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화
22장 2화 실낱같은 가능성
설날도 지나가고 날이 따스해지는 봄이 되었다. 계속 쌍성자 일대를 오가며 페니실린 생산시설을 점검한 일준이는 피로에 찌든 몸으로 내 집에 와서 푸념을 하였다.
“나 원 참, 그 귀한 페니실린을 공짜로 투여해 줄은 꿈에도 몰랐네.”
“다 외몽골의 독립을 위해서고 러시아 이주민들의 관리를 위해서야. 생산을 잘되냐?”
“메주에서 추출한 신종 곰팡이를 활용한 덕분에 영국 수율의 두 배를 얻어내고 있지. 각 국가 연구진 사이의 페니실린 공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그 곰팡이를 보내야 하지만.”
일준이는 이제 하얗게 변하기 시작한 콧수염을 매만지면서 부연 설명을 하였다.
“페니실린 생산 전체 특허는 존재하지 않아. 대신 페니실린은 인류 모두를 구제하는, 정확히는 매독에 걸린 고위층을 구제하는 수단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잖아.”
“나도 알고 있다. 한양에 있는 약원(藥院)에 몰리는 매독 환자만 한 해 삼백 명이지.”
“그런 점에서 나도 생각이 부족했다 이 말이야. 설파제에 올인하지 말고 페니실린도 좀 키워뒀어야 하는데.”
녀석은 페니실린을 오래 보존할 수 없어서 생산을 포기했다. 반면 영국의 연구진들은 페니실린을 보존할 수 없으면 예약제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선회하였다.
그 결과 매독이라는 병은 고위층 한정으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일준이는 뭐라 중얼거리더니만 몸을 편하게 뒤로 젖히며 말했다.
“프랑스에서야 파스퇴르가 페니실린 생산을 전담하니까 별문제는 없어 보이고.”
“파스퇴르도 많이 컸네. 파브르는 요즘 뭘 해?”
“만국곤충기라는 서적 집필에 착수했어. 본래 역사처럼 궁핍한 생활이 아닌 연구진을 대량으로 투입해서 곤충의 생활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려는 것 같더라.”
녀석은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겨서 쌍성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내용 중에는 내 아들 은찬이에 대한 내용도 끼어 있었다.
“매독 치료를 받은 외몽골 귀족과 승려들이 은찬이를 지독하게 아끼고 있더라고. 네 아들이 쌍성자에 근무하는 것 자체가 우리를 신뢰하기 때문이라 하던가?”
“녀석이 죽도록 고생을 하겠네.”
“그렇게 고생하는 것 같지는 않더라고. 한번 물어봤는데 쌍성자 사관학교 생활 자체가 지옥이라서 말만 타고 이리저리 대접받는 건 차라리 나은 형편이래.”
“그 정도면 아예 사람이 변했네. 변하다 못해 제대로 된 군인이 되겠어.”
은찬이도 아마 더 이상 뺀질거리지 않고 제대로 된 군인의 길, 혹은 여기서 배움을 얻어 다른 길을 걸을 것 같다.
일준이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더니 정원의 개나리를 보고 말했다.
“둘이서 술이나 한잔 걸치러 갈까? 얼마 전에 인왕산 쪽에 정자 하나를 사 뒀는데.”
“그거 괜찮은 생각이네. 이래저래 할 이야기가 많은데 조용한 데서 이야기나 하자.”
아내에게 이야기를 해두고 내 애마에 올랐다. 이 시대에 오고 세월이 지나 슬슬 노인이라 불릴 나이가 되었고 몸 관리를 위해 승마를 즐기고 있다.
한양 길거리를 가로질러 초목이 막 피어나는 봄날의 인왕산으로 향하였다. 녀석은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지금까지 진행한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다.
“헤로인 관련 계획은 별문제 없이 흘러가고 있어. 합성에 성공하고 동물 실험을 마친 결과를 보여주고 이 결과를 유럽에 송부했지.”
“그래? 예상보다 빠른데?”
“예상보다 빠르게 하느라 죽는 줄 알았다! 쌍성자를 오간 걸 생각해 봐라!”
일준이는 툴툴거리며 자신의 고생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헤로인을 멋대로 사용할까 봐 쌍성자를 오가며 몸에 지녔다는 이야기까지 듣고 답신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럼 결과는 어때? 당장 헤로인 생산을 중단하겠다고 하지는 않겠지?”
“예상과 별 차이도 없이 반응을 하더라. 유스투스 리비히 휘하의 아우구스트 호프만이 헤로인 합성을 주도했는데 내 논문을 보자마자 격렬히 반대했지.”
“네가 이름을 알고 있으면 유명한 화학자인 것 같은데?”
“본래 역사에서도 리비히의 제자로 활동하던 사람이야. 본래 역사에서는 내가 개발한 콜타르 계열 염료 합성법을 발견해서 돈방석에 앉고 화학자로 명성을 떨친 사람이거든.”
일준이는 말에 탄 채로 아우구스트 호프만이 보내온 답신을 건네주었다. 그 답신을 읽고 있자니 속이 서서히 뒤틀리는 것 같았다.
-닐슨 총장님께서 저희 연구진의 뒤를 이어 헤로인을 합성하실 줄 몰랐습니다. 투약 효과와 모르핀 금단증상의 억제 모두 저희 연구진과 동일한 효과를 발휘하셨습니다.
-다만 실험쥐에 대한 헤로인 투여 중단 결과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모르핀의 금단증상은 1년이 넘게 지속되며 헤로인을 장기 투여할 필요성이…….
서신만 보아도 숨이 턱턱 막혀오는 것 같았다. 실험쥐가 떼죽음을 당한 것은 헤로인 탓이 아닌 모르핀이나 다른 요인이라 말하며 아무튼 자신이 옳다는 결론만 내놓았다.
“이 양반이 옹고집인 거냐 아니면 이 시대 평균이 이 꼴이냐?”
“이 시대 평균에 가깝지. 헤로인은 수많은 부작용을 가지고 있는데도 십오 년 넘게 어린이용 감기약으로 팔렸어. 거의 삼십 년이 지나서야 사용이 금지된 약이거든.”
“미쳤냐? 헤로인을 어린이용 감기약에? 삼십 년씩이나?”
“진실이다. 모든 사람이 다 미친 시대에 우리 둘만 제정신인 걸 이제야 알았어?”
녀석은 괜한 말을 했다는 듯이 주변을 한참 살펴보다가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은 좀 덜 미치거나 온순하게 미친 거지. 여하튼 내가 딱 예상한 대로의 반응이 나왔고 프로이센 정부에도 연락을 넣었어.”
“인체 실험 관련 연락이냐? 아직 인체 실험을 안 한 거야?”
“그렇지, 이 시대에는 좀 먹어봐서 사람이 즉사하지 않으면 안전한 약이거든.”
개소리 집어치우라고 욕을 한 사발 내뱉고 싶었는데 틀린 말이 아니었다. 이 시대의 과학자는 자기가 죽건 말건 연구를 강행하는 미치광이들이 대부분이지.
뭐라 말을 하고 싶은데 화가 치밀어 올라 말이 안 나왔다. 내가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한참 동안 살펴본 일준이는 말고삐를 휘어잡아 방향을 조절하며 말했다.
“희생자를 줄이려고 철저한 계획하에 중죄인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하라 했지.”
“네가 조언을 안 했다면 어떤 꼴이 나는데?”
“길거리에서 돌아다니는 모르핀 중독자들을 아무나 잡아서 헤로인을 퍼먹였을걸? 내가 알기로 영국의 페니실린 실험도 패혈증 환자를 다짜고짜 잡아 와서 실행했잖아?”
“뭔 패혈증 환자를 다짜고짜…… 잡아서 하기는 했네.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었지.”
이 시대의 미개한 과학자들과 지금까지 전쟁을 치른 일준이가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녀석은 어느 정도 할 말을 마치고 내 정자로 향하는 등산로로 몸을 옮기며 말했다.
“중요한 이야기나 해보자고. 안 그래도 묻고 싶은 게 좀 있었어.”
집에서 안줏거리로 삼을 육포와 치즈 그리고 봄날의 싸늘할 바람을 달랠 정도의 청주를 챙겨왔다. 얼마 전 지어둔 경치 관람용 정자에서는 한양 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여기에 자연스럽게 자라난 개나리가 사방에 피어났다. 샛노란 개나리만 보자니 내 생각이 짧았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진달래도 좀 심어둘 걸 그랬나.”
“개나리만 주변에 있으니까 노란색이 너무 촌티나 보인다.”
아직 미세먼지가 없는 시대이나 한양 외곽에는 공장이 많이 있었다. 공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을 잠시 바라보고 자리에 앉아 일준이의 잔을 채워주었다.
“한 잔 마시고 시작하자.”
“이제는 소주가 아니네? 너 몸 관리하냐?”
“술을 아예 끊지는 못하겠고 적당히 줄여야 할 것 같더라.”
나도 몸이 늙어서 독한 소주 대신 적당한 청주를 마셔야 숙취도 덜하다. 일준이도 이 점에는 동의했는지 잔을 마주쳐 건배를 하고 청주를 들이켠 다음 질문을 하였다.
“네 행동 중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어. 청나라를 견제하면서 만주족을 족치는 건 좋다 이거야. 당연히 객가는 홍수전을 족치면서 같이 박살 낼 대상이지.”
“그렇지, 사실상 견제 단계는 끝났고 길어야 이 년 이내에 변란이 발발하겠지.”
“그럼 한족들에게 왜 양주십일기를 전달하고 민족의식을 촉발시키는 거야?”
다른 사람은 내 행동이 청나라의 내부를 혼란시키는 섬세한 수단이라 인식하였다. 반면 일준이는 현대를 살아온 사람이고 내 계획을 가장 잘 아는 녀석이라 이런 생각도 할 줄 알았다.
녀석은 팔짱을 풀고 술을 한 잔 들이켠 다음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굳이 민족의식을 촉발시킬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한족들이 생각이 없는 순한 양으로 지내면 안 좋은 점이 있어?”
“일단 홍수전의 반란과 역성혁명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다. 지금 홍수전이 뭘 하냐?”
일준이는 골똘하게 생각해 보고는 손뼉을 치면서 답을 내놓았다.
“만주족 아래에서 온갖 추잡한 행동은 다 하고 있지. 마약도 팔고 착취도 하고 수탈도 대신하고 객가 군대를 이끌고 민란을 진압하던가?”
“바로 그거다, 만주족은 주인이고 홍수전은 양치기 개야. 그 양치기 개가 주인의 목을 물어뜯고 새 주인 행세를 하는 상황을 양들이 아닌 사람들이 순응하겠어?”
“하긴 홍수전이 역성혁명을 일으키는 데 성공해도 객가 아래에 결집하지 않겠네? 민란 진압을 하면서 한족을 탄압한 똑같은 놈이잖아?”
“바로 그거야. 홍수전은 대한제국의 개입을 한족을 희생시켜서 막으려 할 거야. 그런 상황에서 한족들이 호응을 안 하면 계산이 완전히 틀어지겠지.”
잘못하면 항명을 핑계로 객가의 한족 학살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양주십일기의 존재를 모르는 홍수전 입장에서는 최악의 수를 둔 꼴이고.
최소한 한족이 중립만 지켜도 성공한 계획이다. 반면 일준이는 고개를 까딱거리며 생각을 하더니만 이 민족의식 촉발이 불러올 결과에 대해 질문을 하였다.
“그다음 일도 중요하지. 눈앞의 일을 생각해서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가 나중에 가서 뒤통수를 맞으면?”
“감당해야 할 일이야. 오히려 내 궁극적인 목표를 위해서 필요하지.”
궁극적인 목표를 일준이에게도 말해줘야 할 것 같다. 녀석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아주 실낱같은 가능성을 지닌 내 꿈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해서 용기가 샘솟아 올랐다.
“난 중국이 싫어. 일당독재도 싫고, 생각이 없는 민중도 싫고, 농민을 착취해서 이룩한 경제도 싫고, 온갖 비겁한 수단을 동원하는 것도 싫으며 마지막으로…….”
“자신들이 추잡한 행동을 하면서도 대국이라 칭하는 오만한 태도가 싫겠지?”
“정답이다. 그 점이 가장 역겹고 끔찍하지.”
“그럼 중국을 없애려고?”
일준이가 병을 기울여 내 잔에 청주를 채워주었다. 그러고는 손짓을 하며 계속 이야기해 보라고 권유해서 청주를 단번에 비우고 말을 이어갔다.
“그런 중국을 물리적으로 없애는 건 불가능해. 약 십삼억 명에 달하는 세계 인구 중에 청나라의 인구는 사억이 넘지. 전 세계 인류의 삼십 퍼센트를 물리적으로 제거할 수 있겠어?”
“핵무기라도 만들어줘? 나는 불가능하고 내 손자뻘 세대면 가능할 것 같은데.”
“농담도 좀 적당히 하자. 암만 싫어도 한민족을 대량학살을 저지른 민족으로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어.”
일준이의 표정을 보니 불가능한 걸 알고 적당히 농담을 한 것이 분명하다. 심호흡을 몇 번 한 다음 물을 좀 마시고 다른 수단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난 아예 새로운 중국을 만들려고 해. 내가 본래 역사의 중국에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복수이자 가장 큰 역사의 변화를 만들려는 생각이야.”
“중국을 갈기갈기 찢어서 유지하려고?”
“찢어진 상태건 합쳐진 상태건 상관없이 지금의 중국을 소멸시키는 계획이지. 일당독재의 절대 권력이 유지되는 국가가 아닌, 각 민족이 자립하고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민주국가로.”
“그게 가능이나 한 일이냐…….”
일준이는 한참을 웃으면서 청주를 석 잔이나 들이켰다. 그러고는 턱에 손을 괴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주 제대로 미쳤네. 그게 중국이냐? 일당독재가 아닌 민주국가 중국이라고? 정말 중국을 소멸시키는 거 맞네.”
“네가 생각해도 미쳤지? 그러니까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복수야.”
이게 내 궁극적인 꿈이다. 중국이 몇백 개로 갈라지건 하나로 합쳐지건 아무 상관이 없다. 솔직히 말해 영원히 갈라놓을 수도 없을 것 같고.
내가 원하는 것은 중국이 제대로 된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가 되는 것이다. 몇 개가 되더라도 아무 상관 없다.
새로운 중국은 모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나라, 다른 나라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나라, 그리고 독재자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로 만들어져야 한다.
일준이는 내 말을 듣고는 웃음을 억지로 계속 참다가 미래의 일을 이야기하였다.
“이야 이거 웃기네. 우리가 현대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중국 인민 총선거라도 열리는 거 아니야? 당이 막 열 개가 넘어가고.”
“독재가 없이 정권이 계속 뒤바뀌고 민중의 목소리가 정치권에 전달되고.”
“중국이 억지로 병합한 위구르나 티베트는 독립국가로 지방의 선거에 개입하고. 뭐 그런 상상을 하는 거야?”
“정답이다. 중국이 천 개가 되건 한 개로 돌아오건 아무 관심이 없어. 중국에서 몇 개의 선거구가 생기고 몇 개의 당이 생기느냐가 중요하지.”
일준이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바람이 불어 주변의 개나리꽃이 마구 흩날리며 웃음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흩날렸다.
한참을 웃은 녀석은 손사래를 치면서 웃음의 의미를 알려 주었다.
“이건 비웃는 게 아니고 상상해 보니 웃음이 나와서 웃는 거다. 그럼 그 방법은?”
“중국 공산당이 내세우는 강제 동화정책인 중화민족과 그 근본인 오족협화의 가능성을 끊어내는 거지. 너도 알다시피 중국은 한족의 수를 앞세워 강제 합병을 하잖아.”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잖아? 한족의 수가 엄청나게 많은데? 더군다나 천명(天命) 개념이 있어서 정권을 잡은 놈에게 일방적으로 복속하는 성향이 있잖아?”
“그 천명 개념도 분쇄해야지. 청나라는 여진족이 입관해서 천명을 잡고, 다시 객가가 여진족의 빈틈을 노려 역성혁명을 일으켰지? 그리고 대한제국이 객가를 소탕할 예정이고.”
앞으로 중국에 일어날 혼란은 지금까지 없던 대혼란이다. 내란으로 지배계층이 제대로 바뀌기도 전에 외세가 쳐들어와 새로운 지배계층을 박살 내버린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한족들의 민족의식이 새로운 지배계층에 저항하게 만들고. 그 결과는 되다 만 역성혁명과 수많은 민란 발생이다.
일준이는 웃다가 새어 나온 눈물을 닦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답했다.
“그렇지, 몇 년 안에 정권이 두 번 바뀌는 일이 벌어지지. 세 번째 정권은 친 대한제국 정권으로 청나라 이후 중국 대륙을 지배하는 괴뢰…….”
“아니지, 우리가 왜 정권을 잡아? 피해보상과 영토할양을 다 받고 재산을 탈탈 털어서 새 정부를 수립할 놈들을 알거지로 만든 다음 빠져나와야지?”
“미쳤냐? 그럼 지방에서 일어날 민란은 어떻게 수습해? 민족의식이 고취되어서 한족 중심의 민란이 빗발치잖아?”
“수습할 필요가 있어? 우리가 그걸 수습할 방법도 없고 수습할 필요도 없어. 오히려 혼란할수록 한족 아래의 집결이라는 개념이 붕괴하게 마련이다.”
본래 중국이 혼란에 빠지고 반란이 일어나면 각 지방에서 온갖 군벌이 생겨난다. 그 군벌들이 편을 갈라 새로운 지배자를 섬기며 알아서 서열 정리를 하게 마련이지.
반면 내 계획이 성공한다면 이런 서열 정리가 불가능하다. 새로운 정부는 대한제국 눈치를 보는 데 급급하고 재산도 별로 없는 형편이다.
일준이도 여기까지는 이해했다. 그러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내 잔에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분열된 청나라에 열강들이 조차지를 만들거나 아예 식민지를 만들어 버리겠네.”
“바로 그거지. 외세의 지배를 받으며 천명 개념이 자연스럽게 소멸하는 거야. 각기 다른 국가에 지배를 당해 민족의식만 챙긴 채 독립을 원하겠지.”
“잘만 하면 중국 식민지가 독립한 이후 미국처럼 주 단위의 합중국이 되겠네. 그러다가 마오쩌둥 같은 놈이 튀어나오면 다시 일당독재가 되는 거 아닐까?”
“내 계획이 성공하면 그런 기반 자체가 없어질 거야. 혹시 누가 아냐? 민주투사 마오쩌둥이 일당독재 정부를 무너트릴 수도 있어.”
일준이가 잔을 들어 나와 잔을 마주쳤다. 쨍하는 소리와 함께 술이 넘어가고 다시 잔이 채워졌는데 일준이는 웃다가 사레가 들려 한참 동안 기침을 하다 웃음을 섞어가며 말했다.
“민주투사 마오쩌둥이라. 이거 참 구체적으로 미친 계획이라서 웃음이 나오는데.”
“내가 얼마나 구체적으로 미쳤는지 이제야 이해했냐? 민족의식 고취? 그건 각 식민지의 자발적인 독립을 위한 노림수야. 계획이 잘 될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구체적일 줄은 몰랐다. 그런데 그 거대한 청나라를 뜯어먹을 열강이 있을까? 네가 요청을 해도 응하기는 할까?”
여기까지는 얼마나 개입시킬 수 있을지 감이 안 잡혀서 넘어간 사항이었다. 그래도 머리에 그려둔 큰 그림을 펼치듯이 일준이에게 설명해 주었다.
“영국은 알아서 개입할 국가니까 넘어가자고. 상해 조차지 인근에 일본도 좀 뜯어주면 좋을 것 같고 네덜란드나 프로이센도 국력을 감안하면 불가능한 건 아니야.”
“프랑스는?”
“그놈들은 무조건 식민지를 만들 국가잖아. 안 그래도 천명 놀이에 심취해 있어서 가장 많이 개입하고 가장 많은 이득과 손해를 볼걸?”
“프랑스가 천명 놀이라?”
가장 재미있게 바뀐 나라가 프랑스다. 지금쯤 프랑스의 총리로 인기를 끌고 있을 나폴레옹 3세의 모습을 생각하니 술이 절로 들어갔다.
#작가의 말
현상이의 목표는 중국이 한 개가 되어도 좋으니까 제대로 된 민주공화국 중국이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