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화
22장 3화 위대한 프랑스(2)
본래 역사의 유럽은 1848년 무렵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농민 봉기와 노동자 봉기가 연이어 일어났다. 이 혁명의 불길은 이탈리아의 통일 열망을 불러오며 전 유럽을 진동시켰다.
루이필리프의 퇴위로 프랑스 제2공화국이 수립되었고 프로이센에서도 혁명이, 오스트리아에서도 연쇄적인 독립 요구로 인한 봉기가 빗발쳤다.
이 연쇄적인 혁명의 고리는 본래 역사와 달리 프랑스에서 끊어졌다.
루이필리프의 불만 억제 정책과 프랑스 시민들의 만족도 상승으로 인하여 오로지 이탈리아 반도에만 국한된 농민 봉기로 격하된 것이다.
“다들 불만은 쌓여가고 있는데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잘 버티고 있는 것 같더군.”
10년 전에 무너졌어야 할 빈 체제는 불협화음을 일으킬 뿐 버티고 있었다. 그저 크림 전쟁으로 인한 신성 동맹 붕괴가 5개 국가의 연합을 4개로 줄였을 뿐이다.
나폴레옹 3세의 평가를 들은 오르시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 평가를 덤덤히 받아들였다.
“바로 보셨습니다. 빈 체제 아래의 강대국이 수많은 사람들의 열망을 옭아매고 있지요.”
“그 열망의 근원이 어디인지 알 것 같군.”
“그렇습니다, 의장님의 큰아버지인 위대한 황제 나폴레옹이 전 유럽에 퍼트린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입니다. 이 위대한 정신을 이미 가지고 계셨지 않습니까?”
오르시니는 다시금 고개를 숙여 간절히 청하였다. 그러고는 아까 전 하였던 나폴레옹 3세의 말을 되새기듯이 말하였다.
“조금 나중이 삼십 년이 되어도 좋습니다. 우리 이탈리아 반도가 자립하고 봉건 체계를 벗어나 열강의 말석을 차지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알겠네. 다만 자네가 설명해 준 현재 이탈리아 반도의 상황을 고려할 때 여러모로 할 일이 많아. 당장 할 일은 오스트리아의 정책에 동조하는 것일세.”
“네? 오스트리아의 정책에 동조하다니요?”
“내 눈에 보이는 문제점은 다른 것이 아닐세. 난 자네의 인사를 받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
나폴레옹 3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오르시니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아주 단순한 질문으로 가장 큰 문제점을 들춰냈다.
“다시 한 번 묻겠네. 자네 출신이 어디인가?”
“처음에 말씀드렸다시피 에밀리아로마냐(emilia-romagna)의 멜돌라입니다.”
“자네 대답만 들어도 기본이 안 되어 있어. 프랑스의 국민이라면 외국인에게 대답할 때 프랑스 출신이자 어느 지역의 어느 도시 사람이라 할 걸세.”
이탈리아 반도는 각 지역별로 봉건제 시절의 영토를 지닌 소국이 난립한 형태였다.
당연히 이 시대의 사람들은 국민이라는 개념이 없이 특정 지역 사람이라는 생각을 지닌다. 오르시니조차도 봉건제를 바탕으로 삼은 지역 정체성에 얽매여 있었다.
나폴레옹 3세는 이 문제점부터 해결하기 위해 손가락에 물을 묻히고 탁자 위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설명하였다.
“이탈리아 반도의 통일과 독립? 각지의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이 통일 이탈리아에 세워질 국가가 아닌 지역을 더 좋아한다면 국가가 제대로 작동이나 하겠는가?”
“그래도 통일 국가의 형성이…….”
“베네치아가 병합되었다 생각해 보게. 이 친구들이 오스트리아 편을 들까? 아니라면 통일 이탈리아의 일원으로 활약할까? 자네 입장에서도 의심할 만한 상황이 아닌가?”
동그라미에 난잡한 선이 덧붙여지며 쪼개진 형상이 되었다. 나폴레옹 3세는 이 쪼개진 형상을 손바닥으로 덮으면서 말하였다.
“앞으로 이탈리아 반도의 사람들은 고통을 겪을 거라네. 그러다 보면 자신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새로운 천명(天命)을, 힘을 합치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를 만들게 될 걸세.”
오르시니도 나폴레옹 3세가 그린 아주 거대한 그림을 이해하였다. 프랑스의 개입으로 이탈리아인의 동질감을 끌어올리고 공화정을 창설하는 원대한 계획이었다.
설령 공화정이 실패하더라도 새로운 국가는 통일의 열망을 가지고 있으리라.
나폴레옹 3세는 고개를 끄덕이는 오르시니를 응원하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하였다.
“창조를 하려면 먼저 기존 체제를 파괴해야 해. 제법 시간이 걸릴 것 같지만 난 이탈리아의 봉건주의적 요소를 압박하여 무너트리고 빈자리에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를 주입할 거야.”
“제가 살아생전 통일 이탈리아를 볼 수 있겠지요?”
“아마도, 일단 감옥에 수감된 다음 재판을 받고 나서 생각해 보게.”
오르시니와 동조자들에 대한 처우는 나폴레옹 3세의 개입으로 국외 추방으로 결정되었다. 이후 개최된 국무 회의에서 나폴레옹 3세가 이번 사건에 대한 의견을 내놓았다.
“아무래도 이탈리아의 군사적 소요사태에 우리 군이 개입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양 국가를 무너트리고 통일 이탈리아를 지원할 방침입니까?”
모두가 나폴레옹 3세의 위대한 군사적 행동을 기대하였다. 반면 이 기대감을 확인한 나폴레옹 3세는 제발 전쟁을 일으키지 말라는 마음을 담아 말하였다.
“아닙니다, 우리는 오스트리아에게 아예 소요사태를 방지하고 빈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주둔 요청을 할 겁니다. 우리 대육군의 장병들이 이탈리아에 주둔하는 거지요.”
기대와 다른 방침에 대다수의 관료가 실망감을 표시하였다. 이 상황까지 예측한 나폴레옹 3세는 진중한 표정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지금 이탈리아 반도가 어떤 상황입니까? 이탈리아 반도의 예술가들이 혼란을 못 이겨 어느 도시로 와서 활동하고 있습니까?”
“그야 이 위대한 파리 아닙니까. 의장님께서 추진하신 파리 개조 계획의 성과로 더욱 많은 예술가들이 파리에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이탈리아는 이류 문화, 솔직히 말해 삼류 문화를 지닌 국가입니다.”
나폴레옹 3세의 말을 들은 관료들 대다수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 시기에는 르네상스를 주도한 찬란한 이탈리아의 문화는 빛을 잃은 지 오래이며 영향력을 거의 다 상실하였다.
위대한 문화의 종주국은 프랑스요, 그 뒤를 이어 새로운 문화를 꽃피우는 나라가 영국이었다. 나폴레옹 3세는 탁자를 살짝 내리쳐 소리를 낸 다음 자신의 주장을 하였다.
“이번 기회를 노려 이탈리아 반도에 위대한 프랑스의 문화를 전파합시다. 수많은 인재가 부족한 기반에 신음하면 이들을 모두 빼돌려 파리에서 일하게 만들어보지요.”
“의장님, 만에 하나 이탈리아에서 혁명이라도 일어나면 어떻게 합니까?”
“저도 같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단순한 자금 지원이면 몰라도 군사 개입과 일방적인 강요는 반발심을 극대화할 것 같군요. 그건 좀 예측하기 힘든 사태지요.”
관료 대다수가 나폴레옹 3세의 의견에 우려를 표시하였다. 국력을 좀먹는 전쟁 회피까지는 이해할 수 있어도 그 이상의 개입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초리였다.
반면 나폴레옹 3세는 얄궂은 미소를 지으면서 태연하게 말하였다.
“그 이후에는 빠져나가면 되지요. 우리가 아주 잘 개입해서 이탈리아 반도가 통일과 독립의 열망으로 휩싸이면 급한 쪽이 누구입니까? 우리입니까? 아니면 오스트리아입니까?”
“그야 당연히 빈 체제를 유지하는 오스트리아가…….”
빈 체제의 핵심인 오스트리아는 구식 체제의 유지와 세력 균형을 외교의 중심으로 삼았다. 이 과정에서 이탈리아의 통일이 이루어지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국가이기도 하였다.
또한 프랑스의 잠재적 적성국이자 경쟁자이다. 처음에는 반대의 눈치를 보내던 관료들도 나폴레옹 3세의 계획에 그럭저럭 동의하기 시작하였다.
“이제야 의장님의 뜻을 이해했습니다. 전쟁을 벌이기 전에 적을 약화시키려는 생각이군요!”
“군대를 철수하는 과정에서 오명을 좀 뒤집어쓸 것 같습니다.”
“오명이 뭐요! 우리는 자유, 평등 그리고 박애를 전파하는 거요! 불을 지르고 불이 내가 있는 자리까지 번지기 전에 어서 도망쳐야지!”
관료들은 나폴레옹 3세와 논의를 주고받으며 계획을 구체화시켰다. 최종 합의를 마친 다음 의장 자격의 나폴레옹 3세가 수려한 필체로 외교 문서를 작성하였다.
“이탈리아 반도의 삼국 파병 계획을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에게 제안하겠습니다. 이 자리에서 알아차리신 본래 의도는 발설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절대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관료 대다수가 만족할 수 있는 계획이었다. 왕당파와 보수파는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국력을 깎아내린다는 점에서, 급진파는 이탈리아의 공화국 형성을 기대하며 협의를 보았다.
이후 이탈리아 반도 일대의 소요사태를 방지할 목적의 3국 동맹이 형성되었다. 개중에 가장 많은 육군을 지닌 프랑스 군대가 이탈리아의 각 도시에 주둔하기로 하였다. 그 군인들 모두는 나폴레옹 3세에게서 내려진 명령을 철저히 이행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여기에 나폴레옹 3세의 휘하에서 인맥을 형성한 지식인들이 이탈리아에 파견되었다.
“여러분 모두는 공화정 혹은 어떠한 형태로든 이탈리아를 통일할 목적의 단체로 찾아가십시오. 제 개인 재산을 넘겨줄 테니 적당한 단체에 지원금을 주시면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이번 일은 나폴레옹의 이름이 아니지요?”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오로지 프랑스에서 잠자코 있던 혁명 단체일 뿐입니다.”
이탈리아 반도의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프랑스의 앞을 가로막는 잠재적 적국,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에게 거대한 엿을 선물할 계획이 가동되었다.
* * *
유럽에 커피 문화를 전달한 국가는 이슬람 세력과 가장 인접한 베네치아이다. 이 베네치아의 커피는 1580년 경 전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이탈리아 반도의 모든 사람들은 각기 다른 국가에 있지만 이 커피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원조라 주장하였다.
얼마 전 프랑스군이 주둔한 이탈리아 중부의 커피 전문점에는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커피를 주문하였다.
“커피 두 잔 나왔습니다!”
“고맙소, 여기 커피는 언제 마셔도 좋다니까.”
“그야 원두를 잘 들여오고 로스팅에 심혈을 기울인 덕분이지요.”
머리가 새하얗게 변한 가게 주인은 두툼한 뱃살을 어루만지며 손을 바쁘게 놀렸다. 아직 모카 포트나 에스프레소 기계가 없는 시대라 모두가 터키 방식의 커피를 즐겼다.
가게 주인은 자그마한 주철 그릇에 물을 넣고 커피가루를 한 큰술씩 넣었다. 이 주철 그릇을 열을 잔뜩 머금은 모래 위에 올려놓자 잠시 뒤 물이 끓어올랐다.
“어이쿠 손이 바쁘구나. 커피는 끓으면 제맛이 안 나지.”
커피가 아예 끓어오르면 향이 사라진다, 그렇다고 낮은 온도로 방치하면 잡맛이 나온다.
수백 년을 이어온 전통적인 방식의 예술이 가게 주인의 손으로 펼쳐졌다. 그는 물이 막 끓는 순간에 커피를 건져내고 다시 식은 커피 그릇을 가열하며 절묘하게 커피를 만들었다.
“커피 네 잔에 돌체(Dolce, 디저트) 나왔습니다!”
“다른 가게는 뜨거운 물을 부어 우려내던데, 여기는 전통 방식으로 우려내는군.”
“전통이 좋지요. 그 방식은 편하게 우려내자고 만든 우회 수단 아닙니까?”
진하게 우려낸 커피로 마음의 상처를 달랜 사람들은 달콤한 산딸기 파이를 먹으며 심신의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고는 길을 돌아다니는 프랑스 군인들을 보며 헐뜯기 시작했다.
“프랑스 놈들은 이 동네에서 뭘 먹을 물건이 있다고 주둔할까?”
“몰라, 베네치아 놈들이랑 샤르데나 놈들이 부추긴 거겠지.”
“시칠리아 놈들이 부추겼을지도 몰라. 놈들이 요즘 석탄 보급으로 돈을 벌지 않나?”
이야기의 주제는 당연히 이탈리아 반도 곳곳에 주둔한 프랑스 군이었다.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은 북부 일대를 견제하고 프랑스군이 중부와 남부 일대에 퍼져 나갔다.
이런 소도시에도 보름 전부터 프랑스군 수십여 명이 주둔하고 주변을 순시하였다.
사람들이 이야기꽃을 피우는 가운데 점심시간이 서서히 다가왔다. 모두의 대화 주제가 조금 뒤 즐길 점심 식사로 넘어갈 무렵. 한 무리의 병사를 인솔한 프랑스 장교가 가게에 들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뭘 드릴까요?”
“주 정부와 프랑스 사이에 맺은 계약에 의거해서 잠시 식당을 이용하려 한다.”
“그러니까 원하시는 게 뭐냐고요.”
손님 모두가 총검을 꽂은 프랑스 군인들에게 대꾸를 못 하는 상황에서 가게 주인만이 당당하게 이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프랑스군 장교는 이마를 감싸 쥐며 말했다.
“망할 놈들, 커피 가게라면서 제대로 된 커피가 없네.”
“우리 가게는 커피 가게 맞습니다! 삼백 년 전통의 커피를…….”
“우리가 맛대가리도 없는 이탈리아 커피를 먹을 것 같나? 이런 커피와 디저트를 배급하면 우리 위대한 프랑스군의 사기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거다!”
장교는 이미 상부로부터 이탈리아의 문화를 철저히 멸시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또한 머나먼 파견지에서 국가의 지원을 받아 프랑스식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입장이기도 하였다.
그 명령은 너무나 잔혹하게 이행되었다. 장교 휘하의 병사들은 주방으로 들어가 이탈리아 사람들의 영혼을 철저히 분쇄할 작업을 준비하였다.
“커피콩의 품질이 좋습니다!”
“필터 대용으로 사용할 고운 리넨 천도 있습니다!”
“어서 시작하도록!”
어느새 자리에서 밀려난 가게 주인이 뭐라 하기도 전에 작업이 시작되었다. 취사병이 디저트를 만들어내고 다른 군인들이 커피를 만들 준비를 하였다.
“커피가루는 작은 그릇에 넣어서 끓여야 합니다! 거기다가 너무 굵게 빻으셨습니다!”
“뭔 개소리야! 우리 위대한 프랑스에서는 네놈들의 맛대가리 없는 커피보다 더욱 우수한! 모든 프랑스인이 한 몸이 되어서 새로운 방법을 창안해 냈다!”
프랑스는 대한제국과 긴밀한 협조관계를 맺은 덕분에 드립 커피를 들여올 수 있었다. 다만 커피가루를 너무 많이 사용해 가격이 비싸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반면 이탈리아 반도 주둔군은 정부가 제반 비용을 제공하여 드립커피를 마음대로 마실 수 있는 형편이었다.
장교는 콧방귀를 뀌고는 명령을 하달했다.
“지금부터 우리 프랑스의 커피! 카페 필트(café filtre – 드립 커피)를 소개해 주마!”
모든 이탈리아 사람들이 그 끔찍한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자신들의 전통과 역사가 담긴 위대한 커피가 아닌 기괴한 방식의 프랑스식 커피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건 아니야! 차라리 날 죽여라!”
커피가루에 물이 부어질 때마다 가게 주인은 몸서리를 쳤다. 그릇 안에서 끓어올라야 할 커피가루는 뜨거운 물에 직격탄을 맞으며 포밍(foaming – 부풀어 오름)을 일으켰다.
마치 등에 끓는 기름이 끼얹어지는 느낌을 받은 가게 주인이 사정없이 몸을 뒤틀었다. 이는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도 고문이나 마찬가지인 행위였다.
완성된 드립 커피는 진하고 향을 가득 담은 커피가 아니었다. 한눈에 보아도 잔의 색상이 비쳐 보이는 희멀건 커피.
모든 이탈리아 반도 사람들이 증오심을 느낄 끔찍한 구정물. 존재 자체가 죄악인 액체가 되었다.
“미친놈들! 잉크 타놓은 구정물도 저것보다는 맛이 좋겠다!”
“우리 주 예수시어! 저들이 어떠한 악행을 저지르는 겁니까!”
“독사의 자식도 저런 커피를 먹으면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의 종이 되겠다!”
장교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드립커피 특유의 묽은 맛과 풍부한 향을 즐기듯이 한참을 음미한 다음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게 프랑스의 위대한 커피다, 네놈들의 맛도 없는 커피는 이제 기억 저편으로 치우도록.”
“닥쳐! 네놈은 커피를 모욕했다!”
용감한 젊은이 한 명이 장교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장교는 그랑제콜에서 학위를 이수하였고 조일준이 전해준 현대 권투를 쉴 새 없이 익힌 사람이었다.
장교의 주먹 한 발이 턱에 꽂히자 상대는 바로 바닥으로 널브러져 기절하였다. 장교는 기절한 젊은이를 바른 자세로 눕혀놓고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였다.
“네놈들은 이탈리아 반도에서 각 지역에 웅크려 사는 놈들이잖아! 교류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고 발전이 없으면 이런 맛대가리 없는 음식과 음료만 만들어낸다!”
“대위님, 디저트로 에끌레어를 준비했습니다.”
“오! 역시 솜씨가 좋다니까. 에끌레어가 가장 잘 어울릴 것 같더니만. 아무튼 네놈들은 삼류 문화를 지니고 있는 나라다, 우수한 프랑스의 문화를 배우도록.”
디저트 또한 이탈리아인 입장에서는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버터를 잔뜩 넣은 빵 위에 다시 버터를 잔뜩 사용한 크림을 얹고 위에 기름진 초콜릿 크림을 잔뜩 뿌렸다.
섬세하고 자연의 맛을 살리는 이탈리아 특유의 디저트와 동떨어진 진한 맛. 이들의 기준으로 기름덩어리와 구정물 커피를 프랑스 병사들은 정말 행복한 표정으로 즐겼다.
커피를 다 마시고 디저트를 모두 먹어치운 장교는 주머니에서 금화 하나를 꺼내 가게 주인에게 건넸다. 그러고는 울먹거리는 가게 주인을 비웃듯이 말하였다.
“재료비는 충분히 챙겨줄 테니 이 레시피를 잘 받아서 계속 만들도록.”
“재료 품질은 나쁘지 않군, 잘 먹고 갑니다.”
프랑스 군인들이 물러나자 가게 주인은 어린아이처럼 바닥에 주저앉아 흐느꼈다. 문화적 폭력이자 영혼을 사정없이 찢어버리는 또 다른 폭력이 그의 정신을 강타하였다.
“이럴 수는 없다! 이럴 수는 없어! 차라리 날 쏴 죽여라!”
“진정해! 그럼 우리 커피는 어디서 마시라고!”
가게 주인을 어르고 달래던 이탈리아의 젊은이들은 저 멀리 사라지는 프랑스 군인들을 보고 이를 갈아댔다. 이들은 조금 전에 군인들이 했던 말을 되새기듯 말했다.
“버터를 숟가락으로 퍼먹는 프랑스 놈들이 어쩌고 어째! 반도에 웅크려 사는? 개썅놈의 새끼들!”
“이대로는 안 되겠다! 그…… 누구야! 주세페 마치니 있잖아! 제노바 사람 말이야! 그 사람 말대로 하나로 뭉쳐야 해!”
“제노바가 아니고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해야지! 프랑스 놈들이 트집을 잡잖아!”
프랑스 군인들의 행동은 이탈리아 사람들의 역린을 긁는 수준을 넘어섰다. 이들은 아예 역린에 곡괭이질을 당한 수준으로 격분하여 지역감정이 분노로 덮어씌워져 버렸다.
군인들의 행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프랑스군이 파견된 각지의 식당에서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끔찍한 행동으로 이탈리아 반도의 정체성을 공격하였다.
“피자에 치즈와 토마토소스가 올라가야 한다고? 과일을 얹어서 디저트로 만들면 어떨까?”
“미친놈아! 당장 내 가게에서 나가!”
“네놈이 나가라!”
프랑스 군인들은 가게 주인과 종업원 모두를 제압하고 길거리로 내쫓았다.
잠시 뒤, 식사를 담당한 취사병은 장교의 요구에 맞추어 초콜릿 과일피자를 완성해 가져왔다.
“내가 보기에 피자는 디저트다. 위대한 프랑스는 한 국가로 뜻을 결집하였지만 이탈리아 반도 놈들은 각 지방별로 놀지 않나.”
“아무튼 장교님의 의견대로 따끈따끈한 디저트 좀 만들어 왔습니다.”
완성된 피자 위에는 말린 자두, 말린 파인애플, 말린 사과를 비롯한 과일 그리고 그 위에 얹혀 오븐의 열로 녹아내린 초콜릿이 버무려져 있었다.
이 피자를 프랑스 군인들이 나눠 가진 다음 마지막 한 조각을 주인에게 건넸다. 피자가게 주인은 이 피자를 확인하자 절규를 지르며 눈에 흙먼지를 뿌려서 시각을 포기하였다.
프랑스는 아무런 폭력행위를 저지르지 않고 철저히 문화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집요한 문화적 공격과 핍박에 의해 이탈리아인들의 정체성이 강제적으로 주입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