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272화 (242/345)

272화

22장 5화 외과의(2)

대한제국의 서신을 받은 청나라 내부에서는 반발이 들끓었다. 특히나 황제인 함풍제는 온갖 짜증을 내며 대신들을 윽박질렀다.

“조선에 그토록 정중한 서신을 보냈는데 지금 뭐라 했는지 아는가? 이 나라의 의원은 부족하기가 이를 데 없어 외과 의술만 가르칠 수 있다 하였다!”

조-청 전쟁에서 조선 외과의의 명성, 정확히는 조선에서 일하는 미치광이 서양 외과의에 대한 소문이 퍼졌다. 사람의 사지를 일 분도 걸리지 않아 썰어대는 리스턴의 이야기였다.

로버트 리스턴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 흉악한 소문은 청나라에 퍼지고도 남았다. 심지어 이 자리에 있는 대신들의 형제나 자식들이 당시에 ‘치료’를 받고 불구가 되었다.

“사람의 사지를 썰어대는 의술? 이런 막, 망, 망 마! 측한! 커헉!”

아편 특유의 금단증상인 흥분 그리고 마른기침을 섞어가며 호흡곤란을 겪던 함풍제는 시종이 건넨 곰방대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는 한껏 아편을 빨아들였다.

함풍제에게 아편을 중독 시킨 장본인은 홍수전이었다. 그는 두툼한 여송연(시가)에 아편을 스며들게 하여 도광제에게 권하였다.

그가 건넨 여송연은 기미(氣味 - 독과 맛을 감별함) 담당자들도 속아 넘어갈 정도였다. 애초에 아편에 중독된 사람이 태반이라 그 적은 양의 아편을 감지할 방법도 없었다.

몇 년이 지나자 담배는 아편이 되고, 아편의 양은 갈수록 늘어 중증의 아편 중독자가 되었다.

적당량의 아편으로 금단증상을 억누른 함풍제는 홍수전에게 질문을 하였다.

“듣자 하니 도찰원(都察院 - 감찰기관)에서 이번 일을 주도하였는데 이토록 결례를 당할 줄은 알고 있었느냐?”

“폐하, 신 홍수전이 감히 아뢰오니 없는 것보다는 반쪽짜리라도 배움을 청해야 나은 법이옵나이다. 사람의 사지를 마구 썰어대지 않고 잘 치료할 정도의 의술을 갖추고 있사옵니다.”

“반쪽짜리 의술이라.”

“적어도 낙마로 인한 상처가 곪아 사람이 죽는 일은 막을 수 있사옵니다. 또한 조선의 시침과 탕약이 이 나라의 의술과 다르니 배우지 아니하여도 큰 문제는 아니옵나이다.”

홍수전의 변명이자 설명을 들으며 곰방대 안의 아편을 빨아댄 함풍제는 이윽고 아편에 취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느릿느릿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 정도면 자질이 뛰어난 의원을 보내도 괜찮을 것 같구나.”

함풍제는 다시 아편에 취하여 느릿느릿, 반쯤 인사불성 상태로 정무에 임하였다. 이미 대신들 모두가 이 모습을 보고 함풍제의 중독이 극도로 심각해졌음을 알아차렸다.

그 또한 홍수전이 바라던 바였다. 판단력이 흐려진 함풍제는 자신을 극도로 신뢰하여 높은 관직에 올려 스스로의 목줄을 옭아매고 있었다.

그 느릿한 정무가 끝나고 홍수전은 의비(懿妃), 본래 역사에서 훗날 서태후로 불릴 인물이 머무는 궁으로 향하여 접견을 요청했다.

“도찰원 좌도어사 홍수전이오. 의비전하께서 자리에 계시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홍수전은 일부러 얼굴에 짜증을 섞어가며 서태후의 도착을 기다렸다. 잠시 뒤, 올해 23세에 불과한 서태후가 화려한 문양이 수놓아진 의복을 입은 채 방 안으로 들어왔다.

“좌도어사 홍수전, 의비전하를 뵙고자 방문하였습니다.”

서태후는 얼마 전 함풍제의 자식을 낳고 지위가 한껏 올라가 있었다. 그 기회를 노려 홍수전이 관여하고 있던 가장 중요한 작업을 강탈해 버렸다.

“좌도어사께서 왜 방문했는지 얼굴만 보아도 알 것 같군요.”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하옵나이다. 다만 전하께서 담당하시게 된 영웅약 생산에 한때 관여한 몸으로서 경과가 궁금할 따름이옵나이다.”

서태후는 홍수전이 주관하던 영웅약, 헤로인 생산과정에 눈독을 들이고 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미 프로이센의 연구진도 그녀의 명령을 듣고 있었다.

홍수전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거듭 고개를 조아렸다. 그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본 서태후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옆으로 휙 돌리며 놀리듯이 말하였다.

“그러시긴 할 겁니다, 좌도어사께서 한창 도찰원에 계실 적에 황상께서 아편을 입에 대시지 않았습니까? 그 아편의 해약이 제 손에 달려 있는 몰골이지요.”

“그러하니 생산 과정이 궁금합니다. 얼마나 진행되었는지요?”

“제가 알아서 잘 담당하고 있으니 염려하지 마시지요. 좌도어사가 쓸데없이 독극물 투입을 염려해 뒤죽박죽으로 만든 중간 과정도 이행하는 중이구요.”

서태후는 홍수전의 심기를 박박 긁어놓으며 그의 표정 변화를 지켜보았다. 마치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 듯이 사정없이 아픈 곳을 찔러댔다.

“예정대로 잘 진행되긴 할 거 같아요. 아무런 염려를 하지 마시고 제가 영웅약을 만들어 황상의 중독을 치료하는 그 날을 지켜보시지요.”

“안전성을 판단한 사람은 저입니다. 제발 제 이름을 한 번이라도 말씀해 주실 수 있사옵니까?”

“글쎄요? 황상의 입에 아편이 들어가게 내버려 둔 사람이 아편을 끊는 약을 만든다고 뭐 잘난 것이 있을까?”

반 존대를 섞어가며 교묘하게 심기를 긁은 서태후는 일방적으로 접견을 중단하였다. 홍수전은 분노로 몸을 부들부들 떨어가며 주변의 호위병들을 노려보았다.

호위병들도 홍수전이 당하는 일을 보면서 분노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홍수전은 지체 높은 상대에게 아무런 말도 못 하였다.

분명 서태후는 홍수전의 정적이 될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지체 높은 신분, 명석한 두뇌 그리고 태자를 낳으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파벌까지 있었다.

그러나 경험이 부족하였다. 서태후는 홍수전의 예상대로 움직이며 스스로의 목줄을 얽어매고 있었다.

“젊으면 눈앞의 일에 급급하고 성과에 얽매이기 마련이지. 오늘도 억지로 싸우느라 괜히 기운만 빼놓았군.”

서태후는 홍수전과 갑론을박을 벌이는 것 자체가 자신의 목줄을 죄는 행위임을 몰랐다. 이미 서태후가 홍수전을 압박한다는 소문이 자금성 전체에 퍼져 나갔다.

홍수전은 대한제국에서 수입한 콜라를 들이켜며 끓어오르는 속을 달랬다. 정기 간부 회의에 모인 배상제회의 핵심 간부, 객가 계층은 홍수전을 달래듯이 말하였다.

“젊은 계집이 자기 목줄을 스스로 조이는 꼴 아닙니까. 회주님께서는 마음을 놓으시지요.”

“덕분에 귀찮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전의 방식보다 훨씬 나은, 황제 암살 시도를 미연에 눈치채고 막는 사람이 되지 않았습니까?”

“누가 아니라 하는가. 멍청하게도 아편 치료제를 황족의 손으로 만들어내겠다면서 나를 윽박질러 빼앗아 가버리지 않았나? 그 자체가 함정인 줄도 모르고.”

홍수전이 코웃음을 섞어가며 좀 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자 핵심 간부들 모두가 끅끅거리며 웃음을 참았다. 그러던 중 새로 간부에 자리에 오른 양수청이 질문을 하였다.

“영웅약이 지독한 극약이라면 조선에 팔아서 나라를 망가뜨리면 어떠합니까?”

“이 썩어 문드러진 개자식아! 그딴 말을 다시 하면 혀를 뽑아버리겠다 경고했었지!”

홍수전이 등용하여 키운 양수청의 얼굴로 주먹이 날아들었다. 주먹에 턱을 맞은 양수청은 단 번에 몸이 뒤로 젖혀지고 입에서 핏줄기가 솟아 나왔다.

홍수전은 단검을 들어 양수청의 목에 겨누었다. 그리고 눈에 핏발이 가득 선 몰골로 손을 분노로 부들부들 떨고 가래 끓는 소리를 섞어가며 말하였다.

“영웅약은 이번 계획이 끝나면 모조리 폐기한다. 그딴 미친 극약을! 우리가 다스릴 새 나라에서 만들어내 조선에 판매한다고? 그럼 그 약을 만드는 이 나라의 꼴이 어떻게 되겠나!”

다른 간부들은 홍수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였다. 이 시대의 물건은 아주 희귀한, 예를 들어 콩고 식민지의 고무와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생산국에서 더 널리 퍼져 나간다.

대한제국에 수출하는 양의 몇 배, 최악의 경우에는 수십 배에 달하는 영웅약이 중국 대륙으로 퍼져 나갈 것이다. 양수청은 눈을 내리깔며 사죄를 청하였다.

“죄······.죄송합니다.”

“네놈을 내가 직접 등용하지 아니하였다면 혀를 찢어발겼을 것이다. 처벌을 기다리도록.”

단검을 다시 칼집에 넣은 홍수전은 분노로 치솟아 오른 땀을 닦았다. 그리고는 코웃음을 섞어가며 양수청을 바라보고 말하였다.

“내가 의비에게 영웅약 생산 관련 제반 사항을 빼앗긴 척 넘길 당시의 일을 기억하나?”

“정확히는 모르고 있지만 사람들의 업무에 관여했다 하였습니다.”

“회주님께서 혹시나 의비가 마구잡이로 생산을 할 것 같아서 많이 고려하셨다 하였는데요.”

조일준이나 박현상의 예상과 달리 헤로인의 청나라 외부 유출은 홍수전도 기피하였다. 그는 이 흉악한 약을 오로지 만주족 최상층의 제거에만 활용할 생각이었다.

“유출 방지를 위해 사람을 여섯 무리로 분류하여 자신이 담당한 과정만 철저히 익히게 하고 있다. 더군다나 생산에 필요한 도구는 이 나라에서 만들지 않고 보로서에서 들여오고 있고.”

그에게도 최소한의 자제심은 있었다. 사람을 단숨에 중독 시키고 끊는 순간 죽게 만드는 위험한 약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도덕적 관념도 있었다.

이런 도덕적 관념이 없는 나라는 이 시대에는 영국이 거의 유일하였다. 이 사실을 되새기듯이 홍수전은 손가락을 들어서 천장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새 천하에 마약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이야 자금을 만들고 만주족을 어지럽히기 위해 일시적으로 사용할 뿐. 언젠가는 스승님의 뜻을 받들어 해악을 모두 없앨 것이다.”

“회주님의 뜻을 받아 섬기겠습니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진정되자 홍수전은 팔짱을 끼고 창밖으로 자금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한창 헤로인 제조법이 전수되고 있을 전각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조에 관여한 놈들은 살인멸구도 할 겸 모조리 죽여 없앨 것이다. 어차피 이주(함풍제의 휘)에게 독약을 먹인 놈들이 될 것이니 의비와 같이 숙청하면 될 것 같군.”

“혹시나 그 과정에서 탈출한 놈들이 영웅약을 만들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어. 여섯 무리로 나누어 각 전각에 배정한 놈들이 모조리 탈출하려면 하늘을 날아서 탈출할까 땅속으로 꺼질까?”

“애초에 영웅약 생산에는 몇 년 이상 교육을 받은 사람과 보로서에서 들여온 도구와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고의로 유출하지 않는 한 불가능합니다.”

홍수전이 말이 되는 일이냐고 중얼거리며 코웃음을 치자 간부들 모두가 양수청을 바라보며 비웃음을 섞어가며 웃어댔다. 설명이 끝나고 홍수전은 다른 간부들에게 질문을 하였다.

“변란은 앞으로 사 년이 남았다. 계획은 알고 있겠지?”

“알고 있습니다! 회주님께서 세우신 원대한 계획을 가슴속에 새겨두었습니다!”

가장 열정적인 간부, 남대신 이수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홍수전과 친인척이 변을 당할 경우 이수성이 차기 배상제회 회주가 될 사람임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 계획을 논해 보도록.”

“내년 말부터 의비의 휘하에서 완성될 영웅약을 비축합니다. 이후 사 년 뒤(1862년)에 이주를 시작으로 아편에 중독된 각 황족에게 배급될 것이지요.”

“그 과정이 중요하지. 본래 도찰원 좌도어사인 내가 직접 진상해야 하였는데 의비가 어설프게 손을 대서 의비의 손으로 진상되지 않나.”

“그렇습니다. 황족들이 영웅약에 완전히 중독되도록 한 달을 내버려 둡니다. 그 후 회주님께서 진상되는 영웅약에 독이 섞여 있다고 간언을 올리는 것입니다.”

홍수전은 자신을 철저한 충신이자 영웅으로 포장할 생각이었다. 헤로인은 부작용이 없는 아편 치료제이나 권력욕에 미친 서태후가 독을 섞어서 진상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도찰원 좌도어사가 독약이라 주장한 순간 감찰이 시작되고 복용이 중단되리라. 이후 벌어질 일을 홍수전이 즐거운 눈치로 말하였다.

“다만 내 간언이 너무 늦어서 문제이지. 의비가 교묘하게 독을 섞어 먹인 바람에 영웅약을 끊었음에도 이주를 비롯한 황족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거야.”

“최소 백여 명 이상의 고위 관료와 만주족이 독살당한 뒤 회주님께서 나서실 차례입니다. 이주의 아들 자이슌(동치제의 휘)을 옹립하고 숙청을 실시하는 겁니다.”

“일단 의욕만 앞선 의비를 죽이고, 그다음에는 의비의 파벌을 모조리 숙청해야지.”

홍수전은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을 계획을 세워두었다. 모든 죄는 서태후와 공친왕이 뒤엎어 쓰고 자신은 충성을 다 하는 신하로 위장할 생각이다.

“공친왕 정도야 트집을 잡아서 죽이면 될 거야. 설령 도망친다 하여도 북경 주변을 모조리 객가 형제들이 포위할 것인데 도망칠 길이 있겠나?”

“북경에 있는 만주족의 핵심 파벌은 대부분 제거됩니다. 설령 교전이 벌어진다 하여도 팔기군 따위가 우리 배상제회의 병사들을 상대로 버티지도 못할 겁니다.”

홍수전의 휘하 객가들은 부하라기보다는 동맹에 가까웠다. 이들은 각지의 만주족을 죽이고 재산을 갈취하여 자신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활동할 예정이었다.

그 과정을 담당하는 자는 권력을 거머쥔 충신 홍수전이었다. 쉴 새 없는 숙청과 반란 진압을 통하여 만주족의 씨를 말리고 그 자리를 객가로 메우리라.

“어차피 억눌려 살던 한족은 제대로 반응도 못 하고 멍하니 우리를 지원하겠지.”

“그렇습니다, 한족들이 어떻게 이런 변란에 대처합니까?”

“이 숙청을 통해 만주족 대다수를 제거해 버리면 다음으로 할 일이 무엇이겠나?”

“여섯 살밖에 안 된 황제에게 선양(禪讓)을 받으셔야지요.”

홍수전은 이수성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권력 기반이 상실되고 지방 세력이 축출된 만주족은 결국 홍수전이라는 새 황제에게 선양을 하여 목숨을 구걸하리라.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군.”

“정말 살려주실 겁니까?”

“물론, 그 당시에는 살려줄 것인데 원한이 하나 더 남지 않았는가?”

홍수전은 안주머니에 숨겨둔 임칙서의 유품, 팽(烹)이라 도광제가 친히 적은 종잇조각을 꺼냈다. 그리고는 이 종잇조각을 다시 품속에 넣고 말하였다.

“스승님의 원한을 갚으려면 그 더러운 핏줄을 다 죽여 없애고 모든 무덤을 뒤엎어야지. 이 나라에서 만주족은 아예 자취를 감출 거야.”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완벽한 계획이었다. 황족끼리 자중지란을 일으키고 권력에 미쳐 다툰다면 한족 관료들의 생각이 어떨지는 불 보듯 뻔하다.

있던 충성심도 사라지고 그나마 나라를 온전히 다스리려 노력한 홍수전에게 관심이 쏠리리라. 다만 간부 중 한 명인 풍운산은 조심스러운 의견을 내놓았다.

“참으로 완벽한 방법입니다. 다만 조선이 이 과정에서 개입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당연한 일이지만 명분이 없지. 내가 통솔에 실패하여 학살이라도 일으킨다면 모를까, 북경 대사관의 머저리들은 꽁꽁 묶어서 조선으로 돌려보낼 생각인데?”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놈들이 영길리처럼 패악을 부리면요?”

그럴 수도 있었다. 지금 대한제국의 상태를 보면 한껏 방심하여 자신의 힘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불량배나 마찬가지였다.

홍수전은 다른 간부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어금니가 뽑혀 지혈을 위해 솜을 우물거리는 양수청을 노려보며 질문을 하였다.

“자네는 남경 인근에 다녀온 적이 있지.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는가?”

“남경 인근을 장악하기 위해 포섭한 형제들이 병사 기준으로 삼만여 명, 여기에 주변에서 추가 징집을 할 경우 오만여 명에 육박합니다. 또한 각 지방을 지키는 병사도 있습니다.”

“병력을 닥닥 긁어모으면 강남 일대에서 칠만 명 정도는 되겠군. 훈련 정도는?”

“다들 배상 소총 사용에 익숙하며 소규모 민란 진압을 반복하며 경험을 쌓고 있습니다.”

양수청은 성격이 오만하고 자부심이 넘쳐도 능력이 좋은 간부였다. 홍수전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거사를 위하여 모든 준비를 마쳐두고 성과를 차근차근 쌓아두기까지 하였다.

홍수전은 머릿속으로 계산을 시작하였다. 대한제국은 지난 조-청 전쟁에서 잘해야 4만여 명의 병력을 사용했다. 국력이 아무리 올라가도 8만 명 정도의 병력이 전부이리라.

더군다나 요동과 청도 그리고 상해를 통해 나눠서 진격해야 하리라. 홍수전은 각 대신들에게 대한제국이 개입했을 경우를 가정하여 설명을 하였다.

“일전에도 설명을 하였지만 내가 권력을 잡고 나라를 정비하기 전까지 조선과의 전투는 가급적 회피한다. 국력을 하나로 모아 조선을 징벌할 그 날을 위해 힘을 아끼는 것이다.”

“하오나 새로 천명을 거머쥔 회주님이 수세(守勢)를 보이시면 아니 되는 법입니다.”

“수세가 아니다, 만주족 놈들이 망가트린 나라를 정비하느라 다른 힘을 쓰는 것이지. 모든 간부들은 조선군이 공격해 올 경우 한족을 앞세워 상대하도록.”

홍수전의 생각대로라면 공격은 몰라도 수비는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다. 이미 지난 전쟁에서 보여준 조선군보다 조금 처지는 수준의 군대가 32만 명에 육박한다.

여기에 한족들을 징집하여 머릿수를 불리면 50만 대군 혹은 그 이상을 육성할 수도 있었다. 홍수전은 각 간부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각 간부들은 조선군이 침입해 왔을 경우 알아서 방비하도록. 다만 양수청 너는 벌을 받아야 할 몸이니 혼자서 상해의 조선군을 상대한다.”

“저 혼자 말입니까?”

“네게 벌을 내리는 것도 있지만 널 신뢰하기에 하는 행동이다. 그 정도는 해야 남경의 친왕(親往) 자리는 얻을 수 있지 않겠나?”

양수청이 머뭇거리자 홍수전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아예 얼음 한 덩어리를 가져와 부어오른 얼굴에 가져다 대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네가 지휘한 한족은 조선군에게 공격을 당하며 원한을 품고도 남는다. 그렇게 되면 네 휘하의 한족들을 더 많이 포섭하여 조선에 역공을 가할 수도 있지 않겠나.”

“이토록 막대한 권한을 주실 줄이야······.”

양수청조차 홍수전의 담대함에 고개를 숙였다. 남경이라는 알토란 같은 땅을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이라면 조선의 왕이, 이제는 황제가 된 자가 부끄럽지 않으리라.

“그나저나 외과의는 누구를 보낸다.”

홍수전은 군의관으로 쓸 의사를 어디서 보낼지 고민하였다. 그러던 중 자신의 스승이자 반란 명분인 임칙서를 기억하고는 그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작가의 말

홍수전도 사람입니다. 미치광이라도 할 일이 있고 하지 못할 일이 있지요.

중국 대륙의 헤로인 생산은 향후 50년 동안 없습니다.

홍수전이 철저히 화근을 제거할 예정이며 살아남아도 기반이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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