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245화 (228/345)

245화

20장 11화 러시아 혁명(2)

이 무렵 마르크스는 아일랜드로 돌아와 행복한 신문 편집자이자 작가의 삶을 살고 있었다. 특유의 달필로 작성한 대한제국 유람기와 인도 여행기는 절찬리에 판매되었다.

이 외에도 크림 전쟁에 참전한 ‘러시아의 사람들’이 영국에서 절찬리에 판매되었다. 예전에는 아일랜드 독립단체 신 페인의 천덕꾸러기였으나 이제는 신 페인의 중요 간부였다.

“이번 독서협회에서는 아일랜드의 사정을 러시아의 농노 제도와 연관 지어 발표해 보았습니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후원금을 보내왔더군요.”

“사천 파운드라. 고생이 많군.”

“예전에 저지른 일이 있는데 이 정도 고생은 해야지요.”

겸손한 대답에 신 페인의 간부들 모두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마르크스를 칭찬하였다. 신 페인 본부는 마르크스를 비롯한 간부들의 활동 덕분에 예전과 다르게 제대로 된 저택이 되었다.

말끔하게 벽지를 바른 벽과 천장에서 빛나는 전구로 화사한 설비를 갖추었다. 여기에 깨진 유리창 대신 제대로 된 이중 창호를 갖추었고 목재 또한 새것이었다.

“그럼 후원금을 넣은 영수증을 드리고 개인 집필에 들어가겠습니다.”

“고생이 많았어. 우리 자신의 독립을 위하여 힘쓰세.”

복도 바닥은 왁스를 발라 윤기가 흐르고 벽에는 촛불이 밝혀져 있었다. 이 훌륭한 복도를 연미복 차림의 마르크스가 걸어갔다.

그는 신 페인 독립운동을 겸하여 이론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렇다고 이론이 완성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론의 완성은 점차 멀어져가고 있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자본가들의 타협으로 인해 점차 완수하기 힘든 일이 되었다.

이 험난한 장벽에도 마르크스는 자신의 원대한 꿈, 인도의 공산화를 통한 비인도적인 관습과 계급제의 타파를 위하여 모든 수단을 동원하였다.

복도를 걸어가던 마르크스는 며칠 전 있었던 독서협회의 토론을 떠올리고 웃음을 터트렸다.

“러시아 농노가 언제쯤 각성해서 영국의 농민과 대등한 권리를 가지냐는 질문을 했었지. 내가 보기에는 삼십 년 이내에는 일어날 수 없을 일이기는 했는데.”

그는 러시아 포로들에게 씨앗을 뿌렸다. 어떻게든 글을 배운 사람에게 개인 강의를 하여 머나먼 훗날, 자본가들의 착취가 본격적으로 벌어질 때 노동 쟁의를 일으키려 하였다.

러시아 제국의 후진적인 체계를 감안하면 삼십 년이 아닌 오십 년이 걸릴 수도 있었다.

그는 같이 신 페인 독립단체에 머무는 친구 엥겔스의 방으로 들어가 인사를 했다.

“프리드리히, 서적 인세도 충분히 쌓였으니 채무 백 파운드…….”

“채무가 문제가 아닐세. 자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신 페인 독립운동의 공장 설립 부문 책임자, 이미 맨체스터에 여섯 개의 공장을 소유한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서신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인사를 받았다.

마르크스 자신이 호화로운 생활로 가산을 탕진해 오백 파운드를 빌려 달라고 했을 때에도 저런 표정을 지은 적이 없었다.

반대편 의자에 마르크스가 앉자 엥겔스가 서신을 건네주었다.

“러시아 제국의 차르가 자네에게 직접 서신을 보냈다네.”

“차르? 러시아? 그건 또 뭔 소리야?”

편지는 프로이센에서 영국으로, 다시 영국에서 아일랜드로 배송되었다. 한 통은 마르크스가 소속된 단체에 보내는 요청, 다른 한 통은 마르크스에게 보내는 초대장이었다.

탁자 위에 서신을 펼친 마르크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내용을 읽어나갔다. 그러고는 엥겔스에게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면서 답하였다.

“자네 생각대로라면 개가 풀을 뜯어 먹다가 풀에 공격당한 것이군.”

“카를, 개가 풀을 뜯어 먹었으면 먹었지, 풀이 공격을 해?”

“농노들이 공산주의라는 사상에 오염되어 반란을 일으켰다더군.”

엥겔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마르크스의 손에서 서신을 빼앗았다. 마르크스는 모든 계층이 공산 혁명을 주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반면 엥겔스는 자본가이자 공장주로서 소작농이나 농민은 식물에 가까운 부류,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는 계층이라 생각하였다.

그 생각과 달리 서신에는 정말로 러시아 제국의 농노 반란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러시아 정부는 마르크스가 이 사상을 퍼트린 책임자로서 대책을 수립하라 권고하였다.

“이건 뭔……. 무슨 이유에서 주어진 환경에 만족할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켜?”

“나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야. 크림 전쟁에서는 러시아 제국이 훗날 산업화를 시작할 때 혁명을 폭발시키기 위해서 포로를 가르쳤지. 농민 혁명을 계획한 건 아니었는데.”

마르크스 또한 농민들이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 생각조차 못 하였다. 공산 혁명은 지식인과 각성한 자본가가 공장 노동자를 주축으로 이룩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엥겔스는 당장이라도 러시아 제국으로 달려가 이 기묘한 현상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절친한 친구인 마르크스가 잘못하면 러시아 제국에서 암살당할지도 몰랐다.

봉건제에 가까운 러시아 제국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친구의 표정을 읽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하였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이런 서신이 아닌 공문이나 공식 요청으로 압박을 할 거야. 이번 기회에 공산 혁명을 처음부터 확인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게 나을 것 같네.”

“그러다 암살이라도 당하면?”

“내 친구 중에 하원 의원이 스무 명이 넘는데 암살? 웃기는 소리 하는군.”

신 페인에 휴가 겸 러시아 출장 요청을 보낸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즉시 런던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마르크스와 인연을 맺은 의원들과 귀족들의 연판장을 작성하였다.

<저희 모두는 문학가 카를 마르크스가 러시아 궁정을 방문하기를 기원합니다. 그 위대한 궁궐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전 유럽에 전해지기를 빕니다.>

자신을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불똥이 튀길 것이라는 협박이나 마찬가지였다.

최고의 방패를 갖춘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하였다.

* * *

호화로운 상트페테르부르크행 유람선에 탑승한 둘은 차르를 만나기 전에 모든 준비를 갖추었다. 이 배는 영국으로 돌아온 이점버드 브루넬의 역작 중의 역작이라 모든 설비가 있었다.

“이게 자본의 맛이지!”

“그래 자본의 맛이야. 그나저나 나에게 줄 백 파운드를 유람선에서 써 버리다니.”

마르크스는 보름간의 항해를 마음껏 즐겼다. 선실 내부에 있는 무도회장에서 귀부인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신사들과 인사를 나누며 돈을 펑펑 써댔다.

급기야 도착 사흘 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미리 사람을 보내 이발사를 고용하였다. 둘 다 의자에 앉아 머리와 수염을 정돈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프리드리히 자네는 농민 봉기가 일어나지 못한다 생각하지만 나는 달라. 농민 봉기를 통한 정권 수립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라니까.”

“오호, 불가능한 것이 아니고 안 되는 일이라?”

“이미 선례가 있네. 중국의 통일 국가를 건국하고 절대 왕정을 구축한 유방은 지방 농민이 봉기에 성공하여 정권을 수립한 사례라네. 여기에 또 다른 사례도 많지.”

동양 역사를 연구한 마르크스는 이러한 내용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러고는 공산주의가 가진 가장 큰 약점을 거론하였다.

“결국 아무런 배경도 없이 일어난 혁명은 기존의 자본가를 흡수하여 더욱 거대한 독재 자본가를 만들어내지. 이것이 동양에서는 황제라고 불리고 있다네.”

“그래서 카를 자네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라 말하였군.”

“뭐 아예 안 될 일은 아니지. 기존 지방 자본가를 철저히 견제하여 수립된 정부가 권위를 독점하지 않고 모두가 공유하면 이론상 제대로 돌아가기는 할 거라네.”

“이론상의 일이지. 어디까지나 이론상의 일이야.”

배는 마침내 상트페테르부르크 항구에 정박하였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러시아 헌병들이 둘을 에워싸다시피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프로이센 출신이신 카를 마르크스 맞습니까?”

“맞소. 지금은 영국의 아일랜드 지방에서 거주하고 있고 이런 일을 하고 있지.”

마르크스는 묘한 분위기를 느끼자마자 신문 편집자 명함과 신 페인 소속 명함, 그리고 영국의 저명한 인사들이 작성한 연판장을 건넸다.

헌병은 이 서류들을 모두 확인하고 마르크스를 노려보았다. 손끝 하나라도 잘못 대는 순간 러시아 제국에 수많은 항의서가 제출될 것이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차르께서 농노들의 반란 사태에 대한 의견을 묻고 싶어 하시는데 이미 진압되었소?”

“진압은커녕 보고된 봉기가 천 건에 달할 정도로 빗발칩니다.”

“그러면 어서 차르를 알현해야겠구려. 서둘러 안내해 주시오.”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유들유들한 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서류가 없이 혼자 방문하였다면 개머리판을 두드려 맞고 반송장 몰골이 되었으리라.

모든 과정은 신속하게 처리되었다. 가벼운 몸수색을 당하고 비밀경찰을 관리하는 내무 3과에 불려 나가 심문을 당하였다. 마르크스는 이 과정도 가볍게 통과하였다.

“카를 마르크스, 혹시 러시아에 서신을 보내 농노들의 반란 지령을 내렸는가?”

“제 활동이 너무 바빠서 모두에게 지령을 내릴 틈이 없었습니다. 한두 건 정도라면 제 손으로 어떻게 해보겠는데 그 많은 지령을 러시아 전역에 보낸다니요?”

현 사태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병력은 헌병이며, 다음으로 큰 피해를 입은 부서는 비밀경찰을 담당하는 내무 3과였다.

직원들은 마르크스의 손톱을 뽑아 고문을 하려고 집게를 딸깍거리다 그의 인맥에 주눅이 들었다. 결국 그들은 몇 차례 압박을 가한 다음 감시를 붙여두기만 하였다.

마침내 저녁이 될 무렵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차르 알렉산드르 2세를 알현하였다. 며칠 동안 밤을 지새운 알렉산드르 2세는 마르크스를 말도 없이 계속 노려보았다.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마르크스는 화려한 내부 시설에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인맥을 통해 방문한 영국의 궁전과 비교하면 천박할 정도의 화려함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이 궁정에 쓰이는 장식의 일부만 팔아치워도 이번 반란을 돈으로 구매해 병사로 바꿀 수 있으리라.

그런 생각을 할 무렵 알렉산드르 2세의 입이 열렸다.

“프로이센에서 망명한 주제에 독버섯을 사방에 키워냈군. 짐의 암살을 모의한 역도를 삼백 명이나 키워내고 수많은 이들을 공산주의라는 사상으로 오염시키다니.”

“암살을 모의한 삼백 명의 역도라 하셨습니까? 저는 부당한 상황에 저항하라는 말을 하였지 사람을 암살하라는 말 따위는 한 적도 없습니다.”

오히려 마르크스가 황당해하였다. 그는 사람들을 가르칠 때 ‘멋대로 자본가를 암살하면 순교자가 된다.’라는 말을 몇 번이고 하였다.

암살자가 한두 명 정도라면 모르겠는데 삼백 명이라는 숫자가 말이 안 되었다. 마르크스를 계속 노려본 알렉산드르 2세는 주먹으로 의자 손잡이를 후려치고는 고함을 쳤다.

“네가 가르친 놈들이 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올라와 암살을 기도하였는데!”

“더욱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암살을 하는데 삼백 명이 필요할 리가요! 소규모 집단으로 라이플이나 폭탄을 사용해 목표만 제거하고 도주하는 편이 확실한데요.”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서로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쯤 되면 암살 모의가 아닌 역모나 쿠데타를 준비하는 수준에 가깝다.

그러나 비밀경찰이 주축이 된 3과의 보고를 믿고 있는 알렉산드르 2세는 역으로 화를 내며 삿대질을 하였다.

“처음에는 암살 모의를 하다 무장봉기로 변경하였지. 각자 목을 칠 수 있는 거대한 도끼를 짊어지고 짐이 지나갈 겨울 궁전 앞의 광장을 점거하였다더군.”

마르크스의 두뇌는 알렉산드르 2세의 발언을 수용하다 정지해 버렸다. 한동안 마르크스가 침묵하자 알렉산드르 2세는 다시 분통을 터트리며 윽박질렀다.

“이런 흉악한 행위를 가르친 것이 너라는 증언도 들어왔다!”

“도끼를 짊어지고 광장을 점거하였다면 지부상소 아닙니까!”

“지부…… 상소?”

“그렇습니다! 동양의 풍습이자 군주에게 자신의 목숨을 걸고 올리는 충언입니다!”

마르크스는 지부상소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하였다. 그러나 비밀경찰을 지휘하는 참모총장 바실리에비치가 역으로 성을 내었다.

“웃기지 마라! 녀석들의 소지품에서 머스킷과 단검을 비롯한 흉기가 발견되었다!”

“그러면 수도 헌병대에서 잡지 못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또한 흉기의 출처는 확인하였습니까? 대체 어디서 가져온 겁니까?”

“마을 주민들의 자금 지원을 받아서 흉기를 마련했더군.”

“그 말씀 잘 들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의 자금 지원? 러시아의 농노들이 얼마나 굶주리면서 살아오는데 무기를 구매할 여유 자금을 보냅니까! 여비면 모르겠지요!”

마르크스는 여과 없이 분노를 터트리며 상대를 몰아세웠다. 결국 비밀경찰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멋대로 사람을 죽여 터져 나온 결과물이 이 혁명이었다.

한편 희망적인 면도 볼 수 있었다. 알렉산드르 2세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적절한 보상을 내리고 농노 해방령을 개선하면 사태를 수습할 수 있다.

이 정도로 대처해도 러시아 농노들은 불만을 가지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가리라.

그러나 알렉산드르 2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대처가 과격한 점은 인정하지. 모두 다 시베리아 유형을 보내야 하는데 사형을 시키다니.”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정책을 수정해 달라는 요청을 했는데 유형이라니요?”

“카를 마르크스, 자네가 해야 할 일은 농민 봉기의 분쇄 방안 마련이지 국가 정책에 대한 논의가 아니야.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모두 시베리아 유형을 선고했을 걸세.”

마르크스는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입을 벙끗거리며 알렉산드르 2세를 노려보았다. 300여 명이 지부상소를 할 정도의 정책이라면 어딘가 잘못된 정책이리라.

그러나 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어떠한 대화도 논하지 않고 오로지 권위를 앞세우기만 하였다. 알렉산드르 2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예 못을 박아 넣었다.

“농노 해방 정책의 골조를 수정할 생각도 없어. 항의하는 자는 모조리 시베리아 유형에 처할 걸세. 만약 짐의 군대 앞에 굴복하지 않으면 모조리 사형에 처할 예정이고.”

“그러면 농민 반란을 어떻게 막으려는 생각입니까!”

“자네가 의견을 제시해야지. 아니 하면 자네의 체면도 말이 아니게 될 텐데?”

차르의 일방적인 선언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발을 동동 구르며 회견장에서 반강제로 끌려 나왔다. 그들은 보름 이내에 합리적인 의견을 내놓으라는 통첩을 받았다.

“이 사태를 어떻게 막아!”

마르크스도 엥겔스도 이 사태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어느 정도 설득을 할 수 있더라도 지부상소를 사형으로 답한 지금 상황에서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리라.

둘 다 겨울궁전에 배정된 호화로운 객실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저 강의를 했을 뿐인데 최소 수십만 명에 달하는 러시아인들의 목숨을 짊어지게 된 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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