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204화 (204/345)

204화

18장 3화 발굴 겸 개척

대한제국에서 건너온 순학자와 외몽골 전사들이 주축이 된 원정대는 1850년 4월 무렵 각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출발하였다.

이들 가운데 서북부 원정대는 로키산맥 북부의 지층을, 동부 원정대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지층을 분석하려 하였다.

가장 작은 규모는 그랜드 캐니언을 원정하기 위한 순학자 집단이었다.

학자 다섯 명에 뒤늦게 도착한 외몽골 전사를 포함해 호위 열 명이 주요 인원이었다.

“내가 어쩌다가 이 머나먼 미국의 개척지에 오게 되었는지.”

이 순학자들의 대표 심대윤(沈大允)은 출발을 앞두고 자신의 몸을 정돈하였다. 그 준비는 철저히 실용적이며 어떻게든 멋을 살리려고 처절한 노력을 겸하였다.

하의로 몇 달을 입어 적당히 헤지고 올이 나가 부드럽게 변한 청바지를 입었다. 상의는 주머니가 많고 통기성이 좋은 모시 작업복을 선택했다.

여기에 짚신이나 가죽신 대신 길이 잘 들어 발목이 편안한 군화를 착용하였다.

갓 광산에서 튀어나온 광부 꼴이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웃옷으로 두루마기를 걸쳤다.

머리는 이미 짧다 못해 반 삭발에 가까운 형상이었다. 이 위에 망건을 걸치고 대한제국에서 가져온 30개의 갓 중 가장 멀쩡한 녀석을 머리에 얹었다.

“내 신세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바로 옆 골짜기만 파헤쳐도 되었는데.”

“학자님! 출발 시간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마지막으로 45㎏이 넘는 거대한 가죽 배낭을 짊어졌다. 지게를 응용한 알루미늄 프레임 덕분에 많은 짐을 옮길 수 있는 발명품, 순학자들의 상징과 같은 물건이었다.

심대윤이 복도로 나서니 한때 시비를 걸었던 불량배 중 한 명이 깍듯이 인사를 하였다.

외몽골 전사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느라 그의 정강이는 언제나 피멍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래도 목숨을 잃거나 다리를 아예 못 쓰는 신세보다는 나은 상황이었다.

심대윤이 밖으로 나서자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는 순학자들 네 명이 인사를 하였다.

“백운(白雲 - 심대윤의 호) 자네가 가장 늦군. 마음이 설레지는 않는가?”

“설렌다니? 오늘도 그 날의 악몽을 꾸었어. 바로 옆 골짜기에서 봉황이 날아오르고 나는 희멀건 돌덩어리만 쪼아내던 그 날의 악몽 말이야.”

이 자리에 모인 순학자들은 모두 미크로랍토르, 대한제국에서 검은 봉황이라 불리는 화석을 발굴한 현장 바로 옆에서 발굴을 진행하던 이들이었다.

간발의 차이로 화석 발굴에 실패한 이들은 더욱 독기가 올라 화석을 발굴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이들의 노력은 가상하나 아직 지질학적 지식을 갖추지 못한 시대였다.

이미 몇 번이고 화석 발굴에 실패하여 집안에서는 죽은 사람이라 취급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들 모두 그 악몽을 떨치고 새로운 화석을 캐내기 위하여 인생을 바치고 있었다. 심대윤의 동료는 그의 용기를 북돋기 위해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악몽을 이제 안 꿔도 될 걸세.”

“옳은 말이야. 이번 기회에 더욱 많은 지층을 파헤쳐야 하지 않겠나.”

“그렇다면 어서 나가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지 않는가?”

다시 용기를 품은 심대윤이 숙소를 나섰다. 총원 86명, 순학자 5명, 미국 법무부 파견 직원 1명, 외몽골 전사 10명, 총잡이 겸 잡부 30명 그리고 광부 40명으로 구성된 원정대였다.

여기에 스무 개에 달하는 수레와 말이 준비되었다. 순학자들은 심대윤을 대표로 세워 원정 시작 연설을 하였다.

“우리는 북쪽으로 나아가 그랜드 캐니언이라 불리는 땅까지 갈 것입니다. 그곳까지 가면서 각지의 지질학적 특징을 분석하고 화석을 발굴할 예정입니다.”

몇 달에 걸친 상세한 설명과 계획이었다. 설명이 어느 정도 끝나자 원주민과의 대립을 우려한 광부 한 명이 손을 들고 질문을 하였다.

“감히 여쭈어 볼 것이 있습니다. 북방에는 인디언들의 성지가 있습니다. 여기에 가면 문제가 생길 것 같은데요?”

“여기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에게 피해가 안 가도록 노력해 볼 것입니다.”

아메리카 원주민, 미국에서 인디언이라 불리는 인종에 대한 입장은 다음과 같았다. 대한제국에서는 국가 대 국가의 입장이니 원주민 정책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반면 대한제국의 유생들은 미국의 부덕함이 드러난 사태라 인식하였다. 예의를 가르치고 백성을 포용하여 한 몸으로 만들었다면 원주민들도 자연스럽게 복종하였으리라.

예의가 아닌 무력으로 짓누르니 상대도 반발하게 마련이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미국의 등쌀에 시달리다 못해 약탈을 일삼으나 궁극적인 문제는 미국 정부에 있었다.

“피해가 안 가도록 노력해 본다니요?”

“상대가 먼저 무력을 휘두르거나 수상한 행동을 하면 철저히 짓뭉갤 겁니다. 다만 대화를 원한다면 요구 사항을 듣고 이를 어느 정도 반영할 예정입니다.”

모두 타타르를 앞세워 인디언을 죽이자고 주장을 하려다 꾹 눌러 참았다.

원정에서 제대로 된 구리 광산, 운이 좋으면 은광이나 금광이라도 발견하면 소유권을 쥐고 돈을 계속 받아내면 된다. 원주민이 많은 곳이면 사업자에게 판매한 뒤 돈만 챙겨도 충분했다.

1850년 4월 말, 애리조나 준주의 주요 도시 피닉스에서 출발한 원정대는 대열을 유지한 채 천천히 북상하였다.

낮에는 임시 천막에서 휴식을 취하고 밤에는 꾸준히 이동하였다. 영상 36도의 끔찍한 더위에 행군할 수 없는 노릇이라 대부분 낮에는 휴식을 취하였다.

이런 한낮에 외몽골 전사들과 스스로를 카우보이라 지칭한 이들은 교대로 주변을 순시하였다.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수통의 물이 고갈될 때까지 이들은 주변을 살폈다.

벌판을 바라보던 외몽골 전사가 어설픈 영어로 말하였다.

“저기 소네.”

“소요? 어디에 소가 있습니까?”

“저쪽 아래. 손가락 가리키는 곳.”

이 시대 미국에는 버펄로는 물론 농장에서 탈출한 야생말과 야생소가 각지를 떠돌아다녔다. 입맛을 다신 외몽골 전사는 카우보이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주변에 적은 없다. 실전 훈련이다.”

쏜살같이 달려 나가는 전사들을 카우보이가 가까스로 쫓아갔다. 곧이어 야생 소 떼 사이로 칼 한 자루를 쥔 전사가 들어갔고 소 떼가 분해되어 사방으로 달아났다.

유목민족답게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야생소를 사냥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눈짓만으로 불운한 소 한 마리를 목표로 삼고 총 대신 화살을 쏘아 소를 단번에 고꾸라트렸다.

넘어져 허우적거리는 소에 달려든 외몽골 전사는 칼을 놀렸다. 이윽고 소의 숨이 끊기는 소리와 함께 경동맥에서 피가 솟구쳐 나왔다.

“저게 사람이냐 소 잡는 기계냐.”

“그냥 사람도 소도 다 잡는 괴물 아닐까?”

카우보이들이 막 다가올 무렵 소는 이미 가죽이 벗겨지고 내장을 쏟아내기 시작하였다. 소 한 마리가 해체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30분, 외몽골 전사들은 모래로 피를 닦아내며 말했다.

“피 쏟은 소 좋아하지. 우리는 싫어하는데 피 쏟았다.”

“대한 사람들은 선지 좋아하더라. 바가지 하나에 소 피 담아서 가져가라.”

“생간 좀 먹어라, 핏기 하나도 없다.”

분해하고 남은 소의 잔해를 짊어진 외몽골 전사는 이를 바위 위에 얹어두었다. 그러고는 북쪽에 있는 바위 방향으로 팔을 흔들고 말 위에 올랐다.

소의 생간을 한 주먹 먹고 짐으로 쇠고기를 한 덩어리 짊어진 윌리엄 로건은 이들의 또 다른 기술을 경험하고 몸서리를 쳤다. 능숙한 도축업자도 이들 앞에서는 애송이 취급을 당하리라.

그러던 중 적이 없다는 말과 북쪽에 누군가가 있는 듯이 팔을 흔든 것에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로건이 단 하나만 있는 쌍안경으로 확인하니 사람 형상이 보였다.

“인디언이다! 인디언들이 우리를 보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 공격할 거면 말 타고 무기가 있겠지? 우리 보러 온 거다.”

“그걸 어떻게 아는지…….”

“살다 보면 알더라.”

점점 험한 길을 진군하는 원정대에 신선한 쇠고기는 요긴한 반찬이 되었다. 순학자들은 막 굳은 선지로 든든하게 선짓국을 끓여 들이켜고는 알타이의 보고를 들었다.

“우리가 출발한 지 열흘이 지났지. 벌써 원주민들이 우리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고?”

“대충 서너 명 정도의 사람들이 멀리서 우리를 확인하더군요.”

“우리를 공격할 작정이면 아마 사람들을 불러 모으겠군. 일단 지층 하나를 탐색하며 이들과 접촉을 해 보면 어떨까?”

정찰대가 미리 파악한 화석 예상 지층 중 하나가 탐험 경로에 있었다. 심대윤을 포함한 순학자들은 기왕 지층을 파악할 겸 잠시 머무르기로 하였다.

다시 열흘을 진군하자 점차 많은 인디언들이 목격되었다. 외몽골 전사들은 카우보이들에게 도축 방법과 소떼를 치는 법을 알려줄 겸 더 많은 소를 잡고 고기를 남겨두었다.

마침내 목표 장소에 닿자 미국 최초로 몽골의 천막인 게르가 세워졌다. 순학자들은 광부들과 함께 일대의 퇴적암 지층을 탐사하기 시작하였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으나 성과를 거두면 좋을 텐데. 일단 파헤쳐 보게.”

광부들은 순학자들의 지시에 응하여 광석을 파내고 이를 분류하였다. 사탕에 몰려든 개미 떼처럼 광부들이 달라붙어 곡괭이를 놀리고 다이너마이트로 발파를 진행하였다.

융기한 퇴적암 지층이라 화석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기대감에 물든 순학자들은 열흘 뒤 광맥의 정체를 파악하였다.

“겉은 융기한 사암인데 속 알맹이는 구리 광맥이라니.”

“금도 조금 섞여 있는 것 같은데?”

“그럼 뭘 해, 화석이 없는데.”

주먹 크기의 광석에는 구리 속에 아주 약간의 금이 보였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이 돌덩어리를 등 뒤로 집어 던진 심대윤의 뒤에서 법무부 파견 관리가 고함을 쳤다.

“첫 광맥 발견이다! 금이 섞인 구리 광산이다!”

로건을 비롯한 카우보이들도 몰려들어 광석을 어루만지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와 달리 순학자들은 똥 씹은 표정을 한 채 게르에 들어가 술판을 벌였다.

즉석에서 이득 분배가 시작되었다. 원정대 인원 70명은 각기 소유권을 1%씩, 대한제국은 미국과의 거래에 의해 10%를, 나머지 20%는 미국 정부가 소유하게 되었다.

이 소유권으로 광산 주인에게 돈을 받아낼 수도 있으며 아예 판매하여 목돈을 만질 수도 있었다. 순학자들이 다음 지역으로 이동할 무렵 마침내 아메리카 원주민이 접촉을 시도하였다.

순찰에 나선 외몽골 전사들과 카우보이들은 자신 앞에 다가온 서른 명의 원주민을 보고 경계하였다. 두 세력이 서로를 살피는 중에 대표 격인 원주민이 어설픈 영어로 말했다.

“여기에 왜 왔는가.”

“땅을 파헤치기 위해 왔다.”

말 위에 오른 외몽골 전사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말 위에 올라 있는 원주민을 바라보았다.

서로의 눈싸움이 이어지고 원주민이 고개를 숙이며 말하였다.

“하얀 피부의 사람들과 우리를 약탈하러 왔는가.”

“약탈은 관심 없다. 너희가 손님이면 받아들인다. 손님인가?”

원주민은 외몽골 전사를 살펴보았다. 멀리서도 자신을 볼 수 있는 눈, 성난 야생 소 떼 사이로 달려드는 능력 그리고 야성이 깃든 몸을 확인하고 승산이 없다 판단했다.

“손님으로 찾아왔다. 얻어먹은 소 값으로 금도 가져 왔다.”

금이 담긴 주머니를 받은 알타이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말머리를 돌렸다. 로건을 비롯한 카우보이들은 이 판단을 만류하려 하다가 눈을 질끈 감고 이해하였다.

“참 상남자(badass)라니까. 상대도 안 되니 손님이라는 뜻이지.”

“우리가 난폭한(bad) 이라는 단어는 쓰는데 그 뒤에 왜 엉덩이를 붙여?”

“엉덩이(ass)에는 고집불통이라는 뜻도 있지. 그러니 고집을 가지고 난폭한 삶을 추구하는 상남자라는 뜻이야.”

“방금 전 만들어낸 단어인데 입에 착착 감기네.”

막 태동하던 bad 접두사와 ass 접미사가 결합한 단어 badass가 어느새 상남자라는 뜻이 되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이들의 호위 겸 감시를 받고 캠프로 향하였다.

“머나먼 길을 찾아오신 분이로군요. 혹시 영어는 아십니까?”

“이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 꼭 알아야 한다.”

법무부 관리를 노려본 원주민은 심대윤의 안내를 받아 게르에 앉았다. 서로를 잠시 탐색하던 원주민 대표는 곰방대를 흘겨본 뒤 말했다.

“당신들을 처음 보았다. 갈색 피부에 코가 작고 얼굴이 넓적한 사람들이라니.”

“저희는 머나먼 동방, 세상의 정 반대편에서 왔습니다.”

“세상의 정 반대편까지 담배가 퍼져 나갔다니. 한 대 피울 수 있겠나?”

“서로 곰방대를 바꿔 피우지 않겠습니까?”

길쭉한 장죽을 문 원주민은 대한제국에서 가공한 담배의 연한 맛을 즐겼다. 반면 심대윤은 거친 담배의 맛에 기침을 하며 억지로 담배를 피워댔다.

원주민 대표는 곰방대에 새 담뱃잎을 넣고 불을 놓았다. 다시 담배 연기가 피어오르고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우리 야바파이(Yavapai) 부족은 젊은이들을 보내 당신들의 행동을 파악했다. 강한 전사들을 앞세워 하얀 피부의 사람들을 훈련시키고 땅을 파헤치더군.”

“바로 보셨습니다. 이 원정의 목적은 땅을 파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 행동이다. 금이 발견되면 백인들은 병든 버펄로를 만난 늑대 떼처럼 침을 흘리며 달려오지 않는가.”

“저희는 황금보다 더 위대한 것을 찾아왔습니다만 같이 온 사람들은 아니지요.”

다시 담배연기가 게르에 피어올랐다. 한참 동안 담배를 태워대던 야바파이 부족의 대표가 법무부 관리를 가리키자 심대윤이 손짓을 하며 밖으로 나가달라 말했다.

법무부 관리는 잠시 눈을 찌푸리다 순학자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부족 대표와 순학자만 남은 게르에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당신은 하얀 피부의 사람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군.”

“본래 살던 사람들을 부덕하게 대하여 이런 꼴이 벌어졌지요. 백인 개개인은 믿을 수 있으나 백인들이 세운 나라는 동맹에 불과합니다.”

“좋은 생각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겠는가.”

원주민 대표는 자신들이 구전으로 이어져 오던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간 장소는 현대에는 세도나(Sedona)라 불리는 도시이자 원주민의 성지가 있었다.

“북쪽의 붉은 바위는 구전에 의하면 수천 년 전부터 수많은 부족들이 머무른 성지이다. 이 성지에서 광맥이 발견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위대한 붉은 바위라면 사암이군요. 거기는 화석도 많을 텐데.”

“그놈의 화석이라는 물건이 뭔가?”

심대윤이 화석에 대한 설명을 하자 부족 대표는 담배를 계속 피우며 심각한 표정으로 화석의 정체를 파악하였다. 그러고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였다.

“내가 젊을 적에 강에서 기묘한 물건을 발견하였지. 위대한 붉은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돌인데 속에 새카만 물고기 형상이 여럿 있었어.”

“그것이 화석입니다! 그 장소를 기억하십니까?”

“잘 알고 있다. 내가 우연히도 보물의 위치를 알고 있군.”

천여 년 전에 거주했던 부족들은 사암을 깎아내 집을 지었다. 이런 옛 주택에는 곳곳에 작은 화석 파편이 있을 지경이었다.

이미 협상의 주도권은 원주민에게 넘어갔다. 지도를 확인한 부족 대표는 그랜드 케니언의 위치를 가리키며 말했다.

“목적은 더욱 북쪽의 거대한 골짜기를 파헤치는 것이고 붉은 바위는 지나치는 곳이라.”

“붉은 바위라 불리는 곳에서도 발굴을 하고 싶습니다. 최소한의 인원이 머무르고 광맥이 발견되어도 이를 함구해 드리겠습니다.”

“화석이 발굴되면 여기에 몇 년이고 머무를 생각 같군. 이미 머무를 생각이 있지 않나?”

심대윤을 비롯한 순학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봉황이 발견된 지역은 지금도 화석 발굴이 시도되고 있으며 가끔 운이 좋은 학자들이 화석을 발굴했다.

성지라 불릴 정도로 거대한 화석 광맥은 더 많은 화석을 가지고 있으리라. 원주민들은 이 상황을 이용하려 했다.

화석에 몰두하는 순학자를 통해 영토를 보호하고 백인들에게 저항할 힘을 기르는 방법이다.

이 속임수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나 적어도 수십 년 정도는 미국 정부의 관심을 돌릴 수 있으리라.

부족 대표는 심대윤에게 고개를 숙이며 답하였다.

“우리 부족 모두가 협력하여 화석이라는 물건을 발굴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

“그러하면 저희 대한제국의 학자들은 화석 발굴지를 보호하기 위하여 힘을 써 드리겠습니다. 대신 외곽의 광맥 몇 개는 내주셔야 할 것 같군요.”

“그 정도야, 손가락 몇 개를 잃고 몸을 지킬 수 있으면 응해야지.”

순학자와 야바파이 부족은 합의를 보았다. 부족 영토 외곽의 광맥을 몇 개 내어주는 조건으로 화석 발굴지에는 오로지 학자와 소수의 호위 병력만 드나들 수 있게 하였다.

법무부 관리도 괜히 원주민과 전쟁을 벌일 생각은 없었다. 이들은 어느새 원주민의 안내를 받아 성지 인근까지 향하였다.

마침내 위대한 붉은 바위를 확인하게 된 심대윤과 순학자들은 주자가례에 의거하여 산신제(山神祭)를 거행하였다. 이들의 앞에는 무궁무진한 화석이 잠든 땅이 있었다.

동시다발적인 화석 발굴은 전 세계 학계를 요동치게 하였다. 지금까지 애물단지였던 순학자들은 자신의 이름을 화석에 기입하는 영광을 얻고 학자로서의 명성을 떨쳤다.

미국의 민간업체들은 광맥의 소유권을 구매하여 채굴에 들어갔다.

대한제국도 이 광산들에 기술자들을 파견하고 더 많은 외몽골 전사들을 보내며 큰 이득을 보았다.

#작가의 말

삽화204

원주민들의 성지, 현대에는 애리조나 레드록 주립공원이라 불리는 곳입니다.

이런 기암괴석이 공원 전체에 깔려 있습니다. 대부분 바다생물 화석을 품은 사암이지요.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Red_Rock_State_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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