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266화 (236/345)

266화

22장 3화 위대한 프랑스(1)

1856년 프랑스의 국무의회 의장, 사실상 총리자리를 역임하게 된 나폴레옹 3세는 부임 직후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나폴레옹 3세가 군사적으로 팽창할 것이라 염려하였다. 그런 염려와 달리 나폴레옹 3세는 부임한 직후 연설이 아닌 기자 회견을 실시하였다.

프랑스의 신문사 기자는 물론 각 열강의 언론사가 모두 참가한 기자회견이었다. 나폴레옹 3세는 각국의 기자들에게 여러 질문을 받게 되었다.

“그동안 겪은 고난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많은 고난이 있었습니다. 특히나 베트남에서 겪었던 끔찍한 비극을 시민 여러분들의 도움 덕분에 극복하였지요.”

베트남의 아편 반란 당시 나폴레옹 3세는 고작 이천여 명의 병력으로 수만 명의 반란군을 격퇴하였다. 그 내막을 상세히 모르는 기자들은 첫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의장님께서 적진을 돌파하였다 하셨는데요?”

“제가 내린 명령은 돌격 명령 하나뿐입니다. 오로지 시민군 여러분의 역량을 믿고 저 자신을 투신하였을 뿐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취재기자들의 질문세례를 나폴레옹 3세는 담담하게 받아넘겼다. 전쟁 영웅의 혈통을 이어받은 또 다른 영웅으로서의 모습이 아닌, 나라의 지도자로서 수행해야 할 의무로 말하였다.

“저는 군사적으로 재능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 보는 눈은 조금 가지고 있어서 시민군 모두가 위대한 프랑스를 위하여 돌격할 것이라는 사실은 알아차렸지요.”

“그렇다면 적진으로 난입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최전선에서 돌격하신 이유는요?”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서 우리 프랑스의 시민들을 전선에 내보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책임을 지겠습니까?”

기자들은 나폴레옹 3세에게서 전쟁 영웅으로서의 재능을 찾아내기 위해 수없이 질문을 하였다. 그러나 전장의 충격을 고스란히 간직한 나폴레옹 3세는 질문을 모두 받아쳤다.

오로지 자신의 재주가 부족하며 특히 전쟁과 관련해서는 자리를 지키는 것이 전부라는 답변을 하였다.

어느 정도 답변이 끝나고 다음 질문이 시작되었다.

“새 국무의장으로서 프랑스가 발전할 방향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프랑스는 전 유럽을 넘어 전 세계에 힘을 퍼트릴 국가입니다.”

프랑스의 인접국, 특히 영국과 오스트리아의 기자들이 불편한 표정으로 나폴레옹 3세를 바라보았다. 반면 프랑스 기자들은 흥분과 기대감을 가득 품은 시선을 드러냈다.

회견장은 불안감과 흥분이 교차하여 기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나폴레옹 3세는 이런 상황에서 태연하게 영국 출신 기자를 바라보며 질문을 하였다.

“저는 힘(Puissance – 힘, 권력, 지배력, 영어로는 영향력)이라 하였습니다. 우리 프랑스가 가진 힘에 영향력을 받으시는 분들께서 심각하게 오해하고 계시는 것 같군요.”

“저희 언론사는 프랑스의 후원도 받지 않고 투자자가 프랑스 사람도 아닙니다만.”

“지금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모든 문화의 근본은 로마의 라틴어이며, 이 라틴어의 뒤를 이은 언어가 우리 프랑스에서 사용하는 프랑스어입니다.”

영국인 기자 입장에서는 부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국제 외교회의에서 쓰이는 언어는 프랑스어요, 어느 정도 지위에 오른 귀족들은 자연스럽게 프랑스어로 대화를 나눴다.

지금 이 자리에서도 오스트리아와 영국 기자들이 프랑스어로 대화를 나누지 않는가.

나폴레옹 3세는 앞으로 이룩할 자신의 원대한 계획을 말하였다.

“우리 프랑스가 가진 힘은 언어의 힘과 문화의 힘입니다. 전 유럽에 문화와 예술로 힘, 영어로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의 의장으로서 저는 문화를 퍼트릴 예정입니다.”

“그러하면 군사적인 힘도 갖추실 생각이십니까?”

“당연히 갖출 것이나 우리 프랑스를 보호하기 위한 힘이면 충분합니다. 앞으로 프랑스는 유럽을 넘어 전 세계에 위대한 문화와 예술 그리고 언어를 퍼트릴 겁니다.”

문화계에서 프랑스의 영향력은 막대한 수준을 넘어서서 유럽의 표준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 프랑스가 문화와 예술에 중점을 둔다는 말에 다른 나라의 기자들은 오히려 헛웃음을 지었다.

이 또한 나폴레옹 3세가 의도하던 바였다. 그는 영국인 기자를 잠시 바라본 뒤 다른 기자들에게 웃음을 섞어가며 말하였다.

“제가 가장 주목하는 사항은 우리 위대한 프랑스의 수도, 파리입니다. 가장 먼저 파리를 가장 위대한 도시로 만들 예정입니다.”

다음 날부터 일간지를 비롯한 수많은 신문은 기자 회견의 내용을 전하였다. 위대한 나폴레옹의 조카가 프랑스를 변화시키겠다는 계획을 내놓자 대다수의 사람이 기대감을 품었다.

“군사적으로 재능이 없다 하셨는데 위대한 보나파르트와 비교해서 없는 것 아닐까?”

“내 생각도 그래, 솔직히 말해서 보나파르트가 지금까지 살아 계셨다면 영국 따위는 그냥!”

옛 시절을 기억하는 노인들과 각 지방의 세력들은 나폴레옹 3세의 의견에 그럭저럭 동의하였다. 그저 옛 향수를 떠올리며 자신들을 잊지 말아달라는 태도를 보였고.

“파리를 가장 위대한 도시로 만들어? 그럼 루이필리프 전하께서 머무르는 궁전은?”

“뭐 궁전의 격식에 맞는 새로운 시가지를 건설한다는 뜻이겠지.”

“그 과정에서 우리가 혜택을 좀 보면 좋겠는데.”

여전히 왕정이 유지되는 프랑스에는 수많은 왕당파 귀족이 있었다. 이들 대다수는 새 정책의 방향성에 대해 염려하면서도 별다른 불만을 품지 않았다.

그래도 불만이 없을 뿐 군사적 폭주를 염려하는 시선이 가득하였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나폴레옹 3세는 죽을 날을 얼마 남지 않은 인물을 찾아갔다.

“에마뉘엘 그루시 원수님께 새 국무의회 의장이 문안 인사를 드립니다.”

“이런 세상에! 이 늙은이를 왜 찾아오셨소!”

에마뉘엘 그루시는 본래 역사보다 9년이나 오래 살았다. 그동안 동방에서 있었던 경험에 대한 자서전, 나폴레옹 전쟁과 관련된 자서전을 집필하며 말년을 보냈다.

이제는 말도 타지 못하고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으나 눈에는 여전히 총기가 깃들어 있었다. 그 눈동자는 나폴레옹 3세를 살펴보고 사정없이 뒤흔들렸다.

“저, 그게 말입니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나 불편하십니까?”

“너무 작습니다. 위대한 황제의 조카라 하기엔 너무 작은데.”

나폴레옹 3세의 콤플렉스 중 하나가 신장이었다. 나폴레옹과 달리 고작 160㎝에 불과한 단신이라 항상 굽이 높은 신발을 신고 자신의 호위병도 키를 최대한 작게 맞출 지경이었다.

에마뉘엘 그루시가 보기에는 나폴레옹과 닮은 구석이 별로 없는 조카였다. 그래도 위대한 프랑스의 힘을 퍼트릴 포부를 가진 사람이니 어떻게든 지혜를 짜내 말을 얼버무렸다.

“포부가 작다 이 말입니다! 속국도 만들고! 식민지가 싫다면 후원국도 만들고! 군대도 양성해 주고! 이거저거 다 해야 더욱 위대한 프랑스를 퍼트릴 수 있지요!”

“제 포부가 너무 작았군요! 위대한 원수께서 좋은 조언을 하셨습니다.”

“이 늙은이는 할 일을 다 하고 원한도 없어서 세상을 곧 떠날 것 같습니다. 부탁이 하나 있는데 새 문화를 전파할 때 제 자서전을 하나로 만들어서 전해주시지요.”

“알겠습니다. 원수께서 많이 피로하신데 제가 결례를 끼쳐드린 것 같군요.”

자서전 원고를 받은 나폴레옹 3세는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저택을 떠났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에마뉘엘 그루시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나폴레옹의 초상화를 바라보았다.

“황제 폐하. 다른 일은 잘 모르겠는데 저 친구의 통치를 조금이라도 도와주십시오.”

모든 여한을 흘려보낸 그루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이후 그 뒤를 따라가듯 오귀스트 마르몽도 죽음을 맞이하여 나폴레옹의 26원수 전원이 사망하였다.

당연히 이들의 장례식에는 나폴레옹 3세가 함께하였다. 장례를 마친 뒤 그가 취한 첫 정책은 파리의 개조사업이었다.

그는 베트남의 여러 도시에 대규모 토목공사를 수행하였다. 이 경험으로 파리 시가지 전체를 위대한 나폴레옹의 명령으로 뜯어고쳤다.

“여러분! 런던보다 깔끔하고 규모가 큰 시가지를 위해서는 대로를 정비해야 합니다!”

수많은 토목기사와 건축기사들이 나폴레옹 3세 휘하에 집결하였다. 그는 도로를 넓히고 그 과정에서 하수구를 비롯한 오수 배출시설과 상수도를 계획하였다.

드넓은 대로 한복판에는 대한제국을 본뜬 가스등과 마차철도를 가동하여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여기에 나날이 늘어나는 파리의 인구를 해소할 방안도 마련하였다.

파리 개조사업의 총괄 지휘자로 임명된 조르주외젠 오스만 남작은 이 과정에서 새로운 건축제도를 도입하였다.

“고대 로마는 인술라(insula)라 불리는 다층 다세대 주택을 건축하였습니다. 루이 15세도 파리의 인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층 주택을 건설하였지요.”

“그 시기에 지어진 다층 주택은 지나칠 정도로 협소하고 소음과 위생 문제도 심각하지요.”

“이미 몇몇 자본가와 귀족들이 파리 근교에 다층 주택을 지어두었습니다.”

“바로 보셨습니다. 지금까지의 다층! 다세대 주택은 인간에 대한 아무런 고려가 없었습니다!”

조르주외젠은 기자들에게 자신이 구상한 파리 신 시가지의 미니어처를 공개하였다. 예전보다 비교할 수 없이 넓어진 대로의 양옆에는 4층 규모의 주택이 빼곡하게 밀집되어 있었다.

“이것이 파리의 새로운 주택입니다. 수동 펌프를 활용하여 최상층까지 식수를 공급하고, 위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수구와 직결하였지요.”

“그렇다면 인구 문제 해결을 넘어서서…….”

“백만 명, 잘만 하면 백오십만 명의 사람이 거주하는 유럽 문화의 중심지가 될 겁니다.”

주요 도로 공사를 시작으로 파리의 경관 자체가 뜯어고쳐지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점차 불만이 샘솟아 올랐지만 의외로 긍정적인 결과가 도출되었다.

“매년 유행하던 콜레라 환자가 공사를 시작하고 일 년이 지나자 절반으로 감소하였습니다. 여기에 각지에서 카타콤(Catacomb)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카타콤? 그게 왜 파리에 있소?”

“소문에 의하면 루이 16세 시절에 도시 미화 정책을 실시하며 묘지를 철거했습니다. 그 묘지에 있던 유골이 매장된 로마 시대의 터널 같더군요.”

파리 시내에는 고대 로마 시절의 유적이 존재한다. 정확히는 로마 식민지 시절의 채석장이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얽혀 있었다.

이 시설에 방문한 나폴레옹 3세는 즉석에서 활용법을 찾아냈다. 그는 수많은 유골들을 쌓아둔 자리에 무릎을 꿇고 성호를 올린 다음 적당한 핑계를 대었다.

“루이 16세의 폭정이 어찌나 가혹했는지 이제야 알았소.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군.”

“그게 아니고 무덤에 매장되었던 유골입니다.”

진실을 아는 사람이 뭐라 만류하였으나 나폴레옹 3세의 말이 우선이었다. 총리가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자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에 동조하여 같이 기도를 올렸다.

“고인의 영면을 위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한참의 기도를 마친 나폴레옹 3세는 어차피 죽고 사라진 루이 16세를 격렬히 규탄하는 기사를 올렸다. 그리고 이 기사를 통해 자신의 도시 계획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였다.

<파리 시민은 폭정에 의한 희생자의 뼈 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의 반발은 없었다. 카타콤에 쌓인 유골들은 모두 파리 외곽에 신설된 ‘희생자 묘역’에 안장되었고 텅 빈 카타콤은 다른 용도로 활용되었다.

“여기를 하수도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군. 경사를 맞추기는 좀 힘들 것 같은데 땅을 파는 것보다는 쉬워.”

조르주외젠을 비롯한 토목기술자들은 카타콤을 일부 개조하여 하수도와 연결하였다. 거미줄처럼 얽힌 파리의 카타콤은 이 외에도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다.

나폴레옹 3세는 이제 땅속도 꿰뚫어 볼 수 있는 초인으로 군림하였으며 그의 이상에 대해 반발하는 사람은 극소수의 학자에 불과하였다.

그러한 학자들을 견제하고 다독이기 위해 각종 교육법을 선언하였다.

이 과정에서 소모되는 막대한 자금 가운데 상당수는 베트남을 중심으로 삼은 동방 무역으로 해결하였다. 이 또한 나폴레옹 3세가 외교관으로 부임할 때부터 쌓은 치적이었다.

그는 의회 연설을 통해 자신의 치적을 더욱 널리 퍼트렸다.

“영국은 인도 식민지에서 막대한 이득을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카스트라는 악습을 강화하여 서로를 헐뜯고 시기하게 만들어 편리하게 통치하지요.”

“우리는 다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무너져가는 나라인 베트남에 문화와 기술을 전해주었습니다! 영국과 비교하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들과 같은 행동이 아니겠습니까!”

카스트를 없애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는 영국 정부 입장에서는 분노로 피를 토할 말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시민들은 영국보다 나은 프랑스라는 문장에 더더욱 열광하였다.

그가 부임하고 3년이 지날 무렵, 온화한 왕 루이필리프에 관심을 지닌 사람은 없었다. 절대적으로 신임할 수 있는 총리 나폴레옹 3세가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맹렬히 활약했다.

그 무렵 나폴레옹 3세에게 접견을 요청한 사람이 있었다. 막 통일운동이 벌어지는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이 젊은이는 온몸에 폭탄을 두른 채 시위를 하였다.

“루이 샤를 총리께서는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이 폭탄을 격발하겠습니다!”

펠리체 오르시니, 본래 역사에서 황제 나폴레옹 3세의 암살을 시도하였던 젊은이는 총리가 된 나폴레옹 3세에게 일말의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나폴레옹 3세는 젊은 시절 이탈리아의 독립을 지지한 경력이 있었다. 그런 사람이 총리가 되고 전 유럽에 힘과 문화를 퍼트리겠다고 주장하여 암살 대신 시위를 선택하였다.

수많은 병사들이 폭탄 격발을 대비하는 가운데 나폴레옹 3세가 의회 입구에서 시위를 벌이는 펠리체 오르시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정중한 말투로 무장해제를 권유하였다.

“의회에 입장할 때 무기는 휴대할 수 없다네. 폭탄을 어서 해체하게나.”

“알겠습니다.”

온몸에 두른 폭탄을 내려놓자 병사들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나폴레옹 3세는 오르시니의 손을 맞잡고 당당하게 선언하였다.

“이 친구가 폭탄으로 협박을 한 죄는 내 대화가 끝난 다음 묻도록 하게나.”

위대한 총리의 명령을 들은 병사들은 그의 몸을 수색하고 의회의 별실에서 철저히 경호를 실시하였다.

잠시 침묵이 오가고 젊은 혁명가와 총리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예전에 총리께서 저희 이탈리아의 독립을 지지한 사실을 잊은 것은 아니겠지요.”

“알고는 있네. 다만 파리 개조 사업이 난항을 겪을까 봐 개입하지 않았지. 정확히는 프랑스의 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대규모 개수 사업에 사력을 다했었어.”

나폴레옹 3세는 오르시니를 통해 지금의 이탈리아의 상황과 독립 및 통일에 대한 열정에 대해 일장 연설을 들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못한 표정으로 답을 해주었다.

“자칫 잘못하면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까지 얽힌 전쟁이 일어날 거라네.”

“그렇다면 뛰어난 군사적 재능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난 군사적 재능이 없어. 오로지 내정을 잘할 뿐이야.”

나폴레옹 3세가 수백 번을 답변한 말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나친 겸손, 혹은 자기 능력을 숨기기 위한 연막작전이라 생각하였다.

오르시니조차 이 말이 거짓말이라 생각하였지만 나폴레옹 3세는 목에 매단 십자가를 매만지며 신에게 맹세를 하였다. 결국 오르시니는 깊게 한숨을 쉬고 이 사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주변국에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겁니다. 총리께서 원하시든 원하지 않든 나폴레옹의 조카로서 위대한 장군의 재능을 가지고 계신다고 생각하겠지요.”

나폴레옹 3세가 절대 피하고 싶은 전쟁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왔다. 이를 어떻게든 외교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이런 생각을 한순간 나폴레옹의 머릿속에서 기묘한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당장 통일하지 못하더라도 조금 나중에 통일할 수 있겠는가?”

나폴레옹 3세의 머리가 맹렬히 돌아가며 다른 생각을 하였다. 그는 젊은 시절 공화국 건국을 통한 이탈리아의 통일 방안을 연구한 전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이탈리아의 교육 수준이 너무 낮고 통일성이 없어 불가능한 일이라 판단하였다.

그러나 위대한 프랑스의 영향력이라면 아예 불가능한 일이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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