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19장 9화 전기 자동차(2)
동티단이 순조의 휘하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우연과 필연이 겹친 결과물이었다. 이들이 과도한 사적제재로 적발되어 심양성에 끌려오게 되었다.
수십여 명의 사람들이 심양성에 끌려와 재판 전 증언을 듣고 있었다.
마침 그 자리에 방문하였던 순조는 이들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물어보았다.
‘저들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 자리에 있는가?’
순조는 박현상과 조일준의 재판 이후 나름 법체계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양측에 세워놓고 재판을 진행하였으며 양측의 의견이 대립하였다.
-저들은 고장의 풍습을 어기고 시비를 거는 망종들이었습니다!
-시비를 건 것은 인정합니다! 그런데 야밤중에 집에 침입하고! 그것도 모자라 사람을 잡아가 구타하였습니다!
대한제국의 법률에 의거하면 사적재재는 중죄에 해당되었다. 한양 고위 관료조차도 노비였던 사람을 구타하였다가 엄청난 벌금을 물고 파직을 당하기까지 하였다.
당연히 동티단 간부들 모두가 10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을 위기에 처하였다.
그러나 전근대적 법률을 머릿속에 담고 있던 순조는 엉뚱한 판결을 내렸다.
‘저들은 방법이 잘못되었어도 엄연히 의기(意氣)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 방법을 내가 하나하나 알려 줄 것이니 죄를 사하여 주도록.’
태상황의 판결은 심양성을 거쳐 한양으로 향하고 다시 효명제를 비롯한 법부 관리들에게 심사를 받았다. 결국 ‘교화’ 명목으로 동티단을 순조가 관리하게 된 것이다.
순조의 명령 하에 집결된 동티단은 총 2,400여 명에 달하였다. 이들은 전기 사륜차의 기묘한 모습을 보며 어떤 일을 할지에 대해 염려 섞인 대화를 나누었다.
“지난번에는 쌍성자에 다녀와서 죽도록 고생했는데 이번에는 또 어디야.”
“몰라, 듣자 하니 요하 하구에서 기묘한 문제가 벌어졌다 하던데?”
“거기 영구(營口 - 현 잉커우 시) 근처겠지? 요하 하구면 기차는 타고 가겠지.”
“듣자 하니 거기서 서쪽이라 했어.”
다들 욕지거리가 저절로 나오고 있으나 속에서 꾹 눌러 참았다. 그들은 지난 팔 년 동안 순조에게 휘둘리며 요동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물론 가족들에게는 ‘나라의 일’을 하며 임시 관직에 올라 녹봉까지 받는 사람이라 하였다. 그러한 관직 생활이 어떠한 고통을 불러왔는지 서로 경험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오 년 전에는 호랑이 소탕을 실시한다면서 산에 들어가서 꽹과리를 쳤지.”
“육 년 전에는 수재가 일어난 곳에서 하루 종일 진흙을 퍼냈고.”
“칠 년 전에는 기근이 일어난 곳에 곡식을 나르면서 죽도록 고생했잖아!”
“그나마 얼마 전에는 좀 할 만한 일을 하지 않았나.”
한 동티단 신입이 그 말을 꺼내자마자 정강이에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상대가 고꾸라지자 고위 간부인 자는 멱살을 잡고 그를 일으켜 세우고 욕을 내뱉었다.
“네놈은 평범한 백성들을 만나서 다행이지! 나는 영길리 놈들에게 복수하겠다고 술을 먹고 산속을 날뛰는 사냥꾼들을 찾아서 죽을 고생을 했다!”
“아……. 죄송합니다.”
동티단 모두가 어떤 일을 경험할지 공포로 눈을 굴리는 사이 순조가 대열을 점검하였다. 곧이어 꿈에서도 들려오는 선전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티단 간부들은 모두 집결하시오!
순조의 말에 응하여 간부들이 움직였다. 이들은 동티단의 상징인 흰색 고깔을 변형한 하얀 고깔모자를 쓴 채 순조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렸다.
“태상황 폐하를 뵙사옵나이다!”
순조는 이들의 면모를 하나씩 살펴보았다. 태상황의 자리라 제대로 된 관직을 내릴 수 없으나 자신 나름대로 관직과 품계를 설정하여 동티단의 체계를 맘대로 뒤바꿔놓았다.
“이토록 많이 집결하니 참으로 마음이 놓이는군. 호 대사마(大司馬 - 한나라 관직, 천자를 보좌하는 최고 관직 중 하나)가 일을 잘 처리하였어.”
“신은 그저 태상황 폐하의 명을 받들어 모두에게 사실을 전하였을 뿐이옵나이다.”
동티단을 처음 창설하고 한때 최고 간부 자리까지 오른 호 서방은 순조가 내린 대사마 작위를 받게 되었다. 당연히 이름만 있는 관직에 불과하였다.
녹봉조차도 조선시대 영의정 수준, 매년 쌀 100석에 불과하였으며 대부분 업무 보조로 소모하는 바람에 입에 풀칠을 할 수준이었다.
순조는 다른 간부를 보며 말하였다.
“알아서 일하니 얼마나 좋은가. 이 황합주부(黃閤主簿 - 한나라 관직, 사무 전담)는 이미 이야기를 다 마쳐 두었으니 그에 따른 준비를 하였는가?”
“모든 이들이 움직일 때를 대비하여 식량과 자금을 준비하였나이다. 명을 내려주시옵소서!”
“명을 내리겠다. 요하 하구에 불온한 일이 일어나 이를 해결하려 한다. 내가 친히 새 어가(御駕)를 타고 나아갈 것이니 너희는 나와 함께 움직이도록 하라.”
“어가라 하셨사옵니까? 저 물건이 어가라니 믿기지 않사옵니다.”
순조는 전기 사륜차로 다가가 이를 쓰다듬었다. 현대의 버기카(Buggy Car)와 흡사한 형태, 바퀴가 거대하고 상부에는 운전자 보호를 위한 프레임만 장착된 차량이었다.
물론 이 시대의 부족한 기술력으로 인해 중량이 지나치게 무겁고 모터의 출력이 부족하였다.
순조는 자신 전용으로 마련된 전기차를 쓰다듬으며 말하였다.
“이 차는 축전지만 갈아 끼우면 알아서 움직이는 차이다. 직접 보거라!”
순조가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보조석에 앉아 시트의 안전벨트를 매고 혹시나 모를 사고에 대비하여 철모를 장착하였다. 곧이어 엔진이 가동되고 차가 천천히 움직였다.
“이건 또 뭐야……. 굼벵이 기어가는 속도인데?”
“그냥 가마가 나은 것 아닐까?”
동티단 모두가 이 물건의 효용성에 대해 염려를 표시하였다. 그러건 말건 순조는 처음으로 사람 앞에서 어가에 오른 기분을 즐기며 전기차를 이리저리 움직이게 했다.
이윽고 한참을 즐긴 순조가 손짓을 하였다. 그러자 선전관과 동티단이 반란을 일으킬 때를 대비해 배치된 병력들이 우렁찬 고함을 질렀다.
“모두 일어서라! 태상황 폐하의 어가를 따라 이동한다!”
“잠시만! 기차역이 코앞인데 왜 반대 방향으로 가십니까?”
선전관은 동티단 대표인 호 서방의 이야기를 듣고 눈을 질끈 감고 분노를 삭였다. 그리고는 호 서방에게 목소리를 낮추어 말하였다.
“나도 기차를 타고 다니는 것을 원하고 있으나 태상황 폐하께서 원치 않으시네. 그러니 반금(盤錦 - 현 핀잔 시)까지 걸어서 이동한다.”
“가기까지 가는데 사백 리(160㎞)가 넘는 거리인뎁쇼!”
“그나마 평지니까 갈 만하지 않겠나. 어서 움직이지 않고 뭘 하나!”
동티단의 고난은 이제 시작이었다. 반금 일대까지 이동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나 그놈의 전기 자동차에서 소모되는 축전지가 문제였다.
사람이 걷는 속도보다 조금 빠른 전기 자동차가 순조를 태우고 대열 선두에서 덜덜거리며 움직였다. 그 뒤로 동티단이 따라붙어 주기적으로 납축전지를 교체하였다.
“지금부터 충전을 시작한다! 이 손잡이를 네 명이서 잡고 움직이도록!”
“이거 움직이기는 하는 물건입니까?”
30분 주기로 2개씩 소모되는 납축전지를 충전하는 것 또한 동티단의 일이었다. 그들은 너무나 뻑뻑하여 잘 돌아가지 않는 크랭크를 잡고 팔이 끊어져라 교대하며 충전을 실시했다.
더 큰 문제는 최대로 돌려도 충전에 4시간 이상이 걸렸다. 팔이 끊어져라 충전을 하는 동안 대열은 저 머나먼 앞으로, 약 20㎞ 거리로 멀어져 있었다.
“교대로 움직인다! 가마에 축전지를 올리고 뛰어!”
“이러다 사람 다 죽겠습니다!”
“차라리 태상황 폐하를 올린 어가를 짊어지는 것이 훨씬 더 쉬울 것 같은데요!”
호 서방 또한 대사마의 직책이고 뭐고 크랭크를 돌리고 가마를 들었다. 자신의 피 같은 녹봉을 퍼부어 마차를 대절하였는데 며칠 뒤에나 올 거라 하였다.
마침내 엿새가 지나고 호 서방이 부른 마차가 동티단에게 도착할 무렵 대열이 반금에 도착하였다.
순조는 그동안 온갖 고생을 한 전기 사륜차를 어루만지며 말하였다.
“훌륭한 물건이야. 엉덩이가 아프지도 않고 안전하니 외장을 개수하여 장식을 달면 되겠군.”
“실로 웅장한 물건이 될 것 같사옵니다. 온 세상의 왕들이 이 어가를 본떠 새로운 차량을 만들어 타고 다닐 것이 분명하옵니다.”
“그야 당연한 일이로다. 내 재산을 털어 청나라에 한 대 선물해도 될 것 같구나.”
모두가 전기 자동차의 운용 방식에 질겁하였으나 순조는 이런 자동차를 200대 정도 타고 다녀도 돈이 남는 사람이었다.
순조는 연구원을 만나기 전 지엄한 황명을 내렸다.
“축전지는 널리 쓸 수 있는 물건이니 내 재산을 헐어 곳곳에 최소 오십 리 간격으로 증기기관과 발전기를 마련하라. 전기 사륜차가 아니더라도 각종 물건을 충전할 수 있을 것이다.”
순조는 늪지를 만나 더 이상 이동하지 못 하는 전기자동차의 보수 명령을 내리고 문제가 벌어지는 장소로 향하였다. 그동안 연구원들이 미리 모든 준비를 갖추었다.
마침내 순조가 도착하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백성들이 고개를 조아리며 인사를 올렸다.
순조는 이들을 위무(慰撫)한 이후 연구원들에게 질문을 하였다.
“백성들이 고통을 겪는 이유가 무엇인가?”
“근래에 들어 요하 일대가 여러 방식으로 개간되었사옵니다. 이로 인하여 물골이 여럿 생겨나며 땅속에 잠들어 있던 석유(石油)가 다량으로 용출되었사옵니다.”
“석유(碩儒 - 위대한 선비)라 하였느냐?”
“아니옵니다. 다른 장소에서 캐온 것이나 직접 석유를 보여드릴 수 있게 챙겨왔사옵니다.”
유리병 속에 담긴 석유는 바쿠 유전에서 채취한 물건이었다. 순조는 시커먼 물질이 가득한 유리병의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자마자 헛구역질을 하였다.
“역하기로는 역청이나 고약보다 더한 물건이로구나.”
“실로 그러하옵나이다. 이 석유가 이미 요하를 따라 퍼져나가…….”
여러 피해 보고가 순조에게 들어왔다. 간혹 논밭에 석유가 흘러들어 역한 냄새로 농토를 못 쓰게 되었다는 보고도 있었으며 염전에 석유 성분이 흘러들어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나 이 또한 백성이 화를 입은 일이로구나. 그러하면 동티단을 시켜 석유라는 물건이 새어 나오지 못 하게 막아야 하겠구나.”
순조는 흙으로 석유가 용출되는 장소를 덮으려 하였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동티단 간부들도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일이 쉬워질 거라 생각하였다.
반면 연구진이 보기에 흙으로 석유를 막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였다. 더군다나 조일준은 석유를 ‘캐내는’ 것을 부탁해서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순조에게 제시하였다.
“땅속에서 솟구치는 석유를 틀어막으면 종기를 고름이 남은 채 꿰매는 격이옵니다.”
“종기를 고름이 남은 채 꿰맨다니. 무슨 말이더냐.”
“언젠가는 틀어막은 곳을 우회하거나 덮어버린 흙 자체를 뚫고 용출될 것이옵니다. 설령 인공석분(시멘트)로 둑을 쌓아도 같은 일이 언젠가 벌어질 것이옵나이다.”
순조는 기억을 더듬어 어린 시절에 벌어졌던 일을 떠올렸다. 그의 아버지 정조는 자신감이 넘치고 능력이 출중하나 과도할 정도로 자신의 의견을 밀어붙이는 사람이었다.
정조는 지병인 종기가 심해지자 여러 처방을 바꿔가며 사용하다 결국 화를 입었다.
순조는 그 아픈 기억으로 솟구친 화를 눌러 삼키고 의견을 내놓은 연구원의 손을 잡고 말하였다.
“네 말이 맞구나. 그러하면 해결책이 무엇이더냐?”
화를 내는 것은 일이 틀어진 다음 내어도 되었다. 연구원은 순조의 요청에 자신이 세운 석유 채취 및 유출 방지 계획을 이야기하였다.
“우선 석유가 용출되는 곳을 파내고 계속 채취해야 하옵니다. 그리하면 더 이상 밖으로 새어나가는 석유가 없을 것이나 채취 과정에서 새어나가는 석유가 있사옵니다.”
“그 새어나가는 석유는 어찌 막아낼 것이냐.”
“땅을 열 보(12m) 이상, 가급적 열다섯 보를 넘게 파내고 인공석분으로 둑을 쌓으면 어느 정도는 막아낼 수 있사옵니다. 다만 그 아래로 스며드는 석유는 막을 수 없사옵니다.”
순조는 연구원이 제출한 서류를 확인하여 첨부된 개념 도면을 바라보았다. 모든 석유를 막을 수 없더라도 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안이었다.
물론 이 일 자체가 수천 명 단위의 인력이 들어가는 대공사였다. 동티단 전원이 한 달 내내 삽을 놀려야 어느 정도 성과를 볼 규모였다.
“대공사로구나. 이 허허벌판 어디엔가 솟구치는 석유의 유맥(油脈)을 찾고. 그 유맥의 근본까지 파낸 다음 주변을 모두 헤집어 땅속에 둑을 쌓는다는 말 아니더냐.”
동티단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으나 순조는 입술을 씹고 고개를 끄덕이며 해 볼만 한 일이라 판단하였다. 그는 뒤로 돌아 동티단 간부들에게 공언하였다.
“석유라는 물건을 지금 해결하지 못한다면 점점 더 퍼져나가며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할 것이다. 후일 손자, 증손자의 대가 되면 이 벌판 전체가 침습될지도 모르지 않더냐.”
“하오나 위를 틀어막으면 언젠가 후손들이 막아낼 것이옵니다!”
호 서방의 조언을 들은 순조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거절하였다.
종기에 비유한 순간부터 이 석유라는 물건은 반드시 뿌리를 뽑아내야 하는 해악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니 된다, 우리가 위를 틀어막아 해결책을 찾지 못한 후손들이 더 크게 틀어막을 것이라 생각해 본 적은 없더냐? 누대에 걸쳐 이 해악을 전달할 셈이더냐!”
동티단이 휴식을 취하고 순조가 머무를 수 있는 관아를 정리하는 사이, 연구원들은 마침내 석유가 유출되는 근본을 찾아내 사람들을 안내하였다.
요하 인근의 한 벌판, 자그마한 물길이 흐르는 장소 인근은 수풀이 말라죽고 석유 특유의 악취가 미세하게 느껴졌다.
채취한 흙을 대량의 물에 녹이자 물 위에 기름띠가 더욱 크게 나타났다. 순조는 드디어 원흉을 찾아내 다행이라며 치하한 다음 벌판을 노려보고 말하였다.
“이 땅 어느 곳인지 몰라도 땅속에서 유맥이 흐른다는 말이로구나.”
“하오나 어느 위치인지 찾을 방안이 없사옵니다. 그러하니 이 방안을 도입해 주시옵소서.”
대표인 강성준 연구원은 석유 채취 계획서를 보여주었다. 첫 작업은 일대의 토지를 밭 전(田) 형태로 폭 2m, 깊이로 2m를 파내서 시료를 채취하는 작업이었다.
이 과정에서 석유가 많은 장소를 발견하면 더 좁은 범위를 더 깊이 파내는 방식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워낙 넓은 벌판이라 한 변의 길이가 0.5km가 넘어간다는 점이었다.
순조는 눈을 깜빡거리며 도면을 확인하였다. 자신이 정벌하고 자주 머무르는 심양성 해자를 세 개 이상 파내는 수준의 거대 토목 공사이었다.
“이걸 동티단이 할 수 있을지 궁금하구나. 더군다나 한 달이 지나면 장마가 시작되는데.”
“그러하니 모든 작업을 한 달 이내에 마쳐야 하옵나이다. 이는 첫 단계 작업이며 다음 작업은 다시 땅을 넷으로 나누어…….”
마지막으로 석유의 맥을 찾기 위해 땅을 50m 깊이로 파내려갈 것이라 하였다.
이 구덩이는 수직으로 굴착하는 것이 아니며 흙이 무너지지 않게 넓은 사발 형태로 파내려 가야 한다. 최종적으로 동티단이 파내려야 하는 흙의 양은 팔십만 톤에 달하였다.
순조가 질겁해서 손사래를 치자 강성준 연구원은 자신감을 드러낸 채 말하였다.
“보통 인부 한 명이 흙 오십 관(약 2톤)을 파내는 데 한 시진이 걸리옵니다.”
“그렇긴 하지. 사람이 날래게 움직이면 그 이상을 파낼 수도 있고.”
“하오면 이천여 명이 하루 네 시진을 일한다고 가정할 때 십만 관을 파낼 수 있사옵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었다. 이론상 가능한 일이라도 사람의 목숨이 달려있기에 순조는 재차 명령을 내렸다.
“더 좋은 방안이 있으니 두 조를 교대하는 것이다. 지금 모인 사람들로 작업을 시작하며 이후 다른 동티단을 소집하여 교대로 작업을 실시하도록.”
다음 날부터 지옥과 같은 작업이 시작되었다. 땅을 측량한 말뚝을 따라 동티단은 인간 굴착기 신세가 되어 흙을 헤집고 삽과 곡괭이를 놀렸다.
“차라리 철도 공사를 다시 하고 말지!”
“폭이 좁아서 더 힘들어! 차라리 폭을 넓혀주십시오!”
“모기잖아! 모깃불 안 피우고 뭘 해!”
철도 공사는 미리 지질학적 탐사를 진행하여 공사가 편하고 지반이 안정적인 구간을 따라 기초를 파냈다. 반면 동티단이 있는 땅은 이런 배려가 없었다.
연약지반을 잘못 건드리면 흙이 무너져서 기름 섞인 개흙투성이가 되었다. 심지어 개천 주변이라 땅속에서 물이 마구 솟구치며 땅 위에서는 모기들이 몰려들었다.
“수맥입니다! 수맥이 솟구치고 있습니다!”
“증기기관 뒀다 뭘 하나! 물을 빨아내면서 파내!”
“여기는 진흙입니다! 이걸 어떻게 파냅니까!”
“파라면 파! 태상황께서 보고 계신다!”
순조 또한 일을 돕는다고 주변을 돌아다니며 외발 수레를 끌고 흙을 날랐다. 순조가 한 번을 움직일 때마다 동티단은 전력을 다하여 삽과 곡괭이를 놀려댔다.
처음 작업에 참가한 동티단의 손가락에 물집이 잡혀 터지고 또다시 속에서 물집이 생겨날 무렵, 다음 동티단 인원들이 사방에서 끌려와 교대를 실시하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연구진은 예상보다 빠르게 석유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땅속에서 퍼져나간 석유 성분은 굵은 끈처럼 여러 갈래로 퍼져나가 한 지점으로 모여들었다.
“예상보다 더 쉽게 찾아낼 수 있겠사옵니다.”
“그것참 훌륭한 일이로구나. 나 또한 지쳐가던 차였다.”
마침내 석유가 용출되는 장소를 찾아서 깊이 50m의 거대한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구덩이를 거의 다 파내었을 무렵, 인부들은 거대한 장벽을 만났다.
“나리! 바위가 있습니다! 보통 바위도 아니고 넓은 암반입니다!”
연구원들의 추측대로라면 이 암반의 틈 어디에서인가 석유가 유출되고 있었다. 그 틈을 찾지 못하여 어쩔 수 없이 다른 틈을 뚫어야 했다.
“그럼 구멍을 뚫고 폭약으로 발파해라!”
정과 끌로 암반에 구멍을 파고 다이너마이트를 넣어 발파하는 방식이었다. 다이너마이트 상자가 열리자 강성준 연구원은 손사래를 치면서 만류하였다.
“잠시만! 석유가 인화할 수도 있으니 수작업으로 진행해 주시오.”
석유 농도가 너무 짙어져 인근에는 옅은 기름 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인부들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이 단단한 암반을 쪼아내고 또 쪼아내서 구멍을 내었다.
닷새에 걸쳐 암반을 파내었을 무렵 이변이 발생했다. 갈라진 암반 사이에서 시커먼 진흙이 부걱거리며 밀려 나온 다음 마침내 석유가 밀려 나오기 시작하였다.
“드디어 석유가 나왔구나. 저 흉물을 떠서 가져와 보거라.”
순조는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석유를 확인하였다.
요동에 잠든 무궁무진한 석유 자원 중 하나가 드디어 대한제국의 손으로 채굴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