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17장 6화 외부대신
정약용의 장례를 마치고 출근하는 첫날. 앞으로 일 년 동안 입을 상복단령의 뻣뻣한 촉감이 전해져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내 대부님인데 적어도 일 년은 입어줘야지.”
아직도 상복 관례는 대한제국에 남아 있다. 순백색의 상복 단령 혹은 서양식 관습을 존중하여 시커먼 양복을 입는 것을 권장한다.
길거리를 확인하니 정약용의 머나먼 제자라 상복단령을 입은 관료들과 동방 풍습을 존중하여 시커먼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권돈인은 일찍 출근한 나에게 미리 언질을 주었다.
“오랜만에 출근하였군. 나도 장지에 다녀왔는데 눈물이 앞을 가리더군.”
“제 대부님이신 분이니 슬픔이 가득합니다. 그래도 남기신 말씀대로 열심히 해봐야지요.”
권돈인도 정약용과 인연을 맺은 사람이었다. 그는 괜히 흘러나오는 눈물을 슬쩍 훔치고 억지로 태연한 모습을 보이며 앞으로의 일을 말하였다.
“난 조만간 정승이 되어 의정부에서 자문과 주요 국정 운영을 담당할 예정일세.”
“제가 외부대신으로 부임하는 것은 확정된 상황이로군요.”
“외교 업무를 자네보다 잘 보는 사람이 없어서 방도가 없군. 지겨운 일이라 하여도 잘할 거라 믿겠네.”
권돈인은 인수인계를 하면서 자신이 분석한 각국의 관계와 예측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한 부서를 총괄하는 대신은 대전제와 전략 분석을 위주로 부서를 운영하지.
“아마 수에즈 운하가 완공되고 나면 오스만 제국과 영길리 그리고 불란서의 관계가 변화할 것 같군. 운하의 이해득실을 생각하여 분쟁이 벌어질 것 같아.”
그 대전제와 전략 분석은 이 시대 사람들의 식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서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내 표정을 살펴본 권돈인이 머뭇거리며 말하였다.
“운하는 내후년인 1851년 초에 완공될 예정이야. 이미 오스만과 불란서가 서로 날을 세우고 대립하고 있는데 전쟁이 벌어지지 않겠나?”
“오스만과 불란서가 아닌 노서아(러시아)가 연관되어 전쟁이 일어날 겁니다.”
대한제국의 사람들은 수에즈 운하가 완공되면 벌어질 효과를 모르고 있다. 기껏해야 중국에 있는 대운하와 비슷한 물건이라 생각하였다.
심지어 유럽 사람들도 희망봉 항로 폐쇄로 인한 거리적 이득, 그리고 지중해 내부 항구들의 활성화가 효과의 전부라 생각한다.
수에즈 운하는 범선 시대의 종말, 유럽의 동방 영향력 확대 그리고 지중해 경제의 활성화에 영향을 끼친다.
내 상사인 권돈인에게 이를 설명해 주었다.
“이재(彛齋 - 권돈인의 호) 대감님께서 예측하신 바는 틀리지 않으나 세 국가는 수에즈 운하의 막대한 이득을 맛보고 어느 정도 양보할 것 같습니다.”
“얼마나 막대한 이득이기에 서로의 불신을 덮고 자존심을 굽혀 타협을 보는가. 수에즈 운하는 증기선은 몰라도 범선이 통과하려면 예인선에 끌려 지나가야 하는데.”
“범선이 통과하지 않는 운하가 될 겁니다. 증기선은 물살과 바람을 역류하여 가는데 범선은 막대한 통행료를 낼 것이요, 자연스럽게 모두가 증기선을 구매하고 사용하겠지요.”
증기선은 아직까지 돈 먹는 애물단지이다. 유지비로 석탄이 끝없이 소모되고 기범선(機帆船) 형태의 배조차도 이 비용 때문에 민간에서 굴리기 힘들어진다.
기범선이건 증기선이건 증기기관이 들어간 배는 모두 정부 소속의 군사용 선박이다. 민간에서 증기선을 구매할 이유는 간혹 불하되는 구형 선박을 시험 삼아 굴리는 것이 전부다.
반면 수에즈 운하에서 증기선을 한 번이라도 사용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예인선도 필요 없이 운하를 단번에 통과할 수 있다면 그 이득이 얼마나 될까.
이건 본래 역사에서도 일어난 일이다. 본래 대학교나 연구소에서나 사용하던 컴퓨터가 일반 기업에 전파되듯이 증기선을 민간이 사용하게 되는 꼴이다.
권돈인은 내 이야기를 한참 동안 듣고 자신의 예측을 수정하였다. 그 또한 열심히 분석하였지만 나처럼 미래의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예측이 전부였다.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없네. 그저 범선이 사용하기 골치 아픈 곳이라 생각하였는데 편리를 추구하려고 증기선을 마구 찍어내 운영할 것이라고?”
“세상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편의를 생각하게 마련입니다. 그러하면 오스만도, 불란서도 서로 석탄 저장고를 마련하고 서로 협력하여 이를 운영할 겁니다.”
오스만 제국은 동방 무역에서 가장 불리한 유럽 국가이다. 육로 무역은 사막으로 인해 막혀 있다, 그나마 해로 무역도 지중해 전체를 뚫고 지브롤터 해협을 통과해야 한다.
반면 수에즈 운하에서 가장 가까운 국가이지. 오스만 입장에서는 프랑스와 영국이 소유한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려고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릴 생각을 먹을 거다.
이미 물밑에서는 지분 교환을 끝내고 투자금과 각종 공사 관련 비용을 할양하였으리라.
이 예상을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인 권돈인에게 흑해 일대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반면 노서아는 오스만의 영토인 흑해를 통과해야 지중해로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하니 아마 이스라엘 일대, 유대인들의 고향을 자신의 땅이라 선언할 것 같습니다.”
“노서아에서 어찌하여 이스라엘을 자신의 땅이라 선언하는가? 명분이 있나?”
“동방정교회의 수호자 자리를 앞세워 예루살렘 탈환을 명분으로 내세울 겁니다. 아시다시피 노서아의 국가 구조가 참 옛날 방식이지 않습니까?”
“옛날 방식이다? 자네는 옛날에 농노를 그렇게 가혹하게 다루었는지 아는가?”
권돈인은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내 옆구리를 괜히 팔꿈치로 쿡쿡 찔러댔다. 그러고는 러시아 제국의 현황에 대해 푸념하듯 말하였다.
“노서아의 백성들은 참 기이한 사람들이야. 삼정의 문란이 우습게 보일 정도로 수탈을 당하면서 황제가 곧 신의 대리자라 믿고 있으니 민란이 일어나지 않는다더군.”
“듣자 하니 차르가 강제 징집 명령을 내려도 쟁기와 낫을 버리고 가산을 다 탕진하여 입대하는 이들이 대다수라 합니다. 아마 먼 훗날에도 변하지 않을 것 같군요.”
“그럴 리가 있나. 적어도 노서아의 황제나 백성 중 하나는 변할 것 같은데?”
권돈인이 의외로 미래의 일을 예측하였다. 러시아의 차르는 아니고 140%의 득표율을 자랑하는 지도자는 우리가 조선에 오기 전 강제 징집 명령을 내려 버렸다.
물론 러시아의 시민들은 바보 이반이 아니고 이성이 있는 사람들이라 이 명령을 거부하였지.
권돈인은 내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실실 웃으며 결론을 내렸다.
“그러하면 노서아와 주변의 영향을 받은 국가들이 공격에 나설 것이요. 오사만과 불란서 그리고 영길리의 연합군이 방어를 할 것인데 승산이 없지 않나?”
“승산이 없더라도 할 전쟁입니다. 최소한 흑해를 영향권에 두고 지중해로 진출하여 수에즈 운하를 이용할 정도로 피해를 입혀 협상만 하면 이득이라 볼 겁니다.”
본래 역사의 크림전쟁이 수에즈 운하로 더 빠르게, 더 큰 규모로 발생할 것이 확실시되었다. 아마 러시아의 피해는 적극적인 프랑스와 영국의 참전으로 막대히 불어나겠지.
이 전쟁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볼 국가는 우리 대한제국이다. 권돈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으로 질문을 하였다.
“혹시 자네…… 노서아에 할양한 연해주를 돌려받을 생각인가?”
“불란서와 영길리의 함대가 자연스럽게 쌍성자(우수리스크)를 시작으로 노서아의 동방 영토를 모두 두들기고 다닐 겁니다. 우리는 중립국으로서 두 가지 일만 하면 될 것 같군요.”
“하나는 불란서와 영길리 함대에 보급을 아낌없이 지원해주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쌍성자 일대에 있는 옛 화전민들을 철저히 관리하는 것이로군.”
“이 나라 백성들이 피해를 입는 일을 눈 뜨고 볼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면 노서아의 힘을 빼놓고 중립국에 이득을 챙겨주기 위해 연해주를 할양해 줄 겁니다.”
물론 러시아와의 관계를 완전히 망가트릴 생각은 없다. 러시아는 동네 바보 형님 정도로 남아서 우리와 교역국으로 남으면 적당하지.
관계 개선을 위해 알래스카 구매에 끼어들어 전쟁 피해를 복구할 때 지원을 주면 충분하다. 미국과 어느 정도 싸우는 척 공동 구매하고 개발권만 적당히 얻어도 되리라.
권돈인은 앞으로 길어야 4년, 짧으면 2년 이내에 일어날 크림전쟁의 전말과 내 대처를 모두 듣고 침묵하였다.
그도 나름 내가 자격이 있는지 시험해 보려고 운을 띄웠으리라.
답으로 자신이 예측하지 못한 유럽 전쟁의 전개를 완벽하게 말해주었고. 쪽지 시험을 봤는데 논문을 제출한 격이다.
마침내 권돈인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질문을 하였다.
“구주 일대의 변란은 이미 대처를 하였으니 다음 대처가 궁금하군. 모두가 증기선을 사용하고 서로의 이득을 위해 손을 잡는 시대가 열린다 했었지. 대응할 방법이 있나?”
나는 슬쩍 웃으며 고개를 돌려 증기기관이 가동되어 전기를 생산하고 있을 건물 구석을 가리켰다. 권돈인은 내 표정을 보고 허벅지를 손으로 치면서 말하였다.
“대응을 이미 하여서 안심하고 있군. 듣자 하니 이 나라에 퍼져나가는 증기기관은 콜리스라는 기술자가 개발하여 성능이 좋다 하던데.”
“다음 세대의 증기기관을 이미 개발하고 있습니다. 유니 플로(uniflow), 이 나라의 말로 번안하면 단일 축선 기관이지요.”
이 엔진은 본래 역사에서는 1820년대에 개발되었던 엔진이다. 문제는 열역학 관련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아 사고를 일으키다 1880년대에 특허를 받은 엔진이고.
이후 여러 증기기관차에 쓰이다가 20세기부터 발전된 고급 증기기관의 모태가 되었다. 콜리스와 연구진들은 엄청난 돈을 퍼부어 가며 이 기관을 연구하고 있지.
물론 대형화 모델을 하나 만들 때마다 10만 냥의 자금이 허공으로 날아가서 효명제가 싫어하고 있기도 하고.
권돈인은 얼마 전의 논의 내용을 말하였다.
“황제폐하께서 그 증기기관 개발 비용이 지나치게 많다며 우려를 표하셨는데.”
“단일 축선 기관은 매년 백만 냥을 투자해도 아까운 기관이 아닙니다. 수에즈 운하가 완공되면 일반 상선조차 증기기관을 사용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정승의 자리에 오르면 단일 축선 기관 개발의 관리를 총괄해 볼 걸세. 말년에 아주 재미있는 일이 생긴 것 같군.”
권돈인은 이후 인수인계 작업을 보름 동안 진행하였다. 나에게 비공식 첩보라 얼버무린, 실제로는 존재하는 세계 각국의 요원, 청나라 전역에 퍼진 전신망을 관리하는 법 등이었다.
“이제 할 말은 모두 다 한 것 같군. 잘 할 수 있겠나?”
“여유당 대감님께서 저에게 앞으로도 잘하고 나중에도 잘하라는 유고를 남기셨지요. 못 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 자네는 일을 못 하는 사람이 아니야.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사람이지.”
마지막으로 악수를 나눈 다음 날, 공식적인 자리에서 품계가 결정되었다. 공식적인 외부대신의 자리에 오른 나는 부임 첫날부터 청나라 첩보를 종합하여 보고하라 하였다.
“먼저 천자의 장례로 일곱 달에 걸친 행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물론 새 황제인 함풍제의 치세가 시작되었으며 각지의 관료들은 모두 긴장하여 명을 받들고 있습니다.”
도광제의 사망 이후 황제에 즉위한 함풍제는 즉위 첫날부터 강도 높은 개혁과 체제 개편 그리고 군사력 확충을 표방하였다.
“앞으로 삼십만 명에 달하는 군대를 충원하고 이 나라와 재협상을 맺어 신형 권총을 비롯한 탄피 화기를 사들일 예정이라 합니다.”
“삼십만 명? 그 군대를 확충할 돈은 어디서 나고 인원은 어디서 징집하는가?”
외부 부대신 자리에서는 모두에게 반쯤 존댓말을 하였다. 반면 외부 최고 자리인 대신의 직위에 올라선 순간부터 굳이 존댓말을 할 필요가 없어졌지.
다른 사람들은 내 반말을 듣고 이를 덤덤하게 받아들여 보고를 이어갔다.
“각 지방의 팔기군과 향용을 규합하여 새 군대를 만들어 낼 예정이라 합니다.”
새 군대라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애초에 팔기군과 규합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순간 그 군대는 마적이나 성벽에 똥칠하는 머저리들로 구성된 군대이다.
혹은 팔기군을 앞세워 객가 군대로 내부를 침탈하려는 홍수전의 계략이겠지. 이어지는 보고 결과는 두 가지 예측이 혼합되어 있었다.
“청도 일대에서 전신을 통해 전해져 온 첩보에 의하면 화북(장강 북쪽) 일대에는 팔기군에게 새 병기를 주고 훈련시킨 부대를 구성합니다.”
“반면 상해에서 입수한 소식은 다릅니다. 화중(장강 유역)은 팔기군과 향용을 합친 부대, 화남에는 팔기군 대신 대다수가 향용인 부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화남 일대의 향용들은 이미 명성이 자자합니다. 멋대로 이주한 객가들이 분연히 일어나 민란을 제압하였다고 도광제 시절부터 혜택을 받더군요.”
“그 향용 가운데 상당수가 객가 출신이군. 민란을 진압한 용맹한 병사들이라?”
홍수전은 청나라를 무너트리기 위해 아주 열심히 일하고 있다. 본래 역사에서 과대망상과 정신병을 드러내며 자신을 예수의 아들이라 자처하던 놈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대신 부패한 청나라에 아편을 퍼트려 민란을 일으킨다. 이후 일어난 민란을 팔기군 대신 객가를 동원해 진압하고 지방에 세력을 구축하는 방식이다.
그러면 이 이유가 궁금하다.
청나라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고 부패가 만연하여 딴마음을 품었을 수도 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홍수전이 고개를 숙여가며 청나라 내부에 파고들어 간 근본적인 생각이다.
일단 모든 일에 대처할 수 있도록 북경 대사관을 설치하면 좋겠지.
자료를 모두 종합한 다음 대수롭지 않게 말하였다.
“북경에 대사관을 하나 설치하면 어떻겠나. 도광제의 죽음에 바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 명분이고 실제로는 더 많은 정보를 입수할 작정이야.”
“대사관이라 하셨습니까? 바로 지척에 있는 나라인데요?”
“전신이 서로 연결되었다 하여도 사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다르지.”
외부 사람들은 청나라에 건너가 접대를 주고받을 생각에 서로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부패한 청나라는 뇌물이 생활화되어 있는 국가이다.
대한제국이나 서양은 뇌물을 인사치례로 현대의 한우 선물세트 보내듯이 적당히 준다. 반면 청나라는 집 한 채를 들어다 바치는 수준이 뇌물의 시작이다.
이 막대한 비용은 모두 공작비로 처리할 수 있다. 쓸 만한 정보만 입수하면 어느 누구에게도 밉보이지 않고 성과를 거두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향락도 누릴 수 있다.
“공작비가 많이 소모될 것 같습니다. 외부에서 이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어차피 해야 할 일이지. 그러하면 파견할 사람은 누가 좋을까?”
외부 관리들이 생각에 잠겼다. 나도 같이 인재를 찾아보던 중 등골에서 소름이 올라오며 북경에서 벌어진 사건이 하나 떠올랐다.
머나먼 훗날에 벌어질 의화단의 난이다. 사이비 종교 집단이 권력을 등에 업고 사람 목에 상금을 걸고 학살하였다. 당시의 참혹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다.
생각해 보면 배상제회도 만만치 않은 사이비 종교이다. 여기에 백련교 출신인 의화단과 달리 같은 민족도 학살하거나 노예로 팔아버리는 객가들이 세력의 주축이다.
아마 북경에서 홍수전의 반란이 시작되면 의화단의 난 따위는 어린아이 장난으로 보이는 끔찍한 대학살이 시작되리라.
가뜩이나 만주족과 한족 모두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객가들이다. 이들이 권력과 무력을 손에 넣는 순간 자신의 눈에 거슬리는 모든 사람을 학살하겠지.
“북경 대사관은 몇 년 뒤에 만들도록 하지. 아직은 청도 대사관으로 충분할 거야.”
북경 대사관은 좀 더 고려할 대상이다. 외교관이 파견되면 자금과 시간을 퍼부어 인맥을 만들어야 한다.
외교관이 죽기라도 하면 모두 내 책임이다. 이 말이 나오자 외부 관리들은 서로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혹여나 박 후작님께서는 탐학(貪虐)을 즐기는 놈들을 염려하십니까?”
“후작님께서 자리를 비우신 동안 백경윤(景尹 - 백낙신의 자)이라는 하급 관료가 청도 대사관 부임 목적으로 청탁을 하였습니다.”
“그런 놈들이 끼어들면 골치가 아파질 겁니다. 뇌물을 주고받는 능력만 있는 머저리들 아닙니까?”
“청도에 있는 대사관이 관리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철저히 준비하시면 모를까 지금은 시기가 너무 빠릅니다.”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라서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역사를 배우던 기억이 떠오르며 누구인지 답이 나왔다.
“백경윤? 혹여나 무예도보통지를 집필한 백동수의 재종후손 말인가?”
“어떻게 아셨습니까?”
외부 관리들은 역시 후작님이라며 감탄하였다. 이 인간은 잊을 수 없는 부패 관료이다.
진주 농민 봉기의 원흉이자 탐관오리 순위를 매기면 조선시대 기준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놈이기도 하고.
그런 인간이 과거제도의 개량판인 국가고시에 합격할 줄은 꿈에도 몰랐네. 여기까지 생각하니 놈을 사용할 방법이 떠올랐다.
“뇌물을 주고받는데 재주가 있기는 하군. 몇 년 뒤에 만들어질 북경 대사관에는 모조리 그런 놈들만 넣어서 청나라 관리들과 합을 맞추면 좋을 거야.”
홍수전의 반란이 언제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시기가 되면 북경에 있는 사람들은 모조리 학살당하니 죽어도 아깝지 않은 탐관오리를 보내야 하리라.
이후 지시를 내려서 각지의 탐학을 일삼는 관료의 정보를 입수하라 하였다.
이들 모두를 북경 대사관에 두어 최대한 많은 정보를 빼내고 청나라의 손으로 제거하면? 명분도 생기고 쓰레기 정리도 되니 완전한 이득이다.
내 예상대로 본래 역사의 탐관오리들이 하나둘씩 정보망에 포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