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288화 (254/345)

288화

23장 3화 청도 조차지

북경 주재 영국 대사관은 서태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움직였다. 이 대사관에 파견된 직원들은 프랑스에서 혁명을 피해 도주한 귀족이거나 가까스로 상류층으로 신분을 올린 이들이다.

이번 기회에 청나라의 이권을 잔뜩 빨아먹어 더 높은 신분으로 도약하기 위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였다. 당연히 이들의 행동은 서태후의 사치와 맞물려 날이 갈수록 수위가 높아졌다.

“내가 살다가 이런 요청까지 받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네.”

영국 북경 대사관에서 보내온 전신은 불꽃놀이를 위한 흑색화약 포탄을 납품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나도 이 시대에 와서 안 사실이지만 송나라 시절부터 이어진 전통이라던가.

대한제국도 나름 불꽃놀이를 잘하지만 물자를 아껴야 하는 이 시점에 괜히 화약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이걸 거절하려 했는데 의외로 쓸모가 있을 것 같았다.

불꽃놀이에 한번 성공하면 서태후는 계속 영국 대사관에 요청을 보내겠지.

내용을 정리하고 화약 필요량을 계산한 다음 일본에 납품 요청서를 작성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전문을 서식에 맞게 변경해서 일본에 전신으로 보내도록.”

“알겠습니다. 다만 불꽃놀이에 사용하는 화구(火球)는 엄연히 화약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그런데 뭐가 문제인가?”

내 문서를 넘겨받은 관원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서류와 나를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최소 600㎏의 불꽃놀이 용품을 납품해 달라는 항목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이 화약을 어디다 보관합니까? 대사관에 보관하면 폭탄 창고가 되는 격인데요?”

“그렇지, 자칫 불똥이라도 튀면 화려한 불꽃과 함께 잿더미가 되겠는데.”

그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못해 북경 전체를 울리는 거대한 폭음과 불꽃이 되리라. 반경 20m 이내에 있는 모든 가옥이 소실되고 휩쓸린 사람들이 잘 다져진 육편이 되어버리겠지.

물론 영국 대사관에서는 불꽃놀이용 화약을 제대로 된 용도로 쓸 거다. 청나라에 직접 납품할까 했는데 그랬다가는 부패한 관료들이 착복할 것을 핑계로 삼아 관원을 설득하였다.

“그냥 대사관 지하실에 보관하라 하게. 청나라 관리들 손에 귀중한 물건을 보내면 설날쯤에는 화약이 죄다 속이 빈 박으로 바뀌어 있을 것 같군.”

“그래도 위험물을 수도인 북경에 보내는 것 자체가 문제 아닙니까?”

“청나라 내부 사정이 더 위험해. 화약보다 위험한 나라가 아닌가?”

“외부대신님의 판단이 옳은 말이지만 그래도 너무 위험한데…….”

관원은 못내 아쉽다는 듯이 전신을 보내려 옆방으로 자리를 비웠다. 그 모습을 보면서 홍수전이 반란을 일으킬 때 가장 먼저 할 일을 생각해 보았다.

“전신이 끊기면 불꽃놀이로 신호라도 보내겠지.”

청나라에서 그나마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전신이다. 홍수전이 상식이 있는 놈이라면, 하다못해 부하들이 상식이 있다면 이 전신부터 끊어버리리라.

북경을 포위하고 전신을 끊어 내부에서 나가는 소식을 차단해 버리고 수작질을 벌이겠지. 거기서 쓰일 물건이 이 불꽃놀이용 화약이다.

만에 하나 대한제국이 구축한 정보망이 끊기면 이 화약 불꽃이 홍수전의 정변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리라.

그 불꽃을 확인할 사람이 내 책상 위의 사진에 담겨 있었다.

“은찬이 녀석이 중요한 역할을 하면 좋겠지만 그러면 위험에 노출되기 마련이고.”

아버지 된 사람으로서 거대한 전쟁을 준비하는데 자식 걱정이 앞서고 있었다. 얼마 전 혼사를 치르고 사관학교까지 졸업한 녀석은 이제 중국 대륙에 파병된 신임 중대장이 되었다.

* * *

박은찬의 사관학교 졸업 이후 진로는 전투병과로 굳혀졌다. 현대는 전투, 기술, 행정 그리고 특수병과로 세분되어 있으나 이 시대에는 전투와 보조 두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쌍성자 분원에서 경험을 축적한 입장이라 전투병과로 임관할 경우 가산점까지 부여받았다.

결국 박은찬은 졸업 직후 참위(參尉 - 소위)를 바로 통과하고 부위(副尉 - 중위)로 임관되었다. 원하건 원하지 않건 더 많은 의무와 책임을 짊어진 것이다.

그리고 첫 부임지로 결정된 장소는 최전선이나 마찬가지인 청도 조차지였다. 규모가 계속 증가하여 완전편제 규모가 된 16사단에 부임한 수많은 위관 중 한 명이었다.

“청도사단에 부임하게 된 제군들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이미 나를 본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 소개는 굳이 안 해도 되겠나?”

“네! 그렇습니다!”

같이 졸업한 동기들, 언제나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는 이토 히로부미조차도 어재연의 너스레에 맞장구를 쳤다. 대답이 나오자 어재연은 북경 방향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제군들이 할 일은 이미 다 배워 두었으며 설령 신임 위관이라 하여도 제대로 학문을 수료하고 경험을 축적할 차례임을 알고 있겠지. 지금 이 장소가 어디인지 아는가?”

사관학교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하물며 신문을 통해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평범한 백성조차도 잘 알고 있는 최전선이었다.

물론 요동도 최전선이지만 양측의 군대가 맞붙으려면 한쪽이 요서회랑의 좁은 틈을 통과해야 한다. 반면 조차지는 북경과 남경에 인접한 최전선 중의 최전선이다.

남경과 거리가 가까운 상해 조차지는 그나마 늪과 연못이 어우러진 습지가 적의 진입을 막아내고 진격을 돈좌시킬 최소한의 지형지물이다.

“이 청도 조차지야말로 가장 위험한 장소이다. 천진(현 톈진 시)에 주둔하는 청나라 병력이 남하하여 즉각 이 지역을 넘볼 터. 이 허허벌판에서 오롯이 몸으로 이들을 막아내야 하지.”

이미 수많은 워 게임, 전투기교를 재활용한 분석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 상해 전선은 파편으로 찢겨져 사방에서 진격하는 적을 막아내는 전장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대세가 되었다.

반면 청도 전선은 진입로 전체가 평원이나 마찬가지라서 대규모 회전이나 공방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농후했다.

사단장인 어재연은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말하였다.

“따라서 신임 장교로 부임하게 된 제군들 모두가 쉴 새 없이 화력을 투사하여 적을 무너트릴 준비를 해야 한다. 휘하 병사들과 한 몸이 되어 일치단결할 수 있도록!”

박은찬의 보직은 16사단의 21연대 휘하 화력지원 대대, 그중에서 전선에 최종 배치된 전동식 개틀링 건과 소형 야포를 주축으로 삼은 중대의 중대장으로 결정되었다.

보통 박은찬보다 한 계급 높은 정위(正尉 - 대위)가 통솔하는 총원 120명에 달하는 인원의 부대이나 여러 가산점을 받은 박은찬을 위한 배려이자 혜택이었다.

“차렷! 새로 부임하신 중대장님과 부중대장님을 위하여 경례!”

일반 병사들과 장기 복무한 부사관들이 섞인 병사들이 박은찬에게 도열하여 경례를 하였다. 박은찬은 부중대장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옆에 둔 채 이 경례에 답을 하였다.

박은찬의 눈이 병사들의 상세를 훑어보았다. 제대로 된 군복은 물론이며 마르거나 지나치게 뚱뚱한 사람도 없이 올바른 식사를 공급받고 있었다.

여기에 전체적인 체격이 다부지고 표정부터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전임 중대장이 병사들을 잘 다스린 것을 확인한 박은찬이 병사들에게 훈화를 실시하였다.

“본 중대장이 귀관들의 지휘 권한을 받게 되었다. 아직 경험이 미숙하나 사관학교에서 배운 모든 지식을 통해 현장 경험을 축적할 것이니 날 믿고 따라주도록.”

“박 중대장님의 명령을 항시 따르겠습니다!”

“그럼 좋은 일이로군. 이쪽은 부중대장 이등박문 참위다, 일본 출신이며 아예 이 나라에 뼈를 묻을 각오로 이 나라의 장교가 되었다.”

병사들 사이에서 왜인이라는 말이 나오자 이토 히로부미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병사들을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목청을 높여 한 병사를 지목하고 말하였다.

“네놈! 중대장님께서 훈화를 하시는데 딴짓을 하면서 잡담을 해! 규정에 의거해 네놈에게 개인호를 파는 처벌…….”

“그럼 첫 명령을 내리겠다. 체력을 점검할 겸 개인호나 한번 파보도록 하자.”

언제나 철저하게 규율을 따지는 이토 히로부미는 박은찬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박은찬도 삼 년 동안 이토 히로부미에게 시달려서 그를 다루는 방법을 숙지하였다.

당근과 채찍, 나쁜 형사와 좋은 형사처럼 이토 히로부미가 폭주할 때 그를 적당히 어르고 달래며 중재하는 방식이었다.

이번에도 이토 히로부미를 내버려 두었다면 병사들과 마찰을 일으켰으리라.

병사들은 박은찬의 합리적인 첫 명령을 듣고 공터에 삽자루를 가져와 말하였다.

“저희가 훈련을 좀 열심히 해서 체력 하나는 좋습니다.”

“그럼 내기라도 해 보자고. 개인호를 가장 빨리 파는 사람은 위스키 한 병이다!”

시작 신호도 보내지 않고 박은찬이 삽을 놀려 땅을 파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온몸에 흙칠갑을 한 채로 병사들을 보면서 말하였다.

“내가 이기면 돈이 굳어서 다행이지! 다들 날 이기게 하려고 손을 쉬는 것 같은데?”

“그럴 리가 있습니까! 위스키가 공짜라면 삽 한번 거하게 놀려서 받아먹겠습니다!”

작은 체격의 이토 히로부미도. 큰 체격에 함경도 사투리를 섞어가며 욕지거리를 내뱉는 병사도 모두 하나가 되어 허리를 놀려 개인호를 파 내려갔다.

충분한 영양보급과 모병제로 인한 인적 자원의 배분으로 병사들의 기본 역량이 우수하였다. 여기에 경험까지 곁들어져 삽시간에 개인호가 완성되었다.

박은찬이 단단한 땅을 여전히 헤집는 동안 삽을 놀려 호 주변에 각을 잡은 병사가 환호성을 지르며 호 밖으로 뛰쳐나왔다.

“제가 일 등입니다!”

“대충 구멍만 파놓은 것 같지는 않고. 안에 들어가서 사격 자세를 취해보도록.”

완벽하게 파놓은 개인호에서 땀과 흙먼지를 뻘뻘 흘려대는 병사가 사격 자세를 취했다. 박은찬이 합격이라 말하자 다른 병사들의 삽이 모두 멈추고 이토 히로부미만 몸을 놀렸다.

“어허 체력 단련 아니야! 오늘 저녁은 내가 푸짐하게 낼 테니 계속 삽을 놀리게.”

“그럼 개인호를 마저 파야지요!”

120명의 중대원 전원이 개인호를 완성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처음부터 마찰을 일으킬 사건이 터졌음에도 박은찬은 유연하게 이 사태를 체력점검 겸 환영식으로 대체한 것이다.

박은찬의 개인 사물함에 잠들어 있던 영국제 위스키가 우승자의 손에 쥐어졌다. 상품을 건네준 박은찬은 장교복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부교(副校 - 중사)에게 명령을 내렸다.

“저녁은 사식을 먹도록 하지. 적당한 사람에게 청해서 요리를 주문하고 내 앞으로 달아두게.”

“알겠습니다!”

박은찬의 순위는 120여 명의 중대원 중 32위에 그쳤다. 평상시에 몸을 철저히 단련했지만 그 단련보다 더 많은 시간 동안 힘을 기른 병사들에게 밀린 것이다.

병과 특성상 병장기를 옮기고 방열하는데 필요한 완력이 중요하다. 오히려 병사들의 자질이 좋다는 증거를 확인한 박은찬은 콧노래를 부르며 다음 명령을 내렸다.

“석식 시간까지 두 시간 정도 남았군. 몸에 흙먼지가 떨어지지 않게 철저히 씻고 가배(커피) 한 잔 어떤가?”

커피는 대한제국에서 수입품목이라 어지간한 차에 비해 몇 배나 비싼 물건이었다. 볶지 않은 생두 한 근에 8냥이며 이마저도 대월에서 막 생산되어 가격이 떨어진 덕분이다.

그런 커피가 지휘관의 재량 하에 혹은 전투 상황에서 언제라도 보급될 수 있는 물건이 되었다. 박은찬은 선임 병사들의 이름을 알아볼 겸 이런저런 명령을 내려 커피를 준비했다.

곧이어 사단 내부의 커피 기계. 기존에 쓰이던 증기기관에 개조부품을 붙인 기계를 통해 진한 커피가 우러났다.

박은찬은 커피 주전자로 잔에 커피를 따르며 말했다.

“커피는 알아서 마시게. 연유도 준비해 두었으니 섞어 마시면 될 거야.”

연유 통조림에 구멍을 낸 병사들이 잔에 연유를 잔뜩 붓고 커피를 그 위에 얹어 저어댔다. 단 것이 언제나 필요한 군인 특성상 이 커피를 마다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느새 경계가 누그러지고 박은찬을 제대로 된 지휘관으로 인정한 병사들은 너스레를 떨면서 여러 사소한 질문을 하였다.

“이 가배는 제가 예전 부대에서 마시던 녀석과 맛이 다른데. 원산지가 다릅니까?”

“예전 부대라면 6사단쯤 되겠군. 지방 사단의 변방 부대였나?”

“그렇습니다. 맛이 지나치게 쓰지도 않고 떫지도 않은데요.”

“그런 사단은 중요도가 낮아서 배급도 좀 부족하지. 가배콩 사 할에 치커리 사 할 그리고 볶은 보리 이 할로 만든 반쪽짜리 가배라네.”

“그때는 치커리가 섞인 물건을 좋다고 마셔댔다는 말이로군요. 그만큼 우리 16사단이 담당한 소임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박은찬이 고개를 끄덕이자 선임 병사는 인사를 올리고 자리로 사라졌다. 그러던 박은찬의 옆에서 쓴맛을 감당하지 못한 병사가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켜고 물을 마셔댔다.

“자네는 왜 연유를 안 섞나?”

박은찬은 그런 말을 하면서 병사들을 돌아보았다. 개중에 몇 명이 연유를 섞지 않고 쓰디쓴 커피를 조금씩 홀짝여댔다.

심지어 연유가 모자란 것도 아니고 남아서 더 넣는 병사들이 있는데도 넣지 않았다. 그러자 질문을 받은 병사가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말하였다.

“이상하게 연유를 섞은 가배를 마시면 속이 뒤집어지더군요.”

“자네도 우유설사를 하는군. 근래에 들어 도처에서 생겨나는 병이라던가.”

동양인의 고질적인 문제, 유당불내증이 연유의 배급으로 인해 드러났다. 박은찬같이 풍족한 삶을 산 사람은 연유로 인해 유당불내증이 걸릴 이유가 없다.

반면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들 가운데 장이 약한 이들은 커피에 섞은 연유로도 탈을 일으켜 장이 뒤엎어졌다.

박은찬은 혀를 차며 각설탕을 가져와서 병사의 잔에 넣어주고는 말하였다.

“본 중대장은 모든 면을 트집 잡는 사람이 아니다. 병사들의 평안과 안녕 그리고 전투력 유지가 무엇보다 중요하지. 개인 생활 이외의 문제가 있다면 언제라도 보고하도록.”

“중대장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박은찬과 이토 히로부미는 커피를 마셔가며 병사들의 상세를 파악하였다. 여기에 저녁으로 인도에서 대량으로 들여온 향신료를 활용한 카레와 생선살 튀김이 배식되었다.

첫날부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 박은찬은 다음 날부터 훈련의 강도를 차츰 높여나갔다. 마침내 보름이 지나고 사격 훈련이 실시되었다.

“십혈포! 운반 및 방열 완료했습니다!”

거대한 십혈포, 전동식 개틀링 건이 병사 여섯 명에 의해 운반되었다. 전시 상황을 대비하여 미리 탄을 발사할 참호를 파두고 윤형 철조망과 모래주머니를 둘러 방비를 하였다.

차근차근 조립되어가는 개틀링 건은 물론이고 대한제국에서 생산한 소구경 암스트롱 포와 각종 화기들이 운반되었다.

박은찬은 수명이 다 되어가는 탄환을 지급한 뒤 명령을 내렸다.

“십혈포 삼백 발 탄착군 확인을 위한 저속 발사 실시!”

“명 받들겠습니다! 충전지 결합!”

“탄띠 결합 완료!”

잘 관리된 개틀링 건의 총열이 돌아가며 저속으로 탄환을 쉴 새 없이 내뱉었다. 기능에 문제가 없는 것을 확인한 박은찬은 야포를 담당하는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다음으로 야포 순차 발사! 사거리는 최저사거리로 유지!”

“제 일번 포부터 순차적으로 발사합니다!”

굉음과 함께 날아간 암스트롱 포의 탄환이 착탄 직후 폭발하며 흙기둥을 피워 올렸다. 한참 훈련을 하고 있는 중에 약간 나이를 먹은 장교가 너스레를 떨며 크게 외쳤다.

“사격장에서 굉음이 일어난다 하였는데 화력지원 중대의 시범이 있었군.”

“최 정위님 아니십니까?”

계급장을 확인한 박은찬이 자신보다 명백히 나이도 계급도 많은 상대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러자 최제우는 자신의 중대장 표찰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같은 중대장끼리 친하게 지내세. 난 경주 최씨의 제선이며 자는 성묵이지.”

“저는 반남 박씨의 은찬이며 자는 인훈이라 합니다.”

악수를 나눈 박은찬은 최제우의 뒤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최제우가 담당한 저격중대. 대한제국에서 임복(林服)병이라 불리는 저격수들이 눈동자도 굴리지 않고 도열해 있었다.

“하필 저희 다음으로 사격훈련을 하시는군요.”

“그렇긴 한데 이 정도로 개판이 되어야 제대로 된 훈련을 할 수 있지. 아예 전시 상황을 대비해서 계속 포탄을 쏟아내면 더 효과적일 것 같아.”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그럼 훈련을 같이 실시하시지요.”

두 개의 중대가 합동 훈련을 실시하였다. 박은찬의 부대가 맹렬한 포화를 퍼부어 진영과 표적지 인근을 뒤흔들고 그 사이에 놓인 허수아비에 총을 쏘는 방식이었다.

박은찬은 조준경을 보며 쉴 새 없이 손을 놀리는 저격중대원의 모습을 확인하였다. 포화가 주변 공기를 진동시키고 매캐한 흑색화약 연기를 뿜어내도 이들의 손을 멈출 줄 몰랐다.

“이등박문, 지금 탄착군 형성은 잘 되어가고 있나?”

“물론입니다. 표적의 앞과 뒤를 쉴 새 없이 쏘아 난리를 피우고 있지요.”

망원경으로 표적과 탄착군을 번갈아가며 확인할 때마다 박은찬의 입에 미소가 피어났다. 자신이 딱히 사표를 수정하지 않아도 야포와 개틀링 건이 제대로 된 위치를 타격했다.

여기에 허수아비에 매달아 둔 돼지 오줌보가 하나씩 터져나가며 저격 성공을 알려주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이 모습을 확인하고 흥분을 억누를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런 강대한 대한제국군에게 맞설 군대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영길리나 불란서 육군은 이 정도는 하고도 남을 텐데. 원정군이라 우리가 이길 뿐이지 동일한 수로 붙으면 승패를 장담하지 못 하는 상황이야.”

“제 말은 청나라 놈들 말입니다. 놈들이 전쟁을 일으키면 군대가 아니고 육편이 될 겁니다.”

저 짜릿한 화력을 청나라 군대에 퍼붓고 싶은 욕망에 빠진 이토 히로부미는 개틀링 건을 발사하는 병사를 바라보았다.

박은찬은 언제나와 같이 흥분에 빠진 그의 뒤통수를 치며 말했다.

“이 머저리야! 그러면 우리 병사도 죽는단 말이다! 적만 죽냐!”

뒤통수를 감싸 쥔 이토 히로부미를 노려본 박은찬은 한숨을 쉬며 포연으로 뒤덮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과거의 자신을 반성하듯 말하였다.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야. 물론 상대가 이성을 잃거나 협상을 포기한 놈들이라면 자기 보호를 위해 맞서 싸우기는 해야지. 아무튼 전쟁을 이유 없이 일으켜서는 안 된다고.”

박은찬은 아버지의 생각과 다르게 청나라가 이성을 찾기를, 전쟁에서 쓸데없는 사람이 죽어나가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하였다.

그 기원과 다르게 홍수전의 음모는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사방에서 소집된 객가들이 점차 북경 주변으로 진군을 시작한 것이다.

#작가의 말

이 시기 군대는 실전 경험이 하나도 없는 소위가 중대장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사관학교 교육이 엉망진창인 국가도 같은 일을 했지요.

결국 수많은 희생을 거친 다음에야 대위부터 중대장을 역임하게 되었습니다.

대한제국군은 가급적 중위부터 중대장을 역임하는 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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