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238화 (221/345)

238화

20장 5화 일본 의회

1854년 8월, 일본에서는 사쓰마 번의 협력을 시작으로 하원의원을 창설하기 시작하였다. 각 지역의 인구에 비례하여 의석을 배정하고 대표를 선정하였다.

아직 국민투표 개념은 없으며 첫 임기 5년 동안 각지의 명문가들이 의원을 대신하기로 하였다. 총 의석은 인구 15만 명당 의원 1명을 배정하여 241석에 이르렀다.

당연히 의회의 중심은 가장 많은 의석을 확보한 에도에 배정되었다. 상원의원의 일원이 된 쇼군을 대신하여 이이 나오스케가 첫 임기 동안 의장 직위를 담당하였다.

“여러분들 모두는 내년 양력 일월 십오 일을 시작으로 임기를 수행할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점검한 제반사항 모두를 숙지하시고 다른 의원님들에게 전달해 주십시오.”

이이 나오스케를 비롯한 막부 인사들은 철저한 준비를 하였다. 의사당 건설에 1년, 이외의 주변 시설 건설에 다시 3개월. 여기에 예비 의원들을 미리 불러와 미리 교육을 시켰다.

에도 외곽에 설치된 하원 의사당은 의원 기준 4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여기에 전담 경호 병력만 천여 명이 넘는 거대한 시설이었다.

안전을 대비하여 삼중 해자와 경비용 초소가 빼곡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내부 시찰을 마친 조슈 번 의원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수행원 제한과 호신용 무기 제한은…….”

“의회에서 폭력은 엄금입니다. 만약에 폭력사태가 일어났을 경우 의회를 전담 경호하는 병사들이 즉각 진압에 나설 겁니다.”

이이 나오스케는 의원들에게 새빨간 돌로 그어진 선을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각 단계별로 지켜야 할 일에 대해서 명백히 이야기하였다.

“첫선은 다른 의원이 입장할 때 후속 의원이 대기하는 선입니다, 두 번째 선은 호위무사의 무장을 해제하는 선이며, 세 번째 선은 최후 수색으로 의원의 무장을 해제하지요.”

“그러면 일상 생활용품을 제외한 물건들은 들여올 수 없다는 말이군요. 이해하였습니다.”

“뭐 굳이 따지자면 흉기가 딱 하나 있군요.”

의회 안에는 거의 유일하게 흉기로 쓰일 수 있는 물건이 있었다. 바로 대한제국에서 들여온 징이며 그 특유의 음색이 마음에 들어서 의사봉(議事棒)을 대신해 사용하기로 하였다.

이이 나오스케는 코앞으로 다가온 첫 의회 개회를 기대하며 꿈을 부풀렸다. 자신의 생각과 박현상의 권유대로 막부는 권력의 상당수를 가진 채 세력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제 의회를 잘 조율하여 막부의 권세를 대대손손 물려줄 기반을 마련하면 되리라.

그 부푼 기대와 함께 양력을 기준점으로 삼아 1856년 1월 15일, 첫 의회가 개최되었다.

웅장한 징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각지의 의원들이 순서대로 입장하였다. 의원 241명과 노령의 의원을 보좌하기 위한 수행원을 합쳐 총 320여 명의 인원이었다.

이들에게 배정된 호위무사들은 각기 팔짱을 낀 채 해자 가운데에서 대기하였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다시 징이 울리고 개회사가 시작되었다.

“일본의 하원이 마침내 개원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이 업적을 칭송하며…….”

적당한 개회사를 마치자 박수가 이어졌다. 첫 의회를 성공리에 개최한 기분에 더욱 당당해진 이이 나오스케는 각 번의 의견을 정리하고 취합하여 여러 의제를 투표에 올렸다.

“영국인의 광산개발에 대한 가쿠슈인 학자들의 시찰 요청이 통과되었습니다. 상원에 요청을 하여 흥선공(이하응)의 직접 방문을 요청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저희 사쓰마에서 의제를 내놓겠습니다. 얼마 전 저희 사쓰마에서 막부에 훈련용 군함을 제공한바, 대한제국을 통하여 제대로 된 장교 양성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겁니다.”

“그럼 대한의 말과 글을 배운 예비 장교가 필요하군요.”

각 번은 엉뚱한 의견에 난색을 표하였으나 사쓰마 번은 자신들의 희생, 장교 양성 비용에 대하여 논의하며 설득을 하였다.

최종적으로 사쓰마 번에서 120여 명의 예비 장교를, 다른 번에서는 80명의 참관인을 대한제국으로 보내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후 각 지역의 의원들이 순서대로 각 지역의 의제를 논의하였다. 두 시간에 달하는 논의가 끝나자 다음 단계로 상원에서 보낸 의제를 논할 차례가 되었다.

상원의원의 의제는 포괄적이며 의견을 묻는 것에 가까웠다. 대한제국의 모든 요소를 배워서 적용하려는 일본이다 보니 대한제국의 의무 교육 제도 또한 논의 사항이었다.

“다음 의제는 의무 교육의 도입 혹은 도입 과정에서 필요한 제반 사항에 대한 논의입니다. 이 의제는 귀족원에서 우리 하원으로 전달된 논의 사항이기도 하지요.”

“의무교육이라 함은 대한제국과 같이 모든 백성을 삼 년간 교육시킨다는 말씀이십니까?”

“바로 보셨습니다. 완전히 동일한 제도로 들여오는 것을 목표로 삼으라 하였습니다.”

각지의 하원의원들은 서로를 돌아보며 자신의 영지, 이제는 자신의 선거구가 될 지역의 현황을 점검하였다.

일본은 분명 많이 발전하였다. 기본적인 작물 생산량은 나우루에서 무제한적으로 공급되는 인산 비료로 확충되었으며 각종 학문과 기술을 대한제국을 통해 익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본래 역사처럼 진통을 겪지 않고 근대화를 꾸준히 추진하고 있었다. 그렇다 하여도 의무교육이 가능할 정도로 여유를 가진 지역이 흔치 않았다.

“일단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에도를 중심으로 삼은 아홉 선거구는 인구가 너무 증가하여 의무 교육이 불가능하다 단언하겠습니다.”

“저희 긴키(近畿 - 오사카와 그 일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자금력은 되는데 인적 자원이 너무 부족하여 방법이 없군요.”

“가능은 합니다만 원활한 도입을 위해서는 중앙 예산과 인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의무교육은 아직 일본 규모의 국가에서는 불가능한 과제였다. 그나마 몇몇 지방은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으나 가능성일 뿐 실제 적용하면 어떠한 문제가 발생할지 모른다.

“귀족원에서 내려온 의제 아닙니까. 적어도 몇 개 지역구는 시범 사업으로 적용해야겠군요.”

에도 의원 대표인 이이 나오스케는 난처한 표정으로 몇 개의 지역에 의무 교육을 실시할 의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원은 대놓고 반대 의사를 표시하였다.

“그 시범 사업에 허리가 휠 것 같습니다. 농사는 언제 짓고 공장은 언제 돌립니까?”

“그놈의 곡물지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대한의 곡물 지원 덕분에 농가에서 아이를 서넛씩 낳아서 줄줄이 키워냈지요. 조만간 일자리가 부족해질 지경 아닙니까?”

“행정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너무 높습니다. 일단 시기상조라 말씀드리겠습니다.”

결국 상원의 권고를 몇 년 뒤에 받아들이기로 암묵적인 합의를 보았다. 이 합의를 확실히 결정하기 위하여 거수투표를 실시하였다.

“표결에 들어가겠습니다. 의무교육의 즉각 도입에 찬성하시는 분은 손을 드십시오.”

이이 나오스케는 241명에 달하는 의원들 모두가 거부를 표시할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 기대와 달리 한쪽 구석에 있는 의원 여섯 명이 손을 꼿꼿이 올리고 있었다.

모두 다 사쓰마와 그 주변의 의원들이었다. 이이 나오스케가 헛기침을 몇 번이나 하였음에도 그들은 계속 손을 들고 있었다.

“즉…… 즉각 도입은 여섯 표, 이외의 방안 모색은 이백삼십오 표로 부결되었습니다.”

“의장님께 죄송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희 사쓰마 번에 시범 도입이 가능하겠습니까?”

모든 의원들이 점진적 도입 또는 각 지역별 차등 도입을 생각하고 있었다. 반면 사쓰마 번은 일본 특유의 문화, 서로 눈치를 보고 합의를 보는 음습한 문화를 완전히 무시하고 독선적으로 나섰다.

이이 나오스케도 사쓰마의 의지는 존중하나 그 눈치를 봐달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징을 울리려고 손을 더듬으며 답하였다.

“사쓰마 번 일대의 의지는 대단하나 상원에서 표결을 거친 다음에 고려하도록 합시다.”

“의장님이 옳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쓰마 번의 인력난이 가중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의무교육으로 인한 이득이 무엇인지가 궁금하군요. 혹시나 예산을 더 받아다 흉악한 수를 쓰려고 마음을 먹은 것 아닙니까?”

다른 지역은 뜯어말리는 수준에 불과하나 조슈 번 의원들은 대놓고 사쓰마 번을 비난하였다. 숨을 고른 사쓰마 번 의원 대표는 조슈 번 방향을 노려보며 엄중히 말하였다.

“흉악한 수라? 이 나라를 지키며 덴노와 의회를 위한 수이죠! 훌륭한 병사를 양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의무 교육을 도입하려 합니다!”

“왜 군대를 만들려 하시오! 지금 이 상황만 따져도 허리가 휠 지경인데!”

“바로 훈련도와 장비 그리고 명령의 이행입니다! 훈련은 맹렬히 시킬 수 있으며 장비는 사들일 수 있으나 명령을 이행하려면 글을 배우고 학문을 익혀야 합니다!”

탁자를 몇 번이고 내리친 사쓰마 번 대표는 눈을 부릅뜬 채 의원들을 돌아보았다. 자신들의 대업, 대한제국과 함께 청나라에 죄를 물을 징벌의 그 날을 위해 의무 교육이 필요했다.

“모든 백성들에게 의무 교육을 시키고! 모든 백성들에게 창칼을 들게 하여 적도를 무찌를 역량을 길러야 하며! 모든 백성들이 한 몸이 되어 적을 토벌해야 합니다!”

“그 미치광이 같은 짓거리를 왜 하나! 정신 나갔소!”

“의장님! 사쓰마 번 의원들에 대한 퇴장 투표를 실시해 주십시오!”

징을 울리는 대신 나무망치를 내리치는 소리가 들리자 모두가 침묵하였다. 사쓰마로 인한 분란을 억누르려는 듯 이이 나오스케는 점잖게 타이르려는 말투로 선언하였다.

“알겠소. 어느 정도 예산을 지원하여 사쓰마 번에 시범적으로 의무 교육을 실시하겠소.”

“의장님, 저희 조슈 번은 사쓰마 번의 의견에 반대합니다.”

이이 나오스케의 촌마게, 일본 특유의 머리 형태로 인해 드러난 광활한 이마에 힘줄이 두 개나 솟구쳤다. 고개를 돌리니 조슈 번의 의원들이 일어나 발언을 시작하였다.

“의무 교육의 방향성 자체가 문제입니다. 모든 백성이 창칼을 들고 한 몸이 되어 적을 토벌한다? 그 적이 누구겠습니까? 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사쓰마는 사이가 안 좋은 조슈라 하여도 적으로 삼을 생각은 없소.”

“뭐 말이야 잘하겠지요. 사쓰마가 저희 번에 아편을 대량으로 풀어서 경제가 파탄이 났다가 가까스로 봉합된 상황 아닙니까? 저희는 사쓰마를 못 믿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쓰마 번 의원들은 허리춤을 더듬으며 칼을 찾으려 하였다. 당연히 칼은 호위무사와 함께 의사당 바깥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조슈 번 의원들은 아예 코웃음을 치며 손을 팔랑거리더니 더욱 놀릴 생각으로 청산유수처럼 말을 내뱉었다.

“이미 각종 음습한 수단을 동원한 사쓰마입니다. 멋대로 배를 사들였다가 뒤늦게 훈련함으로 제공하지 않나, 멋대로 대한제국에 사람을 보내 장교를 만들자 제안하지 않나.”

“다 이유가 있었소. 이미 설명을 끝낸 바인데 왜 그리 트집을 잡으시오.”

“제가 보기에는 의무 교육을 통해 다른 교육도 할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양귀비 재배법이나 아편 가공법을 가르칠 것 같군…….”

사쓰마 번을 대표하는 늙은 의원은 옆의 정정한 청년을 가리키며 명령을 내렸다.

“노부요시(信義)! 쳐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쓰마 수행원 역할을 하던 청년이 자리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는 대나무 지팡이를 머리 위로 치켜든 채 탁자를 박차 조슈 번 방향으로 달려들었다.

“우리야아아아앗!”

대나무 지팡이의 정체는 안에 쇠몽둥이를 채운 흉기였다. 이 흉기가 허공을 가르고 조슈 번 의원의 머리에 내리 찍혔다.

단번에 머리 가죽이 벗겨지고 피가 솟구쳤다. 자리에 쓰러진 조슈 번 의원을 노려본 노부요시라는 수행원은 바로 다음 목표를 노리며 자세를 잡았다.

그 순간 조슈 번 의원은 오히려 상대의 품 안으로 뛰어들어 곰방대를 목젖에 찔러 넣었다. 목젖을 맞은 수행원이 고개를 숙이자 곰방대가 뒤통수에 내리찍혔다.

-터엉!

세차게 뒤통수에 내리 찍힌 곰방대는 쇳소리를 내면서 휘어버렸다. 조슈 번이 가져온 곰방대는 모두 다 무기로 쓸 수 있도록 쇠로 만들어낸 곰방대였다.

“조슈 번 놈들이 의장에 흉기를 가져왔다!”

“네놈들이야 말로 음습하게 지팡이를 흉기로 삼지 않았나!”

“뭘 하나! 놈들을 치지 않고!”

조슈 번 의원이 옆에 앉은 의원들에게 가담하기를 권유하였다. 운수 없게도 옆에 앉은 의원들은 대한제국과의 교역을 조슈 번에게 빼앗긴 이와미(현 돗토리 지방) 출신 의원이었다.

“지금 뭐? 네놈들이 아편을 못 막아서 우리도 간접 피해를 입었는데?”

“이야! 동래 경로의 교역을 다 처먹은 양반들이 우리 손이 필요하다네?

“그럼 손을 내드려야지! 네놈들 위패 만들 손!”

한 의원은 두텁고 길쭉한 팔토시를 벗어젖히고 안에 연적을 넣어 일종의 사슬추를 만들었다. 다른 의원은 팔찌에 결합한 장식을 엮어서 너클을 만들어내기까지 하였다.

근대화로 인한 충격과 일본 지배계층의 상호 불신이 난투극이라는 형태로 터져 나왔다. 평상시에 이득 분배에서 불만을 품은 의원들은 모든 원한을 토해냈다.

“평소에 꼴 같지도 않은 놈들이잖나! 이 기회에 서열 정리나 해보자!”

의회는 투쟁의 장소가 되었다. 모두 다 ‘자발적’으로 무기를 갖추었으며 서로를 보호하기 위한 준비를 마쳐 둔 상태였다.

사쓰마처럼 지팡이가 흉기가 되는 경우는 흔하고도 흔했다. 이미 수많은 의원들이 각지의 무술가, 또는 닌자로 불리는 이들과 협력하여 창의적인 흉기들을 만들어내었다.

간혹 준비가 미비한 불성실한 사람도 있었다. 이런 불성실한 사람들은 의자와 탁자를 방패로 삼아 시간을 벌고 의회 바닥판을 뜯어서 몽둥이로 삼았다.

“센다이 놈들은 개 패듯 패버려서 전병을 만들어야지!”

“시코쿠(四國) 촌놈들이 한 데에 뭉쳤다!”

“다들 진정하시오! 모두 퇴장! 퇴장하시오!”

이이 나오스케의 외침 따위는 들리지도 않았다. 심지어 한 무리의 의원들이 떼로 몰려와 의사봉(표결 망치)과 징을 가져가는 통에 바닥에 자빠져 버렸다.

청아한 징 소리와 나무로 만든 의사봉이 코뼈를 부러트리는 소리가 난투극에 기묘한 박자감을 부여하였다. 이 난투극 가운데 한 의원이 피칠갑이 된 손으로 무언가를 치켜들었다.

“야 이것들아! 이것은 연막탄이여!”

집단 구타를 당하고 있던 의원은 환약의 심지를 뽑아내 불을 붙였다. 폭음과 함께 거대한 연기가 일어나며 연무가 의사당 안을 가득 메웠다.

모두가 서로를 알아보지도 못한 채 집단 난투극을 벌였다. 이 혼란의 도가니에서 이이 나오스케는 두 개의 치아가 부러지고 눈이 시퍼렇게 멍든 채 가까스로 문을 박차고 나왔다.

“당장 진압 안 하고 뭘 해! 뭘 하고 있어!”

지금쯤이면 병사들이 말하지 않아도 달려들어 모두를 포승줄로 옭아매야 했다.

이이 나오스케는 허둥거리는 병사를 찾아 멱살을 잡고 말하였다.

“당장 진압군 불러! 병사들 부르라고!”

“밖에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각 번의 호위무사들끼리 난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창문을 열자 더욱 심한 난투극이 벌어졌다. 자신이 철저히 준비한 방어 체계는 만인의 투쟁 앞에 완벽히 무너졌다.

밖에서 거대한 사다리가 들어와 해자를 가로질렀다. 창고에서 무기를 꺼낸 무사들은 자신들의 애검을 사용하였고 다른 무사들은 밖에서 공수한 무기들로 맞상대를 하였다.

막부에서 파견한 호위 병력은 이 사이에 끼어서 서로를 지키는 데 전념하였다.

피가 솟구치고 사람의 사지가 마구 썰려 나갈 무렵, 가까스로 최후의 방어체계가 작동하였다.

-지금 신성한 의회에서 난동을 부리느냐!

천둥 벽력 같은 고함과 함께 저 멀리서 기마대가 난입하였다. 제아무리 기세등등한 검사라도 기병을 상대할 수는 없는 법이라 가까스로 길이 트이고 사태가 진정되었다.

일본에서 정식 개회한 하원 의원은 기마대의 돌입과 각 의원의 체포로 막을 내렸다. 의회 내부에서는 연막탄으로 인하여 난투극이 격화, 사망자 1명과 부상자 47명이 생겨났다

호위무사는 더욱 많은 수가 사망하여 총 16명이 싸늘한 시신이 되고 60여 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이이 나오스케는 수습이 끝나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그는 핏자국을 흙으로 덮고 부상자의 사지를 수습하는 작업이 한창 진행되는 의사당 앞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다.

“이 미친놈들이! 이게 의회냐! 이게 의회냐고!”

머나먼 훗날까지 ‘피의 의회’라 불리는 일본 의회의 악습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일본 의회는 개회할 때마다 최소 5명 이상의 사상자를 만들어내며 동방의 명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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