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19장 5화 연해주 전선
일본에서 보급을 마치고 러시아로 향한 영국 함대는 즉각 우수리스크의 입구이자 러시아의 부동항인 블라디보스토크를 공격하였다.
그 선두에는 워리어의 자매함 디펜더(Defender)호가 있었다. 8문에 달하는 시험용 110파운드 함포는 불을 뿜어내며 거대한 포탄을 해안 요새에 명중시켰다.
훗날 암스트롱 7인치 포라 불릴 대포가 전장에 첫선을 보였다. 탄환 몇 발이 명중하자 요새 일대에서 굉음이 일어나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적 요새 명중! 시원하게 터졌습니다!”
“계속 방포하도록. 적의 저항이 사라질 때까지 포격을 이어간다.”
함대의 지휘관 데이비드 프라이스는 디펜더 함에서 함대 전체에 명령을 내렸다. 이미 흑해 전선에서 압도적인 격차를 달성한 영국 함대는 남은 전력을 태평양 전투에서 쏟아 부었다.
다시 여덟 발의 함포가 순차적으로 발사되었다. 배가 기우뚱거리고 십여 초 정도 지날 무렵.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날아간 탄환이 요새 일대에 작렬하였다.
암스트롱 포는 최초의 후미장전식 대포였다. 복잡한 장전방식이 문제이나 기존처럼 앞으로 장약과 포탄을 쑤셔넣는 대포보다 훨씬 나은 물건이었다.
“너무 무게가 무겁고 반동도 심해서 디펜더 호마저 기우뚱거리는군. 이 단점만 제외하면 쓸 만해.”
처음 사용하는 물건을 불신하던 영국 해군조차도 암스트롱 포의 실용성에 흠뻑 반했다. 이윽고 러시아 요새에서 대응 사격을 실시하여 연기가 치솟아 올랐다.
“적이 포탄을 발사했습니다!”
“명중할 리가 있나.”
러시아는 알래스카를 판매한 대금을 끌어모아 방어 체제를 구축하였다. 나름 신경을 써서 32파운더 대포를 배치하였지만 디펜더 호에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캉!
32파운더 탄환 중 단 한 발이 디펜더 호의 선체에 명중하고 바로 튕겨나갔다. 심드렁한 표정의 데이비드 프라이스에게 갑판 아래에서 보고가 전해졌다.
“피해 경미! 리벳 몇 개가 빠졌습니다!”
“그 정도면 피해도 아니야. 전 함대! 좀 더 접근해서 방포하도록!”
다시 요새로 접근한 함대에서 다른 주력 무기인 68파운더 대포가 불을 뿜었다. 요새가 골고루 포화에 휩싸이는 모습을 본 병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요새의 화력은 디펜더 호와 비교해도 부족한 수준이었다. 반면 영국 함대에는 아직 7대의 전함이 더 있었다. 그 압도적인 격차에도 요새는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질길 정도로 오래 버티는군. 이래서야 상륙이 지연될 것 같은데.”
“사람을 갈아 넣어가면서 억지로 버티는 것 같습니다.”
“퇴각하면 모조리 처형당하기라도 하겠지. 참 질긴 놈들이라니까.”
110파운더 함포의 탄환이 명중할 때마다 폭발이 일어나며 흙먼지와 요새를 구성하던 돌 파편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그 먼지 속에는 피와 사람의 흔적이 같이 섞여 있으리라.
1시간에 걸친 포격 끝에 요새가 침묵하였다. 데이비드 프라이스는 자신의 부관 헨리 브루스를 쳐다본 뒤 명령을 하달하였다.
“해병대 끌고 돌격해. 쓸 수 있는 소구경 함포를 배에서 내려서 바로 지원해주겠다.”
“다들 들었나! 돌격 명령이다!”
이미 초토화된 해안가를 확인한 영국 왕립 해병대는 환호성을 지르며 상륙용 나룻배에 탑승하였다. 수십여 척의 나룻배가 해안가에 상륙하자 저 멀리서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상륙하자마자 환영인사를 하는군! 다들 준비되었나!”
“준비되었습니다!”
“다들 탄환 장전해!”
기세등등하게 달려온 카자크 기병들은 해병대가 제대로 된 진영을 갖추기 전에 기습하려 하였다. 이들은 전열보병이 제대로 된 화망을 구성하기 전 대열을 무너트리려 하였다.
대규모의 주력군이 맞붙는 흑해 전선이라면 효과가 있는 전략이었다. 반면 태평양 전선에 파견된 영국군은 시험용 병기를 대량으로 사용하는 부대가 파견되었다.
이미 영국은 신형 라이플인 엔필드(Enfield)를 보급하였으며 이후 시험용 총기를 준비했다. 대한제국의 갑식, 진식 소총을 참고하여 이들 또한 후미장전식 라이플을 설계하였다.
“소대별 밀집대형을 유지한 채 자율사격!”
“자율사격 실시!”
거의 400미터 거리를 두고 속도를 붙이는 카자크 기병들에게 탄환이 쏟아졌다. 기병들의 돌격이 늦춰지자 바로 다음 탄환이 쏟아졌다.
해병대 병사는 바로 재장전에 돌입하였다. 장전 레버를 젖혀 약실을 열고 내부에 입김을 불어 종이탄피의 흔적을 제거하였다.
“망할! 엉켰어!”
“그럼 수리해!”
간혹 몇 명의 병사가 종이탄피 찌꺼기를 제거하지 못 하여 곤욕을 치렀으나 나머지는 약실에 탄환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고무로 만든 약실 마개를 확인한 뒤 약실을 닫았다.
짤깍 소리와 함께 탄환이 장전되었다. 개머리판을 다시 어깨에 댄 병사는 호흡을 정돈하고 카자크 기병을 향해 라이플을 발사하였다.
라이플 탄의 폭발력을 이기지 못하고 약실에서 고무가 녹아 병사의 뺨에 달라붙었다. 그 열기에 병사의 뺨이 시커멓게 그을렸으나 아무런 생각 없이 재장전을 실시하였다.
“계속 자율사격 실시!”
“고무링! 고무링 부족해!”
“멍청아! 다섯 개는 챙겨놨어야지!”
아직 불안정한 시험용 소총이라 여러 문제가 발생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미장전식 소총의 빠른 사격속도와 위력이 고스란히 발휘되었다.
한 번 지연된 돌격은 함대에서 날리는 지원 포격으로 더더욱 지체되었다. 카자크 기병들은 첫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해안가에서 허우적거리며 시체를 쌓아가기 시작하였다.
장전속도는 머스킷보다 빠르고 위력과 사거리는 라이플과 동등한 탄환의 비가 쏟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기병들이 난입에 성공하였다.
“놈들이 진영에 난입했습니다!”
“총검은 뒀다 뭘 해!”
간혹 영국 해병대에게 성공적으로 접근한 기병들도 있었다. 그 기병들은 일부에 불과하였으며 총검의 벽을 뚫지 못하고 순식간에 궤멸하였다.
병사들 대부분의 뺨이 시커멓게 변하고 화상을 입을 무렵 카자크 기병들은 퇴각을 단행하였다. 영국 해병대는 즉각 진격하여 교두보를 확보하고 내륙으로 몰아치기 시작하였다.
한편 우수리스크 시가지, 예전에 조선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거주하는 핵심 거점에는 패잔병 신세의 러시아군이 대기하고 있었다.
한때 대한제국 대사였던 파벨 페드로비치 리프란디는 제복을 입은 채 지휘관으로 부임하고 있었다. 부상병을 수습하고 방어 진지 구축을 명령하는 그에게 한 무리의 기병이 돌아왔다.
“카자크 기병들이 돌아옵니다! 그런데 숫자가…….”
“맙소사. 거의 절반 가까이 몰살당했군.”
카자크 기병의 지휘관인 안드레이조차도 허벅지가 피에 물든 채 겨우 말을 타고 있었다. 쓰러지듯이 말에서 내린 그는 바로 보고를 실시하였다.
“아무 효과도 없었어. 변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게 패주했다고!”
의무병들이 달려와 안드레이의 상처를 씻기고 탄환을 뽑아냈다. 한동안 끔찍한 비명이 주변을 메운 다음. 안드레이는 눈물을 머금고 흐느끼듯이 말하였다.
“놈들은 라이플을 마치 머스킷을 다루듯이 쏘아대더군. 그런 놈들에게 접근조차 못 하고 우리 카자크 형제들이 피를 뿜으며 죽어갔다고!”
“라이플을 머스킷처럼 다룬다 하셨습니까?”
“놈들은 총을 꺾어서 탄환을 넣어 장전했지. 다시 쏠 때까지 십 초도 안 걸렸어.”
이번 돌격은 우수리 카자크 지휘관 안드레이의 독단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리프란디가 안 좋은 예감을 느껴 만류했음에도 그는 상륙 직후에 타격을 입힐 생각으로 돌격을 실시했다.
그 안 좋은 예감은 신병기로 인한 궤멸적인 피해로 돌아왔다. 예상 이상의 피해에 안드레이조차 고개를 숙인 채 처벌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내 잘못이지. 지휘권을 넘겨줄 것이며 차르께 패전의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말하게.”
리프란디는 당장에라도 안드레이를 직위 해제하고 싶었으나 그 감정을 꾹 눌러 참았다. 이 시점에 군대가 분열하면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하고 패배하리라.
“아직 승산이 있습니다. 놈들은 원정함대이니 보급에도 한계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럼 지금 이 땅에서 소모전을 벌이겠다는 말인가?”
안드레이는 주변을 돌아보며 공포에 질린 조선 출신 화전민들을 가리켰다. 리프란디는 차르의 명령을 되새기며 다시금 화전민들의 눈을 바라보고 생각에 잠겼다.
차르가 내린 명령은 어떠한 희생이 있더라도 우수리스크 일대를 비롯한 동방의 부동항을 지키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 명령은 충분히 이행할 수 있었다.
29만 명에 달하는 화전민 가운데 장정만 징집해도 5만 명은 나온다.
참 끔찍한 계산이나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이들을 고기방패 역할로 밀어 넣으면 영국도 제풀에 지쳐 달아나리라.
이런 갈등 속에서 리프란디에게 보고가 들어왔다.
“소장님! 우수리스크 시민들이 군수물자로 쓰라고 온갖 물자를 보내왔습니다!”
“일대의 포수들이 집결하였습니다! 사위의 전사 소식을 들은 장인(丈人)들입니다!”
결국 리프란디는 고개를 끄덕이고 현실을 받아들였다. 이토록 순박한 사람들이 머나먼 서쪽의 러시아에도 있으며 이들은 졸렬한 지휘로 인해 전장에서 숱하게 죽어나가고 있었다.
여기에 바로 지척에는 군사를 동원하지 않아도, 오로지 외교 수단만 동원해도 러시아를 한없이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는 대한제국이 있었다.
“안드레이, 있는 병력만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봅시다.”
“리프란디 소장의 말이 옳아! 다들 뭘 하나! 영국 놈들의 진을 빼서 퇴각하게 만들자!”
리프란디의 말을 들은 안드레이도 억지로 부축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이어 리프란디의 앞에 이백여 명에 달하는 포수들이 집결하였다. 하나같이 나이가 많은 화전민 출신의 가장들이었다.
리프란디는 이들을 바라보며 질문을 하였다.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왜 왔습니까?”
“얼마 전 혼사를 치른 막내딸이 청승 과부가 되었는데 놈들도 과부로 만들러 왔습니다!!”
“내 손자가 부모 없는 자식이 되었는데 이 원한을 풀어내고 싶습니다!”
일대에 화전민이 이주하고 15년이 흘렀다. 한때 순박한 농사꾼이었던 이들은 여러 직업을 택하였고 개중에는 넘쳐나는 호랑이를 잡기 위한 포수들이 많이 생겨났다.
더군다나 가족을 꾸리고 카자크 기병이나 러시아에서 이주해 온 사람과 사돈을 맺은 사례도 있었다.
리프란디는 심호흡을 하고 명령을 내렸다.
“지금부터 여러분 모두를 용병으로 고용하겠습니다. 차르께 충성을 맹세하지 않아도 되며 오로지 조선 반도에서 건너와 돈을 받고 고용된 병력입니다.”
리프란디는 부관에게 명령하여 고용 계약서를 작성하고 한 부는 용병들에게 건네주었다.
계약서의 내용은 소속 국가와 관계없는 자율 계약이니 포로로 잡으면 최대한의 권리를 보증해 달라는 말이었다. 이는 대한제국과 영국 사이의 관계를 감안한 서류였다.
이번 전투에서 승리할 방법은 없다. 어차피 영국이 우수리스크를 점령하면 협상을 통해 대한제국에게 넘어갈 땅이다.
그렇다면 대한제국이 약간의 피를 흘려 이 명분을 만들면 되리라. 그렇게 되면 박현상의 성격상 러시아를 어느 정도 배려해 줄 가능성이 높았다.
의욕이 가득한 포수들이 합류하자 러시아군의 사기가 다시 올라갔다. 리프란디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나름 합리적인 목표를 설정하여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우리는 영국의 침공에 맞서 보름을 버티면 승리한다. 보름이 지나면 놈들의 석탄은 바닥을 드러낼 것이고 포탄은 더 이상 쏘지 못할 정도가 되리라!”
블라디보스토크의 요새가 한나절을 버티지 못하였으니 거의 불가능한 목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프란디는 말 위에 올라 지휘용 검을 휘두르며 말했다.
“또한 열흘이 지나면 캄차카 반도의 호위함대가 올 것이다! 빠르면 열흘! 늦으면 보름을 버티면 도망치는 영국 놈들의 꽁무니를 마음대로 후려칠 수 있단 말이다!”
기세가 오른 러시아군은 필사적으로 영국군의 진격을 막아내려 하였다. 그러나 영국군은 교두보를 확립한 이후 착실하게 진격을 실시하며 러시아군의 숨통을 조여 나갔다.
그나마 호랑이를 잡던 포수들이 활약하였으나 영국군에도 숙련된 저격수가 있었다. 이들은 산과 언덕을 끼고 쉴 새 없이 총알을 퍼부으며 서로의 목숨을 노렸다.
결국 예정된 열흘이 지나기도 전에 우수리스크는 함락되었다. 시가지를 목전에 둔 최후의 항전을 준비하던 리프란디는 항전을 포기하고 요새 위에 백기를 올렸다.
“노력하였으나 별수 없는 것 같군. 항복하겠소.”
“리프란디 소장님께서 훌륭한 선택을 하셨습니다.”
항복 제안을 받아들인 데이비드 프라이스는 러시아군을 정중하게 대우하였다. 부상병은 나름 치료를 하고 사로잡힌 포로들은 약소한 몸값을 받고 즉각 방면하였다.
마지막까지 전의를 불태우던 안드레이도 고개를 숙인 채 패배를 받아들였다.
이윽고 우수리스크 시청에 러시아의 백색, 청색 그리고 적색의 삼색기가 내려가고 영국의 국기가 올라갔다.
모든 작업이 끝나자 데이비드 프라이스는 러시아군에게 권유하듯 말하였다.
“앞으로 일대 관할은 우리 영국 해병대가 담당할 겁니다. 가급적 퇴거해주시지 않겠습니까?”
“퇴거라. 패잔병이 시베리아 벌판을 건너가라는 말이오?”
“그냥 대한제국으로 가십시오. 어차피 패전 병력이고 항복한 입장이니 대한제국에서 편안히 대접을 받고 본국으로 귀환하면 될 겁니다.”
리프란디는 자신의 선택이 옳기를 바라며 발길을 돌렸다. 불행 중 다행으로 러시아와의 국경을 40㎞ 앞두고 기차 노선이 부설되고 있었다.
대한제국은 패배를 대비한 듯이 이 노선에 여러 대의 기차를 미리 배치해 두었다. 부상병과 중요 지휘관이 먼저 기차에 몸을 올려 대한제국으로 향했다.
* * *
결국 러시아의 동방 전선은 모조리 무너졌다. 1854년 2월경 우수리스크의 서쪽 도시 상경(上京 - 현 무단장 시)을 통해 대한제국으로 건너온 패잔병들은 모두 요동 일대에서 치료를 받고 휴식을 취했다.
당연히 리프란디와 안드레이도 패잔병에 속하였다. 이들은 감사 인사 겸 제반 사항을 논의하기 위해 한양으로 올라와 협상을 진행하였다.
“우선 중립국인 대한제국에 부상병을 위탁하게 되어서 폐를 끼쳐드렸습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중립국의 영토는 진군이나 보급을 포함한 군사적 행위가 금지될 뿐 민간인의 이동은 가능합니다. 이건 법률을 위반한 행위가 아니지요.”
리프란디는 일을 정말로 잘 처리해 줬다. 어차피 대한제국에 넘어갈 영토이니 약간의 피를 묻혀 명분을 만들어준 것이다.
그는 이백여 명의 포수를 용병으로 삼았고 이들 중 오십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더군다나 이들은 영국군에게 해코지를 당할까 염려하여 한양으로 올려보내기까지 하였다.
이 은혜는 러시아에 자유시를 하나 내주어 동방 교역을 실시하며 갚아줘야 하리라.
내 말을 곰곰이 곱씹어 본 리프란디는 슬쩍 웃으며 말했다.
“패장으로서 부끄러운 말이지만 영국군의 시험용 병기가 참 무서운 위력을 발휘하였습니다. 혹여나 대한제국이 영국과 싸울 일이 있다면 이 자료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시험용 병기라니요. 그 정보를 어떻게 입수하셨습니까?”
“카자크 기병을 시켜 몰래 진영 사진을 촬영하였지요. 참 신기한 대포를 사용하더군요.”
안드레이가 괜히 헛기침을 하였는데 카자크 기병이 정찰병으로 쓰여서 불편한 것 같았다. 그 무식한 카자크 기병이 과연 사진을 제대로 찍었을지 궁금했다.
흐릿한 흑백 사진에는 휴식을 취하는 영국군 진영과 도열한 대포들이 있었다. 그 대포의 형태를 확인했는데 내가 알고 있는 물건이었다.
“이게 벌써 나오나?”
“아는 물건입니까?”
이건 암스트롱 포다. 최초의 후미장전식 대포이자 앞으로 30년 가까이 주구장창 쓰일 대포이며 본래 10년 뒤에 나올 물건이기도 하다.
“후미장전식 대포를 설계하고 있다는 풍문은 들었는데 이토록 빨리 나올 줄이야.”
“대한제국은 금속탄피 소총을 최초로 실전에 투입하였는데 대포 기술은 늦는가 보군요.”
“각 국가의 기술 발전 방식이 다르기 마련입니다. 이거 생각보다 위험한 징조로군요.”
과연 영국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대한제국은 유럽 열강에 점점 접근하고 있으나 아직 국력이 부족해서 대포 개발 속도가 뒤처질 수밖에 없다.
영국이 시험용으로 전장에 투입한 암스트롱 포에 대한 정보를 입수해서 천만다행이다. 지금쯤 완성되고 있을 수동 개틀링과 암스트롱 포의 정보를 교환하는 방안을 취해야 하리라.
리프란디는 내 정보력에 놀란 눈치이나 이건 내가 미래의 해답을 알고 있어서이다. 이 크나큰 정보에 감사하며 리프란디에게 악수를 청하고 말하였다.
“조만간 러시아군에게 갑식소총을 비롯한 병장기를 수출해 드리겠습니다. 병기의 질적 차이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는데 이 정도는 해드려야지요.”
“사진 한 장으로 최신식 소총을 손에 넣는군요.”
“그 정도는 해드려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일준이가 할 일이 많아질 것 같았다. 녀석은 갑식 소총의 뒤를 잇는 제대로 된 후미장전식 소총을 설계하고 있었다. 탄환은 공유하되 트랩도어가 아닌 약실 개폐식인 물건이다. 이 설계가 끝나면 바로 암스트롱 포의 복제에 들어가야 하리라.
조만간 대한제국의 영토가 될 우수리스크에 제철소를 건립하고 새로운 병장기를 만들 병기창으로 활용하면 더욱 좋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