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202화 (202/345)

202화

18장 1화 세계의 대한제국(3)

명량 전투 외전, 서양 명칭은 웅장하게 ‘울돌목 캠페인’이라 붙여진 세트는 구성부터 문제였다. 전투 기교를 비롯한 미니어처 게임의 핵심은 다양한 병종 구성이다.

“뭐 이딴 구성이 다 있어? 일본 장수는 제너럴 도도(도도 다카토라)에 세키부네 마흔 척과 아타케부네 다섯 척? 여기에 조선 장수는 제독 순신 리 한 명에 배 세 척이라고?”

“장식용으로 일본군 후방에 함선을 예순다섯 척까지 배치할 수 있다는데?”

“그럼 조선군 함선은 열두 척에 일본군 함선은 예비대를 포함해 삼백 척, 실제 전투에 투입되는 함선이 백삼십 척이 넘는군.”

모두 이순신의 대장선을 제외하면 세 척에 불과한 판옥선과 열 배가 넘는 일본 군선을 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아예 화가 난 신사 한 명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규칙 서적을 읽어보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말하였다.

“이 외전은 조선 기준으로 즐기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을 위하여 세 가지 기준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무쌍(無雙), 격전(激戰) 그리고 실전?”

“말이 되는 소리야? 이 전투에서 싸워서 이겼다고?”

“교차검증이 된 기록이라 하는데? 일본에 가서 제너럴 도도의 후손 타카유키, 제너럴 시위드(Seeweed – 미역, 와키자카)의 후손을 통해 역사적 고증의 합의를 보았다더군.”

해전 지도를 만들기 위한 도면의 육각형 모눈에는 1부터 9까지 숫자가 매겨져 있었다. 특별한 ‘격류’ 규칙을 적용하여 각 해류가 10턴마다 변화하게 하였다.

이런 상세한 규칙과 고증에도 불구하고 신사들의 불만이 솟구쳤다.

이들은 피식거리며 웃더니 정교한 세키부네 모형을 하나씩 들고 말하였다.

“뭐 좀 다양한 병종이라도 운영하던가, 지난번 칠천량 캠페인은 끔찍할 정도의 패전이라 기분은 나쁜데 조선 함대는 모두 다 사용할 수 있었잖아.”

“그렇지 않아도 제독 순신 리의 행적 때문에 세키부네는 썩어 넘치는데.”

“다들 세키부네와 판옥선 모형은 있지? 일단 규칙대로 해보자고.”

모형도 건질 것이 없고 난이도는 끔찍했다. 호기롭게 조선군 기준 ‘무쌍’ 난이도를 택한 신사들도 압도적인 전력 차이에 배를 한 척씩 상실했다.

“수류 판정 남동쪽! 굴림은…… 팔면체로 4 나와서 함선 밀려간다!”

“무쌍 난이도이니 백병전에서 조선군 보정치가 삼이야. 그럼 네 척으로 포위하고 공격하지.”

“또 한 척이 털렸네. 이러다가 전멸하는 것 아니야?”

해전 모형은 3척의 배를 한 모형으로 묶어두었다. 한 척씩 야금야금 갉아 먹히는 판옥선을 보며 짜증을 내던 신사는 이순신의 대장선을 앞세워 공세를 펼쳤다.

“제독 순신 리는 무쌍 난이도에서 펌블(대실패, 주사위 눈 1)이 안 뜨면 무조건 명중에 치명타 판정과 적의 병력 피해가 두 배로 증가하는 건 알지?”

“당연히 알고 있지. 그런데 1이 나왔네!”

“백병전을 벌여도 별 소득이 없을 텐데, 일단 백병전에 조총 일제사격 시작.”

압도적인 보정 수치로 무장한 이순신의 함선조차 피해를 입었다.

서로 초조함이 밀려오는 가운데 마침내 조선의 전투 승리 조건인 적선 31척, 세키부네 모델 11개 격파를 성공하였다.

“플레이하다 진 빠져 죽는 줄 알았네. 뭐 이딴 외전이 다 있어?”

“격전 난이도는 보정치가 절반으로, 실전은 보정치가 없다고? 애초에 보정을 먹여도 이 꼴인데?”

“그걸 어떻게 이기라고. 아 잠깐, 마지막 장에는 고증 난이도라는 항목이 있네?”

고증 난이도를 살펴본 신사들은 결국 울화통이 치밀어 올라 손에 힘을 주었다. 찢긴 규칙 서적이 클럽 바닥에 떨어지고 한 신사가 발을 구르며 화를 터트렸다.

“말이나 되냐! 사망자 판정 열 명 이하로 승리 조건을 달성하라고?”

“이걸 누가 사. 아주 그냥 전투 기교에 미쳐 사는 사람 아니면 안 사!”

“이 정도면 호레이쇼 넬슨도 갓난아이처럼 가지고 놀 수준이잖아!”

불평불만을 늘어놓은 신사들은 명량 외전 세트의 뚜껑을 덮고 반품하려 하였다. 모두가 욕하는 사이 신사들은 다시 가게에 하인을 보내 명량 외전 세트를 주문했다.

“여보! 또 이상한 물건 사 와서 방 안에 장식할 작정이세요?”

“이게 좀 덜 비싸서 차라리 나은 것 같아. 그리고 내 가문에서 가져온 돈을 내가 쓰는 데 뭐 문제라도 있나?”

생각해 보니 명량 해전은 꽤나 괜찮은 구성이었다. 가뜩이나 많은 세키부네 모형이 필요한 부산포 해전이나 노량 해전을 구성할 용도로 적당해 보였다.

더군다나 가성비가 너무 좋았다. 김정호와 최한기가 고의적으로 명량 전투의 위엄을 전파하기 위해 이득을 최소화하면서 많은 모델을 집어넣은 것이다.

“이러다가 생과부 되겠어! 남편이란 작자는 클럽 다녀오면 수천 프랑씩 모형 사는 데 쓰고!”

아내의 분노한 발걸음 소리를 귓전으로 넘긴 신사는 각종 도구를 사용해 하인들과 함께 모형을 채색하였다.

이윽고 모델이 완성된 뒤 신사의 방 안에서 고함이 새어 나왔다.

“이 망할 캠페인! 백 번을 시도해도 실전 난이도를 클리어 못 하잖아!”

마침내 명량 외전을 실전 난이도로 이긴 사람이 몇 명 정도 생겨날 무렵 전투기교의 인기도 서서히 가라앉았다.

신사들은 돈을 비축하고 나중에 나올 <십자군 전쟁>을 기다리며 서로 전투를 즐겨댔다. 이미 모형은 충분히 많고 대부분의 전투는 네 명 정도의 신사가 모이면 수행할 경지에 이르렀다.

그런 클럽에 포스터가 하나 붙었다. 야성미가 넘치는 여진족 기병의 모습을 묘사한 포스터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청나라의 건국 설화가 담긴 정묘호란, 병자호란 캠페인 출시 예정>

<간접 지원군으로 나온 명나라의 병종 80종류 추가!>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대규모 기병 전투를 즐기세요!>

포스터를 확인한 신사들은 반사적으로 은행에 저축한 돈과 금고에 있는 돈을 계산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전투기교에 등장한 명나라는 기이하고 신비한 병종을 운영하는 군대였다.

“이번 모형은 호환이 된다는데?”

“이야, 역시 고산자 사장이라니까? 가성비가 아주 좋게 출시되잖아?”

미니어처 게임이라 가격 대 성능이라는 단어는 지옥에서 맴돌고 통장 잔고가 고갈되는 와중에도 귀족들은 이미 다음 미니어처를 사들이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훗날, 유럽에서 제대로 된 주석 모형을 만들 기술을 갖출 때까지 이들은 김정호의 손아귀에서 놀아날 예정이었다.

그 날이 오려면 앞으로 20년은 넘게 남아 있었다.

* * *

유럽이 전투 기교로 들끓는 무렵 미국은 개척의 열기로 들끓었다. 본래 역사보다 적은 피해로 더 빠르게 완료한 미국-멕시코 전쟁과 개척 인력의 대규모 투여가 불러온 결과였다.

미국 정부는 빠른 노선 개설을 위해 서부 점령지에 대한 무제한적 사설 철도 공사를 허용하였다. 각 지방에 구성된 소도시와 주요 거점에는 쉴 새 없이 공사가 진행되었다.

“청나라 놈들아! 네놈들의 고국으로 돌아가려면 이 선로를 완성해야 돌아갈 수 있다!”

백인 감독관이 말에 탄 채 손이 느려지는 쿨리들을 가리키며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몽둥이와 채찍을 들고 있는 흑인들이 달려들어 이들에게 위협을 가하였다.

다시 곡괭이가 거세게 움직이며 쿨리들의 구슬땀이 쏟아져 내렸다. 봄에도 섭씨 32도에 달하는 애리조나의 더위는 쿨리 모두를 지치게 하였다.

“탈주해도 희망이 있을 것 같나? 꿈 깨라! 네놈들의 위치는 흑인 아래 짐승 위이다!”

“계속 삽을 놀리고 곡괭이를 움직여라! 네놈들이 살길은 선로 완성 하나다!”

황무지를 아득하게 메운 청나라 출신 쿨리들은 쉴 새 없이 삽을 놀리고 곡괭이를 휘두르며 땅을 헤집었다. 이러한 노예들을 남부 농장에서 고되게 일하던 흑인들이 관리하였다.

낮이 되어 해가 올라오자 일시 휴식 명령이 떨어졌다. 흑인들은 백인 관리자 아래에서 이들에게 적당한 식사와 아편을 제공해 주며 관리하였다.

수많은 물주전자와 때에 찌든 수건이 오가고 적당한 빵과 음식이 제공되었다. 흑인들은 이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신들의 옛 추억을 되새겼다.

“농장에서 목화따개 하던 때보다는 형편이 좋기는 한데 마음은 찝찝하네.”

“마음이 찝찝해? 불볕더위에 모기와 파리에 온몸이 뜯기면서 농장 일 다시 해볼까?”

“그건 절대 아니지! 내 말은 우리가 감히 다른 사람을 부릴 수 있느냐는 말이야.”

“백인들도 우리를 부리는데 흑인인 우리가 못 부릴 게 어디 있어?”

흑인들은 반쯤 노예이자 반은 고용인 신분으로 청나라 쿨리들을 통솔하였다. 이들 또한 쉴 새도 없이 인근의 쿨리 정착촌에 다녀와 필요 물자를 운반하려 하였다.

그 생각은 쿨리 정착촌의 몰골을 보고 사라졌다. 미국-멕시코 전쟁에서 민병대로 활약했던 이들은 쿨리의 탈주를 막을 목적으로 고용되었다.

일종의 경비병 역할을 하는 이 불량배들은 옛 버릇을 못 버리고 정착촌에서 행패를 저질렀다.

뭔가 귀중품이나 생필품이 쌓이면 탈주 목적이라고 압수하고 폭행을 서슴지 않았다.

“내가 못 살아. 저기 나리들! 나리들!”

“이번에는 또 어디를 두들겨 맞을까.”

흑인들은 어제 두들겨 맞은 허벅지를 주무르며 몸서리를 쳤다. 이들의 외침을 들은 불량배들은 말을 탄 채 달려와 고함을 쳐댔다.

“모래주머니 놈들이 감히 수레를 끌고 다니네?”

“모래주머니라니 그건 기차 공사할 때 쓸 물건 아닌가. 고깃덩어리지!”

위협적으로 말을 몰고 총을 겨누는 불량배들은 흑인들 주변을 에워싸고 바닥에 침을 뱉었다. 늘 겪는 일을 또 겪게 된 흑인들은 고개를 조아리며 간절히 청하였다.

“감독관님의 명령을 완수하지 못하면 저희가 곤욕을 치릅니다. 간절히 부탁드리겠습니다.”

“말 아래로 기어가면서 ‘나는 모래주머니이고 고기주머니입니다’라고 세 번 외쳐라.”

목화 대신 이 불량배들에게 시달리게 된 흑인들은 어쩔 수 없이 굴욕적인 처사를 겪었다. 기세가 오른 불량배들이 사라지자 흑인들은 이들이 사라진 곳을 주시하며 분노를 터트렸다.

“맨날 술이나 퍼마시고 쿨리 정착촌에서 행패나 부리는 머저리 놈들!”

“놈들은 전쟁 때 약탈만 하고 돌아갔잖아? 세상에서 하는 일이 뭐야?”

“우리가 저놈들보다 나은 형편 아닐까? 누가 좀 와서 저놈들 죄다 불구로 만들면 좋겠다.”

흑인들이 약탈당한 쿨리 정착촌에서 물자를 가져가는 동안 이 불량배들은 먼 훗날의 애리조나의 주도(州都)가 될 피닉스의 외곽 술집으로 들어갔다.

“주인장! 주인장 계시오?”

“나 여기 있네. 그나저나 먼 곳에서 손님들이 왔으니 오늘은 적당히 마시고 가라고.”

경비병이라 자처하는 불량배들은 술집 한구석을 차지한 손님들을 살펴보았다. 이들은 ‘갓’이라 불리는 동양 특유의 모자를 쓴 채 이상한 복식을 하였다.

바지는 청색의 텐트용 원단으로 만든 두툼한 물건에, 신발은 오로지 험한 곳을 걷기 위한 두툼한 군화였다. 여기에 상의도 만만치 않았다.

시커먼 때와 흙먼지 그리고 여기저기가 찢긴 셔츠 위에 어설프게 대한제국의 두루마리라 불리는 옷을 갖춰 입었다.

불량배들은 휘파람을 불며 테이블에 앉아 이를 평가하였다.

“주인장, 저건 대한제국 귀족인가 아니면 어설픈 놈들인가?”

“귀족이자 학자라 하더군. 거 그랜드 캐니언을 연구하기 위해 찾아왔다는데.”

“거기서 사금이라도 찾으려고 저런 복장을 갖추나? 일단 술 주시오.”

불량배들은 쿨리 정착촌에서 약탈한 귀금속과 장신구를 내밀어 술로 바꾸었다. 이들에게 있어서 쿨리들의 노력은 일종의 돼지 저금통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술을 병째로 들이켜는 불량배들은 대한제국 사람들의 행동을 안줏거리로 삼았다. 학자들은 인근의 광부들이나 다른 학자들을 불러와 대화를 나누고 정보를 얻어나갔다.

그 과정에서 몇 달러 단위의 돈이 오갔다. 자연스럽게 돈을 본 불량배들은 돈맛을 다시 보려고 과감한 시도를 하였다.

“그랜드 캐니언에서 뭘 찾으려 하는지는 몰라도 돈 한번 많이 쓰네.”

“여기까지 왔으면 보호를 위해 고용한 병사가 있을 테고. 그 병사 고용비가 비싸긴 하겠지?”

“등 뒤만 봐도 덩치만 컸지 어수룩해 보이는데?”

“동양 원숭이들은 멕시코처럼 화승총이나 쏠 거야. 권총 맛 좀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

이들이 알고 있는 대한제국의 정보는 피상적이며 부족하였다. 동방의 나라이자 청나라를 무너트리고 위대한 미국의 개척에 한 숟가락을 얹은 파렴치한 놈들이다.

정상적인 지식이나 사상을 가졌다면 이런 생각을 할 이유가 없었다. 반면 미국 촌구석에서 행패를 일삼던 불량배들의 뇌에는 그러한 지식이나 사상도 없었다.

호위 역할로 보이는 덩치 큰 사내들의 몸에서는 며칠 동안 씻지 못한 듯이 심한 채취가 느껴졌다. 이걸 명분으로 삼은 불량배가 등을 툭툭 두들기며 시비를 걸었다.

“이보쇼, 당신 몸에서 시궁창 냄새가 나는데 좀 씻고 오지그래?”

“내 몸. 시궁창?”

어수룩한 표정의 호위는 자신의 몸을 더듬고 냄새를 맡더니 아주 어리숙한 영어로 답하였다. 그는 부끄러운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사를 하며 말하였다.

“고맙다.”

“일단 먼저 씻게. 내가 도와주는 거야.”

반쯤 마신 위스키를 머리에 끼얹자 호위들은 눈에 불을 켜고 멱살을 잡았다. 자신들이 의도한 대로 상황이 돌아가자 불량배들은 이들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말했다.

“백주대낮에 술집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데 이렇게 냄새를 풍겨?”

“자네들은 누구기에 이렇게 시비를 거나!”

알타이라는 호위병은 대한제국 학자의 말을 듣고 눈을 부라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불량배들은 원하는 대로 상황이 돌아가서 낄낄거리며 말했다.

“아무리 보아도 이런 어설픈 놈들의 호위를 받을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밖에서 결투라도 해서 누가 더 나은 호위인지 알아보도록 하지요.”

“자네들이 호위 역할을 하겠다고? 이 파렴치한 놈들을 봤나!”

“네놈들이 뭔 꿍꿍이인지 우리가 모를 것 같은가!”

대한제국 학자들도 이들이 뭔 일을 원하는지 명백히 알아차렸다. 명목은 호위요 실제는 전 재산을 갈취할 때까지 이리저리 헤매게 만들 것이 분명하였다.

“그럼 뭐 어떻습니까? 치안판사가 오려면 보름은 걸릴 텐데요?”

그렇다고 이들을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주변 지형을 아는 토박이들이라 기습이 편한 곳에서 기습을 가할 수도 있었다.

대한제국 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오가고 불량배들의 의견대로 결투가 진행되었다. 외몽골 출신의 호위 셋과 불량배 여섯 명 사이의 결투였다.

술집 주인과 인근 주민들이 몰려든 결투 현장에는 외몽골 출신 호위병 셋이 등에 활을 매고 옆구리에 칼을 찬 채 대기하였다. 불량배들은 미리 흑색화약 권총을 차고 30미터 거리에 대기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대한제국 귀족이 호위병과 대화를 나누었다. 결투가 시작되는 신호를 술집 주인이 동전을 던져 알리기로 하였다.

“셋, 둘, 하나. 시작!”

하늘로 날아오른 은화가 쨍 소리를 내며 바위에 부딪혔다. 불량배들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흑색화약 권총을 뽑아 들어 양손으로 조준하였다.

“권총 받 으억!”

그 순간 15발의 총성이 거의 겹쳐서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불량배 4명은 앞으로 고꾸라지고 한 명은 뒤로 자빠졌다.

“으악! 뭐야!”

“뭐긴 뭐겠는가. 달자 권총이지.”

대한제국 출신 순학자는 미리 결과를 예상한 듯 눈을 가리고 한숨을 쉬었다. 순식간에 피를 뿜으며 바닥에 쓰러지는 동료들을 본 불량배는 권총을 떨군 채 항복을 외쳤다.

거기서 끝나면 외몽골의 전사들이 아니었다. 승리를 축하하기는커녕 여전히 분노한 외몽골 전사들이 몽둥이를 쥔 채로 다가왔다.

“미친놈은 매가 약이야. 넌 좀 맞아라.”

“잠깐만요! 사람! 사람 살려!”

매타작을 당하는 사람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나머지 불량배들의 꼴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가장 먼저 시비를 건 놈은 일곱 발의 총알이 얼굴에 명중해 즉사하였다. 그 뒤에서 거들먹거리던 넷은 양 무릎에 총알이 한 발씩 적중하여 평생 앉은뱅이 신세가 되리라.

외몽골 전사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순간 그들의 운명은 정해졌다. 온몸이 하얀색에서 파랗게 물이 오르기 시작한 불량배는 살려달라고 외쳐댔다.

“악! 으악! 잠시! 제발 좀 살려주십쇼!”

“이 정도로 두드려 맞았으면 물어보기는 해야지. 자네 우리 길 안내 좀 할 수 있겠나?”

순학자의 제안에 마지막으로 남은 불량배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리볼버에 하나하나 총알을 장전하는 모습을 보니 제안을 거절하면 반드시 죽이겠다는 신호였다.

“길 안내라굽쇼!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속일 생각은 하지 말게. 이 친구들 하루에 일백 마일 정도는 우습게 주파하는 전사들이야.”

그는 순학자와 외몽골 전사들의 수발을 들며 자신의 죄를 뉘우치게 되었다.

어차피 일대에 민병대 출신 불량배는 차고 넘치는 세상이기에 이들의 일은 큰 주목도 받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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