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228화 (322/345)

228화

19장 8화 영웅의 약

전 세계가 두 종류의 항생제로 들끓는 1855년 3월, 청나라에서는 마침내 프로이센으로 유학생을 파견하였다.

이 과정에서 청나라에 대한 불신으로 여러 난항을 겪었다. 20명에 불과한 인원 제한은 물론이며 프로이센에서는 책임자의 신분을 한없이 높게 설정하였다.

[저희 프로이센은 유학 중 여러 사고 혹은 사상자가 발생할 경우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왕족 중 지위가 높은 사람, 가급적 왕위 계승권 기준 10위 이내를 대표로 보내십시오.]

[인원 제한은 20명입니다. 여기에 보조 인원에 대해서는 청나라 내부 규정에 따라주십시오.]

병으로 사망한 도광제의 후계자, 청나라의 젊은 황제인 함풍제는 이 서신을 세 번이고 다시 읽으라 하였다. 대놓고 거절하지 않았을 뿐 거절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떠한 원한을 가지고 있어서 이토록 불경한 서신을 보냈단 말인가.”

도광제였다면 즉시 분통을 터트리고도 남았으나 함풍제는 능력은 부족해도 성품이 온화한 황제였다.

대소신료 모두가 고개를 숙인 가운데 함풍제는 옥좌에서 일어나 말하였다.

“아무나 의견을 내보아라. 고작 스무 명의 사람에 지위가 높은 황족을 포함해 보로서(프로이센)로 보내라 하였는데 이 제안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함풍제의 시선이 신진 관료이자 타의 모범이 되는 홍수전에게 집중되었다. 그는 배상제회라는 단체를 이끌며 노회한 대신들을 통제하고 반란군을 억제할 수단을 마련하였다.

홍수전은 함풍제의 시선을 느끼고 한참을 고뇌하였다. 그러더니 분노를 억누르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답하였다.

“신 홍수전 아뢰옵나이다. 조선이 이십여 년 전에 영길리와 불란서에 사람을 파견할 적에 이백여 명이 넘는 사람을 보냈사옵니다.”

“익히 알고 있다. 당시에 선황제께서 조선이 세자를 보냈으리라 상상조차 못 하였다더구나.”

“같은 이백 명이라 하여도 치가 떨릴 정도의 결례이옵니다. 하물며 그 십분의 일에 불과한 소수의 사람이라니. 즉각 항의를 보내야 할 일이옵나이다!”

“폐하! 당장 명을 내리시어 보로서의 사절을 북경에서 추방하시옵소서!”

권력의 핵심에 속한 관료들은 현실 파악을 못 하고 서양을 책망하였다. 이들은 오로지 자존심 하나 때문에 불신을 극복할 유일한 기회를 저버리려 하였다.

반면 홍수전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언젠가 찾아올, 아마 5년 이내에 찾아올 역성혁명의 그 날을 위해 청나라의 전력을 깎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정말 임칙서의 복수를 위해서라면, 임칙서가 백성을 사랑한 것의 백분의 일이라도 백성을 위하였다면 반대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러나 홍수전은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간언을 올렸다.

“대청은 나날이 부강해지고 있사옵니다! 각지의 공장이 가동되고 기차가 움직이며 점차 세수(稅收)가 정상으로 복귀하고 있나이다. 이런 굴욕을 겪을 나라가 아니옵니다!”

홍수전은 이미 권력에 심취하였다. 그는 복수 대신 청나라를 뒤엎고 권력을 휘어잡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임칙서의 비극은 수단에 불구하였다.

각지의 공장은 군수품 관련 공장을 제외하고 가동률이 형편없었다. 기차는 감찰관이 돌아다니는 곳에서는 제대로 가동되나 이외에는 아편으로 가산을 탕진한 사람으로 가동된다.

세수는 바닥을 치다 못해 감소하고 있었다. 나라가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백성의 재산으로 배를 불린 부패 관료들이 나머지 세금을 정상적으로 조정에 보내기 때문이었다.

청나라는 사지가 천천히 썩어들어 가는 탄저병(炭疽病) 환자와 같았다. 그나마 병을 치유할 두뇌조차도 홍수전에 의해 뜯어 먹히고 있었다.

“폐하! 얼마 전 발생한 강소성의 변란을 떠올리시옵소서! 이십여 만에 달하는 반란군이 고작 여섯 달 만에 모조리 패퇴하였사옵니다!”

“홍수전이 옳은 말을 하였사옵니다. 이 나라는 몇 년 이내에 조선에 설욕을 하고 남을 정도의 힘을 갖추었사옵니다!”

얼마 전, 황하의 홍수로 인해 발생한 염군(捻軍)의 난은 홍수전의 휘하 군벌에 의해 제압되었다. 이들은 패퇴가 아닌 배상제회에 편승하였으며 백련교 잔당까지 여기에 가담하였다.

홍수전은 차근차근 병사를 훈련시키며 계기를 찾아 분주히 움직였다. 그러한 와중에 함풍제와 흡사하면서도 더욱 낭랑한 목소리가 대전에 울렸다.

“보로서의 사람들이 다른 열국들에게 견제를 당한 모양이옵니다. 신이 서신을 몇 번이고 곱씹어 보니 보로서는 의외로 믿을 수 있는 나라인 것 같사옵니다.”

다들 프로이센을 비판하는 와중에 공친왕, 함풍제의 동생이자 한때 왕위 계승 후보에 오른 이힌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서신을 적당히 곡해하며 설명하였다.

“본디 지엄한 황족이 나서는 자리에는 우수한 병사나 학자가 보좌로 따라붙는 것이 법도지요. 하물며 머나먼 이역만리로 유학을 떠나면 그 수가 많아야 하는 법이옵니다.”

“그러한 법이나 고작 스무 명에 보좌를 붙여 보았자 얼마나 붙이겠는가?”

“한 사람당 열 명을 넘게 붙여도 될 것이옵니다. 절반은 하인이요 절반은 보좌관이라 설명하고 이 나라의 풍습이 이러하다 설득하면 될 일이 아니옵나이까?”

함풍제는 물론이고 모든 신료들은 프로이센의 국서 내용을 되새겼다. 유학생은 20명으로 제한하였으나 그 외의 인원에 대해서는 청나라의 풍습을 따른다고 하였다.

“그렇구나. 비록 대학에서 학문을 배울 수는 없는 사람들도 다른 것을 배울 수 있겠지.”

“학문을 익히는 것도 좋지만 기술을 배우는 것도 좋은 일이옵나이다.”

“참으로 옳은 말이니 가급적 많은 사람을 보낼 수 있도록 해보겠다.”

함풍제의 주도하에 프로이센의 파견 인원이 결정되었다. 이번 발언으로 정치적 압박을 당한 공친왕 이힌이 대표로, 이외에는 다수의 왕공족들이 파견되었다.

여기에 200여 명의 하인과 그와 대등한 숫자의 인재들이 파견되기로 결정하였다. 아예 프로이센의 반대를 막기 위해 체류비와 각종 제반 비용은 청나라에서 제공하기로 했다.

“공친왕이 어떠한 학문을 배울지는 모르나 많은 경험을 쌓고 오거라.”

“폐하께서 명하신 바를 완수하여 이 나라를 더욱 부강하게 만들 것이옵니다.”

아직도 청나라의 대소사를 주도하던 왕공족들은 앓던 이를 뽑은 듯이 공친왕을 배웅하였다. 그는 황제의 동생이자 뛰어난 재주를 가져서 오히려 권력에 해로운 사람이었다.

앞으로 5년 동안 학문을 배우고 온 공친왕은 평생 학문과 기술을 전파하는 신세가 되리라.

프로이센에서 보낸 선박에 탑승한 유학생들은 몇 달의 항해 끝에 프로이센에 도착하였다.

* * *

아이신기오로 이힌은 프로이센에서 새로운 세상을 맛보았다. 영국과 프랑스의 발전보다는 못 하여도 프로이센 또한 열강의 한 축을 구성하는 국가였다.

“우리는 정녕 어수선한 세상에 살고 있었구나.”

그는 청나라 황족의 복장을 한 채로 어디라도 거리낌 없이 드나들고 정보를 수집하였다. 이 과정에서 하인 겸 기술자들에게 신진 문물을 배우게 하였다.

하얀 백지장에 먹물이 스며들 듯 이백여 명의 기술자들 모두가 이힌의 명령으로 말과 글을 배우고 현장에 투입되었다.

“지금부터 화포를 만드는 기술을 배우도록, 너는 제련된 쇠를 만드는 기술을 터득해라.”

“공친왕 전하께서 명하신 바를 완수하도록 하겠습니다.”

청나라에서 이러한 명령을 내리면 즉각 명령이 취소되고 책망을 당할 법한 내용이었다. 반면 머나먼 세상 반대편 프로이센에는 그를 제지할 사람이 없었다.

기술자들은 이힌의 명령에 따라 기술을 수집하였다. 그 과정에서 여러 문제를 겪으며 기술 습득이 점차 지연되었다.

“기초부터 알고 오시라니까요! 우리가 다 떠먹여 주는 사람인 줄 아나?”

“정 기술을 배우고 싶으면 대학에 입학하시던가!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양반들이 뭘 배워!”

프로이센도 청나라 사람에 대한 불신감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었다. 더군다나 한시가 바쁜 실무 현장에 파견되는 바람에 핵심적인 내용을 배우지 못하였다.

대한제국이나 일본 같은 다른 국가와 비교하면 효율이 삼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이힌 또한 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기술을 배우는 것이 더뎌도 첫 기반을 마련해야 옳은 법이다. 오 년을 배우면 제 앞가림은 할 수 있을 것이요, 훗날에 명장이 될지도 모르지 않나.”

이힌을 비롯한 유학생들은 사력을 다하여 학문을 익히며 정보를 입수했다. 이힌의 외모가 수척해지고 눈이 피로로 침침해질 무렵. 그는 새로 설립된 화학 연구시설을 방문하였다.

한때 대한제국에서 활약한 유스투스 리비히는 프로이센으로 돌아와 저명한 교수가 되었다.

그는 수많은 유기화학 연구를 담당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쓸 만한 제자를 많이 만들어내었다.

“반갑습니다. 저는 유스투스 리비히 교수이며 이쪽은 제 제자들입니다.”

“유기화학이라는 학문은 식초를 만들어내는 학문이오?”

시큼한 냄새에 코를 감싸 쥔 이힌은 수척한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 모습을 본 유스투스 리비히는 코를 벌름거리고는 창문을 열라고 손짓을 하며 답하였다.

“요즘 들어서 닐슨 조가 발명한 무수 아세트산을 대량으로 사용하고 있지요. 흄 후드를 가동해도 모든 냄새를 배출할 출력이 아니라서 별수 없습니다.”

“무수 아세트산은 뭐고 흄 후드는 뭐요?”

“이거 또 학문 관련 이야기를 했군요. 저희 실험실을 안내하며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대한제국의 방식대로 구성된 실험실은 이힌과 유학생 대다수가 이해할 수 없는 물건으로 가득하였다. 굉음을 내뿜으며 공기를 빨아내는 흄 후드는 돈만 퍼먹는 기계로 보였다.

개중 몇몇 유학생은 수은과 납을 퍼먹는 연단술과 닮아 있다면서 비난하였다. 유스투스 리비히는 그 말을 이해하였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답하였다.

“백 년 전만 하여도 그런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사실 불산 순교자(불소 누출로 인한 사망자)가 한 해에 두어 명 정도 나오는 형편이라 아직까지 비슷한 상황이지요.”

“그럼 이 연구실에 있는 사람은 제 명에 죽지 못하는 거요?”

“아닙니다. 저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 닐슨 총장님 덕분에 화학은 급속도로 진보하고 있지요. 최근에 알려주신 닐슨 프로토콜(라듐 농축 실험방법)은 안전 준수를 위한 정점입니다!”

몇 번이고 조일준의 이름이 나오자 이힌은 묵직한 납덩어리가 뱃속을 굴러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대한제국의 기술력이 서양을 가르칠 정도라는 소문이 점차 현실이 되었다.

유스투스 리비히는 이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안내를 계속하였다. 다음 연구실의 문을 열자 더욱 심한 식초 냄새와 쥐들이 찍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쥐라니? 쥐를 왜 기르시오?”

“저희는 아편 중독을 치료할 수 있는 약물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아편이라는 말에 이힌은 눈을 가늘게 뜨고 연구진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허탈한 듯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아편 중독 치료에는 홍삼이 최고입니다. 그마저도 개인의 의지가 중요한 법이오.”

“지금까지는 옳은 말씀이셨습니다. 이힌 전하께서 하신 말씀은 옛 방식이지요.”

“옛 방식이라?”

이힌은 아편이 어떠한 해악을 가져왔는지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당장 청나라에서 우후죽순으로 생산되는 아편은 통계상으로 육백만 명을 중독자로 만들 분량이었다.

여기에 더 심각한 사항이 있었다. 형인 함풍제가 간혹 아편에 중독된 징후를 보였다.

어떻게 중독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간혹 형과 이야기를 나눌 때에 그러한 징후를 느꼈다. 간혹 말투가 어눌해지고 동공이 좁혀들며 호흡이 느려지는 경우가 있었다.

그는 형님을 보좌하여 청나라를 부흥할 원대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이힌은 충성스러운 신하이자 형님을 위하는 동생의 마음으로 목을 가다듬고 질문을 하였다.

“어디 새로운 방식을 알아봅시다. 무엇으로 아편 중독을 치료하는 거요?”

이힌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은 유스투스 리비히는 자신의 치료제를 공개하였다. 그는 약병을 열고 약간 거무스름한 빛이 도는 가루를 보여주며 말했다.

“저희 연구진은 아편의 주요 성분인 모르핀에 중독된 생쥐를 다량으로 만들어내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이 생쥐들은 식사와 모르핀 중 모르핀을 택할 지경이지요.”

우리 안에 갇힌 50여 마리의 생쥐는 한눈에 보아도 정상이 아니었다. 피골이 상접한데도 발톱이 빠지건, 입에서 피가 솟구치건 금단증상을 겪으며 마구잡이로 날뛰었다.

유스투스 리비히는 우리 왼쪽 문에는 모르핀을 혼합한 젤리를, 우리 오른쪽에는 옥수수 알갱이를 잔뜩 놓아두었다.

양쪽의 문이 열리자 생쥐들은 사방으로 쏘다니다 모두 모르핀을 혼합한 젤리에 코를 박고 정신없이 갉아먹었다. 이힌은 이 모습을 보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생쥐조차 아편에 중독되는군. 그러면 이 생쥐들을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말인가?”

“물론입니다. 저희가…… 정확히는 여기 아우구스트 호프만 연구생이 주도적으로 개발한 가공 화합물은 아편 중독에 아주 탁월한 효과를 보여줍니다.”

다음 실험이 진행되었다. 아우구스트 호프만 연구생은 똑같이 생쥐들이 날뛰는 우리 양쪽에 모르핀을 넣은 젤리와 가공 화합물을 섞은 젤리를 넣었다.

“양이 너무 적지 않소? 치료제라면 같은 양을 복용해야 할 텐데?”

“양이 적어도 괜찮습니다. 호프만 연구생, 모르핀 기준 이십 퍼센트 중량만 투여해 봐.”

다시 우리의 문이 열렸다. 금단증상에 시달리던 생쥐들은 사방을 쏘다니며 모르핀을 넣은 젤리를 갉아먹었다.

그러던 중, 몸싸움에서 밀린 생쥐가 가공 화합물 젤리를 갉아먹었다.

“보십시오. 가공 화합물을 먹은 즉시 아편 금단증상이 완화되지 않습니까?”

그 쥐는 황홀경에 취하듯 몸이 진정되며 편안하게 잠들었다. 이후 다른 생쥐들이 가공 화합물 젤리를 갉아먹고 똑같이 잠에 빠졌다.

이힌은 손을 뻗어 방금 전까지 서로를 물어뜯고 할퀴던 생쥐를 집어 들었다. 홍삼을 먹으면 아편 중독을 약간 완화할 뿐 금단증상은 거의 동일하게 겪게 마련이었다.

반면 이 새로운 약은 금단증상을 즉각 완화할 수 있었다.

이힌은 형님의 아편중독을 편안히 끊는 방법이라 판단하여 다시 질문을 하였다.

“약을 얼마나 생산할 수 있소?”

“그리 많이 만들지도 못하고 만들어 놓고 쓸데가 없습니다. 유럽에서 아편이 골칫거리가 된 데다 요즘 에테르 마취 수술이 발달해서 아편 중독자가 감소해서지요.”

“아편이라 하였소? 혹시 원료가 아편이오?”

조일준이 개발한 무수 아세트산은 수많은 화합 반응에 사용되었다. 이로 인하여 화학이 급속도로 발달하였으며 헤로인 또한 20년 이상 빠르게 발견되고 실험 대상이 되었다.

이힌은 이 복잡한 설명을 이해할 만한 지식이 없었다. 유스투스 리비히는 설명을 마치고 중요한 내용을 정리해 주었다.

“한마디로 최고급 아편을 정제하고 다시 화학 합성하여 약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렇다면 청나라에서 새로운 약을 생산할 수 있겠소? 원료도 넘쳐나고 인력도 풍족한데.”

“이것 참 까다로운 이야기군요. 아예 연구실 하나를 세워야 하는데요.”

“내가 쓸 수 있는 돈만 삼백만 냥 이상, 대략 십만 파운드가 넘어가니 염려하지 마시오.”

유스투스 리비히 또한 명성을 퍼트리고 싶은 사람이었다. 청나라라는 불안정한 시장을 개척하면 자신의 명성은 물론 개발을 주도한 아우구스트 호프만이 제자로서 큰 명성을 누리리라.

그는 아우구스트 호프만을 비롯한 연구생을 파견하여 이 명성을 제대로 누리려 하였다. 두 사람의 합의하에 즉각 계약서가 작성되었다.

계약의 내용은 신형 화합물의 청나라 내부 생산 및 유통이었으며 그 권한은 모두 청나라 정부를 대상으로 맺어졌다.

이힌은 이 신형 약물로 청나라 백성들의 중독을 치료하고 자신의 형을 아편의 손아귀에서 구출할 것이라 다짐하였다.

인장이 찍힌 뒤 유스투스 리비히는 악수를 나누며 질문을 하였다.

“생각해 보니 아직 이 화합물의 공식 명칭이 없군요. 최초로 생산 계약을 맺은 전하께서 이 약물의 이름을 정해주시길 바랍니다.”

“이름은 영웅약(英雄藥)으로 하면 어떻겠소? 아편에 중독된 사람이 영웅이 되는 거요.”

“모든 약 가운데 영웅이라 불러도 되겠군요. 헤로인(Heroin)이라 칭하겠습니다.”

모두 이 끔찍한 약의 부작용과 중독성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오로지 아편 중독을 극복하는 방식이라 생각하였다.

유스투스 리비히는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자랑스럽게 말했다.

“헤로인 생산은 사실상 원점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필요한 집기를 모두 가져간다 해도 청나라 내부에서 생산할 정도가 되려면 기술을 하나하나 전수해야 하지요.”

“쉬운 일이 아니란 건 알고 있소. 혹여나 너무 오래 걸리지는 않겠소?”

유스투스 리비히는 대한제국의 학생들을 가르친 기억을 떠올렸다. 기초 학문을 배웠다는 전제하에 삼 년 정도면 쓸 만한 대학생이 되었다.

“기초 학문 전수에 이 년이 걸릴 예정이니 최소 오 년은 기다려야 할 겁니다.”

“알겠소. 내가 서신을 작성하였으니 사람을 파견해 바로 작업에 착수하시오.”

“목표는 1860년까지 초도 양산물량을 만드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시험용은 일 년 정도 빠르게 생산해 보지요.”

“목표를 더 크게 잡으시오. 아편 중독자를 모두 아편에서 해방하는 것으로.”

인사를 마친 이힌은 뿌듯한 표정으로 연구실을 나섰다. 앞으로 4년만 지나면 형님의 아편 중독을 시작으로 모든 청나라 사람을 아편에서 해방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적어도 아편에서 해방시킨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헤로인을 복용한 순간부터 그 사람의 운명은 중독으로 인한 죽음과 금단증상으로 인한 죽음만이 남게 된다.

#작가의 말

작중 내용은 고증입니다. 초창기 헤로인은 ‘비 중독성 모르핀 대체 약물’이라는 광고와 함께 팔려나갔습니다.

심지어 어린아이용 기침 억제제, 진통제를 비롯한 일반의약품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후 중독성이 부각되어서 출시 후 29년이 지나고 나서 금지되었습니다. 영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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