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307화 (273/345)

307화

24장 5화 동맹군

한창 대한제국군이 홍수전의 방어진을 돌파할 무렵 동맹국의 지원군이 상륙하였다. 영국의 세포이는 약속대로 상해에, 프랑스의 병사들은 광주에 상륙하였다.

여기에 영국군의 상륙 며칠 전에 일본에서도 병력을 급파하였다. 평상시에 언제나 복수와 징벌을 부르짖던 큐슈의 의원들은 긴급 개최된 의회에서 반강제로 병력 파병을 결정하였다.

파견 명목은 박현상이 원한 대로 곡물 공급과 치안 유지였다. 선발대로 배정된 4,000여 명의 병력들은 옛 무가(武家)의 사람들이 장성으로, 사관학교 생도가 장교로 구성되었다.

그런 동맹군을 뒤늦게 상륙한 영국군이 곱게 바라보지 않았다. 이들은 대한제국군이 입수한 정보를 가져간 뒤 멋대로 작전을 세우고 멋대로 진군하였다.

“이번 기회에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어도 시원치 않아. 다 죽일 준비는 되었나?”

“물론입니다! 시안화카코딜 포탄도 잔뜩 준비했습니다!”

세포이에 합류한 해군 병사들은 이번 기회에 가장 많은 공을 세워 옛 패배를 설욕하려 하였다. 적의 세력은 당시 영국 해군을 물리친 임칙서의 후계자이다.

이들은 압도적인 승리를 위해 크림 전쟁에서 폐기된 독가스를 부활시켰다. 조일준으로 인한 화학 기술의 발달은 이 독가스 제조를 용이하게 하였다.

물론 이 독가스는 박현상의 입장에서 병기로서 부적합한 물질이었다. 제압용으로 사용하기에는 지나치게 독성이 강하고 후유증이 심하며 살상력이 높다.

그 높은 살상력도 제압용 기준으로 높을 뿐이다. 충분한 양을 살포하지 않으면, 살포하여도 적이 즉시 퇴각하면 별다른 효과가 없을 정도로 부족한 병기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최고의 병기이기도 하다. 적이 퇴각하지 않고 한 자리에 머물러 있다면, 여기에 양이 충분하다면 사람을 잘 죽이지도 않고 끔찍한 고통을 느끼게 한다는 말이었다.

“전군! 전방 이십 마일에 반란군 진영이 있다! 진군하라!”

풍운산은 대한제국군을 견제할 목적으로 상해 인근에 진영을 만들고 병력을 배치하였다. 이대로 버티기만 하면 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마침내 세포이 선발 병력이 진영의 세 면을 포위하였다. 신형 병기를 지급받지 못하여 전열보병에 불과한 세포이 입장에서는 공략하기 난해한 진영이며 병력도 대등하였다.

“선제 방포! 독극물로 놈들의 목구멍을 적셔라!”

대구경 암스트롱포에서 발사된 탄두가 허공을 가르고 태평천국군의 진영 곳곳에 착탄하였다.

병사들이 뒤늦게 몸을 숨기고 폭발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어떤 폭탄도 폭발하지 않았다.

그저 내부의 화약더미가 발화하며 약간의 파편을 퍼트린 것이 전부였다. 부관은 수집된 보고를 풍운산에게 전달하였다.

“백여 발 이상의 포탄이 쏟아졌는데 폭발하지 않았습니다! 박살 난 포탄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기만 합니다!”

풍운산은 보고를 듣고도 눈을 굴려 진영 내부를 돌아보았다. 한 점에 집중된 것도 아니고 사방에 난사된 포탄에서 회색 연기가 조금씩 피어오르고 있었다.

“불발탄이로군. 놈들이 원정을 오느라 제대로 된 포탄을 챙기지 못한 것 같다.”

풍운산은 영국군과 흡사한 포격을 실시한 군대를 알고 있다. 남경을 공략할 때 부패한 관리들이 화약을 횡령하고 모래가루를 섞어서 화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나마 영국군은 화포를 발사할 수는 있지만 탄두 내부의 장약(裝藥)이 빼돌려진 것이다.

풍운산은 사기도 끌어올릴 겸 병사들에게 호방한 말을 하였다.

“영길리 놈들이 어찌나 못나면 저런 모습을 보여주겠느냐! 서역의 오랑캐가 정병(精兵)을 잃어버리고 찌꺼기들만 앞세워 수를 불렸구나!”

함성이 진영을 파도처럼 넘나들고 병사들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포탄이 떨어진 주변의 병사들은 공기로 퍼져나간 독가스를 흡입하였고 곧 이어 이변이 생겨났다.

한 병사는 흙먼지를 뒤집어쓴 것처럼 눈이 따끔거리고 목이 막혀왔다. 반사적으로 눈을 비벼대고 기침을 해 보았자 통증이 더욱 심해졌다.

여기에 생전 느낀 적이 없는 불쾌한 냄새가 점차 강해졌다. 병사가 눈을 돌려 자세히 살펴보니 10m 정도 떨어진 거리에 떨어진 포탄 파편 사이에 알갱이가 섞여 있었다.

“저 알갱이들이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는데?”

황토색을 띄고 있는 시안화카코딜이 증발하며 유독성 비소 가스와 청산 가스의 혼합물을 뿜어댔다. 곧이어 병사들은 마른기침을 하며 발작하였다.

“커헉! 아파! 아파아아!”

한 병사는 입과 코를 감싸 쥐고 쉴 새 없이 마른기침을 뱉어댔다. 그 병사의 옆에 있던 다른 병사는 격렬히 마른기침을 하는 친구를 살펴보다 자신도 기침을 뱉으며 몸을 움츠렸다.

“꼴이! 쿨럭! 커허헉! 왜 이래!”

시안화카코딜의 첫 효과인 점막 자극과 호흡곤란이 진영에 퍼져나갔다. 특유의 성분으로 인해 피해자들의 안구는 심하게 충혈되고 입과 코의 점막이 변색되었다.

포탄 주변의 병사들은 입과 혀가 시커멓게 물들고 사지가 마비되며 눈물과 침 그리고 콧물이 끝없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피탄지를 중심으로 진영 전체에 공포가 퍼져 나갔다.

“살려! 커헉! 으헉! 웩!”

대량으로 흡입한 병사들은 바닥에 널브러져 사지를 꿈틀거리고 기침을 뱉는 것 외의 행동을 할 수 없었다. 그나마 사지를 움직일 수 있는 병사들도 공포에 사로잡혔다.

“도망가야 해! 날 좀! 날 부축해 줘!”

한 병사는 눈치 빠르게 피탄 지역에서 벗어났다. 그의 뒤에서 조금 늦게 피한 동료들이 마비되는 사지를 놀리며 바닥을 기어왔다.

핏줄이 솟아오른 눈과 시커멓게 변한 입으로 애처롭게 살려달라 애원하였다. 그런 피폭자에게 돌아온 것은 구원의 손길이 아닌 총검이었다.

“오지 마! 역병이다! 역병이 퍼져나간다!”

“상제님! 살려주십시오! 저를 구원해 주십시오!”

“너도 혓바닥 색이 변했잖아! 가까이 오지 마!”

기존의 가스 병기는 석회나 유황 연기를 적진으로 투입하는 제압용 병기라 도태되었다. 그러나 과학을 기반으로 발달한 가스 병기는 포탄을 통해 새로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에 태평천국군 특유의 맹신과 미신이 부작용을 일으켰다. 이들은 피해자의 변색된 점막을 보고 역병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고 오인하여 무조건적인 탈출을 감행했다.

“대열을 유지하라! 대열! 쿨럭!”

“도망쳐! 영길리 놈들이 역병을 뿌린다!”

간부들도 공포에 사로잡혀 병사들을 제지하지 못하였다. 한 간부는 손거울로 시커멓게 물든 혓바닥 끄트머리를 확인하고 도주 행렬에 합류하였다.

풍운산이 뭐라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영국군이 움직였다. 세포이 병력을 주축으로 삼은 영국군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태평천국군을 노려 진격하였다.

“적이 무질서한 퇴각을 실시한다! 공격하라!”

“대열! 진군! 군가는 척탄병 행진곡이다!”

군악대가 드럼을 두드리고 파이프가 삑삑 소리를 내며 음을 연주하였다. 군홧발 소리가 저벅저벅 거리며 혼란과 고통이 가득한 전장에 경쾌한 행진곡과 함께 퍼져 나갔다.

“어흐억! 억! 웨엑!”

아련하게 들려오는 척탄병 행진곡의 경쾌한 가락이 점차 다가올 무렵, 풍운산의 진영 안에는 천여 명의 사람들이 고통 속에 죽거나 몸을 꿈틀거리며 생명줄을 부여잡고 있었다.

이 비참한 죽음을 피해 도망친 병사들에게 또 다른 죽음이 찾아왔다.

“사슴사냥이라 생각해라! 도망치는 놈들에게 속보로 접근하라!”

본국의 레드코트와 비교하면 몇 수 이상 처지는 세포이 군대이지만 나름 질서를 갖추었다. 이들 앞에서 무질서한 퇴각을 자행하는 병력은 표적에 불과하였다.

얇은 대열을 형성한 세포이의 진영에서 탄환이 마구잡이로 날아들었다. 여기에 저항조차 못 하는 풍운산의 병력들은 하나하나 찢기며 더욱 잘게 분쇄되었다.

“조준! 발사! 적이 침묵할 때까지 계속 발사!”

평원을 세포이의 붉은 물결이 파고들 때마다 수풀과 땅 위에 붉은 핏물이 피어올랐다. 덤덤한 표정으로 총을 쏜 세포이 병사가 다시금 총을 조준했다.

세포이 병사들은 진영에서 급하게 빠져나온 태평천국 병사를 죽음으로 인도하였다. 그들 입장에서는 사슴사냥보다는 개미를 밟아 죽이는 귀찮은 작업에 가까웠다.

요새에서 급히 빠져나온 태평천국군은 응사도, 하다못해 진영 형성도 못 하였다. 또다시 일제사격이 쏟아지자 허우적거리며 살길을 찾던 병사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이윽고 독가스가 모두 증발한 요새에 병력들이 들어갔다. 약간 남은 가스 성분으로 마른기침을 하던 제임스 호프는 널브러진 시신을 보면서 파이프에 성냥을 들이댔다.

“아주 훌륭하군. 난 태평천국이라는 놈들의 시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

아직도 독가스에 중독되어 허우적거리는 시신들에 총탄이 박혔다. 이 몰골을 확인한 부관은 생각 외로 저조한 성과에 실망한 표정으로 답했다.

“본국과 인도 식민지에서 살충제로 사용할 비소와 청산이 절반이나 소모되었습니다. 참 돈 가격 못 하는 쓸모없는 무기이군요.”

“알아. 독가스 탄두를 그렇게 쏘아도 기껏 오백여 명이 죽고 오백여 명이 전투불능이 된 것이 전부 아닌가. 그래도 이 미치광이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지 않아?”

전투에서 생존한 병사들은 공포에 섞인 증언을 퍼트렸다. 세상에서 가장 흉악한 영길리라는 나라가 역병을 퍼트린다는 증언이 남경 전체에 퍼져 나갔다.

그 역병의 진원지인 영국군은 다음 진군을 준비하였다. 이들은 이번 전투에 사용한 것과 동일한 양의 시안화카코딜 탄두를 보유하고 있었다.

* * *

광주에도 프랑스군과 대월의 연합군이 상륙하였다. 이들은 광주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태평천국의 징벌을 목표로 삼았다.

“용맹한 청나라의 시민들이여. 우리가 자유와 박애를 위하여 이 나라의 정화에 한 손을 보태기로 하였습니다. 오로지 이 자유와 박애를 위해 힘을 합쳐봅시다!”

베트남 전권대사이자 군부인사인 장 바티스트 루이스 그로가 병력을 통솔하였다. 군부에서는 다른 장성을 보내려 했지만 나폴레옹 3세가 강력히 추천하여 그가 지휘관이 되었다.

말재주도 별로 없고 나긋나긋한 성품을 지닌 그의 연설이어도 광주의 시민 대다수가 호응하였다. 이들은 아편을 퍼트리고 임칙서를 이용한 홍수전을 극도로 혐오하였다.

순차적으로 병력이 편성되고 선발대가 진군하였다. 프랑스군이 주축이 된 병력은 광주 시민의 안내를 받아 홍수전에게 협력하는 세력을 몰아내려 하였다.

“장군님! 여쭈어볼 것이 있습니다.”

“황 군의관 아니오. 나에게 무엇을 물어보고 싶소이까?”

“전략의 대전제가 궁금합니다. 감히 여쭈어볼 것은 아니지만 너무 궁금한지라…….”

군의관의 대표로 발탁된 황기영은 프랑스군의 전략에 대해 궁금해하였다. 단순한 홍수전의 축출이 아닌 목적을 지닌 군대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염려한 결과물이었다.

그 질문을 들은 장 바티스트 루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전신을 통해 전달된 의회의 결정에 지극히 만족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려 하였다.

“우리의 목적은 세 가지요. 첫째는 아편에 오염된 반란군의 근절, 두 번째는 온전한 사람들의 수호와 발전, 마지막으로 순수한 사람들이 모인 제대로 된 국가의 형성이오.”

“국가의 형성이라 하셨습니까?”

황기영은 갑자기 국가 형성으로 치솟아 오른 장 바티스트 루이스의 대답에 어리둥절해하였다. 앞의 두 가지는 좋은 일이나 세 번째는 너무나 크고 웅대한 목표였다.

장 바티스트 루이스도 아직 시작조차 못 한 일에 지나친 기대를 하는 것은 아니라 판단하였다.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뭐 하나하나 착실히 해야 할 일 아니오. 그나저나 산세가 제법 웅장하구려.”

“그야 광주 일대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대부분 산과 밀림이니 당연한 일이지요.”

“그럼 이 산간지역의 마을마다 아편을 재배하여 반란세력을 후원하고 있겠군!”

황기영을 비롯한 광주의 향용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광주 인근에서만 아편을 근절하였을 뿐 일대의 수많은 마을들은 아편을 재배하고 판매하는 자들이었다.

장 바티스트 루이스는 후방, 서쪽 일대를 단단히 다지고 진군하려 하였다. 이 과정에서 더운 기후와 산악지형에 익숙한 베트남 병사들이 척후가 되어 수많은 산간마을을 발견하였다.

“마을 열두 개를 발견하였는데 열한 곳이 양귀비를 재배하고 있었다고?”

“약으로 쓰기 위한 소규모 재배도 있었지만 언제든지 양을 불릴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 마을들을 모두 제압하였다가는 진군이 늦어질 겁니다.”

프랑스군 지휘관 모두가 머나먼 동쪽에서 적을 격파하고 있을 영국군을 떠올렸다. 의회에서 제시한 목적의 완수와 지휘관으로서의 의무 중 하나를 택할 차례였다.

결국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과격한 방법을 고안해 냈다. 장 바티스트 루이스는 의회에서 전해온 연설 내용을 약간 뒤틀어 시간도 벌고 토벌 숫자도 늘릴 제안을 하였다.

“의회에서는 아편이라는 단어를 청나라에서 소멸시키라 하였지. 대신 철저히 기회를 주고 반성하는 이들을 구제하고 보호할 의무도 있다 하였고.”

“바로 보셨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구제와 보호의 의무가 문제이지요.”

“아편을 재배하는 마을에 두 번만 경고를 해. 처음 경고는 지금 보내고 두 번째 경고는 마을을 공격할 분견대 편성과 동시에 보내고. 두 번의 경고를 무시하면 마을은 없던 거다.”

“마을이 없다고 하셨습니까?”

장 바티스트 루이스는 자신의 벗겨진 이마를 툭툭 두드렸다. 그리고는 다른 장성들에게 자신의 방침을 이야기하였다.

“이미 아편으로 전쟁이 터지고, 다음에는 아편으로 굶어 죽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급기야 아편으로 반란까지 터지지 않았나? 세 번이나 경고를 하였는데 들어먹지를 않았어.”

“그래도 구제와 보호의 의무는 지켜야 합니다.”

“내가 두 번 경고하면 다섯 번이나 경고를 들은 거야. 이래도 양귀비 재배에 손을 놓지 않는다면 살아 있어봤자 밥이나 축내는 밥버러지들이 아닌가?”

장성들 모두가 반대할 마음이 굴뚝같았다. 잘못하면 산간오지를 헤매며 수많은 마을을 들쑤시고 다녀야 할 입장이다.

한편으로는 사람이라면 경고를 들어서 최소한 양귀비 재배를 중단하고 협력할지도 모른다고 기대하였다. 그는 최소한의 사람들을 합류시킬 생각으로 말하였다.

“조건은 양귀비밭을 태우거나 뒤엎고 장정을 병력으로 합류시키는 것으로 하지. 식량과 은자 정도야 적당히 지급하고 원하면 구식 병장기를 지급하여 병력으로 삼지.”

“얼마나 많은 놈들이 이야기를 들어먹을지는 모르지만 일단 해봐야 알 일 같군요.”

진영에 있던 필경(筆耕) 전문가들이 장 바티스트 루이스의 명령을 중국어와 프랑스어 두 개로 복제하였다. 그리고 수많은 산간마을에 이 서신을 일방적으로 전해주었다.

당연히 태평천국에게 협력하지 않더라도 아편을 판매해 수익을 거두던 이들조차 반대할 이야기였다.

한 객가 마을의 원형 토루 안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고함을 쳐댔다.

“불란서 장수라는 작자가 일방적인 명령을 보냈다! 양귀비를 폐기하고 돈이나 받으라더라!”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아편을 팔아서 쌀을 사도 모자라는 형편인데!”

홍수전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은 객가 마을도 양귀비를 재배하고 있는 형편이라 모두가 반발하였다.

그러나 한 무리의 사람들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불란서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이들은 베트남에서 목숨을 건지고 상해 조차지로 이동하고, 다시 상해 조차지에서 추방되어 머나먼 길을 건너 가까스로 옛 친척에게 의탁한 화교들이었다.

그들은 마을에서 어중간한 손님 정도의 지위로 남아 있었다. 이들이 망설이는 것과 달리 모두가 분노를 터트리며 맞서 싸우고자 하였다.

“놈들을 산골로 유인해서 다 죽입시다! 제가 예전부터 병법서를 조금 보아왔습니다!”

한 장정이 단상 위로 올라가 팔을 치켜들자 모두가 호응하였다. 그는 이 마을은 물론 근방에서 명성이 자자한 사람이었다.

“석달개! 저 친구라면 믿을 만하지!”

“지난번 계투에서 병법으로 수십 명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잖아!”

본래 태평천국의 명장으로 군림했어야 할 석달개는 아직도 변방에서 객가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빼어난 재주는 마을 전체를 다스릴 수준이었다.

이미 촌장을 대신하여 마을의 대소사를 처리하는 석달개가 직접 나서려 하였다. 그가 서신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려 하자 화교들이 달려와 서신을 직접 확인하려 하였다.

“불란서 군대는 흉험하기가 이를 데가 없는 놈들이오. 상세한 상황을 알 수 있겠소?”

“알려주지요. 장 바티스트 세실이라는 자가 협력 안 하면 다 죽이겠다고 하였수다.”

“장 바티스트?”

화교들 모두가 서신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Jean-Baptiste Louis Gros 라는 이름이 푸른색 잉크로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절대 싸우지 마시오! 눈도 마주치지 마시오! 장 바티스트라는 자는 불란서의 백기요!”

“백기?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요?”

화교들은 자신이 겪은 공포에 대해 논하였다. 다 늙어빠진 노인들을 주축으로 베트남군이 손도 못 대던 적을 격파하고 생매장으로 학살한 사람이라고 침을 튀겨가며 말하였다.

아무리 담대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석달개라도 오금이 저려올 정도의 증언이 이어졌다. 도시에서 벌어진 학살극과 끔찍한 처형이 과장되게 묘사하였다.

“차라리 그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은 어떠하겠소? 돈과 식량을 주기는 하잖소.”

“열 배가 넘는 병력을 오합지졸로 격퇴하고 모두 생매장시킨 놈이라. 같은 놈은 맞수?”

“이름은 루이스 그로라 하지만 성이 장 바티스트 아니오! 최소한 사촌이나 조카이겠지!”

“맞소이다! 내가 불란서의 왕이라면 같은 가문의 사람을 보내겠소!”

베트남에서 병력을 지휘한 장 바티스트 세실과 현재 프랑스군 지휘관인 장 바티스트 루이스 그로는 촌수도 따지지 못할 정도로 먼 사람이다.

이름이 장 바티스트로 같을 뿐 성과 가문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문제는 서양인들이 이름을 앞에, 성을 뒤에 쓰는 관습을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모르고 있었다.

당연히 성이 장 바티스트고 이름을 루이스 그로로 인식하여 장 바티스트 세실과 같은 가문 사람이라 판단했다.

이 착오로 인하여 석달개는 엉뚱한 결론을 내렸다.

“이런 괴물딱지랑 어떻게 싸워. 그러면 협력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네.”

석달개는 토루 저 멀리 보이는 양귀비 밭을 바라보았다. 기왕 고개를 숙이기로 결정했다면 모든 일을 순서대로 착실히 진행하여 가장 많은 이득을 챙겨야 한다.

“주변 놈들을 다 쓸어버리고 내가 먼저 고개를 숙이면 장수 자리 정도는 보장하겠지?”

열흘 뒤, 후방 안정을 위해 진군하던 장 바티스트의 본대에 손님이 찾아왔다. 한창 주변을 정탐하던 프랑스 병사들은 수백 명이나 되는 장정들을 확인하고 총을 들이댔다.

“멈춰라! 너희는 누구냐!”

“내 이름은 석달개고 이쪽은 내 마을과 주변 세 개 마을에서 소집한 장정들이오. 우리는 이미 양귀비밭을 갈아엎었고 아예 불까지 지르려 하는데.”

이 소식은 즉각 장 바티스트 루이스에게 전달되었다. 그는 제복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석달개에게 달려와 그의 양손을 거머쥐고 마구 흔들며 말하였다.

“하느님 아버지! 정말로 우리에게 협력하려 하는가?”

“마을 두 개를 협력시키고 하나를 작살내느라 고생 많이 했소. 돈은 얼마나 주시렵니까?”

“확인과 검증을 하고 지급하도록 하지.”

며칠이 지나자 인근 마을 네 개에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양귀비밭이 완전히 타버리고 아편도 의료용을 제외한 대부분이 본영에서 파기되자 석달개에게 보상이 지급되었다.

“이 친구에게 은자 사만 냥을 제공하도록! 가장 먼저 우리의 의견에 설득된 훌륭한 용사가 아닌가!”

석달개가 휘파람을 불면서 기다리자 본영에서 은화가 가득 쌓인 수레가 전달되었다. 프랑스 장성들은 처음으로 협력한 사람을 철저히 이용해 먹을 생각으로 말하였다.

“자네는 우리 위대한 프랑스의 요청을 받아들인 현지인이야. 앞으로 아편을 남용하지 않고 양귀비를 더 이상 재배하지 않는 조건으로 일부 병력의 지휘권을 주겠네.”

“그럼 제가 할 일은 뭡니까? 혹시 양귀비 밭 불태우기입니까?”

“아니야. 좀 더 많은 일을 주지.”

석달개에게 주어진 임무는 각 산간마을의 정탐과 양귀비 재배 중단이었다. 이 조건만 지키면 전공에 따라 더 많은 부대를 붙여주고 더 많은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하였다.

태평천국에서 최고의 재능을 지닌 장수는 최악의 적이 되어버렸다.

석달개와 협력한 프랑스군은 광주를 시작으로 진군하며 수많은 마을을 협력시키거나 소멸시키며 착실히 진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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