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218화 (215/345)

218화

19장 1화 크림 전쟁(3)

대한제국에서 가져온 물건 중 가장 먼저 사용된 물건은 세탁기였다. 에이다가 만들어둔 세탁기들은 현장에서 개조되어 쉴 새 없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세탁기에 장착된 세 개의 통은 한 개의 증기기관에 연결된 구조였다. 이 통의 회전축은 간단한 기어 변환과 통 조절을 통해 힘과 회전 속도를 통제할 수 있었다.

대한제국의 기술자들과 영국의 기술자들은 즉석에서 협력을 실시하였다. 잡아들인 포로를 인력으로 사용해 세탁기를 보조하였다.

“세탁 과정만 기계가 담당하게 합시다. 헹굼이나 탈수는 사람을 동원하면 되겠군요.”

“거대한 그물을 사용하지요. 강물에 군복을 담은 그물을 넣어두었다가 한나절이 지난 뒤 꺼내서 물로 헹구면 간단히 해결됩니다.”

“건조는 수동 건조기로 꾹 짜낸 다음 널어놓으면 되고. 포로 많아서 좋네!”

세탁기 한 대당 하루 육백 벌이 넘는 군복 상하의를 세탁하였다. 통에 적당히 헹군 군복을 넣고 비누를 적당히 투입한 다음 30분 정도 가동하면 세탁이 끝났다.

병사들은 쉴 새 없이 석탄을, 간혹 석탄 대신 연료로 쓸 수 있는 잘 마른 나무를 가져와 불을 때며 세탁기를 가동했다.

포로들은 세탁이 끝난 통을 뒤엎어 군복을 헹구고 건조했다. 영국군이 이 지역을 점거하고 보름이 지날 무렵, 병사들은 모든 옷을 세탁한 다음에도 시시때때로 세탁기를 가동했다.

에이다가 설계한 세탁기는 어느새 워싱(washing) 상사라 불리며 병사들이 장난스럽게 경례를 할 정도로 추앙받았다. 문제는 이 세탁기의 사용 순서였다.

“병사 여러분들! 병원에서 더럽혀진 침대보와 붕대들도 세탁해야 하는데요?”

의사들은 수술도구를 관리하였고 간호사들은 이외의 병실 물품을 관리하였다. 간호사의 대표 격인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이 물품들을 세탁하기 위해 며칠을 기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녁 늦게야 줄을 설 수 있어서 세탁기를 사용할 수 없었다. 조금의 양보를 부탁하였으나 군인들은 콧방귀를 뀌면서 그녀를 윽박질렀다.

“입 다물고 워싱 상사님께 인사드릴 차례나 기다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정 원하면 우리처럼 아침 먹고 바로 인사를 드리든가!”

병사들의 타박을 듣고 물러난 나이팅게일은 눈을 부라리며 세탁기를 노려보았다.

그날 밤, 세탁실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다음 날 막 일어난 대한제국 기술자는 세탁실에서 올라오는 연기를 보고 속옷 바람으로 뛰어갔다.

“이런 망할! 정훈이 멍청한 자식아! 증기기관에 불 끄고 간다고 말했잖아!”

자신의 부사수가 세탁기를 엉망진창으로 다루어 화재가 났다 생각한 기술자는 세탁실 인근에서 자연스럽게 멈추었다. 증기기관은 정상 가동되고 있었다.

옷을 챙겨 입고 세탁실의 문을 확인했는데 자물쇠가 망치로 박살 나 있었다.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자 검은 머리의 간호사가 정중하게 인사를 하였다.

“아 죄송해요, 워싱 상사님에게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선객이 많아서요.”

“지금 대체 뭘 한 거요! 그 세탁기는 어떻게 가동하였소!”

수많은 병원복과 침대보 그리고 엉키지 않게 코가 가느다란 그물로 감싼 붕대들이 쉴 새 없이 세탁되고 있었다.

나이팅게일은 기술자에게 대수롭지 않게 말하였다.

“영국에도 기술자는 있잖아요? 설명서를 보고 가동할 수 있던걸요?”

기술자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잠시 뒤, 아침식사를 마치고 자신의 의복을 세탁하려던 병사들은 산더미처럼 쌓인 세탁물을 확인한 뒤 따지고 들었다.

“세탁실 가동시간 이전에 멋대로 문을 따고 들어와?”

“로버트 리스턴 휘하의 군의관 소속입니다. 저는 꼭 할 일을 하였는데요.”

군인들은 당장이라도 침대보와 환자복을 비롯한 물건들을 끄집어내려 하였다. 마침내 간호사의 대표인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앞으로 나서서 말하였다.

“여러분이 부상을 입고 병상 위에 올랐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오염물질이 가득한 침대 시트로 인해 패혈증에 시달리는 대신 멀쩡히 치유되는 게 좋겠지요?”

“그 더러운 군복으로 인해 병에 시달리는 건 생각해 본 적 없나?”

“통계적으로 침대를 비롯한 병실 기구와 환자복이 병을 전파하는 가장 큰 원인이더군요.”

나이팅게일이 건넨 통계를 글을 읽을 줄 아는 병사가 확인하였다. 이미 몇 곳의 병원을 순시한 나이팅게일은 이들의 통계를 보여주며 말하였다.

“저희는 더 많은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또 다른 병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이래도 군복을 세탁하실 건가요?”

논리적인 대답에 병사들도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렇게 세탁기가 가동되는 와중에 또 다른 기구들이 실험 대상에 올랐다.

로버트 리스턴은 단 6병이 남은 설파제를 가장 요긴하게 사용하려 하였다. 절단 수술 환자들에게 에테르를 시험하며 최적화된 분량을 찾아 나갔으며 수술 대상을 선별하였다.

그러던 중 이 시대에는 절대로 치료할 수 없는 환자가 도착하였다. 복부에 엄지손가락 크기의 파편이 박힌 부상병이 이송된 것이다.

“선생님, 제가 가망이 있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가망이 없네. 파편의 위치를 보니 자네의 장기가 찢어졌을 거야.”

내장 수술은 꿈조차 꾸지 못하는 시대였다. 기껏해야 아주 운이 좋아 약간 찢어진 내장이 봉합되는 경우라면 몰라도 이외의 경우에는 환자의 명복을 빌어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버트 리스턴은 단 한 번의 수술을 준비하였다. 그는 간청하듯이 부상을 입은 병사에게 말하였다.

“미안한 말이지만 자네에게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 하네. 복부를 절개하고 파편을 제거한 다음 손상된 내장을 봉합하는 시술이지.”

“살 가능성이 있습니까?”

“나도 몰라, 오로지 주님의 자비하심을 원할 뿐이지.”

성호를 그은 로버트 리스턴은 착잡한 표정으로 병사를 내려다보았다. 병사는 여전히 피를 뿜어내는 상처를 바라보고는 덤덤하게 말하였다.

“며칠이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르는데 꼭 살아서 이 엿 같은 세상에 욕이라도 하고 싶군요.”

“내가 최고의 준비를 해보겠네. 그럼 잠시 기다려 보도록.”

로버트 리스턴은 이미 황도연을 비롯한 의사들과 수술 계획을 세워두었다. 낮은 온도에서 출혈이 덜 일어나는 걸 감안해 냉장고를 수술실로 삼았다.

여기에 출혈로 인한 사망을 방지하기 위해 동일 혈액형의 병사를 두 명이나 준비해 두었다. 수술이 개시되고 환자에게 피가 공급된 순간 절개가 시작되었다.

리스턴은 파편 주변을 절개한 순간 당황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파편은 혈관을 관통하고 대장 깊숙이 박혀 있었다. 복부 안에는 혈관이 손상되어 뿜어져 나온 피와 뚫린 대장에서 새어 나온 분변이 가득했다.

로버트 리스턴조차 이 상황에서 손을 멈추었다. 그러나 옆에 있던 간호사가 바로 손을 움직였다.

그녀는 거즈로 핏물을 빨아들이고 접시에 옮겼다. 조금씩 사라져 가는 핏물을 확인한 황도연은 더 많은 거즈를 가져오라 손짓하며 지시를 내렸다.

“잘했어! 시콜(seacole) 간호사! 소독한 거즈를 더 많이 사용하도록!”

메리 시콜은 정성껏 핏물을 닦아나가며 환부를 정리하였다. 황도연은 이 모습을 보며 리스턴을 독촉하였다.

“이제 시야가 트였습니다! 환부 소독과 세척부터 진행합니까?”

“물론이지! 혈관을 봉합하고 다음 순서로 대장을 봉합한다!”

네 명의 의사와 세 명의 간호사가 정신없이 손을 움직였다. 그들은 방법을 모르는 채로 손을 놀려 나름대로 합리적인 수술을 실시하였다.

마침내 첫 내장 봉합시술이 끝나자 리스턴은 설파제 두 병을 꺼내 환자에게 주사하였다. 하나는 복강 내부로, 다른 하나는 수혈이 끝난 팔을 통해 주입하였다.

다음 날, 에테르 마취에서 깨어난 환자는 복부의 통증을 호소하며 의사를 찾았다. 리스턴은 그의 손을 잡은 채 여러 질문을 하였다.

“고통이 심각한가?”

“죽을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수술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복부 혈관이 찢기고 대장이 꿰뚫렸네. 그나마 수습은 하였는데 어떻게 될지는 몰라.”

최대한 많은 양의 설파제를 주사 받은 환자는 이틀 정도는 상태가 호전되며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삼 일째부터 상황이 급변하였다.

미숙한 봉합으로 인해 다량의 혈전이 발생하였다. 이 혈전들은 혈관을 돌아다니며 중요 장기로 향했고, 닷새 만에 환자는 호흡곤란을 호소하다 싸늘한 시신이 되었다.

“수술이 실패하였어. 내 이럴 줄은 알고 있었는데…….”

황도연과 로버트 리스턴은 최초의 개복수술을 시도하고 처참히 실패하였다. 환자 가족에게 보낼 서신을 직접 작성하였으며 수술에 참가한 의사들이 염습을 실시하였다.

모두 시신을 염습하며 몇 번이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그러던 중 황도연의 눈길이 수술부위에 머물렀다.

“치유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수술 부위를 제대로 봉합하였고 시험용 약물도 제 효과를 발휘하였습니다!”

“분변으로 오염된 상처에 염증 반응이 없었다고?”

설파제는 기적과 같은 성과를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남은 여섯 병의 약물은 감염이 빗발칠 상황에서도 세균을 사멸시킬 능력을 갖추었다.

유럽의 의학 종사자들은 대한제국의 <시험용 약물>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과학자들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이를 통해 대한제국에서 발명한 세 가지 물건에 대한 소식은 전 세계 과학계와 기술계에 퍼져 나갔다. 가장 먼저 반응한 이들은 해군 장성들이었다.

“발해함 수준의 증기선에 냉장고를 설치할 수 있다 했지? 그걸 떼어볼까.”

“대한제국에서 먼저 전신을 보내왔습니다. 해당 냉장고는 미완성 제품이며 외부 항해 및 내구성 검토 목적으로 보낸 물건이라 하더군요.”

“그러면 완성 제품은 언제 출시한다 하는가?”

“올해 8월에 열릴 국제 박람회 겸 여유당 학술 제전에서 스무 대를 우선 판매한다 합니다.”

스무 대라는 말에 장성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대영제국의 해군이라면 최소 백 대 이상을 사용해도 모자랄 수준이라 아예 의회에 예산을 요청하였다.

해군력 강화라는 명분에 예산이 편성되었다. 단기간에 최대한 많은 물건을 만들어내기 위해 대한제국에 선 발주를 요청하고 자신들도 라이선스를 구매해 양산하려 하였다.

세탁기 또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군인들은 물론 사람이 많이 모이는 모든 장소에서 세탁기를 활용하려 하였으며 여기에 가장 주목한 국가는 프랑스였다.

그다음 관심사는 영국 과학계였다. 이들은 로버트 리스턴이 증언한 신비한 약물, 설파제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였다.

“최근 닐슨 조가 연구하는 과제 중 하나가 곰팡이라 하였습니다. 듣자하니 메주라는 콩 발효식품을 기반으로 수많은 곰팡이와 관련된 자료를 취합하더군요.”

“그의 제자들도 푸른곰팡이에 관련해서 연구한 전적이 있었지요.”

조일준의 계획은 제대로 작동하였다. 특히 영국 왕립협회는 회의를 통해 조일준의 시험용 약물이 푸른곰팡이에서 추출된 페니실린이라 추측하였다.

프랑스 측에서는 명예 프랑스인인 닐슨 조를 위해 성금을 보내려 하였다. 반면 영국은 이번 기회에 조일준을 이기기 위해 무리한 수를 두었다.

“오십여 년 전에 출간된 푸른곰팡이의 연구 논문을 발견하였습니다. 해당 논문에는 푸른곰팡이가 있는 곳에는 다른 곰팡이가 번식할 수 없다더군요.”

“그렇다면 닐슨 조는 푸른곰팡이로 약을 만들어냈다?”

결국 영국 과학자들의 오판이 시작되었다. 이들은 만들어낼 수는 있으나 양산과 유통이 거의 불가능한 페니실린을 목표로 삼아 힘을 합치려 하였다.

“지금부터 모든 푸른곰팡이를 모으고 정제합시다. 이번에는 닐슨 조를 이겨야 합니다.”

“그가 시험용 약물을 만들어낸 시점에서 너무 늦은 선택 아닙니까?”

“그는 화학 방면으로는 위대한 학자입니다. 반면 생물학 방면으로는 평범한 학자이지요. 우리가 그리 늦은 것 같지는 않군요.”

영국 왕립협회가 결의안을 제출하는 사이 국제 구호협회의 활약은 전신을 통해 퍼져나갔다.

* * *

시간이 지나 대한제국에서 국제박랍회가 열릴 무렵, 크림 전쟁에 참가 의사를 표명한 자원 봉사자들이 오스만 제국으로 모여들었다.

그러한 자원봉사자 가운데는 명성을 떨치려는 자, 재산을 적당히 풀어놓아 모범을 보이려는 자, 최신 기술을 훔치려는 자, 그리고 자신의 사상을 전파하려는 극소수의 사람이 있었다.

이들은 거창하게도 <포로의 정신건강을 위한 상담소>라는 장소를 마련해 두었다. 아직 심리학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이기에 이들의 치료는 돌팔이에 가까운 상담이었다.

“자, 호흡을 천천히 하시고 마음속을 들여다보세요. 무엇이 보이죠?”

“고기가 들어간 보르쉬요.”

어설픈 심리 치료를 하는 수준은 양반이었다. 여러 과학자들에 의해 들통 나버린 강령술사도 있었으며 이외에 수많은 사기꾼들이 자신의 이론을 설파했다.

그리고 가장 엉뚱한 사람이 있었다. 인도에서 지난 몇 년 동안 고된 시련을 겪은 카를 마르크스는 포로를 위한 강연을 실시하였다.

“제가 다녀온 인도는 카스트라는 불합리한 분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카를 마르크스는 신 페인 독립운동과 인도에서 머무르며 만들어둔 인맥으로 가장 많은 인원에게 강연을 실시하였다. 여기에 이 강연에 참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러시아 포로들에게 부과된 노역은 이 강연회에 참가한 순간만큼은 면제되었다.

물론 마르크스의 강의를 제대로 듣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대다수의 포로들은 꾸벅꾸벅 졸아댔으며 몇몇 지식인만이 강연에 주목하였다.

“마르크스 강사님에게 질문이 있습니다. 인도에서 도망친 것입니까 잠시 물러난 것입니까?”

“부끄러운 말씀이지만 도망쳤습니다. 저는 제 이론을, 프롤레타리아의 봉기를 설파하였으나 인도인들은 프롤레타리아와 비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카스트를 만들어내었습니다.”

마르크스는 한 치의 부끄럼도 없다는 표정으로 당당하게 말하였다.

인도는 공산주의 사상조차도 건드릴 수 없는 거대한 신분제로 서로를 옭아매고 있었다. 지배층은 자신이 지배층으로 군림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하층민은 자신이 하층민인 것을 당연히 생각한다.

마르크스는 당시의 일을 되새기듯 이야기했다.

“인도는 각 계층을 분업화하여 서로를 얽어매는 지역입니다. 세습적으로 전파되는 분업은…….”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있던 포로들의 고개가 푹 숙여지고 아예 침을 흘리며 자는 사람까지 생겨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의 강연은 계속되었다.

“제가 이 자리에 온 이유는 또 다른 불합리를 겪는 국가를 계몽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거기! 졸고 계시는 분! 당신은 이 자리에 왜 왔습니까!”

“네! 저 저요!?”

“그렇습니다! 그 뒤에서 세 번째 계시는 분! 거기서 오른쪽으로 여섯 번째 계시는 분! 이 자리에 왜 오셨습니까!”

얼떨결에 자리에서 일어난 세 명의 포로는 입에서 흐른 침을 닦아내고 눈을 껌뻑거렸다. 그러고는 서로를 돌아보다 말하였다.

“저는 친구와 술을 마시다 말싸움을 했다고 끌려왔습니다.”

“저는 나리께서 잠시 일 좀 하자고 부르셔서 왔습니다.”

“저는 규정대로 여섯 달 동안 복무하던 중 마지막 날에 여기로 왔습니다.”

“보십시오! 이게 문제입니다!”

마르크스는 탁자를 부숴 버릴 기세로 세차게 내려치고 삿대질을 하였다. 그리고 러시아의 바보 이반들이 모르고 있는 이 세상의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여러분이 제대로 된 봉급을 받습니까? 봉급이 없을 수도 있지만 제대로 된 지휘를 받았습니까? 하다못해 제대로 된 무장을 갖추고 전선에 투입되었습니까?”

마르크스가 손짓을 하자 프랑스 군인 세 명이 푸른 제복을 입은 채 단상 위에 올라섰다. 한때 적군이었던 자들에 대한 경계심과 증오가 잠시 비추었지만 이들은 외모부터 달랐다.

전장에서 구르다 와서 온몸에는 작은 상처가 가득하고 군화와 군복에는 흙먼지가 묻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옷에는 찌든 때가 별로 없으며 건강 상태도 양호하였다.

마르크스는 이 격차를 확인시킨 다음 질문을 하였다.

“이 근처에서 근무하던 분들을 불러왔습니다. 각자 얼마의 봉급을 받고 계십니까?”

“저는 파리 근위대에서 차출된 소위라 연봉 기준으로 천사백 프랑을 받습니다.”

“제 계급은 상등병이라 육백오십 프랑 정도를 받습니다.”

마르크스는 프랑스와 러시아의 격차를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10배에 달하는 급료 차이, 강제 징집이 아닌 자발적인 징병 구조 그리고 지휘관의 재량 차이를 알려주었다.

“여러분을 버리고 도망친 졸렬한 지휘관들이 어디서 튀어나왔을 것 같습니까! 사관학교에서 제대로 된 장교 교육도 받지 않고 그저 혈통 하나로 먹고사는 부르주아지가 아닙니까!”

바보 이반들의 사상을 뒤엎는 충격적인 내용이 계속 알려졌다. 그 내용에 의하면 러시아만이 유럽에서 뒤떨어진 국가라는 사실이 계속 알려졌다.

기나긴 강연회가 끝나고 밤이 되었다. 메마르고 부르튼 목을 생강차로 다스리던 마르크스는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누구시오.”

“마르크스 강사님을 만나고 싶다는 포로들이 있습니다. 어찌할까요?”

마르크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환호성을 지르려다가 이를 억눌렀다. 마침내 자신의 강연에 의해 눈이 뜨인 사람들에 대한 찬사를 억누른 채, 무덤덤하게 말하였다.

“들어오라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곧 포로를 인솔하여 방문하겠습니다.”

마르크스는 미리 난로 위에 주전자를 올리고 손님을, 자신의 제자를 맞이할 준비를 하였다.

“신 페인 독립운동은 시작에 불과했어. 첫 혁명은 러시아에서 시작하고 이 물결을 인도까지 끌어들여야 한다.”

마르크스의 위대한 공산주의 혁명은 방향성이 생겨났다. 노동자들의 일치단결이라는 거대하고 원대한 목적의 시작점과 일시적인 종점을 마련한 것이다.

그는 갈등을 품고 있는 러시아를 시작으로 혁명을 촉발할 계획이었다. 이후 열강의 각성을 촉구하고 프롤레타리아의 주권 상승과 자본가의 타협을 권고할 생각이었다.

대한제국처럼, 최소한 영국 수준으로 자본가의 타협을 권고한다. 여기에 응하지 않으면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그 혁명의 마지막 순서는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체제가 가동되는 인도였다.

“러시아를 시작으로 공산주의 국가가 만들어지면 그 물결이 다른 나라로 향하겠지. 그나저나 한센 박의 주장대로 청나라는 해당 사항이 없다고 써볼까.”

계획을 정리한 마르크스는 강의 내용을 예상해 조사한 뒤, 강습을 시작하였다.

이후 식자층으로 활약할 기회를 놓친 채 군대에 끌려온 병사들은 마르크스의 사상에 점차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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