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309화 (275/345)

309화

24장 6화 변방 세력(2)

본래 황하가 바다로 흘러가던 장소인 연운항은 그 어마어마한 토사로 끝없는 황토 삼각주가 펼쳐져 있었다. 그 황하는 이제 더 이상 흐르지 않고 항구가 자연스럽게 쇠락하였다.

항시 드나들던 배들은 수가 줄어들었고 큰 배는 더 이상 오가지 않고 있었다. 그 쇠락해 가던 항구에 대규모 선단이 쉴 새 없이 드나들며 물품을 하역하였다.

에도를 비롯한 곡창지에서 수많은 선박이 도착해 일본 양식의 곡식을 하역하였다. 대부분의 인부들은 원통형의 가마니를 옮기며 짜증을 섞어가며 말하였다.

“우리 곡식으로 청나라 놈들의 배를 불리라고? 의원 나리들 정신이 나갔나?”

“내 말이 그 말이야. 아무리 곡식이 넘쳐나서 누구나 떡을 찧어 먹고 우리들도 독한 술을 입에 대보는 상황이잖나. 그래도 이건 아니지.”

“차라리 돼지에게 먹이고 말지!”

인부들 가운데 큐슈 출신들은, 혹은 친인척이 예전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가마니를 대충 굴리거나 걷어차기까지 하였다. 그럴 때마다 번개 같은 고함이 들려왔다.

“네놈들은 곡식의 소중함을 모르느냐! 아니면 일을 허투루 하고 급료를 받으려 하느냐!”

황토색 군복을 입은 장교와 영관들, 대한제국에서 교육을 이수하거나 일본 내부에서 지위를 부여한 사람들이 이 과정을 관리하였다.

한 영관은 검은 줄이 아로새겨진 노란색 별 3개가 달린 완장, 대한제국군 기준 소령의 계급을 드러내며 사방을 뛰어다녔다. 그의 손에는 총이나 칼 대신 대나무 막대가 달려 있었다.

지나칠 정도로 말쑥한 데다 모자 아래의 머리에 머릿기름을 바르고 죄다 뒤로 넘긴 장발의 소령이었다.

그는 대나무 막대에 끌려 나온 쌀을 보면서 혀를 찼다.

“망할, 이것도 썩었고 이건 그냥 모래 덩어리고.”

그의 허리춤에 있는 폐기 판정 도장이 쌀가마에 쉴 새 없이 찍혔다. 그는 모자를 고쳐 쓰고 병사들에게 지시를 하달하였다.

“이거 폐기해. 다 상한 데다 겨와 모래가 섞인 곡식을 어디서 이렇게 보낸 거냐!”

“조금 상한 곡식까지는 괜찮지 않습니까?”

“내가 어린 시절 농부로 일한 전적이 있는데 그 기준에도 한참 못 미쳐! 어떤 놈들이야!”

100개를 검사했는데 45개가 불량품이었다. 한 지역에서 보낸 곡식의 절반 이상이 폐품이라는 말이라 소령도 짜증을 넘어 분노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쉴 새 없이 굴러가는 가마니 사이에서 사람을 찾고 문답을 거쳤다. 그리고 소령이 예상하고 있던 출처를 알려주었다.

“소령님. 원산지가 큐슈입니다. 전체 곡식의 일 할을 차지하는 지역이지요.”

“큐슈가 뭐 그럴 거라 생각은 했어. 문제 삼지 않게 적당히 폐기해 버려.”

여러 전공을 인정받아 소령 직위로 오른 히지카타 토시조는 바다로 쏟아지는 썩은 곡식을 보며 침을 뱉었다. 곧이어 물고기들이 몰려와 입을 뻐끔거리기 시작했다.

“전쟁에 참가했으면 상해에 파견된 녀석들처럼 나노리(名乗り - 통성명) 한 번 하고 적진으로 뛰어들어야 하는데. 썩은 곡식이나 가려내는 꼴이 뭐람.”

“그래도 안 싸우는 것이 제일 아닙니까?”

대한제국에 파견되었다 돌아온 큐슈 출신 대위가 토시조의 말을 받아쳤다. 그리고는 자신이 배운 군인의 의무에 대해 논하였다.

“제가 배운 대로라면 군인의 의무는 나라의 적을 격퇴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는 사실대로라면 군인의 의무는 주군의 명을 듣고 악적을 제거하는 것이지.”

한쪽은 옛 일본의 풍습과 프랑스에서 배운 사상에 얽매어 부귀영화를 추구하였다. 반면 다른 쪽은 대한제국의 가르침을 받고 오로지 적에 한정하여 적의를 드러내는 것이 전부였다.

첨예한 대립은 금방 끝났다. 어린 시절부터 치적을 쌓은 히지카타는 유학까지 다녀온 인재다.

반면 대위는 대한제국에서 이수를 마치고 소위로 임관하였으며, 해외 파병을 빌미로 계급을 숨 쉬듯이 두 개나 올린 사람이었다.

상대가 시선을 회피하자 히지카타도 더 이상 이견을 내놓지 않았다.

그는 중국 대륙으로 파견되기 직전에 벌어졌던 사태를 떠올리며 팔짱을 낀 채 중얼거렸다.

“의회에서 난동이 벌어지다 못해 에도 시내에서 집단 난투극이 벌어진 꼴이라니. 이번 전쟁에서 뭐라도 이득을 얻어내지 않으면 큐슈에서 어떻게 나설지 모르겠어.”

그가 마지막으로 근무하던 장소는 의회 인근의 부대였다. 대한제국에서 안건이 전해지고 큐슈와 곡창지대 출신 의원들이 정기 행사처럼 집단 난투극을 벌였다.

가까스로 안건이 통과되었지만 의회 밖에서도 또다시 난투극이 벌어져 이를 ‘사쿠라다 문밖의 난투’라고 칭하였다.

심지어 의장 이이 나오스케는 더 심한 꼴을 당했다. ‘큐슈의 의지’라면서 똥물 세례를 받고 몽둥이로 두들겨 맞았다.

당시 이이 나오스케를 구출한 히지카타가 웃음을 터트리자 대위가 신의를 가진 채 말하였다.

“이득은 대한이 알아서 잘 분배하지 않겠습니까?”

“대한 하나만 있는 게 아니잖나. 영길리에 불란서를 비롯한 열국이 우글거리는데 우리에게 이득을 떼어줄 수나 있을까.”

히지카타는 잠시 한양에 여행을 다녀온 기억과 프랑스에 군사유학을 다녀온 경험으로 두 국가를 냉정하게 비교하였다. 그리고는 두 국가의 격차를 이야기하였다.

“대한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것은 맞아. 그러나 서양의 열국들은 식민지를 포함하면 대한보다 땅도 넓고 인구도 많지. 아마 우리에게 이득을 떼어줄 여력이 없을 거야.”

대한제국의 발전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여기에 대한제국의 혜택을 온몸으로 받아 성장하는 일본의 발전도 남다른 수준이었다.

그러나 두 국가를 합쳐도 프랑스보다 좀 처지는 국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불만을 담은 표정으로 가마니를 막대로 휘적거리고 말하였다.

“거대한 청나라를 두고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은 기껏해야 조차지 할양이나 약간의 영토 할양 정도겠지. 그 일을 자네 같은 큐슈 출신이 어떻게 생각할지 이미 알고 있어.”

“청나라 놈들이 우리 발치에서 굽실거리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면 모르지요. 그렇지 않다면 절대 믿을 수 없겠군요.”

“가산을 탕진하고 거지꼴로 돌아다니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그러기나 할까?”

“정말 거지꼴이라면 손이 멋대로 움직일 것 같군요. 별 기대는 안 합니다만.”

히지카타는 대위의 눈빛을 바라보다 다시 쌀가마니를 확인하려 움직였다. 큐슈 출신들이 품은 증오심의 근원은 아편으로 인한 굶주림과 피폐함이었다.

쌀가마니를 찌르자 그 증오심의 증거인 쌀겨와 모래가 섞여 나왔다. 다시 폐기 도장을 찍어나가던 히지카타는 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산 너머를 바라보았다.

“드디어 오는군. 큐슈 출신들과 마찰을 안 일으키면 다행일 텐데.”

마침내 약속된 시일에 맞추어 이홍장의 병사들과 그에게 몸을 의탁한 백성들이 도착하였다.

머나먼 서쪽에서 다가오는 이들을 대한제국의 해군 병력들이 맞이하러 달려갔다.

* * *

기나긴 고난을 거친 이홍장의 휘하에는 3만여 명이 넘는 백성과 오천여 명에 달하는 병력이 함께하였다. 식량은 거의 다 떨어졌으며 옷가지도 대부분 해져 엉망진창의 몰골이었다.

“다 도착하는 데 시간이 제법 걸릴 것 같군요. 먼저 이 통령님께 임명장을 드리겠습니다.”

“서류 한 장보다 백성들과 병사들이 먹을 미곡이 더 중요합니다.”

황제의 임명장보다 양식을 찾는 이홍장의 모습에 해군 장성도 영웅호걸의 기상이 보인다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곧이어 묽은 죽이 준비되고 백성들이 임시 거주지로 배정되었다.

이홍장과 이한장 형제는 백성들과 병사들 모두가 식사를 하는 모습을 확인한 다음 다 식은 죽을 퍼먹었다. 모든 일이 끝난 다음 이홍장의 입에서 지금까지의 고난이 새어 나왔다.

“참으로 험난한 여정이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사람은 늘어나고 태평천국의 병사들이 남쪽에서 진군해서 지금까지 네 차례의 전투를 벌였지요.”

“얼마나 많은 놈들을 죽였습니까?”

“그리 많이 죽이지는 못하였습니다. 어림잡아 사만여 명 정도가 북상하였는데 놈들을 돈좌시키고 기세를 꺾은 뒤 바로 내빼기를 반복했지요.”

말은 쉽게 하였지만 함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훈련도 제대로 안 된 병사를 이끌고 기습과 퇴각을 하는 것 자체가 천부적인 재능이 필요한 일이다.

여기에 군량은커녕 보급도 기대할 수 없고 피난 대열에 합류한 백성들은 짐짝보다 못한 신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홍장의 세력은 오만여 명으로 늘어나 버렸다. 장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홍장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훌륭한 일입니다. 덕분에 북경을 공략하는 병력의 후방을 다질 수 있었고 태평천국의 증원을 차단할 수 있었지요. 감히 말씀드리니 소열제(유비의 시호)의 기상이 엿보이는군요.”

“저를 너무 칭찬하지 말아주시지요. 그나저나 직급이 높으신 분께서 존댓말을 하시니 제가 더 번거로울 지경입니다.”

장성의 견장은 태극기 문양 좌우에 별이 하나씩 있는 참장(參將 - 현 소장) 지위에 속했다. 종2품에 해당되는 고위 관료이나 이홍장에게 깍듯하게 존대를 하며 대접하였다.

반면 장성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금실로 수놓아진 효명제의 명령장과 임명장을 보여주면서 말하였다.

“이 통령님께서는 황제폐하의 특명으로 통령 지위에 임명되었습니다. 대한의 편제 기준으로 대장 지위와 대등하며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고작 세 분에 불과합니다.”

“대장이라 하면 얼마나 높은 직급입니까?”

“저는 참장에 불과하며 제 위로 부장과 대장이 있습니다. 대장이 해군 참모부 총장이지요.”

실제로는 해군에는 대장이 없이 부장(副將) 중 경력이 가장 많은 사람이 참모부 총장을 겸임하지만 더 이상 말하지는 않았다.

이홍장은 한쪽 무릎을 꿇고 임명장을 받들었다.

“부족한 능력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지위를 내려주셨습니다.”

“아닙니다. 일단 제가 부관 역할을 수행하라 하였습니다. 통령님께서는 저를 통해 병력을 키우고 세력을 만들어 주십시오.”

한 번 기회를 잡은 해군은 온 힘을 동원해 이홍장을 키워나가기를 원하였다. 육군과 대립하기보다는 대등한 관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이 통령님께서 방문하신다!”

이홍장 소속 부대가 아니라 경례는 하지 않았다. 대신 모두가 꼿꼿이 선 채 예의를 다하여 이홍장과 이한장 형제에게 인사를 올렸다.

“기강이 삼엄하고 하나같이 열망이 보이는구려. 그러면 전선으로 나서야 하지 않겠소.”

“그건 육군이 할 일이지요. 우리 휘하의 상륙부대가 있기는 하지만 교두보 확보가 전부입니다. 그러니 통령님 휘하의 병력들이 태평천국을 상대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홍장은 참장의 말을 듣고 어떻게든 자신의 부관으로 다루기 위한 시도를 하였다.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것은 백성들의 정착과 관련된 제반 사항이었다.

거지꼴이 된 백성들에게 가장 먼저 달려간 사람들은 대한제국 병사들이었다. 이들은 쌍성자에서 러시아 이주민을 보살핀 경험을 되새기고 다른 장교에게 전수받아 일을 처리하였다.

그다음으로 달려든 사람들은 대한제국과 다른 갈색 군복을 입은 이들이었다. 이들이 쉴 새 없이 사람을 분류하고 조처를 취하는 모습에 저절로 질문이 나왔다.

“내가 알기로 육군 군복은 군청색이요, 해군 군복은 청록색 아니요. 그런데 갈색이라?”

“저들은 일본에서 건너온 사람들입니다. 옛적에는 왜국으로 부르던 이들이지요.”

“왜국? 왜인들이 이 나라에서 뭔 일을 하오!”

옆에서 같이 안내를 받던 이한장은 동생을 대신해 백성들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한참을 확인한 다음 돌아와 정식 명령체계처럼 보고를 하였다.

“통령님, 놀라운 일이지만 왜인들이 우리를 따라온 백성들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일본인은 짜증과 울화를, 큐슈 출신으로 건너온 일본인들은 증오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들이 경험한 끔찍한 비극, 굶주리다 못해 난민 신세가 된 몰골을 보자 자연스럽게 동정심이 치밀어 올랐다.

예전에 이토 히로부미가 그러하였듯, 큐슈 출신 장교들이 주축이 되어 구호 작업에 동참하였다. 참장은 효명제의 위업으로 포장하기 위해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하였다.

“지금 배급하는 곡식은 왜인들이 십시일반 모은 곡식입니다. 황제폐하께서 부탁을 하여 스스로 먹을 곡식을 내어주기 시작하였지요.”

“놀라운 일이오. 옛적에, 국호가 조선이었을 시절에는 왜와 치열하게 싸우고 명나라의 힘으로 나라를 구제하였는데 이제는 동맹이라니.”

“시대도 변하고 사람도 변하였습니다. 그러하면 다음 장소로 이동하시지요.”

다음으로 안내받은 곳은 해군 병사들이 삼엄하게 경계하는 창고였다. 여기에는 미국에 정착한 몽골계 미국인들이 보내온 병장기가 모조리 쌓여 있었다.

말 그대로 산더미라 표현해야 할 물자들이었다. 미국에서 건너온 구형 머스킷과 라이플, 여기에 수많은 병장기들이 그득그득 쌓여 이홍장의 손길을 기다렸다.

“이토록 많은 병장기라니. 이걸 어찌 감당해야 할지…….”

“황제폐하께서는 이 통령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계십니다.”

이홍장이 다가가자 해군 장교가 창고에 적하된 물자를 하나하나 보여주었다. 분류 방법도 제각각이고 국가도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었다.

수많은 구경의 머스킷과 라이플이 무질서하게 널려 있었다. 간혹 신품에 가까운 수준에 자그마한 봉투로 예비 부품을 챙겨온 물건부터 땔감으로 써야 할 폐품까지 있었다.

“무기로 사용하려면 한 번 점검을 거쳐야겠구려.”

대한제국 기준으로는 어디서 써먹어야 할지 모를 정도의 무기이나 이홍장에게는 요긴하다 못하여 간절히 필요한 무기였다.

참장은 고개를 조아리며 출처를 적당히 포장하였다.

“폐하께서 통령을 지원하기 위해 서역에 서신을 보내고 물자를 받아왔지요.”

“그러하니 손에 잡히는 무기를 마구잡이로 보낸 것이군.”

“바로 보셨습니다. 다음 물량은 나름 정돈한 물건을 보낼 예정이니 맘대로 써주시지요.”

이홍장은 오히려 편안한 표정으로 무기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대한제국의 소총을 지급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는데 생각해 보니 탄환 수급이 문제였다.

반면 구식 머스킷은 병사들이 각각 총알을 만든다. 틀 안에 녹인 납을 부어서 탄환을 만들고 적당량의 화약을 함께 넣어서 탄약포를 스스로 말아서 챙겨두는 방식이다.

“화력이 제각각이고 특성도 제각각이겠군. 그래도 용도가 비슷하면 쓸 수 있겠지.”

이홍장은 총기를 하나하나 확인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많이 사용한 총기는 훈련용으로, 적당히 사용한 총기는 실전 배치하여 마구잡이로 쏘아대고 새 총기를 받아오면 될 일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은혜가 기다리고 있었다. 영국군을 통해 전달된 인도 식민지산 최상품 초석 20만 근과 이를 화약으로 만들 수 있는 유황까지.

여기에 대한제국에서 슬슬 도태되는 프랑스제 화포, 조-청 전쟁에서 사용한 물건들도 챙겨왔다.

이홍장과 이한장 형제는 보급 물자를 확인하고 쉴 새 없이 명령을 하달하였다.

“농민들을 시켜 경작지를 마련하겠소. 가을에 농사를 짓지 않아 굶주린 태평천국을 몰아낼 수 있도록 병사들의 훈련 또한 실시하겠소이다.”

명령이 하달되고 대한제국 해군이 각종 작업을 도와줬다.

며칠이 지나고 막 징집된 장정들의 대열을 시찰하던 형제에게 참장이 조언을 하였다.

“통령께서 군대를 마련하셨는데 국호(國號)라도 정해주셔야지요.”

“국호라. 내가 왕도 제후도 아닌데 무슨 국호를 정할 수 있다고.”

형제 모두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참장은 진지한 표정으로 이홍장에게 제대로 된 국가와 국호를 만들기를 권고하였다.

“사람은 명성에 모이는 법입니다. 이미 청나라의 명운은 경각에 달하였는데 이 통령의 위엄보다 통령께서 세우신 국호에 사람들이 더 몰려들지 않겠습니까.”

“하긴 왕후장상의 씨앗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긴 한데…….”

이홍장은 왕이 되는 일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자신이 왕이 되면 형님과의 관계가 흐트러지고 잘못하다가는 형제간의 싸움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왕이 될 생각이 없소. 형님이 왕이 되면 모를까.”

그 말을 들은 이한장은 오히려 동생을 타박하듯이 이야기하였다.

“어허, 홍무제(주원장의 호)께서는 막내였습니다. 통령께서 왕이 되어도 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순리를 그르치는 일입니다.”

효명제의 밀명, 이홍장의 권위를 끌어올리고 거대 세력을 구축하라는 말이 참장의 귓전에서 아른거렸다.

그는 한참 동안 형제를 바라보다 다른 길을 마련해 주었다.

“그러면 미국을 참고하여 대통령 제도를 도입합시다.”

“대통령 제도는 또 뭐요?”

중령 시절 미-맥 전쟁에 참전한 참장은 한참동안 미국의 제도를 알려주었다. 제도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도 임기가 제한되어 있다는 말에 이홍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그러하면 대통령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군. 임기가 끝나면 권좌에서 내려와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물려주면 될 것 같군.”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한번 본보기로 삼아두면 제도가 정착되기 마련이지요.”

참장의 말은 이홍장 입장에서는 그리 마땅치 않았다. 민의가 뭐고 의회가 무엇인지 감을 잡지 못할 지경이다.

그러나 한 가지 항목은 마음에 들었다. 임기가 정해진 대통령 제도이다.

어차피 이해할 수 없는 제도를 이용해 형을 대통령의 자리에 앉히고. 그다음 적당히 시간을 끌어 왕으로 추대해 버리면 마지못해 왕 지위를 유지할 거라는 판단이었다.

“이런 난세에는 누구나 왕이나 제후를 칭하기 마련. 차라리 민의를 앞세워 대통령을 하는 편이 났겠지.”

“그래도 왕을 칭하는 것이 나아 보입니다.”

“아니지요. 아시다시피 우리는 백성을 아래에 두고 저 머나먼 고난의 길을 건너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백성의 뜻을 이 나라가 섬겨야 합니다.”

이홍장은 자신의 속내를 숨긴 채 형을 권좌에 올릴 생각으로 확답을 내었다.

“대한제국의 황제께서 임명한 통령은 몰라도 대통령은 백성이 임명한 원수요. 그러하니 국호를 중화에 소속된 사람들의 민의를 모은 나라, 중화민국(中華民國)으로 삼겠소.”

“알겠습니다. 그러하면 중화민국의 발족 행사를 첫 진군과 겸하도록 하지요.”

이홍장이 큰 붓을 놀려 국호를 정하고 깃발의 표본을 만들어냈다. 그러자 이한장이 깃발 주변에 중화민족의 상징, 용을 그리면서 말하였다.

“생각해 보니 백성의 뜻을 모으려면 투표를 해야 하지요. 그 투표가 시행되기 이전까지는 통령께서 계속 나라를 다스리셔야 할 겁니다.”

“여부가 있겠소. 다만 한 번 재임한 것으로 치고 연임으로 끝을 냅시다.”

“어허, 대통령은 백성이 선출한 것이요, 통령은 대한의 황제가 임명한 것인데 초임으로 분류해야 합니다!”

한편 이한장도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 자신을 앞세우려는 동생을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올리고 왕으로 추대하면 될 일이라 판단하였다.

형제가 서로를 왕으로 올리려는 치열한 싸움이 막을 내렸다. 결국 이홍장이 마지못해 형의 뜻을 받아들였다.

두 형제는 한참을 씨름을 한 끝에 국기와 국호를 제정했다.

연운항에서 중화민국의 첫 병력이 훈련을 실시하였다. 이들 가운데 실전 경험에 능숙한 사람은 이홍장의 지휘하에 태평천국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작가의 말

대통령 : 왕위에 오르기 전 형 혹은 동생이 머무를 자리

어제의 답은 각기 한고조 유방, 송태조 조광윤, 홍무제 주원장, 이자성, 장헌충입니다. 조금 꼬아서 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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