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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239화 (222/345)

239화

20장 6화 이등박문

지난 크림전쟁 당시 사쓰마 번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협력을 기대하였다. 그 협력의 첫 단계는 제법 놀랍게도 사관학교 예비 인원의 파견이었다.

기껏해야 장교 몇 명을 가르칠 줄 알았는데 사쓰마 번에서만 후보생을 120명이 넘게 파견하였다. 여기에 이 후보생들을 참관할 인사 80여 명이 따로 배정되었다.

이 규모면 나름 중요한 일이라 외부와 군부 양 부서가 일본에서 파견된 대표를 맞이하였다.

자신을 사쓰마 지역의 하원의원이라고 밝힌 대표는 일본 상원에 있는 귀족 함께 한양으로 올라왔다.

그는 팔에 부목과 붕대를 감고 이마에 혹을 하나 달아놓은 채로 보고를 하였다.

“……이상과 같이 하원의회에서 안건이 통과되었고 상원에서 최종 허가가 내려왔습니다.”

“첫 의제부터 제법 놀라운 일을 하였군요. 백이십 명에 달하는 예비 사관생도 파견이라.”

“처음에는 이백여 명을 교육시켰으나 자질이 부족한 이, 수업을 못 따라오는 이 그리고 부상을 입거나 병든 이를 제외하여 고르고 고른 인원입니다.”

나름 놀라운 일이다. 대한제국이 군사적 유학을 보낼 때 30명으로 시작하였는데 일본은 그 4배에 달하는 120명의 인원을 욱여넣게 되었다.

물론 군부 인사들은 여러 대화를 나누고는 이 제안의 실효성에 대해 논의하였다.

“혹시나 예산을 허위로 받아내려는 행동일지도 모릅니다. 어중이떠중이를 모아서 파견했을지도 모르지요.”

“신상명세는 잘 작성했군요. 적어도 어중이떠중이는 아닌 것 같습니다.”

놀랍게도 사쓰마는 개개인의 가정사나 신체 특징과 같은 세세한 서류를 작성하여 보내주었다.

모두가 서류를 몇 개씩 확인하더니 올바로 작성하였다며 칭찬을 하였다.

물론 서류에 허점이 없다는 말이지 대놓고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군부에서 서로 대화를 끝내고 군부대신 이응식이 대표로 질문을 시작하였다.

“이 대한의 사관학교 정원이 한 해에 일백오십 명에 불과하다네. 전쟁과 같은 비상 상황을 감안할 경우에도 삼백여 명을 교육시키는 것이 전부인데 어찌하면 좋겠나.”

“가급적이면 모두를 가르쳐 주셨으면 합니다.”

“불가하네. 아무리 일본에서 건너와 여러 가지 사항을 눈감아 주려 하여도 이 나라의 생도들이 어떻게 보겠나?”

지금 사관학교의 경쟁률은 4:1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인이 제대로 된 시험을 거치지도 않고 합격 판정을 받으면 말이 나오게 마련이지.

소규모 유학생이면 그냥 가르쳐도 되지만 120명에 달하는 인원이 문제이다.

이응식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반대를 계속해서 내가 끼어들게 되었다.

“제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를 가르치느니 고려 시절의 빈공과(賓貢科 - 외국인 대상 과거)처럼 서로를 경쟁시켜 절반 이상을 탈락시키도록 하지요.”

“그건 괜찮은 생각이로군. 외부대신이 이런 옛 방식을 떠올릴 줄은 몰랐는데.”

“최종적으로는 절반 이하의 인원을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합니다.”

사쓰마 번의 의원은 손사래를 치면서 반대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응식은 눈을 내리깔고 딱 잘라 말하였다.

“어설픈 장교를 육성하면 이 나라의 격은 물론 일본의 군대도 격이 떨어지게 마련이야. 첫 단추부터 제대로 끼워야 옷을 입을 수 있지 않나.”

가르치는 입장도 배우는 입장도 생각한 대답이었다. 그러자 일본 측의 사람들은 어떻게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거의 애원하다시피 말하였다.

“옳은 말씀입니다. 부탁드릴 것이 있으니 각 대신님들이 시일을 내어 시험 이전에 면접이라도 한 번 보아서 이들의 면모를 확인하고 대화를 나누어주시길 바랍니다.”

“입학이 확정된 사람도 아닌데 굳이 볼 필요가 있는가?”

“이 년 동안 온갖 고생을 하여 군사의 길에 매진한 젊은이들입니다. 이들이 시험에서 낙방하게 되면 기력이 쇠하고 마음이 꺾일 것 같군요.”

일본에서 보내올 예정인 사관생도의 연령은 평균 16세이다. 이들은 한창 아편이 큐슈에 퍼져나갈 때 어린 시절을 보낸 자들이다.

자신의 집안이 몰락하거나 가족들이 폐인이 되는 상황을 온몸으로 체험한 이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시험 한 번에 탈락하면 앙금이 남게 마련이지. 그러니 높으신 양반을 한 번 만나서 대화를 나누어볼 기회라도 제공하라는 말이다.

물론 이응식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 일을 떠넘기려 하였다.

“한 명당 오 분의 시간을 할애해도 열 시간이 넘게 걸리지 않는가. 하물며 대화를 조금이라도 나누어 보려면 십 분은 걸리게 마련, 열흘 내내 입이 부르트게 말만 해야겠군.”

“저는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 나라에서 교육을 받으려면 어휘에 능숙해야 하는 법. 첫 단계에서 가부(可否)를 결정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필요한 일이긴 하나 잘못하면 입학고사에서 사심이 들어갈지도 모르겠군. 면접 건은 자네와 외부에서 전담하는 것이 나은 것 같은데?”

“마땅히 제가 하여야지요.”

이응식은 후련한 표정으로 효명제에게 올릴 서류를 작성하였다.

효명제는 며칠 뒤 정식으로 이 서류를 결재하여 일본 사관생도의 입학시험 응시를 허가하게 되었다.

이후 며칠 뒤, 이 소식이 전달되었는지 은찬이가 저녁에 내 방문을 두드렸다.

“아버지,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들어오도록 하여라.”

녀석은 어느새 군살이 쏙 빠지고 겨울 추위에 시달려 예전 군대에 있을 때 내 외모와 흡사하게 변했다.

은찬이가 말을 하지 않아서 일단 녀석을 칭찬해 주었다.

“군문에 발을 들일 준비를 하니 어떠하더냐. 고생이 제법 많은 것 같던데 괜찮으냐.”

“이 나라가 발전하여 백성이 나아진 결과 소자(小子)가 고난을 겪게 된 것이 아닙니까.”

한마디로 고생이 심한데 어쩔 수 없다는 말이로군. 예상대로의 일이라 팔짱을 끼고 가만히 있자니 녀석이 우물쭈물거리면서 엉뚱한 말을 하였다.

“요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일본인들이 사관학교에 입학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소문이 빠르게 퍼진 것 같구나. 그게 무슨 문제라도 되더냐?”

“이들이 사관학교 입학 교육을 받으면 당연히 옛 군문에 속한 이들에게 받을 터. 그리되면 새 교육이 아닌 첫 교육부터 반복해서 배울 것 같습니다.”

녀석은 초반부의 가혹한 교육을 또 받을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물론 처음 한 달 동안의 혹독한 체력과 정신 교육은 내가 지시한 사항이었지.

녀석이 병사라면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누리게 여러 수를 썼으리라. 그러나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장교라면 마땅히 육체도, 정신도 온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여기의 녀석의 그 애매한 태도, 내가 닦아놓은 탄탄대로를 우회해서 달리려는 행동도 교정하려 했었고.

그 교정이 조금 틀려먹은 것 같았다. 녀석이 정말 군인의 길을 걸을 생각이라면 공정함을 위하여 일본인을 따로 교육시켜 달라고 청했으리라.

녀석은 생각이 깊은 편이지만 아직 사람의 심리는 읽지 못하고 있다. 그 경험도 쌓게 해줄 겸 잠시 생각을 정리한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내가 조금 손을 써보겠다.”

“정말 감사합니다! 소자가 아버지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손을 써서 예전 교육을 이수하지는 않게 하겠다. 대신 귀찮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구나.”

“귀찮음이 있어도 새 학문을 계속 익힐 수 있다면 상관없습니다.”

아직도 근육통에 시달리는 녀석은 벌떡 일어나 인사를 올리려다가 주춤거리며 천천히 인사를 올렸다. 은찬이가 방 밖으로 사라지자 저절로 서류에 눈이 돌아갔다.

녀석의 정신머리를 바로잡기 위해 가장 극단적인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는 일본 예비 생도를 붙여주면 충분하겠지.

“아래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을 정도는 되어야, 최소한 통제는 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장교 아니겠느냐.”

밖에서 우당탕 소리가 났는데 은찬이가 본능적으로 소름이 돋아서 바닥에 자빠진 것 같았다. 자식을 제대로 키우려는 부모의 마음으로 은찬이를 위해 최악의 상대를 마련해 줘야겠다.

이윽고 보름이 지난 1856년 2월 초순, 인천항을 통하여 사쓰마 번의 예비 사관생도 120명이 입항하였다. 이들은 한양 외곽에 숙소를 마련하고 하나둘씩 내 집무실로 불려왔다.

“제, 제 일 번 예비생도 가쿠이(逆井) 도착하였습니다!”

“자리에 앉도록. 그나저나 이 나라의 말을 제법 잘하는군.”

“많이 학습하였습니다. 어려웠습니다.”

열흘에 걸쳐 사관생도의 면접을 준비하고 꾸준히 진행하였다. 처음에는 청나라를 향한 원한을 가득 품고 있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복수심이 많이 사라져 있었다.

“혹여나 일본이 청나라와 전쟁을 벌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는가?”

“적을 바다에서 맞이하여 격퇴해 이 나라를 지킬 것입니다.”

“혹시나 청나라와 해안에서 교전을 벌이면 상륙작전을 할 생각은 없는가?”

“적진에 함부로 드나드는 것은 병법의 이치에 어긋난다고 봅니다.”

15분의 면접시간이 끝나고 적당히 점수를 매겼다. 언어, 태도 그리고 지식 세 분야로 어느 정도 옥석을 가렸는데 결과가 조금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청나라에 대한 원한보다는 출세가 우선이군. 하긴 출세의 길이 열리면 사람이 온순해지고 기가 꺾이기에 마련이지.”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었다. 미친개처럼 달려들어 상대를 물어뜯는 부류는 정말 극단적인 인생을 살거나 천성 자체가 뒤틀린 사람만 가능한 일이다.

대부분 무난한 사람들이라 은찬이에게 붙여줄 만한 극단적인 사람은 없었다. 일본에서 대한제국이 보기 편하게 ‘가나다’ 순서로 정리한 서류를 다시 뒤적였다.

“오늘부터 성씨가 이(伊) 씨로 내려왔네. 근데…….”

다음 면접을 볼 사람이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서류를 읽어 신상명세를 확인하는데 내 눈을 의심하였다.

“스오국 스카리촌 출신의 이등박문, 옛 이름은 하야시 리스케, 나이는 십육 세?”

이 인간이 이토 히로부미가 맞는지 모르겠다. 천운으로 이토 히로부미가 예비 사관생도가 되어도 이 인간은 심각한 결격사유를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방종하게 날뛰고 나이를 먹고서는 색욕(色慾)에 미쳐 사는 괴인이 되었지. 개인적 능력은 출중한데 사적 생활이 방탕하다 못하여 문제투성이다.

일단 만나볼 생각으로 헛기침을 하고 손짓을 하였다. 문이 열리고 이토 히로부미가 까까머리를 한 채로 면접을 보러 들어왔다.

“대한제국의 외무 업무를 총괄하시는 박 후작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놀랍게도 도게자가 아닌 한국식으로도 극진한 예법인 절을 올렸다.

내가 머뭇거리며 인사를 받자 녀석은 준비한 의자에 정자세로 앉아 각을 잡았다.

“왜 이리 예의를 과하게 표시하나?”

“대한제국이 저에게 은혜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제가 굶주릴 적에 곡식을 주어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으니 이는 부모의 은혜요! 스승의 은혜입니다!”

처음에는 점수를 따기 위한 찬사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녀석의 눈빛은 내가 보아온 사람들 가운데 손에 꼽힐 정도로 광기가 가득했다.

이런 눈빛은 논문심사에 세 번 떨어진 대학원생, 십만 대군을 모조리 말아먹은 팔기군 장수 그리고 보름 이상 야근을 하여 살기가 올라온 직원에게서나 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러 가지를 질문해 보았다. 그 질문 하나마다 주옥같은 답이 돌아왔다.

“태도를 보아하니 주변에서 괴짜 취급을 받을 것 같군, 교우관계는 어떠한가?”

“솔직히 말씀드려 엉망입니다! 그러나 제가 출세하여 더 높은 계급이 되면 문제가 없습니다!”

이미 교우관계가 파탄 나도 별문제가 없다 할 수준이라니 글러 먹었다. 조금 뜸을 들인 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혹여나 청나라 군대가 일본에 쳐들어오면 어떻게 하겠는가?”

“제 부하 병사들을 이끌고 명령을 받들어 최대한 많은 놈들을 도륙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최전선에 서서 칼을 부여잡고 적의 목을 치겠다는 말인가?”

“상관의 명령이 옳은 일이라면! 제가 배운 대한제국의 병법에 의거해 합당한 행동이면 초개같이 달려들어 적장의 목을 베어버릴 겁니다!”

기준점 자체가 글러 먹었다. 이놈의 기준점은 일본의 문화나 풍습이 아닌 대한제국의 가르침이다. 여기에 그 기반 또한 착실히 마련하였다.

말만 들으면 한국어를 최소 십 년 이상 익힌 사람 수준이다. 아마 그 뛰어난 머리로 필사적으로 한국어를 익혔겠지.

대체 어떻게 뒤틀리게 되었는지 몰라도 모든 정신세계가 오로지 대한제국 중심으로 재편성되었다. 이쯤 되면 명예 대한인 칭호를 줘도 충분하다.

조금 심도 있는 질문을 해 보니 대한제국의 제도, 사회 특징 심지어 문화까지 섭렵하였다.

이토 히로부미는 완벽할 정도로 ‘대한제국에 미친’ 놈이 되어버렸다. 녀석에게 한복을 입히고 한양 생활을 시키면 며칠 이내에 적응을 완료할 정도이다.

그 속에는 청나라에 대한 복수심과 대한제국에 대한 찬양이 반반씩 섞여 있었다. 이런 놈을 누가 키웠는지 몰라도 키우면서 고생 좀 했으리라.

“면접은 이만 마치겠네. 자네를 위해 내가 손을 좀 쓰도록 하지.”

“손이라니요! 저는 부정 입학을 생각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부정 입학이 아니고 자네와 서로 힘을 합치면 아주 좋을 만한 사람을 알고 있다네.”

이 녀석이야말로 은찬이에게 어울리는 전우이다.

이런 극단적인 사상을 가진 놈과 부대끼다 보면 정신을 차려서 참 군인이 되거나 군대를 때려치우거나 둘 중 하나겠지. 이 태도를 보아 하건대 모든 훈련을 완벽히 이수하고 타의 모범이 될 것도 확실하고.

마지막으로 이토 히로부미와 악수를 나누고 은근슬쩍 그의 배정 장소에 손을 대었다.

* * *

박은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일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박현상의 면접에서 탈락한 일본 생도는 총 20여 명, 나머지는 대한제국 청년들과 교육을 받게 되었다.

“금일부터 사관학교 입학 희망자들이 추가되었네. 일본에서 일백여 명에 달하는 예비 생도를 보내왔으며 이들이 이번 사관학교 시험에 함께 응시할 걸세.”

박은찬을 비롯한 젊은이들은 줄을 지어 들어오는 일본 출신 예비 생도를 보며 질겁하였다. 이미 혹독한 교육으로 30여 명의 예비생은 22명으로 줄어들었다.

이 청년들에게 22명의 일본 예비 생도가 배정되었다. 각 젊은이들의 이름이 호명되고 전우(戰友)라는 명목 하에 예비 생도가 하나씩 배정되었다.

“박은찬, 앞으로 나오게.”

평상시라면 서로를 자나 호로 부르지만 군대에서는 상명하복이 중심, 오로지 이름으로 불리기에 마련이었다. 박은찬이 단상 앞으로 나오자 작달막한 일본 생도가 그를 마주 보았다.

“이등박문 예비 생도가 자네의 전우일세. 이 나라의 습속이나 언어가 통하지 아니할 때 도와주도록 하고 언제나 전우를 보살피듯 잘 대해주게.”

박은찬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고 대열로 돌아왔다. 그의 뒤에서 그림자처럼 따라온 이토 히로부미는 눈에 핏발을 세우고 그의 면모를 뜯어보았다.

모든 배정이 끝나고 대한제국 생도들은 자신에게 배정된 전우와 인사를 나누었다.

박은찬도 심드렁한 표정으로 이토 히로부미에게 손을 건네며 인사를 하였다.

“나는 반남 박씨 가문의 은찬이며 자는 인훈(仁訓)일세. 이등박문이라 하였나?”

“그렇습니다! 박 인훈 형님을 친형님처럼 모시겠습니다!”

박은찬은 뭔가 어색한 기분을 느끼면서 이토 히로부미와 악수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이토 히로부미의 시선이 박은찬의 얼굴에 고정되었다.

“왜 내 얼굴을 그리 보는가?”

“혹여나 부친께서 대한제국의 외부대신이신 박 후작님이십니까?”

“그렇지. 그러고 보니 자네는 부친에게 면접을…….”

이토 히로부미는 갑자기 사지를 부들부들 떨더니 제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그러고는 미치광이처럼 주변 벌판을 질주하면서 괴성을 질렀다.

“끼야아아아앗호오오오오오오!”

일본 사관생도들은 미치광이를 본 듯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기행은 이미 일본 생도들 모두가 알고 있으며 교관들조차 포기할 수준이었다.

한참을 뛰어다니다 숨을 헐떡거리며 돌아온 이토 히로부미는 박은찬의 양손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몇 번이고 고개를 꾸벅이며 두서없이 말을 내뱉었다.

“제가형님의가르침을받은훌륭한생도가되어서사관학교에반드시입학하겠습니다! 졸업하게되면인훈형님에게보답을하겠습니다! 못하면할복하고시신을까마귀가쪼아먹게만들어서…….”

속사포 같은 말을 들은 박은찬은 속이 뒤틀리는 느낌을 받으며 가까스로 정신을 다잡았다. 그리고 정신없이 꿈틀거리는 이토 히로부미의 어깨를 부여잡고 외쳤다.

“자네 미쳤나!”

“아마도요! 제가 대한제국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다들 미쳤다 하던데요!”

이토 히로부미는 박현상의 가장 큰 선물을 받았다. 그의 아들을 보좌하고 함께 사관학교에 입학하여 참 군인이 되는 길을 마련해 준 것이라 생각하였다.

반면 박은찬은 이토 히로부미의 영롱한 눈동자, 대한제국에 대한 찬양으로 빛나는 눈동자를 보면서 이마를 감싸 쥐었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선물을 안겨주기는 하였다. 광기에 가까운 열정을 통제할 수 있다면 시험 합격은 물론 사관학교 생활도 어느 정도 편하게 지낼 수 있으리라.

그 통제 과정 자체가 문제였다. 장교가 되기 전부터 최악의 부하를 얻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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