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289화 (255/345)

289화

23장 4화 태평천국의 난(1)

헤로인 투여가 시작된 함풍제는 언제나 쾌활하고 대범한 모습으로 정무에 임하였다. 그는 약에 취해 그동안 미뤄온 모든 일을 처리하며 몇 개월 동안 열심히 일하였다.

“요즘 들어 영웅약의 약효가 줄어든 것 같구나. 조금 더 약의 양을 늘려라.”

점진적으로 약의 양이 늘어나며 함풍제는 약에 의존하여 사람이 아닌 약물을 찾아 움직이는 중독자의 모습이 되었다. 여기에 점진적으로 추구하던 수사와 개혁도 중단되었다.

처음에는 홍수전을 비롯한 기존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일소할 생각으로 임하였다. 그래서 본래 역사의 2차 아편전쟁에서 활약한 엽명침(葉名琛)을 순시시키고 정기 보고를 들었다.

“황상께 보고를 올리옵나이다. 일대의 철도 노선이 횡령으로 인하여 폐기되었사옵니다.”

“그 예산을 집행한 관원이 누구이더냐?”

“차마 말씀드리기 어려운 일이오나. 논하기 힘든 상대이옵니다.”

황족이 얽혀 있어서 더 이상 논할 수 없다는 보고였다. 이제부터 함풍제가 수사를 담당해 달라는 간언이었지만 함풍제는 귀찮은 마음에 고개를 끄덕이고 모든 일을 넘겼다.

다음 순서는 지금쯤 실각했어야 할 홍수전의 차례였다. 그는 고개를 숙이며 나아가 함풍제에게 거짓 보고를 올렸다.

“겨울을 맞이하여 각지의 도적들이 모조리 토벌되고 있사옵니다. 이미 이만여 명에 당하는 도적들이 사살되었으며 삼만여 명이 넘는 이들이 포로로 잡히기에 이르렀나이다.”

“훌륭하구나. 그나저나 도적이 얼마나 많기에 감히 전신국을 넘보는가.”

“실로 흉험한 일이 아닐 수 없사옵니다. 다만 전신기가 파손되었사오니 조선의 사람들을 들여 이곳저곳에 파괴된 전신기를 보수하고 전신을 놓을 필요가 있사옵니다.”

청나라는 여러 개혁을 통해 본래 역사보다는 조금 나은 형편이었다. 배상제회의 활약으로 도적이 줄어든 덕분에 각 대도시를 약간의 호위만 두고도 오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말 그대로 군대와 도적이 분간이 안 되는 아비규환이 아닌, 최소한 군대와 도적이 따로 돌아가는 상황이었다. 그 군대는 팔기군이 아닌 객가 위주의 군대였지만.

객가 군대는 도적 토벌을 명분으로 삼아 전신 기지국을 장악하며 차츰 진격하였다. 홍수전의 입에서 조선이라는 말이 나오자 공친왕이 앞으로 나서 이 말에 반대하였다.

“이 나라는 이미 전신을 설치하고 보수할 수 있는데 어찌하여 조선에 고개를 숙이는가!”

“전신은 이 나라의 힘줄이나 다름없습니다. 힘줄이 잘리면 수족의 힘이 빠져나가니 조선의 힘이라도 빌려서 빨리 복구해야 할 일이 아닙니까?”

“그렇게 조선이 좋으면 대사관에 가서 아편이라도 빨아대도록. 황상께 간언을 올리오니 이 나라의 힘으로 전신을 복구하라는 명을 내려주시옵소서.”

“그리 하겠다. 조금 더디더라도 조선이 개입하면 어떠한 일이 벌어지겠느냐?”

홍수전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푹 숙이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 또한 홍수전의 의도가 다분히 담긴 발언이고 그의 의도대로 일이 진행되었다.

도적 토벌 명분에 이어 전신 복구 명분으로 더 오랫동안 병력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 여기에 대한제국이 개입할 명분을 없애기 위해 점차 사람을 줄일 수 있었다.

자신의 정변으로 대한제국 사람들이 피해를 입으면 개입 가능성이 높아진다. 일부러 대한제국과의 밀월관계를 드러내며 대사관을 제외한 대한제국 사람을 쫓아낼 의도의 발언이었다.

“또한 북경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을 필요한 사람만 제외하고 모두 조차지로 돌려보내 주시옵소서. 이들이 정보를 조선으로 보낼 터이니 또 다른 수작을 부릴지도 모르옵니다.”

“공친왕이 참으로 옳은 말을 하였구나. 당장 시행하도록 하라.”

함풍제는 이미 서방의 열국들이 청나라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판단하였다. 그토록 오만하던 영국이 어느새 대사관을 만들고 자신들에게 수많은 선물을 보내왔다.

특히나 이번 춘절, 음력 1월 1일에는 더욱 다채로운 선물을 준비했다 하였다. 마침 내일이 춘절이니 오늘 한밤중에 그 선물이 드러나리라.

“금일의 조회는 이만 폐하겠다. 영길리의 사절들이 조공으로 새로운 문물을 바쳤다 하니 모두 종이 울리면 궁성을 바라보아 그 경관을 즐기도록 하여라.”

조회를 마친 홍수전은 의도적으로 공친왕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공친왕은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돌려 홍수전을 무시한 채 종종걸음으로 서태후와 논의를 위해 사라졌다.

“자네가 요즘 고생이 많군. 그동안 한 일에 보상은 받지 못할망정 핍박을 당하다니.”

“척생(滌生 - 증국번의 호) 아닌가. 내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있던가.”

그런 홍수전을 증국번이 위로하였다. 홍수전은 어디까지나 객가 출신으로 출세한 자로서 부패한 만주족 관리들을 조금이나마 일깨우고 뭐라도 해보려는 행동을 하였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노력을 하였으며 속으로는 객가를 규합하여 지방군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하고 반란을 준비하였다. 대부분의 실패는 이런 객가 군대를 육성하기 위한 실패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히 증국번은 실패를 거듭하며 표류하였을 뿐 방향성 자체는 옳다고 인정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일에 대해 토로하며 홍수전을 위로하였다.

“자네는 입이 없어도 할 말이 있지 않나. 내가 공친왕 전하의 아래에서 수많은 사업을 진행하였는데 제대로 삽이라도 떠진 적이 없었어. 자네는 삽이라도 놀리지 않았나.”

“그 덕분에 조선과 야합을 한 끄나풀이 되어버렸지.”

“그건 누명일세. 자네는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사력을 다하였고 많이 실패했을 뿐이야. 적어도 자네의 노력 덕분에 각 지역의 성(省)에 군대가 생겨나지 않았나.”

“그래 보았자 도적 토벌에도 진땀을 빼는 잡졸에 불과하네.”

홍수전은 겸양으로 자신을 포장해 속마음을 숨긴 채 증국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변란이 벌어지면 일이 다 진행된 다음 증국번을 설득할 생각을 품었다.

혹시나 불행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증국번을 자신의 벗이자 포섭 대상으로 알려둬야 하리라.

그 시선을 느낀 증국번이 고개를 돌리며 말하였다.

“아무튼 우리 둘 다 힘내서 이 나라를 온전히 되돌려 보세.”

“녹봉을 먹는 자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이지. 그나저나 좀 귀찮은 일이 있을 것 같은데 척생 자네가 공친왕 전하를 설득해 줄 수 있겠나?”

“귀찮은 일이라?”

홍수전은 시시각각 진격하는 객가 군대가 북경 인근에 머무를 명분을 찾았다. 여기에 함풍제가 만에 하나라도 목숨을 길게 이어갈 경우 변란을 성공시킬 명분도 필요했다.

그러던 중 적당한 명분이 떠올랐고 이를 증국번을 통해 실현하려 하였다. 그는 북경 시가지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이번 도적 토벌이 남쪽부터 차츰차츰 진격하여 지금 제남(濟南, 현 진안 시)에 이르렀다네. 황상께 얼마나 많은 도적을 토벌하였는지 알려드리고 싶지 않은가?”

“그렇지, 포로를 삼만여 명이나 잡았다 하는데 그 정도면 경이로운 일이야.”

“그러하니 병사 이만여 명 정도와 포로를 좀 들여와 자금성에서 포상을 내리면 어찌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영길리의 악적들도 그 위엄에 주눅이 들어 더욱 고개를 숙일 것이네.”

홍수전은 공친왕과의 사이를 조금이라도 개선하려는 모습으로, 실제로는 반란군 진격 명분을 강화할 명목으로 이 제안을 하였다.

증국번은 고개를 끄덕이며 즉시 답하였다.

“아주 좋은 방안이로군. 그 정도면 자네가 해도 될 일인데.”

“내 코가 석 자인데 그런 일을 어떻게 하나. 하물며 그 군대가 내 명령을 듣는 사람들인가? 난 좌도어사로서 장계를 취합하여 보고를 올렸을 뿐이야.”

“알겠네. 공친왕 전하와 논의를 하여 일을 진행해 봄세. 자네 제안임을 꼭 알려 두지.”

그날 밤, 함풍제의 명령에 의거하여 일본산 불꽃놀이가 하늘을 수놓았다. 찬란한 불꽃이 화구(火球)를 피워 올리며 하늘을 수놓았고 북경의 모든 이들이 이를 바라보았다.

화려한 불꽃에 기뻐하는 목소리가 북경을 수놓았다. 간만에 즐거운 경험을 한 함풍제는 약 3개월 뒤의 절기인 청명(淸明)에 불꽃놀이를 다시 개최하려 하였다.

여기에 공친왕은 청명을 맞이하여 도적 토벌을 끝낸 지방군을, 실제로는 반란군을 북경 내부로 들이려 하였다. 이후 두 달 동안 북경은 변란을 앞둔 고요한 상태를 유지했다.

겨울 추위가 지나칠 정도로 오래 지속되고 가시지 않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질 뿐이었다.

그리고 1860년 3월 22일, 음력 3월 초하루에 이변이 발생하였다.

* * *

함풍제의 헤로인 투약 분량은 처음 헤로인을 접했을 때의 4배에 달했다. 신경계가 파괴되며 최소 반응에 필요한 양이 증가하였고 이는 점차 치사량에 가까워졌다.

마침내 함풍제의 신경계가 오작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얕은 호흡을 하며 잠을 청하던 중 부작용 중 하나인 구토를 겪으며 몸부림을 쳤다.

“폐하, 혹여나 불편한 일이 있으시옵니까?”

언제나 침전 근처에 머무르던 환관은 함풍제의 숨이 막혀가는 소리를 듣고 질문을 하였다. 그러나 혼수상태에 빠진 함풍제는 어떠한 답도 못 하고 목을 움켜쥔 채 허우적거렸다.

환관은 함풍제가 잠을 뒤척인 것이라 생각하고 돌아가려 하였다. 그러나 방 안에서 들려야 할 특유의 얕고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불민한 일이오나 침소에 발을 들이겠사옵…….”

침대 위에는 기도가 토사물로 막혀 새하얗게 질린 함풍제가 손을 가느다랗게 떨며 사지의 힘이 풀려나고 있었다.

환관은 그 순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목청을 높여 외쳤다.

“황상께서 위독하시다! 어서 어의를 소집하도록!”

불행히도 환관의 의학적 지식은 매우 부족하였다. 그는 잠옷을 풀고 버선을 벗기며 사지를 주물렀지만 가장 중요한 함풍제의 호흡을 되찾지는 못하였다.

서둘러 대기하고 있던 어의들이 달려왔다. 이들은 대한제국 출신 의사들에게 기초 의술을 전수받은 사람들이라 함풍제가 호흡을 못 하는 문제를 알아차리기는 하였다.

“일단 기도를 틔워야 하는데 어떻게 틔워야 하지?”

“음식물을 빼내야 하는데 관으로 빨아내야 하는가?”

이들은 함풍제에 대한 인공호흡을 실시하였다. 그 과정에서 어설픈 의술로 인한 치료 지연, 인공호흡에 관한 부족한 지식으로 여러 문제가 발생하였으나 노력만큼은 가상하였다.

어의들이 입에 숨을 불어넣고 계속 가슴을 지압하자 늑골이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의들은 함풍제의 숨을 돌려놓을 작정으로 심폐소생술을 이어갔다.

“폐하! 어서 숨을 쉬셔야 하옵니다!”

“옥체에 손상을 입힌 저희를 쾌차하신 이후 벌하여 주시옵소서!”

어의들 모두가 땀범벅이 되어 탈진할 지경이 될 무렵 함풍제는 자발적 호흡을 되찾았다. 노력 끝에 일궈낸 기적적인 결과였지만 불행히도 소생술의 시작이 너무 늦었다.

함풍제를 이송하는 과정의 지체, 심폐소생술을 시작하는 준비과정에서의 지체로 인하여 5분에 가깝게 호흡이 정지하였다.

이로 인한 뇌세포 손상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불러왔다. 함풍제는 더 이상 사람 구실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뇌세포가 파괴되어 숨만 쉬는 산송장 꼴이 되었다.

“폐하! 폐하께서 어찌 되신 것이냐!”

동태후와 서태후가 거의 동시에 도착하여 함풍제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아직 창백한 몰골의 함풍제를 내려본 동태후는 그의 손을 잡으며 눈물을 흘렸다.

서태후도 똑같이 손이 먼저 움직였다. 그는 함풍제에게 다가가는 대신 땀범벅으로 숨을 고르고 있는 어의의 뺨을 후려친 다음 노성을 내며 윽박질러댔다.

“네놈들이 어의더냐? 황상께서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느냐!”

“저희는 할 일을 다 하였사오나 의술이 부족하였나이다. 부디 죽여주시옵소서!”

“오냐! 네놈들이 죽음을 원한다면 갈기갈기 찢어서 죽여주마!”

동태후는 자연스럽게 어의들과 함께 함풍제의 간호를 담당하였고 서태후는 정권을 휘어잡으려 하였다. 이 과정에서 공친왕이 서태후를 제지하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였다.

“의비의 심정은 이해하오. 나 또한 황상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어의들을 당장 찢어 죽이고 싶소이다. 그러나 어의를 죽이면 치료는 누가 하고 책임은 누가 지겠소?”

서태후의 폭주를 잠시 억누른 공친왕은 함풍제가 치료를 받는 전각을 살펴보았다. 어의들을 죽인다면 서태후의 마음 하나만 풀리고 일이 엉망진창이 되리라.

“일단 지켜봅시다. 황상께서 조만간 병환을 훌훌 털어내고 쾌차하실 거요.”

“그러기를 기원할 뿐입니다. 대체 무엇 때문에 폐하가 저렇게 되었는지 모를 일입니다만.”

서태후는 억지로 엄숙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미 식은땀을 마구 흘려 화장이 무너져 내리고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구토라는 말을 듣자마자 한 약의 부작용이 떠오른 것이다.

바로 자신이 숨긴 영웅약의 부작용, 구토와 호흡곤란이 수면 중에 찾아왔다. 이 사실이 발각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조정의 일을 처리하려 하였다.

“의비 전하! 공친왕 전하! 용태가 급변하였습니다!”

그 처리는 얼마 가지도 못 하였다. 고작 반나절 만에 어의들이 달려왔고 서태후와 공친왕은 다시금 함풍제가 치료를 받는 전각으로 달려 들어갔다.

“급변하였다고! 네놈들은 뭘 하고 있었느냐!”

“저희는 시침을 하고 탕약을 들였을 뿐이옵니다! 심지어 탕약조차도 드시지 못하였습니다.”

병상에 다가가자 동태후가 눈물범벅이 되어 함풍제의 입가에서 약을 토해낸 흔적을 닦았다. 그의 몸은 명백히 정상상태가 아니었다.

열병 환자처럼 전신에 열이 오르고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눈물과 콧물 심지어 침까지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며 사타구니에서 소변이 새어 나왔다.

여기에 맥박이 미친 듯이 치솟고 사지가 부들부들 떨리며 경련하고 팔다리를 허우적거렸다. 헤로인으로 인해 붕괴된 신경계가 몇 시간의 금단증상을 겪으며 폭주한 것이다.

“이대로 계시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이옵니다!”

“모든 병에는 원인이 있는 법이다! 그 원인이 무엇이더냐!”

동태후가 마침내 목소리를 높이고 어의들을 노려보았다. 어의들은 서로를 돌아보고 함풍제의 하루 일과와 지금까지 있었던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영웅약의 약침(藥針 - 주사)을 넣는 때를 놓쳤사옵니다. 본래 약침을 놓는 때가 두 시진 전이었사옵니다.”

“고작 두 시진이 지났는데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일단 영웅약 약침을 놓아 보면 어떠하옵니까? 의비의 말에 의하면 안전하다 한 약이오니 별문제가 없을 것 같사옵니다.”

서역의 문물을 극도로 혐오하는 동태후는 뒤에서 사시나무처럼 사지를 떨어대는 서태후를 흘겨보았다. 그리고는 이 제안을 내놓은 어의에게 명령을 내렸다.

“투약해 보라. 평시에 놓으시던 양을 그대로 놓지 말고 반으로 줄여서 놓아보도록.”

“하오나 그렇게 하면 약을 놓는 것 같지도 않다 하였사옵니다.”

“시험해 보려 하는 것이다. 일단 평상시에 놓던 양을 준비하고 반만 놓으라.”

절반으로 양을 줄인 투약은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이미 신경계가 붕괴한 몸이라 기준치보다 적은 약물은 신경계에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마침내 기존의 양을 모두 투약한 다음에야 함풍제의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동태후는 이 상황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하였지만 대략적으로는 이해하였다.

“이 약이 정말 영웅의 약인가. 아니면 영웅을 폐인으로 만드는 끔찍한 약인가.”

동태후는 원망을 가득 담아 서태후와 공친왕을 노려보았다. 공친왕이 이 약을 들여왔고 서태후가 약을 생산하는 과정을 진두지휘한 장본인이다.

황제의 동생이고 황제의 첩이라서 처음에는 신뢰하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사태를 이 지경까지 몰고 간 시점에서 동태후의 마음에 의심의 싹이 피어올랐다.

“나는 황상을 간병하겠소. 나라의 일은 알아서 협의를 보아 하시구려.”

동태후의 마음에 피어난 한 줄기 의심은 함풍제를 간병하며 무럭무럭 커졌다. 혹시나 둘이 권력에 미쳐 야합하여 함풍제를 암살하고 어린 태자를 왕위에 올릴 수도 있었다.

최소 15년 이상 둘이 권력을 좌우하며 황제는 물론이요 자신조차 허수아비로 만들 것이다. 더군다나 서태후와 공친왕 모두가 동태후가 혐오하는 서양 문물을 좋아하였다.

“서역의 문물을 숭상하는 놈들이 이 나라를 이렇게 만들어 버린 것이 아니더냐!”

권력과 정치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동태후라도 분노할 만한 일이었다. 그녀는 평상시의 온화한 성품 속에 감추고 있던 분노를 토해내며 적당한 사람을 섭외하려 하였다.

그러나 동태후는 그리 영민하지 않아 상황을 단순히 생각하였다. 그저 공친왕이나 서태후와 척을 진 사람을 찾으려 하였는데 공교롭게도 인선에 걸린 사람은 홍수전 단 한 명이었다.

함풍제가 의식을 찾지 못한 채 사흘이 지날 무렵, 동태후가 머무르는 전각에 홍수전이 불려왔다. 언제쯤 거사를 치러야 하는지 불안해하던 홍수전에게 동태후가 입을 열었다.

“근래에 들어 황상께서 기이한 병으로 기력이 쇠하였소. 의비와 공친왕이 하나같이 서양의 문물을 들여 황상의 기력을 되찾으려 하나 차도가 없더구려.”

동태후는 상황을 최대한 축소하여 말했다. 그러나 표정 관리가 하나도 안 되었기에 홍수전은 함풍제의 죽음 혹은 그에 준하는 사태가 벌어졌음을 알아차렸다.

그래도 이를 숨길 필요가 있었다. 홍수전은 충성스러운 신하이자 반쯤 미치광이인 척 자신을 위장하며 억지로 호들갑을 떨며 말하였다.

“이를 어찌하면 좋습니까. 며칠 뒤에는 도적을 토벌한 병사들이 들어올 것인데 황상께서 위엄을 보이시어 이들에게 포상을 내리셔야 할 것인데 이런 일을 어찌해야 할지를…….”

동태후도 홍수전의 기행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아파오는 이마를 어루만지며 호들갑을 떨고 경망스럽게 시선을 돌리는 홍수전을 조용하게 타일렀다.

“좌도어사는 황상의 병환이 중요하오? 아니면 고작 도적 토벌이 중요하오?”

“당연히 황상께서 쾌차하시어 용안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나이다.”

“그럼 어찌하면 좋겠소? 이미 양의들은 차도를 보이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할 뿐이구려.”

홍수전의 변란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북경 전신국 장악이었다. 이미 배상제회의 일원들을 잠입시켜 놓았지만 모두 장악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들을 통해 일부 병력에 진군 신호를 보내는 것이 전부였다. 그 문제의 해법을 동태후가 해결하게 기회를 준 상황이라 고개를 숙이며 말하였다.

“각지의 명의를 소집하는 것이 가장 합당하나이다. 본의를 숨기고 황상에 대한 존칭을 변경하여 전신을 보내시옵소서. 이를테면 유일지상(唯一至上)으로 돌려서 말이옵니다.”

“유일지상이라? 오직 하나의 귀중한 존재라는 뜻이구려.”

“그렇습니다. 전신을 받고 소집된 의원들 가운데 우수한 사람만 가려 뽑으면 될 일이지요.”

전신국에 머무르는 객가 군대의 진격 암구호는 배상제회의 교리 중 핵심인 유일지상이라는 한자어였다.

동태후는 졸지에 자신의 손으로 반란군 진격 명령을 하달한 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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