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화
22장 6화 레버액션
청나라에서 언제쯤 예비 군의관을 보낼지 답을 내놓았다. 한반도 문화권과 어느 정도 문화를 공유하는 중국 특성상 명절을 지내고 보낼 것이라 말하였다.
결국 중국 기준으로 중추절, 대한제국 기준으로는 한가위 이후 보름이 지난 음력 9월이었다. 그동안 새로운 소식이 전달되어 대부분의 관료가 소집되었다.
-이번 망종(芒種 - 양력 6월 6일)을 맞이하여 신형 소총과 각종 병장기를 시험할 것이다.
기존 소총을 개량한 신형 소총 정보는 나조차도 명확히 모르고 있었다. 정확히는 기존 탄환을 사용하는 선에서 신형을 만들어 낸다는 불확실한 정보만 알고 있었지.
효명제의 명령대로 정보를 제대로 은폐하고 시험 과정도 잘 진행한다는 소리다. 이 소총은 지난 3년 동안 설계, 시제품 운영 그리고 초기 개선이 끝난 다음 양산 과정에 들어갔다.
물론 공식적인 입장은 시제품 시험이 전부이다. 알 사람은 알지만 굳이 말하지 않는 사실을 서로가 속에 담아둔 채 시험장에 나섰다.
“지금부터 신형 갑식, 진식 소총의 시범 사격을 실시하겠습니다!”
쌍성자 일대를 관할하는 어재연이 구령을 내리자 사관생도들과 현장에서 생산 및 교육을 받은 전적이 있던 장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효명제는 단상에서 공식적인 입장을 말하였다.
“이번 신형 소총은 몇 년 이내에 양산에 들어갈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점검할 것이니 모두 이목을 집중하여 소총을 확인하라.”
이미 2만 정이 넘게 생산된 소총이고 모든 시험이 끝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식 입장은 초도 생산물량의 문제점 파악이라 말하고 있지.
기존 갑식, 진식소총은 상부의 뚜껑을 열고 탄환을 장전하는 트랩도어 방식이라 어떤 방식으로 개선했을지 궁금하였다.
일준이는 줄줄이 상자에서 나오는 신형 소총을 씁쓸한 듯 아쉬움이 남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팔짱을 끼면서 고개를 기웃거리다 말하였다.
“이제 난 찬밥신세로군. 하긴 새 소총 설계까지 관여할 실력은 없었어.”
“청출어람이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긴 하지. 아예 관여하지 않은 거야?”
“소총 탄환 관련 자문이랑 장약 관련 그리고 용수철 생산 자문한 것이 전부야. 나머지 사항은 새뮤얼 콜트에게 교육을 받은 전문 총기장인들이 설계를 담당했거든.”
조선에서 브라운베스 라이선스 방식으로 소총을 만들고 25년 가까이 지났다. 이 정도 세월이 흐르면 기술 가운데 특정 기술, 총기와 같은 분야의 기술자가 생길 시기다.
이 계층에 휘트워스라는 영국의 괴물 기술자와 미국의 새뮤얼 콜트가 합류하여 핵심을 잡아주었다. 이 덕분에 최초의 트랩도어 소총과 금속탄피 리볼버를 만들어내기까지 하였지.
“갑식과 진식 소총의 초도 생산이 1843년이었던가.”
“그만큼 세월이 많이 흐른 거다. 우리도 많이 늙었고.”
하나의 전문가 계층을 양산하는데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리는지 똑똑히 알고 있다. 단순히 환경만 바뀌어도 전문가가 적응하는 데 5년, 기술 체계가 바뀌면 10년가량이 걸린다.
하물며 조총이나 깎던 사람들이 기술을 익히면 얼마나 걸리겠는가.
이 변화를 뿌듯한 마음으로 지켜보는데 일준이가 소총을 확인하는 병사들을 보며 질문을 했다.
“현상이 네가 보기에는 소총 개발 속도가 빠른 편이냐?”
“그리 빠른 편은 아니야. 미국 같은 경우에는 흑색화약 라이플에서 십여 년 만에 열 종류가 넘는 다양한 소총을 만들어냈거든.”
“그 연구 예산과 재료비는? 그놈들은 땅에서 돈이 솟아나나?”
“미국을 우리랑 같게 보지 마라. 지금 콜트 타타르 권총을 미국이 더 많이 찍어내고 있잖아.”
그렇지 않아도 가용 예산을 돌려서 미국에 탄환 발주를 넣어야 할 처지다. 전쟁을 대비하려면 충분한 탄환이 필요한데 현재 대한제국의 생산력으로는 소모되는 양을 감당할 수 없지.
그나마 금속탄피 탄환은 2년 정도 보관해도 그럭저럭 잘 버티는 편이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소총을 확인하는데 믿기지 않는 광경이 보였다.
“은찬이네?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내 아들 은찬이가 소총 시연을 준비하는 광경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녀석은 개머리판 부분의 금속판을 젖혀 길쭉한 용수철을 꺼낸 다음 그 구멍에 탄환을 열 발가량 밀어 넣었다.
“튜브……. 관형 탄창? 저걸 어떻게 개발했지?”
“저 용수철 형태를 보니까 내가 개발에 관여한 용수철이네.”
신형 소총의 정체는 트랩도어 개량 방식이 아니었다. 현대에는 서부극에서나 간혹 보이는 관형(管形) 탄창을 사용하는 레버액션 소총이다.
모두가 눈을 뗄 줄을 몰랐다. 한때 군문에 발을 들인 사람도 열 발이 들어가는 총을 보고 질겁하였으며 다른 사람은 허리춤에 차고 있었을 권총을 찾으러 손을 더듬었다.
장교와 사관생도들은 장전을 마치고 용수철을 개머리판에 밀어 넣어 결합하였다. 다음으로 방아쇠 근처의 안전장치를 해체한 뒤 레버를 아래로 젖혀 장전 과정을 마쳤다.
“모든 장병이 소총 장전을 완료하였사옵니다!”
“무얼 하는가! 어서 방포하라! 모든 탄환을 쏟아내도록 하라!”
모두 서서 쏴 자세를 취한 채 명령을 받고 방아쇠를 당겼다. 매캐한 흑색화약 연기가 피어오른 직후 절그럭 소리가 일제히 들리고 장전을 마친 다음 탄환이 발사되었다.
기존 갑식, 진식 소총은 트랩도어 방식 소총이다. 한 발을 쏘고 상부 트랩도어를 열어 탄피를 꺼내고 재장전 과정을 거치는 복잡한 동작이 필요하다.
반면 신형 소총은 용수철이 개머리판 내부의 탄환을 밀어내 제 위치에 가져다 놓는다. 레버를 크게 젖히면 탄피 배출과 재장전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은찬이의 눈앞으로 구리 탄피가 치솟아 오르며 다음 탄환이 장전되었다. 다시 총성이 들리며 흑색화약의 연기가 더욱 자욱하게 솟구쳤다.
“내가 알기로 병사들이 전투 한 번에 탄환 스무 발을 쏘면 많이 쏘는 것인데…….”
“저래서야 전투 한 번에 탄환 십만 발은 허공으로 날아갈 기세지 않습니까?”
김좌근과 예산 관련 담당자들은 연기를 뿜으며 허공으로 솟구치는 돈덩어리를 보고 앓는 소리를 냈다. 그와 달리 군부의 관료들은 입을 다물 줄 모르고 있었다.
“내가 알기로 총탄을 연속으로 쏠 수 있는 물건은 조 총장이 개발한 십혈포(개틀링)인데.”
“내가 청나라와의 전쟁에 참전한 적이 있건만 이럴 줄은 몰랐네. 예전의 병졸 일만 명이 이 소총을 쓰는 병사 천여 명과 싸워도 일만 명이 궤주할 것 같군.”
효명제가 뿌듯해할 만큼의 기술적 진보이지만 역시 내가 원하던 방향의 기술은 아니었다.
모두가 총기 시연을 바라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던 중 효명제가 내 모습을 보고 궁금한 듯이 질문을 하였다.
“박 후작의 눈에는 무엇이 들어오기에 그렇게 표정이 굳어 있는가?”
다들 놀라움 혹은 예산 소모로 인한 고통을 표시하는데 나 혼자 우려 섞인 표정을 보인 것 같았다. 결국 효명제에게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입장이라 은찬이를 가리키며 답을 해줬다.
“신이 신형 소총의 시연 과정에서 문제를 발견하였사옵니다.”
“문제라, 새 소총을 보자마자 문제를 알아차린다는 말인가?”
“신의 자식이 저 자리에서 소총을 쏘는지라 아버지의 마음으로 문제를 파악하였사옵니다.”
표정 관리를 못 해서 졸지에 이 레버액션 소총의 문제를 헐뜯는 처지가 되었다. 그래도 이 문제가 많은 소총이 왜 남북전쟁이 끝나고 소멸하였는지 똑똑히 알고 있다.
“사격 시연을 종료하라! 소총을 모두 청소하고 점검하도록 하라!”
효명제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장교들은 효명제의 명에 따라 일준이가 석유에서 추출한 총기손질용 기름을 붓고 소총 부품을 잘 닦아내어 점검하였다.
이후 효명제의 손을 거쳐 소총 한 자루가 내 손에 전달되었다. 그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마음대로 하라는 듯이 손짓을 하며 나를 부추겨 대고는 말하였다.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 이 자리에서 명백히 밝히도록 하여라.”
“그러하면 신이 폐하께서 명을 내려 만들어낸 소총을 확인해 보겠사옵니다.”
총을 한번 들어보고 휘둘러 본 다음 레버를 젖혀서 장전 과정까지 이행하였다. 팅 하는 소리와 함께 내부에서 부품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으니 고장은 아니겠지.
어느새 총기를 개발한 기술자들과 실제 사격 훈련을 실시한 장교가 내 옆에 달라붙었다. 그래서 이 소총의 문제점을 하나씩 짚어주기로 하였다.
“최소 장전은 한 발씩 가능하지, 그러면 최대 장전은 몇 발이 가능한가?”
“방금 전 보신 대로 열 발이 가능합니다!”
“그렇군, 그러하면 내가 실전에 나선 병사라 생각하고 열 발을 장전해 보지.”
군대에서 내 속을 뒤집은 고문관 후임처럼 행동해 보았다. 사방을 기웃거리고 몸을 움츠린 다음 허리춤의 주머니에 미리 넣어둔 탄환 열 발 정도를 잘그락거리며 장전을 실시했다.
이 소총은 탄환을 거꾸로 넣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탄피의 가장 큰 부분이 살짝 걸릴 정도로 고무를 덧대 구멍 입구를 좁혀 놓았다. 여기까지는 괜찮은데 나머지가 문제지.
일부러 사방을 돌아다니며 정신을 반쯤 빼놓으며 장전을 하고 다시 서성거리길 반복하였다. 마침내 장교들이 내 모습이 어떤 꼴인지 눈치채고 웃음을 참아가며 평가하였다.
“왜 그리 돌아다니는 것입니까? 막 부대에 들어온 신병 같은 모습이군요.”
“병사들이 언제나 제자리에 붙어 있던가? 그 병사들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명령을 내릴 수가 있던가? 할 수 있더라도 전장 한복판에서 가능한 일이기는 한가?”
“그렇긴 합니다만 너무 부선을 떠는 것이 아닌지요.”
“나처럼 수선을 떠는 병사도 있을 것이고 몇 발의 탄환을 장전했는지 모르는 병사도 있기 마련이지!”
고의로 열두 발을 장전했다. 으지직 소리가 나며 안에서 무언가 찌그러진 감촉이 느껴진 순간, 장교는 호들갑을 떨면서 내 손에서 소총을 빼앗아 용수철을 뽑아냈다.
“열한 발까지는 허용선입니다! 그러나 열두 발 이상을 넣고 재장전하면 폭발 위험이 있습니다! 이대로 쏘면 소총 내부 기관이 오작동을 일으킵니다!”
용수철을 뽑아내자 장교의 말대로 용수철의 압력에 짓눌린 총알이 조금씩 일그러져서 튀어나왔다. 그제서 장교도 무엇이 문제점인지 알아차렸다.
“박 후작님께서 보신 대로 현장이었다면 이런 사실을 모르고 넘어가겠군요.”
“그럼 사고가 터지겠지. 멀쩡한 소총 부품이 망가지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열두 발의 탄환 혹은 더 많은 탄환과 함께 병사의 머리통이 날아갈 거라네.”
장교는 소총을 분해해 내부 부품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다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소총을 서부영화에서 본 대로 한 바퀴 돌려 장전하는 자세를 취한 다음 말하였다.
“그리고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하다 손톱이 뽑히거나 손가락이 부러지는 병사도 나올 것이고. 열 발을 장전할 수 있더라도 안전을 핑계로 일곱 발만 장전할 수 있다고 말해두게.”
“일곱 발이요?”
“그리고 용수철의 힘을 좀 약하게 하게나. 총알을 간신히 밀어낼 정도로만.”
아마 일준이가 용수철이 어디에 쓰일지 몰라서 탄력을 크게 설정한 것 같다. 대신 내구성이 올라가서 장전 불량이나 용수철 고장이 없을 것 같아 여기까지만 지적하면 될 것 같다.
“알겠습니다. 혹여나 또 다른 개선사항에 대해 고견이 있으신지요?”
“그리고 기존 소총은 엎드려서 쏠 수 있었는데 이 소총은 연속으로 쏠 수 있지만 엎드려서 쏠 수 없을 것 같군. 장전을 위해서 커다란 하부 공이를 젖혀야 하지 않나.”
이제는 다 잊어가고 있는 군대의 기억을 되새겨 엎드려 쏴 자세를 취해보았다. 레버가 땅에 부딪히는 모습을 몇 번이고 보여준 다음 무릎 쏴 자세를 취하였다.
“과연, 몸을 숨기고 총을 쏠 때에는 매우 불편하겠군요.”
“이 문제는 총을 옆으로 돌려 공이를 젖히면 해결할 수는 있겠군.”
지금까지는 서서 쏴 자세로 사격시험을 하고 철저히 훈련받은 장교 위주로 교육을 시켰겠지. 그러니 내가 직접 나서서 현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꼴을 교육하는 처지가 되었다.
“물론 내가 억지를 부려서 문제를 헐뜯었을 수도 있어. 그러나 신형 소총을 들었다고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닌, 소총을 잘 활용하여 전쟁에서 이길 수 있게 만들게.”
“후작님께서 피와 살이 되는 조언을 하셨습니다.”
“앞으로 이 사실에 대해 배우고 갈고 닦아 개량해 볼 것이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효명제는 내 이야기가 끝나자 손뼉을 치더니 아예 내가 입을 단령(團領)을 하나 가져오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고는 흐뭇한 듯이 신형 소총을 양손으로 거머쥔 채로 말하였다.
“생각해 보니 당연한 일을 잊고 있었군. 탄창(彈倉)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하는 소총이니 몇 발이 들어가는지 병사들이 어떻게 기억하겠는가?”
“더군다나 또 다른 문제도 있사옵니다. 한창 사격을 하다 몇 발이 남아 있는지도 모르고 재장전을 할 수도 있지 않사옵니까?”
“옳은 말이로다. 박 후작 덕분에 훗날에 생겨날 문제를 미리 알아낼 수 있었구나.”
통제된 상황과 통제되지 않은 현장은 전혀 다르다. 아마 신형 소총이 내 지적 없이 현장에 퍼져 나갔다면 자폭 소총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도 있었으리라.
효명제가 임시로 가져온 단령으로 갈아입고 다음 사격 훈련도 참관하였다. 흑색화약 탄피를 사용하는 갑식 소총과 달리 진식 소총은 오로지 저격수를 위한 물건이었다.
진식 소총은 애초에 숙련된 병사들이 사용하는 물건이라 별문제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제식병기가 된 위장복 체제를 점검하는 느낌으로 진행되었다.
모든 시연이 끝나고 효명제는 ‘초도 생산물량’ 확보를 위해 심혈을 기울이라는 말을 하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일준이와 같은 마차를 탄 채 평가를 남겼다.
“결국 이 소총도 과도기적인 물건이야. 지금이야 탄피 기술력이 부족해서 뇌홍을 테두리에 배치한 림파이어(Rimfire) 형식이라 지금 구조에서 버티는 건 알지?”
“당연히 알지. 아는 걸 넘어서서 지금 연구진들이 개발하는 탄피가 중앙부에 뇌홍이 들어간 탄피인데 기술력이 부족해서 매번 실패하더라고.”
일준이는 여기까지 이야기해놓고 기존 갑식, 진식소총의 예를 들어 부연설명을 했다.
“기껏 금속탄피 탄환을 잘 만들어 놓고 그 탄환 자체를 바꿔 버리면 소총도 바꿔야 하지. 가뜩이나 대한제국군이 돈을 펑펑 쓰는 괴물 동네라도 소총 전체 교체가 가능이나 하겠냐.”
“소름 돋는 이야기 하지도 마라. 아직도 3선 부대, 지방 사단에서는 브라운베스를 쓰는데.”
“아직도 브라운베스를 사용한다고?”
일준이는 우리가 조선시대에 떨어졌을 때 현역 소총으로 수명이 다해가던 브라운베스라면서 중얼거리다가 말이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의무교육과 겸해서 성인들에게 총기 사용법과 기초 군사훈련을 하는 데 소총까지 쓸 여력은 없다.
“애초에 의무교육과 겸해서 군사훈련을 하는데 머스킷으로 단가라도 낮춰야지. 그리고 전쟁이 터지면 후방에서 머스킷이라도 들고 각종 업무를 처리하는 편이 나아.”
“하긴 모두 다 신형 갑식, 진식으로 교체하면 탄환이 얼마나 들어갈까.”
“이번 전쟁에서 개틀링 건 쓰는 걸 잊었냐? 최소 오천만 발은 들어갈 거다.”
말이 오천만 발이지 거의 일억 발을 쓸 수도 있다. 미국 남북전쟁 기준으로 전투 한 번에 소모되는 탄환이 수백만 발 단위이다.
물론 남북전쟁은 양측 합계 300만 명이 넘는 병력이 참전하여 격전을 벌인 전쟁이라 규모가 다르기는 하지만. 일준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말했다.
“전쟁 한번 터지면 아주 개판이 나겠네. 신형 갑식, 진식에 구형 소총 두 종류에 자체제작과 기존 수입 머스킷까지 감안하면 개인화기만 여섯 종류를 쓰는 꼴이잖아?”
일준이의 말이 틀리지는 않다. 갑식과 진식끼리는 어느 정도 부품이 호환되어도 여기에 신형 갑식, 신형 진식 소총이 추가되는 상황이다.
여기에 탄환도 기존의 흑색화약 머스킷, 흑색화약 라이플 그리고 무연화약 라이플 3종류로 분류된다.
일준이는 한창 사격을 실시하는 소총들을 보면서 말했다.
“개인화기 여섯 종류에 총기 부품도 호환이 안 되니까 다섯 종류, 여기에 총알 종류가 세 종류. 보급계원이 피를 토하고 죄다 죽어나가겠는데?”
“돈만 많았으면 무연화약 탄환을 모조리 사용하는 건데.”
“진식 소총 전용 무연화약 탄환? 그거 갑식 소총에 넣어서 쏠 수는 있는데 몇 발 쏘면 내부 구조가 감당을 못 하잖아. 갑식 소총 전용으로 장약을 줄인 탄환을 새로 만들어야 해.”
“그러다가 탄환 혼용사고 터져서 갑식 소총이 줄줄이 폭발할 거다. 하지를 말자.”
군대에서 사람이 얼마나 멍청해지는지, 얼마나 답이 없어지는지 다녀와서 잘 알고 있다. 저 멀리서 걷고 있는 병사들을 보면서 먼 훗날의 이야기를 하였다.
“아무튼 앞으로의 일이나 잘하자고, 넌 헤로인 문제 해결하고 나는 그동안 외교 체계를 정비하면서 홍수전이 대형 사고를 터트리는 걸 유도해야지.”
“그 유도가 잘될까? 홍수전도 경험이 많이 쌓이긴 했는데?”
“몰라, 최악의 경우에는 헤로인 문제를 지가 다 뒤집어쓰고 후대를 노릴지도 모르지?”
홍수전을 외통수로 몰아넣을 자신은 있다. 그러나 홍수전이 외통수에 몰리고 모든 것을 포기한 채 후계자에게 자신의 일을 일임해 버리면 답이 없는 상황이기도 하고.
그래도 홍수전이 본래 역사에서 보인 성향을 생각한다면 포기할 놈은 아니다.
놈은 일이 틀어지면 최후까지 저항하고 희망을 놓지 않는 질긴 놈이니까.
#작가의 말
오늘 연재분에서 공개된 소총은 미국의 스펜서 라이플을 참고한 레버액션 소총입니다.
남북전쟁 당시에 쓰인 헨리 소총과 함께 줄기차게 쓰인 소총이지요.
헨리 소총의 장전 방식은 편한 대신 내구성이 부족하고
스펜서 소총은 까다로운 대신 내구성이 충분하여 채택해 보았습니다.
삽화274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Spencer_repeating_rif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