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193화 (192/345)

193화

17장 4화 여유당 학회

이번 일은 정약용의 생일잔치라 당연히 본인의 의사를 물어보려 하였다. 정약용의 집으로 찾아가자 그는 억지로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반대하려 하였다.

심지어 아내 홍씨 부인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기만 할 뿐 그리 만족스러운 표정이 아니었다.

정약용은 내 설명을 듣고 한참을 생각한 다음 답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덤 속의 흙이 될 이 늙은이의 생일을 기념하려고 온 세상에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다니? 거기에 들어가는 자금이 얼마요 사람이 얼마나 고생하겠는가?”

“다산 선생님께서 염려하실 일이 아닙니다. 올해 오월에 콜라를 전 세계에 유통할 예정인데 이 콜라 상자를 운반하며 서신을 함께 보내면 되지요.”

동방 골나, 내가 재현한 현대식 콜라의 레시피는 내 기준으로 95% 정도 일치하는 수준으로 완성되었다. 마트에서 판매하는 싸구려 콜라와 견줄 수 없는 수준이지.

이 콜라는 지난 12월 최종 레시피 교정이 끝나서 생산에 들어갔고 유통만 남았다.

정약용에게 선물로 가져온 콜라 박스를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지금쯤 시제품 콜라를 맛본 전 세계의 부호들과 식자층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가장 빠른 선박으로 콜라를 보낼 예정이니 비용은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하면 이들이 대한제국에 올 이유는 있는가? 대한의 사람들이야 상관없지만 세상 열국의 사람들이 이 자리에 오다니.”

정약용은 억지로 자리에서 일어나 콜라 박스에서 콜라를 꺼냈다. 그리고 병따개로 두 병을 따서 한 병을 나에게 건네주고 덤덤하게 말하였다.

“고작 이 늙은이의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누기 위하여 두 달 동안 배 위에서 시달린다고? 그러한 일은 바라지 않으니 정말 필요한 사람만 오게 하면 어떠한가?”

“근래에 들어 서양의 열국에 대한제국의 수려한 풍광과 단아한 멋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다산 선생님과 인연을 맺은 카를 마르크스가 신문 기사를 작성한 덕분이지요.”

“카를? 그 젊은이가 신문 기사를 작성하였다고?”

“청구(靑丘) 견문록이라 하는 기사를 작성해 동방의 녹색 국가라 극찬을 하였습니다.”

외교를 담당하는 외부의 보조 업무 중 하나가 외국인 입국자에 대한 사증(査證) 발급이다. 한 번 허가를 받으면 5년 주기로 갱신하는 물건이라 그리 큰 업무도 아니다.

이 머나먼 대한까지 입국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상인이나 학생 혹은 기술자였지. 과거의 일인 이유는 카를 마르크스의 기사가 유럽에 전해지고 관광객이 증가한 덕분이다.

올해 1월부터 관광 목적으로 입국하는 사람이 천 명이 넘어갔다.

이 정도면 조만간 한 달 관광객이 이천 명을 넘길 기세라 정약용에게 간단히 답해주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초대를 받은 사람들이 다산 선생님의 핑계를 댈 것 같아서 염려될 지경이군요. 그러하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소식을 보내는 것도, 사람이 오는 것도 해결하였다 이 말인가.”

정약용은 콜라병을 닦아내더니 입을 대고 한 모금을 들이켜고 나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예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하였다.

“박현상 자네는 예전에 내가 했던 질문을 기억하는가? 유학(儒學)과 관련된 질문 말이야.”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다산 선생님께서 염려가 크셨지요.”

정약용은 우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미래 대한민국의 유학과 관련된 질문을 한 적이 있었지. 후일 자신의 학문 기반인 유학과 성리학이 얼마나 번성하였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 질문에 나는 한 치의 과장도 없이 답하였다. 동양 철학의 일부로 유학이 소속되었으며 전임 교수를 비롯한 학자는 다 합쳐야 200명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정약용은 잠시 고민하다 중국에 대한 질문도 하였다. 그래서 중국은 문화대혁명이라는 미친 짓을 자행하여 공자의 묘를 박살 내버렸다는 이야기도 했었지.

“당시 자네가 했던 말이 아직도 머리에 맴돌고 있었네. 유학을 배우는 이는 거의 없고, 배우는 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내 학문을 주제로 논문을 집필한다니.”

정약용은 학자의 입장에서 깊게 절망하였으리라. 학문은 흐르는 물처럼 한 사람의 사상에 매몰되지 않고 발전해야 한다.

하다못해 공자가 정리한 유학도 훗날 주희가 정리하여 성리학이 되었다. 이후 성리학은 수많은 학자를 통해 발전하고 대립하며 나름의 논리를 쌓아나갔다.

그 과정의 종착역은 본래 역사에서 정약용에서 막을 내렸다.

정약용은 이를 되새기며 한탄하듯이 말하였다.

“물론 이해는 할 수 있네. 이 나라가 수많은 혼란과 부패 속에 망국의 길을 걷게 되었으니 지배층이 모든 죄를 짊어져야지.”

“지나칠 정도로 핍박하였지요. 사실상 모든 사건의 원인을 성리학에 덮어씌웠습니다.”

“당연한 일 아닌가? 학문도 발전하지 못해, 부패를 눈감아주고 올바른 뜻을 감추는 데다 오로지 지배에만 몰두하였지. 결국 망국의 시기에 대처하지 못하지 않았나.”

정약용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정약용은 자신을 비롯한 본래 조선시대의 사람들이 역사의 흐름을 견디지 못한 패배자라 생각하리라.

농본주의 사회를 추구하건 공용 토지를 만들던 정약용 자신이 내린 답은 오답이다. 그러니 정답을 알고 있는, 적어도 정답에 근접할 수 있는 나와 일준이를 지지하였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선을 넘으면 적당히 조율해 주는 정도로 자신의 의견을 숨겨오고 인내하였다.

이를 알고 있어서 정약용에게 당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이제는 아닙니다. 유학의 깊은 뜻인 인의를 제가 억지로라도 이 대한에 뿌리를 내리게 하였습니다. 후일이 되면 다산 선생님의 제자들이 더 많은 학문을 퍼트릴 겁니다.”

“자네 뜻을 알 것 같네. 내가 마음속에 담고 있던 앙금을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해소하라는 뜻이 아닌가?”

“바로 보셨습니다. 제가 다산 선생님에게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인 것 같군요.”

정약용은 이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멋쩍게 웃으며 콜라를 다 들이켰고 입을 찬물로 헹군 다음 한참을 생각한 다음에 말하였다.

“이러다 여유당 학회가 만들어져서 대대손손 내 허명 석 자가 퍼져 나갈지도 모를 일이군.”

“설령 선생님이 원하지 않더라도 그리될 것입니다.”

“그럴 만도 하지. 환갑이 넘어서 두 젊은이를 키워냈는데 여간 걸물이어야지.”

정약용은 실실 웃으며 여기 오지 않은 일준이가 있을 자리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하나는 자기 나라의 잇속만 챙기며 다른 나라를 모질게 대하고 이간질시키는 만고의 충신이자 타국의 사갈(蛇蝎)이요. 다른 하나는 세상 만물을 주름잡으면서 주먹질로 남의 얼굴에 주름을 만드는 학자가 아닌가.”

“저희가 이 조선을, 오명을 뒤집어쓴 대한제국을 바로잡기 위해 응당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난 처음에 자네의 말을 듣고 바삐 움직였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 나라 왕손(王孫)이 올바로 이어지기를 바랐을 뿐이야. 이제는 좀 많이 엇나간 것 같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아마도 정약용은 효명세자가 살아서 이 나라가 타국의 식민지가 되는 일을 피하려 했으리라. 그 과정에서 일을 처리하고 우리에게 휘둘리다 보니 동방의 강대국이 되었고.

나쁜 일은 아니었다. 자신의 중농주의(重農主義) 대신 농업을 생각하는 상업자본의 발달로 뜻이 받아들여졌으며 고종이라는, 정약용조차 포기한 왕은 태어날지조차 의문이다.

설령 태어나더라도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은 정치적으로 죽은 왕족이 되었다. 한양에 운석이라도 떨어지지 않는 한 고종과 흥선대원군의 집권은 영원히 불가능하리라.

정약용은 힘을 가득 담아 붓을 정돈하고 초대장 원본을 작성하였다. 그 내용은 겸양을 담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가득하였다.

[이 늙은 몸이 황제폐하의 뜻으로 벼슬을 지내다 은퇴하여 그 은혜를 보답하려 합니다. 본디 금과 검 두 글자를 재산으로 남겨주려 하나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손이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고 눈이 여전히 글귀에 매몰되어 있으니 저절로 책을 썼지요. 이 부족한 책을 내놓자 세상의 사람들이 부족한 점을 메우고 넘치는 점을 도려냈습니다.]

[이제 시일이 지나 학문을 더 이상 익히지 못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간곡히 바라는 것이 있으니 제가 남긴 서적과 학문이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 보고 싶을 뿐입니다.]

[이 몸이 기력이 다해 쇠하면 훗날 한 줌의 흙이 될 터, 흙이 되기 전에 가르침을 조금이라도 얻고 싶은 마음으로 욕심을 내보았습니다.]

[수만 리의 머나먼 길을 저를 보러 오지 마시고 서로 배움을 논하러 오십시오. 그리고 다른 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더욱 많은 것을 배워 후일의 기회로 삼으십시오.]

가까스로 서신을 다 작성한 정약용은 내용을 재차 확인하고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괜히 피어나는 목련꽃을 보면서 말하였다.

“서신이 가는데 두 달, 소식이 전해지는데 한 달 그리고 사람들이 오는 데 두 달이 걸리겠군.”

“아마 그 정도 걸릴 겁니다. 뒤늦게 참석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군요.”

“그러면 될 거야. 이들이 머무르며 사용할 각종 비용은 내 재산에서 벌충하도록 하고.”

잠시 기력이 쇠하여 심호흡을 한 정약용은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예전 호이자 지금은 나와 일준이만 사용하는 다산(茶山)을 중얼거리다 말하였다.

“내가 이렇게 좋은 선물을 받게 되었으니 자네들에게도 선물을 하나 줘야 할 것 같군.”

“생일을 맞이하신 분이 선물을 주실 작정이라니요?”

“그리 큰 선물은 아니니 염려하지 말도록. 그러하면 숨이 넘어가지 않고 다섯 달을 버틸 수 있게 여러모로 신경을 써보겠네.”

정약용은 할 말을 다 했다는 듯이 방 안으로 들어가 잠에 빠져들었다. 그나마 아내 홍 씨 부인은 그나마 기력이 정정하여 하인들에게 명령을 내리며 준비를 내리라 하였다.

* * *

이후 넉 달은 눈코 뜰 새도 없이 바쁘게 흘러갔다. 몽골 내전의 조율, 베트남의 근대화 조율 그리고 청나라와의 기병용 카빈 수출 계약까지.

여기에 처음 시판한 콜라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대한제국에 우선 판매한 콜라 1만 병과 원액 30만 병 분량은 단 23일 만에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여기에 세계적 소비가 더욱 컸다. 유럽에 콜라 5만 병과 원액 45만 병 분량을 보냈는데 부족하다 못해 절박한 전신이 먼저 전해져 왔다.

-콜라의 예상 판매량은 영국 시민 1인당 1갤런(4.4리터)입니다. 신속히 보내주십시오.

-콜라가 동부 항구에서 모두 소비되어 내륙에서는 한 병당 3달러에 거래될 지경입니다. 원액 기준 최소 120만 병 분량을 보내주셔야 할 겁니다.

상인들이 추정한 콜라 연간 소비량은 전 세계 기준 천만 병이 조금 안 되었다. 이마저도 콜라가 처음 판매되어서 이 정도이지 앞으로 소비량은 더욱 증폭되리라.

콜라병은 아예 유럽에서 자체 발주를 하여 대한제국에 납품할 예정이라던가. 말 그대로 돈을 갈퀴로 쓸어 모을 기세로 공장을 전력 가동하였다.

“내 기준으로 콜라 열 병당 한 푼(0.1냥)의 배당금이 주어지는데 안동김씨 모두가 재벌이 되고도 남겠군. 남다 못해 콜라 공장을 전 세계에 퍼트려도 되겠어.”

이쯤 되면 세금이 걱정될 수준이다. 아마 몇 년 지나서 콜라를 매년 이천만 병 생산하면 나에게 떨어지는 수익이 연간 20만 냥이다.

결국 공장 네 동을 불태울 기세로 콜라를 찍어내고 또 찍어냈으며 일준이도 간혹 들러 콜라 맛을 점검하였다. 이 과정에서 아예 공장에 잠입하는 놈들이 생겨나서 즉각 체포당했다.

“혹시나 몰라서 공장 보안체계를 강화한 것이 답이었네.”

여섯 명의 일당은 이천 냥의 자금을 받고 공장에 잠입을 시도하였다. 이 과정에서 공장 직원에게 걸려 경비원에게 두드려 맞고 바로 압송당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일준이가 비밀재료를 담은 유리병을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시커먼 액체를 보면서 말했다.

“애초에 비밀 재료 X, Y, Z는 내가 만드는데. 공장에서 찾을 수나 있나.”

“그러면 네 연구실을 노릴지도 모르잖아. 비밀 재료 생산을 여기로 옮기고 보안을 더 철저히 유지해야겠어. 신비주의로 광고한 건 좋은데 부작용도 있네.”

“어련하시겠어. 그나저나 다산 선생님 생일잔치는 잘 진행되어 가냐? 유럽에서 온 사람들은 얼마나 될 것 같아?”

“전신이 오려면 멀었다. 해저 전신이 프랑스 개항지인 광주에서 시작되어 상해를 거쳐 목포, 광주로 오잖아. 아마 사람들이 도착하기 보름 전에 전신이 올걸?”

아무리 전신을 빠르게 도입해도 한계가 있다. 해저 전신을 계속 연장할 수도 없고 지금은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일부 그리고 유럽에 전신을 둔 것이 한계다.

전신으로 보내진 소식은 연락선을 타고 다음 전신으로 전해진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지 않았으나 영국과 프랑스가 미리 육로를 뚫어놓은 것이다.

아마 정약용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온 사람들은 아프리카를 빙 돌아오지 않고 임시 육로를 통해 홍해를 지나서 오겠지.

물론 유럽에서 사람들이 오는 건 아니다. 당연히 친인척과 고위 관료들이 방문하며 대한제국 내부에서도 방문 의사를 전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미 팔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방문할 것이라 의사를 표시했어. 다산 선생님 집에는 하인 네 명을 추가 고용해서 서신 처리만 하고 있다더라.”

일준이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정약용은 마괴화통을 비롯한 의학 서적은 물론이요 아학편이라 하여 어린아이를 위한 한자 단어장도 만들었다.

여기에 아방강역고로 지금 토목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고. 이 과정에서 요학자, 순학자를 비롯한 고고학과 고생물학에도 알음알음 영향을 끼쳤지.

경세유표나 흠흠신서는 정약용의 복권 이후 새로운 법률 구성을 위한 참고서가 되었다.

본래 잊힌 저술가에 불과한 정약용은 우리를 키워낸 순간 이 모든 것을 세상에 퍼트리게 되었다.

그나마 대한제국에서 팔백 명가량이 방문하는 이유도 서로 불편을 끼치지 않으려 노력한 결과물이리라.

일준이는 내 설명을 듣고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도 슬슬 전신국 직원을 추가 고용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정도나 되려고? 하루에 오는 국제 전신이 삼백 통 내외인데 처리가 가능하겠지?”

“글쎄다. 내가 보기에는 아닐 것 같은데.”

혹시나 몰라서 전신이 올 무렵 한양 전신국의 예비 전신기사 몇 명을 불러두었다.

내 예상과 달리 며칠 뒤부터 전신기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이러다 죽을 것 같습니다! 전신 뭉치 해석하는 것도 일이라니까요!”

“먹지가 너무 빨리 사라져서 새 먹지를 미리 잘라둬야 할 지경입니다!”

에이다가 개조한 에이다 전신기는 모스 부호, 이 시대에는 에이다 부호를 내뱉었다. 딱딱 소리를 내며 가동되는 전신기는 끝없이 종이를 밀어내며 부호를 찍어댔다.

전신기용 배터리는 평상시와 달리 하루 4회 이상 교체되었고 모스 부호를 받아내기 위한 먹지는 아예 시간 단위로 교체되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죽을 것 같습니다. 나름 전신이라고 단답 형태로 보내는데 미사여구가 너무 많아서 수백 자가 넘어가는군요.”

도합 사천여 통의 전신이 7일 동안 도착하였다. 하나하나 해석하고 옮겨 적어 분석하자 외국 방문객이 1,200여 명에 달할 지경이었다.

가장 지체 높은 사람은 응우옌푹홍이, 베트남 황제의 이복동생이자 친왕이며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였다.

영국 왕립 과학협회, 영국 왕립 지리협회 그리고 영국 의사협회를 비롯한 사람들이 의사를 밝혔다.

여기에 프랑스에서도 과학 아카데미, 예술 한림원 심지어 사회주의 사상가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참가 의사를 밝혔다.

여기에 각국의 철학자와 인도 총독을 역임하는 찰스 네이피어까지 방문하였다. 네이피어와 함께 방문하는 사람 중에는 인도에 머무르는 카를 마르크스까지 있었다.

미국에서도 의사들이나 동양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방문할 지경이었다. 이 사람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할 처지가 되었다.

“이건 축제나 학회가 아니고 올림픽인데.”

일준이는 참여자들의 면모를 보면서 국제 박람회에 준하는 규모라 평가하였다.

이 압도적인 인파를 맞이할 내 입장에서도 끔찍할 정도로 거대한 규모임은 확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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