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212화 (212/345)

212화

18장 9화 첫 동맹

몽골 이주민들이 정착하고 6개월이 지난 1852년 5월, 툼스톤은 예전의 황무지에서 어느새 애리조나 개척의 주요 거점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주요 간부들의 거주지는 대형 게르에서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춘 목조 주택으로 변하였다. 게르에 계속 머무르려 하였으나 애리조나 준주의 관리들이 방문해 아예 집을 지어주었다.

관리들은 이층 목조주택 몇 개를 지어놓고 ‘시장과 관리들의 격식을 지키자’ 라는 명분으로 거주를 권고하였다. 선물을 받은 입장에서 이를 거절할 방법도 없었다.

“참 질릴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드네.”

그런 이 층 목조주택의 옥상에서 시장 겸 이주민 대표인 소르칸이 주변을 돌아보았다. 툼스톤의 인구는 이미 사천여 명이 넘어 오천여 명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이 인원에는 자신을 ‘카우보이’라 지칭하는 제자들, 한 몫 단단히 잡으려고 곡괭이를 들고 온 광부들, 그리고 필요한 물자를 가져오는 장사꾼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머물렀던 게르는 원정에 사용할 물건 몇 개를 제외하고 모두 임시 숙소가 되었다.

어엿한 시장이 된 소르칸은 저 멀리서 들려오는 함성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멕시코 놈들이 국경을 넘어와서 모조리 죽였다!

-놈들의 전리품을 배분하겠다! 어서 모이도록!

“놈들이 국경을 넘어왔는지 우리가 넘어갔는지는 몰라도 훈련을 아주 잘하고 있군. 평화로운 세상이야.”

몽골 기준으로는 평화로운 세상이요 미국 기준으로는 야만과 폭력이 가득한 세상이었다. 저 멀리서 종이 울리며 주요 간부의 도착을 알렸다.

소르칸은 몽골인의 시력에 더해 쌍안경으로 북쪽을 확인하였다. 얼마 전 피닉스에 다녀온 알타이가 한 무리의 사람들과 함께 귀환하고 있었다.

몽골 이주민들의 외교대사 겸 거래를 주도하는 자는 가장 영어에 능통한 알타이였다. 그는 사방을 돌아다니며 필요한 물건을 구하고 투자자를 유치하였다.

시장 저택이라 불리는 소르칸의 집에서 회의가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알타이가 보고를 시작했다.

“부호들에게 연락이 왔는데 다음 달에 소가 더 많이 올 예정입니다. 그 소가 도착하면 소의 숫자는 도합 사만여 마리, 말은 삼만여 마리가 조금 안 됩니다.”

“그 정도면 복수를 준비하면서 숫자를 불리기에 적당하군. 그럼 또 보고할 사람 있나?”

“좀 놀라실 것 같은데 이 물건을 가져왔습니다.”

나무 상자를 탁자 위에 올려놓은 간부는 뚜껑을 열고 내용물을 보여주었다. 그 안에는 작고 다루기 편하여 이주민 대다수가 다루는 대한제국에서 제작한 타타르 권총이 있었다.

“대한에서 미국으로 권총을 수출한 것 같은데.”

“아닙니다, 이건 죄다 미국 현지에서 생산한 물건입니다.”

“뭐? 이 최신식 권총이 미국에서 생산된다고?”

소르칸은 자신의 권총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상세히 비교하였다.

형태도 크기도 무게도 거의 다 같으며 차이점이라고는 손잡이 부분이 옻칠 대신 기름칠을 한 것이 전부였다. 시험 삼아 손 위에서 굴려보고 장전까지 하였음에도 별 차이가 없었다.

소르칸은 질린 얼굴로 간부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가격이 궁금하군. 내가 대한을 통해 권총을 구매하려 했을 때 백오십 냥이 넘었는데.”

“삼십이 달러입니다.”

“미쳤군. 대한에서 판매하는 것보다 비싸긴 한데 못 살 물건은 아니잖아?”

“저도 처음에 보고 말이 안 된다 생각했습니다. 듣자 하니 설계도를 대한에서 가져와 일 할의 수수료를 제공하고 생산한다 하더군요.”

자신들이 즐겨 사용하는 타타르 권총이 어떠한 물건인지 소르칸을 비롯한 몽골인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화승총 정도는 몽골의 부족한 능력으로도 베껴서 만들 수 있는 물건이다. 반면 권총은 베끼는 것이 불가능했다.

심지어 몇 정의 권총이 청나라에 넘어갔음에도 대한제국 고문관들은 코웃음을 치며 답변하였다.

-이 무기를 제대로 베낄 수 있는 국가는 열 개도 안 되고 대량 생산이 가능한 국가는 다섯 개도 안 되니 염려 마시오.

그 다섯 국가 중 하나가 미국이었다. 심지어 이 머나먼 서부의 촌구석에 판매할 정도로 엄청난 수준의 생산량을 자랑하였다.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미국의 까마득한 생산력과 힘을 인지하였다. 처음에는 새로운 국가를 세울 생각도 있었지만 그런 생각은 엄청난 힘을 확인할 때마다 깎여나갔다.

결국 자신들의 자치권을 인정받는 선에서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리는 수준을 꿈꾸게 되었다.

알타이는 모두의 분위기가 처진 것을 확인하고 억지로 웃으면서 말했다.

“인디언 놈들에게 수레바퀴를 굴릴 때 권총 네 자루쯤 쟁여두고 쏴대죠.”

소르칸은 잠시 머리를 굴리며 생각에 잠겼다. 자신도 몇 달을 살아 보면서 이 동네의 물가를 알고 달러라는 화폐의 가치를 이해하였다.

듬직한 황소는 40달러, 어느 정도 성장이 된 소는 15달러, 제대로 된 준마는 150달러, 그리고 아무 데나 쓸 수 있는 말은 90달러 내외의 시세가 매겨졌다.

이 가격은 서부 기준이고 동부로 넘어가면 가격이 최대 2배까지 폭증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소르칸은 손뼉을 치며 앞으로의 정책을 결정했다.

“그거 좋은 생각이군. 야생 소 세 마리를 잡아서 두 마리만 길들여도 권총 한 자루다. 주변의 야생 소나 야생마를 모조리 잡아서 훈련시키도록.”

이미 하고 있는 일이나 좀 더 열심히 하라는 소리였다. 그 말을 들은 목축 담당자는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이 동네 사람들 소나 말을 제대로 다룰 줄을 모릅니다.”

“소나 말을 제대로 다룰 줄을 모른다고?”

“저희가 소나 말을 얻게 된 이유가 있지 않습니까? 관리하고 수를 불리며 멀리 나가서 풀을 뜯게 할 인력이 부족해서지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 말에 동의하였다.

이 시대의 미국은 비옥한 농토의 압도적인 농업 생산력으로 가축을 닥치는 대로 기르고 있었다. 어찌나 가축을 많이 기르는지 동부의 땅이 부족해 서부의 사람들, 특히 몽골 이주민들에게 위탁시킬 지경에 이르렀다.

목축 담당자는 잠시 웃다가 말하였다.

“얼마 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동네에서 소를 기르는 사람은 천 마리가 있다 치면 삼 년 뒤에 삼 할만 숫자를 불려도 대단하다 여기더군요.”

“그게 뭔 소리야. 운이 좋으면 일 년 만에 삼 할을 불릴 수도 있는 가축이 소인데.”

“저도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갔습니다. 듣자 하니 늑대에게 잡아먹히고, 도망치거나 인디언에게 약탈당하고, 방울뱀에게 물려 죽고, 독초를 먹고 죽어서 그런다 합니다.”

다들 자신들의 친인척과 함께 소 백여 마리는 건사해 본 사람이라 저절로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다.

농사꾼으로 따지면 쌀 한 섬을 심어 두 섬을 거두는 머저리 같은 행동이리라.

자연스럽게 모두가 말을 멈추고 파이프나 곰방대 심지어 시가를 꺼내 불을 붙였다. 아예 술병을 꺼내와 이를 안줏거리로 삼아 대차게 비판하기까지 하였다.

“기본도 못 하는 머저리 같은 놈들. 고향에 두고 온 내 자식 놈이 삼 년 동안 삼 할 밖에 못 불려서 처가 식구들에게 두드려 맞았는데.”

“왜 소가 독초를 먹게 내버려 두지? 목초지를 미리 한번 다녀와서 살펴봐야 하지 않나?”

“늑대는 떼를 이루기 전에 미리 족쳐놔야 습격을 안 하지!”

“다른 건 다 넘어가는데 주드(눈보라)도 안 오는 이 땅에서 소가 왜 수가 안 불어나?”

점점 분위기가 과열되고 모두가 창 밖에서 말을 타고 훈련을 하는 카우보이를 바라보았다. 급기야 한 간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생각해 보니 화가 올라오네. 저 머저리들이 우리에게 가르침을 받는 이유가 자긍심 때문이 아니고 한 사람 몫도 못 해서잖아? 당장 엉덩이를 걷어차고 주먹으로 다스려야지.”

“그걸로 되나? 몽둥이 좀 써야지.”

“다들 진정해라. 동부 사람들은 이 동네에 터전을 마련하고 삼십 년도 안 지났어. 우리가 권총을 처음 쏠 때 백발백중이었나?”

그제서 과열된 분위기가 진정되었다. 소르칸이 고개를 끄덕이자 목축 담당자는 천연덕스럽게 말하였다.

“저희가 계약을 맺을 때 육 년 동안 소를 사만 마리 기르자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수가 불어난 소를 반반씩 나누어 가지기로 하였지요.”

“그래. 그러면 어떻게 될 것 같나?”

“아마 동부의 부호들은…… 그 딕시(Dixie)라는 양반들은 우리가 잘해야 사만 마리의 소를 칠만여 마리 정도로 불려올 거라 생각할 겁니다.”

“그 계산이 틀렸지. 야생 소를 제외해도 십만 마리는 넘어갈 것 같군.”

“제 생각입니다만 계약을 갱신하시지요. 소 육만 마리를 돌려주는 것으로 개정하고 남은 사만 마리는 그냥 다른 곳에 팔아치우면 서로가 이득일 겁니다.”

어느 정도 상업적인 생리에 눈이 트인 간부들은 이 의견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소르칸은 탁자를 주먹으로 세게 내리치며 답을 내놓았다.

“그건 약속을 어긴 것이다! 우리가 이득을 보건 말건 우리를 신뢰하고 밑천을 내어준 사람들에게 보답해야지! 너희는 초원의 전사가 아니더냐!”

“그 약속도 좋은데 소를 한 번에 십만 마리나 끌고 가면 시세가 문제입니다.”

“시세가 떨어지면 우리가 손해를 보겠지! 그 손해를 감내해야 하지 않겠나!”

소르칸의 의견에 상업적으로는 영 지식이 없는 간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의견이 대립하여 거수투표가 실시되었고 결과는 12:9, 계약 유지가 승리하였다.

“우리는 육 년 동안 소를 키우고 불어난 소의 절반을 우리가, 절반을 투자자들이 가져가는 조건을 유지하겠다. 앞으로 이 의견을 유지할 것이니 반박하지 마라.”

“그러면 앞으로 더 많은 소를 보내올 사람들에게도 같은 조건을 제시합니까?”

“당연하지! 소가 십만 마리가 넘어가서 자리가 부족하다고? 예전에 관리와 같이 보았던…… 투박을 비롯한 다른 지역으로 나가서 소를 치도록!”

목축 담당 관리는 소르칸의 엄중한 이야기에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들의 명성은 계속 퍼져나가며 더 많은 소를 길러달라고 투자를 아끼지 않으리라.

아마 10만을 넘어서서 최종적으로는 20만 마리가 넘는 소를 만들어내리라. 이 중에 몇만 마리를 제외한 대다수의 소가 남부로 넘어가 판매될 것이라 예상했다.

그나마 20만 마리면 다행이었다. 앞으로 몇 년에 걸쳐서 넘어올 이주민들, 여기에 제대로 배우고 자립할 카우보이를 감안하면 그 수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이 시기에 남부에서 기르는 소는 고작 90만 마리에 불과하였다. 훗날 ‘소 폭탄’이라 불리며 남부 목축업계를 절단 내버린 비극적인 사건이 이 자리에서 결정되었다.

“더 이상 논의할 것이 없으면 일이나 하도록. 나는 순찰 겸 배달을 실시하겠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군소리 없이 일터로 향했다.

소르칸은 자신의 결정을, 남부의 가축 시세를 서부와 똑같이 만들어 버릴 비극적인 결정에 만족하며 말에 안장을 얹었다.

“사람이 손해를 좀 보더라도 의리를 지켜야지.”

“시장님! 오늘도 직접 배달에 나서시는 겁니까!”

어느새 카우보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자신을 호위하였다. 호위를 자처하는데 사실상 갓난아이에게 밥을 떠먹여 주는 수준으로 가르쳐야 할 놈들이었다.

그래도 말 타는 방법도 알고 어느 정도 어울릴 줄은 아는 놈들이라 여섯 살 난 아이에게 기마술을 가르치는 수준의 재미는 있었다.

소르칸은 알타이에게 턱짓을 해 합류시키고 호기롭게 외쳤다.

“그래! 가는 길에 인디언 놈들 보이면 죄다 머리통에 총알 하나씩 넣어주련다!”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동쪽의 대한제국 학자들 발굴 장소다! 사 일 걸리는 여정이니 알아서 따라와라!”

30명의 기수들이 남동쪽을 향하여 질주하였다. 실제로는 6명의 제대로 된 전사와 24명의 애송이가 정처 없이 황무지를 가로지르며 질주하였다.

“경로를 더욱 남쪽으로 꺾는다! 멕시코 순찰대 놈들을 만날지도 모르니 조심하도록!”

“알겠습니다!”

소르칸과 알타이는 조금이라도 더 실전에 가까운 훈련을 실시할 생각이었다. 이를 위해 경로를 적당히 꺾으며 아슬아슬하게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을 스쳐갔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방심하던 카우보이들은 말을 조금 천천히 몰며 흙먼지와 소음을 덜 일으켰다. 여기에 주변을 경계하며 자연스럽게 경험을 축적하였다. 간혹 휴식을 취하는 장소에는 대부분 다른 사람의 흔적이 있었다.

알타이는 한 흔적을 가리키고 카우보이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모닥불 흔적이 있군. 사람이 여기에 머물렀다 떠난 것 같은데 얼마나 된 것 같지?”

“온기가 없으며 재가 거의 다 바람에 날려갔습니다. 최소한 삼 일 이상이 흘렀습니다.”

“그래도 눈썰미는 있군. 그나저나 이건 멕시코 정찰대 흔적인데.”

이 시기 멕시코군은 국경을 넘나들며 마을을 약탈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미군이나 민병대도 같은 행동을 하였으며 몽골 이주민들은 아예 국경을 대놓고 무시하였다.

소르칸은 이미 바람에 거의 다 사라진 말발굽 자국을 보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대충 열 명 정도 되어 보이는 규모라 기습에만 성공하면 아무 피해도 없이 쓰러트릴 수 있었다.

다시 황무지에 말이 달리는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마침내 이틀 뒤, 저 멀리서 총성이 들려오며 알타이가 대열을 정지시켰다.

“미국 군대나 민병대와 멕시코 놈들이 교전을 벌이는군. 우리는 언덕 위에서 달려 내려갈 것이니 네놈들은 퇴로를 막아라.”

“알겠습니다.”

총성이 들려오는 방향의 언덕 위로 올라간 소르칸과 알타이는 서로 시선을 교차하였다. 적이 눈치채기 전에 난입하여 멕시코군을 단번에 쓸어버리자는 신호였다.

이후 동시에 언덕을 내려가자마자 상황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12명의 멕시코 기병들이 아메리카 원주민을 추격하여 총으로 쏘아죽이고 있었다.

“인디언을 포로로 잡아! 멕시코 놈들을 모조리 죽여라!”

“이런 염병할! 내 살다가 인디언 구할 줄은 몰랐네!”

갑작스러운 기습을 당한 멕시코군은 대처도 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쓸려나갔다. 그리고 한동안 추적을 당해 지쳐버린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순식간에 포로로 잡혔다.

열 명가량의 원주민이 밧줄에 묶인 채 포로가 되었다. 알타이는 이들을 한동안 살펴보더니 칼을 빼 들며 고함을 쳤다.

“네놈들은 아파치 부족이잖아! 원수를 잘 만났구나!”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우리는 당신들이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아파치 놈들이 다 똑같지!”

“우리는 아파치이기는 하나 남부의 치리카와(Chiricahua) 부족입니다! 그 부족의 분파 중 하나인 베돈코헤(Bedonkohe)에 속합니다!”

소르칸은 알타이를 제지하고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이야기나 한번 들어보자는 뜻이니 일단 칼 대신 몽둥이를 들었다.

“그러면 아파치라는 소리잖아?”

“아파치는 좀 교육해야 제맛 아닙니까?”

잠시 동안 몽둥이 소리와 비명소리가 황무지를 메웠다. 온몸에 시퍼렇게 멍이 올라온 아파치 부족민들은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알타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네놈들이 무슨 짓을 한 줄이나 알고 있나? 접대의 관습이 엄연히 있음에도 상대를 환대하는 자리에서 독을 먹여서 사람을 죽였다!”

영어를 알고 있는 아파치족이 이 이야기를 번역해 동료들에게 알려주었다. 개중에 얼굴이 넓적하고 체격이 담대한 청년이 밧줄에 묶인 채 일어나 호소하듯 말하였다.

“그러하면 강한 전사께 여쭈어 볼 것이 있으니 아파치의 이름을 더럽힌 악행을 저지른 놈들에 대해 궁금합니다. 놈들이 어디서 패악을 저질렀습니까?”

“애리조나 준주 북부이다.”

“그 지역에 사는 놈들은 서부 아파치입니다. 자신들을 인디(Ndee)라 부르는 족속들이며 예전부터 같은 아파치를 약탈하던 놈들입니다.”

“네놈들도 약탈을 한 것 같은데? 다 똑같은 놈들 아닌가?”

이미 카우보이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소지품을 확인하였다. 말은 멕시코군의 낙인(烙印)이 찍혀 있는 물건이며 시가나 술 같은 다양한 물건들이 모두 멕시코 물건임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은 눈을 마주친 채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이 황량한 땅에서 살아가려면 물자가 필요합니다. 드넓은 평야에서 제공하는 은혜는 사라지고 틈이 날 때마다 서로를 공격하니 똑같이 맞이하였을 뿐입니다.”

“말 한번 제대로 하는군. 그렇다면 네놈들의 잘못은 없다?”

“우리가 손님으로 환대한 사람에게 독을 먹인 일이 있다면 땅에 머리를 찧어 죽을 것입니다.”

소르칸도 알타이도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몽골에도 수많은 부족과 분파가 있으며 자신들이 포획한 아파치 부족민은 아예 정반대로 떨어진 분파에 소속된 사람들이리라.

그렇다면 이용할 가치가 있었다.

알타이는 소르칸의 말을 번역해 들려주었다.

“그럼 네놈들이 우리에게 뭘 해줄 수 있지?”

“서부 아파치를 벌하실 생각이라면 사력을 다하여 협조하겠습니다. 제 부친께서는 샤먼이시니 부친을 통하여 이 뜻을 부족 전체에 전할 것입니다.”

고야슬레는 이 자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좀 더 넓은 세상을 알아보기 위해 그리고 이들과 함께하여 자신의 세력을 더욱 확충할 마음을 품었다.

소르칸도 이 당당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침략에는 길잡이가 있어야 하는 법, 부족 전체를 길잡이로 삼을 생각에 고야슬레를 받아들였다.

“좋다. 석 달 이내에 우리가 머무는 툼스톤으로 찾아오도록. 그나저나 네 이름은 뭐냐?”

“고야슬레, 하품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24세의 청년 고야슬레, 본래 역사에서는 먼 훗날 제로니모(Geronimo)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게릴라전을 실시한 지도자는 몽골 이주민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부족으로 돌아갔다.

이후 아파치의 분파 중 하나인 베돈코헤 부족은 몽골 이주민들과 동맹을 맺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엄중한 계약을 맺었다.

최전선에 서서 가장 많은 피를 흘리겠다는 계약, 훗날 벌어질 전쟁에서 최전선 돌격대인 바토르 역할로 자신의 누명을 벗어내겠다는 계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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