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화
21장 5화 예케 아메리카 울루스(2)
며칠 만에 수염을 짧게 정돈하고 기존의 몽골식 변발 대신 아예 가발을 착용한 신랑감들이 완성되었다. 그사이에 서류를 완비한 링컨은 이들을 데리고 기차에 올랐다.
기차 노선이 개설되어도 머나먼 북부까지 가서 혼인을 치를 수는 없었다. 결국 링컨은 그나마 가깝고 인구가 많은 텍사스 주를 혼인 장소로 택했다.
“텍사스에 가면 여러분들과 혼사를 치를 신부들이 넘쳐날 겁니다.”
“왜 하필 텍사스요? 툼스톤 인근에는 없소?”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염려하지 말고 절 믿어주십시오.”
링컨은 텍사스에서 내려 인근의 지주들에게 면담을 요청하였다. 이 시기 텍사스는 부유한 중부 대평원의 흑토지대를 기반으로 어마어마한 대농장들이 번성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방문한 대지주의 저택에는 수많은 이들이 하인으로 일하고 있었다. 50대 후반의 대지주는 링컨을 만나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내 북부에 인맥이 있어서 미리 들은 바가 있네. 자네가 타타르에게 신 가축법을 설명하기 위해 파견된 전직 하원의원 에이브러햄 링컨이던가?”
“바로 보셨습니다. 이미 가축법에 대한 설명은 끝났고 다음 과정을 진행하고 있지요.”
다음 과정이라는 말에 지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링컨이 방문한 이유와 몽골 이주민을 데려온 이유를 알 길이 없어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근데 내 농장에 타타르를 왜 데려왔는가? 내가 말과 소를 기르는 법을 확인하려고?”
“서로 이득이 될 만한 일을 논하러 왔습니다.”
텍사스의 대지주와 몽골 이주민은 새로운 경쟁관계를 구축했다. 텍사스의 주요 산업 중 하나가 목축이었으며 소값 폭락이 발생하며 서로 불만이 쌓이고 있었다.
대지주는 의자에 앉아 불편한 표정을 지은 채 탁자 건너로 링컨을 바라보았다. 반면 링컨은 대지주보다는 그 뒤에서 집안일을 하는 하녀들을 슬쩍 훑어보고 질문을 하였다.
“얼마 전 부인과 사별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렇지. 몸이 쇠약해져서 얼마 전 숨을 거두었다네. 안타까운 일이지.”
이 시대 미국은 ‘번성하라’라는 성경의 문구를 착실히 이행하였다. 10대 후반에 혼인을 치르고 쉴 새 없이 아이를 낳는다. 한 가정에 10남매 정도는 간혹 볼 수 있는 수준이다.
그 고생을 겪은 아내의 몸은 순식간에 늙어서 병을 앓다 죽기 마련이다. 평범한 가정이면 죽은 어머니를 추모하는 가장이 쓸쓸히 홀아비로 지내지만 대지주는 이야기가 달랐다.
링컨이 언제나, 어디서나 보아왔던 일이라 익숙하게 대처하였다. 그는 여러 명의 젊은 하녀들이 있음을 똑똑히 확인하고 지주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새로 혼사를 들 생각이시군요.”
대지주들은 아내가 병이 들 때쯤 주변 농가의 딸들을 하녀로 들여온다. 하녀로 생활하며 집안의 전통을 익히게 한 다음 아내가 죽은 다음 새 아내로 맞이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재혼은 자식을 기르기 위해 실시하나 이러한 방식의 재혼은 서로의 사랑이 없이 오로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결국 장남보다 나이가 어린 ‘새엄마’들은 혼수품을 대가로 팔려온 신세나 다름없는 꼴이었다. 지주가 죽은 다음에는 일정 재산을 물려받고 골방 신세로 전락한다. 이는 지주 한 명의 쾌락을 위해 모두가 희생되는 구조였다.
대지주는 찔리는 듯이 눈을 질끈 감은 다음 링컨에게 위협하듯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럼 새로 혼사를 안 들고 어머니 없는 신세로 자식을 키우란 말인가?”
링컨도 이런 악습을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다만 이 악습에 희생되는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줄일 생각으로 조곤조곤 설명하였다.
“아닙니다, 다만 새로 아내로 들일 사람 대여섯 명을 모아두신 것 같은데 중혼은 안 하실 것 같더군요. 혼사를 치를 처녀가 여기에 모여 있다는 말이지요.”
링컨은 연미복을 입고 뒤에 대기하고 있는 외몽골 이주민을 가리켰다. 그러고는 입양 서류와 혼인 신고서를 탁자 위에 놓으면서 정중하게 권유했다.
“어차피 아내로 뽑히지 않으면 본래 살던 집으로 돌려보낼 사람 아닙니까? 아예 양녀로 삼으셔서 새 사위를 들이면 어떠하십니까?”
지주는 여기까지 제안을 하자 턱에 손을 괴고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고는 링컨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을 궁금해하였다.
“이거 참 놀라운 제안이로군. 내가 이 하녀들을 양녀로 삼으면 뭐가 좋은가?”
“혼수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소와 말을 마음대로 불릴 수 있는 타타르 사위 말입니다.”
대지주의 머리가 빙빙 돌아갔다.
지금까지 카우보이라 자처하는 얼뜨기나 멕시코 출신 목동들을 시켜 어영부영 소와 말의 수를 불리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몽골 이주민을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조차 못 할 지경이었다.
지주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뒤에 도열한 총각들을 바라보면서 질문을 하였다.
“자네들이 내 사위가 되면 뭘 해줄 수 있겠는가.”
기다렸다는 듯이 예비 신랑들이 앞으로 두 걸음 나섰다. 그들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장인어른이 될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일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장인어른을 깍듯하게 모시겠습니다. 처가는 서로 혈연을 맺은 가족 아닙니까.”
“혈연을 맺은 가족이라? 자네들은 이주민 아닌가?”
“사는 곳이 고향이고 자주 만나는 사람이 가족이지요.”
지주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 이주민들의 현재 상황을 점검하였다. 그들의 말 대로 미국은 사는 곳이 고향이요 자주 만나는 사람이 가족이라는 말은 그리 틀리지는 않았다.
“원하는 것은 있는가? 혹시나 내 재산을 원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재산은 제가 장인어른께 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다만 제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 장인어른께서 제 자식들과 아내를 부양해 주십시오.”
지주 입장에서는 손해를 볼 일이 없다. 그가 기억하기로 타타르, 몽골 이주민들은 능력도 출중하며 좀 난폭할 뿐 큰 사고는 치지 않는 자들이었다.
마음을 정한 지주는 고개를 끄덕이고 하녀들을 한 명씩 불러왔다. 링컨은 하녀에게 외몽골에서 건너온 신랑감에 대하여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었다.
“농가에서 자라오신 분 같은데 요즘 들어 소 가격이 바닥을 치고 있지요.”
“그 때문에 제가 하녀로 들어왔어요. 집에서 기르는 소가 너무 헐값이 되어서요.”
“원흉이 바로 뒤에 있습니다. 머나먼 동양에서 이주한 사람들이지요.”
링컨은 거짓이 없이 성심성의껏 몽골 이주민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하녀는 눈을 굴리며 앞으로 할 일을 하나하나 이야기하였다.
“갑자기 결혼이요? 솔직히 나이가 맞는 사람이 필요하기는 한데…….”
“대신 수백 마리의 소와 말을 기르는 사람입니다. 장점이 하나 더 있다니까요.”
링컨은 은근슬쩍 주변을 돌아본 다음 뻔히 아는 이야기를 귓속말로 속삭여 주었다.
“잘 들어두세요. 조만간 법이 제정되면 이주민들은 세금 문제로 인해 오백 마리가 넘는 대형 가축을 기르면 세금이 부과됩니다. 그 가축이 어디로 갈까요?”
“글쎄요? 저는 법을 잘 몰라서요.”
“세금 문제를 우회하려고 일정 숫자 이상의 가축의 소유권은 죄다 가족에게 넘길 겁니다.”
링컨은 몽골 이주민들에게 세금을 줄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제시하였다. 신 가축법은 오로지 ‘동양 이주민’ 대상이라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가축의 양도를 제한하면 재산권 침해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하면 지주들의 대난동이 벌어지리라.
하녀는 여기까지 이해하고 질문을 하였다.
“저는 소를 몇 마리 길러봤을 뿐 수백 마리는 감당할 수 없어요.”
“몽골 이주민들은 부하들을 많이 거느려서 편할 겁니다. 제자를 자처하며 기마술과 각종 기술을 배우는 충실한 하인들이 여럿 있지 않습니까.”
하녀들이 보기에는 흑인도 아니요, 인디언도 아니며 머나먼 동방에서 건너온 어엿한 이주민이었다. 심지어 거대 목장을 혼자서 일구어 낼 정도로 재주가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여기에 대지주의 양녀가 되면 인맥도 생겨나고 상류층으로 순식간에 도약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링컨은 마지막 설득을 위해 앞으로의 일어날 일을 알려주었다.
“숨을 쉴 때마다 소와 말이 늘어나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 재산을 조금만 활용해도 지금 주인어른을 몇 세대 이내에 넘어설 것 같은데요.”
하녀는 마음을 정하고 서류에 서명을 하였다. 까막눈이라 서명 공간에 V표시를 친 것이 전부이나 링컨의 손을 거치자 충분한 가치를 지닌 서류가 되었다.
다시 대지주가 하녀를 자신의 양녀로 삼을 것이라 공언하는 서류를 작성하였다. 이 두 개의 서류를 합치면 몽골 이주민들을 어엿한 몽골계 미국인으로 바꿀 수 있었다.
일시적인 수단이 아닌 완벽한 법의 우회수단이다. 의회에서 만들어 낸 신 가축법도, 어떻게든 흠집을 잡으려 하는 남부 지주들도 별 방법이 없으리라.
뒤에 우두커니 서 있던 몽골 이주민들은 그사이에 서로 합의를 보아 순서를 정하였다. 가장 먼저 한 사람이 나와 아내 될 사람에게 무릎을 꿇고 청혼을 하였다.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은 초원에서 살아남는 법이요, 내가 가진 것은 수백 마리의 소와 말이며, 약속할 수 있는 것은 아끼고 존중하겠다는 마음이오. 이런 나와 혼인을 치러 주시겠소?”
“네! 당장 교회로 가요!”
“그러면 하느님 아버지에게 혼인을 알린 다음 전통 예식에 맞게 다시 혼사를 치릅시다!”
그 날 하루 동안 17명의 몽골 이주민이 새 아내를 맞이하였다. 이들은 미국의 문화에 의거해 텍사스의 한 교회에서 공동결혼식을 치렀고 각기 3일에 걸쳐 잔치를 벌였다.
“내 새 양녀가 된 이자벨라, 이블린 그리고 릴리안 양과 머나먼 동방의 사위! 아마르! 푸타우! 그리고 도르지의 공동 혼인을 선언하겠소! 주님께서 이 세 부부를 축복하시기를!”
부호들은 사위의 마음을 휘어잡으려고 주례를 자처하였다. 신문 기자는 이 광경을 사진기로 촬영하며 새로운 방식의 결혼을 즉석에서 기사로 바꾸었다.
“이건 산탄총 결혼보다 빠른 타타르 방식 결혼이로군.”
서부에서 ‘산탄총 결혼’이라는 풍습이 있었다. 눈이 맞은 남녀가 거사를 치르고 임신이 들통나면 남자 측이 산탄총을 머리에 맞는 것과 사위가 되는 것 중 하나를 강요받는 풍습이다.
그러나 이 결혼은 더욱 빨랐다. 대지주의 양녀가 탄생하는 순간 바로 결혼을 치르고 보름이 지나기도 전에 축의금이 전달되었다.
* * *
링컨의 손으로 한 달 동안 총 450건의 공동결혼식이 거행되었다. 오늘도 결혼식이 진행되고 기자들이 몰려와 취재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말쑥한 턱 대신 덥수룩하게 수염이 자라난 턱을 드러내며 기자에게 돈을 찔러주고 다시금 당부를 하였다.
“내 사진도 찍어서 워싱턴에 기삿거리를 좀 보내면 더 좋겠는데.”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나저나 전에는 면도를 하신 것 같은데요?”
“면도할 시간도 없어. 그냥 이대로 찍게.”
링컨은 자신이 면도조차 제대로 못 한 사진이 찍히면 평가가 더 좋아질 것이라 생각하였다. 사진이 촬영되고 링컨은 자리를 슬슬 피해 잔치를 탈출하였다.
이제 한 달 동안 열심히 돌아다닌 보상을 받을 차례였다. 그는 호텔의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침대 위에 신발을 신은 채로 누워 잠에 빠져들려 하였다.
“이럴 때가 아니지! 보고서랑 행정 서류 작성해야 하잖아!”
링컨은 자리에 벌떡 일어나 탁자에 앉았다. 행정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 서부의 특성상 링컨이 있을 때 제대로 된 서류 업무를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아직 제대로 된 미국인이 된 게 아니지. 애리조나 동부의 정착촌 관련 서류도 만들고 신혼부부들이 집단으로 거주할 마을 관련 서류도 작성해 주고.”
링컨은 다시 펜을 들고 새 거주지를 만들어내는 서류를 작성했다. 잠시 눈을 쉬려고 창밖을 보니 이제 ‘몽골계 미국인’이 된 사람들이 지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은 새 아내를 껴안고 호텔에 들어가거나 지주의 양녀가 되기 전, 아내들의 본래 부모에게 인사를 올리기까지 하였다. 처음 지주와 만났을 때의 살벌한 분위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링컨은 이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인종간의 화합을 일궈낸 사실에 만족하였다. 노예 신세인 흑인에게는 다른 방법을 적용해야 하지만 첫걸음이 중요한 법이었다.
“이대로 내버려 뒀다면 상처가 곪고 터져서 내란이 벌어지고도 남았겠지. 이제는 내란 대신 인디언 소탕으로 방향을 돌린 것 같다만.”
이미 문제는 해결되었고 변호사들이 지주들과 합류하여 ‘타타르식 결혼’을 추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제반 문제는 ‘쓸 만한 사위’를 더욱 활용하려는 마음을 먹은 대지주와 변호사들이 알아서 처리해 줄 것이다.
아마 20년 정도가 지나면 북부 일대에는 인맥을 통해 대학에 입학하는 몽골계 젊은이들이 넘쳐나리라.
여기까지 상상한 링컨의 방문을 호텔 관리인이 두드렸다.
“링컨 의원님, 워싱턴에서 전보가 도착하였습니다.”
“벌써 전보가 도착했다고?”
시간을 보면 의회에 올린 1차 보고서가 도착하고 이틀조차 지나지 않았다.
링컨은 관리인이 건네준 보고서를 확인하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어제 정기 의회에서 서부의 현황에 대해 보고하였네. 남부 의원 놈들이 짐승과 같은 타타르가 고결한 혈통에 손을 댔다고 발작하더군. 그러나 처리 방식에는 이견을 제시 못 했어.
-오히려 자네가 속한 공화당 측 의원들이 반격에 나섰지. 남부 대지주는 눈이 사기조각보다 못하여 상대를 질시하기만 하는 꼴이라 비판하였네.
-자네의 첫 성공이 별다른 부작용 없이 이어지기를 기대하지. 잡다한 일을 처리한 다음 워싱턴으로 돌아오게나.
링컨의 눈시울이 붉어지며 눈물이 샘솟았다. 그동안 단 한 번의 하원의원에 당선된 그에게 제대로 된 성공 사례와 정치적 기반이 마련된 상황이다. 앞으로 거주지 관련 서류만 작성하면 나머지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다.
어느 정도 서류가 정리될 무렵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계시오?”
자신과 함께 혼사를 처리하고 호적을 작성하는 소르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링컨은 헛기침을 하고 옷깃을 정돈한 다음 문을 열어주었다.
“소르칸 시장님 아니십니까. 잔치는 잘 치르고 계십니까?”
“물론이지. 이제야 사람답게 사는 꼴이 된 것 같소.”
소르칸의 뒤에는 몽골 이주민, 이제는 몽골계 미국인이 된 주요 간부들이 도열해 있었다. 이들은 소르칸을 선두에 세우고 링컨의 방으로 들어왔다.
“위대한 힘과 지성을 지닌 에이브러햄 링컨에게 감사를 표하오.”
“저 아닌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나선 사람이라 선물을 좀 주려고 하오. 사실 하나는 아니고 여러 개가 될 것 같은데.”
링컨은 이들을 미국에 편입시키며 정치적 명성을 얻었다. 차기 대선주자로 등극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며 잘만 하면 미국의 대통령이 되어 흑인 노예를 해방하리라.
그는 몽골계 미국인들이 전달할 선물이 무엇일지 궁금해하였다. 소르칸은 방 안에 있던 의자를 가져와 링컨을 앉히고 말을 이어갔다.
“본래 칸은 대대손손 이어가야 하지. 다만 미국의 초대 칸인 조지 워싱턴이 세운 엄정한 법률에 의거하여 임기제 칸도 엄연한 칸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소이다.”
“칸이 아니라 대통령이라니까요.”
“우리가 보기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소. 그럼 다들 준비했나?”
몽골 이주민, 이제는 몽골계 미국인의 대표인 소르칸과 간부들은 링컨을 바라보았다. 링컨이 어리둥절해 하자 이들은 모두 한쪽 무릎을 꿇고 전통 방식의 절을 올리며 말하였다.
“에이브러햄 링컨을 우리의 새로운 칸으로 추대하겠습니다!”
“또 칸이라니요! 추대라니 대체 뭔 소리입니까!”
화들짝 놀란 링컨은 소스라치게 놀라 의자에서 자빠지려 하다 가까스로 무게중심을 잡았다. 절을 올린 간부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링컨에게 자신들의 의견을 털어놓았다.
“저희 부족이 온전히 혼사를 치르게 하셨으니 이는 몽골의 법도에 의거! 큰 부족의 족장이 혼약으로 서로를 맺고 통솔하는 방식입니다!”
“우리 모두 이 은혜를 받들어 링컨을 미국의 칸! 대통령으로 추대하겠습니다!”
“링컨! 칸! 링컨! 칸!”
링컨 칸이라는 말은 어느새 발음이 뭉개져 ‘링 칸’이 되었다. 소르칸은 모두의 의견을 듣고 얼이 나간 링컨의 손을 잡고 말하였다.
“다음 쿠릴타이에 의원을 선출해 보내겠습니다!”
“예케 쿠릴타이 투표에는 선거인단이라는 사람이 필요하지요! 이들도 마련하겠습니다!”
“우리가 몇 표나 행사할지는 모르지만 여러 방법으로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지요!”
링컨은 몇 번이고 눈을 깜빡이며 이들의 ‘민주주의’ 이해도를 점검하였다. 이들의 주장은 미국의 투표제와 선거인단 제도의 핵심 중 하나가 빠져 있었다.
“애석하지만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이 주로 거주하는 애리조나 준주, 유타 준주가 왜 준주(準州)로 불리는지 아십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부족하여 헛된 기대를 품고 있었다. 링컨은 아파오는 머리를 매만지며 미국의 제도에 대해 다시금 설명하였다.
“준주는 인구가 부족한 주이며 행정력을 비롯한 기반 또한 부족합니다. 주의 인구가 늘어나고 번성해야 선거인단을 구성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렇소? 이건 제법 복잡한 제도구려.”
“제가 말씀을 드린 것 같은데요. 그렇다고 주소지를 옮길 생각은 하지도 마십시오!”
링컨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새로운 지지자들과 악수를 나누고 포옹을 하였다. 이미 이들의 존재 자체가 표 덩어리이자 정치적 지지 기반이나 마찬가지였다.
반면 소르칸은 골똘히 생각에 잠겨 한참을 서성거렸다. 이 사이 링컨은 텍사스에서 북부로 돌아가는 기차를 잡고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앞으로 별문제 없이 혼약을 치르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럼 나중에 대통령이, 여러분들의 언어로 칸의 자리에 올라 한번 방문하겠습니다!”
“칸은 이런 사소한 자리에 올 사람이 아니오! 우리가 가겠소!”
마지막 인사를 마친 소르칸은 텍사스 역에서 나오며 손뼉을 쳤다. 다른 건 몰라도 ‘인구’를 늘릴 방법이 떠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