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219화 (216/345)

219화

19장 2화 대한제국 박람회(1)

마침내 1853년 8월, 국제 기술 박람회 겸 정약용의 4년 차 기일을 기리는 여유당 축제가 동시에 거행되었다. 오스만 제국이 전쟁의 불길에 휩싸였음에도 수많은 학자들이 몰려들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 자리에 끼어들지 않은 나라가 있었다. 러시아는 영국에서 과학자를 대규모로 파견한다는 소식에 참가 거부, 오스만 제국은 제 코가 석자라고 참가하지 않았다.

이 박람회는 기술이 중점이지만 문화나 예술 분야도 개최할 수 있었다. 외교적 관례 때문에 청나라와 일본을 비롯한 동양 국가들에게 개최 소식을 알려주었지.

덕분에 의외의 손님이 찾아왔다. 청나라는 경극(京劇) 전문가 육십여 명과 학자를 보내기로 했다.

일본은 유명한 ‘고급 기술자’도 삼십여 명에 난학자들이 나름 연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나름 주변 국가에서 방문한 사람들인데 어디다 배정한담.”

청나라의 새로운 황제인 함풍제는 어느 정도 시야가 트여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시야가 트여 있는지 자신의 위엄을 자랑하려는지 몰라도 아무튼 보낸 손님을 거절할 수는 없다.

이번 행사는 엄연히 학부(學部)가 주도하는 행사이며 나와 외부는 인원 배분과 알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조하는 부서이다.

학부대신 박규수는 청나라 박문객의 처우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말하였다.

“경운궁이 덕수궁(德壽宮)으로 개명하여 행사장으로 사용할 예정이지. 청나라에는 경극을 공연할 수 있도록 전각 하나를 내어주도록 하지.”

“전각이 그렇게 남아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만.”

“말이 전각이지 그냥 완공되지 않은 건물일세. 미완성된 정관헌(靜觀軒)은 나중에 관원들에게 개방하는 다실로 쓸 예정이야. 여기를 청관헌(淸觀軒)이라 임시 명명하겠네.”

고요하게 보는 정자에서 청나라를 보는 정자로 이름을 붙인다는 말이었다. 다음 순서는 일본 사절단인데 박규수는 여전히 별생각 없이 말했다.

“일본인들은 이 나라를 통해 세계 열국을 만날 기회를 주어야 하네. 어떤 기술을 발표할지는 몰라도 출구 근처에 배정하면 괜찮을 것 같군.”

이후 기술 발표를 위해 모인 국가의 사람을 대한제국 우선으로 배정하였다. 구석구석 남는 공간이 없도록 전투 기교를 비롯한 인기 많은 상품들의 판매 장소도 만들어두었지.

“그리고 에이다 바이런 교수의 세탁기와 냉장고는 아예 임시 건물을 만들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증기기관을 몇 대나 굴려야 하는지 모르지 않나?”

“상대적으로 소형화시킨 물건이라 했으니 별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요.”

박규수와 합을 맞추어 차곡차곡 인원과 장소를 배분하였다. 면적만 따지면 중건된 경복궁을 가뿐히 뛰어넘는 궁궐 대부분의 전각이 행사장으로 배정되었다.

“규모는 역대 최고인데 인원이 역대 최고가 아니라서 아쉬운 일이로군.”

“유럽에서 개최하였다면 열국 전체에서 인원을 보내왔을 겁니다. 여기는 동방인지라 청나라와 일본의 사람을 합쳐도 유럽 한 개 국가 참가인원보다 못합니다.”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다. 다음 개최에는 청나라는 몰라도 일본이나 베트남도 박람회에 대규모로 사람을 보낼 수준이 되면 좋을 것 같네.

총 참가인원은 외국에서만 2,500명에 달한다. 대한제국 내부 인원과 한양 도성의 초기 관람객을 감안하면 6만여 명 정도는 올 것이다.

여기에 박람회는 초기 관람기간이 끝나면 4개월 동안 민간에 개방될 예정이다. 아마 대한제국 전체에서 기차를 타고 몰려온 사람들이 수백만 단위는 가뿐히 넘어가겠지.

이 계획 하나하나를 조정하는 박규수와 나 그리고 한양 도성의 관리들은 파김치가 되어갔다.

마침내 모든 계획이 끝나갈 무렵인 7월 말, 첫 방문객이 도착하였다.

“벨기에 사절단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저 또한 박 후작님의 응대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처음으로 방문한 국가는 의외로 벨기에였다, 영국과 프랑스가 함선 상당수를 크림 전쟁에 투입해 늦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대표는 젊다 못해 아직도 약간 앳된 얼굴이 남아 있으며 수염도 별로 자라지 않은, 거의 소년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는 내 손이 아닌 손목을 잡고 악수를 청하였다.

“저는 레오폴트 로데베이크 필립스 마리아 빅토르, 벨기에의 왕위 계승자입니다.”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내 손목이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레오폴트 2세, 벨기에의 악마이자 콩고에 지옥을 열어버린 장본인이 내 손목을 잡은 채 팔을 마구 휘두르고 있었다.

“왕자가 여기에 오면 안 됩니까?”

“안 되긴요! 되고말고요!”

그는 내 손목을 잡은 악수를 끝내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후 한참 동안 대한제국의 풍경을 확인하고는 의외로 건실한 말을 하였다.

“저는 제 눈을 틔워준 위인을 만나보기 위하여 이 자리에 왔습니다. 사실 결혼 전에 세계 여행도 한번 해볼 생각으로 방문하기도 했지요.”

“그거 좋은 생각이시군요. 눈을 틔워준 위인이라니 누구인지 궁금한데요?”

“프린스 흥선과 대화를 나눈 덕분에 과학적 지식을 함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벨기에를 과학적인 국가로 만들 생각을 품었지요.”

순간 과학적으로 손목을 절단하는 방법을 연구할 것 같아 걱정되었다. 그나마 어린 시절 이하응과 대화를 나눈 덕분에 성향 자체가 변질된 것 같기도 하네.

그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호위병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후 자그마한 나무 상자에 담긴 물건을 건네주며 간절한 눈빛으로 말하였다.

“이것도 만남인데 선물 하나 받으시지요. 제가 여행을 다니면서 시간관념을 준수하려고 몇 개 만들어보았습니다.”

레오폴트 2세가 선물로 건네준 물건은 투박한 손목시계였다. 이 시대에는 손목시계가 있는데 대부분 장식용으로 만든 여성용 물품이 대부분이지.

일부러 남성적인 거친 모습을 드러내려고 투박한 쇠로 만든 손목시계였다. 선물이라 어쩔 수 없이 착용했는데 갑자기 칼날이 튀어나와 내 손목을 썰어버릴 것 같은 망상이 들었다.

“후작님에게도 잘 어울리는군요. 그럼 숙소로 들어가서 여독을 풀어 보겠습니다.”

레오폴트 2세의 방문 이후 며칠 간격으로 사람들이 몰려왔다.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프로이센을 비롯한 열강들도 자신의 박람회를 준비하기 위해 전각을 각기 배정받았다.

* * *

마침내 정약용의 기일인 양력 8월 30일이 되었다. 효명제는 이전의 경운궁, 두 궁궐을 합친 덕수궁의 중건과 동시에 박람회의 개회식을 선언하였다.

“이 장소를 우리 대한제국의 발전을 상징하는 의미에서 덕수궁이라 명명하겠다. 발전은 기술로 구성된 것이 아니며 도덕(道德)이 만수(萬壽)하는 것을 의미하노라.”

본래 덕수궁이라는 이름은 일제가 강제로 명명한 이름이었다. 그러나 이 역사에서는 제대로 된 의미를 가진 이름이 붙여졌다.

“또한 이 궁궐은 핵심 전각을 제외하고 정기적으로 백성들에게 개방할 것이다. 나라의 행사와 각종 기념일을 위하여 함께 나누어 사는 궁궐이니 이는 덕을 나누는 행위로다.”

기나긴 개회사는 어느덧 마지막을 향해 달려갔다. 효명제는 박규수와 나를 단상 위로 올리고 마지막 맺음말을 하였다.

“부디 대한제국을 시작으로 이 자리에 모인 열국의 기술을 서로 배우고 터득하라. 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성명(誠明 - 정약용의 시호)이 보고 즐길 수 있는 곳이 되게 하라.”

모두가 인사를 올리고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즉시 증기기관이 가동되고 연기가 치솟아 오르며 행사가 개최되었다.

내가 가장 먼저 보러 간 물건은 세탁기였다. 에이다는 처음 만들어 낸 세탁기를 경량화한 물건, 그리고 ‘가족을 위한 세탁기’라는 물건을 만들어 두었다.

“하녀들이 겨울철 빨래를 하느라 손이 부르틉니까? 노동자들에게 뭔가 선물을 하나 하여 생색을 내고 싶으십니까? 이 기계 하나면 모든 일이 해결됩니다!”

에이다 휘하에 있는 연구생은 자전거 같은 물건 위에 올라 세차게 발을 굴려대고 있었다. 여기에 체인으로 연결된 세탁통은 맹렬히 진동하며 빨래를 세탁했다.

“제법 힘든 것 같은데? 얼마나 가동하여서 그렇게 땀을 흘리나?”

“시험 작동을 포함해 오늘 하루만 삼십 킬로그램째 세탁…… 나 죽겠다! 교대!”

대기하고 있던 다음 연구생이 허벅지를 주무르고 자전거 위에 앉았다. 그리고 앞에서 설명하던 연구생의 설명을 이어서 하였다.

“이 기계라면 십 분 동안 세탁하고! 십 분 동안 헹굼을! 마지막으로 오 분의 탈수면 세탁이 됩니다!”

“한 번에 빨 수 있는 양은 얼마나 되는가? 그리고 가격은?”

“사 킬로그램 정도는 빨 수 있습니다. 가격은 개당 삼 파운드 정도이지요!”

“그럼 괜찮겠군. 혹시 라이선스도 판매하나?”

이건 불티나게 팔리다 못해 가사노동 시간을 줄여줄 획기적인 발명품이다. 3파운드면 70냥 수준인데 대한제국의 시골 농부들도 이 물건을 공동구매로 사들이리라.

가사노동 시간이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학업에 종사할 수 있게 된다. 추가 신청자를 감안해 50%에 불과한 의무교육 이수자의 비율이 서서히 증가하리라.

에이다를 찾아보니 그녀는 대형 증기 세탁기와 냉장고를 번갈아가며 설명하고 있었다. 막 설명이 끝났는지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가던 중 프랑스어가 들려왔다.

“후작님이 왜 알래스카를 구매하셨을까. 저 냉장고면 끝인데.”

누구인지 봤더니만 미래의 레오폴드 2세였다. 순간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는데 꾹 눌러 참고 에이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기쁨에 겨워 말하였다.

“시작하자마자 냉장고 발주가 이백 대가 넘게 요청되었어요! 영국 해군에서 백이십 대! 프랑스 해군에서 팔십 대! 미국에서도 조만간 발주가 올 거예요!”

“축하드려요 에이다. 그나저나 냉장고 개량에는 성공했나요?”

“아니요, 생각 외로 배관 파열이 심해서 배관을 더 두텁게 만들어 버렸어요. 냉각성능이 좀 감소했는데 뭐 어때요?”

에이다의 냉장고는 냉각 성능 강화대신 단열 성능 강화를 꾀했다. 벽 샘플을 확인하니 나무판 사이에 미네랄 울, 암면을 넣어서 어떻게든 단열 성능을 높이려 하였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냉장고의 성능은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외부 온도의 영향이 큰 기계라서 우물물보다 조금 시원한 수준의 냉차(冷茶)를 마시는 것이 전부였다.

“앞으로 냉매도 개량하고 구조도 개량하고 할 일이 태산이에요. 소형화도 추진해서 흄 후드의 펠티에 소자 대신에 사용하면…….”

“일단 숨부터 고르고 말하세요. 그나저나 저기 유나 아니에요?”

“네 맞아요! 유나도 재능이 뛰어나서 이제 국립이학대학에 입학할 예정이에요. 벌써부터 학자들이랑 토론을 하네요!”

일준이와 에이다의 딸 조유나는 17세라서 슬슬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고작 입시생인데 방문객 사이에서 이미 이야기를 나눌 정도의 지식을 갖추다니. 에이다는 옆구리에 팔을 붙이고 고개를 돌리면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제 선친이신 바이런 경의 문학적 소양! 여기에 닐슨의 관찰력과 독창성! 그리고 저의 수학 실력! 모두를 겸비한 위대한 학자의 씨앗이지요!”

“뭔가 좀 아니긴 한 것 같은데 대충 옳다 칩시다.”

일준이도 절대 부족한 사람은 아니다. 수재에 속하기는 하는데 과학적 사고방식과 미래 지식으로 버티고 있을 뿐, 천재인 에이다와 비교하면 태양과 달 수준의 재능 차이가 난다.

불행 중 다행으로 태양과 달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은 태양을 한없이 닮아 있는 것 같았다.

순간 내 아들인 은찬이가 생각났다. 녀석도 머리가 부족하지는 않은데 선행학습을 많이 시켜서 그럭저럭 수재 수준에 불과하지.

잠시 뒤, 개회식이 끝나고 2시간이 지나자 일준이의 발표회가 시작되었다.

미리 예정된 대로 외부대신 권한으로 일준이의 발표회에 참가하였다. 녀석은 이 자리에서 설파제를 <시험용 약물>이라는 명칭으로 발표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약효와 치료할 수 있는 질병에 대한 설명. 샬레에서 배양한 세균을 무너트리는 설파제의 효능을 말하였다. 그리고 다음 순서부터 본격적으로 공세에 나섰다.

“지금까지 제가 찾아낸 과학적 지식과 이를 응용한 발명품은 실용화가 된 직후부터 즉각 특허를 판매하였습니다. 이 원칙을 이번 신약 개발만큼은 어길 생각입니다.”

“원칙을 어기신다면 특허 및 제조법의 판매 시기는 얼마나 늦출 예정이십니까?”

“제품이 시판되고 삼 년 이상 흐른 다음부터 판매할 겁니다. 혹시나 경쟁 상품이 나온다면 더 빠르게 판매할 수도 있겠지요.”

일준이는 이번만큼은 자신의 원칙, 과학 발전을 위한 무제한적 공유를 어기겠다고 공언하였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시대의 표준적인 방침, 다른 과학자가 제조법을 발견하거나 복제 약품이 나오는 시점까지 특허를 유지하는 방침이다.

전 세계에서 몰려온 의학자, 과학자 그리고 군부 인원들은 일준이의 눈치를 살피다 질문을 하였다.

“가격은 얼마 정도로 예상하십니까?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일천 회 투약 분량을 제공하셨다면 그리 비싼 물건은 아닌 것 같은데요.”

“원가는 얼마 안 되지만 여기 들어간 연구비가 수십만 파운드에 달합니다.”

“출시까지 몇 년 정도 걸리실 것 같습니까?”

“현재 오스만 제국에서 시험한 결과를 입수하였습니다. 품질 개량과 대량 양산 및 판매를 감안할 때 1855년 1월에 첫 제품을 전 세계에 동시 출시할 겁니다.”

일준이가 전에 말해주길 설파제는 이미 양산과 판매가 가능한 물건이라 했었다. 다만 최고로 좋은 배합비와 효율 증가를 위하여 판매시기를 조금 늦추었다.

결국 1년 4개월 뒤 설파제가 출시될 예정이라는 소리다. 과학자들은 다음 질문을 하였다.

“약의 부작용으로 피부 발진, 호흡 곤란, 무력감 그리고 혈관 손상 등이 있습니다. 이 사항은 어떻게 처리할 예정이십니까?”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이런 과민 반응을 막기 위해…….”

2시간의 질문 및 답변시간이 끝나고 일준이는 지친 표정으로 휴게실에서 늘어져 있었다. 녀석은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눈을 양손으로 부비며 푸념을 시작하였다.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모르는 약물을 몸에 넣는다며 타박하는 놈은 양반이네. 아예 작정하고 정보를 뽑아가려고 감염 질환에 대한 치유 방법을 물어보잖아.”

“그냥 세균을 파괴한다, 이 말이면 끝나지 않나?”

“그건 페니실린이고 설파제는 뭐였더라.”

녀석은 한동안 머리를 긁적거리다 기억났다는 듯이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세균의 분열 번식 과정에서 특정 물질의 합성을 저해하는 작용이야. 좀 쉽게 말하면 세균을 굶겨 죽이는 방식이라 효과가 약할 수밖에 없지.”

“그럼 페니실린을 현미경으로 관측하면 설파제와 작용이 다르다 이 말이야?”

“제대로 만든 페니실린은 세균의 세포벽을 녹여서 죄다 궤멸시키지. 그게 실험실 환경에서는 작동할 수 있지만 실험실 밖이라면 어떻게 될까.”

일준이는 낄낄거리면서 웃더니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허리를 풀고 팔다리를 휘적거리며 앞으로 할 일을 이야기 해주었다.

“시험용 약물 4호를 기반으로 다음 약물을 제조하면 될 것 같고. 여기에 이번 실험에서 반성해야 할 점을 찾아서 적용하려고.”

“약물 사용에 문제가 있었어?”

“나는 설파제가 위에서 분해될 것이라 생각해서 알코올과 식염수에 섞어서 혈관에 주사했어. 그런데 혈관에 주사할 필요가 없이 그냥 복용하면 몸 전체로 알아서 퍼지더라.”

“그럼 누구나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오남용으로 항생제 내성균이 나오지 않을까?”

현대에는 수많은 항생제를 사용하여 내성균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심지어 대부분의 항생제에 내성인 균이 나와서 사람이 단순 감염으로 죽는 경우도 있고.

너 나 할 것 없이 설파제를 퍼먹으면 언젠가 항생제 내성균이 나오지 않을까.

그런 염려를 하며 일준이를 바라보았는데 녀석은 피식 웃으면서 답하였다.

“내 예전 여자 친구가 말했던가?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연구하던 주제가 항생제 내성균이었다. 이 명칭이 MRSA인데 맨 앞의 M자가 메타실린 계열 항생제라는 뜻이야.”

“그러면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 같아서 걱정되는데.”

“설파제의 내성 형성 속도는 느린 편이이라 수십 년쯤 지나면 내성균이 생겨나겠지? 그러면 페니실린이 상용화될 거고 이후 다른 항생제도 생겨날 거야.”

일준이는 옷깃을 정돈하고 스카프를 고쳐 매고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앞으로 할 일도 많아, 이제 우리도 오십이 넘어가는 나이니까 후계자를 준비해야지.”

“난 이미 관원 몇 명을 외교 전담반으로 편성했다. 넌 어때?”

“다음 순서로 내 후계자인 파스퇴르와 파브르의 발견이나 보러 가볼까.”

박람회는 앞으로 한 달 넘게 개최될 예정이었다.

볼 것도 많고 할 것도 많은 입장이라 일준이의 뒤를 따라 다른 발표회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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