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256화 (333/345)

256화

21장 6화 쌍성자(2)

국립 수장고는 파주에 지어진 새 기관이다. 각지에서 발견된 고서의 원본과 필사본이 각기 다른 건물에 보관되며 각 대학의 논문이나 연구결과도 보관되는 장소이기도 하고.

본래 홍문관이 담당하던 기록이나 홍문관의 용량 부족으로 아예 파주로 이전하였다. 평상시에는 정부 관계자나 학자들만 방문하는 장소에 내가 올 줄은 몰랐다.

“기록에 몰두하는 민족성은 어디 안 사라진다니까.”

이 기관은 1852년 처음 건설될 때는 4층 벽돌건물 두 채에 불과하였다. 그 건물이 점차 늘어나는 자료로 인해 4번째 건물이 한창 건설될 지경이다.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 허허벌판에 모조리 자갈을 깔아 잡초조차 침범하게 하지 못하였다. 여기에 만에 하나를 대비하여 높은 지대에 터를 잡고 튼튼한 외벽을 세워두기까지 했다.

“외부대신님 방문하셨습니까!”

“다들 고생이 많군.”

여기에 성부사단에서 차출한 경비병들이 삼엄한 경계를 하였다. 하나같이 날 보고 바짝 긴장하고 있어서 적당히 인사를 하고 안내를 받아 본관으로 들어갔다.

“국립 수장고에 방문하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젊은 관리는 조금 전까지 필사작업을 실시하였는지 소매에 먹물이 약간 묻은 채 나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 외에도 수많은 이들이 수장고 운영을 위해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수많은 고서를 확인하고 내용을 분석하여 가급적 동일한 형태로 필사한다. 여기에 기존 고서에 분류표를 붙여서 수장고에 납입하는 작업까지 진행되고 있었다.

“나라의 근본이 여기에 살아 있군. 그나저나 좀 바쁜 것 같은데 내가 괜히 방문했는가?”

내가 바쁘다는 말을 하자 관리는 소매를 확인하고 먹물 자국을 손으로 가리더니만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리면서 한 방향을 가리켰다.

“일본의 가쿠슈인에서 납본(納本)이 들어오기 시작해서입니다.”

“가쿠슈인에서? 거기서 발행되는 논문이라 해 보았자 얼마 안 되는데?”

“일본의 각 가문에 잠들어 있던 고서들도 많은 형편이더군요. 이 경우에는 필사본을 두 권 만들고 원본을 일본에 돌려보냅니다.”

이하응도 이 나라 사람 아니랄까 봐 기록의 중요성은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조선시대를 뛰어넘는 자료 구축을 위하여 외국의 기록까지 수집하여 마음이 놓일 지경이다.

조선의 기록체계는 실록을 비롯한 중앙 기록이 우수할 뿐 지방 기록이 상당히 부족한 편이다. 근대화 이후 지방 기록에도 손을 대며 점차 많은 자료가 수집되고 있겠지.

여기까지는 매우 만족스러운 일이다. 수장고의 유지비와 인력을 생각하더라도 현대의 미국과 같이 모든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체제가 있으면 전혀 나쁜 일이 아니다.

“보관된 책의 총 수량은 얼마나 되는가?”

“장서만 따지면 대략 칠만 질(帙 - 책 한 편)입니다. 권수로 따지면 이십만 권이 넘지요.”

지금 미국 의회 도서관에 보관된 책이 6만 권이 조금 안 될 거다.

권수로 따지면 풍부한 편인데 옛 시절에 한문으로 기록된 서적은 문자가 큼직해서 책의 내용이 좀 적은 편이지. 아직 세계 최고는 아니더라도 손꼽힐 수준의 자료 보관고이기는 하다.

젊은 관료는 계속 보관되는 얇은 논문 책자를 보여주면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일단 네 번째 수장고가 건설되면 십만 질까지는 보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내가 찾는 자료가 있을지 궁금한데.”

“찾으시는 자료가 전조를 지배하던 시절의 원나라와 관련된 기록이었지요. 제법 있습니다.”

건물 구조는 현대의 도서관, 정확히는 미국 의회 도서관이 정립한 분류체계와 일치하였다. 특정 주제의 관을 찾아가 그 안에서 서재를 찾고 다시 책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여기에 책등에 큼지막하게 쓴 제목을 달아 두어 어떤 책인지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가장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예상과 달리 ‘분류 안 된 족보’ 항목이었다. 관리는 수없이 쌓인 족보들을 가리키며 설명을 하였다.

“저희가 각지의 고서를 찾아내면 내용을 확인하고 첫 분류를 합니다. 그 과정에서 기록이 미비하거나 보학(譜學 - 족보를 보는 학문)에 어긋나는 족보는 다 여기에 두지요.”

“그 어긋나는 족보가 이렇게 많을 줄이야. 다만 어긋나는 기준이 있기는 한가?”

“예전에 하옥(荷屋 - 김좌근의 호) 대감께서 족보를 수거해 정리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당시의 기록이 워낙 상세해서 많은 참고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당시 김좌근이 수많은 족보학자들을 데리고 코피를 쏟아가며 일 한 보람이 있었다. 결국 여기에 있는 족보는 위조 족보 또는 근본이 불확실한 족보들이었다.

관리들은 개중에 40여 개에 달하는 족보를 따로 분류해 두었다. 하나같이 너덜너덜해진 고서들인데 개중 한 장을 펼치자 삭아 들어가는 종이 사이에 기록이 보였다.

“이건 저희의 분석 결과 대조가 불가능한 고려 시절 족보입니다. 한자로 기록된 발음을 추정해 본 결과 이 나라 사람도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의 족보더군요.”

그 말이 옳기는 하였다. 칭기즈 칸 이후 몽골에 성씨가 생겨났고 이후 차츰차츰 성씨가 전파된 흔적이 엿보이는 내용이다.

몽골식 이름을 읽는 방법은 잘 몰라도 푸른 늑대와 흰 사슴부터 이어진 계보가 쭉 전해지다 원나라 시절부터 성씨가 덧붙여진 것 같다.

현대에는 6.25 사변은 물론이고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사멸된 기록이리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족보를 조심스럽게 정리하고 평가해 주었다.

“당시에 원나라가 고려를 거의 백 년 동안 지배하였지. 그동안 고려를 착취하고 글을 아는 사람을 통해 자신들의 족보를 기록하라고 강요했을 거야.”

“뼈아픈 역사입니다만 이제 지나간 일이지요. 나라를 되찾지 않았습니까.”

원 간섭 시기, 실제로는 원나라의 강점기는 한민족에게 뼈아픈 상처이나 너무 오래된 일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기록들은 내버려 두면 불편하기만 한 잡서에 불과하고.

“필사본도 있고 그리 중요한 기록도 아니지 않나. 몽골에 보내면 좋을 것 같군.”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서적을 보여 드리지요.”

다음으로 안내받은 곳은 내 예상대로 법전 관련 항목이었다. 여기에는 현대에서 가까스로 찾아내는 데 성공한 지정조격, 원나라 시절의 법전 원본이 놓여 있었다.

“이 서적은 오 년 전에 발견된 원나라의 마지막 법전입니다. 마침 운이 좋게 발견되었지요.”

“기존의 원나라 시절 법전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

“그 법전은 태조대왕 치세부터 법을 세울 적에 참고한 다른 법전, 통제조격의 필사본입니다. 이건 필사본으로 전해지는 것과 달리 당시에 기록된 원본이지요.”

구깃구깃하게 구겨진 종이는 수장고 보관을 위해 뒤에 한지를 덧대고 풀을 먹여 가급적 말끔하게 정돈된 상태였다.

관리는 내 표정을 확인하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하였다.

“고서 원본이라 소장 가치는 높은데 학술적 가치는 없습니다. 내용 대조를 해보았는데 혼란스러운 시기에 만든 법전이라 별다른 차이도 없더군요.”

“필사는 마쳐두었는가?”

“당연히 마쳐두었습니다. 애초에 해석을 위해서 필사를 하였지요.”

“혹시나 다른 곳에서 유사한 서적을 발견한 적은 있었고? 예를 들면 청나라 말이야.”

이래저래 확인을 위해 질문을 퍼부었다. 젊은 관리는 내 말을 듣고는 한참을 고민하고 다른 관리들을 만나서 대조를 하더니만 별문제 없다는 듯이 답해 주었다.

“청나라에 남아 있는 옛 원나라의 서적은 이미 여러 차례의 필화(筆禍 - 글로 말미암은 화) 사건으로 훼손되었습니다. 설령 남아 있다 하여도 청나라의 필사본이지요.”

“그리고 입맛대로 조작된 필사본이겠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학자들인데 원본을 옮겨 적었을 겁니다.”

젊은 관리는 태연하게 답하다가 눈빛이 변하여 지정조격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의심을 가득 담은 대답을 하였다.

“생각해 보면 필화를 여러 차례 겪은 나라의 기록이 온전할 이유가 없지요.”

“내 생각도 같아. 그런 점에서 이 서적은 우리에게 별다른 가치가 없어도 몽골 사람들에게는 크나큰 가치를 지닌 보물이지.”

지금 청나라의 상황은 내몽골의 보르지기트 셍게린첸을 통해 가까스로 외몽골을 억제하고 있다. 그나마 동군연합 체제로 몽골을 다스린 효과를 톡톡히 보는 실정이다.

몽골의 정체성을 분쇄하기 위해 족보를 불태우고 기록을 말살한 효과이기도 하다. 이 상황에서 옛 족보와 옛 법전의 필사본도 아닌 원본이 전해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 법전과 족보를 모두 모아 몽골에 보내도록 하겠네. 가급적 보관에 신경을 쓰고 격식을 갖춰 이전할 준비를 하게.”

“알겠습니다. 그러하면 훼손된 족보를 보수하도록 하겠습니다.”

수장고 담당 직원들이 달려들어 훼손된 족보에 종이를 붙이고 덧대 보강 작업을 실시하였다. 이 너덜거리는 서적이 전할 여파는 아주 크다.

몽골 사람들이 구전으로 보존한 족보와 성씨는 변치 않은 옛 기록과 맞물려진다. 혼인 동맹으로 만주족의 일원이 된 내몽골은 졸지에 정통성도 없고 조상도 팔아넘긴 매국노가 되겠지.

설령 안 되더라도 원나라의 법률 원본을 가진 순간부터 정통성 측면에서 청나라보다 우위에 선다. 금나라의 법전은 현재까지 전해지는 원본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잘만 하면 티베트 수호의 의무를 거부한 청나라 대신 몽골의 정통성이 부각되겠지. 청나라 놈들은 엿을 먹어도 싸다니까.”

본래 이 서적들은 독립한 몽골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쓸 생각이었다. 이걸 영국의 실수로 먼저 사용해서 참 불편하긴 한데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이 법전과 족보를 아무 이유 없이 보내면 오히려 의심을 사고도 남는다. 그런 점에서 외몽골에게 임무를 좀 하달해야겠다.

바로 러시아에서 시베리아로 유배당한 사람들을 안내하는 역할이다. 쌍성자에 몽골 사람들이 좀 많이 들락거릴 텐데 사관학교 분원의 생도들이 고생을 좀 할 것 같다.

“저기…… 혹시 외부대신이신 박 후작님 아니십니까?”

막 돌아가려 하는데 옆에서 누군가가 공손하게 인사를 하였다. 상대를 자세히 보니 촌마게, 일본 특유의 상투를 튼 나이 많은 노인이었다.

“외부대신 맞습니다. 혹시나 궁금한 점이라도 있으십니까?”

여기에는 전 세계의 학자들이 오가고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일본 귀족 출신 학자 같아서 이야기나 나누고자 했는데 의외의 질문을 하였다.

“전 교토 토박이라서 여러 고서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습니다. 조금 전에 청나라에 엿을 먹인다고 하셨는데 이 흉험한 놈들이 엿을 먹으면 잘된 일입니다.”

“흉험한 놈들이라. 큐슈도 아니고 교토에 사시는 분이 어찌 그걸 아십니까?”

“제가 가져온 서적 중에 읽기만 하여도 가슴이 미어질 정도로 흉험한 서적이 있습니다.”

노인이 건넨 서적의 이름은 <양주비록>이라는 낡은 서적이었다. 갑자기 뒤통수가 아려오는 느낌이 들어서 서적의 첫 장을 펼쳐 확인하였다.

-본 글은 후금의 오랑캐가 양주에서 열흘 동안 벌인 학살을 기록하였다.

-나 왕수초는 당시에 양주에 살던 사람으로 이 글을 남긴다.

중국 방식으로 기록된 한자라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처절한 살육의 현장만큼은 여과 없이 기록되었다.

“이거 양주십일기의 원본…….”

이 책은 양주십일기, 일본에서 유행하다 중국인 유학생들에게 전해져 신해혁명을 촉발시킨 서적의 원전이 분명하다. 한때 사학도의 길을 걸은 사람이라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고 있었다.

본래 역사의 양주십일기는 위작 논란이 있는 서적이다. 양주성의 학살 기록을 접한 일본인들이 청나라를 내분에 빠트리기 위하여 역사적 사실을 짜깁기했다는 논란 말이다.

그러나 양주십일기의 정말로 일본에 있었다. 아마 우연하게 일본에 전해진, 명나라 피난민이 남긴 ‘양주비록’에 살을 붙인 서적이 양주십일기이리라.

“원본이요? 혹시 다른 필사본이 있다는 말입니까?”

내 말을 들은 교토 출신 노인이 아리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 말실수를 얼버무리기 위하여 어떻게든 둘러댔다.

“청나라에는 양주가 열흘 만에 사라졌다는 말이 있습니다. 당시 살던 사람들이 죄다 변방으로 이주했다 하던데 모두 살해당한 것이 분명하군요.”

“어허, 하늘을 어찌 손바닥으로 가리려고!”

“학자들은 대량 학살이 있었을 것이라 추정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반면 이 서적에는 그 대량 학살이 존재하였음을 명백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 청나라의 고위 관료를 제외한 대다수의 백성들은 양주 학살 사건을 모르고 있다. 그 이야기를 듣자 노인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 섞인 저주를 토해냈다.

“세상을 모르는 무뢰배 놈들! 진실을 감추고 거짓을 퍼트리려 하여도 이러한 의인이 남긴 기록을 모조리 지울 수 있겠습니까!”

참 누군가가, 어떤 부류가 생각나는 말이 아닌가. 이제 존재하지 않을 후손에게 교훈을 남긴 노인은 서적을 한 차례 바라보더니 나에게 간청하듯이 부탁을 하였다.

“이 이야기에 살을 붙이고 내용을 보태 청나라 전체에 퍼트려 주십시오. 이 학살을 저지른 여진족 놈들은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로군요. 응당 해드리겠습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청나라 엿 먹이기고 두 번째로 좋아하는 일은 청나라 쪼개기다. 여기에 쓰일 또 다른 재료를 얻어온 김에 차근차근 내용을 퍼트릴 준비도 해야지.

닷새 뒤에 서적은 모조리 보수되어서 외몽골로 옮겨졌다. 조정에서는 쌍성자까지 방문하고 돌아갈 외몽골 사람들을 위하여 또 다른 업무를 일준이에게 하달하였다.

“넌 또 왜 일을 만들고 난리냐? 안 그래도 헤로인 문제로 머리가 아픈데 또 일이 생겼네.”

“너 지난번에 쌍성자 다녀와서 화학공장 설비 점검했던 것 같은데.”

“몽골 사람들 오잖아! 일이 또 생겨서 출장 가야 한다니까!”

일준이는 출장 준비를 갖춘 채 내 집으로 와서 푸념을 하였다.

일준이는 쌍성자에 한번 다녀온 전적이 있었는데 또 가다니. 녀석은 이를 부득부득 갈아대면서 나에게 으르렁거렸다.

“몽골 방문객들의 매독 치료를 위해 페니실린을 생산할 준비를 갖추라잖아.”

“아 맞아, 몽골의 지역 유지들은 상당수가 매독에 감염되어 있지.”

몽골의 매독 문제는 제법 뿌리가 깊다. 군소 부족은 모르는데 사람이 많은 대형 부족들 가운데 상당수는 승려들이 행사하는 초야권으로 매독 감염자가 제법 많다.

효명제는 내가 제시한 의견을 받아들이고 이를 더욱 승화하여 몽골에게 ‘영혼과 육체’ 모두를 구원할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일준이는 질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 쏘아붙이듯 말했다.

“한양에 막 들어선 페니실린 생산 공정을 복제해서 그대로 옮기라 하더라. 난 가본다.”

“잘 다녀오고 몸 조심해!”

“네 몸이나 조심해라.”

일준이의 말대로 우리도 50대가 지나서 서서히 늙어가고 있기는 하다. 운동도 빠짐없이 하는데 요즘 좀 무릎도 아프고 눈도 침침해지기 시작했지. 그래도 장남인 은찬이가 아주 잘 자라고 있어서 다행이 아닌가.

녀석이 막 퇴근해서인지 밖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형님! 잘 주무십시오!’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 다녀왔습니다!”

“다녀왔구나. 그나저나 표정이 왜 이리 밝더냐?”

은찬이는 웃음을 감추지 않고 실실 웃어대면서 이토 히로부미가 있을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웬 임명장 하나를 나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부친께서 저에게 타의 모범이 되고 사람을 가르치라 하여서 여러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쌍성자에 생긴 사관학교 분원에서 자신을 갈고닦을 마음을 먹었습니다.”

“사관학교 분원?”

녀석이 내민 종이는 정말 사관학교 분원 합격증이었다. 녀석은 가슴을 굳게 편 채로 나에게 당당하게 앞으로 할 일을 말해주었다.

“저는 항시 장교로서 모범을 보이고 낮은 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힘을 쓸 예정입니다.”

“너도 나이가 스물이 넘었는데 알아서 잘하겠지. 난 원하지 않는 일이다만.”

은찬이가 앞으로 겪을 고생이 눈에 선하다. 매독 치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는 수많은 외몽골 사람들에게 치이고 밟히며 개고생을 할 몰골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을 말릴 이유도 근거도 내놓을 수 없었다.

자식이 정한 길을 막아서지 않기로 은찬이와 약속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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