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192화 (191/345)

192화

17장 3화 지는 꽃

외몽골 군사 고문단은 3월에 일부 인원이 돌아와 효명제에게 보고를 올렸다. 이 과정에는 나를 포함한 외부와 군부 일동이 함께 참가하여 이들의 의견을 반영하기로 하였다.

“……이상으로 황제폐하께 보고를 마치옵니다. 소장이 판단하기로는 실로 훌륭한 일이 아닐 수 없사옵니다.”

“고작 십오만 냥의, 귀관들의 출장비와 성과급을 감안하여도 이십만 냥의 자금을 투자하여 청나라의 가장 강한 군대인 몽골팔기를 이천 명이나 격파하였군.”

외몽골 전사들은 권총에 푹 빠져서 겨울을 틈타 진군하는 청나라 군대와 4번의 격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외몽골도 피해를 입었으나 청나라의 피해가 더욱 크다.

외몽골 전사 400여 명이 죽거나 중경상을 입을 때 팔기군은 도합 2,000명이 죽거나 포로로 잡혔지. 이마저도 외몽골 전사들이 점차 권총에 능숙해지며 나아질 수치이다.

물론 효명제 입장에서는 불편한 일이리라. 예전에 일 처리가 귀찮아서 외몽골 지원 이야기를 꺼냈다가 내전을 종용한 꼴이 되어버린 꼴이니까.

“좋은 일이기도 하나 추후 벌어질 문제로 외부에서 고생이 많을 것 같구나. 혹여나 포로에게 증언을 들은 적이 있느냐?”

“포로로 잡은 장수가 말하길 이번 외몽골 진군은 청나라 황제의 명을 받은 일이라 하였사옵니다.”

“장수를 포로로 잡았다? 그러하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인데?”

“외몽골의 부족들이 예의를 다 한다며 모전(毛氈 - 양탄자)로 둘둘 말고 위를 말로 짓밟아 처형하였사옵니다. 결국 더 이상 물어볼 수 없었사옵니다.”

몽골 민족 입장에서는 최대한의 예의요 대한제국 입장에서는 끔찍한 처형법이지.

효명제는 고문단이 겪을 고생을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말하였다.

“아쉬운 일이나 전공을 세웠으니 고문단으로 파견된 인원들의 특진을 추진하도록. 또한 군부에서는 신속히 신형 권총의 보급과 사용법을 숙지시키도록 하라.”

“황제폐하의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또한 권총 사용을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사옵나이다.”

“권총을 보급할 것인데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 군부대신은 또 다른 생각이 있는가?”

군부대신으로 얼마 전 임명된 이응식(李應植)은 순조를 호위하던 흉갑기병 지휘관으로 출세한 사람이었다.

그는 전훈 보고를 확인하고 가슴을 탕탕 치면서 요청을 보냈다.

“미국의 기술자 새뮤얼 콜트가 말하기를 더 위력이 강하고 커다란 권총을 만들 예정이라 하옵니다. 명칭을 평화(Peacemaker)라 하였는데 현재 시험하고 있사옵니다.”

“적을 모두 죽여서 평화를 이룩하겠다는 말인가. 그러하면 달자권총은 쓸 필요가 없다는 말이로군.”

“아니옵니다. 두 정을 두어 갑주를 입은 적은 평화 권총으로 단번에 제압하며, 갑주가 없는 적은 달자 권총으로 마구 쏘아 제압하는 것이옵니다.”

결국 예산을 증액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효명제는 잠시 생각하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서 이 요청을 수락하였다.

“성과를 거두었으면 더 많은 보급을 보내야 하는 법. 평화라 불리는 신형 권총의 개발 비용을 제공하며 외몽골의 전사들에게 더 많은 지원을 실시하겠다.”

효명제는 구체적인 안건을 적의 수급과 획득한 전리품을 기준으로 삼았다. 아직 확정된 사항이 아니라 내 의견도 참고하려 질문을 하였다.

“짐의 판단으로는 이러하다만 다른 이의 의견도 들어보아야 할 터. 외부에서는 어떻게 보는가?”

“옳은 말씀이옵니다. 다만 노획한 수급(首級)으로 지원을 실시하면 애꿎은 희생자가 발생할 수 있으니 공과 과를 철저히 가려야 할 것이옵니다.”

굳이 예를 들 필요도 없지. 다들 청나라 팔기군이 가짜 수급을 제조하고 가짜 전투를 하며 지원금을 빼먹은 건은 잘 알고 있어서 단번에 이해했다.

“짐이 보기에는 군사 고문단 소속 장교들이 전투를 먼 거리에서 감찰해야 할 것 같다. 귀찮은 일이라도 결과적으로 외몽골에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겠구나.”

여기까지 생각이 미칠 줄 몰랐네. 효명제는 단순히 영향력 행사라 하였는데 이건 제법 좋은 수단이다.

대한제국은 감찰을 빌미로 외몽골의 폭주를 제어하며 내부 분열을 억제할 수단도 갖추게 되었다.

황제폐하의 의견이라면 당연히 받아들여야지. 효명제의 성장에 감동하는 마음을 숨기기 위해 머리를 조아리며 답하였다.

“폐하께서 이토록 혜안을 보이시니 신이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자고로 몽골의 사람들은 형편이 나아지면 석전을 즐기듯 내전을 실시하니 이를 제지할 필요가 있사옵니다.”

“그 또한 좋은 답이로구나. 그러하면 다음으로 벌어질 골치 아픈 일이 있구나. 청나라에서 조만간 항의를 할 것인데 이는 어찌 대처하면 되겠느냐?”

후폭풍 감당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여기서 예전에 효명제가 세자 시절 맺은 협약을 들먹여 감당하기로 하였다.

“대한은 아무 잘못이 없사옵니다. 달자 권총은 원하는 사람 모두가 사들일 수 있는 무기이며 대한에서는 외몽골의 요청에 따라 채무를 지불하여 권총을 판매하였사옵니다.”

“그러하면 청나라에도 수출할 수 있다는 말이로구나.”

“동지조약에 의거하여 수출 가능한 무기가 제한되어 있으니 조약 항목을 수정하는 것이 우선이옵니다. 그 수정이 얼마나 걸릴지는 신도 명확히 모르는 일이옵니다.”

처음 동지조약을 맺을 시기의 청나라는 나름 생각을 하고 조약을 설정했다. 개항지를 통해 한족들이 서양 무기를 구매해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염려를 하였다.

의도는 좋으나 무기체계가 급변하는 19세기 중반의 시대를 예측하지 못한 멍청한 조약이지. 설령 청나라가 공식 항의를 해도 칼자루는 우리가 쥐고 있다.

항의로 인한 조약 수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또 미루며 진이 빠질 무렵 수출을 허가해야 하리라. 그 시기는 외몽골이 완전히 우세를 점한 다음으로 설정하고.

“짐이 지금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군. 그러하면 청의 요청을 묵살할 셈인가?”

“권총과 비교하여 부족한 병기는 공급하면 좋을 것 같사옵니다. 이를테면 권총의 도입으로 도태될 기병용 단총(短銃 - 카빈)을 헐값에 떠넘겨야 할 것이옵니다.”

“기병들이 사용하는 짧은 총 말인가? 청나라에 그러한 무기를 넘겨줘도 되는가?”

효명제는 지금까지 청나라에 중고 브라운베스 머스킷, 갑식 소총으로 교체되어 예비 치장 물자로 분류된 물건을 팔아넘겼다. 청나라의 요청에 맞추어 화승 방식으로 변경한 물건이다.

부패한 청나라에서 200년 묵은 조총을 사용하나 10년 묵은 브라운베스를 사용하나 큰 차이는 없다 판단한 결과물이지.

반면 기병들이 지금도 잘 사용하고 있는 카빈 소총은 수출을 하지 않았다. 잠시 고민한 효명제는 고문단 소속 장교에게 질문을 하였다.

“외몽골 전사들이 상대한 청나라 기병들이 화약 무기를 사용하였는가?”

“사용했다 하옵니다. 먼 거리에서 화승총으로 쏘고 가까이 달려오며 화살을 쏘았다는 보고를 분명히 받았사옵니다. 심지어 몇몇 병사는 화승총에 맞아 부상을 입었사옵니다.”

“그러하면 수출해도 별문제가 없겠군. 먼저 기병용 단총의 수출 제안을 하고 추후 권총으로 문제가 생기면 조약 수정의 시일을 늦게 조정하라.”

몽골이 두 패로 나뉘어 대한제국의 무기를 사용하는 꼴이 되었다. 최신식 권총을 난사하는 외몽골과 더 많은 카빈을 사용하는 내몽골 청나라 군대라니.

잘만 하면 몽골 웨스턴…… 은 아니고 무식한 미국인들의 감성으로 타타르 웨스턴이라는 정체불명의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뒤로하고 고개를 조아리며 답하였다.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회의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효명제는 잠시 나에게 손짓을 하고 목련나무 앞에 섰다. 황궁에 몇 그루 없는 목련나무에는 꽃봉오리가 맺히며 봄을 점차 알렸다.

“아바마마께서 이 나라의 기반을 마련하시어 내가 가지를 뻗고 태자가 꽃을 피울 때가 되었구나.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이 나라가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 같구나.”

“실로 그러하옵니다. 폐하께서 언제나 나라를 생각하시기에 이토록 발전할 수 있사옵니다.”

“그러한 발전을 오랫동안 지켜보지 못할 사람들도 있지 않겠느냐.”

봄바람이 불며 목련나무가 흔들렸다. 아직 맺히지 못한 꽃봉오리들이 바닥에 떨어졌고 효명제는 이 꽃봉오리를 집어 올리고는 말하였다.

“얼마 전 비공식 첩보가 들어왔다. 청나라 황제가 이틀 동안 의식을 잃고 깨어난 다음부터 망설(妄說 -헛소리)을 한다더구나.”

“신의 판단으로는 목숨이 경각에 달한 것 같사옵니다. 나라가 시시각각 무너지는 꼴을 보는데 예순이 넘은 나이에 기력이 쇠하는 것은 당연하옵니다.”

효명제도 내 판단에 동의하였다. 솔직히 말해서 전 세계가 자신을 억울하게 공격하고 있는데 울화통이 터져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다시 바람이 불고 꽃봉오리가 떨어졌다. 효명제는 꽃봉오리를 화단으로 던져 넣고 말하였다.

“또 한 사람이 있지. 외부 부대신의 대부(代父)나 마찬가지인 사람이다.”

“여유당 대감을 말하는 것이옵니까?”

“그러하다. 올해 갑자로 따질 때 미수(米壽 - 88세, 만으로도 기념한다)가 아니더냐? 뜻깊은 일이니 외부 부대신과 이학대학 총장 둘이 탄일을 기념하도록 하라.”

정약용은 이제 정원을 제대로 거닐지도 못할 정도로 나이가 들었다. 효명제는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여 정약용의 생일을 기념하라는 명을 내렸다.

나 또한 정약용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으나 답답하다.

효명제의 말대로 마지막 생일이 될지도 모르는 이번 잔치는 일준이와 함께 준비하려 하였다.

* * *

내 기준으로는 휴일, 일준이에게는 잔업이 남아 국립이학대학에 남아서 일하는 주말이었다.

녀석은 성당에 다녀와 나를 만나고는 덤덤하게 말하였다.

“앞으로 다섯 달 정도 남았나? 이번 생일에는 또 뭘 해드려야 하지?”

“정확한 탄일은 음력 6월 16일, 양력으로는 8월 4일이야.”

“가족 친지들을 다 모이게 하는 건 당연하고 신약이라도 보여드려야 하나?”

“지난 생일에는 다산 선생님이 번잡한 건 싫다 했는데 백이십 명 모였잖아. 그러다 쓰러지실 것 같은데?”

아직 생일까지 시간은 많이 남았으니 쓸 만한 물건을 죄다 모아놓고 선별하면 충분하리라.

일준이는 목록을 죄다 뽑아서 정리해 놓고 내 앞에서 바로 업무에 돌입하였다.

“내가 할 일이 태산이다. 전 세계에서 자문을 얼마나 요구하는지 주말에도 나와서 일하잖아.”

“영국에도 대학이 있고 프랑스에도 대학이 있는데 웬 자문이야?”

“우리 이학대학에서 담당하는 일 중에 수에즈 운하 공사에 고용된 대한제국 기술자들의 자문도 있고. 이점버드 브루넬 이 양반이 가장 많은 자문을 요구하던데?”

“어떤 자문인지 대충 감이 오는데. 혹시 모르니 한번 확인이나 해보자.”

일준이는 이점버드 브루넬의 서신을 건네주었다. 구구절절한 미사여구가 담긴 서신에는 자의식 과잉에 가까운 표현이 가득 첨부되어 있었다.

[저는 운하 공사를 보조하기 위하여 지중해 방면으로 바지선 두 척, 홍해 방면으로 바지선 한 척을 만들었습니다. 이 배의 이름을 트리니티(Trinity – 삼위일체)급이라 하였습니다.]

[초기 배수량은 1만 톤, 이후 설계를 개량하여 배수량 1만6천 톤을 달성하였습니다. 각기 리바이어던, 베헤모스 그리고 지즈(Ziz, 가장 거대한 날짐승)라 칭하였습니다.]

뭔 일이 일어났는지 서신만 보아도 알 것 같다. 바지선을 만들라 하였는데 점점 더 거대한 설계로 고쳐나가면서 끝없이 일감을 늘려나갔으리라.

“센스 한번 죽여주네. 성경에 나오는 괴수 이름을 붙여놓고 트리니티 급이야?”

“참 골 때리는 양반이라니까. 내가 하지 말라는 짓은 골라서 해 놓고 문제가 생겨서 이런 서신을 보내다니.”

“네가 하지 말라는 짓?”

일준이는 서신 한 귀퉁이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사고 항목이 있었는데 이점버드 브루넬이 뭔 사고를 치는지 명확하게 드러났다.

[닐슨 총장님께 여쭈어볼 것이 있습니다. 바지선의 증기기관 10개, 2개씩 조로 묶인 기관을 최대 출력으로 가동하자 지상의 시험과 달리 과열로 인한 역류가 발생하였습니다.]

[결국 증기기관을 최소 출력으로 가동하여 임시 조처를 취하였는데 이마저도 과열이 발생합니다. 여기에 선회를 반복하면 선체 파손이 발생하여 직선 기동만 가능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수에즈 운하에서 사용할 바지선으로서 부족한 점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배에서 발생한 문제를 훗날 설계에 반영하기 위해 자문을 요청합니다.]

“이 양반 영국 대학들에게 미운털이 얼마나 박힌 거지?”

“이걸 영국 학자들이 분석할 수나 있겠냐? 내가 물리와 열역학 지식은 별로 없기는 한데…….”

일준이는 턱에 손을 괴고 한참동안 고민했다. 뭔가 공식을 적어서 계산하려다 머리를 벅벅 긁고 포마드를 발라 머리를 다시 정돈하면서 말했다.

“이런 일에는 전문가가 있지. 갈루아면 이 내용을 계산할 수 있을 테니 물어보자고.”

“갈루아가 열역학을 배웠다고? 그 양반 자신의 수학을 갈고닦는데 바쁜 사람 아니야?”

“자신의 군론을 계속 공부하다 머리가 터질 것 같다고 프랑스 출신 수학자와 물리학자들의 이론도 섭렵하고 있어. 그 과정에서 쓸 만한 제자도 많이 두었고.”

<멍청한 질문 절대 금지>라 적힌 갈루아의 방문을 두드리자 피로에 허우적거리는 제자들과 쌩쌩한 갈루아가 있었다. 그는 일준이를 바라보면서 말하였다.

“봐라! 닐슨 총장도 나에게 자문을 하지 않나!”

“그냥 죽여주십시오…….”

“죽긴 뭘 죽어! 자문 요청하는 동안 잠시 쉬고 와라! 씻고 네 시간 정도 잔 다음 돌아와서 계산을 재개하도록!”

일본 난학자 출신 제자는 갈루아의 연구실에서 뛰쳐나와 자유라고 외치며 기숙사로 향했다. 이 끔찍한 몰골을 지켜보던 일준이는 칠판의 그래프를 보면서 말하였다.

“혹시 학과장이 예전부터 다루던 군론과 기하학의 접합을 추구하고 있나?”

“총장 자격이 있군. 나는 될 것도 같고 안 될 것도 같은데 다들 포기하려 해서 좀 호되게 질책하고 있지. 이걸 위상군론이라 해야 하나 기하군론이라 해야 하나.”

“새 학문의 이름으로 위상 수학이 괜찮을 것 같은데?”

잠시 대화가 이어졌는데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은 이과 이론들이 튀어나왔다. 갈루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일준이가 건넨 자문 요청서를 받으면서 답하였다.

“그거 좋군. 아무튼 군론과 기하학의 접합으로 머리가 깨질 것 같은데 머리 좀 식혀야겠어.”

“그걸로 머리가 식혀지기는 합니까?”

바로 분필을 들고 칠판에 공식을 써내려가던 갈루아는 피식 웃으며 답하였다.

“어차피 단순 계산은 산수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아무튼 열역학적 문제 같은데 일단 르장드르 변환으로 온도와 압력을 계산하고 카르노 순환으로…….”

칠판 하나를 가득 메울 정도의 공식을 적어나간 갈루아는 점차 짜증을 내며 분필을 부러트리고 계산을 마쳤다. 그러고는 코를 감싸 쥐고 눈을 찌푸리면서 답하였다.

“내가 연돌 길이가 지름에 비해 너무 길면 열이 축적된다고 그렇게 말 했는데 듣지를 않네!”

“열이 축적된다니요?”

“지상에서 증기기관을 돌릴 때에는 모든 열이 사방으로 퍼져나가지. 반면 선체 안에서는 이중 격벽으로 보호하고 긴 연돌로 열을 뿜어내니 열이 더 쌓이잖아 이 머저리 놈아!”

갈루아는 흥분으로 얼굴이 토마토처럼 변해 분필을 칠판에 집어 던졌다. 그러고는 딥(dip) 펜에 잉크를 잔뜩 묻혀 ‘닥치고 연돌 지름을 2.4배로.’라는 답을 돌려주었다.

다음 계산은 물리학적 계산이었는데 이 또한 분노를 터트리게 만들었다. 그는 아예 칠판을 때려 부술 기세로 이를 부득부득 갈고 말하였다.

“길이가 두 배로 늘어나면 모멘트는 네 배로 늘어나지! 여기에 전단 응력은 몇 배로 늘어나는데 부재 두께를 경험적으로 세 배로 설정해! 경고를 얼마나 했는데!”

괴성을 지른 갈루아는 방구석의 찬장을 열고 솜 남편을 꺼냈다. 몸체 위에 이점버드 브루넬을 묘사한 외피를 끼우더니 벽에 걸어놓고 사정없이 주먹으로 구타하였다.

“내가 또 저 짓거리 할 줄 알았다.”

일준이는 웃옷을 벗어던지고 미친 듯이 주먹을 날리는 갈루아를 보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 모습을 보고 어처구니가 사라져서 일준이에게 물어보았다.

“둘이 사이가 안 좋나 봐?”

“둘 다 공학을 추구하는 사람인데 브루넬은 경험적으로 최대한 크고 아름답게, 갈루아는 계산적이고 정적인 설계를 추구하거든. 그러니 저 꼴이 매번 벌어지더라.”

온 몸이 땀범벅이 된 갈루아는 숨을 몰아쉬면서 설계 수정사항을 적어나가다 갑자기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다가 일준이에게 역으로 질문을 하였다.

“닐슨 총장! 지금 대한제국에서 생산하는 강철 항복강도가 얼마지? 메가 파스칼(MPa)단위로!”

“대량 양산품 기준으로 백오십 정도, 엄선된 최고급으로 이백이 조금 안 되지.”

“화학자면서 좀 빠르게 철근을 개량할 수는 없나? 항복강도가 이백사십 메가 파스칼만 되어도 감당이 되는데!”

“그것보다 자네 군론 완성이 빠를 것 같은데?”

갈루아는 찬장을 열고 이번에는 일준이의 솜 남편 외피를 덧씌웠다. 그리고 다시 괴성을 지르며 주먹질을 하며 분노를 터트렸다.

일준이는 한 대 쥐어 패려다가 꾹 참고 문을 열고 나왔다.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아서 적당히 질문을 하였다.

“지금 철의 품질이 영 안 좋나 봐?”

“뭔 소리야. 지금 대한제국의 철은 영국과 비교할 수 없이 좋아. 베세……. 닐슨 전로를 활용해서 철을 만들 때 불순물이 가장 적게 만들 수 있는 지역인데.”

일준이는 이런 말을 하면서 내 시선을 회피하고 괜히 강의가 진행되는 강의실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할 말이 없다는 듯이 중얼거리듯이 말하였다.

“물론 현대와 비교할 수 없이 엉망진창인 철이지. 현대의 아파트에서 쓰는 철근의 항복강도가 대부분 사백 내외, 타이타닉에 쓰인 철이 이백 내외인데 백오십이면 합격이니까.”

“그 정도로 부족하냐? 그러면 야금술을 개량해 강도를 올리는 방법은 없어?”

“평로, 도가니 제강법을 사용하면 강도가 훨씬 높아지는데 그건 칼이나 총열을 만드는 데 사용해도 부족해. 이러니 장인들의 의견도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게 며칠 만에 될 일이냐.”

앞으로 갈 길이 멀다는 소리다. 그러던 중 장인들의 의견이라는 말에 촉이 왔다.

“다음 다산 선생님 생일 때 가장 좋은 선물을 드리면 어떨까?”

“뭐? 닐슨 전로라도 하나 마련해 드려?”

“아니지. 기술 발전에는 각계각층의 장인 의견까지 들어야 한다면서. 그러면 생일잔치에 높으신 양반들 말고 다산 선생님의 지식을 활용하는 사람들이 방문해야지.”

이번 생일은 정약용이 발견한 수많은 문물들, 그가 개발한 기술과 저술한 서적을 통한 각계각층의 제자들이 모두 모이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의학자 이전에 유학자인 정약용에게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그러한 마음에 사방으로 퍼져 나간 사람들에게 연락을 보냈다.

심지어 대한제국 밖에 있는 정약용의 학문을 배운 사람들과 이를 활용하는 사람들도 대한제국으로 돌아올 것을 요청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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