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화
21장 6화 쌍성자(3)
은찬이의 사관학교 분원 이전 선언은 집안에 나름 파장을 불러왔다. 가장 먼저 반대한 사람은 딸인 은진이였다.
“오라버니! 사관학교 생활도 힘에 부치셔서 겨우겨우 하시는데 왜 쌍성자에 가시나요?”
“이 오빠가 너무 편안히 살지 않았니. 제대로 힘겨운 생활을 해보려 마음을 먹었단다.”
은진이는 그 말을 듣고 골똘히 생각을 하다 은찬이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로 가늘게 눈을 뜬 채로 중얼거렸다.
“혹시 이등박문을 떨궈 놓으려고 일부러 변방으로 가시는 건가요?”
“그 친구는 나와 함께 합격했어. 일본에서 건너온 생도로서 모범을 보이겠다고 하더구나.”
“모범이라고요? 모범이 아니고 오라버니가 다른 생각을 하신 것 같은데요?”
은찬이는 혀를 차며 은진이의 시선을 회피하였다. 이 모습만 봐도 은찬이 녀석의 생각이 손에 잡힐 것처럼 보였다.
녀석은 변방에서 이런저런 핑계거리를 찾고 있겠지. 이토 히로부미와 조금이라도 떨어져 지내거나 조금이라도 자유를 누리려는 것이 분명하다.
“아무튼 내 뜻이니까 뭐라 하지 마렴. 아버지께서도 별말이 없으시잖니?”
은진이는 날 바라보며 제발 은찬이를 뜯어말리라는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그 눈빛에 마음이 동요할 뻔했는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해주었다.
“은찬이도 나이가 스물이 넘었다. 뜻이 저렇게 굳건한데 내가 길을 막지 말아야지.”
은진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아내를 바라보았다. 반면 아내는 뭐라 말도 하지 않고 내 눈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왜 이러시오? 은찬이도 나이가 찰대로 찬 녀석인데 알아서 자기 앞가림을 해야지.”
도둑이 제 발 저린다 하였던가. 아내의 맑은 눈을 계속 바라보자 자연스럽게 변명이 새어 나왔다.
그러자 아내는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중요한 질문을 하였다.
“낭군님, 경제 관련 자문을 하다 알게 되었는데 쌍성자 일대에 공업단지를 편성할 예산이 사천만 냥이 넘게 투자되었더군요. 일반 공업단지가 아닌 것 같은데요?”
아내는 기밀에 속하는 쌍성자 군사공업단지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눈치챘다. 일대는 풍부한 철광과 탄광이 있어서 새로운 병기를 양산할 최첨단 공장이 속속 배정되고 있었다.
그나마 사천만 냥이라는 액수조차도 아내쯤 되는 자문가라서 추산 가능한 액수이다.
각 부서에서 돈을 십시일반으로 모아 훨씬 많은 액수. 나도 잘 모르는 수준의 예산이 투자되었다.
“그만큼 중요한 장소라 은찬이가 가도 나쁘지 않다 판단한 거요.”
“무언가 숨기고 계신 것 같은데요?”
“숨기는 것이 아니고 알지 못하는 거요.”
생산될 병기만 따져도 어마무시하다. 신형 탄환과 개조된 갑식, 진식 소총 여기에 암스트롱 포와 전기식 및 수동식 개틀링 건 그리고 신형 폭발탄까지 모조리 다 생산한다.
은찬이는 기존에 익히고 있던 장교 교육에 최첨단 병장기의 교육까지 모조리 이수하리라. 심지어 현역 장교들도 이 교육을 이수하기 위해 교대로 방문하겠지.
물론 이 사실은 기밀이고 외부에는 일반 군사공업단지로 포장되어 있지.
꾀만 부리는 은찬이의 교정을 위해 적당히 사실을 숨긴 채 아내에게 답해주었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일이나 적어도 중요한 장소가 확실하기에 별문제가 없다 판단했소. 힘겨운 생활을 해 보겠다고 자처하는 자식의 마음을 부모가 어찌 말리겠소이까?”
아내도 나와 이십 년 이상을 함께 산 사람이다. 평상시에는 집안일에 대해 별다른 말을 안 하는 사람이고 나도 아내를 존중하며 배려하는 마음을 가득 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내 표정이나 눈빛만 봐도 생각을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는 것 같았다. 최대한 표정을 관리하며 은찬이를 가리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였다.
“힘겨운 생활이라. 힘겨운 생활이 정도가 지나칠지도 모르겠는데요.”
“아무튼 난 손가락 하나도 안 댈 거요. 은찬이가 장교 생활을 하면서 쓸 만한 부하를 하나 마련해 준 것으로 녀석에게 할 일은 다 했소.”
은찬이는 ‘쓸 만한 부하’라는 말이 나오자 경기를 일으키듯 몸을 뒤로 젖히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확인한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하였다.
“일본에서 건너온 이등박문이 함께 쌍성자로 이주할 것이라 했었지. 위험한 일이 벌어져도 이등박문이 널 보호해 줄 것이니 염려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구나.”
“그……. 그 친구에게 의지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네 뜻이 그렇게 정해졌다면 별수가 없겠구나. 그래도 항시 몸을 조심하고 차디찬 북방에 시달리다 동상에 걸리지 않게 항시 조심하여라.”
아내도 은찬이의 결정을 허가하였다. 가족의 허가를 모두 받은 은찬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절을 올리며 자신감을 가득 담아 말하였다.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제대로 된 장교가 되어 돌아오겠습니다!”
앞으로 은찬이가 뭔 고생을 겪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대한제국에서 초일류 부대로 실험적 전술을 모조리 머릿속에 쑤셔 박을 거라는 사실이다.
“쌍성자 사단장 안집이 알아서 하겠지. 부여왕 이최응 아래에서 전훈을 갈고닦은 사람인데.”
내가 할 일은 외교적 업무라서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하였다.
이후 한 달이 지나자 북방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 어린아이를 포함한 외몽골 사절단이 도착했다.
육십여 명에 달하는 외몽골 사절단은 한양에 즉각 입성하였다. 이들이 어찌나 빨리 달려왔는지 짐조차 제대로 챙기지 않아서 은자를 건네고 각 역참을 통하여 보급을 실시하였다더라.
이들은 효명제와의 접견이 시작되자마자 한 쪽 무릎을 꿇어 극진한 예의를 담아 인사를 올렸다.
“대한제국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방문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대한제국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저희 모두가 망각하여 결례에 사죄하려 합니다!”
지정조격과 족보를 보낸 보람이 바로 돌아온 것이다. 효명제는 이런저런 공치사를 나누고 이들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한 뒤 나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번 일은 외부대신이 주관한 일이니 사소한 사항은 일임하겠네. 여러 요청을 하였는데 가부를 결정해 잘 판단하도록 하게나.”
“신은 오로지 폐하의 뜻을 따를 뿐이옵나이다.”
자질구레하고 사소한 일은 내가 알아서 해야지. 졸지에 외몽골 사절단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행렬의 핵심은 다른 누구도 아닌 열 살 무렵의 어린아이였다.
효명제 앞에서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어린아이가 내 앞에서는 먼저 나서게 되었다.
통역관을 통해 인사말을 들었는데 오히려 통역관이 놀란 눈초리로 의견을 내놓았다.
“이 말씀을 그대로 전해드려야 할지 그냥 넘겨야 할지 모르겠는데요…….”
“통역의 의무는 말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인데 왜 그리 말하는가?”
“저 아이는 자신이 칠대 젭춘담바 후툭투, 자나바자르 생불의 일곱 번째 환생이라 합니다.”
뭔 소리인가 짐작이 안 갔다. 나는 동양 역사를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이 시기 외몽골의 종교 지도자로 젭춘담바 후툭투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 기억하고 있다.
그 종교 지도자가 열 살도 안 된 어린아이고, 이 어린아이가 대한제국까지 방문할 줄이야. 아무리 보아도 외몽골 귀족들이 중요한 요청을 부탁한 것 같았다.
아직도 말을 전해야 하는지 감을 못 잡은 통역관에게 다시 지시를 내렸다.
“불심이 깊어서 환생을 할 수도 있겠지. 일단 칠대 젭춘담바 후툭투를 알현하게 되어 영광이라 전하게.”
내 말이 전해지자 몽골 특유의 변발도 아닌 삭발을 한 아이는 반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통역관을 통하여 계속 말이 전해졌다.
“선물한 서적이 너무나 훌륭한 물건이라 각 가문들이 하나로 뭉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귀한 물건을 주시고 사소한 일을 시키는 이유를 소승은 알 길이 없습니다.”
“저희에게는 사소한 물건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사소한 일을 부탁할 뿐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은혜가 무거워 져서 등이 휘어질 지경입니다.”
다시 깊게 합장을 올린 7대 젭춘담바 후툭투는 효명제와의 대화를 다시금 논하였다.
“저희의 잃어버린 기록과 조상의 핏줄을 되찾아 주신 분들에게 금과 은을 드리려 하였으나 황제께서 거절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는 건 외몽골을 주도로 삼은 몽골 병합이지 물질적 대가가 아니다. 효명제 또한 이 사실을 알고 외몽골 사절단에게 많은 것을 원하지 않았다.
여기서 심리적인 짐을 좀 더 지워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아예 외몽골을 대한제국의 수족으로 삼고 이들의 주도로 티베트의 분리 독립을 추구하기 위한 커다란 짐이.
그걸 어떻게 줄까 했는데 젭춘담바 후툭투의 주변에 있던 귀족들이 품 안에 가지고 있던 족보들. 대한제국에서 1차 보수를 마친 족보를 꺼내 나에게 돌려주었다.
“이걸 왜 돌려주십니까? 이미 보수를 마쳐서 다시 쓸 수 있는 물건인데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나라에는 옛적에 사용된 고서의 파편이, 쿠빌라이께서 고려를 부마국으로 만들 시절과 그 이후의 고서들이 제법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어린아이가 어른들의 말을 그대로 전달하였는지 진짜 환생자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시간을 넘어온 입장이라 환생자로 의심해 볼 만하다.
확실한 사실은 외몽골 귀족들은 이 족보를 더욱 잘 활용하기 위해 대한제국에게 방문하였다. 바로 족보의 위조였다.
“왜 여기까지 오셨는지 알 것 같군요. 족보를 추가로 기입해 달라는 말씀이시지요?”
“바로 보셨습니다. 자고로 옛 기록은 옛 종이에 적어야 하는 법 아니겠습니까? 저희에게는 그러한 종이도 이를 다룰 기술도 없습니다.”
외몽골 귀족들이 원하는 건 족보 위조였다. 고려시대에 기록된 족보에 시대별로 종이를 추가로 끼워 넣어서 이 시대까지 이어진 족보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다.
내가 알기로 옛 고서를 복원할 때에는 가급적 시대가 일치하는 종이를 사용한다. 16세기의 중요 서적을 복원할 경우에는 16세기의 종이를 사용하는 방식이지.
여기에 예전부터 보존된 묵을 사용하면 위조 족보가 금방 완성된다. 이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사절단과 함께 다시 국립 수장고에 방문하였다.
“족보 병합을 좀 부탁하려 하는데. 혹여나 잘 아는 사람이 있는가?”
겉으로는 병합이요 실제로는 위조이다. 아마 옛 기록이 남은 족보에 귀족들의 이름이 죄다 들어가서 대대손손 이어진 명문가로 위조되리라. 상대도 병합이라는 말을 듣고 위조임을 단번에 알아차려 버렸네.
그는 눈치를 주다가 내 귀에 대놓고 껄끄러운 일이라는 말을 해줬다.
“족보를 종친의 손이 아닌 이런 먼 곳까지 와서 병합하면 위조가 분명하지 않습니까? 모든 기록을 보존하는 국립 수장고에서 대놓고 위조를 하다니요?”
“여기만큼 전문가가 많은 장소가 있던가? 더군다나 필체에 능한 사람이 많은 곳이 또 있기는 한가?”
담당 관원은 나를 한참 쳐다보고 뒤에 대기하고 있는 아이와 외몽골 귀족들을 한참 동안 노려보았다. 그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간혹 파손된 회화나 초상화를 보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나 얼마 전 회화에서 손을 놓으신 노과(老果 - 김정희의 말년 호) 대감께서 이 작업을 주도하시지요.”
“오, 노과 대감이라면 믿을 수 있지. 지금 계시는가?”
김정희는 화가로서 수많은 회화를 섭렵하고 은퇴 상태였다.
본래 역사보다 오래 살기는 했는데 말년이라 눈이 침침하고 손이 더뎌져서 더 이상 회화를 못 그린다던가. 그런데도 여기에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
그는 보존용 작업실이라 명판이 붙은 커다란 방 안에서 수십 명의 제자를 진두지휘하며 명령을 내리던 참이었다.
“노과 대감님을 뵙습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김정희는 내가 방문하자 안경을 벗고 눈을 가늘게 뜨고 확인하였다. 그리고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앞으로 다가와 즐거운 듯이 말하였다.
“말년에 할 일이 많아서 아주 즐겁게 지내고 있다네. 그나저나 뒤의 사람들은 누구인가?”
먼저 외몽골 사절단을 소개하고 할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그는 족보 병합이라는 말을 듣고 눈을 흘긴 채 나를 노려보다가 한숨을 내쉬고 말하였다.
“법도에는 어긋나는 일이나 몽골의 사정을 듣게 되니 가만히 있을 수는 없군. 모든 족보가 청나라에 의해 불타버려서 전조 시절의 족보를 이 나라에서 찾게 되다니.”
“엄중히 따지면 위조이나 방도가 없지 않습니까. 대감님께서 힘을 보태 주십시오.”
김정희는 한동안 고뇌하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회화나 서적을 복원하기 위해 준비된 종이들에 손을 대고는 말하였다.
“종이는 명나라 시절에 이 나라에 수입되었다가 우연히 보존된 옛 종이를 사용하도록 하지. 다만 오래 보존된 종이에는 보푸라기가 일어나 먹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다네.”
“그러합니까? 보푸라기가 일어나다니요?”
“그러니 글을 쓸 자리는 날카로운 칼로 보푸라기를 밀어내야 하네. 글을 쓴 다음 겉을 훼손시켜서 보푸라기가 다시 돋아나게 해야지.”
김정희는 기존 족보를 확인하고 새 족보에 사용할 종이를 재단하고 다듬었다. 그 손길이 예사롭지 않아서 저절로 질문이 나왔다.
“많이 해보신 것 같군요.”
“여기에 있으면서 위서(僞書)를 발견한 것이 백 권이 넘는다네. 종이의 질도, 먹물도 사람을 속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
겉을 불에 그슬리고, 촛농과 기름을 먹이고, 그리고 쌀뜨물에 약재를 섞어서 발라 옛 종이처럼 낡아빠지게 만들었다. 여기에 먹과 붓조차도 심혈을 기울여 골랐다.
“그쪽 지방에서 주로 사용하는 붓은 어떠한 붓이오?”
“저희가 쓰는 붓은 담비 털을 모아서 만든 세필이지요.”
“그럼 아주 낡은 담비 털로 붓을 만들 거요. 옛 방식이라면 이 정도는 해야겠지.”
한참 동안 늙은 몸을 움직이며 종이에 손을 대던 김정희는 멍한 표정의 외몽골 사절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통역관에게 신신당부하듯이 말하였다.
“이 족보는 엄연히 말하면 원본을 병합한 것이 아닌 위조된 것이오. 지금은 몰라도 먼 훗날 형편이 나아지면 반드시 위조 사실을 공표하고 내가 손을 댄 부분을 분리하시오.”
“그래도 족보가 위조된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나 정도로 눈썰미가 좋은 사람은 알아볼 거요. 그런 사람이 흔하지는 않겠지만.”
김정희가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외몽골 귀족들에게 심리적인 부담도 착실하게 안겨주었다. 대한제국의 심기를 거스르면 족보의 위조를 공표하여 타격을 입힐 수도 있다는 부담이다.
이런 부담을 담은 위조 족보가 차근차근 완성되었다. 외몽골 귀족들이 가져온 기록이 종이에 기록되고 다시 겉표면이 가공되어 다음 장으로 병합되었다.
이렇게 되면 외몽골에는 ‘고려 시대부터 이어진 족보’가 갑자기 생겨나는 상황이다. 족보가 어떻게 꼬이건 간에 김정희 수준의 전문가가 아니면 위조를 감지할 수도 없겠지.
“이 정도면 본보기가 되겠지. 다들 내가 작업한 방식으로 족보를 병합하도록.”
시범 삼아 족보 두 장을 만들어낸 김정희는 피로로 눈을 비비며 옆방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하였다. 새 종이가 추가되어 완성된 족보는 겉으로 보기에는 옛 기록과 흡사한 것 같았다.
혹시나 몰라 고려시대부터 덧붙여진 진짜 족보를 비교해 보았다. 둘을 비교해 보니 오히려 김정희가 만들어 낸 가짜 족보들이 더 낡아 보일 정도였다.
“이럴 수가, 이토록 온전한 족보가 만들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온전한 족보가 아니고 억지로 병합한 족보이지요.”
“그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정말로 형편이 나아지면 병합한 부분을 분리할 겁니다.”
이들은 완성된 족보를 확인하고 품속에 다시 집어넣었다. 하나씩 완성되는 족보를 확인하고 온 젭춘담바 후툭투는 나에게 인사를 올리고 간절한 눈빛으로 말하였다.
“은혜에 은혜를 덧씌워 주시니 저희가 대한제국의 수족이 되어 원하는 일을 이룩해 드리려 합니다. 저희가 어떠한 일을 하면 좋겠습니까?”
“간단합니다, 여러분의 정신적 지주인 티베트가 네팔의 위협과 청나라의 방임으로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저희도 같은 라마교를 믿는 불자로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청나라의 손아귀에서 구출해 주십시오. 여러분이라면 할 수 있을 겁니다.”
이제는 권고가 아니고 명령에 가까운 지시를 내렸다. 고작 고서 몇 권을 복원해준 것으로 청나라의 정신적 근간을 훼손시킬 확고한 수단을 만들어냈다.
여기에 한 가지 할 일이 더 있었다. 어차피 외몽골 귀족들에게 페니실린을 제공해 줄 입장이라서 쌍성자에 자주 머무르게 할 필요성도 있다.
“그리고 한 군데 더 방문하실 장소가 있습니다. 쌍성자입니다.”
“쌍성자라, 얼마 전 대한제국의 영토가 된 곳이지요?”
“그렇습니다. 일대에 여러 문제가 벌어질 것 같은데 자주 머무르며 치안을 유지해 주시지요.”
치안이 유지될지 치안이 어지럽혀질지는 모를 일이다. 적어도 은찬이와 새 사관생도들, 그리고 훈련을 갱신할 장교들에게 풍부한 경험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