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9화
22장 9화 수레바퀴(2)
각지에서 집결한 병력 가운데 가장 적은 이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이었다. 소르칸을 포함한 몽골계 미국인 입장에서도 이들은 전쟁터에 투입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무리 우리라도 양심이 있지. 너희들은 우리 보급 담당이나 해라.”
“서로 험악한 사이라도 이웃사촌 아니냐. 우리도 수레바퀴를 돌릴 때에는 가려가며 돌렸어.”
고야슬레와 타탕카 이요탕카를 비롯한 젊은 원주민 몇 명이 기록을 남기기 위해 핵심 간부에 합류하였다. 여기에 숫자를 보태는 이들은 몽골계 미국인들의 제자들이었다.
“알타이 스승님! 제자 윌리엄 로건이 카우보이 일백여 명을 이끌고 도착했습니다!”
“잘 왔다 로건! 네 녀석이 관목에서 자빠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텍사스는 물론 서부 전역에 퍼져 나간 카우보이들 대다수는 몽골계 미국인의 제자이자 친인척이었다.
이들은 서로 손을 후려치면서 옛이야기를 하였다.
“앤드류 녀석은 방울뱀에 물려서 죽었지요. 휴 피츠제럴드는 아파치 놈들과 싸우다 넷을 죽이고 총에 맞아 얼마 전 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저런, 그래서 복수를 하러 왔나?”
“당연합니다! 돈도 받고 복수도 하고!”
사방에서 몰려든 카우보이들은 대열 후방에서 말을 정돈하던 흑인들을 살펴보았다. 개중 먼 지역에서 목동 일을 하느라 소식이 늦은 카우보이들은 이들을 보고 질색을 하며 말했다.
“이 검둥이들을 왜 고용하셨습니까? 스승님의 일손이 달리면 이 제자를 부르시지요!”
“검둥이들? 네 후배이자 예비 바토르다. 장인어른이 내어준 놈들인데 애리조나에는 목화를 기를 수 없어서 대신에 토벌에 사용하려고 여러모로 가르쳤지.”
“바토르라. 예전에 스승님께서 전열에 서서 적의 화력을 받아내는 전사를 운영한 적이 있다 했습니다. 검둥이들이 쓸모는 있군요.”
“글쎄다? 한번 뭘 배웠는지 이야기나 나눠보지그래?”
카우보이들은 몇 년에 걸쳐 몽골계 미국인들의 모든 기술을 배운 사람들이다. 가장 기초적인 승마술과 전투에 필요한 기술은 물론이며 가축을 기르는 법과 다루는 법을 익혔다.
반면 흑인 노예 출신의 바토르들은 오로지 전투에 필요한 기술만 1년 내내 주입당한 초짜들이었다. 당연히 두 집단이 만나자 바토르가 호되게 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래도 같은 스승에게서 배운 처지라 큰 사고는 없었다. 소르칸은 점점 이어지는 집결 보고를 듣고 고개를 까딱거리며 만족한 듯이 서류를 작성했다.
“카우보이 이천여 명에 여기에 합류한 얼뜨기 이천여 명, 거기다가 예비 바토르 이천오백 명. 병력만 팔천여 명에 텍사스에서 고용한 보급대가 이만 명이 넘는군.”
“이 정도면 소르칸 님 혼자서 담당할 수 없는 거대한 규모가 되었는데요.”
“염병할, 아파치 부족 한 놈을 죽이면 이십 달러라는 상금이 너무 후했나.”
“기본 급료가 오십 달러 아닙니까. 뭐 말과 소를 더 팔면 얻을 수 있는 돈이지만요.”
사람이 너무 많아도 문제였다. 애리조나 주 임시 주지사인 소르칸의 권위로 다룰 수 없는 수준이며 텍사스 보안관 보조로 한 발 걸친 몽골계 미국인들이 나서도 관리할 수 없었다.
이러다가 몇 개로 조를 나누어 어설픈 토벌을 진행하면 아파치 부족이 포위망을 뚫고 달아날 수도 있었다.
소르칸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포기할 때쯤, 서신이 한 통 도착하였다.
“소르칸 님! 미래의 칸이신 링컨께서 서신을 보냈습니다!”
“링컨 칸께서 서신을! 당장 가져와!”
몽골계 미국인들에 대한 신설 법안을 통과시킨 링컨은 본래 역사와 달리 1858년 상원의원 선거에서 일리노이 주의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대선 후보를 노리고 있었다.
그는 반강제적인 법안을 유연하게 처리하였으며, 이민자들을 어떠한 문제도 없이 미합중국의 국민으로 편입시켰다.
정치적 성공을 거둔 링컨은 이번 ‘인디언 토벌’에서 벌어질 문제점을 예측하고 군부에 미리 요청을 넣어두었다.
소르칸은 무릎을 꿇은 채 이 서신을 읽기 시작했다.
-서신으로 알려주신 ‘아파치 부족에 대한 복수’ 건을 도와드리려 합니다. 상원의원 자격으로 이번 토벌에 대한 필요성을 논의하였고 실효를 보았습니다.
-토벌에는 체계적인 보급과 군대 운영이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의 능력은 부족하지 않으나 여러 방면에서 모인 지원군과 기타 인원들을 한 자리에서 지휘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쓸 만한 준장을 한 명 보내드리겠습니다. 예전 전쟁에서 명성을 떨친 사람입니다.
“오오 링컨 칸이시어! 당신은 정녕 현명한 칸입니다!”
링컨은 여러 고려 끝에 이번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노예 해방과 관련한 대립이 격화되는 미국은 언젠가 내전이 벌어질 것이다.
여기서 몽골계 미국인은 자신의 편을 들어 북부의 군대에 합류할 예정이다. 이번 토벌은 내전 이전의 사전 정리와 새로운 군대의 적응, 두 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소르칸과 몽골계 미국인들은 칸의 은혜라 생각하였다. 이윽고 병력들이 거의 다 집결할 무렵. 예정대로 연방 정부의 병력이 파견되었다.
기병이 대다수인 토벌대와 합을 맞추기 위해 라이플 엽병이 대다수인 부대였다. 거대한 마차를 타고 온 장성은 다른 누구도 아닌 윌리엄 테쿰세 셔먼이었다.
“국가의 명령을 받아 저 윌리엄 셔먼 준장이 여러분들의 군사 지휘권을 정리하고자 찾아 왔습니다. 애리조나 주 임시 주지사께서는 자리에 계신지요?”
“칸께서 보낸 장수이군요. 그러고 보니 당신 얼굴이…….”
“셔먼 치킨의 상표가 제 얼굴이지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셔먼은 부와 명성 모두를 거머쥔 장성이 되었다. 딱히 군사적으로 두각을 드러내지 않아 준장 지위에서 진급이 멈춰 있었지만 저격수 병과를 창설한 명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기에 톰을 통해 얻어낸 치킨의 레시피를 전 미국으로 퍼트리기까지 하였다.
그는 미국 연방정부에서 내린 명령장을 펼쳐 이를 고시하였다.
“이번 애리조나 준주 임시 주지사, 소르칸 메이어(Mayer)께서 수행하는 군사 작전의 모든 지휘권은 기존 인디언 토벌의 경력을 감안하여 제 감독하에 일임하겠습니다.”
셔먼의 역할은 총괄 참모이자 비상시의 지휘관 대리였다. 그는 소르칸이 큰 실수를 저지를 때에만 참모 역할로 전략을 수정할 예정으로 한 자리를 차지하였다. 여기에 휘하의 병력 삼백여 명은 멕시코 전쟁에서 활약한 저격수와 그 후임자들이었다.
저격수의 면모를 확인한 소르칸은 가장 먼저 셔먼이 타고 온 마차로 다가갔다.
“이 마차의 예비 바퀴는 있소?”
“그건 왜 물어보십니까? 있기는 한데요.”
“가슴팍에 살짝 모자란 바퀴라서. 적당히 죽일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나 주시오.”
이해할 수 없는 대화를 들은 셔먼은 수레바퀴로 점을 치는 관습이라 오해하였다. 그는 대충 130㎝ 정도 지름의 바퀴를 하나 내어주라 하고 손짓을 하였다.
“작전 계획부터 확인합시다. 제가 토벌 경험이 좀 많은 편이라 해드릴 말이 많군요.”
“미래의 칸께서 보낸 분인데 어련하시려고. 그럼 잠시 들어가 먼저 쉬고 계시오.”
지휘관 막사를 겸한 거대한 게르가 준비되어 있었다. 셔먼이 짐과 서류를 꺼내는 사이 흑인 노예출신 바토르 한 명이 게르 내부를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있었다.
예비 바토르 훈련에서 가장 많은 고생을 한 사람은 누가 뭐라 하여도 툼이었다. 당시 30명을 인솔하는 십인대(十人隊)의 대장 3명 가운데 가장 큰 역할을 담당했다.
그 보상으로 높으신 분들을 모시게 되었다. 다른 이들이나 상위 간부들에게 시달리지 않으라는 배려이며 높은 사람의 행동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옛날을 생각하면 까마득하고 암담한데 앞날을 생각하면 마음이 놓이네.”
먼저 지휘관 막사를 정돈하고 필요한 집기를 가져다 두었다. 글을 제법 익힌 툼은 대충 휘갈겨 둔 명령서를 해석해 창조적으로 지휘관 회의를 준비하였다.
“홍차는 다 준비했고 나리들은 녹차를 더 좋아하시니까 이쪽에, 그리고 담배도 준비하고 또…… 전장 지도도 준비해야겠지.”
커다란 나무판을 세우고 지도를 박은 툼은 자신이 질주할 땅을 묘사한 지도를 살펴보았다. 뒤엉킨 등고선과 지형표시를 확인하던 툼의 뒤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흐흠!”
지도를 대충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툼은 어느새 몽골계 미국인들이 가르쳐 준 지식을 결합하기 시작했다. 그 단편적인 지식은 끝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이봐!”
반면 뒤에서 툼이 돌아보기를 기다린 백인 장성은 헛기침을 몇 번이고 하고는 마침내 분통을 터트렸다.
“야! 야 이 검둥이 새끼야! 귀가 먹었냐!”
“누구십니까!”
“연방정부의 명령과 네 주인인 애리조나 준주 임시 주지사의 허락을 받아 작전 참모로 배정된 윌리엄 테쿰세 셔먼 준장이다! 넌 대체 누구냐!”
“십인대 대장 조슈아 툼입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준장님!”
셔먼은 팔짱을 낀 채 툼을 노려보았다. 그의 입장에서 툼의 행동은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
이름조차도 노예에게 안 어울리는 조슈아(여호수아)를 사용하는데 성은 무덤이라는 뜻의 툼이라서 장난삼아 붙인 것 같았다. 더군다나 일도 하지 않은 채 지도를 살펴보며 자신의 말을 무시하기까지 하였다.
툼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셔먼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소르칸 주지사님이 명령을 내리셔 막사를 정돈하라 하였는데 그 명령을 망각하고 딴짓을 하였습니다. 부디 용서하여 주십시오!”
“딴짓이라. 네놈이 저 지도를 보면서 뭔 생각을 했지? 이해도 못 할 지도를 보면서?”
“적의 매복이 있을 법한 장소를 미리 확인해 보았습니다.”
셔먼은 탈모가 시작되어 정수리까지 밀려나기 시작한 검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눈을 부릅뜬 채 툼의 얼굴과 작전 지도를 번갈아가면서 바라봤다.
“검둥이가 글을 읽는 것도 모자라서 작전 지도를 이해한다고? 이 장소에서 저 장소까지 도보로 이동하는 경로를 대충이라도 이야기해 보도록.”
셔먼은 손가락으로 높은 산 정상과 반대편 평야를 가리켰다. 등고선을 통한 지형의 경사, 능선과 계곡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였다.
그 쉬운 개념을 이해하려면 일반 병사로는 어림도 없고 육군사관학교에서 독도법(讀圖法)을 익혀야 하겠지만.
그러나 툼의 시선은 저 아래 지도 축척(縮尺)을 확인한 뒤 돌아왔다.
“이 경로입니다. 준장님께서 지시한 이동거리가 제법 긴 편이라 조금 더 거리가 멀어지더라도 하천을 경유하여 물을 보급받을 수 있는 경로를 택해 보았습니다.”
“넌 대체 뭐냐? 세상에! 진짜 검둥이잖아!”
셔먼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수건을 들어 물을 축이고 툼의 얼굴을 벅벅 문댔다. 피부에 검은 칠을 한 백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라 말하였다.
“검둥이가 글도 읽고 지도도 이해하고 분석까지 하지? 너 혹시 대한에서 배우고 왔나?”
“십인대 대장이라면 저보다는 못해도 누구나 지도를 읽을 수는 있습니다. 글을 읽는 사람은 열 명 중에 다섯 명 정도고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두 명 정도지요.”
셔먼은 뒤통수에 주먹을 한 대 맞은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 툼을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섞어가면서 삿대질을 하며 호통을 쳤다.
“지금 당장 확인해 봐도 되겠나!”
“네! 됩니다!”
밖으로 나간 셔먼은 물자를 정돈하는 흑인 바토르들을 막사로 끌고 들어왔다. 그리고 간단한 성경 구절을 읽게 하고 지도를 확인하게 시켰다.
“그리하여 다윗은 사울에게 와서 그를 시중 들게 되었는데.”
“여러분은 날과 달과 저…… 절구와 해를 잘 지킵니다.”
툼의 말대로 십인대 대장이라면 지도를 파악하는데 쓸 수 있는 기초적인 지식을 알고 있었고, 흑인 바토르들 가운데 절반이 대략적으로 글을 읽을 수 있는 이들이었다.
“미치겠군, 미치고 팔짝 뛰겠어. 네놈들이 사관생도도 아니고 일반 병사라고?”
“아직 일반 병사조차 아닙니다. 돌격대인 바토르 아닙니까?”
“그게 일반 병사라는 거다! 이 검!”
평상시에 입에 검둥이라는 말을 달고 다니던 셔먼도 함부로 검둥이라는 말을 쓰지 못할 지경이었다. 이 병사들은 자신 휘하의 병력들보다 우월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결국 셔먼은 이 현실을 조용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고작 1년의 교육으로 노예 출신의 흑인들은 어지간한 미군 병사들보다 우월한 기초 지식을 함양한 것이다.
“그랜트가 이 꼴을 보면 너무나 좋아하겠군.”
“그분은 누구십니까?”
“알 필요는 없다. 작전 회의가 시작될 것이니 필요한 인원 빼고는 모두 나가도록.”
그의 인종관은 뒤틀려 있었다. 흑인과 유대인 그리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백인이나 일부 황인, 대한인과 다른 열등한 인종이었다. 대신 일정 기준을 맞추면 대등한 사람이 되었다.
열등한 인종으로 노력하고 기회를 잡아 충분한 지식과 능력을 함양한다면, 예를 들어 치킨 레시피를 만들어 낸 톰과 같이 성공한다면 한 명의 사람으로 대접해 줄 의향이 있었다.
“이제는 부대 내부에 있는 검둥이들 모두를 미국 시민으로 받아들여야 할 처지로군.”
예비 바토르들은 자신이 데려온 저격수 수준의 전문 병사가 아니라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우수한 지식을 함양하고 있었다.
현재 미군은 소대 30명 가운데 글을 읽기라도 하는 사람은 많아야 3명, 조금이라도 어려운 어휘를 알고 편지를 쓸 줄 아는 사람은 1명이면 운이 좋은 편이었다.
셔먼의 머릿속에서 이런 병사들을 육성해 낸 몽골계 미국인들에 대한 존경심과 이 병사의 활용법이 궁금하였다.
곧이어 작전 회의가 시작되고 진군 계획과 전투 계획이 논의되었다.
“간단히 말해서 주요 부족을 포위하고 전열에 간부들이 인솔하는 바토르, 댁들이 검둥이라 부르는 애들을 돌격시킬 거요. 그 사이 측면과 후방을 포위해 우리가 쓱싹! 하는 거지.”
셔먼이 가져온 지도에 타타르 익스프레스 활동을 통해 조사된 아파치 부족들의 위치가 추가 기입되었다. 셔먼은 작전의 전제를 하나둘씩 파악하며 문제점을 찾아 나갔다.
셔먼이 보기에 가장 큰 문제는 반드시 보병인, 보병이어야 하며 보병 외에는 생각할 수 없는 흑인들을 무차별 돌격시키는 점이었다.
“이러면 검둥이들을 그냥 총알 밥으로 내주는 꼴 아닌지요? 물론 모래주머니나 검둥이나 총알을 잘 받아내겠지만 생각보다 재주가 많은 검둥…… 병사들인데.”
오히려 셔먼이 이 전략을 기피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의 입장에서 글을 알고 지도를 볼 줄 아는 귀중한 인력은 흑인이건 백인이건 쓸 만한 사람이었다.
“바토르들의 역할이 그거요. 적진의 가장 삼엄한 곳을 돌파하여 주력을 묶어두는 것이지.”
“댁들이 알고 있는 인디언과 아파치 부족은 다르다는 말이지요. 놈들은 약탈을 하거나 아예 직접 구매한 콜트 타타르나 갭 소총(갑식 소총)을 사용하는 기병입니다.”
셔먼이 보기에 아파치 부족 본대와 전투를 벌인 흑인들은 비참하게 짓밟힐 것이 분명했다. 어지간한 미군 기병을 상대로도 유연하게 추격과 약탈을 벌이는 숙련된 적들이다.
최소한 대등한 병기를 사용하는 기병들이라면 모를까 보병으로서는 사방에서 공격을 당하다 의미 없이 죽어 나가리라. 그러자 소르칸이 멀뚱하게 눈을 뜨고 말하였다.
“준장 양반. 미안하지만 우리 바토르들은 죄다 기병인데.”
“텡그리 권총을 하나 혹은 두 개씩 가지고 있고 라이플도 하나 쓰고 있는데 뭔 소리요?”
“죽어라 굴린 덕분에 전선에서 말 타는 솜씨와 사격은 합격 수준이지. 개중에는 황무지를 보급도 없이 구백 마일(1,450㎞)이나 돌파한 놈들도 있소.”
셔먼이 들어서도 안 되고 들을 이유도 없는 말이 태연하게 오갔다. 흑인들이 말을 타는 것도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고 총을 쏘는 것도 경악할 일이다.
심지어 황무지를 구백 마일이나 오갔다면 어지간한 미국 기병대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셔먼은 탁자를 양손으로 내리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함을 쳤다.
“지금 검둥이들에게 뭘 가르친 겁니까!”
“황야에서 살아남을 방법과 바토르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을 가르쳤지.”
“그래도 나름 엄선해서 상위권만 선별했소. 나머지 절반도 대충은 할 줄 알더라고.”
셔먼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다. 오천 명이 넘는 검둥이들이 말을 타고 벌판을 질주하는 그 시커먼 미래를 생각하다가 뇌가 과열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일단 바토르를 전진 돌격시키고 사방을 카우보이와 몽골계 미국인들의 정예가 에워싸는 전략은 틀리지 않았다. 여기에 새어나가는 몇 놈만 자신의 저격수가 처리하면 되리라.
그래도 다른 문제가 있었다. 진군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빨라서 후방이 안정화 되지 않을 가능성이 엿보인다.
셔먼도 나름 생각을 하고 발언을 재개하였다.
“다음 문제는 포로 수용과 후방 안정화입니다. 포위 섬멸까지는 좋은 일인데 후방에서 반란이 벌어지거나 보급대가 생존자에게 요격을 당하면 어떻게 하지요?”
“이 친구 뭘 모르네, 당신 군대에서 뭘 배웠소?”
“생존자가 없으면 문제도 없다. 수레바퀴를 굴리는 데 반항을 할 놈이 생겨나?”
소르칸은 셔먼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자신이 미리 가져온 수레바퀴를 굴려 게르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그러더니 수레바퀴를 옆으로 한 바퀴 돌리며 말했다.
“인디언들이 우리를 보자마자 항복하면 꼬리를 만 개새끼니까 반항할 이유가 없지. 단 한 번이라도 우리에게 시비를 걸면 항복을 해도 수레바퀴를 굴린다니까.”
“수레바퀴를 굴린다는 말이 대체 뭡니까?”
“이 수레바퀴보다 큰 남자는 모조리 죽이겠다 이 말이야. 딱 적당한 크기 아니야?”
셔먼은 분명 과격한 장성이었다. 그는 적의 무조건적 항복이 아니면 모든 세력이 분쇄되고 저항 의지를 상실할 때까지 맹렬한 공격을 퍼붓는 신조가 있었다.
그런 그조차도 후방 정비와 포로 반란 대비를 위한 여러 고려가 필요하였다. 반대로 말하자면 반항할 수 있는 포로가 없다면 어떠한 문제도 없이 진군이 가능해 진다.
“다 죽여요? 항복을 해도 다 죽인다? 단 한 번이라도 맞서 싸우면?”
“그럼 다 죽여야지! 접대의 관습을 무시한 놈은 해로운 짐승이잖아!”
포로를 남기지 않고 싹 쓸어버리는 방법 자체가 미국인의 도덕관념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 문제일 뿐이다.
몽골계 미국인들은 셔먼을 옹졸하고 치졸한 사람처럼 보면서 서로 맞장구를 쳐댔다.
“본래 복수를 할 때에는 항복할 기회도 안 주는 것이 몽골의 법도지. 우리도 성격이 많이 유해져서 항복할 기회를 처음에 단 한 번 주는 것이고.”
“이야! 칭기즈 칸께서 보시면 너무 자비로운 일이라 하시며 우리에게 벌을 내리실 거야!”
“야훼께서도 자비로운 일이라 하시겠지! 신명기처럼 모조리 죽여 버려야 제맛인데 수레바퀴라는 틀을 마련해 줬으니까!”
셔먼은 옆으로 돌아가는 수레바퀴를 보며 앞으로 일어날 살육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몽골계 미국인 기준의 ‘자비’는 그의 정신세계를 아득히 초월해 버렸다.
셔먼은 정당한 살육을 논하는 몽골계 미국인들을 보며 정상인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던 중 탁자 한구석에서 고개를 숙인 채 눈빛을 보내는 고야슬레와 눈이 마주쳤다.
인종이 다른 두 정상인은 자신들이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무자비한 학살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인종을 뛰어넘은 인류의 기본적인 박애정신이 그 자리에서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