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286화 (344/345)

286화

23장 2화 파국(1)

예정대로 1859년 9월 말, 대한제국에서 1년 동안의 교육을 마친 의원들이 돌아왔다.

의원들이 돌아온 시기는 하필 홍수전이 남경 일대에서 활약할 반란군 조성을 위해 암약을 펼칠 때였다.

자연스럽게 의원들은 공친왕을 비롯한 만주족에게 보고를 올렸다.

“나라의 사방팔방에서 모인 의원들이 부족한 재주를 아뢰옵나이다. 조선에 일 년 동안 머무르며 의술을 배우고 손재주를 익혀서 돌아왔사옵니다.”

마침 프로이센에서 돌아와 개혁을 준비하는 공친왕은 외과의들을 보면서 나름 기대에 부풀어 올랐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였는지 군살이 쏙 빠져 있었다.

유럽 열강 프로이센에서 수많은 문물을 배운 덕분에 청나라가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 잘 알고 있었다. 공친왕은 아편에 중독된 형 대신 의원들의 실력을 검증하기 위해 움직였다.

“아주 잘하였구나. 그러하면 너희들이 어떠한 의술을 익혔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천 명의 의원들 중 실력이 우수한 백 명이 선발되었고 이들에게 북경에서 발생한 외상 환자 오십 명이 배정되었다. 그 첫 단계는 환자에 대한 분류부터 시작되었다.

“일단 이 환자들은 가망이 없습니다. 골수가 드러날 정도로 뼈가 으스러지고 몸 밖으로 튀어나왔다면 수습할 길이 없지요.”

“보로서에서도 이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으면 답이 없더군.”

“그 말씀이 옳습니다. 이들은 몸이 안정을 찾은 뒤 사지를 절단하겠습니다.”

중상자들은 분류한 다음 수습할 가능성이 있는 경상자들에 대한 치료가 시작되었다. 사고를 당해 살가죽이 뒤집힌 사람이나 날붙이에 근육이 찔린 사람들의 사지가 꿰매어졌다.

알코올과 요오드팅크를 사용해 환부를 소독하고 세척하며 체계적으로 봉합 작업에 들어갔다. 아직 혈관을 잇는 봉합 기술은 개발되지 않은 시대라도 모든 치료를 한 것이다.

집기들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석탄산, 페놀 용액으로 소독되고 오토클레이브의 고온 처리를 거쳐 멸균되고 다시 사용되었다. 마지막으로 환부에 설파제 가루를 뿌린 외과의들이 수술을 종료하였다.

공친왕은 그 약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땀을 닦고 어깨를 두드리는 의원들에게 질문을 하였다.

“그 약은 조선에서 만들어 낸 설파제인가?”

“그렇사옵니다. 전하께서 보신 대로 조선의 의원들이 선물로 내어준 것이옵니다.”

“참으로 손이 큰 자들이로군. 그토록 비싼 약을 선물로 선뜻 내어줄 줄이야.”

대한제국이 독점 제조하는 설파제는 유럽에 수출하는 물량조차 빠듯할 지경이었다. 그나마 공식 계약을 맺은 유럽도 암거래가 성행하는 상황이며 청나라는 부르는 것이 값이었다.

공친왕을 설파제를 아낌없이 사용한 환자들은 대부분 감염을 일으키지 않고 회복될 것이라 추측하였다.

이후 며칠이 지나자 결과가 드러났다. 대조군으로 기존 치료를 받은 환자들은 아직도 회복하지 못하였는데 새 방식의 치료를 받은 환자들의 상태가 좋아졌다.

“놀라운 일이로군. 쉰 명의 환자 가운데 마흔두 명이 차도를 보일 줄이야.”

“공친왕 전하께서 저희를 믿어주신 덕분이옵니다.”

“자네들의 손재주가 뛰어나고 조선에서 좋은 약을 전달한 덕분이지. 일단 포상을 내리겠다.”

두둑한 은자를 받은 의원들은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이 정도 부상도 치료하지 못 하는 청나라에 적잖이 실망하였다.

아무리 1년에 걸친 교육을 받았어도 격차는 명확하였다. 자신들의 실력은 대한제국 기준으로 한적한 시골에서 간혹 왕진에 나서는 의사 수준에 불과하다

좀 더 의술에 정진하고 더 많은 기술을 익힐 필요가 있었다. 의원들의 굳은 표정을 확인한 공친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니 앞으로의 일을 고민하고 있는가?”

“송구한 말씀이오나 부족한 것이 많사옵니다.”

“부족한 것이라 하면 설파제를 비롯한 약물이겠지. 천하의 명의도 약이 없으면 침 몇 대를 놓는 것이 전부인데 칼을 대는 의원들이 오죽하겠느냐.”

공친왕은 혀를 차며 설파제의 독점이 끝날 시기를 유추하였다. 잘만 하면 자신이 생산을 요청하고 한창 기술을 배워 양산 준비에 들어가는 영웅약 기술자를 사용할 수 있으리라.

문제가 있다면 영웅약의 생산 공정 담당자들이다.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권력의 핵심에 접근한 의비, 본래 역사의 서태후가 홍수전이라는 관료를 제치고 이들을 거머쥐었다.

서태후와 사이가 좋아도 권력을 선뜻 내어주기는 힘든 입장이었다. 그래도 억지로 일을 틀어 일을 힘들게 하느니 약간의 빚을 지워줄 생각을 품고 의원들에게 말하였다.

“앞으로 의비 휘하의 기술자를 통하여 설파제를 만들어 낼 기반을 마련할 것이다.”

“그리되면 실로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사옵니다. 다만 설파제는 만들기 지극히 힘든 약물이니 이를 몇 년 동안 생산할 방도가 없을 것이옵니다.”

“염려하지 말라. 설파제만큼 만들기 힘든 영웅약 생산을 의비가 담당하고 있다. 약의 종류는 달라도 손재주를 갖춘 사람이 다른 약을 만드는 것은 비교적 쉬울 것 같구나.”

“의비께서 영웅약 생산을 담당하신다고 하셨사옵니까?”

의원들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청나라에서 영웅약을 생산한다 하였는데 일개 의원이나 공장에서 소규모로 초기 생산을 시도할 것이라 예측하였다.

그러나 일개 의원이나 공장이 아닌 조정에서 대놓고 생산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엄청난 양의 극약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리라.

반면 공친왕은 이들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대한제국에서 배울 때에 영웅약의 사용법을 알 정도로 많은 지식을 습득한 것이리라.

“여쭈어 볼 것이 있사온데 영웅약이라는 약을 생산하는 기술이 마련되어 있다 하였사옵니다. 그러하면 얼마나 많은 양을 양산하고 계시옵니까?”

“아직 시범 생산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상세한 일은 의비를 만나 논하도록 하라.”

의원들은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본래 역사의 서태후, 지금은 의비에게 안내를 받았다. 하필 의비를 먼저 접견한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영국에서 보내온 대사들이었다.

“오늘 방문은 저희가 인사를 드리기 위함입니다. 동양의 예법에 의하면 지극히 높으신 분과 안면을 트는 일도 예의를 다 하기 마련이라 하였습니다.”

“예전에 방문하였던 영길리의 신료들과 사뭇 다른 모습이군.”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당시에는 저희가 동양의 예법에 미숙하여 결례를 끼쳤습니다.”

영국에서도 대한제국과 마찬가지로 희생양으로 사용할 질이 낮은 대사들을 파견하였다. 이들은 부패하지는 않되 체면이고 뭐고 없이 서태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선물을 보냈다.

최고급 유리 제품을 한 아름 선물한 영국 대사들이 인사를 올리고 사라졌다. 의원들은 이들의 뒤를 이어 서태후와 접견을 실시하였다.

“어서 오시오. 공친왕께서 말씀하시기를 설파제라는 약물이 꼭 필요하다 하였는데.”

서태후는 자신 앞에 광명이 비추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토록 오만하던 영국인들이 자신에게 굽실거리며 대놓고 청탁을 요청하였다.

여기에 한 번 거머쥔 기술자들을 요긴하게 사용하도록 설파제라는 새 약물을 개발할 필요성까지 생겨났다.

이후 설파제의 효능에 대해 대화가 오갔다.

“과연, 열을 내리고 화농을 잠재우는 데 효과적이라. 이 어찌 좋은 약이 아닌가.”

“하온데 다른 문제도 있사옵니다. 바로 의비 전하께서 담당하시는 일과 관련되었사옵니다.”

“문제라? 내가 담당하는 일이 무엇이 있다고?”

“지극히 흉험한 극약인 영웅약의 생산을 즉각 중단하여 주시옵소서.”

일개 의원이 국가 정책에 대해 내뱉자 서태후는 입술을 달싹거리며 눈을 굴렸다. 그러고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더듬거리며 답을 내뱉었다.

“여, 영웅약이 흉하, 흉험한 극약이라?”

“조선에서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영웅약은 부작용이 지극히 심하여 복용한 사람이 몸을 가눌 수 없는 폐인이 될 것이라 하였사옵니다.”

청나라에 파견된 프로이센 화학자들의 정보는 제한적으로 전달되었다. 이미 청나라의 예산을 물 쓰듯 사용하며 생산에 몰두하였는데 이 과정을 중단할 수 없었다.

이들은 오로지 헤로인이 금지약물로 지정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기술자들을 닦달하고 있었다.

당연히 서태후는 목청을 높여 고함으로 화답하였다.

“지금 뭐라 하였느냐!”

“소인은 올바른 말을 하였사옵니다. 영웅약을 당장 폐기하여 주시옵소서.”

“네놈들이 헛소리를 하는구나!”

끌고 가서 목을 베라는 말을 하려던 서태후는 이들이 공친왕의 소개를 받아 자신에게 왔음을 떠올렸다. 이들을 함부로 죽였다가는 공친왕의 체면에 먹칠을 하는 격이다.

어쩔 수 없이 서태후는 분노를 삭이며 손짓을 하고 말하였다.

“간언은 받아들여야 하는 법이다. 다만 국가의 일이 번잡하니 하나하나 따져보고 검증한 다음 논하도록 하겠다.”

일단 의원들에게 돌아가라는 명령을 내린 서태후는 콧김을 뿜으며 성질을 다스렸다.

서태후는 청나라의 안정 대신 자신의 권력과 사치에 집착하였다. 아직 비(妃) 신분에 불과하여 사치에는 제약이 걸려 있었지만 권력에 대한 욕심은 다른 누구와 견줄 수 없는 인물이었다.

본래 역사에서 청나라의 마지막 희망인 변법자강운동의 싹을 잘라버린 자가 서태후이다. 그녀는 나라의 운명 대신 자신의 권력을 택해 자신의 조카 광서제를 유폐하였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대규모 숙청으로 청나라를 더더욱 무너트렸다. 마무리로 자신에 대한 반발을 억누르기 위해 의화단을 구슬려 자신의 친위세력으로 삼았다.

결국 의화단은 북경에서 학살과 파괴를 자행했고 8개국 연합군이 청나라를 공격하였다. 사실상 병들어 죽어가던 청나라의 목을 졸라 죽인 행동을 저지른 것이다.

그 지독한 권력욕은 아직 젊은 서태후도 가지고 있었다. 서태후는 이를 부득부득 갈아대며 분을 삭이다가 사태에 대해 왜곡된 결론을 내렸다.

“내가 영웅약에 대한 말을 하자마자 바로 답변이 나왔어. 이미 다른 누군가의 끄나풀이 되어 영웅약에 대한 헛소문을 퍼트리려고 준비하는 것이 분명하구나!”

“하오나 진실을 담은 간언일 수도 있지 않사옵니까? 화를 억누르시옵소서.”

시녀가 화를 달래기 위해 찻잔과 찻주전자를 가져오자 서태후는 코웃음을 치며 뜨거운 물이 담긴 찻주전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찻주전자를 잡고 시녀의 머리에 세차게 내리쳤다.

“네년이 무얼 안다고 입을 놀리느냐!”

은제 찻주전자에 맞은 시녀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기절하였다. 시녀의 얼굴에 뜨거운 물이 쏟아져 화상으로 인한 물집이 생겨나자 서태후가 명령을 내렸다.

“이년을 오늘 나에게 헛된 말을 하였던 의원들에게 보내 치료를 시켜라. 먼 변방까지 보내되 감시를 충분히 붙여 몇 년 동안 말이 새어나가지 않게 하도록.”

시녀가 방 밖으로 실려 나가자 서태후는 눈살을 한껏 찌푸리더니 분노를 삭여가며 명령을 재차 내렸다.

“조선에서 돌아온 의원들에게 포상을 내리는 척 며칠 동안 환대를 하라. 그동안 술을 먹이고 구슬려 삶아 이들의 속마음을 알아내도록.”

생각 같아서는 누명을 뒤집어씌우고 고문하여 정보를 누설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공친왕이 자신에게 소개한 인물들인지라 서태후조차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대신 새로운 기술을 배운 사람들을 접대할 명목으로 정보를 빼낼 생각을 하였다.

며칠이 지나고 서태후의 명령을 받은 관리들이 돌아와 보고를 올렸다.

“의원들이 워낙 완고한 태도로 임하는 바람에 대화를 함부로 논하지도 못하였사옵니다.”

“네놈들이 무능한 것이 아니더냐?”

“노여움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그래도 술을 먹여 여러 정보를 입수하였사옵니다.”

멀쩡한 정신에서 하는 말과 술에 취해 아무렇게나 내뱉는 말의 무게는 다르다. 파편적인 정보를 많이 입수한 것에 불과하여 서태후의 눈썹이 휘며 다시 격정을 터트리려 하였다.

“하온데 술을 잔뜩 먹이고 취하게 한 결과 대부분의 의원이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같은 말을 하였다? 대체 무슨 말이더냐?”

“객가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모두 다 서로를 헐뜯거나 비방하다 싸움을 벌일 정도로 술을 거하게 먹였는데도 객가에게 대한 분노만큼은 모두 다 가지고 있사옵니다.”

“또한 영웅약이 극약이라는 정보 또한 동일하였사옵니다.”

서태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관리를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의원들의 신상명세에 대해 다시금 캐물었다.

“혹여나 객가들과 계투(械鬪)를 벌인 지역의 의원들에 한정된 이야기 아니더냐?”

“애초에 의원들을 보낼 적에 이들의 인선을 담당한 관리가 홍수전이옵니다. 계투를 벌인 사람을 선발할 이유도 없지요.”

“그렇지. 태상황께서 은혜를 내리시어 비루한 주제에 좌도어사로 활약하는 분수 넘는 놈이 주도한 일이기는 하지.”

서태후는 눈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금실로 수 놓인 화려한 옷자락을 내려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놓인 여러 요소를 나름대로 정리하여 머릿속에 펼쳐놓았다.

먼저, 자신과 친밀한 공친왕이 프로이센에서 영웅약 생산 공정을 들여왔다.

그 공정을 주제넘게도 홍수전이 선점하였다. 이후 수많은 사람을 동원해 기술을 가르쳤다.

여기서 자신이 정당하게 개입하였다. 주제 넘치게도 홍수전은 영웅약 생산 공정 담당자를 갈기갈기 찢어놓아 기술이 유출되지 못하게 막아버렸다.

그 이후 분쟁을 벌이던 홍수전이 조선의 의료 기술을 배워오자는 간언을 올렸다.

홍수전이 선발하여 조선에 다녀온 의원들이 자신이 생산하는 영웅약의 위험성을 주장하였다.

마지막으로, 그 의원들은 하나같이 짜고 친 것처럼 객가를 혐오하고 있었다.

“이 비루한 천것이 감히 내 공로를 막아서려 해!”

“의비 전하? 홍 좌도어사가 대체 무슨 일을 하…….”

“그놈에게 좌도어사라는 직함을 붙이다니! 닥치지 못할까!”

서태후는 목에 핏대를 세우고 이를 부득부득 갈아가면서 분노를 담아 고함을 쳤다. 한참 동안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부린 서태후는 시녀들에게 옷깃과 머리를 정돈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러고는 코웃음을 치면서 자신 나름대로 결론을 정리하여 설명을 하였다.

“내가 보기에는 홍수전 이놈이 배가 아픈 나머지 의원을 이용한 것 같구나. 내 영웅약 생산과 관련하여 흠을 놓기 위해 의원들에게 헛소문을 퍼트렸을 것이다.”

“하오나 술을 잔뜩 먹여 취한 의원들이 홍수전을 비롯한 객가를 혐오하였나이다.”

“그게 본심이라는 보증이 있더냐? 돈을 주고 명령을 내린 홍수전에 대한 이야기를 피하려 한 행동이다. 너희가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으니 성공한 것이고!”

권력의 야욕에 미친 서태후에게 의원들의 간언은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간언은 극단적인 역효과를 불러오기까지 하였다.

서태후는 영웅약 생산을 담당하는 프로이센 화학자와 청나라 기술자들이 모인 전각으로 찾아갔다. 그러고는 다짜고짜 영웅약 생산 과정에 대해 질문을 하였다.

“슬슬 시제품이 나와야 할 시기인데 어떻게 되고 있으신가요.”

“왕비께 고무적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놀랍게도 기술자들이 하루 두 명 정도가 복용할 수 있는 영웅약을 생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예상보다 몇 달이나 빠르군요.”

서태후의 예상보다 빠른 생산 속도는 모두 다 프로이센 화학자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아예 밤을 지새워가며 담당 기술자들에게 1:1로 교육을 실시하기까지 하였다.

그 결과 진도가 빠르고 손재주가 좋은 기술자들 몇 명이 마침내 완성품까지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프로이센 화학자들은 하품을 참아가며 서태후에게 아부를 떨었다.

“저희가 노력을 좀 많이 하였습니다.”

그들은 억지웃음을 섞어가며 서태후의 비위를 맞추었다. 본국에서 이미 헤로인과 관련된 인체 실험 결과가 나왔고 끔찍한 결과를 도출하였다.

헤로인은 사람을 바로 죽이지 않을 뿐 시한부 인생으로 만드는 끔찍한 약물. 아무런 약도 통하지 않을 때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약물로 전락하였다.

그의 양심은 헤로인에 대한 모든 사실을 털어 놓으라며 머릿속에서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나 계약 파기로 인한 손실과 눈앞으로 다가온 교육 완료는 그 양심을 억눌러 버렸다.

“이것이 청나라에서 최초로 생산한 영웅약입니다. 열 명이 복용할 수 있지요.”

“소금처럼 새하얀 가루라. 그나저나 조제가 잘못되어 독이 섞이진 않았겠지요?”

“이미 동물실험을 거쳐 위험을 확인한 물건이니 안심하시지요.”

서태후는 완성된 헤로인이 들어있는 시험관을 이리저리 기울여 보고 생각에 잠겼다. 본래 계획은 영웅약 대량 유통으로 아편이라는 두 글자를 걷어내는 영광을 거머쥐는 것이었다.

반면 그 계획을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몇 달만 시간을 지체해도 홍수전의 부하들, 청나라 전역으로 퍼져나간 의원들이 홍수전의 명령에 의해 소문을 퍼트리리라.

그렇게 되면 자신이 담당한 영웅약 생산도 물거품이 되고 예산을 허투루 사용했다면서 여기저기서 공격을 당한다. 이 거대한 함정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단 하나였다.

“안전을 보증하였다면 다 된 일이로군요. 보름 뒤에 영웅약의 시범 투여를 실시하겠습니다.”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겠습니까?”

“지금 조정의 일에 관여하려 하십니까? 아무 말 말고 한 명이 먹을 수 있는 가장 순도가 높은 영웅약을 잘 배분해 준비해 주시지요.”

서태후는 얼음장같이 냉랭한 목소리로 일방적인 선언을 하였다. 영웅약을 처음으로 먹고 아편 중독을 극복할 사람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청나라의 황제인 함풍제이다. 자신의 공로로 아편 중독에서 해방된 함풍제는 조정에 거대한 폭풍을 불러오리라.

특히나 선대 황제인 도광제가 발탁한 신하. 자신도 함부로 누명을 씌워 죽일 수 없는 눈엣가시 같은 홍수전을 제거할 수 있는 능력과 권위를 갖추고 있었다.

모든 일을 마치고 자신의 전각으로 돌아온 서태후는 저녁 만찬을 즐기기 전 자신에게 면담을 신청한 사람들을 마주하였다.

자신의 앞길을 비추듯 영국 대사들이 또다시 선물을 바쳤다.

“의비 전하께 영국 사절단 일동이 다시금 선물을 바치옵나이다.”

“얼마 전에도 방문하신 것 같은데 재차 방문하시다니요.”

“자고로 선물은 세 번을 주어도 모자라며 존귀한 분에게는 아홉 번을 드려도 되지요.”

영국 사절단은 금과 은이 수 놓인 서양식 마차를 준비해 서태후에게 선물로 바쳤다. 마차를 몇 번이고 확인한 서태후는 답례로 이들의 공장 설립 관련 서류를 잔뜩 처리해 주었다.

여기에 자신에게 뇌물을 바친 공로를 인정하여 아무도 공장 운영에 토를 달지 말라는 명령도 포함하였다.

영국 사절단이 돌아가자 서태후는 만찬을 즐기며 말하였다.

“조만간 영웅약을 드신 황상께서 정무에 임하실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에게 굽실거리며 조공을 바치는 영길리의 악적들과 함께 이 나라를 다시 본래대로 돌릴 것이고.”

“모두 다 의비 전하의 공로이옵나이다.”

“나라를 올바로 만들고 계시오니 그 공이 하늘에 닿을 지경이옵나이다.”

서태후의 행동은 홍수전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만들어 버렸다.

자신의 계획과 완전히 어긋난 서태후의 전횡으로 인해 모든 것이 어긋나기 시작하였다.

#작가의 말

서태후에 대한 고증을 살리지 못한 점 대단히 죄송합니다

고증을 다 살리면 소설 장르가 변경되거나 검열당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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