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269화 (239/345)

269화

22장 4화 권한과 의무(1)

일준이 녀석과의 술자리는 생각보다 길어졌다. 제아무리 청주라 해도 많이 마시면 늙은 몸으로 받아들이기 힘들기 마련이라 서로 술에 거하게 취해서 몸을 휘청거렸다.

“이야, 우리 프랑스 아주 많이 변했네?”

“아주 합리적인 제국주의를 주장하고 있지. 잘만 하면 중동 일부 지역까지 프랑스어를 공용 제2 언어로 사용하는 국가들이 주르륵 탄생할 거야.”

“그럼 영국을 넘어서서 유럽의 최강국이 될 가능성은?”

“있겠냐. 유럽은 세력이 지나치게 거대해지면 연합으로 두드려 패잖아.”

술을 마셔서 잘 안 돌아가는 머리로 프랑스의 성공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다. 그나마 나폴레옹 3세, 이제는 루이 샤를 보나파르트 의장이 제시한 안건도 분석해 보았고.

그의 선택은 옳은 편이다. 본래 역사의 프랑스라면 아이티처럼 착취하고 보지만 이 역사의 프랑스는 이미 아이티에 고무나무 농장을 설립하면서 장기 투자에 성공하였다.

여기에 베트남을 괴뢰국이나 식민지가 아닌 동맹국이자 프랑스에게 필요한 물자를 수출해 주는 ‘작은 인도’로 만들어놓았고. 그런 점에서 이런 장기투자는 한번 해볼 건수이기도 하지.

“결론만 말하자면 이탈리아 독립으로 빈 체제 붕괴, 레바논 일대를 시작으로 키프로스와 그리스까지 새로운 민족주의의 열풍에 휩쓸릴 것 같네.”

“그럼 유럽의 구도는 현대와 비슷하다는 말인가?”

일준이의 말을 듣고 한참 동안 고민해 보았다. 지금까지 유럽에 생겨난 변수가 너무 많아서 내 추측이 옳을지 틀릴지는 모르지만 가장 큰 변수만 따져도 역사가 꽤나 뒤틀릴 것 같다.

“에이 아니지, 지금은 잘 드러나지 않는데 프로이센이 최고로 피해를 많이 입었어. 지금까지 관심을 안 둬서 별로 말은 안 했는데 유럽 정세도 꽤 많이 뒤바뀔 거다.”

생각 외로 유럽 역사에 영향을 많이 끼친 사건이 1848년의 혁명이다. 겉으로 보면 혁명이 대부분 실패하고 국가가 굳건히 유지되었지만 내부에 많은 상처를 남겼지.

이 역사는 그 상처조차도 없다. 당시에 붕괴되고 시체 몰골이 되었어야 할 빈 체제는 10년이 넘게 살아남아 있다.

여기에 유럽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오토 폰 비스마르크도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고.

본래 1848년 혁명부터 과격한 방식으로 인기를 끈 비스마르크는 혁명 자체가 불발되며 지금 지방 의원으로 소일거리나 하고 있다던가.

“당장 비스마르크가 없고 혁명의 영향도 받지 않은 프로이센이야. 그나마 기본적인 체급이 있어서 잘 살고는 있는데 본래 역사처럼 확 튀는 짓은 못 할걸?”

“야, 그러면 독일 주도의 과학기술 발달이 불가능하다는 소리야?”

“이 대한제국이 해야지. 이번 기회에 유럽에서 인재나 가져오지그래?”

“그걸 말이라고 하냐? 유학생을 받으려 해도 기본 자격이 국립이학대학 입학고시 통과라서 점점 난이도가 높아지잖아.”

일준이는 물컵에 청주를 콸콸 따르더니 나에게 무턱대고 건네주었다. 그러고는 짜증을 섞어서 잔을 휘적거리고는 말했다.

“일단 건배부터 하자. 이제는 내가 테슬라를 키워야 할 입장이네.”

“화성 갈 생각이냐?”

“뭔 화성이야! 니콜라 테슬라가 오스트리아 사람이잖아!”

일준이의 말을 듣고 멍하니 녀석을 바라보았다. 이 녀석은 역사는 모르는데 과학자의 인명에는 제법 해박한 녀석이라서 니콜라 테슬라의 고향도 알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형성하는 대타협도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헝가리의 혁명도 없으며 빈 체제는 프랑스에 의해 기괴한 방식으로 무너지니까.

그렇게 되면 니콜라 테슬라는 엉뚱한 장소에서 엉뚱한 일을 하다 과학자로서 꽃을 피우지도 못할 가능성이 꽤 높아진다.

일준이는 청주를 단숨에 들이켜고는 말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특별 입학생 제도나 젊은 인재를 포용하는 제도를 마련해야지.”

“지금 유대인 인맥을 통해서 쓸 만한 인재들을 받아들이고 있잖아?”

“테슬라쯤 되면 이야기가 다르지. 테슬라 한 명만 있는 게 아니야, 초기 노벨상 수상자들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엉뚱한 장소에서 엉뚱한 일을 하면 과학 발전이 어떻게 되겠냐?”

“네 말이 맞기는 한데 지금 절차가…….”

생각 외로 대한제국의 국립이학대학 입시는 까다롭다. 내국인이야 미친 난이도의 시험을 돌파하기를 포기하고 사립대에서 학위 이수를 하고 사기업에 취직하는 수준이지.

그나마 외국인 입학고시가 조금 쉬운데 그 조금 쉬운 것도 만만한 수준이 아니다. 오죽하면 프랑스 출신으로 입학에 실패한 사람들이 그랑제콜에 너끈히 합격할까.

다시 물컵에 청주가 부어졌다. 이걸 마시면 숙취에 시달릴 것 같은데 일준이는 자신의 잔에도 청주를 부어 넣고는 말했다.

“이번에 태상황 폐하께 선물로 드릴 어가는 네가 좀 전해주고 와라. 그렇지 않아도 너 정도 권한이면 쌍성자에서 외교 업무 제반 처리 다 가능하잖아?”

“네가 갈 일을 왜 내가 해?”

“작년 한 해 동안 네 번이나 다녀온 사람에게 말이 많은 것 같으십니다? 난 내일부터 황제폐하에게 새로운 인재 모집 관련 서류를 작성해야겠다.”

일준이가 딱 잘라서 말하는데 쌍성자에 한번 다녀와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나 정도의 권한이면 굵직한 사안이 아닌 단순한 일 정도는 알아서 처리해도 되고.

다음 날, 효명제의 재가를 얻어서 명목으로는 태상황의 새 어가를 전달하기 위해, 실질적으로는 러시아 이주민과 외몽골 귀족들과 관련 업무를 현장 정리하기 위해 배에 올랐다.

“아이고 내 팔자야, 졸지에 이런 거대한 수레나 운반하는 인부 신세가 되었네.”

쌍성자는 순조가 방문한 순간부터 일종의 거대한 사유지가 되었다. 효명제조차 어찌하지 못하는 위대한 태상황이 머무르는 장소라 모든 이들의 신경이 곤두서기 마련이다.

당연히 김좌근을 비롯한 국가 중진들이 방문하여 업무 처리를 하였다. 한창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던 김좌근은 나를 보더니만 기쁜 마음으로 달려와 말하였다.

“조카사위 왔는가? 이번에는 또 무슨 일로 왔나?”

“태상황 폐하께 어가를 전달해 드리러 왔습니다. 하옥 대감님은 어찌 오셨는지요.”

“그야 내후년 은퇴 아닌가? 은퇴한 다음에는 막대한 재산을 굴릴 생각으로 왔지. 여기에는 콜라공장을 짓고 저쪽에는 자네가 약속한 시베리아 횡단 노선 인근에 땅도 사두고.”

다른 관직이라면 권한에 걸맞은 업무가 주어진다. 반면 김좌근의 경우에는 재무 관련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부패를 염려하여 권한이 많이 축소되고 억압된 상태다.

솔직히 말해 김좌근같이 가문이 좋고 자본력도 충실한 사람이 권한을 맘대로 받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도 하고.

김좌근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하였다.

“아무튼 자네 덕분에 먼 훗날의 일을 알 수 있어서 말년이 편할 것 같아. 우리 안동 김문을 이 나라를 넘어서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으로 만들려고 하네.”

“그나저나 은퇴가 이 년 뒤이면 좀 애매한데요? 지금 은퇴하시지요?”

“본래 오 년 정도 더 일하라 하였는데 폐하께 간언을 드려서 이 년으로 줄였네. 더 늙으면 사업을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서 어쩔 수 없다 하였지.”

김좌근 이 양반도 참 딱하기가 그지없다. 본인 생각으로는 청나라와의 전쟁이 한참 뒤에 터질 것 같다 판단해서 적당한 시기에 은퇴하고 후임자에게 업무를 떠넘길 생각을 했으리라.

솔직히 지금 은퇴해도 문제가 생길 상황이다. 김좌근의 말년이 청나라와의 전쟁 예산 편성에 물들 거라 생각하니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그 안타까움을 담은 표정도 김좌근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는 저 멀리 실시간으로 깎여나가는 산을 보면서 말하였다.

“저기 저 산 보이나? 저 산기슭을 좀 많이 깎고 동방 골나(콜라) 공장 하나를 만들 생각이야. 동티단이라는 단체에 노서아 이주민들이 가입하였는데 열심히 일하더군.”

“노서아 이주민들이 동티단에 가입하였다고요?”

“태상황 폐하의 은혜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가입했다 하더군. 듣자 하니 동티단 활동을 일 년 하고 바로 군문에 입대하여 농사도 짓고 군인으로도 일하려 한다던데?”

이건 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아무리 내 위에 황제와 태상황이 있다지만 외국인을 멋대로 군대에 가입시키는 행위 자체를 용납할 수 없다.

하물며 용병도 아닌 정규군 입대면 외교 결례를 넘어서서 심각한 수준의 마찰이 생길 수준이다.

현장으로 달려 올라가 사람 몇 명을 불러 모아 이유를 물어보았다.

자신의 이름을 드미트리라고 밝힌 사람은 어느 정도 한국어를 할 줄 알고 있었다. 나는 다짜고짜 그에게 윽박지르듯이 압박을 가하였다.

“자네들은 러시아에서 유배를 당한 사람이지만 러시아 국민이기도 하지. 그런 사람들이 뭘 얻어먹을 것이 있다고 대한제국 정규군에 입대를 하는가?”

“제가 알기로 대한제국은 청나라와 전쟁을 치를 것 같습니다. 이 전쟁에 참전하여 저희가 정착하는 데 도움을 주신 태상황 폐하의 은혜를 갚으려고 합니다.”

“그 은혜보다 민폐가 크다는 생각은 안 해 봤는가?”

본래 동시베리아 공화국을 만들 입장이라면 별문제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계획이 헝클어진 순간부터 이 사람들은 러시아로 돌려보내야 할 이들이다.

드미트리라는 사람은 한동안 내 눈을 바라보고는 자신의 속내를 드러냈다.

“경험을 쌓고 본국으로 돌아가 차르를 모시기 위해 활약할 겁니다.”

“본국으로 돌아가 차르를 모시기 위해서 활약한다?”

이 말을 사람을 잘 믿고 감정적인 순조도 아니고 내가 믿을 리가 있나. 눈에 살기가 가득하고 증오와 악다구니가 보이는데 믿으면 바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게 귓속말로 물어보았다.

“그러면 차르를 묘지에서 모실 생각이라도 있는가?”

“아닙니다, 러시아의 신민으로서 신의 대리자이신 차르께서 만수무강하기를 빌 뿐입니다.”

“차르께서 만수무강? 그러면 차르 주변의 귀족들은 어찌할 생각인가?”

“아 그게, 나라를 어지럽히는 부패한 신하는 쳐서 없애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지금 러시아의 혁명은 차르를 섬기는 채 자신의 권리를 찾는 온건파와 시베리아를 건너온 과격파 두 부류로 나뉜다. 그중 과격파는 참으로 놀라운 제안을 하였다.

“그러면 차르는 몰라도 나머지 귀족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그렇긴 합니다만 귀족들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같은 평민이 되면 용서할 겁니다.”

“같은 평민이 되려면 재산의 절반 이상은 국가를 위해 헌납해야 만족할 분위기로군.”

“그 정도라면 만족할 수 있지요.”

드미트리 이 인간과의 대화만 나눠도 동티단에 가입한 사람들의 사상을 알 것 같다. 러시아 혁명에서 강경파에 속하는 시베리아 이주민들은 한 가지 타협점을 미리 생각해 뒀다.

바로 차르를 절대 죽이지 않고 차르의 권력을 유지하는 핵심, 러시아의 귀족들의 씨를 말려버릴 과격한 방침이다. 그렇게 되면 차르가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하다.

“차르를 궁전을 밝히는 횃불로 삼을 생각이로군.”

드미트리는 대답도 안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였다. 솔직히 말해 횃불이라는 말도 아깝고 아무런 권한도 없는 무형문화재 차르가 될 수준이다.

이 정도면 일본의 덴노보다 권한이 없는 수준이겠지. 기껏해야 백여 명 남짓한 전통 러시아 제국 방식, 이 시대에는 총도 없이 도끼와 창을 들고 다니는 호위병만 가지고 있으리라.

재산? 촛불 하나, 등잔 하나를 바꾸는데도 예산안을 작성하고 국민 의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리라. 어떤 놈이 이 무형문화재에게 관심을 보일지 짐작도 안 간다.

건드려 보았자 얻어먹을 것도 없고 새로 수립될 공산정부의 제1 목표물이 되어서 숙청 수위에 오르리라.

말 그대로 차르와 후손들에게 부과된 영원한 멍에이자 족쇄이다.

* * *

박현상이 쌍성자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무렵 조일준은 효명제에게 한 장의 서류를 제출하였다. 황제의 재가가 필요한, 이 나라의 법률을 거스르는 요청이었다.

“총장 추천 입학생 제도라 하였는가?”

서류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국립이학대학 총장 조일준 개인의 판단으로 한 해 30명의 입학생을 모든 절차를 무시하여 선별할 수 있는 권한에 대한 요청 서류였다.

“그러하옵니다. 폐하께 간언하기 삼가 무례한 일이며 이 나라의 법도를 거스르는 일이오나 신이 이 정도의 권한은 가질 수 있다 사료되옵나이다.”

조일준의 요청을 확인한 효명제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대한제국의 새로운 법에 의거하여 음서(蔭敍), 과거를 보지 않고 관직에 들어오는 제도를 완전히 폐지하였다.

결국 관직에 오르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정식 절차를 밟아 국가고시를 보고 대학에 들어오거나 바로 관직에 들어오는 정규직, 사립대학에 입학한 뒤 사기업을 거치는 경력직이다.

경력직조차도 음서 제도에서 실시되었던 문음취재(門蔭取才), 국가고시에 준하는 전문 시험을 거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조일준의 요청은 이런 중간 과정이 없었다.

시험이 없이 오로지 총장 재량으로 국립이학대학에 원하는 사람을 입학시키는 권리. 이 권리가 불러올 후환을 염려한 효명제는 한참 앓는 소리를 내다 답을 내었다.

“전조 시절에 무신의 변이 어찌하여 일어났는지는 알고 있는가?”

“알고 있사옵니다. 문벌귀족이 음서로 자리를 차지하고 과거 시험에서 자신들의 족벌을 우대하여 권력을 차지하였사옵니다. 이로 인하여 나라가 곪아갔사옵니다.”

“그렇게 잘 아는 사람이 어찌하여 모든 절차를 무시하자는 제안을 하는가.”

“신이 감히 말씀을 드리옵나이다. 지금까지 이 대한제국을 부강하게 만든 학문 가운데 이 할은 신과 신이 들여온 사람들이 일구었사옵니다.”

효명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조일준은 자신이 2할을 일구어냈다 하였지만 사실 조일준이 없었다면 이 나라는 여전히 학문과 기술에서 뒤처진 국가가 되었으리라.

인재가 보일 때마다 모집하고 모집한 인재를 쉴 새 없이 굴려댄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기술을 모조리 개발하거나 미리 수입하여 모든 일에 막힘이 없도록 만든다.

모두 다 조일준의 판단력과 두뇌 그리고 끝없는 열정 덕분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조일준에게 모든 이학(理學) 관련 인사권을 담당하게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 말은 부정할 수 없구나. 하지만 이토록 많은 사람을 음서보다도 못하게, 오로지 총장의 독단으로 평가하고 대학이라는 학문의 전당에 발을 들이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효명제는 태자에게 나라를 물려줄 의무를 가진 한 나라의 황제였다. 잘못하면 태자의 시대까지 조일준이 일구어낸 세력이 영향력을 끼치거나 더욱 큰 파벌을 만들 수도 있다.

학문으로 시작된 학벌(學閥)은 물론이요, 모든 파벌은 시작은 올바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번 자신의 자리에 만족한 순간부터 부패가 시작되고 변질되기 마련이다.

“폐하의 뜻이 그러하면 신은 겸허히 받아들이겠사옵니다.”

“다만 이 나라를 위해 헌신해 온 조 총장의 심모원려(深謀遠慮)를 보아 두 가지만 수정하도록 하자꾸나. 먼저 족벌을 만들 수 있는 이 나라의 사람은 받아들일 수 없다.”

“다른 하나는 무엇이옵나이까?”

“일 년에 천거할 수 있는 사람은 다섯 명으로 제한한다. 또한 조 총장이 천거할 뿐 최종적인 심사는 오로지 나의 재가 하에 이루어지며 천거 권한도 오로지 조 총장에게 한정할 것이다.”

결국 그가 줄 수 있는 권한은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한 제약이 추가되었다. 그래도 모든 법적 절차를 무시한 막대한 권한임은 확실하였다.

황제에게 인재를 천거하는 것도 아닌, 모든 절차를 무시하여 인재를 들여오고 오로지 황제의 가부(可否)만 묻는 권한. 당연히 침묵하고 있던 관료들이 이견을 제시하였다.

“폐하, 최소한의 시험은 필요하옵나이다. 아무리 조 총장의 언사가 옳다 하여도 이는 아니 되는 일이오며 이 나라의 법도를 무시하는 일이옵니다!”

“한번 대학에 입학한 사람은 졸업 자격을 오로지 논문으로 증명하고 있사옵니다. 학사 학위 논문은 어지간한 학자들의 연구 주제를 조금만 참고해도 작성할 수 있사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예상대로의 반대에 직면한 효명제는 조일준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자신의 의견이 사방에서 공격을 받고 있음에도 그는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한동안 의견을 들은 효명제는 옥좌를 손가락으로 두드려 소리를 내었다. 그러고는 조일준을 미소를 담은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질문을 하였다.

“다른 이들이 저토록 반론을 내놓는 걸 조 총장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나라의 미래가 지극히 밝으며 신의 판단이 흐려지더라도 이 대한제국이 학벌에 의해 휘둘리지 않을 것 같사옵니다.”

“바로 보았구나. 예전이라면 자신들의 파벌에 끼어들게 하려고 혈안이 되었을 것인데.”

모든 정치는 의견과 의견을 충돌시켜 타협을 보는 과정이다. 조일준의 본래 뜻을 짐작한 효명제는 마지막으로 수정안을 제시하였다.

“모든 대신들의 뜻을 받아들여 입학고사를 보게 만들 것이다. 본디 국립이학대학의 입학 고사는 상대 평가이나 추천 입학생은 과락이 아닐 경우에는 무조건 통과할 수 있다.”

조일준에게 주어진 권한은 법을 뒤흔드는 만큼 막중하기도 하였다. 효명제가 직접 심사를 보는 입장이라 아주 확실한 인재가 아니라면 천거하기 곤란한 상황이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추천 입학생으로 자질이 부족한 사람을 선별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체면이 구겨지는 것은 물론이며 당대에 한정된 권한을 박탈당할 수도 있으리라.

“신의 욕심을 받아들여 주신 폐하께 그저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그러나 조일준은 아무런 염려를 하지 않았다.

나이가 적당히 차오른 미래의 과학자들을 마음대로 끌어들여 자신의 휘하에서 발전시킬 권한이 생겨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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