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263화 (340/345)

263화

21장 11화 천국과 지옥

청나라로 돌아간 화교들, 딱히 기술이 없어서 방출된 사람들은 약간의 돈과 정착 자금을 받은 채 사실상 방출되었다. 이들은 청도와 상해의 조차지를 나오자마자 인맥을 찾아 움직였다.

“받은 돈이 은자로 열 냥도 안 되잖아. 일 년도 버티기 힘든 돈이니 어서 움직이자고.”

“우리가 비빌 언덕이 어디에 있는가. 조상님이 이백 년 전에 월남으로 이주하였는데.”

“청나라가 건국될 때에도 객가가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어. 객가는 우리의 머나먼 친척이니 없는 것 보다는 났지 않겠나?”

나름 학식과 재력을 갖추었던 노인들이 주축이 되어 자신들의 뿌리를 찾아 나갔다. 그사이 젊은이들은 주변에서 잡다한 일을 하며 숙박비를 벌고 소문을 수집하려 하였다.

그 과정은 처음부터 난항을 겪었다. 화교들은 수백 명 단위로 임시 정착을 시도했고 지방 부호들은 눈먼 돈을 갈취하기 위하여 화교들에게 폭압적인 태도로 나섰다.

“숙박비는 한 가족마다 매달 은자 한 냥. 이 아래로 낮춰줄 수는 없어.”

“생각보다 비싸군요. 당연히 식대도 포함되어 있겠지요?”

“식대라 하였나? 쌀 반 섬, 잡곡 반 섬에 은자 한 냥이면 적당할 것 같군.”

“이딴 집에서 먹고 자는데 한 달에 은자 두 냥을 내라니요?”

조차지라면 한 달에 월세 석 냥, 은자 약 반 냥을 내면 조금 낡긴 해도 목조 다층주택에서 거주할 수 있다. 쌀 가격은 한 섬에 은자 한 냥에도 미치지 못한다.

반면 그들에게 제공된 집은 허름하다 못해 다 쓰러져 가는 초가삼간, 그것도 아니라면 적당히 큰 집에 서너 가구가 부대껴 살아갈 수준이었다. 숙박비도, 식대도 대한제국의 물가, 조차지 특유의 비싼 물가로 따져도 너무나 비싼 수준이었다.

그러나 지주는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돌린 채 말하였다.

“싫으면 숙식을 하지 말고 움집을 지어 살아보시던가.”

“일단 먹고 살기는 해야 하니…….”

수많은 고난을 넘고 머나먼 길을 건너온 화교들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의 말 대로 움집을 지어 살면 없던 병도 생겨나 모조리 죽을 지경이었다.

반면 다른 희망도 생겨났다. 이토록 물가가 비싸면 당연히 봉급도 높게 마련이리라.

그런 희망을 품은 젊은이들이 지주에게 월세를 내며 일자리를 찾아보았다.

“저희가 이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마련해 주십시오.”

“농사일은 할 줄 알지? 품앗이를 하면 한 달에 은자 한 냥을 주지.”

젊은이들의 눈썹이 분노로 꿈틀거렸다. 대한제국에서는 매달 8냥을 사용하고 채무를 갚지 않는 조건하에 매달 12냥을 벌어들이며 희망을 가진 채 생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청나라에서는 최소한으로 먹고사는데 10냥이 들어가고 벌 수 있는 돈은 5냥에 불과하였다. 이 분노를 눈치챈 지주는 오히려 삿대질을 하면서 고함을 쳤다.

“그럼 뭘 어쩌라고! 이 머나먼 동네에 멋대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왔는데 쌀값도 오르고! 집도 줄 데가 없어서 가격이 오르지!”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잡곡과 쌀을 반반씩 섞어서 은자 한 냥이라니요?”

“대한제국에서는 그 돈이면 쌀 한 섬에 몇 말을 더 살 수 있습니다!”

“이 천둥벌거숭이들이 말이 많아! 쌀을 팔아 감자와 고구마를 사서 먹으라고!”

대한제국 조차지의 맛을 경험한 젊은 화교들에게는 분통이 터지는 대답이었다. 그래도 이 지역에 임시로 정착하는 입장에서 지주의 비위를 맞춰야 사람답게 살 수라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온 가족이 품앗이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 품앗이조차도 뇌물을 먹여야 제대로 할 수 있는 이중고를 겪었다.

이들이 처음으로 시작한 품앗이는 논에 피어난 잡초를 솎아내는 일이었다. 다른 농민들의 뒤를 따라 논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한 군관이 다가와 질문을 하였다.

“거기 너! 너 어디에서 왔나!”

“상해 조차지에서 풀려난 사람입니다. 지주님에게 인사를 올리고 잠시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지방 팔기군 소속 군관은 화교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들이 입은 옷은 상해 조차지에서 만들어 낸 양목(洋木), 기계식 제면으로 조밀하게 만들어지고 재봉틀로 마무리한 옷이었다.

어차피 이 지역 사람이 아닌 데다 설령 이 지역 사람이라 해도 뇌물을 내는 것이 일상생활이었다. 군관은 탐욕에 물든 눈으로 이들의 죄를 즉석에서 창조해 냈다.

“상해 조차지에서 풀려나? 본관이 보니 네놈들 가운데 조선에서 보내온 첩자가 있구나!”

“없습니다! 저희는 조선 놈들에게 호되게 착취당하다 풀려난 사람입니다!”

“호되게 착취? 그런 좋은 옷을 입고 있으면서 호되게 착취라고!”

평상시에는 아무런 훈련도 받지 않은 팔기군이 잘하는 일이 세 가지 있었다. 하나는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이요 다른 하나는 없던 뇌물을 받아내는 일이었다.

마지막 하나는 지금도 피워대는 아편을 아주 맛깔나게 피우는 일이었다. 아편에 거하게 취한 군관이 손짓을 하자 병사들이 몰려왔다.

이들은 뇌물을 함께 얻어먹기 위해 몽둥이를 빙빙 돌리며 주변을 에워쌌다. 화교들은 대한제국에서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문물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변호를 시작했다.

“믿어주십시오! 저희가 먼 길을 다니며 몸이 상하지 않게 주는 마지막 배려라 했습니다!”

“본관이 네놈들을 베려 하기 전에 이실직고 사실을 논하라! 어서 쳐라!”

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곧이어 병사들이 달려들어 화교 젊은이들을 사방에서 에워싸고 몽둥이찜질을 하였다.

“악! 살려주십시오! 저희는 결백합니다!”

“결백한지 아닌지는 본관이 판단한다!”

사람을 죽일 수준으로 두들겨 패지는 않더라도 화교 젊은이들의 몸에 멍이 피어나고 피가 솟구치기 시작하였다. 그 광경을 보다 못한 사람이 달려와 아첨을 섞어가며 말하였다.

“어르신! 제가 어제 대화를 나눠보았는데 이들은 첩자가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 뭐라 했는가?”

“사람이 먼 곳에서 왔으면 이 지역의 습속을 모르게 마련 아닙니까? 부디 이해해 주십시오.”

양손을 모아 싹싹 비비며 애걸복걸하던 농민의 손바닥 사이에서 은자 한 냥이 튀어나왔다. 군관은 그의 손을 후려치는 척 은자를 날랜 손놀림으로 챙기고 명령을 내렸다.

“상세히 보아하니 첩자는 아니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놈들 같구나!”

그나마 불구가 되거나 뼈가 부러지기 전에 구타가 중단되었다. 병사들이 입맛을 다시며 물러나는 사이 농민들이 달려들어 화교들에게 귓속말을 전해주었다.

“새 고장에 왔으면 지주님에게도 뇌물을 대고 군관 나리들에게도 뇌물을 대는 것이 세상의 도리야. 어서 뇌물을 바치게.”

“그런 도리가 이 세상 천하에 어디 있습니까!”

“없는 세상 천하는 또 어디에 있는가!”

대한제국 조차지에서는 뇌물로 해결되는 공적인 업무가 별로 없었다. 오히려 중요한 사안을 적당히 넘기려고 뇌물을 제공하면 구타를 당하고 투옥되기까지 하였다.

반면 청나라는 뇌물이 숨 쉬듯 오가는 사회였다. 화교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뇌물로 쓰기 가장 좋은 물건을 군관에게 바쳤다.

“군관님이 저희의 복식이 조선의 것과 닮아있어서 오인하셨군요. 오해를 풀기 위해 대청의 복식으로 갈아입겠습니다.”

“좋은 태도로군, 그러게 왜 본관의 눈을 더럽히는 사특한 옷을 입는가?”

관청으로 끌려간 젊은이들은 반강제로 옷을 갈아입었다. 대부분이 낡아빠지다 못해 조차지에서는 걸레로 쓸 수준의 허름한 옷감들이었다.

다음 날부터 군관들 모두가 ‘조선의 조차지에서 건너온 사람들을 아끼고 보호하라.’라며 주목하였다. 화교 대부분이 안도하였지만 이 지역의 농민들은 혀를 차며 조언하였다.

“아무리 보아도 자네들을 뼛속까지 뜯어먹으려 하는 것 같군. 올해는 어떻게 넘어간 것 같은데 내년 이맘때가 되면 또 뇌물을 바쳐야 할 걸세.”

“그 뇌물은 어디서 나옵니까? 혹시나 댁들도 뇌물을 바쳐야 합니까?”

“우리는 인맥이 있어서 좀 덜 바치기는 하지. 그런데 자네들은 인맥이 없잖나.”

화교들의 입에서도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조차지라면 절대 일어날 리가 없는 일이 한도 끝도 없이 계속되었다. 더군다나 노동 강도도 지독할 정도로 높았다.

새벽에 일어나 해가 뜰 때까지 품앗이를 하고 해가 중천에 이르면 잠시 휴식을 취한다. 다시 해가 좀 저물면 쉴 새 없이 일을 하며 몸을 놀려야 한다.

이런 일을 해 보았자 고작 한 달에 은자 한 냥을 벌어들이는 것이 전부였다. 심지어 식사조차도 조차지 생활과 비교하면 천양지차였다.

“내가 이딴 물건이나 먹으려고 방면되었나. 그냥 남아 있을걸.”

식대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삶은 고구마와 무절임 몇 조각을 먹는 것이 이들의 점심식사였다. 같은 식사를 하는 농민들은 코웃음을 치며 이들에게 질문을 하였다.

“거 입이 아주 까다롭군. 상해 조차지에서 대체 뭘 먹었나?”

“점심으로 쌀이 반 정도 섞인 잡곡밥에 생선구이 정도는 먹어보았지요.”

“가끔 명절이 다가오면 고기도 좀 먹어 보았습니다.”

화교들은 예전 생활을 떠올리며 고구마를 먹고 물을 마셔 반밖에 차지 않은 속을 다스렸다. 그리고는 대한제국 조차지에서 가져온 담배쌈지를 풀어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

“돈도 아껴야 하니까 한 모금씩 피우자고.”

화교들의 모습을 본 농민들은 갈색이 뒤섞인 진흙 같은 아편을 꺼내 곰방대를 빨았다. 담배 연기와 아편 연기가 교차하는 가운데 농민들은 말이 안 된다며 중얼거렸다.

“잡곡밥에 생선구이? 명절에는 고기를 준다고?”

“자네들 대체 뭔 일을 하였어? 혹시나 기술이 있는데 이런 짓을 하는 겐가?”

“저희가 한 일은 화물 하역이랑 청소 그리고 창고 정리였는데요.”

딱히 기술을 가지지도, 새 기술을 익히지도 못한 화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저런 한정적인 업무였다. 기술을 익힌 화교들은 나름 풍성한 식사를 하며 돈을 알차게 벌어들였다.

청나라 농민들의 눈동자가 경외감과 의구심으로 흔들렸다. 이들은 자신들의 생활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여 억지로 웃음을 섞어가며 말했다.

“어이구 이 친구들아. 그렇게 식대에만 돈을 쓰니까 봉급도 못 받지. 봉급이 얼마인가?”

“일 년에 은자로 서른 냥이 조금 안 되었습니다. 열 냥은 채무를 이행했지요.”

“식대도 별문제가 없었지요. 점심 식사는 일하는 장소에서 제공해 주니까요.”

“그래도 물가가 비싼 편이라 한 가족이 살아가려면 최소 은자 스무 냥은 사용했습니다.”

청나라 농민들이 뼈 빠지게 한해 농사를 지어도 거둘 수 있는 수익은 세금과 식대를 제외하고 은자 열 냥, 여기서 뇌물이 빠지고 이런저런 대소사를 치르면 현실 유지에 급급하였다.

반면 조선의 조차지에서는 저런 단순한 업무만 하여도 한 해에 은자 열 냥을 벌 수 있을 지경이었다.

화교들과 농민들이 동시에 한숨을 푹 내쉬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서로를 보면서 똑같은 말을 하였다.

“이렇게 살아갈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화교들의 입장에서 청나라는 지옥의 끄트머리에 발을 걸친 나라였다. 반면 청나라 농민들 입장에서 대한제국 조차지는 천국의 끄트머리에 발을 걸치고 있었다.

“그…… 말이야, 내가 좀 험하긴 하지만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을 알고 있는데.”

“돈을 더 벌 수 있는 일이라 하셨습니까!”

“조금 위험한 일이고 소개장도 필요한 일이야. 자네들이 친인척을 찾아 이 나라를 돌아다녀야 하는데 안성맞춤이기도 하고.”

청나라 농민들은 서로를 바라본 다음 고개를 끄덕이고 합의를 보았다. 이렇게 비참하게 살아가느니 뭐라도 한번 해보고 인생을 펴볼 기회를 찾을 욕심이 생겨났다.

더군다나 좋은 정보를 전해준 화교들에게 어느 정도 선물을 줄 생각도 있었다. 농민들은 화교들의 정보를 통해 대한제국 조차지로 잠입할 생각을 품고 거래를 제안하였다.

“우리에게 조선의 조차지의 상황과 들어가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게.”

“대신 우리는 이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돈벌이가 좋은 일을 알려주겠네.”

“혹시나 조선의 말을 배웠다면 조금이라도 가르쳐 주면 좋고. 인사말 정도는 할 줄 알아야 조차지에 들어갈 수 있겠지.”

서로의 정보 교환이 시작되었다. 한 달에 걸친 정보 교환 끝에 농민들은 겨울을 틈타 조차지에 밀입국할 계획을 세웠고 화교들에게 일자리가 소개되었다.

“나리, 제가 확인해 보니 이 사람들은 신의가 두텁고 의리가 있습니다. 제가 보증을 서드릴 테니 나리가 하시는 일에 한 몫 보태게 해주십시오.”

“요즘 사람들이 줄어들어서 일이 좀 난해하기는 하였지.”

지주와 농민 사이에 대화가 오갔다. 한동안 대화를 나눠본 지주는 고민을 하더니 화교들을 불러서 낮은 목소리로 위협하듯 말하였다.

“자네들이 돈을 좀 만지고 싶은데 위험한 일을 해야 할 것 같아. 해 보겠나?”

“해 보아야지요. 멀리 떨어져 사는 친척들에게 방문하려면 돈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아주 좋은 태도야. 자네들은 앞으로 농사일을 하게 될 거라네.”

“농사일이요?”

지주는 자세한 설명을 하지도 않은 채 마을 건너의 농토로 화교들을 안내하였다. 그곳에는 예전에 논농사를 지었을 법한 땅에 잡초가 어지러이 피어 있었다.

“자네들이 수확할 물건이지. 이 물건을 철저히 관리하고 지시하는 대로 수확하게.”

“이건 잡초가 아닙니까?”

화교들이 새로 일 할 장소는 양귀비 채취현장이었다. 청나라에는 수많은 양귀비밭이 있었으며 아편을 한창 채취할 시기에는 인력이 부족하게 마련이었다.

농지 축소와 인력 부족으로 식량 가격이 올라가고 농업 생산력도 감퇴하였다. 이로 인하여 한 지역에 기근이라도 발생하면 수십만 명 단위로 아사(餓死)자가 발생하였다.

이 끔찍한 사태도 무질서한 양귀비 재배로 수백만 명이 굶어 죽은 본래 역사보다는 훨씬 나은 형편이었다.

그 비극을 계속 생산하는 역할을 담당한 지주는 막 채취된 아편을 손으로 매만지며 말했다.

“잡초가 아니야, 세상에서 가장 귀한 꽃이지.”

화교들 모두가 돈을 벌어 의지할 수 있는 친인척에게 나아가기 위해 양귀비를 가공하여 아편으로 만들어냈다. 당연히 화교의 상식으로는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조차지에서 아편을 유통하면 최대 사형이었던가?”

“그럼 우리 모두 사형수라 이 말이야?”

“지주와 군관 모두가 한통속이 되었는데 누가 우리를 죄인이라 해.”

청나라의 아편 생산과 유통은 지독할 정도로 체계적으로 돌아갔다. 아편의 품위를 3등급으로 나누고 최상품은 모두 북경에 있는 고위 관료들에게 공급되었다.

중등품은 지주와 군관들을 비롯한 지방 세력들이 소모하였다. 마지막으로 최하품은 화교들에게 봉급으로 지급되었다.

이 최하급 아편을 피우는 사람은 모두 농민들을 비롯한 하층민이었다. 역설적으로 늘어난 양귀비밭으로 인해 아편 공급이 안정화되며 가격 또한 안정화되었다.

“이건 미친 짓이야. 아편을 피워보았자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데.”

청나라 농민들은 예전처럼 아편에 중독되어 가산을 탕진하지 않을 뿐, 가산이 아닌 자신의 몸을 좀먹어 가며 남는 재산을 아편에 털어 넣고 있었다.

화교들은 양귀비 채취와 아편 가공을 완료할 무렵 은자 스무 냥이 넘는 수익을 거두었다. 그동안 나이 많은 화교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뿌리를 찾는 데 성공하였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친족들은 여수(麗水) 인근에 정착해 있다더구나.”

“마침 잘되었습니다. 돈도 충분한 상황이라 서둘러 움직이면 될 것 같습니다.”

돈의 출처를 밝히고 싶은 생각도, 밝힐 이유도 딱히 없었다. 그러나 지주는 화교들이 돈을 모을 때마다 애매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화교들 대다수가 베트남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혼란이 일상화된 청나라에서는 힘없는 사람이 돈을 모을수록 위험한 처지라는 사실을 이해하였다.

그들은 여비를 제외한 남은 돈을 지주와 군관에게 뇌물로 바쳤다. 여비를 제외하면 한 푼의 돈도 없는 알거지 신세가 되었으나 몸이 안전한 것이 제일이었다.

여섯 달 가까이 머무른 화교들이 떠나가자 지주는 쌓여 있는 은자를 확인하고 한참을 고민하였다. 그리고 이들이 생산한 아편을 피우는 팔기군들에게 질문을 하였다.

“놈들을 모조리 죽여서 남은 돈을 갈취하겠소? 아니면 그냥 여기서 만족하겠소?”

“저는 옷을 받아먹은 전적이 있어서 손을 놓겠습니다.”

한참을 고민한 지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들을 놓아주기로 했다. 그는 아편을 곰방대에 넣고 한 모금을 빨아들이며 말하였다.

“뇌물이 조금이라도 적었다면 살인멸구도 할 겸 모조리 죽여 없앴을 것인데.”

이런 방식으로 목숨을 건진 화교들도 있었다. 반면 눈치가 없는 화교들은 도적을 가장한 팔기군에게 습격당해 목숨을 잃거나 정말 운이 없어서 도적들을 만나 변을 당하였다.

화교들이 움직일 때마다 대한제국 조차지에 대한 소문이 퍼져 나갔다.

그리고 1858년 1월이 되자 수만 명에 달하는 농민들이 청도와 상해의 조차지에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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