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화
22장 5화 외과의(3)
광주는 조-청 전쟁 이후 프랑스에게 독점 개항지로 배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개항장으로 인해 경쟁 구도가 이루어졌지만 광주는 기존의 이점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었다.
청나라 시절부터 구성한 광동십삼행(廣東十三行), 13개의 무역지구와 임칙서가 수행한 내부 개혁과 단속을 기반으로 한 엄정한 체제를 구축하였다.
더군다나 프랑스는 아편전쟁에서 자신들의 도움을 받아 영국군을 격퇴한 광주 시민들을 극도로 신뢰하였다. 덕분에 전쟁 전보다는 덜 해도 수많은 무역상이 오가고 있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에는 저 지역이 모조리 영국군의 포격에 무너졌었는데…….”
이제 노인이라 불러야 할, 50대의 프랑스 신사는 질 좋은 연미복을 차려입은 채 항구의 정경을 바라보며 가슴 속에서 새어 나온 감동을 억눌렀다.
그는 18년 전 조-청 전쟁 당시 일개 군의관에 불과했다. 이후 로버트 리스턴과 대한제국에서 만든 최신 외과 의술을 받아들여 병원을 만들고 외과의로 활약하였다.
그는 나이가 들고 병원을 장남에게 물려준 다음에 광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배가 정박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항구에서는 요란한 뱃고동 소리가 울리며 증기선이 출항하였다.
“이보시오, 저 배에 있는 한자는 대체 뭐요?”
항구를 막 떠나는 철제 증기선에는 문충(文忠)이라는 한자가 적혀 있었다. 프랑스의 배가 아닌 광주에서 사용하는 배임을 확인한 신사가 묻자 광주 출신 선원이 답하였다.
“저 배는 광주의 상인들이 돈을 들여 주문한 철갑 증기선입니다. 평상시에는 무역을 하는데 비상시에는 군함으로 사용할 수 있지요.”
“내가 알기로 청나라 정부는 공식적으로 철갑 증기선을 운영하지 않는데?”
“청나라 정부? 우리 광주가 그 자라들의 아래에 있단 말입니까? 우리 배지요!”
우리 광주라는 말을 들은 신사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 차이를 생각하며 고뇌에 빠졌다. 봉건적인 요소가 강한 서양이라면 한 지역에서 멋대로 철갑증기선을 사들일 수도 있다.
반면 중앙집권국가 성향이 아주 강한 동양이라면, 특히 그가 알고 있는 대한제국이라면 정부의 행정 절차를 밟아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어차피 사람을 만나기로 하였으니 직접 물어보아야겠군.”
마음을 정리한 신사는 가방을 챙겨 항구에 입항하였다. 신사는 미리 숙소를 정해놓고 자신이 부상을 치료해 준 향용의 이름을 대며 길을 물어보았다.
신사는 자신의 마음속에 가장 남는 이름을 대었다. 황기영, 당시에 권법의 길을 걷는다면서 포탄에 바스라진 손을 보면서 울부짖던 사람이라 더욱 기억에 남았다.
“이보시오, 혹시나 황기영이라는 사람을 아시오?”
퉁명스럽게 자신이 팔던 과일 꼬치를 가리키던 행상인은 황기영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눈빛이 변하였다. 그러고는 침을 튀겨가며 급하게 물어보았다.
“황 의원님이요? 혹시 어떤 관계이신지.”
“내가 예전에 임 총독님 아래에 용병으로 고용되었을 때 치료한 향용이지. 당시에 포탄에 맞아 갈기갈기 찢겨진 오른손을 내가 직접 절단했는데.”
“이거 드시고 저쪽으로! 대로 교차로 두 개를 지나 왼쪽으로 꺾으시면 의원이 나옵니다!”
설탕에 절인 과일 꼬치를 대여섯 개 짚이는 대로 건네준 행상인은 고개를 숙여 공손하게 한 방향을 가리켰다. 신사가 주머니에서 동전을 내려 하자 아예 팔짱을 끼며 말하였다.
“더 대접해 드려야 하는데 제가 부족한지라 대접하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이럴 필요는 없는데. 아무튼 잘 먹겠소.”
대로를 건너고 건너자 임의관(林醫館)이라는 의원이 보였다. 사람들이 제법 많이 대기하는 의원 안에서 오른손 대신 나무 의수를 착용한 의원이 왼손으로 진맥을 보고 있었다.
“속에 습기가 많이 차오르셨군요. 일단 시침을 좀 하고 탕약을 한 재 드시지요.”
외팔이 신세의 의원 황기영은 왼손을 놀려 능숙하게 진맥을 하고 침을 놓았다. 신사는 팔짱을 낀 채 줄에 서서 한참을 기다렸고 마침내 진료 차례가 되었다.
“불란서에서 오신 분이군요,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습니까?”
의원은 조금 부족한 프랑스어로 질문을 하였다. 상대가 프랑스어를 배웠음을 확인한 신사는 미소를 지으며 그의 손을 가리키고 말하였다.
“자네를 만나보러 왔다네. 내가 자른 손의 치료 경과를 확인하려고 왔지.”
황기영은 신사의 얼굴을 한참 동안 살펴보고 자신의 오른손이 있어야 할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무심코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였다.
“아! 그때 그 군의관님 아니십니까! 당연히 잘 치료되었지요!”
“이제는 의원으로 활동하는군. 아주 좋은 일이야.”
“그야 홍가권의 전승자로서 인체에 대한 지식은 제법 갖춘 덕분이지요. 한 팔을 잃어서 무술 대신 먹고 살 방법이 필요하였습니다.”
아예 의원 문을 닫고 돌아온 황기영은 공손한 표정으로 신사에게 인사를 올렸다. 당시에 주먹을 휘두르며 자신의 손을 고쳐달라고 애원하던 청년은 중년의 한의사가 되어 있었다.
“자네도 많이 변했고 나도 많이 늙었지.”
“저도 자식이 열한 살이라서 먹고 살기 바쁘지요.”
“그나저나 자네와 나보다 광주가 더 많이 변한 것 같군. 대체 어떻게 된 건가?”
“설명하자면 아주 길고 깁니다. 그래도 제가 아는 대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 * *
광동성의 주요 도시 광주는 더 이상 청나라의 지배를 받지 않는 일종의 무역 특구로 취급을 받았다. 이는 조-청 전쟁이 끝난 이후 자연스럽게 일어난 현상이었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임칙서의 부임과 아편 밀매를 막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 전쟁이 벌어지고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는 청나라 조정을 대신하여 영국군과 맞서 싸운 용맹한 이들이었다.
평상시에 국제교역으로 벌어들인 세금을 착취하던 청나라 조정과 그 하수인인 팔기군은 전쟁에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 아예 전투를 한 번 참관하고 질겁해 도주하기까지 하였다.
조-청 전쟁이 끝나고 맺어진 협약으로 광주가 프랑스가 독점하는 개항장이 되었다. 이후 광주가 복구되는 동안 청나라 조정은 아무런 개입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임칙서가 공식적으로는 과로사, 실제로는 암살을 당하고 몇 년이 흐른 1847년이 될 무렵에 다시 개입을 시작하였다. 당시 청나라 조정에서 세금을 거둬들이려 하였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팔기군이 우리에게 세금을 왜 거두려 하는가!’
‘네놈들이 영길리 놈들처럼 피와 내장을 쏟아내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그 시도는 시작부터 차단되었다. 평상시에 수없이 행패를 부리고 아편을 뜯어가던 팔기군은 영국군과 혈전을 벌인 향용들이 보기에는 동네 불량배보다 못한 놈들이었다.
더군다나 광주의 전쟁피해 복구는 오로지 광주 사람들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물론 청나라 조정에서는 광주의 피해 복구를 위해 자금을 내놓았다.
그 자금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부패한 관리들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이후 청나라의 관리들은 철도 부설로 인한 세금 부족을 핑계로 수탈을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조정에는 보고되지 않은 산발적인 교전이 몇 차례 벌어지기까지 하였다. 당연히 아무 변화가 없는 팔기군은 광주의 향용들의 진영에 접근조차 못 하고 몰살당하였다.
결국 청나라 조정이 할 수 있는 일은 공행(公行), 서양과의 공식 교역창구를 각 개항지와 조차지에 나누어 놓고 세금을 분할하여 거두는 것이 전부였다.
* * *
“일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임 대인께서 우리 광주를 구원하신 덕분에 얻어낸 결과입니다.”
그는 포격에 맞아 오른손을 절단하였고 이후 불구가 되었다. 아버지 황진강은 영국 해군의 철갑증기선을 자폭으로 대파(大破)시키고 미리 잘라둔 변발이 관에 안장되었다.
황기영의 덤덤한 말을 들은 신사는 모자를 벗고 황진강의 위패에 인사를 하였다. 그러고는 한 줄기 새어나온 눈물을 닦으며 답하였다.
“내가 알기로 위패는 초상화를 대신하여 고인을 상징하는 수단이지. 부친께서 그토록 용맹한 영웅이라면 내 인사를 올려도 부족함이 없어.”
“위패는 제사를 지낼 때 혼백이 머무는 곳인데요.”
“아 참, 자네는 천주교 신자가 아니지.”
졸지에 우상을 숭배한 꼴이 된 프랑스 노인은 성호를 그으며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였다. 그동안 황기영은 의수 대신 외출용으로 뭉툭한 갈고리를 끼우고 답하였다.
“불란서 사람들이 여러모로 잘 어울려 지내서 다행이지요. 처음에는 사는 방식이 달라서 이래저래 불편한 일이 많았습니다.”
“그럴 만도 하지. 좀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어서 문제인데 그 사건의 영향은 없나?”
“월남에서 일어난 아편 사건 말입니까? 우리 광주에는 아편이 아예 없습니다!”
광주의 모든 사람들은 임칙서의 뜻을 받아들여 아편을 철저히 금지하였다. 심지어 주변 사람이 아편을 피우면 멍석에 말아 반쯤 시체가 될 때까지 두들겨 팰 정도로 혐오하였다.
신사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였다. 프랑스인들은 아편을 먹은 청나라 사람은 벌레요, 아편이 없는 청나라 사람은 용사라 칭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꼬르륵 소리가 신사의 배에서 울렸다. 이야기가 길어지느라 저녁때가 되었고 신사가 먹은 음식이라고는 설탕에 절인 과일 꼬치가 전부라 배가 비어버릴 시간이었다.
“가게 문을 닫으면서 미리 객잔에 연락을 해 두었습니다. 식사나 하러 가시죠.”
“식사라, 예전에 이 지역에 머무를 때에는 입맛이 맞지 않아 고생을 했는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드셔보시면 만족할 겁니다.”
광동성 일대는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미식의 고장이었다. 더군다나 프랑스의 미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수많은 식재료가 넘쳐났다.
길거리에 있는 음식점에는 수많은 인파가 득시글거렸다. 황기영은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이 음식점 가운데 가장 맛이 좋기로 소문난 곳에 자리를 앉아 귀를 기울였다.
“이 동네 요리는 도저히 못 먹겠네. 아주 매운 맛에 개구리 다리를 절여놨잖아?”
옆자리에서는 프랑스에서 건너온 무역상들이 요리를 먹다 매운맛에 차를 정신없이 들이켜며 항의를 하였다. 주방에서 뛰어나온 주방장은 그 모습을 보고 퉁명스럽게 답하였다.
“느끼한 우락(牛酪 - 버터의 중국어)에다가 개구리를 절여 먹는 양반이 뭐라는 거야?”
“어차피 기름기는 비슷한 것 같은데? 이 요리를 좀 덜 맵게 할 수 없나?”
“주문 한번 많으시네. 잠시 줘보쇼!”
황기영은 옆자리에서 나누는 대화를 듣고 미소를 머금었다. 처음 프랑스인이 들어왔을 때에는 서로 자존심을 세우면서 요리를 논하다 주먹질을 하며 싸우기까지 하였다.
그러는 과정에서 서로의 요리를 맛보고 공통점을 찾아가며 더더욱 친밀해졌다. 서로의 미식이 일정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아차린 순간부터 선의의 경쟁 관계가 된 것이다.
“저런 요리는 본 적이 없는데.”
“요즘은 저런 요리가 많지요, 불란서 방식의 요리라 하여 저도 가끔 먹습니다.”
마라 소스로 볶아낸 개구리들은 주방으로 들어가 프랑스인의 입맛에 맞게 변형되었다. 버터와 허브를 넣어 매운맛을 중화하고 쌀로 만든 바게트를 얹어주었다.
황기영은 군침을 삼키는 신사의 얼굴을 보면서 광주 사람들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고는 자신이 미리 주문해 둔 요리가 나오길 기다리며 말하였다.
“제가 시킨 요리는 더 좋은 요리입니다. 불란서 사람은 거위를 좋아하지 않습니까?”
“거위! 거위가 아주 좋지. 이 지역에는 거위 요리가 없었던 것 같은데?”
“예전에는 세금을 좀 많이 내서 거위 대신 오리 요리를 즐겼지요. 이제는 아닙니다.”
살이 잔뜩 오른 거위 통구이가 식탁에 놓였다. 표면이 바삭하고 갈색으로 윤기가 자르르 흐를 정도로 잘 구워진 거위의 모습을 본 주변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이렇게 좋은 대접을 할 줄이야. 어디 한 번 이 지역의 미식을 즐겨 볼까.”
바삭거리는 질감의 껍질과 기름기가 풍부한 거위고기를 맛본 신사는 그 맛에 취하여 게걸스럽게 요리를 즐겼다. 프랑스의 거위 요리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높은 경지의 음식이었다.
여기에 향신료 또한 유럽인의 기준에 맞추어 변형하였다. 다음 음식으로는 흘러내린 거위기름에 채소와 해산물을 볶아내 부야베스 풍의 스튜를 만들어 내었다.
여기에 섞인 고추를 비롯한 향신료가 짜릿하게 입을 자극하는 매운맛을 더했다. 신사가 부른 배를 흡족한 표정으로 두드리자 후식으로 프랑스 방식의 말린 과일이 섞인 차가 나왔다.
“참으로 잘 먹었네. 그나저나 임 대인의 묘소를 방문하고 싶은데. 고향이 어디인가?”
“그 묘소는 어처구니가 없게도 고향이 아닌 북경에 있습니다. 그 자라새끼들이 대체 뭘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우리는 대신 그분을 기리기 위한 사당을 마련해 두었지요.”
황기영이 다음으로 안내한 장소는 천비(穿鼻) 사당이라 불리는 장소였다. 공식적으로는 과로로 사망한 임칙서와 당시에 전사한 관천배 그리고 향용들을 모신 곳이다.
심지어 천주교 교회까지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 교회를 향해 십자성호를 그은 신사는 황기영의 안내를 받아 사당 안으로 들어갔다.
“이쪽은 관 제독님의 석상이, 저쪽에는 임 대인 어른의 석상이 있습니다. 여기에 당시에 참가한 향용들을 기리기 위한 석상들이 있기는 합니다.”
건물 안에 모셔둔 임칙서와 관천배의 석상은 질 좋은 대리석으로 섬세하게 조각하였다. 단 한 개의 석상을 만드는데 수천 냥의 은자가 들어갔으리라.
어느 정도 제갈량의 설화를 차용하여 부채를 거머쥔 임칙서의 석상 옆에는 지휘봉을 휘두르는 관천배의 석상이 있었다. 그러나 건물 밖의 석상들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향용들은 가공도 힘들고 가격도 싼 편인 화강암으로 석상을 만들었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데 미처 다 조각을 끝내지도 못하고 어설픈 형상으로 남아 있었다.
“좀 이상하기는 하군. 분명 자네 부친이신 황, 황진강이었나? 그분의 이름이 있는데 외모가.”
“여기에는 많은 사정이 있습니다.”
한숨을 내쉰 황기영은 예전 일을 떠올리며 왜 이런 꼴이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임 대인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가산을 털어 향용 모두에게 은자 일백 냥을 주셨습니다. 당시에 포격에 휩쓸려 미처 배에 다가가지도 못한 사람들도 이 돈을 받았지요.”
“도합 은자 삼만 냥, 프랑으로 따지면 십오만 프랑이라 두 분의 석상과 사당 건물 정도만 세울 수 있었겠군.”
“바로 보셨습니다. 당시에 장례식 비용만 제외하고 모든 돈을 헌납하였지요.”
황기영은 애틋한 표정으로 임칙서를 살펴보았다. 그가 포탄에 맞은 망루에서 가까스로 탈출하자 자신의 자식들이 다친 것처럼 울부짖던 사람이 임칙서였다.
“남은 향용들을 기리는 석상은 임 대인께서 매년 보내주시는 은혜로, 이후에는 임 대인의 후사(後嗣)를 자처한 객가들이 돈을 보내주었습니다. 그 돈이 어느새 끊기더군요.”
“왜 끊겼나? 객가들이라 하면 자네들이 다 퇴각한 뒤에 내륙에서 영국군을 상대하였는데? 옛 동지를 저버려?”
황기영은 자금이 부족해 미처 조각하지 못한 아버지의 석상을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울분을 짓씹으며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그놈들이 왜 자금을 안 보내겠습니까? 호의호식하는 만주족 놈들 아래에서 꼬리를 살랑거리는 개새끼가 되어서겠지요! 객가나 만주족이나 다 똑같은 놈들입니다!”
“본래 용장 아래에는 약졸 없고, 졸장 아래에는 정병(正兵)이 없는 법이야.”
“제 말이 그 말입니다. 하여튼 객가들도 예전에는 우리와 함께 잘 어울리더니만…….”
결국 향용들의 석상은 홍수전의 방임으로 인하여 미완성 작품이 되었고 돈이 모이는 대로 하나씩 다시 조각하는 신세가 되었다.
신사는 이 모습을 보며 자신의 돈을 제공했다.
“혹시 몰라 일만 프랑을 가져왔네. 이 정도면 자네 부친은 물론이고 수많은 사람의 석상을 조각할 수 있을 거야.”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그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의 손자이자 나라를 위해 한 손을 잃은 사람의 자식을 볼 수 있겠나? 그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보면 내가 더욱 만족할 것 같은데.”
“잘되었군요. 수업이 끝날 차입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천비 사당의 인근에 위치한 거대한 도장이었다. 전쟁에서 활약한 광동십호(廣東十虎)들은 한 몸이 되어 서로의 무술을 교류하고 새로운 유파를 창설하였다.
당연히 쉴 새 없이 메치고 두드리는 소리가 도장 밖으로 들려왔다. 신사는 눈을 굴리며 황기영에게 질문을 하였다.
“수업이라? 자네 무술가라 했었는데 자식에게 무술을 가리키나?”
“당연하지요. 저는 외팔이가 되었고 참전하였던 광동십호 가운데 불구가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모두의 무술을 합쳐 자식들과 광주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있지요.”
도장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후끈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한구석에는 전통 방식으로 수련하는 어른들이, 다른 곳에서는 쉴 새 없이 주먹으로 샌드백을 치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그 중앙에서는 두 아이가 몸을 놀리며 대련을 하고 있었다. 서로 주먹을 주고받으며 몸을 두드리던 중 한 아이가 하늘로 날아올라 다른 아이의 머리를 발차기로 후려쳤다.
“한 마리의 기러기가 날아오르는 것 같군!”
“제 자식의 이름은 부친께서 돌아가시며 지어주었지요. 기러기를 본떠 비홍(飛鴻)이입니다.”
황진강이 남긴 유언은 자폭에 실패한 향용의 증언으로 전해졌다. 태어나기도 전에 할아버지가 이름을 지어준 영웅의 아이로서 황비홍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11살에 불과한 황비홍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인체에 대한 지식을, 도장에서는 각종 무술을 물려받았다. 동년배 중에는 당해낼 자가 없어서 몇 살 많은 아이와 대련을 하였다.
그런 아이들조차도 이름대로 기러기처럼 날아올라 발길질을 하는 황비홍에게 패배를 맛보았다.
대련이 끝난 황비홍은 고개를 돌리다 황기영을 확인하고 달려왔다.
“아버지! 제가 세 살 많은 형을 이겼습니다!”
“제대로 이긴 것 같지는 않구나. 볼을 맞았지?”
“네! 이가 하나 빠졌습니다!”
황비홍의 입안에서 피가 새어 나오고 젖니가 하나 굴러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지도 않고 태연한 모습으로 솜을 깨물어 지혈을 하였다.
“아이가 아주 대단하군. 내 손자는 상처가 났다고 하루 종일 울음을 터트리던데.”
“녀석도 울고 싶지만 무술가로서의 자존심이 있어서 눈물을 참는 것이지요.”
어느덧 한밤중이 되었다. 신사와 헤어진 황기영은 내일 개원 준비를 하면서 자신의 잃어버린 오른손을 보았다.
“그래도 난 틀리지 않았어, 임 대인께서도 틀리지 않았고. 틀린 것은…….”
그놈의 청나라 조정과 객가이리라. 특히나 광주 일대의 사람들에게 청나라 조정은 원래부터 개 같은 놈들이었지만 객가는 개보다 못한 놈들이었다.
객가들이 북경으로 이주할 때에는 뭔가 달라지는 게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이 만주족의 아래에서 호의호식하며 아무런 변화도 이룩하지 못하였다.
심지어 은혜도 잊어버리고 같이 영국군과 싸우던 기억도 잊어버렸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어지던 자금 지원이 갑자기 끊길 이유가 없었다.
한참 자리를 정리하던 황기영에게 집을 비운 사이 도착한 서신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스로 인맥을 떠올린 홍수전이 그의 이름도 아닌 ‘향용 출신 의원’ 아무에게나 보낸 서신이었다.
“뭐? 내가 조선에 가서 의술을 배우고 오라고? 그것도 외과 의술만?”
황기영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자신처럼 뛰어난 내과의를 왜 조선에 보내서 외과 의술을 가르치려 하는가.
그 답을 낼 수는 없었지만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어차피 만주족 놈들이나 객가 놈들에게서 벗어나려면 조선, 이제는 대한과 친해지는 게 답인데. 그나저나 비홍이 녀석도 데려가 볼까.”
황기영은 이번 기회에 대한의 새로운 문물, 프랑스 사람들을 통해 전해들은 새로운 기술을 자식에게 전해줄 생각을 품고 답신을 보냈다.
자신은 이 부름에 응하겠으나 오른손이 없어서 자식인 황비홍을 보조로 데려갈 것이라는 답신이었다. 당연히 이 답신은 별생각 없이 인맥으로 추천한 홍수전에 의해 통과되었다.
그 외에도 비슷한 생각을 품은 향용들, 특히 무술가로서 인체에 대해 지식을 지닌 광동십호도 비슷한 생각을 하였다.
결국 광주 일대에서 40명이 넘는 의원이 답신을 보내왔다. 모두 다 홍수전의 생각과 달리 의술 대신 다른 나라의 정세를 배우기 위한 마음을 품은 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