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188화 (187/345)

188화

16장 11화 종의 기원(3)

빅토리아가 방문한 곳은 이 시대에 가장 혁신적인 의사라 불리는 로버트 리스턴의 병원이었다. 런던 중심가에 위치한 이 병원은 수많은 기적이 일어나는 장소라 칭송받았다.

그녀는 천재 외과 의사이자 기적의 의사라 불리는 로버트 리스턴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매번 사지를 절단하는 사람이면 끝없이 이어지는 출혈을 막을 방법을 알지도 몰랐다.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방문한 병원이었다. 의료진은 입구에서부터 강요에 가까운 부탁을 하였다.

“여왕 전하께 참으로 송구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드레스와 신발을 갈아 신으시고 비누로 손을 씻어야 합니다.”

화려한 복식을 가리킨 의사의 말을 들은 근위대 연대장은 바로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삿대질을 하며 의사에게 고함을 쳤다.

“지금 여왕 전하께 무슨 망발인가!”

“아무리 여왕 전하라 하여도 다른 환자에게 해를 입힐 수 있으면 들여보낼 수 없습니다. 저희 병원은 청결을 기반으로 하여 환자를 진료하는 병원입니다.”

토머스 H. 헉슬리라는 명찰이 붙은 젊은 의사가 근위대 연대장과 기세 싸움을 벌였다. 빅토리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하였다.

“병원의 주인은 병원장이지요. 탈의실은 어디에 있지요?”

잠시 뒤, 하얀 가운과 바지로 갈아입은 빅토리아가 세면대에서 손을 씻었고 토머스가 안내를 시작하였다.

빅토리아의 눈에 들어온 것은 기분 나쁠 정도로 새하얀 벽이었다.

“벽에 회반죽을 바르셨군요. 돈이 많이 들었을 것 같은데요?”

“청결과 위생을 위해서입니다. 회반죽이 오염되면 바로 깎아낼 수 있으며 소독제로 세척하여도 오래 버틸 수 있는 녀석이지요. 바닥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허름한 신발을 신게 한 이유도 있겠군요.”

“당연합니다. 지금 막 바닥 청소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빅토리아는 복도 끝에서 밀려오는 치아염소산나트륨의 지독한 냄새를 느끼며 코를 감싸 쥐었다. 그 앞에서는 간호사들이 바닥에 깔린 물을 솔질로 밀어내며 청소를 하였다.

잠시 복도에서 기다리니 로버트 리스턴이 달려 내려왔다. 그는 병원 내부를 빅토리아에게 안내하였다.

피로 범벅된 가운을 입은 보통 병원과 달리 로버트 리스턴의 가운에는 잡티가 하나도 없었다.

새하얀 벽과 새하얀 침대 시트 그리고 새하얀 환자복 속에는 사지가 절단된 환자들이 즐비하였다.

이들 대부분은 별다른 감염증세 없이 평온하게 잘린 사지를 치유하였다. 빅토리아가 의문을 담은 시선을 보내자 로버트 리스턴의 설명이 바로 이어졌다.

“보통 병원은 절단 환자의 절반이 목숨을 잃습니다. 반면 신속 절단은 이 할, 낙수 치료법을 도입하면 일 할 이하, 그리고 병원 청결을 유지하면 오 푼 이하의 희생자를 냅니다.”

“대단한 일이군요. 그럼 수술 중 실혈(失血)로 사망하는 사람은 얼마나 됩니까?”

“어……. 구혈대나 기타 지혈을 활용해도 오 푼 정도는 출혈로 사망합니다. 간혹 피가 아예 멈추지 않는 환자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답이 없더군요.”

빅토리아는 자신의 아들이 앓는 혈우병을 떠올렸다. 가까스로 태어난 아들의 몸에 자그마한 상처가 났는데 하루 종일 피가 멈추지 않아 의료진들이 기겁하였다.

이 끔찍한 질병을 이 병원에서는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으나 아니었다. 그녀의 일그러진 표정을 본 리스턴은 가슴을 치며 당당하게 말하였다.

“그래도 대한제국에서 들여온 서적 덕분에 길이 열렸습니다. 아직 정식 학회 발표는 안 하였지만 인간의 혈액 형질을 분석하여 수혈을 할 수 있다더군요.”

“수혈이라니요?”

“요즘 유행하는 종의 기원에 저술된 내용입니다. 인간의 혈액형은 플러스, 마이너스의 두 분류 A, B, O 그리고 AB형이 있다 합니다. 그 서적에는 이 혈액형으로 유전 법칙을 논하지요.”

자신이 읽은 종의 기원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다. 자신의 눈에는 혈우병 하나만 들어왔으나 의사인 로버트 리스턴은 다른 시선에서 서적을 분석하였다.

“그렇다면 출혈이 멈추지 않는 환자에게도 수혈을 통해 피를 공급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바로 보셨습니다. 종의 기원에서 논하기를 대한제국의 메디슨 센터(약당)에서 수혈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여러 실험을 거친 뒤 의학계에 발표할 예정이라 하였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초조한 눈빛으로 자신이 읽은 종의 기원을 떠올렸다. 이 서적은 수많은 사회적 분쟁을 야기할 서적이나 자신과 아서의 약점도 틀어쥐고 있었다.

사고로 자그마한 상처가 나면 아서는 피가 멈추지 않아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리라. 아서가 목숨을 오래오래 부지하려면 당장에라도 수혈 제도를 도입하여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야 한다.

결국 빅토리아는 종의 기원의 진실성, 최소한 일부의 사실은 옳은 내용이라 왕실의 입장에서 선언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로버트 리스턴에게 말하였다.

“우리 대영제국의 자존심을 위해 혈액의 유형과 수혈 방법에 대해 연구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혹시나 종의 기원을 신뢰하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대한제국의 과학, 의학 기술이 우리보다 뛰어날 리가 없지 않습니까? 연구를 통해 더 나은 수혈 방법을 찾아나가도록 합시다.”

빅토리아는 왕실의 명예를 조금 훼손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자식을 살리기 위한 어머니로서 선택을 하였다. 이는 조일준이 가장 바라던 형태로 찰스 다윈을 지원하게 되었다.

* * *

찰스 다윈은 본래 종의 기원 2쇄를 인쇄하고 영국으로 돌아오려 하였다. 그런 마음을 품은 다윈에게 급보가 전해져 왔다.

[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다. 에라스무스 다윈]

큰형 에라스무스 다윈의 전보를 받은 다윈은 조일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즉시 영국행 선박에 몸을 올렸다.

그는 가장 빠른 배를 타고 51일 만에 런던에 도착하였다. 1849년 1월 4일 배에서 내린 다윈은 수많은 인파를 맞이하였다.

-라마르크가 옳았다! 용불용설은 진실이었어!

-원숭이의 자식을 자처하는 자! 저주받으라!

-다윈 교수님의 의견을 우리는 절대적으로 지지합니다!

종의 기원을 읽은 수많은 이들은 다윈을 증오하거나 열렬히 환영하였다. 이들은 벌써부터 토론 준비까지 마치고 다윈을 반강제로 끌어당기다시피 호위하였다.

“당장 왕립협회 회의실에서 토론을 합시다! 어느 쪽이 옳은지 붙어 보아야지요!”

“그만두시오! 아버지께서 목숨이 경각에 달하였는데 당장 비키시오!”

“토론은 장례가 끝난 다음 하겠습니까?”

다윈은 그 심약한 성격에도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오자 격렬히 분노하였다. 장례식을 먼저 논하는 목사를 발로 걷어찬 다음 마차를 임대하였다.

마차는 전속력으로 다윈의 고향 슈루즈버리로 향하였다. 자신의 집으로 달려간 다윈은 다행히도 아버지의 임종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형님! 아버지는 어떠하십니까?”

“며칠 전부터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셨다. 너를 계속 찾으셔서 조만간 도착할 거라 하였는데 그나마 다행이구나.”

찰스 다윈의 아버지 로버트 다윈은 얼마 전부터 기력이 쇠진하여 몸이 비쩍 말라가고 있었다. 그의 두툼한 체격은 볼품없이 위축되었으며 눈가에는 죽음의 기운이 감돌았다.

“찰스가 왔구나. 네 녀석의 책은 잘 읽어보았다.”

“아버지!”

아버지의 침대로 달려와 무릎을 꿇은 다윈은 그의 손을 꼭 붙잡았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깨우치기 위해 수많은 지식을 알려 준 아버지는 이제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눈물을 훔친 찰스 다윈은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로버트 다윈은 종의 기원을 가까스로 들어 올려 무릎 위에 놓고는 말하였다.

“너와 어린 시절에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나는구나. 우리 옛집에서 살 때에 넌 언제나 주변의 모든 식물과 동물을 기록하곤 했지.”

“다 아버지께서 도와주신 덕분이지요.”

“내 이야기가 끊기면 네가 새의 이야기를 몇 시간이고 하였지. 서적에 기술된 핀치라는 새의 내용을 보면서 너의 옛…… 적…….”

가슴을 움켜쥔 로버트 다윈은 숨을 헐떡거리며 찰스 다윈을 바라보았다. 자식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많고도 많았으나 이 말을 모두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너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구나. 네 할아버지 이래즈머스는 노예제도를 반대하다 성공회에서 파문당했다.”

그가 염려하는 것은 심약한 찰스 다윈의 성격이었다. 찰스 다윈의 눈빛이 바르르 떨리는 것을 확인한 로버트 다윈은 억지로 힘을 내어 찰스 다윈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하였다.

“종교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네가 발견한 사실이 진실이라면. 혹은 진실에 근접하였다면 이를 끊임없이 가다듬고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미 파문당할 각오는 하였습니다.”

“그 정도로는 부족하구나. 인맥을 만들고 수많은 사람으로 너를 보호……. 네 편을 만들도록 해라. 앞으로 네 앞에 닥쳐올 시련을 생각하면 내가…….”

다시 가슴을 움켜쥔 로버트 다윈은 더 이상 몸을 일으킬 기력도 없었다. 그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억지로 힘을 쥐어짜 내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네가 과학적인 논리와 온전한 사상으로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할 것이라 믿겠다.”

로버트 다윈은 이후 혼수상태에 빠졌고 다음 날 저녁 숨을 거두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친 찰스 다윈과 형제자매들은 모든 행사가 끝나고 찰스 다윈의 등을 두드리며 말하였다.

“찰스! 예전에 학교 다닐 때처럼 우물쭈물하면 내가 뺨을 한 대 후려칠 거다!”

“찰스 오빠! 내 남편도 종의 기원을 읽고 홀딱 반했어. 이번 논쟁에서 꼭 이길 거지?”

반면 찰스 다윈을 질시하는 이들도 있었다. 특히나 사촌인 프랜시스 골턴은 근처에 접근조차 안 하고 그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비난하였다.

이 모든 시선을 등에 업은 찰스 다윈은 마지막으로 아버지 로버트 다윈이 묻힌 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모자를 고쳐 쓰며 당당하게 말하였다.

“내 이론이 인류의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한다면 한 점의 부끄럼도 없다.”

며칠 뒤, 영국 왕립협회 전용 회의장에서 종의 기원과 관련된 토론이 시작되었다. 이 회의는 나름 형평성을 맞추는 것처럼 주요 인사가 배정되었다.

“토론의 사회자를 담당하게 된 마이클 패러데이입니다. 양측의 사람들은 착석하십시오.”

찰스 다윈은 토론장에 입장하자마자 자신이 불리한 처지에 놓였음을 알아차렸다. 사회자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마이클 페러데이였다.

여기에 창조론 측, 혹은 종의 기원에 반대하는 이들의 면모도 만만치 않았다. 윈체스터 대주교 조셉 위그람을 필두로 철학자인 아르투어 쇼펜하우어가 함께하였다.

심지어 조일준에게 호되게 당한 사무엘 조지 모튼을 비롯한 학자들이 끼어 있었다. 이들의 포진은 종교로 압박하고 과학적 사상으로 마무리를 짓겠다는 의도가 다분했다.

찰스 다윈 측에는 나름 구색은 갖춘 학자들이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진취적일 뿐 많은 성공을 거두지 못한 이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윈은 자신을 가지고 자리에 앉으려 하였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이 자리는 신성한 종교가 함께한 자리입니다.”

몇 년 전에 논문 부정행위로 학계에서 추방당한 리처드 오언은 여러 권의 성경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그는 마이클 패러데이를 시작으로 각 진영의 단상 앞에 성경을 놓고 말하였다.

“모두 성경에 대고 맹세할 수 있겠습니까?”

“굳이 성경을 가져올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진실에 대한 서약을 맺을 때에는 성경에 손을 얹고 하는 법 아닙니까.”

마이클 패러데이는 리처드 오언의 수작을 바로 알아차렸다. 학계에서 추방당한 그가 다시 학계로 복구하기 위해 찰스 다윈을 중립적인 척 공격하려는 시도였다.

서양 문화에서 성경에 대고 맹세하는 행위는 일상생활과 같았다. 모두가 성경에 손을 얹고 진실만 말할 것이라 맹세하는 동안 다윈은 침묵을 지켰다.

모두가 주목하는 와중에 다윈이 마침내 성경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첫 포문을 열었다.

“저 찰스 다윈은 관습과 종교적 문화에 의거하여 성경을 통하여 제가 진실만 말할 것이라 맹세합니다. 그러나 과학적인 자리에서는 성경의 내용에 연연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단상에 성경을 놓았으나 다윈은 단상에서 내려와 리처드 오언에게 돌려주었다. 그는 목을 가다듬고 다시 단상 위에 올라와 패러데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토론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종의 기원을 저술한 다윈 측에서 주제를 논하시지요.”

찰스 다윈은 바로 다음 공세를 시작하였다. 그가 보아온 생물의 변이에 대한 증거를 내놓고 이 근거로 형질의 우열을 통한 유전, 이 유전이 적용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상대측도 증거 부족이나 미확인 사항의 이론화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찰스 다윈은 수많은 파상공세와 자신의 미숙한 진화론의 약점을 받아내며 논리적인 대화를 이어가려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과 감성 중 감성이 앞서는 사람이 있었다. 반대 측에서 한 과학자가 다윈을 비꼬는 발언을 하였다.

“원숭이에서 인간이 진화하였다니 차라리 먼지에서 진화하는 것이 논리적이군.”

“바로 보셨습니다. 제 이론이 끝까지 이어진다면 인간은 효모와 같은 아주 단순한 생물에서 진화했을 것 같군요.”

“효모라? 그럼 묻고 싶은 것이 있소. 댁이 원숭이의 자손인데 부계가 원숭이요 모계가 원숭이요? 아니면 다른 유인원이라도 있소?”

청중 모두가 웃음을 터트리고 마이클 패러데이조차 끅끅거리며 웃음을 참았다. 그러자 다윈은 단상을 손으로 내리치며 말하였다.

“아마 두 분 다 원숭이일 것 같습니다. 사실 과학 토론장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남을 인신공격하는 인간과 조상을 공유하느니 원숭이가 조상인 쪽이 좋지요.”

다윈은 아버지를 떠올리고 자신의 지지자를 떠올리며 끝없이 공세를 이어갔다.

하루 여덟 시간의 토론은 끝없이 이어지며 다음 날도, 다다음 날도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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