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226화 (320/345)

226화

19장 6화 페니실린(2)

다음 날부터 맨체스터에서 생산된 페니실린은 마차를 타고 즉각 배송되었다.

존 스노우가 손상되지 않은 페니실린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사이, 연구진은 재차 분석에 돌입하였다.

“삼 일도 아니야, 실질적으로는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손상이 시작되는군.”

영국의 연구진이 개발한 페니실린은 아무런 첨가물도, 안정화 작업도 거치지 않은 순수한 페니실린이었다. 이 물질은 환경에 극히 민감하여 스스로 분해되는 성질을 가졌다.

연구진은 하루 간격으로 페니실린의 효과를 측정하였다. 24시간 기준으로 30%의 페니실린이 소멸하였으며 72시간이 되자 사실상 약효가 소멸하였다.

모두가 이 상황에 정신이 팔린 사이 존 쿠퍼는 샬레를 확인하며 기존 정보를 점검하였다.

“닐슨은 일천 회 투약분량을 오스만 제국까지 배송했잖아. 이게 가능한 일인가?”

“해당 전선에서 환자를 치료한 의사의 말에 따르면 닐슨이 보내온 시험용 약물은 가루 형태라 하였습니다. 혹시나 가루 형태로 변환하면 보존기간이 길어지지 않을까요?”

런던의 연구진이 죽을힘을 다해서 만들어내는 페니실린이 고작 5명의 환자를 치료하는 데 투자되는 형편이었다. 존 쿠퍼는 한참을 고민하고 다음 과정을 지시하였다.

“환자들을 다 치료하고 나서 여유분이 생길 때 보존에 대한 연구를 해보자고.”

먼저 해야 할 일은 실질적인 투여량 조절과 약효 검증이었다. 존 스노우 아래에 있는 패혈증 환자들은 나날이 병세가 나아지며 어느 정도 호전되는 징후가 보였다.

그러던 중 몇몇 환자들은 병세가 악화되는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다. 불안정한 배양 기술과 정제 기술로 발생한 약간의 오차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불러온 것이다.

최종적으로 14일간의 약물 투여 결과 6명은 완전 회복, 2명은 후유증으로 인한 수족 절단, 그리고 마지막 2명은 병이 악화되어 사망하였다.

존 스노우는 한 발을 완전히 절단한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한숨을 쉬었다. 생산되는 모든 페니실린을 집중 투여해도 결국 완전히 괴사한 환부를 되살릴 수는 없었다.

“기적적인 약물이나 효능이 너무 불안정합니다.”

존 스노우의 보고를 들은 연구진 모두가 심각한 표정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자신들도 페니실린을 생산하며 품질 차이를 샬레를 통해 명백히 체감하였다.

물론 약을 조금 덜 먹은 수준이니 괜찮다고 여겼다. 존 쿠퍼는 보고를 듣고 그나마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기 위해 애썼다.

“그렇다고 해도 약을 투여하면 양이 적어도 병이 회복되지 않는가.”

“약의 양이 유효량보다 줄어들면 병의 회복이 더뎌지는 수준이 아니고 악화됩니다.”

“유효량보다 약의 양이 줄어들면 악화된다고?”

“사망한 환자의 경우 이 악화가 심각하게 진행된 경우였습니다.”

항생제는 다른 약물과 작용 기전도 달랐다. 세균의 번식을 저지하는 항생물질의 특성상 양이 부족하면 세균이 다시 번성하고, 양이 충분하면 세균이 사멸하는 과정을 겪었다.

매 번 정확한 양을 정확한 처방에 의거하여 투약하는 과정이 필수적인 약물이었다. 존 스노우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연구진에게 부탁을 하였다.

“투여량은 중증 패혈증 기준으로 매일 세 번, 각기 이십 밀리리터를 투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한 번 투여하는 데 순수 단가만 백 파운드가 넘어가겠군.”

존 쿠퍼는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라도 빨리 대량 생산 체제를, 불가능하다면 소량을 양산하여 보존하는 체재도 갖춰야 하리라.

“일단 들어가 보시오. 이번 연구결과를 통해 더욱 발전한 약물을 만들어보겠소.”

1854년 8월, 영국에도 여름이 찾아온 가운데 조일준의 약품 출시까지 고작 5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존 쿠퍼는 페니실린에 대한 첫 보고를 실시하였다.

“……이상과 같은 기전으로 페니실린이 체내 감염현상, 미생물의 이상 번식에 대한 저항 및 치유능력을 가진 것을 증명하였습니다.”

“여쭈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과연 세균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합니까?”

조일준의 의도대로 영국의 연구진들은 필사적으로 ‘항생제’라는 새로운 약품의 개념을 설파하였다. 아직까지 자연발생설을 믿고 있는 학자들과 사회 인사들은 이를 경계하였다.

존 쿠퍼를 비롯한 연구진은 이에 대한 질의응답과 해설을 하며 자신의 정당성, 그리고 항생제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 끝없는 언쟁과 같이 연구도 진행되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생산된 페니실린을 보존하도록! 목표치는 한 달을 보관할 때 약효가 십 퍼센트만 감소하는 수준이다.”

현대의 액상 페니실린조차 정밀 냉장 보관 기준으로 7일이 지나면 분해된다. 하물며 이 시대의 페니실린은 불순물이 더욱 많으며 화학적 안정화를 거치지 않은 물질이었다.

당연히 존 쿠퍼가 만들어낸 페니실린은 훨씬 빠른 분해속도를 보여주었다. 매일 생산된 페니실린은 각기 다른 보존방법을 통해 조금이라도 수명을 연장하려 하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냉장고에 넣어두었는데 하루를 더 버틴 것이 전부입니다.”

“애초에 냉장고에는 별 기대도 하지 않았어. 그러면 얼음을 통한 보존은?”

“얼음 창고 보존도 해보았습니다. 얼음 깊숙이 구멍을 파고 보관한 페니실린은 칠 일 정도 버티더군요. 그런데 얼음 밖에 둔 페니실린은 똑같이 사 일을 버텼습니다.”

에이다가 개발한 냉장고는 외부 온도의 영향을 받는 물건이었다. 영국의 선선한 여름에도 불구하고 낮에는 내부가 영상 9도, 밤에는 영상 4도의 내부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한계였다.

얼음 창고를 이용하면 조금 더 보존할 수 있으나 큰 차이는 아니었다. 어중간한 영하의 온도에 노출된 페니실린은 조금 느린 속도로 분해되었다.

“얼음 구덩이에 보관해 보았자 칠 일. 맥주가 한 달을 넘게 버티는데, 칠 일이라.”

남은 희망인 분말 공정은 실패로 돌아갔다. 극도로 민감하고 가열하면 즉각 분해되는 페니실린의 특성 상 연구진 모두가 어떠한 방법으로 수분을 빼내야 할지 감도 못 잡았다.

수없이 많은 페니실린들이 보관 중에 수명을 다하거나 간혹 주변 사람들의 병에 투여되어 가벼운 실험을 진행하였다.

존 쿠퍼는 나날이 늘어가는 연구비를 확인하다 서신을 보내려 하였다. <닐슨 조 총장님에게> 라는 제목의 서신을 고이 접은 그는 절망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그냥 자존심을 버리고 닐슨에게 물어봐야 하나.”

“교수님! 페니실린 보관에 성공하였습니다! 열흘을 넘게 보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한 연구생이 숨을 몰아쉬며 연구실로 달려왔다. 그가 흥분한 얼굴로 숨을 고르자 존 쿠퍼는 그의 어깨를 부여잡고 속사포같이 질문을 퍼부었다.

“뭘 첨가했나? 보존 과정에서 특이한 점은 있었나? 아니면 어떠한 환경에서 보관했는가!”

“저희 친가가 고체 이산화탄소(드라이아이스) 생산 업체라서 고체 이산화탄소를 퍼붓고 고농도 에탄올로 온도를 더 낮췄습니다. 매일 이 작업을 반복해서 냉동 보관했지요!”

존 쿠퍼는 낄낄거리며 웃다가 손을 머리 높이 들어 연구생의 머리를 후려쳤다. 경쾌한 소리가 나면서 연구생이 머리를 부여잡고 존 쿠퍼가 불호령을 내렸다.

“고체 이산화탄소를 알코올과 섞어서 퍼부어? 그러면 약 가격보다 보관 가격이 더 나가잖아!”

“한 오백 인분 정도를 만들어서 보관하면 안 되겠습니까?”

“그 정도면 보관 가격과 약품 원가가 비슷하기는 하겠지. 그 막대한 양을 만들어내는 데 백 일이 넘게 걸리고, 백 일 동안 보관해도 손상되지 않는다는 전제조건하에!”

유일한 보존법은 드라이아이스를 이용한 저온 냉각이었다. 영하 20도 이하의 저온 보존은 현대 기준으로 액체 페니실린을 1년 넘게 보존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드라이아이스 생산 그 자체였다. 이 물질은 각종 특수 실험을 위해 소규모로 생산되는 물질에 불과하였다.

제아무리 세계 최강국인 대영제국이라 할지라도, 백만 파운드 정도는 눈 하나도 꿈쩍하지 않고 투자할 수 있는 나라라 하여도 지나친 소모비용이었다.

“그리고 이걸 투약하는 것도 문제지! 하루만 두어도 분해되는 물건을 드라이아이스에 보관한 채 현장까지 보내? 아예 얼음으로 사슬(Cold Chain)을 만들지!”

콜드 체인이라는 단어를 몇 번이고 연호한 존 쿠퍼는 다시금 침을 튀겨가며 외쳤다.

“대량 생산도 불가능하고 소량 양산하는 데도 보관비가 들어가! 아무리 단가를 끌어내려도 한 병을 만들어내고 보존하는 데 백 파운드 아래로 못 내린단 말이다!”

연구실이 떠나가라 발악한 존 쿠퍼는 최후의 수단을 동원하였다. 자존심을 접고 남의 지식을 베끼기로 작정한 것이다.

“어쩔 수 없지. 화합물의 일부 성분이라도 파악할 수 있다면 연구가 진척될 거야.”

그는 한창 전쟁이 벌어지는 오스만 제국으로 서신을 보냈다.

국제 구호협회가 위치한 병원 어딘가에는 사용이 끝난 시험용 약물 병이 잘 보존되어 있으리라. 약품의 찌꺼기라도 분석하면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마침내 두 달 뒤, 조일준이 설파제를 보낸 병 가운데 사용이 끝난 병 200개가 도착하였다.

“이 병에 남아 있는 잔존약물을 모조리 분석해 보자고.”

“극미량에 불과한데 성과가 있을까요?”

“이제 삼 개월도 안 남았어! 그동안 뭐라도 해봐야 먼저 특허를 내놓든가 하지!”

다시 치열한 분석이 시작되었다. 병 내부에는 아주 약간의 액체가 있었으며 이 식염수와 알코올의 혼합물에 설파제가 용해되어 있었다.

이 액체를 모조리 거둬들인 연구진은 이미 페니실린이 모조리 분해되었으며 남은 화합물이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개중 한 연구원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샬레에 이를 조금 투여하였다.

“천하의 닐슨 조가 관리했다 해도 일 년 넘게 지난 페니실린이 약효를 유지할 수는 없겠지.”

그 예상과 달리 설파제는 아직까지 약효를 유지하고 있었다. 세균이 사라진 흔적을 확인한 존 쿠퍼는 관자놀이를 긁적이더니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게…… 약효가 있다고? 일 년이 넘게 방치된 약물인데? 심지어 용해된 상태인데?”

“쿠퍼 교수님, 분석 결과가 나왔는데 유황 성분이 있습니다.”

“유황? 뭔 소리야! 페니실린에 유황을 투여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

긁어모은 설파제는 대략 2회를 투여할 수 있는 용량이었다. 연구진은 이를 다양한 각도로 분석하였고 페니실린과 전혀 다른 결과를 도출하였다.

“증류수 용해도는 거의 없음, 알코올 용해도는 매우 우수?”

“이 약품은 저희가 개발한 페니실린이 아닙니다. 용해도부터 정반대입니다.”

존 쿠퍼는 자리에 주저앉아 분석결과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였다. 그는 한동안 넋이 나간 듯이 서류를 바라보고는 눈을 감싸 쥔 채 말하였다.

“우리는 효과는 거의 같은데 성질도, 제조방법도 완전히 다른 약물을 만들고 있었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완전히 다른 약물이라니요?”

“이건 직접 물어봐야 알 일이로군.”

존 쿠퍼는 몇 번이고 고민하다 정중한 서신을 작성하였다. 자신들이 발견한 ‘항생물질’에 대한 효능, 간략한 제조법 그리고 제조 방안에 대한 질문이었다.

* * *

오늘도 정례 보고가 들어왔다. 한 달 가까이 지체된 보고이나 크림 전쟁에 관련된 보고라서 각 부처의 대신과 부대신들이 이 보고를 경청하였다.

“러시아 제국은 하루가 다르게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미 세바스토폴이 함락되었으며 영국의 전선 다수 동시 공격과 프랑스의 종심 돌파 전략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예 작정하고 몰아치는군요. 캅카스(현 조지아 일대) 전선은 어떻게 진행됩니까?”

“대월의 지원을 받은 프랑스군이 쉴 새 없이 전력을 부어 넣고 있습니다. 희생자가 제법 발생하였는데 러시아군의 희생이 몇 배로 크다 합니다.”

대월, 베트남이라고 말은 했는데 실제로는 대한제국의 지원이다. 베트남에 판매한 군수물자가 각인과 이름이 바뀐 채 프랑스군의 2선 군수품으로 배급되고 있었다.

크림 전쟁은 본래 역사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되었다. 보고 시기인 1854년 10월이면 막 세바스토폴 요새 포위전이 시작되는 시기인데 겨울 추위가 진행되기도 전에 함락당했다.

이쯤 되면 니콜라이 1세가 항복협정을 지원할 상황이었다. 정례 보고가 끝나고 군부대신 이응식이 육군 제복의 깃을 다듬으며 나에게 질문을 하였다.

“우리 군에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물품이 도움이 되어서 다행이로군. 대월은 어떠한가?”

“군수품을 지원하여 대부분의 채무를 털어냈다 하였습니다.”

“그거 반가운 소리로군. 듣자 하니 자네가 대월의 체제를 개선하여 이 대한제국의 든든한 우방이자 무역 국가로 만들어낼 것이라 했는데 기대가 돼.”

“사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엉뚱한 사람이 버는 격입니다만.”

이응식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궁금한 듯이 질문을 하였다.

“자네를 곰 취급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이거 잘못 말씀드렸습니다. 재주를 사람이 넘는데 나팔륜이라는 곰이 돈을 벌어들이죠.”

“아, 그 작달막한 친구 말인가? 그런데 전권대사 주제에 어떻게 돈을 벌어들이나?”

“지원 물품마다 대월 황제의 이름과 자신의 이름을 같이 박아 넣고 있지요. 돈보다는 자신의 명성을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전선에 보내는 군수품은 베트남의 황제인 사덕제의 이름으로 보낸다. 반면 군수품을 제외한 모든 물품은 베트남에 거주하는 전권대사인 샤를 루이 나폴레옹의 이름으로 보낸다.

한 마디로 베트남산 설탕을 먹어도 나폴레옹 3세가, 거기서 임시로 만든 ‘블랑 콜라’를 먹어도 나폴레옹 3세가 보낸 물건이다.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이응식에게 설명해 주었다.

“아무리 보아도 그 친구는 불란서로 돌아가 총리를 하고 싶은가 봅니다. 얼마 전에 서신을 보내기를 자신은 왕이 될 생각은 없다 하더군요.”

“다른 사람들이 강요를 하면 왕이 되기 마련이지. 이를테면 송의 태조처럼 말이야.”

“그러면 군사를 몰고 전선에 나가야 할 것이라면서 극구 반대하더군요.”

나폴레옹 3세도 본래 역사와 다르게 변했다. 그는 본래 역사에서 끝없는 권력욕을 지니고 있었으나 여기서는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경험한 사람이 되었다.

아마 자신이 최전선에 나서는 끔찍한 경험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황제 자리에는 오르지 않겠지. 오히려 그의 능력을 더욱 부각할 수 있는 총리 자리를 원하리라.

이응식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외부 집무실로 돌아가려는데 일준이가 나에게 손짓을 하였다.

녀석과 함께 휴게실에 잠시 들르니 주변을 돌아본 녀석은 웃음을 참으면서 말하였다.

“영국 연구진이 결국 페니실린 개발에 성공했다.”

“네 예상보다 빠르네? 그럼 실용화까지는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최소 오십 년. 내가 예상한 문제점에 그대로 직면했어.”

질린 표정으로 일준이를 바라보았는데 녀석은 여전히 웃음을 참고 있었다.

괜히 심술이 나서 녀석에게 쏘아붙이듯이 말하였다.

“그러다가 대량 생산에 들어가는 것 아니야? 냉동 보관은 억지로 한다 치면 가능하잖아.”

일준이는 내 질문을 듣고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한참을 생각하였다. 그러더니 페니실린 생산에 부족한 점에 대해서 꼬집어서 말했다.

“대량 생산? 용접기술도 최소한 아세틸렌 용접까지 끌어올려야지. 공기배양 탱크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기술이 어설픈 테르밋 용접으로 될 일이 아니야.”

“그건 뭐 어떻게든 우회할 방법이 있지 않을까?”

“그렇긴 한데 다음 단계 문제도 있어. 페니실린 생산용 곰팡이가 얼마나 예민한 놈인지 공기배양 탱크에 거품이 생기면 다 죽는다더라.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물에 빨대를 넣고 숨만 내뿜어도 거품이 생긴다. 하물며 페니실린 생산용 곰팡이는 걸쭉한 배양액에 공기를 불어 넣어서 더 많은 거품이 생기겠지.

“혹시나 거품을 뭐 젓가락 같은 것으로 터트리나?”

“그러다가 다 죽는다더라. 소포제(消泡劑 - 거품 제거제)를 주문 제작해서 투입했다던데 정체는 몰라. 당시 미국 화학자와 생물학자 대다수가 달라붙은 작업이라 난이도도 높을 거고.”

1940년대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 떠올리고 할 말이 없었다. 당시 미국의 기술은 원자폭탄을 만들 수준인데 이들도 고난을 겪었다면 지금은 아예 불가능한 일이다.

반면 일준이는 지금까지 작업에 몰두한 영국의 연구진들을 칭찬하듯이 말하였다.

“그래도 이 수준까지 끌어올린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야. 아마 페니실린을 만들며 수십 가지 연구를 병행했을 거고 이걸 조금만 응용하면 화학 발전이 굉장히 빨라질걸?”

일준이는 손을 탈탈 털며 상황을 정리해 주었다.

“앞으로 효능이 좋고 가격이 비싼 페니실린이 최상위층의 항생제가 될 거야. 효능이 좋지 않고 값싼 설파제는 하층민의 항생제가 될 거고.”

“왕후장상만이 접종할 수 있는 항생제라. 참 대단하긴 하네.”

결국 일준이의 설파제 개발은 양산까지 성공하였다. 반면 영국의 페니실린 개발은 양산 단계에서 주저앉아 버렸고.

마침내 12월이 되자 첫 설파제 물량이 전 세계로 배송되었다.

#작가의 말

페니실린 효과 감소 수준은 논문을 참고했습니다.

수용액 상태의 페니실린의 안전성에 대한 고찰, 1986년

류현주, 손성호, 장보현, 안태홍 저.

논문에 의하면 실온보관 시 24시간당 20%의 페니실린이 소멸합니다.

작중에서는 화학적 안정화 작업이 없어서 비율을 30%로 증가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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