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214화 (313/345)

214화

18장 10화 사립 대학(2)

대한제국은 사립대학 설립에 필요한 자료를 여러 방면으로 수집하였다. 사립대학의 학위 제도나 각종 인증 그리고 등록금 관련 문제를 방지하기 위한 경험 축적 개념이었다.

이 과정에서 대한제국이 세운 관여한 대학, 정확히는 국립이학대학의 후손격인 가쿠슈인(学習院)이 부각되었다.

대학의 총장 겸 대한제국 유학파를 인솔하는 이하응은 이미 3년 째 가쿠슈인의 총장직을 역임하였다.

그는 대한제국에서 보내온 서신을 읽고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태조대왕께서 나라를 세우실 때 주희의 학문을 퍼트리기로 하였지. 이 근본중의 근본이 백성을 깨우치는 것인데 이를 나날이 이룩하고 있구나.”

이하응은 당장이라도 총장 자리를 내려놓고 모든 힘을 동원하여 사립대학을 만들어 낼 생각에 손을 쥐락펴락 하며 흥분하였다.

그는 반사적으로 붓을 들고 섬세한 손놀림으로 난초를 그려냈다. 난초를 그려내며 마음을 정돈하자 흥분이 사라지고 마음이 잠잠해져 냉정하게 상황을 평가하였다.

“이미 일본에 건너와 제자를 가르치고 있는 몸이 대한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

그는 이미 대학 총장을 역임하여 대한제국에서 오래 머무를 수 없는 입장이다.

대신 대한제국의 학문 발전을 위해 가쿠슈인에서 제자를 육성한 과정, 방법 그리고 문제점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한동안 붓을 놀려 이를 정리하고 있자니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총장님, 귀족원 회의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알겠네. 의복을 정돈하고 곧 귀족원으로 나아가도록 하겠네.”

작성하던 보고서를 살펴본 이하응은 이를 옆으로 치워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평상시 입고 있던 강의용 양복 대신 도포자락을 입고 갓을 쓴 채 문을 열고 나섰다.

가쿠슈인은 조일준의 효율성을 중시한 설계가 반영되었다. 교토의 귀족들은 딱딱하고 정서가 부족하다며 반박하였으나 이하응 입장에서는 학문의 전당에 꼭 필요한 물건만 있었다.

“총장님을 뵙습니다!”

어린 티를 막 벗은 청년이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하였다. 이하응은 그 청년의 외모를 살펴보고 정체를 알아차렸다.

촌마게 대신 서양식 두발, 머리를 풍성하게 기르고 기름을 발라 빗어 넘긴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자네는 작년에 입학한 하지카타 아닌가?”

“제 이름을 기억해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기숙사에 솜 부인 세 개를 들여온 제자를 내가 모를 것 같나?”

하지카타 토시조는 시부타쿠죠, 아편 단속을 위해 창설된 조직에서 견습생으로 활동했다. 그가 정식 대원으로 승격할 무렵 아편 단속이 일차적으로 완료되었다.

토시조를 비롯한 견습생들은 이 과정에서 여러 성과를 거두었고 가쿠슈인의 학생으로 발탁되기에 이르렀다. 문제가 있다면 이들이 교토의 문화에 너무 잘 빠져들었다는 점이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알면 되었네. 그나저나 일본은 참…….”

이하응은 혀를 끌끌 차며 복도를 걸어나갔다. 복도는 콘크리트 폴리싱, 바닥에 작은 자갈과 콘크리트를 뿌려 갈아내 내구성을 높인 구조였다.

빈번한 지진을 감안하여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을 설치하고 튼튼한 이중창을 두었다. 이런 삭막한 복도와 달리 강의실은 다다미가 깔리고 일본식 목조 창문이 설치되었다.

이미 귀족원에서는 마차를 보내두었다. 예전과 달리 잘 정비된 교토의 길거리를 보며 이하응은 마차에 올라타 말하였다.

“아직 여유가 있으니 조금 천천히 말을 몰게.”

이하응의 부탁대로 마차는 천천히 북쪽의 교토교소, 귀족원으로 움직였다. 그는 일부러 창문을 열고 차가운 겨울바람을 쐬며 한 건물의 안내판을 바라보았다.

<포은 사당, 이곳에 잠들어 있던 수많은 조선인들의 넋이 안식을 취하기를>

가쿠슈인의 입구와 연결된 대로가 끝나는 지점은 이제는 포은 정몽주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며 예전에는 역사의 비극인 코무덤이 있던 장소였다. 옛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옛 실수를 대대손손 알리기 위하여 이런 행동을 하였다.

이하응이 올라탄 마차는 교토 시내를 천천히 가로질러 교토 왕궁의 회의장에 도착하였다.

“총장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제법 일찍 오셨군요.”

“나야 어디서 굴러 들어온 돌이니 눈치를 보아야지.”

이하응은 교토 왕궁에 설치된 회의실에 입장하였다. 일본은 막부와 각 지방의 다이묘를 중심으로 한 하원(下院), 교토의 귀족을 중심으로 한 상원(上院)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직 막부와 다이묘 간의 알력다툼이 끝나지 않아 하원은 가동되지 않았다. 대신 교토의 귀족들과 각 번의 번주(藩主)들 그리고 정제계의 인사 10명을 상원으로 임명하였다.

“제 십칠 회 상원의원 회의를 실시하겠습니다.”

도쿠가와 가문 당주이자 차기 쇼군이 될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앳된 티를 억지로 감추며 회의의 시작을 알렸다. 서로 눈치를 보면서 예의를 차리다가 의제가 하나둘씩 올라왔다.

“아편 단속이 어느 정도 완료된 것 같습니다. 이제는 산골짜기에서 양귀비밭을 일구는 놈들만 남아 있으니 이대로 방치해도 될 것 같습니다.”

“방치하면 안 됩니다. 아편을 한번 맛 들이면 끊기 지극히 힘들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시부타쿠죠의 정예 인원을 계속 산속에서 돌아다니게 만들 생각이십니까?”

치안과 관련된 안건이었다.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편을 나누었으며 거수투표를 통해 최종 결론을 내렸다.

“거수투표 결과는 열두 표 차이로 아편 단속 유지가 승리하였습니다. 이 의견을 아직 가동되지 않는 하원을 대신해 각 번에 전할 겁니다. 그럼 다음 의제를 진행하시지요.”

“다음 의제는 비료 생산과 관련된 것입니다. 가쿠슈인 총장께 여쭈어볼 것이 있습니다.”

이하응은 의원 자격보다는 기술 및 학문 관련 자문위원에 가까운 위치였다. 그는 자신의 제자이자 옛 난학자들의 성과를 자랑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보고를 하였다.

“마침 비료 생산이 더 증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올해부터 대한제국에 보낼 물량을 제외하고 일본 내부에서 소비할 양의 비료를 가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하면 대한제국으로 수출하는 물량을 제외하고 말합시다. 이 일본국의 모든 농민들에게 비료를 나누어 주려면 시간과 자금이 얼마나 필요합니까?”

“시일은 삼 년, 자금은 지금의 두 배가량을…….”

다시 투표가 진행되고 예산이 승인되었다. 하원이 각 막부 간의 알력다툼으로 가동되지 않는 시점이라 어디까지나 각 번에 대한 권고를 보내는 것이 전부였다.

이는 에도 막부와 긴밀한 협력을 맺은 교토의 덴노와 귀족들이 만들어낸 구조였다.

권력의 핵심을 덴노에게 돌려주되 이들은 권력을 남용하지 않고 백성을 위한 ‘권고’를 하는 방식이었다.

이하응은 이 과정을 통해 일본이 점진적으로, 여러 사정을 고려해 발전할 것이라 판단하였다. 설령 폭주하려 하여도 군사력이 미진하여 외부로 힘을 투사하지 못하리라.

“다음 의제입니다. 근래에 들어 사카이를 시작으로 솜 부인이 유입되지 않았습니까?”

“솜 부인 말이오? 영길리를 비롯한 외국에서 수입한 그 물건들 말이지.”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뭣합니다만 아무튼 이런 물건을 만들었습니다.”

물건이 공개되자 회의장이 탄식과 비통함의 물결로 가득 차버렸다. 헛기침을 몇 번이고 한 의원은 이 흉측한 물건을 숨기고 전말을 이야기하였다.

“실크 스크린이라는 인쇄기술을 익힌 목판화가들 여럿이 협력하여 이런 물건을 찍어내고 있습니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청출어람이라 했는데 저딴 물건을 더욱 승화하여 만들어낼 줄이야.”

“기존 솜 부인을 복제할 기술이 없어서 안심하였지요. 반면 이 물건들은 찍어내서 만드니 가격이 싸고 내구성이 약해서 마구 번져나갈 겁니다.”

“당연히 세금을 부과해야지. 오 할의 세금을 부과합시다.”

투표 결과는 만장일치였다. 이하응은 이 모습을 보면서 일본의 폭주 방향이 기괴하게 뒤틀려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였다.

박현상이 권고한 방식대로 일본은 군사적이며 폭력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대신 그가 권고한 다른 물건들이 음습하고 기괴한 방식의 발전을 일구어냈다.

회의가 끝나자 이하응은 일본의 미래를 생각하며 저절로 표정이 일그러졌다. 의원 중 한 명이 아는 체를 하며 이하응에게 질문을 하였다.

“총장님께서는 왜 그리 탄식하십니까?”

“나중에는 솜 부인을 자신의 아내로 삼아 혼약을 치르는 사람이 생겨날 것이라 상상하였소.”

교토 공가(公家 - 고위 귀족) 출신의 의원은 놀란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이하응을 사람이 없는 구석으로 안내하여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사실은 제 둘째 아들 놈이 혼사를 치를 나이가 되었는데 아내에게는 관심도 없고 솜 부인만 사들입니다. 그리고는 보로서에서 수입한 피구어(Figur – 입상)를 달고 살던 데요.”

“보로서에서 수입한 입상? 혹시 손가락만 한 물건 아니오?”

“그 물건은 대한에서 만든 전투기교지 않습니까? 녀석이 다루는 입상은 군복을 입은 병사의 모습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나무로 불상도 아닌 솜 부인의 형상을 깎아내더군요.”

의원은 대충 손바닥 두 개 크기의 물건이라면서 손짓 발짓으로 이를 묘사하였다. 이하응은 가쿠슈인에 머물며 그러한 물건을 몇 번이고 본 적이 있었다.

상세히 살펴보지는 않았으나 기숙사 창문에 그러한 물건의 그림자가 비친 적이 있었다. 의원은 이하응의 표정을 살펴보며 한탄하듯 말하였다.

“이러다가 혼인도 못 할 것 같아 지극히 염려됩니다. 혹시 가쿠슈인에 입학하면 교정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내가 학생들의 구락부(俱樂部 - 동아리)에 관여하지 않기는 하는데…… 그런 구락부가 가쿠슈인에 여럿 있을 것 같소.”

일본은 대한제국을 통해 여러 문화를 수입하며 이를 유통하였다. 이렇게 수입된 문화의 대부분은 귀족이나 부호 계층을 통하여 아무런 검열과 제지 없이 유통되었다.

특히나 3년 전부터 수입된 솜 부인이 문제였다. 유럽에서는 판매조차 못 하고 음습하게 거래되는 물량들이 일본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대한제국과의 거래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시세 이득을 본 귀족들은 물건의 정체도 모르고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결국 부유층 자제들이 이 물건을 가지게 되었다.

솜 부인은 귀족 자제들의 고상한 취미가 되었으며 위에서 아래로 점차 전파되었다. 자신이 아들에게 솜 부인을 선물한 것을 까맣게 잊은 의원은 이하응에게 매달리며 애원했다.

“그럼 가쿠슈인에 입학하면 증세가 더욱 악화된다는 말이 아닙니까! 첫째는 몸이 허약하여 둘째를 믿었는데 아예 솜 부인과 혼약을 하는 꼴이라니!”

“일단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다른 취미를 붙여보는 게 좋을 것 같소이다.”

의원은 몇 번이고 인사를 하며 이하응에게 감사 의사를 표하였다. 가쿠슈인으로 돌아간 이하응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나 불이 켜진 동아리실의 문을 열었다.

하지카타 토시조를 비롯한 청년들은 책상 위에 현대의 중형 피규어와 흡사한 물건을 올려두고 가느다란 붓으로 이를 채색하고 있었다.

“총장님 아니십니까!”

모두 이하응을 보자마자 질겁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막 채색이 완료된 피규어를 들어본 이하응은 할 말이 없다는 듯이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 이런 물건을 구락부에서 만들 줄 알았지.”

여기에 모인 학생들은 대부분 성적 우수자이며, 이들이 색칠하는 피규어는 헐벗은 차림새라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이하응의 예상대로 일본의 뒤틀린 욕구는 기괴하고 음습한 방향을 택해 극단적으로 발전하였다.

그는 샌드위치를 먹다 반 마리만 나온 바퀴벌레를 보듯 방 안을 살펴보다 몸을 돌리고 말하였다.

“내 이딴 머저리 같은 일이 대한제국 사립대학에서 일어나는 꼴은 못 보지.”

총장실로 돌아온 이하응은 분노를 가득 담아 서신을 작성하였다. 각 구락부를 금지하지 않되 여러 사람을 만나고 건전한 취미를 붙일 수 있는 제대로 된 방향을 제안하려 하였다.

“생각해 보니 그냥 유학을 자주 보내면 될 일이지. 거기서 건전한 취미를 붙일 것 같군.”

종이를 옆으로 집어 던진 이하응은 사립대의 국비유학을 제안하였다. 제대로 된 강의를 이행한 대학은 더 많은 유학생을 보낼 수 있다.

설령 유학을 원하는 이가 성적이 부족해도 사비(私費)유학이 가능하게 만들면 되리라.

이하응은 분노와 증오를 억누른 채 서신을 작성하였다.

* * *

사립대학 설립은 여러 분야의 의견을 취합하여 신속히 정리되었다. 강의 규정은 일준이가 예전에 기초 강의 서적을 만든 시점에서 반 정도 해결되었다.

지원금은 전체 대학 소모 자금의 절반으로 설정되었고 이외에 많은 고안이 이루어졌다. 김좌근은 간만에 정시 퇴근을 하면서 나에게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자네들의 제안 덕분에 내가 수명이 또 줄어든 것 같다니까.”

“앞으로 사립대학 총장들에게 욕을 거하게 드실 것 같은데 이백 살은 사실 것 같군요.”

“그럼 수명이 백 년은 줄어들었다 생각하게. 그나저나 황제폐하께서도 참 대단하시지.”

김좌근은 푸념을 늘어놓다시피 효명제의 정책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교육세를 도입하면서 대한제국의 전체 세금은 26% 정도로 증가하였다.

“내가 조금 과도하게 올리는 것이 아니냐고 간언하였지. 그러더니 뭐라 하시는 줄 아는가?”

“청나라와의 전쟁이 벌어지면 세금을 삼 할 이상으로 증가할 것이라 하셨을 것 같습니다.”

“바로 봤네. 세금을 사 할까지 올릴 수도 있는데 삼 푼(3%)의 증가가 대수냐 하시더군.”

“그래도 장기적으로 보면 이득입니다. 당장 글을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 더 많은 인재가 나라를 위해 헌신할 수 있겠지요.”

아마 6년 정도 지나면 한양의 백성 중 5할가량은 글을 깨우칠 수 있으리라. 여기에 제대로 된 학문에 발을 들인 대학생도 꽤 많이 육성되겠지.

김좌근과 박규수의 희생 끝에 11개의 사립대학이 등록되었다. 이 대학들은 기존에 문과, 사학과 그리고 철학과만 가동하던 대학이었으나 이제 최소 9개의 학과를 가동하게 되었다.

최초의 사립대학 임명을 기념하여 효명제가 친히 나섰다. 인구가 부족한 강원도, 함경도를 제외한 각 도의 중심지에 배정된 대학이었다.

“가장 먼저 경기 남부에 부설될 수원 대학교의 임명장을 수여하노라.”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사립대학은 뜻이 있는 학생들을 위하여 학문을 가르치는 곳이다. 대학의 자금 가운데 절반이 백성들의 혈세를 융통하는 것이니 학문에 충실히 임하고 삿된 욕심을 부리지 말라.”

사립대학은 제법 빡빡한 규정으로 가동되었다. 2년 주기로 강의 평가를 실시하며 이하응의 의견을 반영하여 도덕성과 건전성을 유지해야 국비 유학의 기회가 생겨난다.

이하응이 왜 저러한 조언을 하였는지 몰라도 효명제는 이 의견을 많이 반영하였다.

일준이는 수여식이 끝날 무렵 나에게 슬쩍 귓속말을 하였다.

“본래 역사처럼 이하응이 꼰대가 된 것 같은데. 쇄국정책이 어디 가겠어?”

“내가 보기엔 쇄국정책이 아니고…….”

“아니면 뭐?”

“아니다, 정말 쇄국정책일 수도 있어. 성격은 안 변하잖아?”

아무리 보아도 실시간으로 오타쿠화가 진행되는 일본에서 견디지 못하고 분노를 터트린 결과물 같았다.

이걸 이야기하고 싶어서 입이 간질거리는데 차마 이야기할 수 없었다.

일준이는 내가 만들어낸 오타쿠라면서 책임지라고 놀려댈 것 같으니 당연히 말 안 하지!

다음 순서로 국립대학 출신 강사와 석사 졸업생들이 각 대학에 배정되었다. 간혹 박사 학위 수여자들이 임명되었으나 이들 대부분은 교수직을 역임하였다.

“이제 모두가 학문을 배우고 연구를 진행하도록 하여라. 첫 연구과제는 경쟁을 위하여 공동 연구과제로 내릴 것이다.”

효명제에게 대학 총장들이 절을 올리고 행사가 끝났다. 일준이는 기지개를 켜더니 목을 꺾으며 지나가듯이 말했다.

“앞으로 설파제 만들 시간이나 될까 모르겠네. 사립대학마다 돌아다니면서 강의 진행도 확인하고 연구 결과 데이터도 취합해야 하잖아.”

“결과가 일 년 이내에 나오기는 할까?”

“시간으로 보면 메주를 두 번 띄우고도 남는데 국제박람회와 아슬아슬하게 맞아 떨어진다. 파스퇴르가 고생 좀 많이 하겠는데.”

이제 슬슬 국제박람회 관련 외교 업무도 진행해야 하는 실정이다.

과연 크림전쟁이 언제 터질까 예의주시하며 나도 업무를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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