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화
22장 9화 수레바퀴(3)
몽골계 미국인들은 전체 부대를 4개로 나누어 진군하기로 하였다. 이 중 가장 큰 규모의 부대는 알타이가 담당한 본대였다.
“소르칸 주지사님께서는 후방 보급 부대를 담당하신다. 병참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똑똑히 알고 있겠지?”
“네! 알고 있습니다!”
총 인원 2,400명의 본대는 바토르-카우보이-몽골계 미국인으로 알차게 구성된 기병 집단이었다. 이 본대 규모만 따져도 지금까지 미국이 동원한 토벌 부대 중 가장 큰 규모였다.
여기에 셔먼과 저격병들이, 혹시나 모를 애꿎은 부족과 시비가 붙을 때를 대비한 고야슬레와 몇 명의 원주민들이 함께하였다.
알타이는 작전 설명을 마친 뒤 셔먼을 한 번 바라보고 고야슬레를 슬쩍 흘겨보았다. 그러고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하였다.
“마을 규모가 예전 정찰을 다녀왔을 때 보다 커진 것 같군. 기껏해야 쓸 만한 병사 사백 명 정도가 있던 마을이 언제 이렇게 커졌지?”
“제가 나름대로 항복을 종용했더니 마을 몇 개가 연합한 것 같습니다. 좀 전에도 항복을 종용하였지만 듣지를 않더군요.”
고야슬레가 고개를 숙이며 잘못을 반성하려 하자, 알타이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답했다.
“네 행동 덕분에 오히려 일이 편하게 되었다. 이 능선과 협곡 사이에 즐비한 마을들을 하나하나 공격하느니 한 자리에서 모조리 죽여 버릴 수 있게 되었어.”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고야슬레가 인사를 올리자 다음으로 셔먼이 헛기침을 하였다. 그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가며 알타이에게 부탁 하나를 하였다.
“그 수레바퀴라는 걸 하기 전에 열 명 정도의 생생한 인디언 놈들을 남겨두시오.”
“오호, 어디에 쓰시려고?”
“벌판을 달려 도망가게 해놓고 저격수들이 쏘면 적당한 실전 훈련이 될 것 같군.”
“이 양반 수레바퀴에서 재미를 찾으려 하는군. 알겠소! 아주 생생한 놈으로 남겨두지!”
셔먼은 자신의 생각이 옳기를 바라며 고개를 돌려 본영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어디에 쓸지는 모르지만 사람 몇 명이 들어가 목욕을 해도 될 법한 거대한 솥이 있었다.
여기에 유통기한이 지나가 산패하기 시작한 소기름과 암염 덩어리들이 수없이 쌓여 있었다.
이 물건들의 용도를 궁금해하던 중 알타이가 진군 신호를 보냈다.
“미리 이야기한 대로 바토르가 나중에 정면으로 돌격한다. 미리 초병(哨兵)을 제거해 뒀으니까 애송이들! 우리 뒤를 따라 조용히 마을의 동, 서 양면을 포위한다!”
알타이와 몽골계 미국인들은 조를 이루어 좌우로 갈라졌다. 이후 바토르들이 하나둘씩 말에 올라 성호를 긋고 기도를 올리며 돌격을 준비하였다.
마을의 남쪽 방면은 진입로이자 기습에 최적화된 장소였다. 사방에 능선과 골짜기가 뒤엉켜 있고 바위와 숲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바토르! 천천히 진군하라! 우리가 할 일은 적의 본대를 묶어두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퇴각 명령을 내리면 즉시 퇴각하라! 후퇴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패배가 부끄러운 것이지!”
몽골 제국시절부터 정형화된 전술 교리는 서양의 것과 달랐다. 소규모 부대로 분열하여 적의 감시를 뚫고 포위 진영을 형성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돌격대, 바토르였다. 아직 산개와 재집결 개념을 익히지 못한 미숙한 병사들은 자신의 몸을 미끼로 삼아 적의 본대를 끌어냈다.
“천천히 속도를 올려라! 인디언 놈들이 우리를 보고 바짝 달아오르게 만들어!”
간부들은 사방에서 바토르를 인솔하며 명령을 내렸다. 어떠한 수도 감추지 않고 돌격하는 모습에 아파치 부족의 전사들은 고함을 치며 적의 습격을 알렸다.
“흰둥이들이 온다! 아니다! 검은 놈들이 온다!”
“뭔 늑대와 춤을 추는 소리야! 검은 놈들이 어떻게 말을 타!”
고함과 나팔소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적의 습격을 알렸다. 사방의 능선과 계곡에서 총과 활을 거머쥔 아파치 부족 전사들이 벌떼처럼 튀어나왔다.
“쏘고 빠져라! 빠질 때는 뒤엉켜 짓밟히지 않게 움직여라!”
“측면에 있는 놈들은 가운데로 나가! 선두에 있는 놈들은 측면으로 빠져!”
미군 기병대라면 사방에서 공격을 당해 정신이 없을 상황이지만 몽골에서 수없이 많은 전투를 치른 이들은 달랐다. 이미 기습 이전에 사격 후 이탈 명령을 내리고 대열을 조율했다.
“나도 이젠 몰라! 쏘면 맞겠지!”
선두에 있던 조슈아 툼은 등에 메고 있던 라이플로 대충 적의 방향으로 한 발을 쏘았다. 적이 명중하건 말건 반사적으로 대열 외곽으로 빠져 권총을 대충 쏘아대며 후방으로 퇴각했다.
수없이 말안장 위에서 시달리고 온몸에 피멍이 솟구칠 때까지 두들겨 맞아가며 배운 전술이었다. 그들은 이미 활 대신 권총을 사용하는 스웜(swarm) 전술을 강제로 체득한 것이다.
사방에서 기습을 시도한 아파치 전사들은 탄환 세례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기습에 실패하였다.
대열 후방을 호위하던 간부는 바토르들의 등판을 보며 중얼거렸다.
“활을 쏠 때는 절대 못 하던 일을 총을 쏘니 개나 소나 다 하는군.”
쏜살같이 진군장소로 돌아간 대열이 다시금 정비를 시작하였다. 라이플을 장전할 실력은 안 되더라도 문 클립을 이용하여 권총을 장전할 정도의 시간은 벌 수 있었다.
다음 돌격을 맞이한 아파치 부족은 기습을 포기하였다. 능선으로 무질서하게 돌격하는 미군 기병에게 쓸 법한 전술을 치고 빠지는 바토르를 상대로 오히려 손해를 보는 전략이었다.
“놈들이 멈춰서 총을 조준한다!”
“다들 미리 빠져라! 쏠 생각은 꿈에도 꾸지 말고 빠져!”
그대로 스웜 전략을 감행하면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간부들의 판단에 의해 미리 대열을 돌린 덕분에 별다른 손해 없이 재정비를 시도할 수 있었다.
약이 바짝 오른 아파치 전사들은 더 이상의 기습을 포기한 채 대열을 형성하였다.
이들은 상대의 실력을 간파하고 정면 승부를 감행할 태세였다.
“다시 돌격! 이번에는 어우러져 싸울 수도 있다!”
“인디언 놈들과 뒤엉키게 되면 네 목숨은 네가 지켜라!”
이대로 계속 싸운다면 큰 피해를 입더라도 적을 몰아낼 수 있으리라.
그런 마음을 품은 아파치 전사들이 먼저 말을 돌격시켰고 바토르들도 전력으로 말을 몰았다.
“조금만 버티면 된다!”
“그 조금이 언제까지입니까!”
“닥쳐 조슈아! 적을 쏴 죽이라고!”
아파치 전사들과 바토르들의 진영이 좁혀지자 탄환이 양 진영으로 쏟아지며 격전이 시작되었다. 노예 신세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과 자신의 땅을 지키려는 몸부림이 뒤엉켰다.
바토르들의 콜트 타타르가 불을 뿜으며 아파치 전사의 목숨을 끊었다. 반대로 아파치 전사들도 총을 쏘고 도끼를 던지며 상대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사력을 다하였다.
“으악! 아욱! 한 대 맞았어!”
몸을 바짝 숙인 채 권총을 장전하던 조슈아 툼은 등에서 일어나는 불길에 몸을 뒤흔들었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몸을 뒤로 돌려 권총을 쏘았다.
분전에도 불구하고 점차 바토르들이 수세에 몰려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파치 전사들은 지금까지 수많은 싸움을 거치며 단련되고 그 경험을 전수받은 이들이었다.
그러나 바토르들은 노예 신세에서 벗어나려는 의욕만 지닌 미숙한 전사들이다. 점차 바토르들의 눈에 공포가 맴도는 모습을 확인한 조슈아가 목소리를 높여 간부에게 말하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얼마 못 버팁니다! 놈들이 더럽게 잘 싸웁니다!”
“그래! 놈들이 얼마 못 버티겠지!”
전장의 열기가 싸늘하게 식어가기 시작하였다. 아무 일도 없어야 할 마을은 이미 사방이 포위되었고 그 포위망을 형성하고 남은 지원군이 적의 후방을 향해 진격하였다.
“지원군이 온다! 놈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막아!”
“도망가지 못하게 어떻게든 막아라! 놈들이 숲속으로 도망가면 따라붙으라고!”
간부들은 이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명령을 내렸다. 사기가 떨어진 바토르들에게 맞서 싸우라 하면 명령을 회피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퇴각하는 적을 물고 늘어지라는 말이라면 달랐다. 몇몇 아파치 전사들은 말을 놀려 쏜살같이 달아나려 했지만 그 뒤를 바토르들이 바짝 추격하며 외쳤다.
“여기입니다! 이쪽입니다! 놈들이 달아나고 있습니다!”
“아주 잘했다! 잘했다고!”
이미 탄환을 쏟아낸 아파치 전사들은 더 이상의 저항이 불가능했다. 바토르 상대라면 장전할 틈을 벌 수 있었겠지만 상대는 카우보이와 몽골계 미국인들이었다.
곧이어 본래 미군 기병대를 끌고 들어와 상대하던 숲속에서 아파치 전사들의 단말마가 들려왔다. 이들이 지키려고 했던 마을 또한 사방이 공격당하고 있었다.
마침내 대규모로 연합한 아파치 부족의 본진이 무너졌다. 목책은 무너지고 수많은 몽골계 미국인들과 카우보이들이 마을 안으로 난입하기 시작했다.
“끼야아앗호! 난 인디언 죽이는 게 너무 좋아!”
“뒈진 인디언 피 냄새보다 좋은 냄새가 없지!”
“흥분하지 마라! 눈먼 창보다 위험한 건 없다!”
몽골계 미국인들은 마을 내부를 빠르게 돌아다니며 권총을 난사했다. 각자 여섯 정 이상의 권총을 바꿔가며 쉴 새 없이 총알을 퍼부어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의 수를 줄여나갔다.
“총알 아깝다! 자질구레한 놈들은 카우보이가 담당해라!”
그다음으로 진입한 카우보이들은 움직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총을 난사했다. 어린아이는 물론 아녀자들도 총탄에 맞아 바닥을 뒹굴었다.
본래 전사였을 원주민 청년은 양다리에 총을 맞은 채 바닥을 버르적거리며 기어갔다. 그의 허리춤에는 하필 전리품으로 챙겨둔 백인의 머리 가죽이 끈으로 묶여 있었다.
“저 새끼는 죽이지 마! 내 친구의 머리 가죽을 벗긴 놈들에게 복수할 거야!”
“주변 엄호해! 이 친구 말에서 내린다! 엄호!”
“저 새끼 혼자서만 즐기네!”
한 카우보이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전리품을 얻어낸 뒤 아직도 살아 있는 원주민의 얼굴을 계속 짓밟았다. 피가 허리까지 튀어 오르고 상대가 숨을 거두고 나서도 발길질이 계속되었다.
“아주 상쾌해! 너무 재미있어! 언제나 이런 생활을 하면 좋겠어!”
조직적인 저항은 몽골계 미국인들이, 간혹 살아남은 전사들은 카우보이들이 처리하였다. 마을 전체에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가 진동할 무렵 저항하는 사람도 사라졌다.
상황을 어느 정도 정리한 알타이가 마지막으로 저항하던 사람의 뱃가죽 사이에서 단검을 꺼내며 크게 외쳤다.
“상황 보고! 각자의 아르반(10인대) 상황 보고하도록!”
“이쪽은 한 명 죽었습니다!”
“저희는 한 명 부상! 중상입니다!”
카우보이들은 부상을 입거나 죽은 동료를 확인하고 이를 갈아댔다. 여기에 마을 남쪽의 출입구가 열리며 가장 큰 역할을 해낸 흑인 바토르들이 합류하였다.
자신들의 적의 주요 병력과 정면으로 맞서 싸운 흑인들은 이 순간부터 카우보이의 친구가 되었다.
윌리엄 로건은 잠시 안면을 튼 조슈아 툼을 보고 질문을 퍼부었다.
“툼! 네놈의 십인대는 어떻게 되었나?”
“넷이나 죽었습니다. 가장 앞에서 돌격해서 총알에…….”
“이 멍청한 녀석아! 너도 부상자잖아!”
그의 등은 총알이 스치고 지나가 피가 허리춤을 적실 지경이었다. 그러나 툼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까딱거리며 답했다.
“이거요? 노예 생활할 때 채찍 한 방 정도 맞은 느낌인데요?”
“누가 널 노예라 하나! 넌 자유민이고 치료를 받을 자격이 있어! 어서 의무대로 가라!”
윌리엄 로건은 물론이고 카우보이들 대다수는 자신을 위해 총알을 맞아준 흑인들을 한 명의 사람이자 전우로 대접했다.
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다시금 증오가 끓어올랐다.
“하여튼 인디언 새끼들이 문제야!”
몸을 웅크리고 있던 원주민 노인은 로건의 발길질을 맞고 코와 입에서 피가 솟구치며 바닥에 뻗었다. 카우보이들은 아직도 전장의 흥분이 가시지 않은 채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제 승자의 권리를 쟁취할 차례였다. 그리고 또 다른 폭력이 마을 전체에 퍼져나갔다.
막 해가 지평선 아래로 저물어 갈 무렵 실컷 즐긴 카우보이들, 여기에 동조한 일부 흑인들은 서로 모닥불을 피우고 모여 앉아 쇠고기와 말고기를 즐겼다.
“적당히 해라 적당히, 이제 우리도 할 일이 있다니까.”
“스승님. 근데 우리 할 일을 다 한 거 아닙니까?”
로건과 동료 카우보이들은 마을을 약탈하며 얻어낸 장신구들을 한아름 목에 걸고 있었다. 여기에 아직 약탈에 익숙하지 않은 흑인들에게 ‘교육’을 시켜주었다. 이들은 원주민들의 일부분도 기념품으로 얻어냈다.
알타이는 이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이 마시던 럼주 병을 로건에게 건네며 칭찬하였다.
“넌 전장을 즐길 줄 아는군. 평소에도 이런 생활을 하는 건가?”
“에이, 스승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저희를 약탈하던 인디언 놈들을 정당하게 죽인 것 아닙니까. 같은 미국인에게 어떻게 이런 짓거리를 합니까?”
“정당하게 죽여? 죽음에 정당한 것이 어디 있나? 죽음은 평등한 거야.”
로건은 아리송한 표정으로 평등한 죽음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였다. 그 고민과 달리 알타이는 수레바퀴를 가져오는 동료들을 보며 턱짓으로 이를 가리켰다.
“지금부터 우리 방식의 해결책을 알려주지. 이것이 수레바퀴라는 것이다.”
“수레바퀴라는 물건은 세 살 아이도 압니다.”
아파치 부족의 생존자들은 자신들이 노예 신세가 되거나 억지 재판을 받고 사형을 당할 것이라 생각하여 눈물을 집어삼켰다.
곧이어 어린아이와 여성들이 분류되고 남성들이 마을 광장에 집결하였다. 셔먼을 위해 가장 싱싱한 젊은 남자 열 명을 남겨둔 다음 수레바퀴가 옮겨졌다.
“지금부터 칭기즈 칸의 위대한 법에 의거해! 놈들에게 수레바퀴를 굴리겠다!”
“수레바퀴의 시간이다! 모두 칼을 준비하라!”
“알타이 님! 너무 자비로운 말 아닙니까! 다리 달린 놈들은 다 죽이시죠!”
서로 어울려 술을 마시던 바토르와 카우보이들은 몽골어로 들려오는 대화를 듣고 대수롭지 않게 술잔을 부딪쳤다. 아마 생존자를 구타하거나 모욕을 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몇 초가 지나기도 전에 그 생각이 바뀌었다. 수레바퀴보다 키가 큰 사내가 지나가자 바로 배와 목에 칼날이 쑤셔 박히고 바닥에 허물어졌다.
“다음!”
그다음도, 다음도, 다다음도. 로건이 술을 한 잔 들이켜고 물을 한 모금 마실 동안 스무 명이 넘는 사람이 목과 배에 칼을 맞고 피를 뿜으며 싸늘한 시신이 되었다.
“저게 지금 뭘 하는 거야?”
“사람을 저렇게 죽여도 됩니까? 시장에 팔면 얼마나 하는데요!”
“파는 것이 문제가 아니잖아!”
지금까지 미국인들이 저지른 행동은 피해를 입힌 원주민을 대상으로 한 행패에 불과했다. 개미굴에 물을 붓고 밖에 나온 개미들을 모조리 밟아 죽이는 것에 가까웠다.
그러나 몽골계 미국인들의 행동은 궤가 달랐다. 이들은 개미굴을 에워싸고 단 한 마리의 개미도 남기지 않게 굴을 헤집으며 모든 개미의 다리를 철저히 뜯어내는 행동에 가까웠다.
“다음.”
“흐익! 살려주십…….”
“다음!”
조용히 가축을 도살할 때처럼 가급적 많은 피를 쏟아내며 대부분의 남자들이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중에는 부모와 자식도, 형제도 평등하게 죽음이 찾아왔다.
방금 전까지 전장을 즐기던 카우보이들도, 온갖 학대를 당하며 인간 이하로 살아가던 흑인들도 이 광경을 보며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결국 로건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하였다.
“너무하십니다. 우리는 승자의 권리를 쟁취했는데 왜 굳이 죽이십니까?”
“복수를 당하지 않으려면 다 죽여야 하지 않겠어?”
“우리와 맞서 싸웠어도 자신들의 고향을 지키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일어난 사람들입니다.”
로건은 자신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생각하였다. 그래도 같은 사람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어떻게든 중단시키기 위해 근거를 제시하였다.
“이 아파치 놈들이 죽어 마땅한 놈이라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고향을 지키기 위해 맞서 싸우고, 패하고, 죽고, 모든 것을 빼앗기지 않았습니까?”
로건의 설득이 끝나자 학살이 잠시 중단되었다. 그러나 알타이를 비롯한 몽골계 미국인들은 배를 잡고 웃어대다 다음 희생양의 목을 긋고 말하였다.
“그러니까 네놈들이 어설프다는 거다. 후손이 남고 세력을 구축할 기반을 남겨둬? 그러면 뭔 일이 벌어지겠어? 살아남은 놈들이 복수를 할 거 아니야!”
로건은 침을 꿀꺽 삼키고 알타이를 바라보았다. 틀린 말은 아닌 것이 그가 아는 원주민 가운데는 조상의 복수를 명분 삼아 백인들을 공격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상대를 겁에 질리게 한다고? 그 생각이 몇 년이나 가겠나! 그러니 모든 것을 빼앗아서 아예 없던 것으로 만들어 버려야지!”
“아예 없던 것이요?”
“다음! 일단 다 죽이고 나서 뭔 일을 하는지 알려주마!”
마지막으로 수레바퀴 앞에 서게 된 이들은 부족의 원로들이었다. 이들은 새하얗게 질린 채 오줌을 지리고 앞으로 다가온 죽음에 저항하려 하였다.
“너희는 다음에 처벌하도록 하지. 그럼 칭기즈 칸께서 내린 다음 명령을 본받아 이들의 다음 처벌을 이행한다!”
“이 마을에 살아 있는 건!”
“잡초까지도 모조리 죽여라!”
그다음으로 벌어진 일은 무분별한 파괴였다. 모든 병력이 마을 밖으로 물러나고 몽골 제국이 가장 잘하는 문명의 파괴가 시작되었다.
천막에 불붙은 소기름이 한 덩어리씩 올라가 맹렬한 불길이 치솟았다. 여기에 마을 광장에 쌓인 시신들도 하나씩 얹혀 시체 타는 냄새가 진동을 하였다.
모든 가축은 도살되었으며 가까스로 일구어낸 밭도 철저히 짓밟히고 암염을 녹인 진한 소금물이 부어졌다. 여기에 바스라트린 암염을 마구잡이로 뿌려 마을 전체를 뒤덮었다.
“이것이 복수다! 우리에게 감히 보복이라는 말을 꺼내지도 못하도록! 모든 장정을 죽이고 살아온 터전을 무너트리며 그들이 즐긴 모든 문물을 없애는 것!”
“이것이 접대의 관습을 무시한 죄! 우리에게 거짓을 논한 죄! 황금씨족의 후손을 살해한 죄! 우리 제자인 카우보이들을 죽인 죄! 그리고 마지막 기회를 저버린 죄이다!”
원주민을 즐겁게 죽이던 카우보이도 이런 방식의 보복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적을 모조리 죽여 없애고 뿌리까지 뒤흔들어 버리는 행위를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그저 구약성경에 나오는. 옛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적대한 몇몇 부족에게 내려진 천벌이나 하느님의 뜻이라 넘어갈 뿐이었다.
심지어 흑인 노예들조차 경악할 행위였다. 백인들은 자신의 조상을 노예로 부리기 위해, 혹은 무언가 이득을 얻어내기 위해 죽이거나 사로잡았을 뿐이다.
아무런 이득도 없이 상대를 말살하기 위한 순수한 복수가 이 자리에 있었다.
셔먼은 마을이었던, 이제는 풀 한 포기조차 자라지 않을 장소를 보며 착잡한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