순신을 예로 들었다. 충무공이야 위대한 명장이라 마음의 상처를 딛고 일어날 수 있었지만 평범한 사람은 치유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신체적으로 멀쩡한 병사도 전투를 마치면 후방에서 대기조로 편성되어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하게 한다.

태자는 진흙에 물들어 버린 장구를 닦는 병사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옷에 물든 진흙이 다 빠져나올 무렵이면 마음의 평안을 되찾을지도 모르지.”

“생각보다 상처가 깊게 남는 사람도 있사옵니다. 제가 어릴 적에 공장 기계에 손이 절단된 사람이 있었는데 증기기관 소리가 들릴 때마다 발작을 일으키다 세상을 떠났사옵니다.”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구려. 당시 영길리에서는 사람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었지.”

청도부터 지금까지 고생한 병력 모두 후방으로 배정되었다. 대신 전투를 상대적으로 덜 치른, 요동 일대의 사단들이 전열을 담당하여 북경 공성전을 준비하였다.

그 과정에서 의외의 병력들이 도착하였다. 대다수가 슬라브계에 간혹 시베리아 원주민 특유의, 도드라진 광대뼈를 지닌 사람들이 뒤섞인 이들이었다.

“이런 세상에, 태상황께서 보내주신 선물이구려.”

“저들이 두 번째로 소집된 동티단이옵니까?”

“바로 보셨소. 아예 대대 단위로 훈련까지 마쳤다 하였지. 열정이 대단한 사람들 아니오?”

시베리아를 건너온 러시아 이주민들이 마침내 최전선에 투입되었다. 지금까지는 후방에서 지휘체계에 숙달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였다던데.

개중에 체격이 든든한 남자가 태자에게 먼저 절을 올리고 걸어 나왔다. 그는 온몸을 바짝 세우고는 경례를 한 다음 보고를 올렸다.

“드미트리 페트로프 중위 칠천이백 명의 동티단과 참관인원 구백여 명을 포함하여 태상황께서 내리신 명을 완수하기 위해 보고를 올립니다!”

“태상황께서 어떠한 명을 내리셨는가.”

“모든 적을 격멸하고 승전하라는 명입니다!”

이들에게서 차르에 대한 충성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의 아버지는 순조가 되었으며 앞으로 있을 전투는 새 아버지를 위한 헌화(獻花)나 마찬가지였다.

태자는 경례를 마친 악수를 나누었다. 거의 190㎝에 달하는 든든한 체격에는 수많은 고통을 겪은, 험난한 시베리아 벌판을 넘어온 경험이 보이기까지 하였다.

“앞으로 고생이 많을 거요. 태상황의 명을 건사하되 목숨을 소중히 하시오.”

“태자전하의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병사들의 분위기를 보니 동티단을 외국에서 들어와 태상황의 은혜를 입은 이들. 한마디로 일이 잘 풀리고 운수가 좋아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들 대다수는 쌍성자의 부대에서 훈련을 받고 순조의 지원까지 받은 인재들이다. 여기에 열의 또한 넘치다 못하여 먼 훗날의 일, 러시아 혁명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기에 합류할 이들이 또 있었다. 저 멀리 북쪽에서 흙먼지구름이 피어오르며 기병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몽골에서 건너온 기병들이 면담을 청하고 있습니다!

북경을 공략하기 위한 또 하나의 세력, 이미 북경 후방을 유린하고 있었을 외몽골 기병들이 보고를 올렸다.

이들은 태자에게 인사를 올리고 곧바로 나와 면담을 가졌다.

“그동안 정말 죽도록 고생했소. 후방은 아직도 셍게린첸이 두드리고 있고 우리는 잠시 보급도 받고 전황 보고도 할 겸 방문했지.”

“한 달 넘게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그래도 전과를 많이 거두신 것 같은데요.”

“놈들이 개수작을 못 부리게 북경에 꽁꽁 싸매두었소. 그 과정에서 밖으로 튀어나온 놈들을 모조리 족쳐버렸고.”

외몽골 기병은 셍게린첸과 합류하여 이 시대 기병이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전술, 돌파력을 이용한 우회와 후방 교란을 실시하였다.

“그리 많은 소득은 못 봤소이다. 놈들이 몇 번 당하니까 자라새끼처럼 웅크리더군.”

뒤늦게 도착한 짐수레에는 수급이 제법 많이 담겨 있었다. 파리가 들끓는 수급을 굳이 살펴볼 필요가 없어서 좀 더 숫자를 높여서 불러주었다.

“대충 살펴보아도 수급이 천여 개는 되는 것 같습니다.”

“죽인 놈들과 중상을 입힌 놈들은 그 세 배는 되지. 아무튼 할 만큼은 한 것 같소.”

“공훈이 너무나 대단해서 제가 감히 칭찬을 드리지도 못할 지경이군요.”

외몽골 장수는 내가 과도하게 칭찬한다고 생각하여 잠시 의심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권총을 잠시 쳐다본 다음 말하였다.

“공훈이라 함은 단순히 힘을 드러낸 것이 아니지요. 모든 면에서 지원한 총합계입니다.”

“나도 미국이라는 동네에 이주해서 돈이나 벌어뒀어야 하나. 그럼 고향에 남은 사람들에게 콩고물이 더 떨어졌을 것 같은데.”

상대가 너스레를 떨어댔는데 옳은 소리이기는 하다.

외몽골의 지원은 기병뿐만이 아니다. 외몽골에서 이주한 몽골계 미국인들이 보낸 지원 물품도 여기에 포함된다. 또한 미국 서부에서 일대 세력을 구축한 사람들에게 자부심을 일깨워줄 필요도 있었다.

아직 확정된 사항은 아니지만 이들의 사기를 더 높이기 위해 비공식적인 발언을 하였다.

“많은 지원을 해주셨는데 원나라의 부활 정도는 저희가 추진해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예케 몽골 울루스의 부활! 설마 이 대륙 전체를 준다는 말이오!”

그게 될 리가 있나. 상대가 내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인 것 같아서 진지하게 말하였다.

“에……. 그건 아니지요. 이 전쟁을 혼자서 다 치르신다면 응당 드려야 하겠습니다만. 대신 공훈에 비례하여 쓸 만한 땅 정도는 떼어드릴 수 있습니다.”

외몽골 장수는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와 기대를 가득 담아 눈을 빛냈다. 그래서 내가 예상하는, 몽골에 떼어주면 적당한 땅을 이야기해 주었다.

“더 많은 공훈을 세우면 북경 일대와 하북 근방 그리고 요서회랑 정도는 떼어드리지요. 칭기즈 칸이 살아생전 얻어냈던 영토에 조금 더 얹어 드리겠습니다.”

이 자리에 공친왕이 있었다면 날 죽이려 할 거다. 증국번이라면 분노해 자결할지도 모르고. 말 그대로 머리통을 뜯어내겠다는 소리와 마찬가지니까.

북경은 대한제국이 함부로 먹을 수 없는 땅이다. 일시 점령 정도야 가능하지만 명나라 시절부터 도읍이었던 땅이고 한반도 세력이 단 한 번도 지배하지 못한 영토이다.

외몽골 장수는 눈을 깜빡거리며 내 제안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그리고는 정신이 반쯤 나간 표정으로 자신들을 핍박한 만주족을 감싸고 돌았다.

“그런데 북경과 하북 일대는 암만 그래도 여진족 놈들의 땅 아닌가?”

“그 만주족이 지금 뭘 하고 있습니까? 왕공족을 자처하는 셍게린첸은 이미 몽골의 하수인이 되었고. 정신적 지주인 토번의 승려들은 여러분의 후원을 받는 이들 아닙니까?”

“그렇긴 한데 너무 이야기가 커져서. 우리는 내몽골 통합이면 되는데.”

그걸로 될 리가 있나. 북경은 장기 분열을 위해서 정신적 지주를 날려버릴 겸 다른 세력에게 주어야 한다. 이 땅을 한때 수도로 삼은 몽골이라면 약간의 명분도 있고.

우리가 실컷 털어버리고 남은 찌꺼기, 옮길 수 없는 건물만 가진 땅이라도 몽골에게는 살기 좋고 다스리기 좋은 땅이지.

“여러분의 기상은 어디 갔습니까! 족보를 합치시켜 옛 조상의 혼을 되찾고! 먼 나라로 이주한 친인척이 출세하여 지원을 보내는데! 그 드넓은 기상을 옛적에 팔아넘기셨습니까!”

내 도발에 상대도 당당하게 맞섰다. 그는 가슴을 펴고 날 바라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뭘 하면 되는가. 우리가 무엇을 해야 북경을 내어줄 명분이 생기는가.”

“아마 홍수전은 북경을 버리고 달아날 겁니다. 변방 오지로 도주하여 잔존 세력과 함께 다음 거사를 준비하겠지요. 그런 일이 벌어지면 추격하여 생포하십시오.”

“그 가능성을 뚫고 공훈을 세워야 우리에게 북경을 넘겨주겠다는 말이로군. 이거 대한 입장에서도 영 마땅치 않은 일이겠는걸?”

홍수전의 도주는 막기 힘들지만 꼭 일어나야 할 일이다. 놈은 언젠가 재기하기 위해, 드넓은 중국 대륙에서 도주를 거듭하며 대한제국의 힘을 빼놓으려 할 거다.

그 생각과 다르게 세계에서 가장 먼 거리를 주파할 수 있는 군대가 따라붙는 꼴이다.

수많은 파괴와 산발적인 전투가 벌어지면서 중국 대륙 내부에는 군벌들이 속속들이 생겨나겠지.

이 의도를 숨기기 위해 미안하다는 듯이 말하였다.

“가급적 북경에서 홍수전을 처단할 생각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놈이 날뛰면 훗날의 일을 해결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오히려 우리에겐 쉬운 일이로군. 생각해보니 셍게린첸 녀석을 앞세우면 그럭저럭 길이 열리고 사람들이 호응할 것 같은데.”

상대도 여간내기가 아닌지 셍게린첸을 앞세워 호응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말 그대로 중국 대륙을 들쑤시고 박살 내면서 진군하겠다는 뜻이었다.

외몽골 장수는 내 눈을 바라보고는 신뢰를 가득 담아 마지막 인사를 하였다. 나도 인사를 마치고 부관이 들어오기 전 대륙 전도를 보면서 쪼갤 계획을 세워두었다.

가장 먼저 산동반도는 대한제국이 접수한다. 여기에 북경과 요서회랑 그리고 주변 땅을 외몽골에게 떼어주고 옛 원나라를 복구시킨다.

기병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는 시대라 날뛰어 보았자 크게 확장하지 못한다. 여기에 강소성과 내륙 일부는 이홍장에게 넘겨준다.

그리고 영국과 일본이 상륙한 남경 일대는 영국의 식민지로 떼어준다. 영국은 불편해 하겠지만 광주에서 시작된 프랑스와 월남이 식민지를 떼어먹으면 알아서 알을 박을 거고.

“나머지 내륙과 사천성은 몽골 병사들이 추격전을 벌이면 혼란이 퍼지겠지. 그러면 홍수전의 죽음 이후 알아서 몇 개 정도의 국가가 형성될 거야.”

사천성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만주족 자치구 정도로 남겨줄 생각은 있다. 내륙 깊숙한 곳의 산맥을 넘는 곳이라서 수용소 역할을 하기 가장 적당하다.

계획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중국 대륙은 최소한 7개로 분열된다. 대한, 대한 휘하의 이홍장, 몽골, 프랑스와 베트남 세력, 영국 및 일본, 만주족 그리고 내부의 군벌 세력으로.

지도에 따로 표시하지는 않고 마음속에 대륙을 분배해 두었다. 잠시 뒤 새 진영에 전신이 연결되고 지금까지 쌓여 있던 전신이 도착하였다.

“박 후작님. 전신이 잔뜩 도착하였는데 상당수가 광주나 상해에서 보내온 전신입니다.”

“어서 가져오게.”

내 아래에서 각종 업무를 같이 처리하는 부관, 얼마 전 외부로 발탁된 오경석(吳慶錫)이 갓 번역된 전신을 가져왔다.

첫 서신은 프랑스 군대에서 보내왔는데 놀라운 내용이 있었다.

“석달개라는 젊은 장수가 활약을 한다. 고작 서른도 안 된 애송이라고?”

석달개는 태평천국 최강의 장수이며 통치에도 재능이 있는 인재이다. 단순히 싸움만 잘하면 모르겠는데 20살에 점령지의 치안유지와 징집까지 마친 천하의 인재다.

본래 역사에서 후반기 태평천국은 오합지졸의 집합체가 되어버렸다. 석달개는 이 생명줄을 연장해 준 일등 공신이고 그 대가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였다.

다만 내 지식이 부족해 석달개를 미리 찾아서 포섭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태평천국 안에서 석달개가 언제 튀어나올지 염려했는데 엉뚱하게도 프랑스의 앞잡이가 되었다.

“참 대단한 사람입니다. 일개 촌부가 어떻게 불란서의 장성들과 의견을 논할까요.”

오경석도 서신을 읽고 놀랍다는 듯이 말하였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을 한 다음 머리를 긁적이고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였다.

“하긴 촌구석에서 하릴없이 놀던 사람도 황제가 되는 동네이기는 하죠.”

“웅크려 있던 호랑이가 깨어난 셈이야. 기왕 좋은 이야기를 접수했으니 석달개라는 장수의 방안을 즉각 채용하지.”

“아직 검증되지 않은 방안 아닙니까?”

외부를 유연한 조직으로 만들기 위해 하급자가 안건과 관련해 의견을 자연스럽게 내놓는 문화를 퍼트려 두었다. 고작 일 년 차에 불과한 오경석도 이에 따라 합당한 반대를 내놨다.

“검증은 이미 되고 있군. 처음 일주일 동안 사백여 명의 중독자가 아편을 끊을 것이라 단언하고 철저한 관리에 들어가지 않았나.”

“그래도 청나라에서 가장 올바른 지역인 광주 사람과 우리가 있는 동네는 다릅니다.”

“사람 속은 다 비슷하지 않나. 난 가능할 것이라고 보는데.”

프랑스는 석달개를 통해 아편 중독자의 치료와 치안 안정 그리고 병사 훈련을 겸할 것이라 하였다. 이 전략은 채용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확실히 퍼트릴 겸 말해두었다.

“최소한 물자 보급과 치안 유지를 위해 틀은 마련해 둘 필요가 있어. 다음은 영국 서신이로군.”

일본군과 대한제국군을 후방에 두고 진격하는 영국은 보고서와 함께 물자 요청을 실시하였다.

<페스트가 만연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옵니다. 진군 경로에 살포하여 페스트 감염 경로를 차단할 목적으로 필요 물자를 구매하겠습니다.>

<대한제국에서 살충제로 쓰이는 비소 화합물과 쥐를 제거하기 위해 사용하는 사이안화(청산) 화합물을 가공하여 시안화카코딜을 만들어 주십시오. 수량은 얼마라도 좋습니다.>

논리적으로는 옳은 말이었다. 대한제국은 곡식 창고나 선박의 해충을 제거하기 위해 제한적으로 비소 화합물을 사용해 소독하고 비소를 물로 철저히 씻어낸다.

그래도 수습하지 못하면 밖에서 오래 노출되면 자연 분해되는 청산 연막을 뿌리기도 한다.

문제는 널리 쓰이는 화합물 두 개가 결합한 시안화카코딜이다.

인체 독성을 극대화하고 호흡기를 망가트리는 최초의 독가스이다. 이 가스를 무제한적으로 요청하는 항목에서 등골에 땀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내가 서신을 내려놓자 오경석이 서신을 들고 해석하였다. 그리고는 천연덕스럽게 말하였다.

“영길리는 제법 고생하는 것 같군요. 강남 일대는 기후가 온화하여 모기나 벼룩이 들끓기는 할 겁니다. 그러하니…….”

나도 독가스를 사용할 마음은 있었는데 어디까지나 최루가스로 아군 피해를 줄이고 적을 몰아낼 의도였다.

그러나 영국은 일준이 덕분에 더 발달한 화학공학 기술로 전선을 뒤덮을 생각 같았다. 부관은 영국의 협력 요청에 응하려 하였는데 내 입장에서는 미친 짓이었다.

“미친놈들 아니야. 아예 독무를 퍼트려서 모두를 죽이려 하는군.”

“독무라 하시면 옛적에 사용하던 병기 아닙니까? 석회에 물을 부어 피우면 연무가 생겨나 적들이 땅바닥을 뒹굴고 움직이지 못하는 병기이지요.”

이걸 왜 알고 있나 했는데 한양에서 유행하는 전투기교를 오경석도 하고 있겠지. 그의 부족한 정보를 수정하기 위해 상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전투 기교에서 사용하는 독무는 옛적 왜란에나 쓰이던 무기이지…….”

설명을 다 들은 오경석은 미친놈을 바라보는 눈초리로 서신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눈치를 보면서 의견을 내놓았다.

“감히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까 모르겠습니다만.”

“혹여나 우리와 아무 연관이 없으니까 지급하자는 말인가?”

“어떻게 아셨습니까?”

눈앞의 일만 따지자면 오경석의 말이 옳다. 우리는 정상적인 물건을 지급했고 이걸 영국이 이상하게 사용한 꼴이다.

그래도 내 장기적 계획에는 악영향을 끼친다. 오경석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서 그의 미간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주의를 주고 말하였다.

“그야 생각이 눈에 보여서 하는 말이지. 상세한 상황은 전선 보고를 들어봐야 알겠지만 영길리 군대가 독무를 계속 쓰면 당장의 일은 편해도 훗날의 일이 불편해질 걸세.”

아마 영국이 요청을 보내는 꼬락서니를 보면 한 번은 사용하고 효과가 좋아서 또 사용할 작정인 것 같았다. 물론 독가스 병기는 광신도를 상대로 아주 효과적인 무기이다.

뒤틀린 신앙심과 욕망으로 인한 사기를 단 한 방에,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을 선사하며 무너트리는 병기니까. 문제는 후환이다.

내 목적은 청나라를 쪼개고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이 첫째요, 쪼개둔 청나라에 자유와 평등을 불어넣어 통일 중국을 민주국가로 만드는 것이 둘째다.

“아마 독무를 마구잡이로 뿌린 영길리 군대는 병마를 퍼트리는 악의 화신이 될 걸세. 그다음에 영길리 병사들이 본토에서 물러나면 어떤 꼴이 되겠나?”

“그 작자들이 물러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불란서가 저렇게 강성한데 질 수 없다는 심정으로 땅을 꾸역꾸역 먹어치우고 분배할 것 같습니다만.”

“자네가 살아있을 때에는 물러나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자네가 죽고 난 이후를 생각하게. 우리 외부는 지금의 이득이 아닌 우리 후손을 위한 국제 관계를 만드는 부서 아닌가.”

오경석도 그제서 깨달았다는 눈빛을 비추었다. 나는 영국이 독가스를 사용하여 남경을 함락시키고 태평천국을 몰아낼 경우 벌어질 일을 예측하여 말하였다.

“변방의 적진이면 몰라도 남경 시내에서 항거하는 반란군에게 독무를 뿌려대면 시민들도 피해를 입게 되지. 그 상흔이 깊숙이 남아 먼 훗날까지 계속 퍼져나갈 것 같군.”

“이해는 하였습니다. 독무가 퍼질 때마다 사람이 고통스럽게 죽어 나가는 그 몰골에 사기도 깎여 나가겠지요. 그다음에는 후환이 남는다는 말씀이군요.”

“바로 보았네. 그렇게 되면 가장 부유한 남경 일대가 훗날 어떻게 되겠는가? 독무에 죽은 할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손자가 일어서며 난리가 날 걸세.”

이대로 영국을 내버려 두면 장기 분열 계획은 엉망진창이 된다. 심지어 장기 분열뿐만 아니고 반란 진압 자체도 헝클어트리고 있다.

지금은 반란군에게 보복하기 위해 전 세계 열강이 힘을 합쳤다는 명분이 있는데 이 명분을 영국이 날려버리고 있다.

물론 영국 입장에서는 제대로 먹지도 못할 대륙, 아예 효율성만 따져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생각도 가지고 있겠지.

결론은 하나다. 동맹국으로서 영국의 요청을 들어주되 꼭 필요한 장소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누군가의 권위로 찍어 내려야 한다.

“벗을 남경 전선에 보내는 수밖에 없겠군.”

“조 총장님을요? 조금 번거로운 일이나 박 후작님께서 직접 남경 전선에 내려가시는 것이 나아 보이는군요.”

“오히려 내가 가면 영길리에서 몰래몰래 독무를 사용할 거야. 그러나 녀석이 남경 전선에 들어가면 수많은 학자들이 함께 방문하였다 생각하고 눈치를 볼 것 같군.”

우리가 북경을 공략할 시기에 영국도 남경을 공략하겠지.

중국 대륙을 분열시키는 대전제를 달성하기 위해서 일준이가 좀 고생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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