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221화 (315/345)

221화

19장 3화 박람회 이후(1)

대한제국의 박람회는 주요 연구 발표가 끝나고 민간에게 개방되었다. 주요 인사들은 귀국하였으며 수많은 정보를 전 세계에 퍼트렸다.

당연히 김성문을 비롯한 연구진의 성과도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미 찰스 다윈의 진화론과 형질 우열에 관련된 논문이 전파되어 여러 기반을 마련하였다.

연구논문의 대표인 김성문은 유럽으로 파견되어 각종 가축의 교배방법을 전수하였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 축산업자들에게 조언을 하며 여러 정보를 입수하였다.

프랑스의 정반대 편, 미국으로 건너간 대한제국 연구진도 있었다.

이들은 본래 미국 동부 연안에 머무르며 기술을 전파할 예정이었다. 예정과 달리 이들은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화석을 발굴하던 학자들의 부탁을 듣게 되었다.

평소에는 애물단지 취급하던 순학자들은 화석을 발굴한 순간부터 성공한 학자가 되어버렸다. 이 요청을 거절할 수 없는 연구진은 황량한 애리조나 황무지에 발을 들였다.

“먼 길을 오느라 고생이 아주 많았네. 그렇지 않아도 만나보고 싶었는데 잘 되었어.”

연구진은 황무지에 관목(灌木)과 약간의 수풀이 전부인 애리조나의 풍경을 보며 질색을 하였다.

애리조나를 넘어 점차 서부로 뻗어 나가는 철도가 없었다면 방문조차 힘든 땅이리라.

모두 이러한 땅에서 연구를 실시하는 심대윤에게 존경의 뜻을 표시하였다.

“백운(白雲 - 심대윤의 호) 학자님께서 고생이 많을 것 같군요.”

“고생이야 사람과 만나서 이득을 논하는 것이 고생이지 화석이 어디 가겠나?”

심대윤을 대표로 한 순학자들은 연구진들과 하나하나 악수를 나누었다. 이 연구진에 소속된 파브르와 악수를 나눈 심대윤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어보았다.

“자네 논문을 보았는데 한참을 웃었네. 세상에 얼마나 간이 크기에 혼자 장수말벌 둥지를 뜯어보나?”

“정말 죽다 살아났습니다. 다시는 같은 일을 안 할 겁니다.”

“혹시 여기서도 곤충을 연구할지도 모르니 미리 말해두겠네. 붉은 모래시계 무늬가 있는 거미는 절대 손대지 말게.”

“손을 안 대고 핀셋을 대볼까 합니다.”

심대윤은 파브르의 등을 세차게 후려치고 껄껄거리며 웃고 또 웃었다.

인사치레가 끝나자 연구진들은 세차게 몰아치는 모래바람을 맞아 입과 코를 가리고 몸을 움츠렸다.

모래바람이 끝나자 주변을 바라본 연구진은 황야에서 굴러다니는 거대한 덩어리를 확인하였다. 이들은 순학자들의 대표인 심대윤에게 질문을 하였다.

“거기에 저 덩어리는 뭡니까? 웬 종이 뭉치가 굴러다닙니까?”

“이 지역 주민들도 모르는 풀이더군. 우리는 임시 명칭으로 굴렁쇠 덤불이라 부르는데 얼마 전부터 이 지역에 자라나기 시작했어.”

“참 별일도 다 있군요.”

회전초, 유라시아 평원이 원산지인 잡초가 외몽골 사람들을 통해 우연히 애리조나까지 흘러들게 되었다.

농구공 크기의 회전초를 발로 걷어찬 심대윤은 손을 털며 말하였다.

“굴렁쇠 덤불은 불쏘시개로도 쓰기 좋고 아이들이 가지고 놀기도 좋지.”

“그나저나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이런 황무지 어디에서 소를 기른다 하십니까?”

“아주 많이, 아주 잘 기르고 있으니 염려하지 말게. 그럼 좀 멀리 다녀와야 할 거야.”

미리 마차를 준비한 순학자들은 외몽골 이주민들이 세운 도시인 툼스톤으로 향했다. 일대의 평원에서는 수많은 소가 풀을 뜯고 한가로이 노닐고 있었다.

“이건 참 대단하군요. 어떻게 이런 험한 땅에서 소를 기를 수 있지요?”

“듣자 하니 외몽골 평원과 비교하면 천국이 따로 없다더군. 차디찬 혹한도 없고, 여름이 조금 더운 편이나 버틸 수는 있고. 여기에 도적이라는 놈들도…….”

심대윤은 질린 표정을 하며 목울대에 손을 대고 긋는 시늉을 하였다. 그러고는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적당히 둘러대듯이 말했다.

“있었는데 없었다. 이 말이야.”

“뭔지는 잘 모르겠어도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툼스톤 인근에 도착하자 거대한 OK판자, 울루스 카마그의 줄임말이 보였다. 새빨간 루비 같은 색상으로 칠해진 판자가 곧 도시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을 외곽에는 가죽 신발을 신고 낙타 가죽으로 만든 상의를 입은 카우보이와 몽골인 들이 부흐(몽골 전통 씨름)를 즐기며 힘을 겨루었다.

여기에 다른 놀이도 있었다.

권총 사격으로 내기를 하거나 아예 말 위에서 마상재를 즐기는 이들까지 있었다. 심지어 어디선가 야생 소를 잡아와 로데오를 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심대윤이 방문하자 도시의 중진들이 나서서 그를 맞이하였다. 소르칸은 심대윤에게 정중히 인사를 한 다음 연구진을 보면서 말했다.

“듣자 하니 씨수소 한 마리로 수백 마리의 암소를 접붙일 수 있는 기술자라 하였나.”

“이들에게 연구결과를 직접 들어보면 어떠한가? 파브르 자네가 대표로 설명해보게.”

대형 연구에 한 발을 걸친 파브르는 이미 논문의 내용을 숙지하고 있었다. 그의 설명을 들은 소르칸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 연구의 핵심을 파악하였다.

“하긴 소를 접붙이는 작업이 쉬운 일이 아니지. 암소도 새끼를 밸 수 있는 때가 있고 수소가 이 시기를 정확히 노려 접붙여야 해.”

“저희가 연구해 본 바로는 하루 차이로 성패가 갈리지 않습니까?”

“그렇지, 경험이 많은 사람도 몇 번이나 계속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 심지어 한 번 실패하면 암소가 다시 새끼를 밸 수 있을 때까지 스무날이나 기다려야 하고.”

소르칸은 고함을 쳐서 휘하 카우보이에게 명령을 보냈다. 막 앳된 기가 사라진 17세의 청년은 소르칸의 명령대로 씨수소 한 마리와 암소 오백여 마리를 분리해 데려왔다.

“아이고, 이 방정맞은 놈. 이제야 한 사람 몫을 하네.”

“저 정도면 숙련된 소치기 아닙니까?”

“뭐 자기 앞가림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일단 봐야 아니 직접 해보면 어떤가?”

연구진들 모두가 팔을 걷고 작업 준비를 하였다. 그 사이 소르칸은 카우보이가 끌고 온 암소를 확인하며 번식이 가능한 암소를 찾아냈다.

이윽고 일백여 마리의 암소가 인공 번식에 돌입하였다. 연구진 모두가 작업을 완료하자 소르칸이 파브르의 등을 두들기며 말했다.

“잘했어, 소가 제대로 새끼를 배었는지는 한 달 뒤에야 알 수 있을 거니 푹 쉬라고.”

“수태 확률은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나도 잘 모르지. 여기 있는 암소 가운데 예순 마리 정도는 접붙일 수 있는 녀석들 같아.”

소르칸은 소의 등에 표식을 달아놓고 한 달 뒤를 기다렸다.

한 달이 지나고 소의 몸을 확인한 외몽골 이주민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연구진들에게 상황을 알려주었다.

“마흔 마리가 넘는 암소에게 새끼가 생겼네. 이렇게 간단한 방법으로 접붙이다니!”

“참으로 다행이군요. 그러면 저희에게 기술을 배우시겠습니까?”

“배우고말고! 다들 뭘 해! 손 비는 놈들은 무조건 달라붙어서 기술을 배워!”

연구진은 소의 인공 교배 방법은 물론 양과 말의 인공 교배 방법까지 알려주었다. 소르칸은 이 이야기를 모두 듣고는 발을 동동 구르며 연구진에게 성을 내었다.

“아니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왜 빼먹나. 수소에게서 추출한 씨앗이 삼 일이나 보관되는데!”

“그래 보았자 가장 가까운 농장까지 팔십 킬로미터나…….”

“이백 리가 그렇게 먼 거리야? 이 친구들 제정신인가?”

연구진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소르칸을 바라보았다. 대한제국 기준으로 볼 때는 80㎞의 다른 목장에 소의 정자를 옮겨서 암소에게 수태시키는 과정이 너무나 험난하였다.

기껏해야 인근의 목장에서 남는 씨를 사용하는 수준으로 만족하려 하였다. 반면 소르칸을 비롯한 외몽골 사람들은 가슴을 탕탕 치면서 울분을 토해냈다.

“우리 타타르 익스프레스 배달부들이 하루에 이백사십 킬로미터는 움직인다!”

“그나마 낮에는 달릴 수 없는 여름 기준이고 겨울에는 삼백 킬로미터는 움직인다!”

“여기서 채취한 씨앗으로 모든 목장의 암소를 수태시킬 수 있다는 소리잖아!”

“그게 사람입니까 아니면 기차입니까?”

파브르가 질린 표정을 하며 손짓을 하자 소르칸은 뱃속에서 온 힘을 끌어올려 고함을 쳤다.

“칭기즈 칸께서 세운 예케 몽골 울루스 시절부터의 전통이다! 우리는 파발이며!”

“파발이라면 하루에 삼백 킬로미터 정도는 이동해야 하는 법!”

“하루 만에 이백 마일을 넘어서 문 앞까지! 우리 광고 문구란 말이다!”

“더 배송하고 싶은데 사람 숫자가 적어서 못 배송해 안타까울 뿐이다!”

한 이주민은 신문 광고란에 올라온 ‘타타르 익스프레스’ 광고항목을 들이댔다. 거기에는 [하루 만에 이백 마일을 넘어서 문 앞까지.]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파브르는 머리에서 핏기가 빠져나가 혼미한 기분을 느끼며 휘청거리다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소르칸은 이 모습을 보고는 짓씹듯이 투덜거렸다.

“다 좋은데 투자자들의 의견으로 타타르 익스프레스가 되어서 문제이지. 뭐 타타르 놈들을 족칠 때처럼 빠르게 진군한다는 뜻으로 생각하고 있다만.”

“아무튼 삼 일이나 보관할 수 있다면 배달 사업에 포함해도 될 것 같은데.”

외몽골 이주민들은 서로 손을 맞잡고 고함을 쳤다. 그 모습을 지켜본 파브르는 질색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심대윤에게 말하였다.

“이제 할 일은 다 끝난 것 같습니다. 혹시 더 도와드릴 것이라도 있는지요.”

“굳이 도와줄 필요는 없네. 가는 길에 발굴한 화석이나 더 옮기고…….”

파브르의 눈동자를 살펴본 심대윤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자신이 찾아온 곤충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아예 발굴현장에 잠시 머무르며 곤충이나 몇 마리 채집해 보면 어떠한가.”

“그거 괜찮은 말씀이군요. 이런 황무지에는 뭐가 살고 있을까요.”

심대윤이 발굴 현장에서 파브르에게 곤충에 대해 알려주는 사이 다른 학자들은 동부로 향하였다. 이 동안 툼스톤에 거주하는 외몽골 이주민은 신문에 다른 광고를 내놓았다.

[타타르 익스프레스는 도둑놈을 위한 탄환도, 암소를 수태시키는 탄환도 배송합니다!]

[기차역 기준 최대 삼백 마일 거리까지 신속하고 정확하게!]

[탄환 배송 서비스 전격 출시! 기본 단가 오백 달러! 자세한 상담은 편지로 하세요!]

타타르 익스프레스의 신규 서비스, 탄환 배송 서비스가 출시되었다. 대부분의 목장주는 코웃음을 쳤으나 외지에 있는 몇몇 목장주는 반신반의하며 서신을 보냈다.

[쓸 만한 씨수소가 줄줄이 병으로 죽었습니다. 혹시나 탄환 배송이 가능합니까?]

서신에는 천여 마리에 달하는 암소가 풀만 뜯고 있어서 울분이 섞인 내용이 적혀 있었다.

소르칸은 첫 손님을 위하여 최고의 서비스를 준비하였다.

“도너 목장의 로버트 씨가 우리에게 서신을 보냈다! 다들 준비되었나?”

“주소지는 텍사스 북부의 러벅 외곽입니다. 이미 역참이 가동 중이기도 하지요!”

“모든 배달부에게 연락을 보내. 보름 뒤에 배송을 실시한다!”

보름 뒤, 피닉스에 설치된 기차노선을 통해 씨수소 세 마리와 기술자들이 이송되었다. 이들은 역에서 내려 바로 수소에게서 채취 작업을 실시하고 이걸 이중 밀폐 병에 나눠 담았다.

“명심해! 끓는 물은 절대 안 되고 손가락을 넣었을 때 따스한 정도로 물을 채워!”

“염려하지 말라고! 그러면 달려보자!”

황무지에 가까운 텍사스 북부의 험준한 지역을 세 명의 기수가 질주하였다. 이들은 쉴 새 없이 말을 갈아타며 최고 속력으로 다음 역참까지 한 시간에 못 미치게 주파하였다.

마을 목장지기 겸 배달부로 활동하던 다음 외몽골 이주민들은 이미 보관 방법을 숙지하였다. 미리 준비한 따듯한 물에 이중 밀폐 병을 담고 다시 질주를 시작하였다.

텍사스 북부의 황무지를 떠돌던 멕시코 목동, 진짜 카우보이들은 멀리서 피어오르는 흙먼지를 확인하고 이를 망원경으로 바라보았다.

한 잔뼈 굵은 카우보이가 이들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타타르 익스프레스의 신속 배송이잖아. 배송 한 번 하는데 삼백 달러인데 뭘 보낼까?”

“편지를 보낼 거면 전신으로 보낼 거고. 금덩어리라도 보내나?”

“금은 그냥 채권으로 바꾸거나 차용증으로 바꿔 보내면 되지. 뭘 그리 바삐 보내나.”

실제로는 더 비싼 오백 달러의 탄환 배송이었다. 이 탄환의 가치는 모든 암소를 수태시켰을 때 최대 일만 달러가 넘어갈 수도 있어서 같은 무게의 금보다 더 비싼 물건이었다.

“속도 좀 늦춰! 이러다가 역참 들어가기도 전에 말이 퍼진다!”

“알겠습니다!”

다시 역참에 말이 닿고 새 기수가 출발하였다.

기차역을 출발하고 11시간이 지나 해가 질 무렵, 총 260㎞의 거리를 질주한 기수들은 마침내 도너 목장에 닿았다.

“벌써 도착하시다니요! 출발한 지 며칠이나 흘렀습니까?”

“며칠이라니요. 오늘 아침에 출발했는뎁쇼.”

흙먼지를 뒤집어쓴 기수들은 아직 식지 않은 밀폐 병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론상 72시간을 생존할 수 있으나 24시간 이내에는 수태 확률이 더욱 올라간다 하였다.

목장주와 관리자들은 아직도 식지 않은 병을 옮기며 질린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식기 전에 가져왔군.”

“바로 작업에 들어가겠습니다. 암소들은 따로 분리해 두었습니까?”

도너 목장의 로버트 목장주는 최초로 탄환 배송을 체험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석 달 뒤, 암소들의 절반 이상이 수태하였음을 확인하고 신문에 사설을 기고하였다.

[타타르 익스프레스의 탄환 배송 시스템을 처음 체험하였다. 오백 달러의 돈은 지나치게 비싼 것 같았으나 우리 목장의 암소 가운데 140여 마리가 수태하였다.]

[덕분에 질 좋은 씨수소의 씨앗을 들여올 수 있었다. 오백 달러가 비싸다 생각하는가? 당신의 암소가 임신하지 않는다면 돈을 허공에 버리는 셈이다!]

이후 툼스톤으로 전해진 편지가 수십 통에 달하였다. 대부분 좋은 씨수소가 없는 목장 혹은 새로운 씨수소를 들여와 재미를 보려는 목장들이었다.

“제 십사 조 출발합니다. 목적지는 콜로라도 준주의 푸에블로!”

“제 육 조 귀환하였습니다! 오는 길에 도둑놈들 몇 놈 묻어주고 왔습니다!”

험난한 황무지를 경험할수록 모두가 경험을 축적하고 명성을 쌓았다. 지금까지 굳이 입사하지 않던 은퇴한 기병들도 타타르 익스프레스 입사 원서를 낼 정도였다.

탄환 배송은 그리 많은 이득을 보는 상품이 아니었다. 말의 유지비와 각 역참의 관리비를 감안하면 아슬아슬하게 수익을 거두는 수준이었다.

가장 큰 이득은 정보였다. 원주민 부족의 위치를 파악하며 진군 경로를 확보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더 많은 정보를 축적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술잔치가 열렸다.

“이래야 살맛이 나지. 안 그런가?”

“아무렴요. 모든 목장들이 질 좋은 씨수소의 혈통을 이어받아 듬직한 송아지를 낳을 겁니다.”

“우리는 수레바퀴가 지나칠 길을 마련하고. 그럼 한잔하자고.”

소르칸을 비롯한 중진들은 위스키 술통을 따서 한 잔씩 들이켰다. 이들은 다시 술잔을 채우고 머리 위로 높이든 다음 외쳤다.

“우리의 성공은!”

“위대한 법률을 만든 칭기즈 칸의 가르침 덕분이다!”

개중에 단 한 사람, 가장 먼저 굴종을 택한 고야슬레만이 웃지 않고 진지한 표정으로 지금의 상황을 확인하였다. 이미 아파치 부족은 최악의 적을 상대하게 되었다.

탄환 배송 덕분에 역참은 황무지 곳곳에 퍼져 나갔다. 여기에 근무할 수 있는 숙련자들은 배달에서 돌아오며 주변 상황을 정탐하고 지형을 파악하며 전쟁을 준비하였다.

“고야슬레! 왜 이리 죽상이냐!”

소르칸은 호탕하게 웃으며 고야슬레를 바라보았다. 이들의 협력 덕분에 더 많은 부족, 수레바퀴를 굴릴 대상자를 선별할 수 있어 기분이 좋아졌다.

고야슬레는 어떻게 변명해야 할 지 모르다가 손사래를 치면서 태연하게 답했다.

“저는 말을 잘 탈 줄 몰라서 그렇지요.”

“그래? 그러면 탄환 배송 한번 해보지그래! 일단 잔 받아라!”

소르칸은 커다란 잔에 위스키를 가득 담아주었다. 여느 원주민이라면 한 잔을 비우기도 전에 기절할 수준의 양이었다.

그나마 고야슬레를 비롯한 아파치 부족민은 티스윈(Tiswin, 아파치 부족의 전통 맥주)을 마시는 문화가 있었다. 잔을 비운 고야슬레는 바로 우유로 목을 축였다.

목에서 올라오는 불길을 억누른 고야슬레는 마음을 정리하였다. 이런 괴물들이 진격한다면 아파치 부족 대부분이 몰살당하리라.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들은 이미 복수의 사전 정리, 편을 나누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원주민들이 항복 시기를 놓치고 학살당할지도 몰랐다.

자신이 배달부로 활동하면 이러한 애매한 부족들을 설득하여 희생자를 줄일 수 있으리라.

이 사이에 술을 마시던 소르칸은 고야슬레의 생각과 전혀 다른 말을 하였다.

“고야슬레! 너를 타타르 익스프레스 서부 신설 지점의 부대표로 임명한다!”

“서부 지역이요?”

“동부 지역은 이미 사람이 꽉 찼어. 넌 서부로 가라!”

자신이 원하던 동부가 아닌 서부의 원주민을 상대하게 되었다.

당장이라도 거절하고 싶었으나 모두가 고야슬레에게 응원을 하고 있어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