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290화 (256/345)

290화

23장 4화 태평천국의 난(2)

진격 명령이 전해지는 동안 서태후와 공친왕은 하루가 다르게 피골이 상접해가기 시작했다. 만에 하나 함풍제가 살아난다면 모를까 죽는다면 이들 모두가 암살범이 되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프로이센의 연구진은 두 달 전인 정월 대보름에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며 도주하였다.

그녀는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으며 미숙한 놈들이 약을 잘못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반면 공친왕은 영웅약을 들여온 장본인으로서 고뇌를 거듭하였다.

“분명 보로서에서 배움을 청할 때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정말 조선의 주장대로 영웅약이 수많은 해악을 담은 약이란 말인가?”

공친왕은 어떻게든 이 사태를 수습하려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재주 많은 의원을 불러올 작정으로 부관 역할을 하는 증국번과 함께 전신국으로 향하였다.

“전하, 대체 어떠한 전신을 보내시기에 이토록 심려가 깊으시옵니까?”

“상세한 일은 알 필요가 없다. 그저 나라의 중요한 일이니 믿고 따르기만 하여라.”

공친왕이 보기에는 증국번이야말로 가장 깊은 충성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일에 대해 아주 약간이나마 알려줄 생각으로 함께하였다.

그의 생각은 공교롭게도 동태후와 닮아 있었다. 전국 각지에 전신을 보내고 그나마 의술이 뛰어난 청도 조차지에도 전신을 보내 의원을 포섭할 예정이다.

그 예정은 지나치게 혼잡한 전신국으로 인해 지체되었다. 평상시에는 잡다한 서신이나 보내던 직원들은 코피를 쏟아가며 이틀 내내 동일한 내용의 전신을 보냈다.

[유일지상께서 각지의 의원들을 모집해 실력을 겨루어보고자 한다. 속히 북경으로 올라오라.]

“한시가 급한 때에 이런 전신을 전국에 보내다니. 대체 누가 명을 내렸는가?”

“황후 폐하의 명을 홍 좌도어사가 전달하였습니다.”

공친왕이 보기에 이 전신은 부족함이 하나도 없는 알찬 내용이었다. 황제의 명령이 아닌 말을 조금 돌려서 존귀한 사람이 부른 것이라 대략적으로 뭉뚱그렸다.

여기에 의원을 모집해 실력을 겨룬다는 명분 또한 괜찮았다. 자신은 이 명령에 추가로 청도와 상해 조차지에서 대한제국 의원을 몇 명 포섭하면 될 수준이다.

“이 전신을 청도에 있는 대한제국 조차지에도 보내도록.”

이 정도면 될 것이라 생각한 공친왕은 처소로 돌아가려 하였다. 그러나 전신의 내용을 확인한 증국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유일지상이라는 단어를 살펴보았다.

황제에 대한 존칭이 아닌 배상제회의 옛 교리서의 단어. 지금은 상제라 적는 단어였다.

“자네는 왜 그리 전신 내용에 몰두하는가?”

“이…… 일단 여기서 말씀드릴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별실로 드시지요.”

증국번은 홍수전의 행적을 보며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까지 개혁을 진행하고 여러 문물을 들이며 고작 두어 번의 성공을 거두었을 뿐 매번 부패한 관리들에게 가로막힌 자였다.

사람도 배우는 것이 있고 개선하는 바가 있기 마련이다. 홍수전은 자신의 실패에 대해 ‘내가 수를 쓰는 만큼 상대도 발전해서 더 악랄하게 착복한다.’라고 자신을 책망하였다.

지금까지는 부패한 관리들로 인해 일어날 법한 사안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홍수전이 실패하지 않고 실패로 위장하였다면, 그 과정에서 사병을 육성하였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홍수전이 착복한 액수가 1/4면 약 은자 1,200만 냥, 이 돈 가운데 절반을 활용해 성공적으로 공장을 만들고 10년 동안 각종 물품을 생산하였다 가정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추산치만 따져도 15만 대군을 육성하고도 남을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여기까지는 억측이라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여러 요소가 의심을 현실로 바꾸어 나갔다. 계속된 실패, 갑자기 영웅약 도입을 극렬히 반대하다 뒤집힌 태도, 서태후에게 너무나 손쉽게 생산과정을 떠넘긴 과정.

심지어 도적을 토벌하겠다고 나서는 행동, 그 군대를 굳이 북경까지 진군시키겠다는 태도. 그리고 대한제국과의 거리를 두는 모습까지.

유일지상이라는 단어 하나로 인하여 증국번의 머릿속에서 의심의 톱니바퀴가 하나씩 정렬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였다. 홍수전은 영웅약의 해악을 미리 알고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함풍제를 암살하려 했을 것이다.

증국번은 자신의 생각이 틀리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자신이 억측을 하여 즉각 공친왕의 노여움으로 투옥되기를 빌며 조용히 말하였다.

“여러모로 생각한 바가 있습니다. 혹여나 황상께서 위중한 지경이옵니까?”

“지금 뭔…….”

“그렇지 아니하고서야 황후 폐하와 같은 명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 같사옵니다.”

공친왕은 증국번의 눈동자를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그의 충심을 가득 담은 눈이 한 점의 흔들림도 없이 자신을 바라보자 공친왕은 목소리를 낮추어 말하였다.

“그렇다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며칠 전부터 환후가 심하시네.”

“이 일을 무덤까지 간직하겠사옵니다.”

결국 증국번이 생각한 의심이 맞아떨어졌다. 홍수전은 반란을 준비하고 있으며 지금까지의 실패는 모두 성공으로 위장한 상황이다.

홍수전의 계획이 성공한다면. 정말로 15만 대군이 북경을 엄습한다면 자신이 충성을 바치는 청나라 황족은 대부분 몰살당하고 홍수전의 나라가 세워지리라.

이 사실을 알려보았자 달라질 것은 없었다. 증국번이 아는 홍수전은 반드시 성공할 일을 할 사람이지 아니라면 몇 년이고 기다리고도 남을 인내심을 가지고 있었다.

판이 모두 장악당하고 외통수에 몰린 상황, 그 상황에서 증국번은 청나라의 사직을 이어가고 마지막 부흥의 가능성을 위해 또 다른 길을 택하였다.

“공친왕 전하께 감히 말씀을 올리니 영웅약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아니하고서야 조선에 다녀온 의원들이 해악을 논할 이유가 없지 않사옵니까.”

“그렇다고 하여도 영웅약은 분명 옳은 약인데.”

“아니옵니다! 전하께서는 양어깨에 올라간 책임을 피하지 말아 주시옵소서!”

증국번은 변란이 일어날 것이니 맞서 싸우자 주장하고 싶었다. 그래 보았자 부질없는 저항일 뿐 팔기군과 녹영군 모두 홍수전에게 몰살당하리라.

결국 증국번은 차선책을 택했다. 왕위 계승권이 가장 높으면서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짊어진 공친왕의 목숨을 살려서 홍수전과 대립할 마음을 품은 것이다.

그 대립을 자처할 만한 후원자는 증국번이 대한제국 외에는 없었다. 그는 속마음을 숨긴 채 공친왕에게 정치적인 사망선고를 권하였다.

“전하, 사태가 경각에 달하였습니다. 환후가 악화되시기 이전에 한시라도 빨리 좋은 의원을 데려와야 하옵나이다.”

“이미 북경 내부의 의원 모두가 소집되었는데 어찌하란 말인가?”

“전하께서 직접 청도 조차지에 방문하여 의원을 섭외하시옵소서. 전신이 해동(海東 - 한반도)에 닿아 명령이 내려오기까지 며칠이 걸릴지 모르는 일이옵니다.”

가장 빠르게 의원을 들여올 수 있는 길이지만 청나라의 황족이 옛 번국에 고개를 숙이는 비참한 일이었다. 당연히 공친왕은 격렬히 반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네놈이 지금 미쳤느냐! 나라의 일을 다른 나라의 의원을 들여 해결해!”

“황상의 안위와 관련된 일이라면 목을 잘라도 그리 나쁘지 않은 일이옵니다. 이보다 더 빠르게 좋은 의원을 데려올 수 있는 방도가 있사옵니까?”

몇 번이고 권총이 보관된 찬장을 돌아보던 공친왕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함풍제가 살아남으면 욕을 먹고 끝날 일이요, 죽으면 어차피 자신도 죽을 운명이다.

홍수전의 반란이 시작되기 4일 전, 공친왕은 증국번을 통해 마부 한 명을 고용한 채 비밀리에 청도 조차지로 출발하였다. 그리고 각지의 객가 군대가 움직였다.

* * *

동태후가 보낸 전신은 각지의 전신국을 통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북경으로의 진격을 실시하던 배상제회 소속 객가들이 전신을 확인하였다.

“어르신, 오늘 오고 간 전신입니다.”

전신국에 있던 직원 대부분은 죽은 채 가장 막내직원 한 명만이 온몸에 피멍이 들어 있는 채로 해석한 전신을 바쳤다. 간부는 전신을 확인하고 목소리를 높여 구호를 외쳤다.

“유일지상이다! 회주께서 마침내 답을 올리셨다! 만주족 자라새끼들을 도륙할 시간이다!”

“멸만흥객(滅滿興客 - 만주족을 멸망시키고 객가를 흥하게 하자)! 멸만흥객!”

“우리는 더 이상 노예가 아니다! 더 이상 배상제회가 아니다! 우리는 만사가 태평(太平)한 천하제일의 나라! 천국(天國)을 만들어낼 일원! 태평천국의 군대이다!”

구호가 산을 울리자 저 아래의 마을을 무단 점거한 채 주둔하고 있던 군대도 화답을 하였다. 이미 수많은 약탈과 폭력이 마을을 휩쓸어 생존자도 별로 없을 지경이었다.

객가 입장에서 한족은 자신들을 핍박한 주제에 만주족에게 굴복당한 한간(漢奸)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아무 거리낌도 없이 폭력과 약탈을 실시하며 파괴를 일삼았다.

이제 그 파괴가 북경으로 향할 시기였다. 간부는 짐 속에 숨겨둔 구름을 휘감은 누런 깃발을 깃대 위에 매달고 기수에게 전달한 다음 명을 내렸다.

“태평천국의 형제들이어! 모두 진격하여 북경의 만주족을 도륙하고 나라를 세우자!”

“잠깐! 이토록 좋은 날에 피 좀 흘려야 분위기가 살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지금까지 고생 많이 했다. 이제 편히 쉬어라.”

막내직원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몸을 돌려 달아나려 하였다. 그 노력도 무심하게 등판에 총알이 박혀 피를 땅에 쏟으며 절명하였다.

지금까지 한족에게 시달려 온 객가의 원한이 여과 없이 발휘되었다. 물론 이들과 달리 한족과 그럭저럭 편안한 관계를 유지하는 객가들도 많이 있었다.

그 객가들은 이 자리에 없어서 모두가 원한을 가지고 있었지만, 간부는 깃대를 기울여 피를 찍어 묻힌 뒤 진군 명령을 내렸다.

“가자 형제들이어!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것은 태평천국의 복록이다!”

녹영군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무장, 제대로 된 머스킷과 라이플 그리고 소구경 대포가 줄지어 운반되었다. 이 과정에서 약간의 마찰이 벌어졌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객가의 군대를 만난 주방팔기(駐防八旗 - 지방 팔기군)는 제대로 도주조차 못 하고 몰살당했다. 사기가 끝없이 오른 군대는 군마와 현지에서 잡아 온 노예를 앞세워 북경으로 진군하였다.

배상제회 시절부터 익혀온 군가를 흥얼거리는 병사들 속에서 간부들이 대화를 나누었다. 가입이 늦은 간부는 선임에게 앞으로의 일에 대해 질문을 하였다.

“그나저나 북경에서 이번 사태를 대비하고 있으면 어떻게 하지요?”

“대비? 우리가 전신을 장악했는데 뭔 대비를 해?”

“그래도 본래 전신을 보내놓고 소식을 제대로 전하기 위해 사람을 보내지 않습니까?”

“그 규칙을 지키는 놈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다고! 우리가 대운하를 따라 진군하면 모를 일인데 대운하 말고 육로를 따라 진군해 왔잖아!”

태평천국군의 진격은 과감하고 신속하였지만 여러 문제를 품고 있었다. 낙오된 병사들도 제법 있으며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들에 대한 홍수전의 영향력이 부족하였다.

“우리가 할 일은 북경에 가서 만주족을 몰살시키는 거야. 그다음으로 할 일은 약탈이고.”

“그러고 보니 왜 약탈을 했습니까? 회주께서는 분명 지나친 약탈을 금지하셨는데요!”

“회주가 우리 아버지냐? 우리에게 아편을 주고 무기를 줘서 고용한 사람 아니야? 우리가 회주를 진심으로 섬기는 게 아니고 회주랑 마음이 맞아서 함께 하는 거라고.”

옆에 있던 선임 간부들은 ‘회주는 아버지세요, 그러니까 아버지 용돈 주세요.’라고 놀리듯 말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나중에 가입한 간부가 코웃음을 치며 말하였다.

“그렇긴 하지요. 저희가 도적놈들이나 토벌하면서 소일거리를 했지 뭐 누린 것이 있습니까?”

“이번 기회에 북경에 들어가서 닥치는 대로 때려잡고 약탈하자고. 한족들은 우리에게 굽실거리면 살려주기는 할 건데 양이들은 다 죽일 거야.”

“어차피 서양 오랑캐가 와 봤자 임칙서처럼 맞서 싸우면 될 일이고. 이미 회주는 광주 일대에서 양이들을 호되게 괴롭히고 돌려보낸 사람 아닌가?”

“그렇지! 만약 양이들과 싸움이 벌어지면 회주 책임이지!”

모든 책임은 홍수전에게. 약탈과 폭력으로 느끼는 쾌감은 자신들의 것이었다. 그 기나긴 행군은 마침내 북경 인근에서 여러 군대와 합류하며 일시적으로 둔화되었다.

“어이구 진일강 형님 아니시오! 그 머나먼 서로(西路)를 따라 잘도 오셨구려!”

“풍운산 동생 아닌가? 동로에서 운하를 우회해 힘을 많이 쏟은 것 같은데?”

“오는 길에 약탈을 충실히 하여 병사들의 기력을 채웠소.”

태평천국의 지방 간부들은 홍수전의 밀명을 충실히 이행하였다. 이들은 도적을 토벌한 군대로 위장하여 군기를 잠시 내리고 누가 진입할지 실랑이를 벌였다.

“가장 먼저 진입할 사람은 나 위창휘라니까! 내가 초창기에 후원금을 얼마나 댔는데!”

“그럼 가장 크게 피해를 입을 거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겠지요?”

“물론이지. 가장 피를 많이 흘린 사람이 가장 많은 재물을 취한다. 이게 규칙이잖나!”

“그럼 위창휘 형님의 군대가 길을 열어주시지요.”

결국 위창휘의 군대가 북경에 가장 먼저 입성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위창휘와 호위병 몇 명이 남문으로 나아가 인사를 올렸다.

“황상의 명을 받들어 지방의 향용을 이끌고 북경으로 상경하였나이다.”

“누구시오! 감히 누구이기에 함부로 군대를 진군시키는 것이오!”

위창휘의 눈썹이 구부러지며 의문을 품었다. 이 자리에만 5,000명, 후방에는 도합 2만의 병력이 있다.

여기에 더욱 후방까지 가면 6만에 달하는 대군이다. 이 대군이 도착하였음에도 북경의 엉성한 경비체계로 인해 접근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아…… 이야기가 이미 되어 있던 것 같은데? 우리는 도적놈들을 토벌하여 황상께 포상을 받으러 북경까지 온 지방의 향용들이오. 제남에서 올라오느라 엉망이 되었소.”

실제로 그런 명령이 하달되고 준비를 해 두라는 명령까지 내려온 전적이 있었다. 다만 함풍제가 혼수상태에 빠지며 다음 명령이 내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북경을 수호하는 금려팔기는 이들의 신상을 상세히 살펴보았다. 하나같이 눈빛이 형형하고 거친 전투를 치러 왔는지 옷조차 성하지 아니하였다.

여기서 위창휘가 나섰다. 그는 뇌물 겸 노잣돈으로 상자 가득 금은보화와 귀중한 옥 덩어리들을 건네주고 말하였다.

“도적들을 토벌하며 얻은 재물입니다. 황상께 올리기 전에 검증해 주시지요.”

족히 수만 냥이나 될 재물을 단번에 내놓는 모습에 경계가 누그러졌다. 장수들은 이 재물을 가져다 넣은 뒤 명령을 내렸다.

“입성하시오. 다만 황상을 만나기 전 여러모로 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구려.”

나름 최정예 금려팔기가 말을 탄 채 태평천국의 병사들을 에워쌌다. 그리고 무장을 해제하기 위해 총과 병장기를 보관할 나무상자를 가져와 말하였다.

“무기를 각자 나무상자에 넣어두시오. 철저히 봉인하고 목총(木銃)을 지급하여 대신하겠소.”

“이 상자 참으로 튼튼하군요. 다들 뭘 하나! 줄을 서서 총을 꺼낼 준비를 하라!”

금려팔기에 소속된 나이 많은 병사는 눈을 가늘게 뜨며 이들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오와 열을 맞춰 줄을 서고 차례차례 움직이는 모습을 어디선가 보았던 것도 같았다.

모두가 어색함을 느끼는 사이 위창휘는 슬쩍 대열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이상한 황색 깃발을 휘두르며 명령을 내렸다.

“개시!”

“놈들은 역도!”

그 말은 제대로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다. 오와 열을 정돈한 태평천국 병사들은 예전 조-청 전쟁에서 조선군이 사용하던 머스킷 방진을 삽시간에 형성하고 사격을 개시하였다.

“금려팔기를 모두 소집하라!”

“성문을 닫아라! 역도를 몰살시켜라!”

지휘관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금려팔기의 병사들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팔기군은 이전 전쟁과 달라진 것이 거의 없으며 기껏해야 권총을 사용하는 정도의 변화만 있었다.

방진에서 몇 명의 태평천국 병사가 피를 쏟으며 무너질 무렵 방진 주변의 모든 팔기군은 도주하거나 죽음을 맞이하였다.

위창휘는 방진 안에서 재차 명령을 내렸다.

“폭약을 쌓아 성문을 무너트리되 성벽에 손상이 가지 않게 양을 조절하라! 너희들은 조를 이루어 진군해 저항하는 모든 놈들을 사살하라!”

“가자! 놈들을 막아내라! 모조리 쏘아 죽여라!”

“죽여라!”

명령은 한 단계를 거칠 때마다 과격하게 돌변하였다. 지금까지 핍박당한 울분과 고생이 총탄으로 무차별적으로 쏟아져 내렸다.

그 사선에는 수많은 백성들이, 북경 외곽에서 장사를 하는 평범한 이들이 있었다. 한 상인은 난데없는 총소리에 팔기군의 패악이라 생각하여 고개를 뒤흔들었다.

“왜요! 대체 왜! 뭘 하는 거요!”

그는 가산을 털어 달달한 먹거리를 준비했다. 도적을 토벌한 군대라면 세상을 바로잡는 군대가 아니겠는가.

그런 사람들에게 모두 줄 수는 없더라도 조금이라도 손을 보태고 싶은 마음 하나뿐이었다.

더욱 큰 총소리가 연이어 들리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주하였다. 상인은 엉거주춤하게 제자리에 서서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갑자기 가슴에 불꽃이 쑤셔 박힌 것 같았다. 닥닥 긁어온 사탕들이 바닥에 흩뿌려지고 그 위로 피가 쏟아졌다.

“어으.”

“꺄아아아아아악! 여보!”

가슴에는 손가락이 들어가고도 남을 구멍이 뚫리고 피가 솟구쳤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며 입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왈칵 솟구치며 고통이 밀려왔다.

“어. 어어윽.”

토벌군에게 해줄 것이 없어 따스한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려던 아내의 얼굴이 총탄에 무너져 내렸다.

상인은 마지막으로 고개를 들어 흙먼지를 바라보았다. 팔기군이 미쳐서 총을 쏘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흙먼지를 뚫고 나온 사람들은 태평천국의 병사들이었다. 한 병사는 상인을 구할 생각도 하지 않고 바닥에 널브러진 사탕을 보았다.

누군가가 베풀기 위해 정성껏 가져온 사탕은 흙과 피에 범벅이 되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그 사탕을 집은 태평천국군은 입에 우물거려 흙먼지를 뱉어낸 다음 총구를 들이밀었다.

“네놈은 한간이겠지.”

총구에서 뿜어진 화염이 상인이 본 마지막 광경이었다. 태평천국의 군대는 악독한 팔기군을 몰아내는 군대가 아니었다.

그저 또 다른 악독한 지배자가 기존의 허약한 지배자를 몰아내는 것에 불과했다.

-멸만흥객! 태평천국!

“멸만흥객! 다 죽여라! 북경에 있는 놈은 다 만주족이거나 한간이다!”

“만주족에게 굽실거리는 서역의 돼지들을 죽여라!”

연이은 포성과 총성에 싸늘하게 굳어버린 북경 성내로 태평천국의 병사들이 난입하였다. 위창휘는 병사들의 옷에 만주족의 피가 묻은 것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이래야 싸우는 맛이 나지. 날이 이상하게 추운데 피 좀 봐야지 몸이 덥혀지지 않나.”

예전과 달라진 적이 없는 팔기군의 대처는 조-청 전쟁과 동일하였다. 아예 서로를 짓밟아 죽이며 궤주했다.

이 과정에서 모든 책임을 짊어져야 할 함풍제는 여전히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다음으로 책임을 짊어져야 할 지휘관 공친왕조차 자리를 비웠다. 태평천국의 물결은 북경 성내로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마침내 한 지점, 홍수전의 저택에서 잠시 멈췄다.

“홍수전 회주님께 보고를 올립니다. 위창휘! 제가 북경의 성문을 돌파하고 만주족을 도륙한 일등공신이옵나이다!”

총을 보관할 목적으로 받은 나무상자에는 수많은 팔기군의 수급(首級)이 담겨 있었다. 여기에 다른 간부들도 속속들이 진격하여 홍수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하였다.

“태평천국의 회주시여! 이 더러운 나라를 무너트리옵소서!”

“만주족을 무너트리고 우리 객가를 흥하게 하시옵소서!”

“회주님께서 그토록 원하시던! 스승의 원한을 갚을 그 날이 머지않았나이다.”

이 인사를 받아들인 홍수전은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첫 명령을 하달하였다.

“북경의 유력가, 권세가를 모두 잡아들여라! 그 과정에서 저항하는 놈은 모두 죽여라!”

그의 품속에는 임칙서가 남긴 쪽지가 접혀 있었다. 임칙서가 죽을 당시 도광제의 명령뿐만 아니라 그를 질시하는 수많은 관료들의 요청이 함께하였으리라. 생사여탈의 권한과 명분 모두 홍수전의 손에 달려 있었다.

그러나 그가 가장 처리하고 싶은 공친왕과 가장 가까이 두고 싶은 증국번 모두가 북경을 멀리 떠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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