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21장 2화 가축
내 예상보다 빠르게 일본 민중들이 호응하였다. 각지에서 올라오는 보고에 의하면 올해에만 3만 명에 달하는 농민들이 삼강평야 이주를 요청하기 시작했다.
“그 소중한 장남 장녀들을 삼강평야에 보낸다. 어지간히 우리를 신뢰하나 보군.”
본래 일본의 이주 요청을 1863년 정도로 예상하였다. 인구가 미어터지다 못 하여 모두가 불편하고 굶주림에 시달릴 때 쯤 어쩔 수 없이 이주를 택할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내 정책과 지금까지 심어온 좋은 관계 덕분에 예상보다 빠르게 이주를 택하였다. 이 소식은 나를 거쳐 효명제에게 올라갔고 어명이 내려왔다.
“짐이 요동 일대를 아바마마와 함께 개척하였다. 삼강 습지의 개척은 오랜 시일이 필요한 일이니 태자가 주도하는 것이 가장 옳은 것 같구나.”
태자는 많은 권한을 받게 되었다. 충분한 예산과 이주민에게 소모될 재정 지원 그리고 기존에 요동을 개척한 인재들을 다룰 수 있는 권한까지도.
태자의 자질을 시험하는 격이었다. 나라를 경영하기 전에 30명의 인재를 다루고 개척과 개간을 통한 작은 정부를 운영해 보라는 신호였다.
당연히 나를 비롯한 각부 대신들에게도 ‘태자의 개척을 도우라’ 라는 명이 하달되었다. 예상대로 삼강평야 개척을 담당한 사람은 화서 이항로였다.
“여러 부서를 전전하다 마지막으로 만나게 되는군. 자네와 영길리에 다녀온 것이 엊그제 같은데 모두 노년을 염려하게 되었어.”
이항로는 군부, 농부, 탁지부 등 각종 부서를 드나들고 마지막으로 나에게 면담을 청했다. 그는 서역에 다녀온 이후 지금까지 온갖 장소를 개척하며 명성을 쌓기를 반복하였다.
처음에는 자원을 찾고, 그 다음에는 요동 일대를 개간하였으며 경상도 일대의 철도망을 구축하기까지 하였다. 품계는 내가 더 높아도 그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인사를 올렸다.
“화서 대감님을 뵙습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쉴 새 없이 업무를 실시하다 근래에 들어서 조금 평온하게 지냈다네. 제자를 여럿 키워냈는데 개중에 한 명이 얼마 전 문과에 급제하였지.”
“면암(勉菴) 말이로군요.”
이항로는 지난 4년 동안 휴식 겸 학문과 지식을 갈고 닦기 위하여 경기도 일대에 머물렀다. 그 시일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고 제자를 육성하였다.
개중에 21세의 나이로 문과에 합격한 최익현이 있었다. 이항로는 내가 최익현에 대해 알고 있어서 기분이 좋아졌는지 제자 자랑을 하였다.
“자네도 알고 있군. 내 제자 자랑을 하여 자기 얼굴에 금칠을 하는 것 같네만 나를 넘어서는 훌륭한 제자라네.”
최익현이 혹시 위정척사파가 되었을지도 몰라 순간 염려했는데 그의 아버지부터 서역에 다녀온 사람 중 하나이다. 이항로는 당시의 일을 떠올리듯 잠시 뜸을 들인 다음 말하였다.
“난 심지를 곧게 가지고 이 나라의 근본, 유학을 중심으로 삼자 하였지. 반면 면암은 주도권을 잃을 수 있으니 통치에 연결된 뜻을 남기고 모두 버리자고 논하였다네.”
“주도권이라. 이를 위해 유학의 비중을 줄이다니 참 이상한 논리로군요.”
“녀석이 논하기를 유학을 근본으로 삼으면 천명(天命)에 얽매이게 마련이라 하였네. 강대한 국가가 생겨나면 대립할 생각을 아니 하고 천자로 칭송한다 하였지.”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유학은 근본적으로 전국시대의 혼란을 바로잡기 위하여 만들어진 학문이고 핵심적으로는 권위를 통합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최익현은 단순히 유학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고 이로 인하여 ‘새로운 강대국’이 생겨나 대한이 이 강대국을 섬기는 사태를 염려하고 있었다.
나이 많은 학자들 입장에서는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었다. 이항로가 나에게 눈치를 보내며 뭐라 의견을 표현해 보라 하여서 적당히 최익현의 다음 주장을 예상해 보았다.
“아마 면암은 모든 나라에는 그 나라만의 천하가 있다고 논하였을 것 같습니다.”
“거의 비슷하군. 녀석은 이 나라의 역사가 옛적부터 계속된 흔적이 있어 이미 천하를 가진 나라가 유학을 받아들인 꼴이라 하였지.”
“아마 화서 대감님의 제자가 되기 전에 고고학자들과 면담을 가진 모양입니다.”
“역시 하나를 논하면 둘을 아는군.”
인사치레는 이 정도로 마무리해야겠다. 이항로는 본론으로 들어가려는지 자신이 확인한 삼강평야, 이 시대에는 삼강습지의 대략적인 지도를 꺼내 주었다.
“용천도(龍泉道 - 현 흑룡강성 북서부)에 위치한 습지는 흑룡강, 우수리강 그리고 송화강이 합류하여 삼강(三江)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이 사실은 자네가 알고 있지 않던가.”
“물론입니다. 사람들이 땅을 파고 또 파도 흑토가 솟아나온다고 혀를 내둘렀지요.”
“실로 그렇다네, 처음에는 쓸모없는 흙으로 여겼는데 국립이학대학의 분석 결과 어떠한 비료 없이도 마음대로 작물이 번성하는 흙이라 하였지.”
삼강평야는 전 세계적으로 최고로 비옥한 토지를 가진 땅이다. 우크라이나의 흑토지대나 미국 중부 평원과 대등한 잠재력을 지닌 땅이지.
물론 이 거대한 흑토지대가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항로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기후 조사 자료를 들이밀고 말하였다.
“토질은 이토록 우수하나 기후가 문제더군. 추위가 거세고 여름에도 추운 지대라 남부 일부를 제외하면 벼농사는 불가능하며 북부로 올라가면 밀과 옥수수 농사조차도 힘들 것이라네.”
“그래도 극히 일부만 개척하면 비옥한 옥토를 가지는 격이 아닙니까?”
“틀린 말은 아니야. 그 극히 일부의 개척도 지극히 험난해서 문제지.”
이항로는 사람들이 가져온 사진과 숲 관련 자료를 제시하였다. 개중 시찰 보고서에는 ‘늪과 숲 그리고 겨울의 혹한이 어우러지는 생지옥’이라는 의견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요동의 개척은 약간의 축력만 동원해도 가능하였지. 오히려 건조한 점이 골치가 아파서 저수지를 만들어 내는 데 심혈을 기울였네.”
“반면 삼강습지는 이야기가 다르군요.”
“그렇지. 잘못 치수(治水)하였다가는 습지의 물이 범람할 것이요, 하물며 치수 이전에 개척하는 작업마저도 끔찍하게 힘들 것 같더군.”
“그래도 인력을 동원하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요.”
인력으로 안 되는 일은 없다. 사단장이 손가락 하나를 까딱거리면 있던 언덕이 사라지는 꼴을 몇 번이고 보아온 적이 있으니까.
그러나 이항로는 내 말을 듣고 입술을 씰룩거리더니 화를 눌러 참고 말하였다.
“동원하다 보면? 농민들이 언제 절망하고 쟁기를 내려놓는지 아는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농사를 지으라고 지시만 하였지 해본 적은 없었지요.”
이항로는 내 눈을 바라보고는 딱하다는 듯이 혀를 차면서 ‘그럴 수도 있다’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경험을 내세워서 말하였다.
“삼정의 문란이 극이 달할 때에 절반이 넘는 수익을 강탈당하여도 쟁기를 놓지 않았네. 백골징포나 황구첨정을 당한 이들이 가축을 빼앗겨 자기가 쟁기를 끌고 다니기까지 하였지.”
이미 옛일이나 이항로의 나이를 생각하면 젊은 시절 계속 보아왔을 광경이었다. 그는 여기까지 생각한 다음 한숨을 깊게 쉬고 말하였다.
“그런 끔찍한 일을 수없이 겪은 사람들과 더 한 일을 겪어온 화전민을 요동 일대에서 다루었지. 그들이 쟁기를 놓고 절망하는 모습을 나는 보았다네.”
“혹여나 농사에 실패하여 작황이 부족할 때 절망하였습니까?”
“작황이 부족해도 삼정의 문란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농부는 자신이 만들어낸 논밭이 범람에 휩쓸리거나 단 한 번의 실수로 작물이 떼죽음을 당하는 꼴을 보면 삶의 낙이 사라지더군.”
이항로의 말을 들으니 이해가 되었다. 이 시대 농부들은 작황이 조금이라도 안 좋으면 배를 곯아야 하는 처지이다.
대다수가 흉년이 오거나 농사에 실패하면 어느 정도 인내하고 견디는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현대로 따지면 삼정의 문란이나 작황 부족은 월급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꼴이다.
그러나 자연재해로 인한 논밭의 소실이나 작물의 떼죽음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작물이 죽으면 일 년 연봉이 모조리 잿더미가 되는 상황과 같겠지. 아예 논밭이 사라지면 한술 더 떠 직장조차 새로 구해야 하는 형편이고.
이항로는 자신이 경험한 일을 나에게 새겨주려는 듯이 기준을 정해주었다.
“그러하니 첫해는 몰라도 다음 해에는 농사에 꼭 성공해서 작황을 거두어야 한다네. 아주 조금의 작황이라도.”
“말이 쉽지 실제로는 극히 힘든 일이로군요.”
“자네는 개척을 간언하고 이 간언을 받아들인 폐하께서 명령을 내리니 모를 만도 하지. 그러나 내가 요동 일대를 개척하면서 수많은 사례를 목격하였다네.”
말을 마친 이항로는 고개를 숙이고 나에게 거의 간청하다시피 요구사항을 말하였다.
“백성의 굶주림은 보내온 식량으로 막을 수 있지. 그러나 자신이 일궈낸 논과 밭을 잃어버린 절망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도 화서 대감님과 논하여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나라 백성도 중요하지만 삼강 습지를 개척하는 사람들은 머나먼 이국에서 온 사람들이야. 이들이 쟁기를 집어 던지고 좌절하는 모습을 보지 않을 길을 만들어보세나.”
나 또한 동의한다. 일본과 러시아에서 보내온 사람들은 소중한 인력이자 장기간 삼강평야를 운영할 귀중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개척을 거부하고 돌아가는 것만 따져도 손해다. 소문이 퍼지면 삼강평야 개척에 호응하는 사람이 사라지리라.
이항로가 기차 노선 부설이나 농기구 무제한 지급 같은 의견을 내놓을 거라 생각하였다. 반면 그는 엉뚱한 의견을 내놓았다.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가축이 십만 마리, 가급적 쓸 만한 소나 말이 필요할 것 같군.”
“십만 마리라 하셨습니까? 그 정도는 나라 전역에서 사들이면 될 것 같습니다만.”
“외국에서 들여와야 한다는 말일세. 이미 태자전하께 논의를 하여 이 나라의 가축 가운데 사십여만 마리가량을 순차적으로 보낼 계획을 세웠는데도 턱없이 부족하다네.”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적당히 반박했을 텐데 삼강평야 개척 총괄 책임자인 이항로의 말이라 무게가 다르다. 그래도 사십여만 마리는 말이 안 되어서 반박하였다.
“이주하는 백성들이 잘해보았자 왜국에서 이십만 명, 노서아에서 몇 년을 들여 수십만 명에 이 나라에서 삼십만 명이지 않습니까?”
“도합 칠십만 명이고 호(戶)로 따지면 홀로 이주하는 사람을 감안해 대략 이십오만 호이지. 한 호 마다 힘을 쓸 수 있는 소나 말이 두 마리는 필요하지 않겠는가?”
“두 마리까지는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만.”
“솔직히 말해 세 마리는 필요하다네. 모두에게 미지의 땅인 삼강 습지를 개척하는 데 한 마리는 얼어 죽고, 한 마리는 거센 노동에 병들어 죽을 상황이더군.”
가구당 소나 말을 세 마리씩 키우라는 소리이다. 대한제국의 농민들도 소를 두 마리나 다루는 경우는 없고 한 마리는 일하는 소, 다른 한 마리는 나중에 일을 할 송아지로 분류한다.
그런 와중에 세 마리라니. 내가 도저히 안 되겠다고 말하려 하였는데 이항로가 오히려 의견을 내놓았다.
“한 곳만 경작하였다가 농지를 유실하였다면 절망할 걸세. 그러나 넘쳐나는 가축으로 여러 곳을 경작하고 한두 곳만이라도 제대로 파종을 할 수 있다면 인내하고 계속 일할 것이고.”
이항로는 서류를 정리하여 손가방 안에 넣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다시금 가축을 수입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삼강 습지를 별문제 없이 개척할 수 있도록 가축을 최소 십만 마리만 마련하여 주게나.”
“어디서 수입해야 할지 난감할 따름이군요. 일단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이항로가 방을 나서자 저절로 한숨이 푹푹 쉬어졌다. 말이 가축 10만 마리지 그 가축을 제공할 만한 국가는 별로 없다.
청? 본래 역사보다 좀 더 발전하기는 했는데 부패는 더 심해졌다. 물량을 맞출 수는 있는데 그런 나라에 고개를 숙이는 것은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둬야겠다.
일본? 지금 막 가축의 수를 불리고 고기의 맛을 들이고 있는 나라이다. 막 불어나기 시작한 가축을 가져가면 이견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외몽골에 의존할 수도 없었다. 이미 가축을 팔아 내전을 벌이고 있는 나라인데 뭘 어찌하겠는가. 결국 수입할 나라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미국 동부나 서부 중심지면 몰라도 서부 해안 일대에 가축이 있을 리가 없는데.”
전신으로 보낼 문구를 작성하면서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쿨리들이 더 빠르게 유출되어 미국 동서 횡단철도가 빠르게 완공되는 점을 감안해도 가축의 숫자는 쉽사리 불어나지 않는다.
내 기억으로는 1880년 말쯤에 가야 미국 서부의 가축을 수출할 수 있을 거다. 지금은 개척과 개간에 소모되는 가축조차도 맞추지 못하여 허덕이는 시점이지.
그래도 미국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미국 서부에 수입할 계산까지 해두고 전신을 담당하는 직원에게 건네주었다.
“이 전신을 미국 서부로 보내도록. 답신이 오는데 얼마나 걸릴 것 같나?”
내 장문의 전신을 확인한 직원은 손가락을 까닥거려 셈을 하고는 바로 답해주었다.
“가는 데 이틀, 오는 시간을 감안하면 닷새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덜 걸리는군. 언제 그렇게 전신이 빠르게 작동하게 되었지?”
“사 년 전부터 대서양 전신이 설치되고 이제 네 개 회선이 정상 가동되고 있습니다. 덕분에 일이 더 늘어나게 되었지요.”
생각보다 빠르게 전신이 상용화되어 다행이다. 전신기를 담당한 직원은 내 전신을 모스 부호로 해석하여 상해에 있는 전신국으로 송신하기 시작하였다.
이런다고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미국 서부의 가축이 태평양을 넘어오는 것도 힘든데 동부의 가축이 대서양을 넘고 지구를 2/3이나 경유하여 수입될 꼴이다.
“십만 마리가 동부에서부터 넘어오면 골치 아프다 못해 덤터기를 쓰는 꼴이 되는데.”
덤터기가 아쉬운 수준이 아니다. 그마저도 몇 년 뒤에는 남북전쟁이 터지거나 그 이전 전쟁 조짐만 생겨도 가격이 폭등하고 수입 경로가 막히리라.
가격도 좀 높게 잡아 황소 한 마리에 60달러, 송아지는 30달러로 계산하고 배송 비용은 따로 매겼다. 이 아래로 가격을 맞춰줄 수 있다면 좋겠는데 과연 맞출 수나 있을까.
* * *
박현상이 미국에 전신을 보낼 무렵에도 툼스톤을 중심으로 모인 몽골 이주민들은 가축을 쉴 새 없이 키워댔다.
여름이 끔찍하게 더울 뿐, 가혹한 겨울과 그보다 더 가혹한 경쟁 부족도 없는 평온한 장소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결과 삼천여 명의 몽골 이주민들과 이들에게 기술을 배우기 위한 얼뜨기들 그리고 위탁 투자자를 비롯한 모두가 쉴 새 없이 소를 키워댔다.
물이 메마르고 초원이 고갈되기 시작하였으며 가축의 분변이 미처 처리되지 못하여 새로운 풀이 자랄 공간을 더럽히기 시작하였다.
소르칸은 주변에서 이어지는 보고를 듣고 심상치 않은 조짐을 느꼈다. 긴급회의를 소집한 소르칸은 모두 착석한 것을 확인하고 회의의 주제를 알렸다.
“본래 석 달마다 쿠릴타이(회의)를 소집하나 이번에는 긴급히 소집했다. 최근에 들어서 각지에서 가축을 관리하는 데 난항을 겪는다고 보고를 올리더군.”
“저희는 보고를 올린 적이 없습니다만.”
소르칸은 눈을 가늘게 뜨고 회의에 참가한 인원들을 돌아보았다. 몽골 이주민들은 대부분 자존심이 강하여 가축 ‘따위’를 기르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반면 인연을 맺은 각지의 목장주나 카우보이들은 달랐다. 이들은 아직 경험이 부족하여 조금만 어려움을 겪어도 일종의 자문 요청을 보내왔다.
지도자인 소르칸 입장에서는 이런 동맹들의 불편함도 해소해 줄 필요가 있었다. 그는 수없이 쌓인 서류를 내려놓고 엄숙히 말하였다.
“각지의 목장에서 보고가 들어오는데 이걸 묵인할 생각은 아니겠지. 일단 얼마나 많은 가축이 있는지 숫자부터 알아보자고.”
그는 숫자나 셈법에는 능통하지 않아도 미국인을 고용하여 추이를 분석하였다. 나름 대학을 졸업한 서기관은 보고를 종합하고 예측하여 알려주었다.
“잡아들여 가축화시킨 야생 소와 각 목장에서 번식한 소. 그리고 저희가 수를 불린 소를 계산해 보았습니다. 일단 남부에서 투자받아 수를 불린 소는 십삼만육천 마리입니다.”
“제법 많이 불렸군. 다들 고생을 많이 했어.”
“그 소에는 야생 소도 제법 포함되어 있는데 넘어가겠습니다. 여기에 각 목장에서 번식한 소는 추산치가 이십구만 마리, 길들인 야생 소는 십오만 마리가 조금 넘습니다.”
툼스톤을 중심으로 삼은 몽골 이주민들의 가축 번식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씨수소를 이용한 대량 번식, 원거리 번식 심지어 야생 소를 모조리 잡아들이기까지 하였다.
오히려 소르칸이 눈을 사방으로 굴리다 서기관에게 질문을 하였다.
“좀 이상한데? 기반이 이토록 좋은데 고작 사십……. 사십칠만 마리?”
“오십칠만 마리이고 이미 팔만 마리의 다 자란 소를 간부 고야슬레를 통해 캘리포니아로 보내지 않았습니까!”
숫자에 약한 몽골 이주민들이라 모두가 머리를 굴려대기만 하였다. 그들은 서로를 돌아보고 57만 마리가 넘는 소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생각해 보았다.
“얼마인지 감이 잘 안 잡히는뎁쇼.”
“다들 고향 기준으로 부자가 된 거지. 대충 한 호(戶)마다 오백 마리 정도 기르지 않나.”
“그게 뭐 부자라고, 실력 없는 놈들은 목장에서 엉덩이를 뭉개며 술이나 마시는데.”
“목장에서 일하는 녀석들은 실력이 없어서 가축 수만 불리지.”
소르칸조차도 이 사태에 대해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이야기가 어느 정도 끝나자 서기관은 식은땀을 흘리며 다른 가축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였다.
“여기에 말이 이십만 마리가 넘습니다. 이로 인하여 가축의 가격은 바닥을 치다 못해 지면을 뚫고 하강하여 황소 한 마리에 삼십 달러에 불과하지요.”
“그건 좀 의외로군. 황소 한 마리에 삼십 달러? 우리가 이주할 때는 사십 달러였는데?”
“이대로라면 가축들이 서로 경쟁하다 굶어 죽을 실정입니다. 이미 목초가 뿌리까지 뜯기고 물이 마르기 시작하였으며 가축의 분변이 쌓여 모래먼지처럼 부스러지고 있습니다.”
칭기즈 칸은 문명을 파괴하여 자연을 되살렸다, 반면 후손들은 너무나 세상에 잘 적응하여 자연과 물가를 동시에 파괴하였다.
서기관은 그나마 이 물가 파괴가 동부 일대까지 전해지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하였다. 이마저도 시간문제에 불과하지만.
소르칸은 머리를 두드리다 답을 내기 위해 다른 힘을 불러왔다. 방구석에 있던 위스키로 알코올의 힘을 불러오기 위해 한 병을 단숨에 들이켰다.
모두가 골치 아픈 일을 알코올의 힘으로 밀어내기 위해 병나발을 불었다. 서기관은 입술을 짓씹으며 다음에 튀어나올 말을 예상하였다.
“그럼 또 서부로 보내! 고야슬레 그 친구가 요즘 들어서 인디언이라는 족속들을 개 패듯 패버려서 길이 더 많이 뚫렸잖아!”
“옳소! 서부에 가축을 팔자고!”
“우리의 기반을 마련해 준 남부에는 계약대로 내년에 팔고!”
소르칸은 또다시 위스키 병을 개봉하고 몇 모금을 들이켰다. 그리고는 서부에 가축을 팔자며 술에 취한 간부들과 함께 연호를 하였다.
“서부에 사람이 적고 가축이 많은 실정인데 또 가축을 판매한다니요!”
서기관 입장에서는 미친 짓이었다. 제 가격을 받지도 못하고 말 그대로 가축을 고봉밥으로 얹어주는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지금 당장 가축의 수를 줄이거나 더 이상 번식시키지 않고 질 좋은 가축으로 유지하는 편이 나았다. 그러나 소르칸은 몽골 사람이며 가축의 숫자가 곧 힘이라 신봉하는 민족이었다.
“그럼 도살이라도 할까? 아니면 더 이상 가축을 기르지 말까?”
“이 친구 아무래도 술의 힘이 부족해서 생각을 못 하나 봅니다!”
서기관은 입으로 다가오는 위스키 병을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이 무식한 족속들과 일한 일 년 동안 평생 동안 마셔온 술의 몇 배나 되는 양을 퍼마셨다.
잠시 뒤, 서기관은 위스키 병나발을 불고 웃통을 까뒤집은 채 소르칸과 방 안에서 씨름을 즐겼다.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부흐 토론’이었다.
물론 경험이 미숙한 미국인이 소르칸을 이길 수 없었다. 소르칸이 제대로 힘을 주자 서기관은 허공을 날아 벽을 부수고 반대편 방 바닥을 뒹굴었다.
코피가 솟구치고 온몸에 피멍자국이 가득한 서기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패배를 인정하였다. 그는 방구석에 있던 계약서 사본을 집어 들고 말하였다.
“제가 졌군요! 까짓것 십이만 마리만 보냅시다! 소와 말 섞어서!”
“술도 섞어서! 자! 술 들어간다!”
위스키 반, 맥주 반을 섞은 술을 한 사발이나 들이켠 서기관은 펜을 놀려 기어가는 글씨로 서부 가축 방목 계약서를 작성하였다.
이 계약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고야슬레에게 전해졌다. 또 다른 가축 폭탄이 서부 해안 일대를 강타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