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199화 (199/345)

199화

17장 9화 개틀링

다음 순서는 청나라의 내부 자료 조사였다.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청나라의 새 지방군은 객가와 일부 한족으로 구성된 전열보병이라 하더라.

“결국 전열보병을 도입했군. 우리는 이제 후장식 라이플을 도입하는데 팔자도 좋구나.”

“경계해야 할 일은 확실합니다. 화승(火繩)이 아닌 부싯돌을 사용한 제대로 된 총을 쓰지요.”

홍수전은 병장기를 수입품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애초에 청나라 수준에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면, 정확히는 아주 조금이라도 똑바로 차리면 엄청난 생산량이 나온다.

상해에 다녀온 관리는 뇌물로 입수한 배상(拜上)이라 각인된 머스킷을 보여주었다. 이미 여러 차례 사용한 흔적이 있는 물건이었다.

총 자체는 투박하고 개머리판도 어설프게 만들어도 엄연한 총이지.

대략 대한제국이 초도 생산한 브라운베스와 흡사한 물건 같아서 질문을 하였다.

“발사 시험을 진행한 것 같군. 결과는 어떠한가?”

“군관이 말하기를 십삼 년 전에 만든 브라운베스 자체생산품보다 조금 부족하다 했습니다.”

“명중률이 좀 떨어지고 내구성이 부족할 것 같은데 이게 어디인가.”

부족해 보여도 엄연한 머스킷이다. 시험 삼아 방아쇠를 당기니 짤깍 소리가 나며 부싯돌이 부딪히고 불똥이 튀어 올랐다.

이외에도 부족한 기술력으로 만들어낸 병기가 많았다. 통나무에 끈과 죔쇠를 엮어 만든 목포(木砲)나 콩그리브 로켓을 보고 크기를 키운 화전(火箭) 같은 무기들이다.

“대충 1800년 기준 영국군 경보병과 비슷한 병장기를 갖췄군.”

“실로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개혁을 이루어 냈을까요?”

“아편을 팔아서 모든 사람들의 고혈을 쥐어짜 낸 결과물이지.”

절대 우습게 볼 일이 아니었다. 홍수전은 나라의 현재를 팔아 자신의 역성혁명을 이룩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더욱 큰 문제는 홍수전의 위치였다.

녀석은 일종의 친목단체인 배상제회를 경영한다. 이 과정에서 거둬들인 수익을 자신이 비축하지 않고 대다수를 높으신 양반들의 뇌물로 바치고 있다.

이 뇌물을 먹은 높으신 양반들은 홍수전을 ‘소하와 장량’에 비유하며 모든 일을 눈감아주고 있다.

바꿔 말하면 한심하기 그지없는 결과이다.

“청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면 전열보병으로 이백만 명을 창설하고 힘이 남는 나라다. 그런 나라가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고작 십만 단위의 병력을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해.”

“십만 대군은 넘을 것 같습니다. 각지의 지방군 확장 추이를 보니 오 년이 지나면 가용 병력이 이십 만 명이 넘습니다.”

“인구가 사억이 넘으면서 가용 병력이 이십만 명?”

인구 4억의 국가로서는 비참한 양이지만 예전과 같이 우습게 볼 상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하면 청나라의 경제 상황이 궁금해졌다.

내무부로 향하자 수많은 이들이 외부에서 받아온 청나라의 물가자료 및 거래 자료를 분석하고 있었다. 이들은 가장 무식한 방법으로 청나라의 총 생산을 유추하였다.

모든 물자를 더하고 모든 인구를 더하는 추정 방식이다. 아예 탁지부에 있는 계산기까지 동원되어 끝없이 계산하는데 안에 있던 아내가 나를 보고 다가와 말하였다.

“낭군님 오셨습니까? 지금 내부대신님의 명을 받아 함께 계산을 하는데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기이한 일이라 하였소?”

“제 상식과 완전히 어긋나는 일이라…… 이 도표를 보십시오.”

아내가 정리한 도표에는 1842년부터 1849년까지 두 개항장을 통해 조사한 청나라의 총 생산량이 기입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증가하는 것처럼 도표의 수치가 올라갔다.

그 수치는 1845년을 기점으로 확 꺾여버렸다. 아내는 이 지점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이 시기부터 제대로 된 계산이 이루어졌다 가정해도 이상합니다. 나라가 발전을 하거나 현황을 유지하여야지 어찌하여 쇠퇴한단 말입니까?”

“백성들이 노예로 팔려가고 마약이 들끓으며 농사를 못 짓지 않소. 내가 보기에 청나라의 힘은 지난 이십 년을 놓고 보았을 때 이 할가량 감소되었을 거요.”

현대 학자들의 분석에 의하면 1820년부터 1870년까지 청나라의 국력은 15% 정도 감소되었다. 전 세계가 발전하는 와중에, 하물며 조선도 발전하는데 청나라만 역돌격을 하였지.

결국 청나라는 개혁 이전 기준으로 조선의 약 65배 강성한 국가였다. 조선의 개혁과 청나라의 쇠퇴로 말미암아 이 차이는 7배 이하로 급격히 좁혀졌고.

이걸 보면 홍수전의 미래가 엿보였다. 역성혁명에 성공하면 이 국력 쇠퇴를 빌미로 조선을 침공할 것이요, 역성혁명에 실패하면 청나라는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리라.

그 역성혁명을 막아낼 신병기는 일준이의 손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다음 일정은 국립이학대학 소속 연구팀의 신형 병기 개발 시찰이었다.

* * *

일준이와 휘하 총기 기술자들이 에이다의 협력을 받아 만들어낸 개틀링 건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녀석이 말하기를 빠르면 5년 내에 만들 수 있다 했는데 6년이나 걸린 물건이다.

“완성은 했는데 저속 발사만 가능하고 제대로 된 발사가 불가능한 녀석이라 문제야.”

“저속 발사가 어디냐? 제대로 돌아가는 물건이면 다행이지.”

이 시간이 걸리고도 완성은커녕 저속 발사만 가능하다더라. 부족한 물건이라 해도 중국의 인해전술을 제대로 받아칠 수 있다.

또한 한 번 제압한 지역을 총알이 떨어질 때까지 마르고 닳도록 유지할 수 있는 연사병기이다.

훗날 맥심 기관총이 나오면 교체될 무기이니 최소 30년은 요긴하게 쓸 수 있겠지. 요동과 만주를 대한제국의 영토로 만들 때보다 설레는 기분으로 시험장으로 향하였다.

시험장에는 개틀링 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무기가 방수포에 감싸진 채 대기하고 있었다.

마침 최종 점검을 실시한 것 같은 에이다와 기술자들이 우리를 맞이하였다.

“닐슨! 한센! 오늘 처음으로 거행하는 공개 시험사격인데 기대되시나요?”

“당연히 기대되지. 드디어 한 라인(line) 발사가 아니고 개조된 탄띠를 발사하는 자리잖아?”

“탄띠? 탄창이 아니고 탄환을 엮은 띠를 만들어냈다고?”

뭔가 이상한 용어가 나왔다. 탄띠? 개틀링 건은 20발 탄창을 끼워가면서 발사하는 무기인데 왜 탄띠가 나올까.

일준이는 머리를 긁적거리더니 퉁명스럽게 답하였다.

“당연히 탄띠를 사용해야지. 전자석을 활용한 정밀 기계 모터를 사용했는데 탄띠 하나하나를 분리해서 장전하는 시스템 정도는 갖추고 있어.”

“뭔가 내가 상상하는 물건이 아닌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종이탄피가 아니지?”

“금속탄피 만드느라 고생을 했는데 종이탄피를 쓰겠냐.”

그러면 이해할 수 있다. 본래 개틀링 건은 흑색화약을 충전한 종이탄피를 사용해서 탄환 장전 방법도 중력 낙하식이고 여러 제약이 걸렸다.

그 제약 중 일부가 전기 기술의 발달로 해소되었다. 일준이가 주도한 기술 발전이 무기의 흐름을 바꿔나간 것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켜보자 일준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방수포를 에이다와 함께 걷으며 말했다.

“임시 명칭 49년 연발총 시험형 모델!”

“모의 가동을 실시합니다!”

총기 기술자들의 박수와 함께 방수포가 걷어지고 총의 거대한 자태가 드러났다.

그것은 개틀링 건이라기에는, 이 시대의 개틀링 건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컸다. 엄청나게 크고, 웅장하고, 아름답고, 그리고 지나치게 부품이 많았다.

그것은 그야말로.

“이건 미니 건인데?”

“미니 건? 이게 왜 미니(mini)야? 익스트림 라지 건 아니야?”

일준이는 대수롭지 않게 총열을 쓰다듬었다. 거대한 수레 위에 있는 총은 갑식 소총의 총열보다 조금 더 긴 총열을 지니고 있었다.

여기에 10개나 달하는 총열의 외피에는 각각 방열판이 덧대어져 있었다.

또한 사람 머리통보다 거대한 부품, 아마 배터리로 추정되는 물건을 결합하는 공간이 총열 뒤쪽으로 좌우로 2개, 총 4개가 있었다.

이 시대의 축전지는 현대 자동차에 쓰이는 납 배터리와 흡사한 물건이다. 기술 부족으로 인해 효율은 감소하였으나 30Ah(Ampere Hour) 정도의 용량을 가지고 있다.

이 배터리 하나 가지고도 할 일은 많고도 많다. 전용으로 만든 백열전구는 한나절 내내 켜두고도 남을 수준이다.

말이 안 되는 일이라서 일준이에게 따지고 들었다.

“야, 배터리가 왜 4개나 들어가! 에이다! 대체 뭘 만든 건가요?”

“뭔 소리야. 초기 모델은 여섯 개가 들어갔고 효율적으로 줄인 건데.”

“효율 맞아요. 닐슨이 주장하는 꿈의 화기를 구현하다 지쳐서 타협을 본 건데요?”

가뜩이나 거대한 개틀링 건은 4개의 배터리와 창문 크기의 방탄판이 4개 체결되어서 말 그대로 전차처럼 변해버렸다.

일준이는 조립이 끝난 개틀링 건을 쓰다듬으며 설명하였다.

“이게 49년 연발총 시험형의 완전 조립상태다. 네 개의 축전지로 전력을 공급하지.”

“축전지는 각기 할 일이 있어요. 두 개는 직렬로 연결되어 총열 회전을 담당하지요.”

“나머지 두 개 중에 좌측의 축전지는 탄환 공급을, 우측의 축전지는 탄피 배출을 담당해.”

“이 네 개가 정확하게 돌아가게 만들려고 얼마나 힘을 썼는지 아세요?”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둘이 주거니 받거니 나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먼저 에이다가 나에게 하소연을 하다시피 말하였다.

“총의 전체 무게는 삼백구십이 파운드, 킬로그램으로는 백칠십팔 킬로그램이에요.”

“그게 말이나 되나? 각각 무게가 얼마인데?”

“총 자체 무게가 팔십오 킬로그램, 배터리 네 개가 각기 이십 킬로그램, 여기에 탄환통과 기본 공급 탄환 육백 발을 더하면 이 무게가 나오죠.”

이 말도 안 되는 설명에 일준이를 잠시 바라보다 물어보았다.

“이 총은 지금 시험사격 단계에서 얼마나 발사할 수 있지?”

“초저속 영 단계 사격 기준으로 일 분에 서른 발, 딱 육십 발만 시험해 본 삼 단계에서는 일 분에 백팔십 발. 목표치인 육 단계는 일 분에 삼백 발이야.”

“닐슨! 삼백 발은 너무하지 않아요?”

“이론상 육백 발도 발사할 수 있는 무기잖아!”

순간 아찔한 기분이 들어 다리의 힘이 풀려버렸다. 내가 상상한 개틀링 건은 1분에 탄환 15발 내외를 발사하는 기관총이다.

초기 개틀링 건의 작동 방식은 간단하다. 20발 탄창을 결합하고 10발을 손으로 크랭크를 돌려서 장전하고 발사, 다시 탄창 위치를 바꾸고 10발을 재장전하는 방식이다.

나는 역사를 알고 있어서 초기 개틀링 건에 무연화약만 사용해도 충분한 물건이라 생각했었다. 반면 일준이는 역사에 대한 지식이 없다!

녀석은 개틀링 건을 영화에서만 보아서 분당 천 발을 넘게 쏘는 총으로 인식했다. 결국 훗날 만들어지는 미니 건을 모델로 삼아 이런 물건이 튀어나와 버렸다.

이 개틀링 건이 어떤 위력을 보여줄까?

아예 쿵쾅대는 가슴을 쓰다듬은 뒤 흥분을 억누르고 덤덤하게 말했다.

“말싸움은 그만하고 일단 발사부터 해봐. 성능부터 확인해야 이해가 될 것 같은데?”

발사속도에 대해 논쟁을 벌이던 에이다와 일준이의 싸움이 끝나고 발사 지시가 내려졌다.

“발사 준비! 일 단계로 발사 실시해!”

“지난번 시험에서 일 단계 발사로 구백사십 발째에서 터졌잖아요! 영 단계로 낮추세요!”

“그럼 영 단계로! 가볍게 이백 발만 발사해 봐!”

약 200m 거리에 표적지가 놓이고 발사 작업이 시작되었다. 얇은 면직물로 엮인 탄띠가 탄환 삽입부 위쪽에 탄통과 결합되었고 삽탄용 갈고리에 걸렸다.

“목표! 전방 이백 미터!”

“영 단계 사격 개시! 모터 가동!”

둔중한 기계 소리와 함께 총열이 천천히 회전하였다. 일준이가 발사 신호 깃발을 펄럭거리자 마침내 발사가 시작되었다.

2초에 한 발꼴로 총알이 끊임없이 발사되었다. 흑색화약이면 조준이 불편할 정도의 자욱한 연기가 발생할 속도이나 무연화약은 별다른 연기가 생기지 않았다.

표적지 주변에서 흙먼지가 치솟으며 불발탄이 발생하였다. 쌍안경으로 이 광경을 확인한 에이다는 즉석에서 개량 요구를 내놓았다.

“진동 완충장치를 조금 더 개량해 볼까요? 유압 실린더를 이용해서 삼각대를 만들면 더 정밀하게 조준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에이다, 이건 진식 소총도 아니잖아? 그런데 삼각대까지 사용한다고?”

“이게 다 닐슨이 원하는 거잖아요? 일 분당 삼백 발을 발사하면 수레 전체가 요동칠걸요?”

시험사격이 끝나고 기술자들이 벌집이 된 표적을 확인하였다. 얇은 철판을 덧댄 가로 3m, 세로 2m의 표적지에는 최소 백 발이 넘는 탄환 흔적이 있었다.

“명중 탄환은 이백 발 중 백오십육 발입니다!”

진식소총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명중률이다. 178㎏이나 되는 총의 무게로 반동이 상쇄된 결과물인데 에이다는 퉁명스럽게 일준이와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거 봐요, 삼 단계로 발사하면 그 소중한 탄환 가운데 절반 이상이 허공으로 날아갈 것 같은데요?”

“가만 보면 상하로 흩어지는 탄환 대신 좌우로 흩어지는 탄환이 많아. 전열보병 상대로는 큰 차이는 없을 것 같은데?”

“아휴, 닐슨도 참. 그런 멍청이가 세상 어디에 있겠어요?”

에이다는 좌우로 흔들린 탄환 자국을 확인하고 말하였다.

“처음에 몇 번은 당할 수도 있죠. 상대 지휘관이 바보인가요? 몇 번 당하고 난 다음에는 전열보병을 산개시키고 저격수로 사수를 저격하겠죠?”

“저격수를 활용한다고?”

“어재연의 부대 몰라요? 미국에서는 이미 ‘수풀 속의 호랑이’라는 자서전이 퍼져나가고 있어요. 이미 각국에서 저격수를 활용할 거라 방탄판도 마련해 둔 거잖아요.”

“아 맞아, 그래서 당신이 방탄판을 마련하자 했었지.”

일준이는 에이다와의 대화를 마치고 자랑스럽게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팔짱을 끼면서 질문을 하였다.

“어때? 만족스럽냐?”

“내가 상상하는 무기를 삼백 퍼센트 정도 뛰어넘은 괴물을 만들어냈는데.”

나는 잠시 구석으로 가서 일준이에게 본래 역사의 개틀링 건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녀석은 이 설명을 모두 듣고는 몇 번이고 개틀링 건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걸 좀 진작 말해주지! 지난 칠 년 동안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난 딱히 나에게 조언을 안 구하기에 알아서 하나 했는데.”

“모터 배열과 부품 산정에만 일 년, 탄피 자동제거와 탄띠에서 탄환 뽑아내는 구조 만드는 데 다시 이 년, 이후에 조율하는데 삼 년. 도합 육 년을 투자했어.”

일준이는 잘못된 지식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결국 초기 개틀링 건이 아닌 1880년대에 실용화 된 베일리 기관총(Bailey Machine Gun)과 흡사한 물건을 만들어냈다.

신뢰성으로 따지자면 베일리 기관총을 능가할 수도 있다. 크랭크로 탄환을 장전하는 방식은 정확한 장전 속도를 지켜야 하는데 이 총은 기계식이니까 신뢰도가 높지.

“아무튼 영 단계 발사는 성공했네.”

내 말을 들은 일준이는 뭔가 아쉽다는 듯이 답하였다. 녀석은 에이다를 흘겨보면서 내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였다.

“그럼 삼 단계, 일 분에 백팔십 발 발사를 하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지 않아?”

“궁금한데 괜찮아? 총이 터지는 것 아닐까?”

일준이는 갑자기 손을 내밀어 나와 악수를 나누었다. 그러고는 에이다에게 당당하게 외쳤다.

“우리 외부대신님께서 삼 단계 발사를 시험하고 싶으시다네?”

“여보! 왜 한센 핑계를 대고 총을 또 터트리려 하세욧!”

옆구리에 팔을 대고 성큼성큼 걸어온 에이다는 나이가 들어도 쇠퇴하지 않는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눈을 부라렸다. 그러고는 나를 한참동안 노려보아서 변명 아닌 변명을 하였다.

“개선을 하려면 사고가 벌어져야 하지 않겠어? 사고가 터진 다음 그 수습을 해야 한 단계 진보할 수 있는 거잖아.”

“예산은요!”

“예산은 내어줄게. 그리고 전자석 작동방식이니 방아쇠만 당기면 되는 거 아닐까?”

과연 이 개틀링 건이 정말 1분에 180발, 초당 3발을 발사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에이다는 부품을 어느 정도 손상된 구식 배터리로 교체하고 폭발에 대비해 모두 도망쳤다.

“삼 단계 발사시험 시작!”

마지막으로 남은 기술자는 방아쇠를 긴 끈으로 엮어 말뚝으로 고정시킬 준비를 마쳤다.

말뚝을 땅에 박아 방아쇠를 당긴 순간, 굉음과 함께 개틀링 건이 발사되었다.

두루루루루루루루루룩!

수레 전체가 요동치며 탄환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정말 1분에 180발을 발사하는 개틀링 건을 쌍안경으로 바라본 일준이가 기술자들과 함께 환호성을 지르며 말했다.

“이얏호! 새로 개량한 효과가 있어! 일 분이 넘었는데 총알을 잘만 쏘아대잖아!”

“닐슨,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어차피 망가질 물건이야! 쏘라고 해!”

3분이 넘어 약 500발의 총알을 쏘았을 무렵 이변이 발생하였다. 초당 3발의 발사가 아닌 어딘가 어긋난 발사. 자세히 보니 최상단의 총열이 아닌 중간의 총열에서 발사가 이루어졌다.

“쿡 오프(Cook off)잖아! 당장 가동 중단해!”

“쿡 오프가 뭐에요?”

나는 전쟁 관련 자료를 본 사람이라 뭔 일인지 알고 있었다. 과열로 인해 총열 이전에 약실이 뜨거워져서 멋대로 발사되는 상황을 에이다에게 설명해 주었다.

“약실이 과열되어서 총알이 장전된 순간 발사되는 거라고!”

“그럼 쿡 오프 맞네요. 오븐에서 빵을 구워내는 것처럼 탄환이 발사되는 건가요?”

“일단 사격 중단해. 저러다가 약실이 더 과열되어서 망가…….”

쇠가 일그러지는 소리가 들리며 광란의 발사가 중단되었다. 과열로 탄환이 터진 약실 구간이 계속 돌아가는 모터의 힘으로 점차 짓뭉개졌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모터는 계속 돌아갔다. 마침내 기술자들이 접근하기도 전에 우직하고 쇠가 찢기는 소리가 나며 총이 총열과 몸통으로 분리되었다.

일준이는 사태가 종료된 뒤 기술자들과 함께 접근해 부품을 확인하며 에이다와 개선점을 찾아 나섰다.

“총열은 녹고 약실은 터져 버리고, 다음번 모델은 약실 방열 설계도 생각해야겠는걸.”

“부품이 좀 복잡해질지도 모르지만 비상 중단 스위치를 넣어야 할 거예요. 그리고 약실 방열 설계요? 폐쇄가 필요한 약실을 어떻게 방열 설계를 해요?”

“일단 약실 자체의 부품 크기를 키워 열용량을 높이자. 여기에 얼마 전 개발한 히트 파이프(heat pipe)라도 설치해서 방열판과 결합시키면 좀 더 버틸 수 있겠는데?”

공학적 개선은 잘 모르는데 아무튼 일준이가 알아서 할 거다. 기술자들은 부품 사진을 찍고 상세 치수를 분석하여 이를 즉석에서 보고서로 만들어내었다.

개틀링 건을 1분당 300발이 아닌 180발만 발사할 수 있어도 충분하다. 홍수전의 전열보병은 개틀링 건을 만나 말 그대로 어육(魚肉)처럼 산산조각으로 분해되리라.

“한센? 한센?”

내가 생각에 잠겨 있자 에이다가 내 등을 쿡쿡 찌르며 주의를 돌렸다. 일준이와 함께 선 에이다는 나에게 부탁 아닌 부탁을 하였다.

“총 명칭을 닐슨 건이라 할까요? 아니면 에이다 건이라 할까요? 설계를 절반씩 담당해서 어느 쪽이 좋을지 의견 좀 내놓아 주세요.”

“부부는 연결된(linked) 관계잖아요? 이 총은 총열도 탄환도 연결된(linked) 총이네요?”

“그럼 커넥트 건인가요?”

“아니지요. 연결되다, 즉 겟 링크드(Get linked) 건이라 하면 되겠네요.”

본래 개틀링 건을 발명한 리처드 개틀링을 존중해 줘야지. 에이다는 내 말을 듣더니 겟 링크드를 몇 번 중얼거리고 말하였다.

“영국의 여러 성 중에 개틀링(Gatling)이라는 성씨가 있어요. 그렇게 불러도 될까요?”

“그게 더 좋네요. 겟 링크드 건보다는 개틀링 건이 부르기 편한걸요. 아니면 열 개의 총열을 가진 총이니 텐 배럴 건?”

공식 영문 이름은 개틀링 건, 대한제국 명칭으로는 십혈포(十穴砲)라 불리게 되었다. 뭔가 어색한 이름인데 표적지를 올리던 중 가벼운 사고가 발생하였다.

우지끈 소리를 내며 그 거대한 표적지가 반쪽으로 갈라져 버렸다.

홍수전의 자랑스러운 전열보병은 개틀링 건에 저런 꼴로 토막 나 버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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