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7화
23장 2화 파국(2)
서태후의 주도하에 모든 일이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한 나라의 황제에게 투여하는 약이다 보니 투약 분량을 나누어 시험 투약을 실시하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외과의들을 돌려보냈다. 생각 같아서는 의원 모두를 역적으로 몰아 고문 끝에 사지를 부수고 능지처참으로 포를 뜬 다음 푹 삶아서 경고의 표시로 삼으려 하였다.
그러나 나라의 예산이 들어간 인재들이며 공친왕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결국 이들이 아무런 말도 못 하도록 서태후가 직접 고향으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의 소견을 확인해 볼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 그러하면 너희들이 배운 의술을 고향으로 돌아가 펼칠 기회를 마련해 보거라.”
공친왕은 서태후의 결정에 기쁜 마음으로 동의하였다. 공친왕이 붙여준 병력에게 서태후가 돈을 먹여 이들을 호위하는 동안 사람과 접촉하지 말라는 명령까지 내렸다.
걸림돌이 사라지자 아편 중독을 헤로인 중독으로 덮어씌우기 위한 실험이 진행되었다. 북경 각지에서 데려온 아편 중독자들이 어의들의 실험 대상이 되었다.
“너희들은 높으신 분에게 올리는 기미(氣味 - 약의 맛과 효능을 검증함)를 담당할 것이다. 어서 팔을 걷고 약침이 들어갈 때 힘을 절대 주지 말도록 하라.”
“저희 같은 놈들이 이런 귀한 약을 복용해도 되겠습니까?”
“아무 약이라도 좋으니 이 벌레들을 좀 없애주십시오!”
아편에 심각하게 중독되어 몸을 보이지 않는 벌레들이 물어뜯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는 중독자까지 있었다.
어의는 팔다리를 벅벅 긁어대는 중독자를 자리에 앉힌 뒤 설명을 하였다.
“복용하는 약이 아니고 약침으로 몸 안에 넣는 약이다. 조금 따끔하겠지만 참아라.”
인간의 신경계를 모조리 붕괴시키는 끔찍한 약물이 용해용으로 특별히 제작된 액체에 섞여 가열되고 용해되었다. 이후 어의들은 떨리는 손으로 주사기에 약물을 채웠다.
“솜씨가 영 말이 아니지만 홍수전의 끄나풀을 모두 고향으로 돌려보냈으니 별수 없지.”
서태후는 반대편 방에서 수렴(垂簾 - 발)을 통해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어의들은 고작 며칠 동안 대한제국에 다녀온 의원들에게 외과 의술을 전수받은 것이 전부였다.
제대로 배운 외과의라면 이미 주사를 놓고도 남았지만 어의들은 한참 동안 정맥을 찾아 손을 움직였다.
마침내 중독자에게 첫 주사가 접종되었다.
“제 몸에…… 쿨럭! 뭘 넣으시는지는 모르겠는데. 어흑! 커흑!”
아편 금단증상 중 하나인 기침을 쉴 새 없이 하던 중독자는 약이 투여되고 15분이 지나기도 전에 기침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여기에 각종 중독증상도 모조리 사라졌다. 사지를 피가 날 때까지 벅벅 긁어대던 중독자는 편안한 표정으로 딱지가 뒤집어진 종아리를 쓰다듬었다.
다섯 명의 중독자들의 상태는 삽시간에 호전되었다. 10월의 싸늘한 기후에도 쏟아지던 식은땀이 사라지고 눈물과 콧물이 멎었다. 여기에 혈색이 순식간에 호전되었다.
크게 심호흡을 하려다 마약의 작용으로 얕은 숨을 쉰 중독자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어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깊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몸에 웅혼(雄渾)한 감정이 깃들고 사지에 힘이 돌아왔습니다. 이 약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아편의 뿌리를 뽑을 수 있는 영웅의 약이라네.”
다섯 명의 중독자는 아편의 금단증상을 말끔히 벗어던졌다. 이는 신경계에 침투하여 교란 작용을 일으키는 모르핀보다 더 강한 헤로인이 신경계를 헤집고 다닌 효과였다.
이들의 신경계는 헤로인이라는 거대한 말뚝에 꿰뚫려 무너져 내렸다. 아직 완전한 중독 단계는 아니지만 몇 번만 더 투여하면 확실한 중독에 빠지리라.
중독의 종착역은 헤로인의 금단증상으로 인한 죽음, 헤로인의 더 많은 투여로 인한 죽음 혹은 아주 운이 좋을 경우 금단증상을 이겨내고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지는 것이 전부이다.
그마저도 한 달 정도 투여했을 때, 여기에 철저한 치료를 받을 때의 일이었다. 3개월 이상 헤로인을 투여하면 치사율이 70%가 넘어갔다.
“훌륭한 약이로군. 사람 몰골이 아니던 자들이 저렇게 변하다니.”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영웅약은 사람을 구하는 약입니다.”
프로이센의 화학자들이 아부를 떠는 사이 이변이 벌어졌다. 한 중독자가 헤로인의 금단증상인 구토로 인하여 요강에 배 속에 있는 모든 것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사람을 구하는 약이 왜 저렇게 되었소? 혹시나 잘못 조제되어 독이 있소이까?”
“헤로인에도 부작용이 있습니다. 구토와 약간의 호흡곤란과 수면 그리고 남성의 것이 좀.”
“쉽게 말해 안 선다는 것이구려. 그 정도 부작용은 감수할 수 있지.”
서태후 입장에서는 오히려 반가운 부작용이 발기부전이었다. 혹시나 정신을 차리고 온몸이 정상이 된 함풍제가 정사(情事)를 치르면 또 다른 자식이 생겨날지도 모른다. 서태후는 함풍제의 중독증상이 완전히 사라진 이후에도 여러 핑계를 대서 약을 계속 투여할 생각까지 하였다.
다음 날이 되자 서태후는 영웅약을 챙겨 의원과 함께 알현을 요청하였다.
함풍제가 아편의 금단증상에 시달리며 다시 아편을 찾을 때였다. 그런 함풍제에게 서태후가 방문해 인사를 올리며 말하였다.
“황상께 소첩이 간언을 올리옵나이다. 소첩은 황상께서 정무에 임하시다 그 깊은 시름을 잊기 위해 아편을 피우는 것을 수십 번이고 바라보며 가슴을 졸였사옵니다.”
“내가 아편을 피우는 것과 정무에 임하는 것에는 별 연관이 없소. 의비는 조용히 삼궁(三宮 - 자금성의 황후, 비빈이 머무는 곳)의 일을 논하도록 하시오.”
함풍제는 대놓고 짜증스러운 표정을 드러내며 서태후를 바라보았다. 서태후는 정실인 동태후, 지금은 효정현황후라 불리는 아내와 비교하면 흠결이 많은 사람이었다.
다정다감하고 언제나 자신을 존중해주는 동태후와 달리 서태후는 이득을 챙기고 권력에 몰두하였다. 물론 궁중 내부의 권력 투쟁으로 용인해줄 수 있으나 최근에는 간섭이 심해졌다.
“하오나 아편을 많이 피우시면 몸이 망가지기 마련이옵니다.”
“아편은 몸을 망가트리는 약이 아니오!”
여기에 아편 중독자인 함풍제에게 선을 넘어 아편을 끊기를 몇 번이고 간언하였다. 함풍제가 짜증을 부리며 나가라는 손짓을 하자 서태후는 고개를 숙이며 말하였다.
“소첩이 여러 방법을 모색하고 공친왕이 데려온 사람들을 통해 아편을 끊을 수 있는 약을 만들어낼 수 있었사옵니다. 이미 몇 번의 기미를 거친 약이기도 하옵니다.”
“아편을 끊을 수 있는 약이라? 그 약을 얼마나 복용해야 하오?”
서태후는 고개를 숙여 웃음으로 가득한 얼굴을 감추었다. 프로이센의 화학자들은 매일 한 번, 한 달 정도 헤로인을 투약하면 아편 중독이 모조리 사라질 것이라 하였다.
물론 한 달이 지나면 완벽한 헤로인 중독자가 탄생하고 여섯 달이 지나면 과다 투여로 인한 문제가 빗발치며 사람이 죽어나가지만 이를 알려주지는 않았다.
결국 서태후는 자신 멋대로 투약기간을 여섯 달로 늘려버렸다.
“이미 소첩이 부른 사람들, 심지어 아편에 깊게 빠진 이들조차 효과를 보았사옵니다. 앞으로 여섯 달 동안 정해진 시간에 약을 복용하시면 완전히 아편을 끊을 수 있사옵니다.”
서태후는 약을 올리기 전 직접 작성한 보고서를 먼저 올렸다. 다섯 명의 사람들에게 주사해 본 결과 아편 중독증상이 소멸되었다.
가장 중독증상이 심각한 사람을 함풍제와 약물을 공유하는 기미 담당자로 만들어 혹시나 모를 독살을 방지하였다. 모든 내용을 확인한 함풍제는 곰방대에 담긴 아편을 바라보았다.
이미 아편에 심각하게 중독된 함풍제는 아편을 피우지 않으면 섬망(譫妄), 신경계의 오작동으로 인한 환상을 보거나 헛소리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도광제가 남긴 조언에 이르면 이토록 중독이 심해져도 아편을 끊을 수 있다 하였다. 그 과정이 너무 끔찍한 고통을 불러와서 견디기 힘들 뿐이지.
“그러한 약이 있다면 한 번 복용해 보겠소.”
“복용하는 약이 아니옵나이다. 참으로 불민한 일이오나 이 약은 약침으로 사지에 주입하는 약이오니 황상의 지극히 높으신 옥체에 흉이 가는 일이 될 것이옵니다.”
“약침이라 하면 약액을 넣는 서양의 의술 아니오. 이거 황후가 알면 큰일이 나겠군.”
서양의 것을 무조건 혐오하는 동태후의 태도를 떠올린 함풍제는 피식 웃고 주사를 맞기 위해 팔뚝을 걷었다. 그러자 어의가 영웅약을 주사기에 넣고 함풍제의 몸에 주사하였다.
잠시 뒤, 약효가 돌아오자 함풍제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지금쯤이면 보였어야 할 헛것도 전혀 보이지 않고 온몸이 느긋하게 풀어져 세상만사가 다 평온해졌다.
“허어 이런 약이, 이런 약이 세상에 있을 줄이야.”
“공친왕 전하께서 명명하기를 영웅약이라 하였사옵니다. 아편을 단번에 끊어버리는 약 중의 영웅이니 참으로 합당한 이름이 아니옵나이까.”
“그렇구려. 이 좋은 약을 더 많이 만들어 퍼트립시다.”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옵나이다. 소첩이 일을 담당하기 전에…….”
기회를 잡은 서태후는 정적인 홍수전을 숙청할 명분을 만들기 시작했다. 자신은 나라와 함풍제의 안녕을 위하여 사력을 다하였지만 홍수전이 간섭했다는 뜻이었다.
“좌도어사가 그런 행동을 하였다고? 이 좋은 약을 널리 퍼트리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고용하고 기술을 가르쳐야 하는데 그 과정 자체에 간섭하였다?”
“소첩이 좀 더 많은 약을 퍼트리려고 방안을 마련하자마자 벌어진 일이옵나이다.”
지금까지 홍수전이 충직한 신하라 생각하던 함풍제도 간절한 마약 송사(訟事)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래도 홍수전을 당장 숙청할 수는 없었다. 홍수전은 탐욕과 사리사욕에 미친 만주족 관료들을 어르고 달래 조금이라도 건설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관료였다.
결국 함풍제는 서태후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내 홍 좌도어사에 대해 면밀히 확인해 보겠소. 만약 부정이 발각되면 기존에 홍수전이 담당하던 일을 공친왕이 진행할 수 있게 관직을 바꿔나갈 것이니 잠시만 참아 주시구려.”
서태후가 바라던 결과는 홍수전의 처형이었지만 이 또한 나쁘지 않았다. 자신과 한편이 된 공친왕이 홍수전의 영향력을 흡수한다면 자신의 권력도 자동적으로 늘어나는 법이다.
그래도 나라를 간절히 생각하는 척 조언을 아끼지 않으려 하였다.
서태후는 가까이 다가와 함풍제의 손을 잡고 애절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하오나 공친왕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력을 주면 불민한 마음을 품을지도 모르옵니다.”
“어허! 내 동생이며 영웅약을 들여온 사람 아니오! 의비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으나 이 마음은 절대 변치 않소! 정백기(正白旗 - 황실 호위 팔기군)를 지휘하게 할 거요!”
자신의 의도대로 일이 흘러가자 서태후는 다시금 애틋한 눈빛을 보내며 함풍제를 올려보았다. 그러자 함풍제는 자신의 사타구니를 바라보다 짜증을 섞어서 말하였다.
“아편의 문제점 중 하나는 치유하지 못하는 것 같구려. 홍삼이라도 좀 먹어볼까.”
더욱 강력한 헤로인에 잠식된 함풍제의 몸은 더욱 많은 홍삼으로도 치유되지 않았다. 여기에 헤로인이 신경계를 잠식하며 그의 몸을 점점 중독으로 이끌어 나갔다.
* * *
이 모든 문제를 모르는 채 홍수전이 북경으로 돌아왔다. 양수청이 헛짓거리를 하지 않도록 여러 안전장치를 걸어두고 그의 기반마저도 마련하는 작업이었다.
가급적 양수청을 휘하에 두고 싶었지만 그 좋은 능력과 비례하여 욕심이 많았다. 잘못하면 지휘권 분열이나 이반이 일어날 수 있는 인물은 따로 두는 것이 마땅했다.
“대규모로 군을 움직일 수 있는 재주를 가진 사람이 나나 이수성을 제외하면 양수청 외에는 없어서 문제로군. 그나저나 지방 객가들이 왜 이리 비협조적이지.”
홍수전은 마차 안에서 자신이 확인한 강남 일대의 객가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였다. 거사가 3년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지방 객가들을 더욱 끌어들일 방침이었다.
그가 지금까지 끌어들인 객가는 전체의 3할에 불과했다. 나머지 객가들은 사이가 안 좋아 연락을 받지 않거나 변방 오지에 머물고 있어서 연락이 닿지 않은 이들이었다.
홍수전은 입술을 짓씹고 혀를 차며 이들을 만난 기억을 떠올렸다. 이들은 물론이고 자신의 좌도어사 지위를 확인한 민심 또한 문제가 심각했다.
“한족들이 만주족에게 원한을 품는 것은 당연한데 그 이유도 안 알려주고 있으니 답답하군.”
대한제국에서 만든 양주십일기는 강남 전체로 퍼져나가며 한족들에게 정보를 알려주었다. 이들의 입장에서 만주족은 반드시 격멸해야 할 악독한 민족이 되었다.
그렇다고 홍수전을 믿을 이유는 추호도 없었다. 만주족에게 꼬리를 살랑거리며 좌도어사라는 관직을 받은 순간부터 그는 만주족의 개이자 한간(漢奸), 침략자와 내통한 자였다.
결국 객가들의 포섭도 실패하고 한족들의 섭외도 실패하였다. 어차피 양수청을 여러 명분으로 숙청할 계획이었으니 이 실패를 나쁘지 않게 봤다.
나중에 양수청이 승리하면 휘하의 한족들을 단속하지 않은 죄, 패배하면 민심을 이반하여 패한 죄를 물으면 될 일이었다.
어느새 마차가 멈추고 마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좌도어사님, 자택에 도착하였으니 어서 내리시지요.”
“고생이 많았네. 오늘은 푹 쉬고 내일 궐에 나갈 것이니 자네도 푹 쉬게나.”
마차에서 내린 홍수전은 굳어버린 몸을 이리저리 풀면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자신이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옆 건물, 배상제회의 회합 장소에는 사람들이 득시글거렸다.
“오늘은 정기 간부 회의가 아닌데?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홍수전은 거사를 앞두고 더욱 조심스럽게 행동하였다. 배상제회의 회주, 오로지 종교적인 지도자로 활약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연락 횟수를 가급적 줄여나갔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부하들을 대표해 앞으로 나온 이수성의 보고를 들은 홍수전은 지금까지 벌어진 일에 대해 듣고 한참 뒤에야 입가를 더듬거리며 말하였다.
“조선에서 돌아온 의사들이 영웅약의 해악을 논하였다고?”
“하필 공친왕이 이들을 싸고돌아서 손도 대지 못하였습니다. 더군다나 의비가 명을 내려 저희와 접촉하지 못하게 만든 다음 고향으로 돌려보냈습니다.”
홍수전의 눈동자가 사방으로 사정없이 요동쳤다.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몰라도 대한제국에 다녀온 어의들은 자신이 처음으로 생산에 개입한 영웅약의 해악을 알고 있었다.
사방에 퍼진 객가들이 개입하려 했지만 한계가 명확했다. 홍수전의 부하들은 나름 자신들도 노력했다는 듯이 여러 암살 시도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호위가 사라진 다음 의원들을 제거하도록 형제들을 붙여두기는 했습니다만…….”
“의원들은 호위를 돌려보낸 뒤 일대의 환자들을 치유하고 지방 유지들의 병도 치유했습니다.”
“몇몇 의원들은 도적으로 위장한 형제들이 암살하였습니다. 반면 대다수의 의원들은 지방 유지들의 호위를 받아 감히 습격하지도 못할 상황이라 포기하였다더군요.”
“심지어 광주 출신 의원들을 습격한 형제들은 호되게 당하여 쫓겨났습니다.”
이는 박현상이 의도하지 않은 긍정적인 결과였다. 본래 의도를 숨기기 위해 청나라 외과의들에게 나라를 올바로 되돌리기 위한 의도로 가르치는 것이라는 변명을 하였다.
그 변명은 의원들 대다수가 진실로 받아들였다. 의원들은 아낌없이 자신의 실력을 발휘해 선행을 베풀어 자연스럽게 사람이 모이고 호위가 생겨 암살을 방지하였다.
“그놈들은 아무 돈도 못 버는 몰골로 대체 뭘 하는 것이더냐!”
“사력을 다하였지만 이 기괴한 행동 때문에 고작 마흔 명을 암살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차라리 계투를 빙자해 놈들을 찍어내는 것이 어떠합니까?”
“이 머저리 새끼야! 싸움이 벌어지면 사람들이 의원을 지키지 누굴 지키겠냐! 불난 집에 기름을 퍼붓고 있어!”
다음 보고도 문제였다. 서태후가 지금 막 생산된 영웅약을 함풍제에게 진상하였다는 말. 도찰원 내부 기강을 잡기 위해 함풍제가 친히 나서서 서류를 확인한다는 보고까지 있었다.
홍수전은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뇌하였다. 자신이 계획을 세울 때에 한 개 정도는 최악으로 일이 진행되어도 다른 안배들이 이를 벌충할 수 있게 만들어 뒀다.
영웅약의 진상이 알려질 경우 대한제국에 보낸 의원을 통해 변명을 하려 했다.
숙청을 위한 사전 조사가 시작되면 영웅약의 공을 앞세워 서태후와 공친왕을 걸고넘어져 시간을 끌고 민란을 촉발해 객가의 필요성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하다못해 지방의 객가 세력들에 대한 문제가 일어날 경우 이들을 임시 해산하고 한족을 앞세워 일시적인 반란을 촉발시키려 하였다.
그 모든 안배가 최악이 아닐 뿐 최악 직전의 차악으로 변해 버린 상황.
홍수전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세 면이 모두 가로막혀 버린 꼴이었다.
“송구한 말씀이지만 회주님께서 자진하여 낙향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옳습니다. 이주(함풍제의 휘)는 영웅약의 부작용으로 죽을 것이고 나라가 혼란에 빠질 겁니다. 그때부터 우리의 본래 세력인 강남을 시작으로 차츰차츰 진격하면 될 일이지요.”
“그래. 아무리 적게 잡아도 이십 년 정도 걸릴 일이로군.”
유일하게 성공한 계획조차 극히 일부만 성공하였다. 수백 명의 만주족이 아닌 함풍제를 영웅약에 중독 시키는 계획의 파편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번 기회를, 함풍제의 죽음으로 인한 권력 공백과 혼란을 놓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상황이었다. 기회를 잘만 노리면 황실을 대규모로 숙청할 수 있으리라.
또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대한제국에게 시간을 주면 안 된다.
홍수전은 이 요소들을 모두 고려한 다음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형제들을 소집하게 서신을 보내라. 거사는 내년 삼월 말일, 북경을 십만 대군으로 몰아친다.”
“하지만 아직 훈련 상황도 부족하고 대규모 전투에 대한 경험도 축적이 안 되어 있습니다.”
“더군다나 염군을 비롯한 세력들과 연계도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데요.”
“그럼 뭘 어떻게 하나! 그 극약을 여섯 달이나 복용하고도 이주가 살아 숨 쉴 것 같나? 적어도 거사 두 달 전에는 소집을 완료하도록!”
홍수전은 부하들의 조언을 계산해 두었다. 자신 휘하의 객가군은 지방의 소규모 민란을 진압했을 뿐 대규모로 교전을 벌인 인원은 기껏해야 3만여 명에 불과하다.
여기에 보급체계도 엉망이며 거사를 벌일 시기는 농번기(農繁期)이다. 한창 농사를 지을 봄철에 거사를 벌인다면 수많은 이들이 굶주림에 시달려 군을 이탈하리라.
그러나 함풍제가 죽고 혼란이 벌어진 순간 외에는 답이 없었다. 더 시간을 끌면 혼란이 정리되고 자신은 서태후와 함께 반드시 숙청당할 운명이다.
“이대로 있으면 남는 것은 궤주 외에는 없다. 한 번이라도 거사를 치러 봐야 하지 않겠나.”
홍수전은 명령을 하달하면서 초조하게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움켜쥐었다. 절대로 원하지 않던 시기에 원하지 않던 방식으로 거사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작가의 말
서태후에 대한 고증을 지키면 어떤 장르가 되는지 궁금해하시는 분이 많이 계시더군요.
그래서 서태후에 대한 고증을 지키면 벌어지는 일을 초반부에 적어두었습니다. 심지어 묘사도 다 못 했습니다.
서태후는 고증을 지킬 수도 없고 지켜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