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16장 11화 종의 기원(1)
효명제는 흄 후드 제작과 관련하여 더 이상 언급하지 않으려 하였다. 이미 지나간 일이며 일준이가 언젠가 투자비용을 환수하고 남을 정도의 위업을 달성할 거라 판단했으리라.
다만 과학자가 아닌 유생들은, 특히나 국가 운영에 어중간하게 관심만 두고 과학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은 국립이학대학의 행동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이 비판이 선을 넘는 수준은 아니나 ‘성공을 거두고 자만하다 실패한 사람은 많이 보았다.’라는 식으로 일준이를 공격했다. 내가 찾아가니 녀석은 툴툴거리며 나에게 불평을 털어놓았다.
“기초과학과 실험기구 투자에는 돈을 아끼면 안 돼. 자기들도 기초적인 항목으로 사서삼경을 둘둘 외우면서 고작 수만 냥 가지고 저렇게 소리를 지르고 있네.”
“이 시대 과학은 마녀들의 손장난에서 제대로 된 학문으로 넘어가는 시기잖아.”
“바로 그 말이야. 미신을 타파하고 고정 관념에서 탈피해 과학적 사고방식을 가져야지!”
“그런데 왜 순학자, 현대로 분류하면 고생물학자들의 행동을 아직도 내버려 두고 있어?”
일준이는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돌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한때 요순학으로 시작한 고고학자들은 제대로 된 고고학자와 무당과 흡사한 고생물학자로 나뉘었다.
고고학자들은 문명의 흔적을 따라 분석과 발굴로 많은 업적을 쌓았다. 이들은 건물 주춧돌이나 주춧돌이 놓인 흔적, 혹은 옛 문명의 흔적을 찾아내 많은 자료를 수집하였다.
어느새 순학자라 불리던 별명이 아닌 ‘고고학자’ 라 불리기 시작하였지. 이런 가운데 요학자, 고생물학자들은 엄청난 고난과 시련을 겪었다. 일준이는 지나가듯이 중얼거렸다.
“그 양반들은 이미 내 통제를 벗어나서······.”
“내가 보기에는 과학자들의 평판을 가장 많이 깎아 먹는 게 고생물학자들이야.”
고생물학자가 화석을 발굴하면 자신의 이름이 화석에 붙는다. 이 영광을 누리는 사람이 극히 일부에 불과하여 화석을 발굴하지 못한 사람은 가정도 버리고 발굴에만 몰두한다.
결국 고생물학자들이 지녔던 요학자라는 별칭은 순(舜)학자로 바뀌었다. 이들은 가족에게 핍박받고 주변의 질시를 한 몸에 떠안으며 땅을 헤집고 다닌다.
이는 순 임금의 젊은 시절과 같다고 돌려서 욕하는 꼴이다. 일준이는 한숨을 푹푹 쉬면서 그나마 희망적인 관측을 내놓았다.
“그 양반들 그랜드 캐니언과 로키산맥으로 건너갈 예정이잖아. 거기서 성과를 좀 거두겠지.”
“내가 보기에는 원주민들이 고생물학자들 행동에 질려서 단체 도주할 것 같은데.”
“닐슨! 한센! 답답한 대화 말고 새로운 과학적 발견에 관해 대화를 나눠 봐요!”
문이 벌컥 열리며 에이다가 커다란 상자를 들고 우리에게 사뿐사뿐하게 걸어왔다. 그녀는 상자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뚜껑을 열며 말했다.
“소리를 저장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어요!”
“지금 뭐라 했어? 소리를 왜 저장해? 대체 어떻게?”
“직접 보시면 알 거예요. 한 번 제가 하는 걸 지켜봐 주세요!”
에이다가 가져온 기계는 나무로 만든 커다란 나팔과 건전지로 작동하는 모터 그리고 소리를 녹음하는 원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녀는 목을 가다듬고 전원을 넣은 뒤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실린더의 표면에 바늘의 진동으로 흠집이 생겼다. 에이다는 목을 가다듬고 실린더를 뽑아내 표면의 흠집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제 소리가 저장되었어요. 이론대로라면 제가 기록한 소리를 재생할 수 있을 거예요.”
이 원시적 축음기의 문제점은 내가 잘 알고 있다. 에디슨이 처음 개발해 놓고 실패한 이유도 있으니 에이다도 실패할 것이라 생각하고 말했다.
“에이다, 아무래도 이 기계는 실패할 것 같은데?”
“나도 같은 생각이야. 예전처럼 재생 과정 문제가 일어날걸? 집에서 몇 번이고 시험해 봤잖아?”
나와 일준이가 거의 동시에 말하자 에이다는 볼을 부풀리며 당당하게 말했다.
“실패라니요! 제가 몇 번이나 개량했는데요!”
에이다는 나팔에 연결된 바늘을 교체해 녹음 기능 대신 재생 기능을 활성화시켰다. 축음기를 에이다가 개발할 줄은 꿈에도 몰라서 흥미롭게 이를 지켜보았다.
축음기가 가동되자 실린더가 돌아가며 바늘이 진동하였다. 에이다의 목소리는 헬륨가스를 퍼마시고 술에 취한 채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처럼 변질되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핫!”
“한센! 왜 놀리세요! 이건 조절이 좀 잘못되어서고 조금만 재생 각도를 변화시키면······.”
바늘의 각도를 조절한 에이다의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다. 밀랍을 단단하게 굳혀 만든 실린더는 바늘이 몇 번이고 지나가자 갈라져서 깨어져 버렸다.
“또 실패했어! 이번이 백구십이 번째 시험인데!”
“그거 가지고 뭘 그래. 한 오백 번 정도는 실패해야지.”
“소리를 녹음하는 건 기초적인 활용이에요. 진짜 활용법은 천공카드를 대신해 방적기에 명령을 입력하려 했었지요. 근데 기초 단계에서 이 꼴을 겪다니.”
아주 예전에 사용하던 컴퓨터에는 정말 카세트를 통해 데이터를 전송하기는 했었다. 소리 자체를 0과 1의 데이터로 전송하려고 비프(beep) 음을 사용했었지.
그 개념을 1848년에 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에이다는 부서져 버린 실린더를 매만지며 말했다.
“천공카드의 다음 단계로 소리를 사용하려 했어요. 소리도 곧 진동이잖아요? 기계 입력장치에 진동을 입력해 많은 명령어를 입력하는 거죠.”
순간 실린더를 넣고 가동시키는 작업자들이 생각났다. 기계의 열기는 그렇다 쳐도 주변에서 발생하는 굉음에 비프 음이 제대로 들릴 리가 없었다.
여기에 증기기관이 전해오는 압력과 회전으로 인한 진동이 섞이면 데이터가 제대로 전송될 리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에이다에게 의심하는 눈초리로 질문을 하였다.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지만 공장에서 가동한다고? 다른 진동이 섞이면 오류가 날 텐데?”
“일단 발명만 해두면 나중에 알아서 하겠죠!”
이런 태도를 보면 일준이의 흄 후드와 다를 것이 뭐란 말인가. 그나마 남는 재료를 활용하여 만든 물건이라 수많은 실패에도 주목받지 않았을 뿐이다.
“맞아! 기초 과학 투자가 세상을 바꾸잖아!”
일준이도 여기에 맞장구를 쳤다. 이 두 부부는 나와 같은 냉철한 사람이 제어하지 않으면 답이 없다. 남편은 육식성 코끼리 수준의 기계를 덮어놓고 만들어 버렸다.
아내는 이 시대의 기술력을 초월한 개념을 먼저 만들어두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일준이가 내 옆구리를 찌르려고 해서 몸을 휙 돌린 다음 에이다에게 충고를 하였다.
“에이다, 아무리 부부가 일심동체라지만 일준이와 같은 행동을 할 필요는 없어.”
“저도 답답해서 죽을 것 같아서 이런 물건을 개발했다니까요? 새 방적기 개념은 완성되었는데 야금술이 부족해서 부품이건 전자석이건 죄다 시험 단계에서 버티질 못하잖아요!”
“야금술의 발전은 본래 수십 년이 걸리잖아? 그걸 기다리며 이 기계나 개량해 보자고.”
축음기가 제대로 완성되면 문화적 진보를 이룩할 수 있으리라. 일준이는 알면서 힌트만 슬쩍슬쩍 던지고 이야기를 안 해주는 것이니 내가 나서서 개선점을 이야기해 주었다.
“음질 개선이 가장 큰 문제고 다음 문제는 원통의 내구성이네. 일준이가 개발한 셀룰로오스나 다른 물질로 원통을 만들어볼 생각은 없었어?”
“그게 좀 힘들어서 말이에요. 녹음 과정에서 바늘이 닳아버리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던데요.”
“나는 원통도 아니고 원판으로 개발하자고 말했는데 에이다가 내 말을 귓전으로 흘리던데?”
내 말이 끊기고 일준이의 시선과 에이다의 시선이 교차하며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에이다는 심호흡을 하더니 목에 핏대를 세우고 말했다.
“닐슨! 이 기계는 고작 음악 따위를 재생하려는 기계가 아니에요! 천공카드를 대신한 차세대의 정보 전송기잖아요! 원판은 내부와 외부의 속도 차이로 데이터가 전송되지 않아요!”
“데이터 전송 이전에 음악부터 전송해야지.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어서 투자를 받을 생각부터 하자고.”
서로 장단점에 대해 이야기하자 둘 다 과학자라 부부싸움이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았다. 나는 투자자의 입장에서 둘의 의견을 결론 내었다.
“어차피 에이다의 기술은 머나먼 미래를 바라보고 먼저 개발하는 거잖아? 그러면 아래 단계부터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야 하지 않을까?”
“하······ 한센을 보아서 받아들일게요. 한센은 투자해 주실 거죠?”
“다음 달부터 콜라 생산을 시작할 예정인데 그 수익금 가운데 상당수를 배분해 줄게.”
근성 하나는 대단한 에디슨도 축음기 개발까지 10년이 걸렸다. 아마 일준이가 슬쩍슬쩍 전해주는 힌트를 받은 에이다도 몇 년이 지나야 축음기를 개발할 거다.
새로운 수정안을 작성하고 나서 가까스로 에이다가 만족하였다. 그녀는 노트에 이 메모를 적어 넣고는 궁금한 듯이 말하였다.
“참 한센, 얼마 전에 닥터 여유당 선생님을 만나 뵌 적 있지요? 혹시 순환계(循環系) 질병에 대해 지식을 가지고 계시나요?”
“그분 전공을 굳이 따지면 내분비계랑 전염병 관련이야. 거기다 연세가 아흔이 다 되어가는 분이라 제자를 찾는 것이 좋을걸? 그나저나 의사는 왜 찾아?”
에이다는 본래 역사에서 1850년 초반에 목숨을 잃는다. 물론 아편에 중독되어 통증이 계속 억제되는 바람에 병을 키워서 일어난 결과이다.
아편을 끊은 이 시점에는 아프면 아프다고 바로 말하고 쉬면 쉰다고 바로 말하리라. 에이다는 내 질문을 듣고 골똘히 생각하더니 답해주었다.
“최근에 영국에서 유학 온 학생이 전해준 이야기에요. 듣자 하니 왕실에서 명령을 내려 전국의 순환계 관련 의사들을 모두 소집했다던데요?”
“혹시나 예전에 우리와 함께 일한 로버트 리스턴의 강의를 가르치려는 거 아닐까?”
“닥터 로버트요? 그 사람은 이제 사람을 재워놓고 사지를 절단하는 수준이니 그럴 가능성도 있겠네요. 아무튼 왕실에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게요.”
방을 나가는 에이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얼마 전에 입수한 정보를 떠올렸다. 이미 죽어야 할 사람이 살고 살아야 할 사람이 죽는 시대라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사람이 태어났다.
바로 빅토리아 왕자의 3남, 아서 윌리엄 패트릭 앨버트이다. 본래 역사에서 더 늦게 태어났어야 할 이 인물은 1848년 5월 2일에 출생하였고 혈우병도 걸리게 되었다.
빅토리아 여왕의 혈우병 유전자의 첫 피해자가 발생한 것이다. 일준이도 아는 이야기라 간단하게 예측하였다.
“내가 보기에는 혈우병이네.”
“암만 봐도 그렇지? 갓 태어난 아들이 혈우병을 앓아서 전국의 모든 의원을 소집했을 거야.”
“대한제국이면 몰라도 영국은 소독 개념이 퍼지지 않아서 수혈로 증세를 완화하는 것도 불가능한데. 그렇다고 혈소판 분리기술을 개발할 수도 없고.”
일준이는 막 시도하고 있는 혈액형 발견, 정확히는 수혈법의 확립을 위한 실험을 떠올리고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소문이 점점 퍼져나가서 혈우병에 대한 관심이 집중될 거야. 그리고 미국에서 잊히고 대한제국에서 다시 발굴한 혈우병 논문과 이를 기록한 찰스 다윈의 서적이 주목을 받을 거고.”
“찰스 다윈? 그 양반이 왜 주목을 받아?”
“종의 기원은 이미 내 영향을 받아서 더 나은 형태로 집필되고 있다. 아마 내년이면 초판이 완성될······. 저 양반은 또 왜 저래?”
복도를 바라보니 눈이 반쯤 풀린 찰스 다윈이 허우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최근 찰스 다윈은 대한제국의 족보를 확인해 유전 법칙을 분석하고 있다는데 뭔 일일까.
대체 무슨 경험을 하였기에 저런 꼴이 되었는가. 복도로 따라나서 보니 그는 공포로 인해 팔다리를 덜덜 떨면서 갈루아의 연구실의 문을 두드렸다.
* * *
지난 6년 동안 찰스 다윈은 수많은 연구결과를 취득하였다. 이 과정에서 각종 동물을 번식시켜 우성 형질과 열성 형질을 구분하였다.
이러한 연구로 그의 이론은 더욱 정립되고 발전하였다. 진화론, 생물의 진화는 강하고 우수한 생물이 아닌 환경에 적응한 생물이 최종적인 승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닭의 형질 가운데 온순한 형질은 생존에 부적합한 열성 형질이지. 그런 형질을 모으고 모아 사육하기 편한 형질로 고정하였다면 인간이라는 환경에 적응한 것이 아닌가.”
본래 갈라파고스 제도의 다양한 생물을 기반으로 삼은 진화론의 증거는 동물에 닿았다. 이제 다음 단계로 사람을 대상으로 삼았다.
아직 유전자의 존재도 모르고 있으나 유전 법칙을 알고 있는 찰스 다윈은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였다.
그 과정에서 결국 사람의 유전 및 형질의 우열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게 되었다. 여기서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은 예전 조선 정부에서 작성한 족보 목록이었다.
“내 이마에 파인 골 말인가? 우리 가족들은 시집온 사람이 아니면 이마에 골이 파여 있지.”
경기도의 양반가를 방문하여 이 집안의 형질을 물어보자 가장은 망건을 벗어 자신의 깊게 팬 M자 이마를 보여주었다. 그의 자식도, 그의 할아버지도 모두 깊게 팬 이마를 지녔다.
반면 그의 아내와 어머니는 모두 곧은 이마를 지녔다. 찰스 다윈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 사실을 기입한 다음 답하였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혹여나 더 윗대의 조상께서도 같은 이마를 지니셨는지요?”
“내가 듣기로는 내 증조부께서는 일자 이마이시네. 다만 증조모께서 골이 팬 이마를 지니시고 조부께서 골이 파이신 다음부터 이어져 내려왔네.”
찰스 다윈은 김좌근과 보학(譜學 - 족보학)자들이 작성한 족보를 대조했다. 옆 동네에 있는 이 가문의 증조모가 출생한 다른 양반가를 확인하자 예상대로의 결과가 나왔다.
“당연히 이마에 골이 깊게 파여 있다네. 사실 이마에 골이 깊게 파인 건 문제가 아니지.”
앞머리가 모조리 날아간 양반은 자신의 넓어진 이마를 탁 치며 웃어댔다.
심지어 그의 할아버지도, 작은할아버지도 그리고 30에 불과한 자식도 심각한 탈모를 앓고 있었다. 이미 머리가 벗겨진 찰스 다윈은 눈물을 머금고 다음과 같이 기입하였다.
<굴곡진 이마와 이마부터 시작되는 탈모는 우성 유전임>
다음으로 주목한 특징은 다지증(多指症)이었다. 한 양반가에 방문하여 질문을 하자 그는 지금까지 감추고 있던 손을 드러내며 말하였다.
“병자년의 난이 끝나고 태어나신 조상께서 이러한 손을 지니고 태어났어. 나는 물론 내 자식까지 이어져 온 손가락인데 여덟 대를 내려오더군.”
“여덟 대를 거쳐서 내려오다니요? 그 위의 조상님은요?”
“그러한 기록이 없더군. 참 신기하게도 후사를 보면 대략 절반은 손가락이 여섯 개였지. 내 동생 둘은 손가락이 정상이고.”
상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여섯 개의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러고는 서양에서 수입한 6현 기타를 한 번 연주하고 말하였다.
“덕분에 기타를 칠 때 아주 편하지. 조상께서는 이러한 손을 흉하다 하셨으나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부러워하더군.”
이외에도 수많은 형질들이 찰스 다윈의 자료에 첨부되었다. 그는 자료를 수집할 때마다 점차 공포를 느꼈다.
“사람은······. 사람은 환경을 극복한 지성을 가진 생물이잖아! 그러면 이러한 유전들이 계속 중복되고 또 중복되어서 인류를 잠식할 텐데!”
찰스 다윈은 어느새 공포에 질려 국립이학대학에 돌아왔다. 그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지 못한 채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는 몇십 년 이내에 인류의 형질이 고정될 것 같았다. 사지가 짧고, 털이 덥수룩하고, 손가락이 여러 개이고 뭉툭하며, 모두가 술을 마시지 못하며.
“탈모까지 겹치잖아!”
이를 모두가 알게 된다면 공포에 휩싸인 사람들이 세상을 어지럽힐 것이라 생각하였다. 찰스 다윈은 마침내 굳은 결심을 하고 가장 냉정한 사람의 방문을 두드렸다.
“저 찰스 다윈 강사입니다. 갈루아 수학과 학과장님 계십니까?”
-들어오도록.
언제나 냉정하게 수학에 몰두한 갈루아, 결혼조차 안 하고 수학에 매진하는 냉정한 학자라면 자신의 연구 결과를 분석해 줄 것이라 생각하였다.
한참의 설명 끝에 갈루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찰스 다윈의 이론을 모두 들었다. 그리고 심각한 표정으로 커튼을 쳐 소리를 새어나가지 않게 하고 말하였다.
“참 심각한 일이군. 찰스 강사의 말이 틀림없다면 인류는 쇠퇴할 거야.”
“바로 보셨습니다. 그러면 몇 년이 걸릴지 알려주시지요.”
“일단 간단한 공식부터 만들지. 우성이 무조건 발현되는 형질이니 X라 치고, 열성은 여기에 묻히는 형질이니 Y라······. 이건 산수잖아!”
단순한 이차방정식, 기초 중의 기초가 공식이 되었다. 갈루아는 눈을 흘기며 찰스 다윈의 자료를 대조해 보라 하였다.
“결점을 지닌 사람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가?”
“천 분의 일입니다. 크게 보면 천 명 중의 한 명이 이러한 유전적 문제를······.”
“야 이 멍청아! 결과가 이렇게 나오는데 뭐가 걱정이야! 차라리 질병이나 사산이 훨씬 큰 문제겠다!”
결과는 아주 간단하게 나왔다. 999명의 열성 유전자를 가진 사람과 1명의 우성 유전자를 지닌 사람이 결혼할 경우 (우성+열성)×(우성+열성)으로 계산한다.
결과는 우성 1명, 우성이 발현된 1,998명, 그리고 열성 유전자만 지닌 998,001명으로 전체 비율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
찰스 다윈은 적어도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동안 인류가 안전하리라 생각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갈루아는 자신이 이 문제를 푼 것을 부끄러워하며 말하였다.
“이 정도 산수 문제는 찰스 강사 자네가 계산하였다고 기입하도록!”
“싫습니다! 꼭 갈루아 교수님의 풀이를 사용할 겁니다!”
둘의 실랑이는 한참을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본래 역사에서 하디-바인베르크 법칙이라 불리는 간단명료한 유전 규칙이 더 이른 시기에 발견되었다.
마침내 두 손을 내민 갈루아가 이 법칙에 자신의 이름을 기입하는 걸 허가하며 항복했다. 갈루아-다윈 법칙을 완성하여 기력을 찾은 다윈은 다음 자료를 얻게 되었다.
조일준은 자료를 찾는 찰스 다윈에게 국립이학대학에서 연구하고 있는 혈액형에 관련한 기술을 추천하였다.
그런 찰스 다윈에게 두 사람의 특이한 환자가 보고되었다. 조일준이 추천한 사람 중에는 피가 멈추지 않는 질환을 가진 사람과 아무 이유 없이 빈혈을 앓는 흑인이 있었다.